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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5:57:27

불가리아-아르메니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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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아르메니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중세2.2. 근세2.3. 근대2.4. 현대
3. 대사관4. 관련 문서

1. 개요

불가리아 공화국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대국 관계를 다룬 문서. 불가리아와 아르메니아는 각각 발칸 반도 캅카스에 위치한 국가로 각 국은 1992년 1월 18일 수교했다. 2021년 기준으로 1,048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불가리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불가리아에서 9번째로 큰 소수민족이다.

불가리아와 아르메니아 모두 과거 오스만 제국 시기 튀르키예에 의해 식민지배와 학살을 당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양국관계는 우호적이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6세기~ 11세기 동안 수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불가리아에 정착한 기록이 있다. 나중에 이들은 불가리아화 되거나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이슬람화 되었다.

11세기 불가리아 제1제국 차르 사무일의 어머니는 아르메니아인이었고 10세기 페터르 1세의 아내는 아르메니아계인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의 손녀였다. 또한 마케도니아 왕조의 창시자이자 트라키아 출신의 아르메니아인인 바실리오스 1세 9세기에 불가리아 제국의 포로로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의 아르메니아계 왕조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2세가 불가리아 제1제국을 멸망시켰다.

2.2. 근세

아르메니아와 불가리아 제2제국이 오스만 제국한테 점령당한 이후로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본토, 서아르메니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크림 반도에서 불가리아로 이주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다른 지역에서 처럼 상업 활동을 시작하여 많은 부를 획득하였다.

2.3. 근대

1878년~ 1879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이후 불가리아가 자치권을 얻자 하미디아인 학살로 고향을 잃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불가리아, 특히 플로브디프 바르나에 정착했다. 1878년 불가리아 공국에는 5,300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있었는데 10년 후에는 거의 20,000명이 증가하였다.

제1차 발칸전쟁이 일어날 즈음엔 35,000명의 아르메니아계 불가리아인들이 있었다. 이때 아르메니아의 국민 영웅으로 유명한 안드라닉 오자니안이 불가리아의 아르메니아 보조군 사령관으로서 참전했다. 이후 불가리아 당국은 그에게 용맹 훈장을 수여했다.

불가리아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과 동맹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대해 오스만 제국을 비난했다. 여기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원인이 불가리아군이 제2차 발칸 전쟁에서 오스만인들을 학살한 것의 대한 복수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2.4. 현대

냉전 시기 동안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고국인 아르메니아 SSR로 돌아갔으나 일부는 불가리아에 남거나 서유럽, 미국 등으로 이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1990년대 이후 불가리아의 아르메니아인 인구는 이민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레본 테르페트로샨, 레본 테르페트로샨, 세르지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들이 불가리아를 방문했다. 불가리아와 아르메니아의 무역은 보통 화학물질이나 원자재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2015년 4월 24일, 불가리아 국민의회에서는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의 대량 학살을 인정하고 4월 24일을 추모의 날로 선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2018년 2월 12일 양국은 노동 규제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

2022년 6월, 아르메니아 외무부 장관 아라라트 미르조얀은 불가리아 루멘 라데프 대통령을 만나 수교 30주년을 축하하고 양국 관계의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

3. 대사관

불가리아는 예레반에, 아르메니아는 소피아에 각 국의 대사관을 가지고 있다.

4.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