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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 Ամերիկայի Միացյալ Նահանգներ |
아르메니아 Հայաստան Armen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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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와 카프카스 지역 국가 아르메니아 사이의 관계. 미국에는 근현대부터 이주, 정착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이 수십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냉전 시대 아르메니아 본토가 소련 영토가 되면서 아르메니아의 존재는 미국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으나, 소련 붕괴 이후 1991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양자 사이에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맺어졌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은 로비를 통해 아르메니아 본토를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다.미국 의회 내에는 미국아르메니아민족위원회(Armenian National Committee of America,ANCA) #가 설치되어 있어 양국간 호의적인 교류를 이끌고 있다. 무려 1918년에 설치된 유서깊은 위원회. 미 행정부가 아르메니아 학살을 인정하기 훨씬 전부터 관련 의결안을 가결하고 행사를 진행한 것도 이 위원회의 공. 소위 말하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의 막강한 로비력의 본산으로 지목당하기도 한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시절에는 ANCA 예산이 69.6%가 깎여서 ANCA가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1991년 12월 아르메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자마자 미국은 아르메니아의 주권을 인정하였고 1992년 2월 미국은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미국 대사관을 설치하였다.1988년에서 1994년까지 진행된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튀르키예의 지원을 차단하였고 1992년경 미국은 Section 907을 발효시켜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모든 지원을 배격한다는 법률을 제정하여 간접적으로 아르메니아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1992년 당시 미국은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를 포함한 과거 소련의 구성국들이 온전한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도록 FREEDOM Support Act of 1992를 제정하여 말그대로 자금을 퍼주고 있었는데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보여준 여러 문제 있는 행위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의 로비로 인하여, 미국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서만 그 지원을 막아버린 것이다 # [1]
다만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종료되고 난 이후 미국과 아르메니아간 관계는 소원해졌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밀착관계를 가지기 시작했고 미국은 미국대로 카스피해의 석유 및 천연가스로 유럽내 에너지 공급의 한축을 담당하는 아제르바이잔에 유화책을 펼쳤다. 아제르바이잔 역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의 외교실패를 반성하여 철저한 친미 스탠스로 바뀌었으며 특히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을 위해 아제르바이잔은 아예 영공을 개방하고 보급기지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의 숙적인 아르메니아는 자연스럽게 미국과 멀어진 것이다. 아르메니아가 이스라엘과 척지고 이란과 친하게 지내게 된 것도 미국 입장에서 아르메니아 친화정책을 실시하기 부담스러운 요소 중 하나. 아르메니아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등 미국과 러시아간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친러국가인 아르메니아도 미국과 관계가 더 멀어졌다.
그렇다고해서 미국과 아르메니아간 서로 노골적으로 반목할 일은 별로 없었기에 양자는 많은 군사적, 경제적 교류를 수행했다.
오늘날 아르메니아가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가 특별한 강국 수준의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양국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는 다른 국가에 비해 대단치 않은 수준이지만,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 사이의 응집력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국제 관계에서 아르메니아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아르메니아 관계는 아르메니아계 로비가 없으면 설명되지 않는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중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을 뿐더러,[2] 이민 이후에도 아르메니아계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로비는 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 규탄 및 아르메니아의 적대국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견제를 포함한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상당수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직접 피해서 미국으로 망명, 정착한 사람들의 후손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우방국인 이스라엘과 아르메니아의 사이가 험악해지고,[3] 터키 역시 미국의 중요한 안보동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유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의 로비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외교계의 아르메니아 지지는 점점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학계 역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관련한 적극적인 성토를 자제하는 상황이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아르메니아를 지지할 만한 실리적인 이유가 부족하다. 오늘날의 아르메니아 공화국은 지정학적인 이유로 친러 외교를 하고 있으며 실제로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대러 감정 역시 대미 감정보다 압도적으로 호의적이다. 자세한 사항은 러시아-아르메니아 관계 참조. 또한 아르메니아에는 부존자원도 부족하고 지정학적 중요성도 적대국인 아제르바이잔에 비해 떨어진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의 로비가 없으면 아르메니아는 미국 입장에서 그냥 잊혀질 나라이다.
일례로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 대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원론적인 자제 입장을 밝히며 아르메니아를 지원하지 않았고 조 바이든 역시 대선 시절에 발생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양국간 협상을 위해 미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외교적 개입을 하라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선후보로서 요구하였지만 어쨌든 아르메니아의 주장, 즉 아르차흐 공화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 #. 이 때 바이든이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에게는 군사력 사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아르메니아에게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지금처럼 계속 점거할 수는 없을 것이니 빨리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아르차흐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던 미국의 공식입장과도 상통한다.[4] 그리고 조 바이든은 이미 상원의원 시절 서유럽 에너지 안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한 바 있다. # 아제르바이잔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조 바이든이 아제르바이잔을 버리고 아르메니아를 일방적으로 지지한다는 발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외교 형식으로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는 본래 아르메니아 학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2008년에는 상원의원 자격으로 아르메니아를 방문한 적이 있고 2008년 대선 과정에서도 아르메니아 학살을 공식인정하겠다는 공약을 한 적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르메니아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임기를 마쳤는데, 관련 보좌진의 증언 #과 기록 # 등에 따르면 이는 당시 최악이던 미국과 튀르키예와의 관계에서 미국이 아르메니아 학살까지 인정해버리면 튀르키예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8년경 친서방 기조를 가진 니콜 파시냔 총리가 집권하자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을 예레반에 보냈고 아르메니아 민주주의의 발전 명목으로 2019년 한 해에만 6천만달러의 지원을 하였다 #.
조 바이든 정부에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공무원들이 대거 요직에 진출하였으며,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주당에 대한 로비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22년 5월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Integrated Country Strategy 문서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아르메니아가 가입한 러시아 중심 국제기구( 집단안보조약기구, 유라시아 경제 연합 등)의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하였고 장기적으로는 EU등 서방국가와 아르메니아간 관계 정상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
2021년 4월 24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1915년 있었던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대통령이 해당 사건을 집단 학살로 공식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2023년 11월, 미국-아르메니아 회담을 열고 아제르바이잔 본토에서 나흐츠반까지 잇는 철도와 아제르바이잔의 무력 침공 제재에 관해 토론하였으나 이로 인해 미국-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회담에 아제르바이잔이 참석하지 않았다. #
2024년 8월 23일 미국은 아르메니아에 핵기술 이전협상을 시작하였으며 미국과 아르메니아의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
2024년 9월 아르메니아의 여론조사 결과로 미국은 프랑스, 인도 다음으로 친밀한 국가로 평가되었다.[5]
3. 군사교류
친러국가이지만 그렇다고 반미국가 역시 아닌데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러국가이지만 2004년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코소보 전쟁, 이라크 전쟁에 3개분대와 1개소대 병력을 파병했고 2009년에는 민주당 정부의 요청으로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병력을 파병하기도 하는등 아제르바이잔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미국에 협조하였다.[6]이런 협조 덕분에 2004년 7월 아르메니아는 미국 의회로부터 5백만달러의 군사지원을 얻어냈으며[7] 2012년에는 아르메니아 사상 최초로 미국과 공동군사훈련을 수행하였다 #.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갈등도 있다. 아르메니아는 친러, 친이란 입장이다보니 미국의 입장에 반하는 군사정책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6년 4월에는 이란에게 정밀 기술 장비를 넘겨준 혐의로 미국은 아르메니아 기업을 제재한 바 있으며 # 2018년에 아르메니아는 미국의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무기를 약 3억달러 구매하였다. 아르메니아, 美 제재 예고에도 露로부터 무기 매입 지속할 방침(EMERiCs, 2018/04/02)
그리고 아마 가장 큰 스캔들이라고 하면 2010년에 터진 WikiLeaks의 2010년 미 국무부 외교전문 공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공개된 전문에 따르면, 아르메니아는 제재를 무시한채 이란으로 무기를 배송하고 있었고 이렇게 배송된 무기는 이라크로 흘러들어가 미군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아르메니아의 이런 행보에 대단히 불쾌해했으며 이에 미 국무부는 2008년 12월경 아르메니아의 세르지 사르키샨에게 직접적으로 전보를 보내 항의했다고 한다. # 물론 WikiLeaks의 모든 내용이 그렇듯, 미국 정부가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부인하는 내용이다.
2023년 9월 12일 사상 최초로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했다. 러시아는 이를 비난했다. # #
완전히 반러가 된 이후로는 계속되는 군사협력을 하고있다. #
2024년 7월 15일~ 25일 미군과 합동 훈련을 하였다. # #
2024년 8월 2일 아르메니아는 NATO 표준에 따른 군대 개혁에 관해 미국과 협의를 시작했다. #
4. 경제협력
1992년에 통과된 FREEDOM 법안(러시아와 성장하는 유라시아 민주주의와 시장 개방을 위한 자유, Freedom for Russia and Emerging Eurasian Democracies and Open Markets) #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을 통해서 미국은 아르메니아를 러시아 및 다른 동유럽국가들처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5년 주아르메니아 미국 대사관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이 지원한 금액은 누적으로 20억 달러에 달한다(The United States has provided over 2 billion dollars in assistance to Armenia since 1992)고 한다. #미국-아르메니아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2021년에 주아르메니아 미국 대사관이 올린 글에 따르면 미국이 아르메니아에 지원한 금액은 누적으로 30억 달러라고 한다 #
2006년에는 미국 의회가 추진한 정책에 의하여, 아르메니아 정부는 미국의 제3세계 지원 기관 Millennium Challenge Corporation과 협력하여 아르메니아 내의 반부패, 투자촉진 활동을 수행하였고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아르메니아내 빈곤 퇴치 목적으로 5년간 2억3천5백만달러를 수령하였다 #.
2007년의 미국은 아르메니아내 원자력 발전소 신규 건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
친서방 기조를 가진 니콜 파시냔이 총리로 집권한 이후에는 지원이 더 강화되었다. 2018년 미국은 아르메니아에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성장 지원 명목으로 4천만 달러의 지원을 하였는데 이는 아르메니아가 당초 요청했던 금액(6백만달러)보다 훨씬 증액된 금액이었다 #. 2019년에 미국 대사관이 발표한 지원안에 따르면, 미국은 아르메니아의 반부패, 안보, 에너지, 교육, 인권, 정부기관 등의 영역에서 "민주주의적 발전을 뒷받침하기(bolster Armenian democratic development)" 위하여 전년도 지원액 대비 40% 증가한 총 6천만달러를 2019년 예산으로 편성하였다 #
5. 관련 문서
[1]
미국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지 않은 것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냉전이 막 끝난 1992년 당시에는 미국의
빌 클린턴 등 서방 진영이 러시아의 영향권에 개입하는 것을 대단히 조심해 하였고 러시아와 탈냉전, 평화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러시아를 정상적인 민주주의, 자유주의 국가로 전환시키는데 보다 신경썼기 때문에 그렇다. 이 시기에는
폴란드,
체코등의 중부유럽국가가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을 희망했음에도 미국은 러시아 눈치를 보고 거절했고
보스니아 전쟁에서 많은 수의 민간인이 학살되었음에도 해당 지역이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권이고 가해국인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최우방국이라는 점을 이유로 개입을 주저하였고
제1차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군에 의하여 많은 수의 체첸 민간인이 학살되었지만(Samashki 학살) 클린턴 행정부는 해당 사실의 비극성을 축소시켜 반응하였다. 이런 미국이 러시아의 영향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여 러시아와 마찰을 빚기 시작하는 시기는 1998년
코소보 전쟁 등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즉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진행중이던 1992년경 미국은
아르메니아는 커녕
유고슬라비아에도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였고 러시아의 체첸인 학살에도 말을 삼갈 정도로 러시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하였기 때문에 러시아의 앞마당인
캅카스 지역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고 이정도 간접적인 역할만 수행하였던 것이다
[2]
대표적으로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유명한 카다시안 가족 및 뉴메탈 밴드 시스템 옵 어 다운 등등
[3]
공교롭게도 아제르바이잔과 이스라엘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로 서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4]
결국 아르차흐 공화국은 2024년부로 아제르바이잔에 흡수되어 소멸된다.
[5]
반면 러시아는 2019년 조사결과와 달리 비우호국으로 조사되었다.
[6]
아제르바이잔 역시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코소보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에 자국 병력을 파병한 바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을 위해 아예 영공을 개방하고 보급기지 역할까지 했다
[7]
참고로 이 지원안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의 로비력을 이용하여 통과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 역시 같은 시기에 동일한 금액(5백만 달러)의 군사지원을 받았다(출처 : Russia, the United States, and the Caucasus ,R. Craig Nation Dr,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