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 에스토니아 |
1. 개요
미국과 발트 3국의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미국은 전간기인 1922년에 발트 3국과 수교하였으며, 1990년에 소련으로부터 재독립 한 발트 3국과 다시 수교하였다. 1998년 미국에서 발트 3국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가입을 지원한 것을 계기로 2004년 발트 3국의 NATO 가입이 성사되었고, 미국은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맹주국으로서 발트 3국과 협력하며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발트 3국 지역 중 리투아니아를 제외한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미국과 긴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발칸과 발트를 헷갈린 사례에서 보듯[1] 미국의 일반인들은 대체로 해당 지역에 대한 문화 교류나 정보가 다소 빈약한 편이다. 다만 발트해 리가 만과 인접한 발트 3국은 표트르 대제의 대북방전쟁 이래 러시아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였고, 소련 해체 이후 발트 3국이 NATO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의 해외 진출을 차단하는 형세가 되었다.
2022년 초에 미국 국무부가 발트 3국을 통해 미국제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보내는것을 승인했다. #
2. 미국-리투아니아 관계
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 Jungtinės Amerikos Valstijos |
리투아니아 Lietuva Lithuania |
미국이 독립하던 당시 18세기 말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폴란드 분할로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던 시기이기도 했고, 양국 사이의 공식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기 다소 힘든 시점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에는 리투아니아인 가톨릭 신도 및 유대인 인구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민하였는데, 오늘날 이들의 후손에 해당하는 수십만여 명의 리투아니아계 미국인들은 미국과 리투아니아 사이의 외교에서 다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과의 수교는 1922년 7월 28일에 이루어졌고 1990년에 다시 수교하였다. 미국은 소련의 리투아니아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리투아니아 제2공화국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의 발트 3국 점령 이전의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을 계승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리투아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은 수도인 빌뉴스에 있으며,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점령하면서 폐쇄되었다가 리투아니아와의 재수교 이후 다시 열렸다.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인구 규모는 리투아니아 본토 인구(279만여 명)와 비교해보았을 때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인데, 2019년 통계 기준, 미국에는 632,169명의 리투아니아계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2023년 2월 22일,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미국 측에 하이마스 배치를 제안했다. #
3. 미국-라트비아 관계
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 Amerikas Savienotās Valstis |
라트비아 Latvija Latvia |
미국과 라트비아의 수교는 라트비아 제1공화국 시절 1922년 7월 28일에 이루어졌고 소련 해체 이전 1990년에 다시 수교가 이루어졌다. 라트비아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라트비아계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며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나 소련의 라트비아 점령을 피해 라트비아인들이 이주하면서 라트비아계 미국인이 되었다.
2019년 통계 기준, 미국에는 85,723명의 라트비아계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4. 미국-에스토니아 관계
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 Ameerika Ühendriigid |
에스토니아 Eesti Estonia |
미국과 에스토니아의 수교는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와 마찬가지로 1922년 7월 28일에 이루어졌고 1990년에 다시 수교가 이루어졌다. 에스토니아인의 미국 이주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에스토니아계 미국인들이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에스토니아계 미국인 공동체가 자리잡았다.
2019년 통계 기준, 미국에는 25,779여명의 에스토니아계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5. 문화 교류
오늘날 미국 유대인 인구 상당수는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라트비아 출신(이른바 리트박 유대인)으로 미국 유대인 문화는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문화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다른 한편으로 고대 유럽의 청동기 시대, 발트어파 연구 관련하여 상당한 업적을 남기고 원시 인도유럽인 관련하여 쿠르간 가설을 제시한 마리야 김부타스가 유명하다. 나치 독일이 리투아니아를 점령하면서 그녀는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유럽 고대사 관련한 연구 및 강의를 진행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를 포함한 발트어파 언어 및 고대 역사 문화 관련한 연구성과들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김부타스의 기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소련 해체 이후 발트 3국 출신 패션 모델들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졌었다.[2] 에스토니아 출신 카르멘 카스나 리투아니아 출신 에디타 빌케비츄테, 기에드레 두카우스카이테, 라트비아 출신 예바 라구나와 긴타 라피냐 등등. 다만 요즘은 패션모델 업계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강요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금수저 모델 붐 때문에, 특별한 빽 없는 모델들은 성공하기 힘든 분위기가 굳어지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 모델들은 미국에서 자리잡기 어려워졌다.
6. 관련 문서
- 미국/외교
- 리투아니아/외교 / 라트비아/외교 / 에스토니아/외교
- 미국/경제
- 리투아니아/경제 / 라트비아/경제 / 에스토니아/경제
- 미국인 / 리투아니아인 / 라트비아인 / 에스토니아인 /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 라트비아계 미국인 / 에스토니아계 미국인
- 영어 / 리투아니아어 / 라트비아어 / 에스토니아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북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