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12:01:11

명릉

明陵
1. 고려왕릉
1.1. 고려 8대 왕 현종의 3비 원성왕후의 명릉(明陵)1.2. 고려 제29대 국왕 충목왕의 명릉(明陵)
2. 조선왕릉
2.1. 조선 19대 왕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두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1. 고려왕릉

1.1. 고려 8대 왕 현종의 3비 원성왕후의 명릉(明陵)

고려 8대 왕 현종의 3비인 원성왕후의 능이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1028년(현종 19년) 음력 7월 22일에 승하하였으며, 명릉(明陵)에 장사를 지냈다. 고려사 기사
1118년( 예종 13년) 12월 22일에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기사

1.2. 고려 제29대 국왕 충목왕의 명릉(明陵)

파일:충목왕명릉(명릉동고려왕제1릉).jpg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1910년대 명릉의 모습[1]
파일:고려명릉.jpg
비교적 최근에 촬영된 명릉의 모습

북한 행정구역 개성시 연릉리(1916년 기준으로는 개성군 중서면 여릉리 명릉동)에 있는 고려 제29대 국왕 충목왕이 안장된 왕릉. [2]. 북한 보존유적 제549호. 3기의 능으로 이뤄진 명릉군( 문화어로는 명릉떼)의 하나로, 인근에 규모가 비슷한 능이 두 곳 더 있으며 피장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1348년(충정왕 즉위년) 12월 5일에 충목왕이 승하한 후, 1349년(충정왕 1년) 3월 6일에 명릉(明陵)에 장사를 지냈다. 고려사 기록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등재되었다.

다만 현대에 들어 이 왕릉이 실제로는 충목왕의 명릉이 아니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록상 왕릉의 장지방향과 발굴결과를 비교검토하여 능주가 누구인지를 추적해 보았는데 그 결과 비정이 잘못되었음이 확인된 것이다.[3]

2. 조선왕릉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color: #ffd400; min-height: 33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목조 효공왕후 익조 정숙왕후
덕릉德陵 안릉安陵 지릉智陵 숙릉淑陵
도조 경순왕후 환조 의혜왕후
의릉義陵 순릉純陵 정릉定陵 화릉和陵
태조 신의왕후 신덕왕후 정종, 정안왕후
건원릉健元陵 제릉齊陵 정릉貞陵 후릉厚陵
태종, 원경왕후 세종, 소헌왕후 문종, 현덕왕후 단종
헌릉獻陵 영릉英陵 현릉顯陵 장릉莊陵
정순왕후 세조, 정희왕후 덕종, 소혜왕후 예종, 안순왕후
사릉思陵 광릉光陵 경릉敬陵 창릉昌陵
장순왕후 성종, 정현왕후 공혜왕후 제헌왕후
공릉恭陵 선릉宣陵 순릉順陵 회릉懷陵
연산군, 거창군부인 중종 단경왕후 장경왕후
연산군묘燕山君墓 정릉靖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문정왕후 인종, 인성왕후 명종, 인순왕후 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
태릉泰陵 효릉孝陵 강릉康陵 목릉穆陵
공성왕후 광해군, 문성군부인 원종, 인헌왕후 인조, 인열왕후
성릉成陵 광해군묘光海君墓 장릉章陵 장릉長陵
경기 [[남양주시|{{{#bf1400
효종, 인선왕후 현종, 명성왕후 장렬왕후 숙종, 인현왕후, 인경왕후
영릉寧陵 숭릉崇陵 휘릉徽陵 명릉明陵
인경왕후 옥산부대빈 경종, 선의왕후 단의왕후
익릉翼陵 대빈묘大嬪墓 의릉懿陵 혜릉惠陵
영조, 정순왕후 정성왕후 진종, 효순왕후 장조, 헌경왕후
원릉元陵 홍릉弘陵 영릉永陵 융릉隆陵
정조, 효의왕후 순조, 순원왕후 문조, 신정왕후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건릉健陵 인릉仁陵 수릉綏陵 경릉景陵
철종, 철인왕후 고종, 명성황후 순종,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예릉睿陵 홍릉洪陵 유릉裕陵
폐지된 능호
소릉昭陵 | 회릉懷陵 | 숙릉肅陵 | 성릉成陵 | 문릉文陵
}}}}}}}}} ||

2.1. 조선 19대 왕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두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명릉(明陵)

자세한 내용은 서오릉 문서 참조.
[1] 출처: 조선고적도보 七, # [2] 8대 왕 현종의 세 번째 왕비인 원성왕후를 안장한 명릉과 한자까지 똑같은데, 한 왕조 내에서 한자까지 똑같은 묘호 또는 시호를 쓰는 경우는 고려, 조선왕조를 통틀어 이 경우가 유일하다. [3] 고려왕릉의 구조 및 능주(陵主)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