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1-20 20:17:07

숙릉

* 동음이의어

1. 고려왕릉
1.1. 고려 덕종의 왕릉 숙릉(肅陵)
2. 조선왕릉
2.1. 조선 익조의 계비 정숙왕후의 왕릉 숙릉(淑陵)2.2. 조선 선조의 왕릉 목릉의 옛 이름 숙릉(肅陵)2.3. 조선 고종의 왕후 명성황후의 왕릉 홍릉의 옛 이름 숙릉(肅陵)

1. 고려왕릉

1.1. 고려 덕종의 왕릉 숙릉(肅陵)

파일:고려숙릉.jpg

오랜 세월의 풍파를 거쳐 유실된 상태였으나 2016년 해선리 1릉을 발굴해 '숙릉'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근처에 동생인 정종 주릉도 같이 발굴했다.

파일:숙릉의 도굴갱.jpg
숙릉 발굴 초기 모습
파일:덕종 숙릉 정비 후 사진.jpg
숙릉 최근 모습

파일:고려 숙릉 내부.jpg

2. 조선왕릉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color: #ffd400; min-height: 33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목조 효공왕후 익조 정숙왕후
덕릉德陵 안릉安陵 지릉智陵 숙릉淑陵
도조 경순왕후 환조 의혜왕후
의릉義陵 순릉純陵 정릉定陵 화릉和陵
태조 신의왕후 신덕왕후 정종, 정안왕후
건원릉健元陵 제릉齊陵 정릉貞陵 후릉厚陵
태종, 원경왕후 세종, 소헌왕후 문종, 현덕왕후 단종
헌릉獻陵 영릉英陵 현릉顯陵 장릉莊陵
정순왕후 세조, 정희왕후 덕종, 소혜왕후 예종, 안순왕후
사릉思陵 광릉光陵 경릉敬陵 창릉昌陵
장순왕후 성종, 정현왕후 공혜왕후 제헌왕후
공릉恭陵 선릉宣陵 순릉順陵 회릉懷陵
연산군, 거창군부인 중종 단경왕후 장경왕후
연산군묘燕山君墓 정릉靖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문정왕후 인종, 인성왕후 명종, 인순왕후 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
태릉泰陵 효릉孝陵 강릉康陵 목릉穆陵
공성왕후 광해군, 문성군부인 원종, 인헌왕후 인조, 인열왕후
성릉成陵 광해군묘光海君墓 장릉章陵 장릉長陵
경기 [[남양주시|{{{#bf1400
효종, 인선왕후 현종, 명성왕후 장렬왕후 숙종, 인현왕후, 인경왕후
영릉寧陵 숭릉崇陵 휘릉徽陵 명릉明陵
인경왕후 옥산부대빈 경종, 선의왕후 단의왕후
익릉翼陵 대빈묘大嬪墓 의릉懿陵 혜릉惠陵
영조, 정순왕후 정성왕후 진종, 효순왕후 장조, 헌경왕후
원릉元陵 홍릉弘陵 영릉永陵 융릉隆陵
정조, 효의왕후 순조, 순원왕후 문조, 신정왕후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건릉健陵 인릉仁陵 수릉綏陵 경릉景陵
철종, 철인왕후 고종, 명성황후 순종,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예릉睿陵 홍릉洪陵 유릉裕陵
폐지된 능호
소릉昭陵 | 회릉懷陵 | 숙릉肅陵 | 성릉成陵 | 문릉文陵
}}}}}}}}} ||

2.1. 조선 익조의 계비 정숙왕후의 왕릉 숙릉(淑陵)

2.2. 조선 선조의 왕릉 목릉의 옛 이름 숙릉(肅陵)

선조의 능호는 목릉(穆陵)인데 원래 이름은 숙릉(肅陵)이었다가 정숙왕후의 능호 숙릉과 음이 같다고 하여 2개월만에 바꿨다. 자세한 얘기는 목릉으로.

2.3. 조선 고종의 왕후 명성황후의 왕릉 홍릉의 옛 이름 숙릉(肅陵)[1]

을미사변 이후 1895년(고종 32년) 10월 22일 김홍집 내각에서 올린 명성황후의 시호는 '순경왕후(純敬王后)', 능호는 '숙릉(肅陵)'이었다.[2] 그러나 아관파천으로 인해 김홍집 친일내각이 붕괴하자 고종은 장례 일정을 중단했다. 이후 1897년(고종 34년) 1월, 조정에서 김홍집 내각이 올린 건 시호로 쓸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자 고종은 시호와 능호 후보를 새로 올리라고 했고, 시호와 능호를 각각 삼망(三望) 후보 중 첫째 후보인 '문성왕후(文成王后)', '홍릉(洪陵)'으로 하기로 했다.[3] 이후 시호는 '문성'이 정조 대왕의 정식 시호에 쓰였다는 이유로 취소하고, 시호 후보 중 하나였던 '명성(明成)'을 쓰기로 바뀌었으나 능호 홍릉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후 역사는 홍유릉으로.

숙릉의 조성 위치는 동구릉의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의 우백호였으며, # 지금도 초장지의 흔적과 석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리피스 컬랙션 중에서도 숙릉 조성 당시의 사진이 있다. #


[1] 숙릉 능호가 정해진 시점은 대한제국 선포 이전이었으며, 이 당시 명성황후의 시호는 순경왕후였다. [2] 고종실록33권, 고종 32년 10월 22일 기축 5번째 기사 [3] 고종실록35권, 고종 34년 1월 6일 양력 1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