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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22:01:52

리셴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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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리콴유 고촉통 리셴룽 로렌스 웡
싱가포르 대통령 }}}}}}}}}}}}
<colbgcolor=#e81b2c><colcolor=#ffffff>
싱가포르 공화국 제3대 총리
리셴룽
李顯龍(李显龙, 이현룡)[1]|Lee Hsien Loong
파일:李顯龍.jpg
출생 1952년 2월 10일 ([age(1952-02-10)]세)
영국령 싱가포르
국적
[[싱가포르|]][[틀:국기|]][[틀:국기|]]
재임 기간 제3대 총리
2004년 8월 12일 ~ 2024년 5월 15일
제7대 선임장관
2024년 5월 15일 ~ 현직
서명
파일:리셴룽 서명.svg
[2]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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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81b2c><colcolor=#fff> 학력 싱가포르 가톨릭 고등학교 ( 졸업)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 수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 대학원 ( 행정학 / 석사)
미국 육군 지휘 참모 대학교 ( 졸업)
부모 아버지 리콴유(1923~2015)
어머니 콰걱추(1920~2010)
형제자매 여동생 리웨이링
남동생 리셴양
배우자 웡밍양(1978년 결혼, 1982년 사별)
호칭(1985년 결혼)
자녀[3] 장녀 리슈치
장남 리이펭
차남 리홍이
삼남 리하오이
약력 싱가포르 국방부 장관 (1987~1992)
싱가포르 부총리 (1990~2004)
싱가포르 금융 관리국(중앙은행) 의장 (1998~2004)
싱가포르 재무부 장관 (2001~2007)
싱가포르 제3대 총리 (2004~2024)
싱가포르 제7대 선임 장관 (2024~현직)
정당 [[인민행동당|
인민행동당
]]
신체 185cm, 75kg
종교 개신교
군사 경력
복무 싱가포르 육군
1971년 ~ 1984년
최종 계급 준장 (싱가포르 육군)
최종 보직 제23포병대장
주요 보직 국방 참모 차장
국방부 장관 정무 비서관
}}}}}}}}}
1. 개요2. 약력3. 생애4. 가족 관계
4.1. 왕자의 난?
5. 독재자인가?
5.1. 그렇다5.2. 아니다
6. 여담

[clearfix]

1. 개요

싱가포르의 정치인. 싱가포르 제3대 총리였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인 리콴유의 장남이기도 하다.

사실상 리콴유의 뒤를 이은 싱가포르의 세습 권력자로[4] 2004년부터 2024년까지 20년간 5차에 걸쳐서 싱가포르 내각을 이끌었다.

2024년 5월 총리직에서 퇴임한 이후에 로렌스 웡 내각에서 제7대 선임장관직을 맡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여당인 인민행동당 서기장직은 계속 유임하고 있다.

2. 약력

불과 약 30세의 나이에 싱가포르 육군 최고봉에 올라선 뒤 곧바로 각종 장관직 및 부총리직을 역임하였다. 정리하면 세습과 승계의 연속.
연도 경력
1971년 싱가포르 육군 입대
197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수학과 수석 졸업
1978년 미국 육군 지휘 참모 대학 입학 또는 연수
1980년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행정 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1981년 싱가포르군 국방 참모 차장실 참모 차장보
1982년 싱가포르군 국방 참모 차장
1983년 싱가포르군 합동 작전 기획국 국장
1984년 싱가포르 국방부 장관 정무 비서관
제23포병대 사령관
싱가포르 육군 준장 전역
싱가포르 국회의원 당선
통상 산업부 정무 장관 국방부 정무 장관
1985년 싱가포르 행정부 경제 위원회 위원장
1986년 통상 산업부 장관 직무 대행
인민행동당 청년 위원회 위원장
1987년 통상 산업부 장관 국방부 장관
1990년 싱가포르 부총리 통상 산업부 장관
1998년 싱가포르 중앙은행 의장
2001년 재무부 장관
2004년 싱가포르 제3대 총리
2024년 싱가포르 선임 장관 겸 인민행동당 서기장(현직)

3. 생애

어릴 적에 화교 초등학교를 다녔고 아버지를 닮아서 공부를 매우 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5] 케임브리지 수학과 최고의 학생에게 주어지는 시니어 랭글러(Senior Wrangler)를 수상하였다.

1984년 육군 준장으로 전역하고 그해 연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나이 불과 32세. 이후 무역 산업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맡았다.

1990년 리콴유 총리의 뒤를 이어 고촉통 총리가 취임하면서 부총리에 임명됐고,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금융 관리국 주석과 재정부 장관까지 겸임했다. 2004년 8월 고촉통 총리의 뒤를 이어 제3대 싱가포르 총리에 취임했고 2015년 아버지 리콴유가 사망한 후 명실상부한 싱가포르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카지노를 유치하는 등 리콴유에 비해 경제적으로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취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교 정책은 그의 집권 이후 중립국 노선이 예전보다 훨씬 강화되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전에는 경제 개발 등의 이유로 서방국에 더 우호적인 노선을 타 왔지만 21세기 들어 싱가포르의 외교 반경이 넓어진 만큼 완충 지대적 성격의 위치와 싱가포르의 명시적인 중립국 지위를 통한 아시아의 정치 수도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서, 이를 통한 비즈니스 관광 활성화를 경제 발전 방향으로 내세웠다.

파일:f4w243fgrg.jpg

인민행동당 2020년 싱가포르 총선거 포스터. 리셴룽이 활짝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이 특징이다. 기사

당초 70세가 되는 2022년까지 총리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혀 왔다. 그런데 2020년 싱가포르 총선거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선거 종료 이후 싱가포르의 2020년 2분기 경제성장률이 1분기 대비 -41.2%를 기록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사

결국 은퇴를 연기한다고 선언했다. #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 리홍이에게로의 징검다리 세습을 준비중인데, 중간에서 바지사장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던 헹스위킷이 53%의 득표율로 간신히 당선되면서 후임 총리를 맡기기에는 불안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

2021년 4월 찬춘싱(陳振聲) 통상 산업부 장관, 옹예쿵(王乙康) 교통부 장관, 로렌스 웡(黃循財) 재정부 장관, 데스먼드 리(李智陞) 국가개발부 장관을 각각 임명하여, 그 중에서 후임 총리를 내정할 것으로 관측되었다. # 최종적으로 로렌스 웡 장관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 부총리직에 임명했다. #

2024년 5월 15일, 로렌스 웡 부총리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그 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선임 장관직을 맡고 있다. #

4. 가족 관계

1978년 의사인 웡밍양(黃名揚)과 1978년 결혼했으나, 웡밍양은 장녀와 장남[6]을 낳은 후 1982년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 1985년 호칭(何晶)과 재혼하여 리홍이(李鴻毅, 1987년생), 리하오이(李浩毅, 1989년생) 2남을 더 낳아, 리셴룽의 자녀는 모두 3남 1녀이다.

호칭은 1953년생으로 국립 싱가포르 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수재로, 국방부 군수동원국장으로 재임하다가 당시 군 참모차장이던 리셴룽과 결혼하였다. 2021년까지 싱가포르 최대의 기업인 ' 테마섹 홀딩스'의 CEO에 재임하였다.

참고로 리셴룽의 자식과 조카, 즉 리콴유의 손주들부터는 영문 이름을 표기할 때 Lee가 아닌 한어병음 식인 Li를 쓴다.

4.1. 왕자의 난?

2017년 들어 리셴룽의 두 동생이 리셴룽과 갈등을 빚다가 해외 망명까지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콩가루 집안 분위기를 풍기더니 이 일이 정계에서까지 문제가 되어 일명 왕자의 난 비슷하게 외신에 보도될 지경이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가 "(우상화에 이용될지 모르니) 나의 생가를 허물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리셴룽 총리는 아버지를 우상화하면서 이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7] 리셴룽의 동생인 리셴양(李顯揚)은 "형이 아버지를 우상화하는 것은 형의 차남 리홍이(李鴻毅)[8] 3대 세습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고 형이 이 유지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본인으로서는 리셴룽 다음이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형이 바로 조카에게 권좌를 넘길까 봐 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왜냐하면 리셴양 본인도 리콴유가 살아있는 시절에는 FIRST FAMILY의 힘에 기대 요직을 차지하며 편하게 먹고 살았고, 이전에는 리콴유 우상화에 별소리 없다가 사후에 갑자기 이러한 논란을 제기하는 것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 다만 본인보단 또 다른 총아로 유명한 리셴양의 아들 리성우(李繩武, 1985년생)[9]에게 최소한의 권력이라도 넘기기 위한 리셴룽 집안 흔들기라는 분석이 제일 설득력을 얻는다. 리성우 또한 리콴유의 손자이고 똑똑한 엘리트라 리콴유 일가 3대 남자들 중에서 가장 촉망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리콴유 장례식에서 리홍이와 같이 추도문을 낭독하였는데 이것이 싱가포르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10] 여튼 논란의 와중에 싱가포르에서는 이례적으로 400명이나 되는 인원이 리셴룽을 비판하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야당인 노동당 사무총장 로우티아키앙(劉程強) 의원은 이를 두고 리셴룽 일가의 일이 국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비판하며 "이건 한국 드라마가 아니며 나라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라는 발언을 했다.

현재 이 사안은 사실상 경찰국가인 싱가포르 당국의 보도 통제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고, 한국에서는 리씨 일가를 옹호하는 일부 네티즌들이 이 항목에서 이 사안을 해프닝쯤으로 기술하는 시도도 하는데, 보면 형제의 갈등은 생각보다 심각한 듯 보이며 사건의 향방에 따라 리씨 일가의 통치 체제에 금이 갈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결국 권좌를 쥐고 있는 것은 리셴룽이고, 리셴양 또한 자기가 흔들기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리콴유 일가의 분열 및 통치권 약화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끝낼 가능성도 있다. 사실 일반인들 입장에선 힘 빠지는 게 바뀌어 봤자 어차피 리씨라서....

본인은 2022년에 70세에 은퇴하겠다고 했으며 아버지와 같이 '선임 장관'으로 막후 실력자로 군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동생 리셴양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 싱가포르당(PSP)에 입당했다. # 2020년 총선 앞두고 여당의 승리를 막아야 한다고 전했다. # 진보 싱가포르당은 선거 결과 전원 낙선했지만, 낙선자 배려 의석(표결권 없는 옵저버 의원) 2석을 받게 됐다.

리셴룽 국무총리의 동생 리셴양의 아들인 리솅우는 '형제의 난' 당시 작성한 페이스북 글로 법원 모독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

5. 독재자인가?

리셴룽은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등과 더불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와 독재자의 경계선에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데, 아래 문단은 리셴룽을 독재자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5.1. 그렇다

리셴룽이 독재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는 언론통제를 통해서 자신을 비롯한 리콴유 일가를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현재 싱가포르의 방송사는 미디어코프 하나밖에 없으며, 채널도 6개가 전부이다. 무엇보다 이 미디어코프는 겉으로는 민간회사의 형태이나, 지분 100프로가 테마섹의 소유이다. 이 테마섹은 싱가포르 정부가 100프로 소유하고 있는 지주 회사인데, 본인의 집권기에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아내인 호칭이었다. 이로써 최악의 정경유착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싱가포르/정치 전반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싱가포르의 인터넷망은 항상 감시당하며, 해외 언론사까지 간섭하여, 고액의 배상금을 예치시켜 놓고, 정부의 입맛에 틀리면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버린다. 실제로 자신의 아버지 리콴유를 독재자라고 비판한 자국민을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고 #, 횟수가 누적되자 나라에서 추방시키기까지 하였다.
(추가 사례 #)

두 번째, 오랜 일당우위제로 인한 사법부의 독립성 논란을 본인 임기 중에 일으켰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위의 사례처럼 사법부가 명예훼손소송 판결을 이렇게 쉽게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거의 없다. 사실상 법원이 인민행동당 밑에 기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여담으로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총리 직속기관이다. #

세 번째, 논란이 있는 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2019년에 싱가포르에서는 '온라인 허위 조작 방지법'이 시행되었다. 이게 무엇인고 하니, 싱가포르 정부나, 리콴유ㆍ리셴룽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허위로 올리면 잡아버리겠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풍자는 허용되지만, 그 과정에서 거짓된 내용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처벌된다. 이 문서 #는 2021년 코로나가 유행할 때 주 싱가포르 한국 대사관이 방역 지침을 알리는 내용이고, 맨 밑을 보면 온라인허위조작방지법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것을 보아 법 제정 후 여러모로 잘(?) 써먹고 있는걸 알 수 있다.

네 번째, 싱가포르 민주주의 지수 순위의 위태로움의 원인을 계속 제공하였다. 리셴룽의 임기 동안 민주도가 상승한 것은 맞으나, 여전히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중 최하위 국가이다. 여차하면 혼합된 체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미국이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싱가포르 역시 독재 국가가 아니라고 단정 짓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미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맨 위의 턱걸이고, 싱가포르는 맨 아래이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싱가포르를 사실상 '독재국가'로 여기고 있다. 민주도가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싱가포르의 선거제도와 관련이 있는데, 싱가포르의 선거구는 대부분 중선거구이다. 여기서 중선거구는 우리나라랑 다르게, 정당을 보고 찍는 것이라서, A B C D E 후보가 속한 정당이 이기면 5명 다 자동으로 당선이 되는 시스템이다. 여기까지도 이상한데, 매 선거 때마다 게리멘더링을 아주 잘 이용해 먹어서(...) 선거구 모양을 여당에 유리하도록 끊임없이 바꾼다. # 여기에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위에 언급했듯이, 총리실 직속이라서 중립을 지켜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친정부적 성향을 띠고 있다.

마지막, 리셴룽은 사실상 아버지인 리콴유에게 권력을 세습받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1번 문단에도 언급했지만, 중간에 고촉통은 바지사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걸 보고 리셴룽이 선거를 통해서 정당하게 당선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은 무리가 있는 것이, 당시 싱가포르의 야당은 리콴유의 온갖 탄압 때문에 많아 봤자 국회 의석 82석 중 2석인, 여당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아버지가 사임하자 마자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부총리를 14년이나 했으니, 사실상 속전속결로 세습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리고 평소 싱가포르와 리콴유의 우호적인 '보수 언론' 조선일보도 리셴룽 총리가 세습 독재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리콴유에 비해서 리셴룽의 싱가포르는 점차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리콴유'에 비해서이지, 일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결코 독재국가가 아니라는 식으로 해석하기에는 애매하다. 또한 위로부터의 민주화를 주도한 인물이라기엔 서술한 행적을 봤을 때, 대만 리덩후이 같은 인물과 반대되는 일을 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므로 리덩후이 같은 사람과 같은 위치로 해석하기에도 어렵다.

5.2. 아니다

리셴룽이 총리 임기를 거치면서 싱가포르의 민주주의 지수는 꾸준히 상승하였다. # # 임기 초에는 '혼합된 체제'였는데 이도 일반적 의미의 독재라고 보기는 어려운 데다가, 임기 후반에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끌어올렸는데 미국 등 독재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선진국들도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는 것을 고려하면 리셴룽을 독재자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가령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독재자로 인식되지 않는 에보 모랄레스 등은 임기를 거치면서 민주주의 지수가 계속 후퇴했는데, 그의 임기 후반기 모랄레스와 리셴룽의 민주주의 지수를 비교해 봐도 후자가 훨씬 더 민주적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리셴룽은 한국에서 독재자라고 잘못 인식되는 이유는 싱가포르 정치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생긴 선입견에 불과하다. 싱가포르가 일당 우위제 모델에 가까워 자유 민주주의 보편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보는 관점을 가진 이들 중 일부조차도 2000년부터 2022년까지 192건의 싱가포르 관리들의 의회 답변, 언론 인터뷰 및 유엔 연설에 대한 혼합 방식의 주제 분석을 통해 싱가포르는 국제법 유엔 헌장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과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두 가지 주요 방식으로 기존 자유 민주주의적 국제 질서를 수용하고 옹호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할 정도이다. # 즉, 단지 한 당이 과도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가 그리 자유주의적이지는 못하다 보는 정도인데, 이런 지적은 자유민주당의 일당 우위제가 심한 일본도 자주 듣는다. 당연하지만 일본을 독재 국가라고 보는 것은 억까에 가깝고, 리셴룽 통치하의 싱가포르도 독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설령 혼합된 체제를 독재라고 치더라도, 그는 타 선진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싱가포르의 민주주의 지수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끌어올렸기에 리셴룽은 독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위로부터의 민주화'를 진행한 인물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임기 초에 혼합된 체제였다는 점만 과도하게 고려할 경우 명백히 독재 체제를 끝내고 자유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끌어내 '위로부터의 민주화'의 대표적인 사례인 대한민국 노태우, 대만 리덩후이, 스페인 아돌포 수아레스 등도 독재자라는 비약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또한 뉴욕 타임스 등 서구 자유주의(좌파)[11] 언론&연구기관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도널드 트럼프, 나렌드라 모디, 안제이 두다, 오르반 빅토르 등의 강경한 보수주의적인 통치를 빗대어 "독재" " 독재화"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프레임 씌우기에 가까울 뿐, 정치학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독재'를 의미하지 않는다.[12][13] 마찬가지로 리셴룽이 독재라고 지칭되는 것도 프레임일 뿐이지 정치학적으로 좁은 의미의 독재는 아니다.

리셴룽이 리콴유로부터 권력을 세습받았다는 이유로 독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세습적 요소가 있다고 치더라도 독재자라는 근거로 삼을 이유는 없다. 리셴룽의 총리직은 의원내각제인 싱가포르에서 선거를 통해, 그것도 어떠한 부정 선거도 없이 그저 국민들이 인민행동당을 찍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14] 따라서 이를 마치 대만 장제스- 장징궈의 사례나 북한 김씨 왕조 사례[15]같은 세습적 '독재'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부자 대통령 혹은 총리는 미국의 부시 가문처럼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미국 측의 사례는 세습적 요소가 전혀 없다는 차이는 있겠지만.

6. 여담


[1] 싱가포르 간화자 정체자를 둘 다 사용한다. 편하게 쓸 때에는 간화자를 사용하지만, 이름을 쓸 때는 간화자를 사용할 것인지, 정체자를 사용할 것인지 정하며 나중에 바꿀 수 없다. 리셴룽 총리는 여권이나 호적 정체자인 李顯龍으로 이름을 등록하였다. 한족 계열은 주로 정체자로 이름을 등록하고 한족이 아닌 말레이인, 타밀족 등은 한자 이름을 등록할 때 간화자를 사용한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한자로 이름을 쓰지 않으므로 간화자로 등록해도 문제가 없다. [2] 리셴룽이 1998년~2004년까지 싱가포르 금융 관리국 국장직을 맡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생산된 싱가포르 달러 지폐에서는 이 사인을 볼 수 있다. [3] 장녀와 장남은 웡밍양 소생, 나머지 차남과 삼남은 호칭 소생이다. [4] 제2대 총리 고촉통이 중간에 있긴 했으나 그때도 리콴유가 여전히 내각에 선임 장관으로 버티고 있었고 리셴룽이 부총리를 맡았으며 고촉통의 후임으로 3대 총리를 리셴룽이 맡으면서 사실상 세습에 가깝게 이어진다. [5] 케임브리지 대학교 성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년 말 고사인 트라이포스 시험인데, 특히 수학과 트라이포스 시험은 세계 최초의 대학 시험인 만큼 난이도와 그에 따라오는 명성은 대단하다. [6] 장녀 리슈치(李修齊, 1980년생), 장남 리이펑(李毅鵬, 1982년생). 이중 아들인 리이펑은 자폐증 백색증을 앓고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리셴룽의 일상을 찍은 사진에서 피부가 하얗고 머리가 백발인 사람이 있으면 리이펑이다. [7] 사실 이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마오쩌둥도 본인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하라고 했지만, 알다시피 현실은 화학 처리 되어 지금도 우상화에 이용되고 있다. [8] 재혼한 후처가 낳은 아들 2남 중 장남으로 리이펑이 장남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장남이라고 봐야 한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MIT에서 수학하였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장교로 군 복무를 하는 등, 아버지와 비슷하게 후계자 코스에 있었다고 하며 싱가포르 국가 차원에서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 갔었다. 현재는 사실상 리씨 일가 소유인 국영 싱가포르 투자 회사의 컨설턴트 및 연구원으로 있으며, 본인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싱가포르인 상당수가 이변이 없는 한 그가 3대 세습을 할 것이라고 예상. 하나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싱가포르 당국의 보도 통제 때문인지 드물다. 다만 리콴유 사망 시 추도문을 낭독하고 영정 사진을 들면서 얼굴이나 기본적인 내용은 많이 노출된 상태다. 일거수일투족이 나오지 않을 뿐이지. 사실 2007년 소위로 군 복무 중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국방 장관에게 직접 동료의 근무 이탈을 통지한 사건으로 언론에 오른 적은 있다. [9] 2024년 현재는 Tenure를 받은 하버드대 종신 교수이다. [10] 엘리트로 유명하지만 영어로 추도문을 읽는데 리홍이가 그냥 저냥 평범하게 읽어 내려갔다면, 리성우는 완벽한 영국식 악센트로 추도문을 읽으며 국민에게 자신을 알렸다.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국무총리 또한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전 캐나다 국무총리의 장례식장에서 읽어 내려간 추도문으로 인기몰이를 했기에 단순히 추도문 자체를 그냥 순수한 애도의 뜻만 담겨있다고 보긴 어렵다. [11] 언론 성향 구분에서 '자유주의'는 진보나 좌파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12] 당장 저들은 야당과 반대 언론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유롭고 공정한 다당제 선거도 지속적으로 했다. [13] 다만 이들 중 오르반 빅토르만큼은 진짜로 독재자가 될 뻔했다. [14] 이를 아돌프 히틀러, 마시아스 응게마 등도 선거로 집권했다고 반론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저들이 선거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집권했기에 독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통치 행태 때문에 독재자인 것이다. [15] 이들은 어떠한 선거도 치르지 않았고, 저 시점의 두 나라의 민주주의나 자유권 부분에서도 싱가포르보다 한참 밑이었다. 특히 현재는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대만과 달리 북한은 아직도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6] 이쪽은 리셴룽이 딴 하버드 석사를 넘어 프린스턴 박사 학위까지 땄다. 그것도 경술국치 직전에. 한국인 박사 1호이기도 하다. [17] MIT 석사에 하버드 박사도 준비했으나 죽음에 자퇴했다. [18] 이는 국무총리가 코로나 백신 접종 받는 모습을 미디어에 노출시킴으로써 백신 접종을 독려하려는 넛지이다. [19] 원문은 You may have noticed that I got my COVID-19 jabs on my right arm. That’s because the practice is to be jabbed in your non-dominant arm, and I’m left-handed, like about 10% of people. [20] 한화 기준 5~6억 원 정도다. 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형식상으로 단돈 1달러만 받는다고 했던 바 있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만약 저것이 사실이라면 사실상 무급으로 일한 셈이었다. [21] 도입된 대표적인 장소가 싱가포르 관광 명소이기도 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Marina Bay Sands). 다른 건물 꼭대기를 서로 이어서 수영장으로 만든 그 호텔이다. 호텔의 건설사는 한국의 쌍용건설이었다. [22] 사실 2022년 11월까지는 싱가포르 법률상으로는 동성 결혼뿐만 아니라 동성애 자체가 불법이었다. [23] 적지 않은 중국계 주민들이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리셴룽 본인도 개신교인이다. [24] 말레이계 주민들의 대다수가 무슬림이다. [25] 1. 범죄인 인도 법안 철회 2. 시위대에 대한 폭도 지정 철회 3. 경찰의 무력 진압에 대한 사과 및 조사 위원회 설치 4. 체포된 시위대 석방 5. 행정 장관 직선제, 입법회 보통/평등 선거 실시 [26] 같은 내용으로 세 차례 연설한 것인데 다른 언어로 바꾸기 전에 한숨 돌릴 겸 컵에 있는 물을 마셨다. 그런데 그 도자기 컵 문양이 눈에 띄어서 Language Changing Cup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싱가포르 현지에서 살 수 있다. # [27] 아버지 리콴유의 제1언어 또한 영어였다. [28] 정확하게는 아랍 문자를 약간 개량한 자위 문자였다. [29] 이런 이유로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나이 든 말레이인 노인들은 아랍어도 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세대가 갈수록 로마자 표기에 익숙해져서 80대 이하 세대는 아랍어는 기도하거나 꾸란 읽을 때만 쓰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