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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21:48:08

라타샤 할린스 살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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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적 배경
2.1. 가해자: 두순자2.2. 피해자: 라타샤 할린스
3. 사건 경위4. 기타 세부 사항
4.1. 두순자의 증언4.2. CCTV 영상4.3. 목격자의 증언
5. 우발적 살인?6. 재판7. 반응8. 왜곡9. 기타10. 관련 문서

1. 개요

La'tasha Harlins, remember that name...
'Cause a bottle of juice... it's not something to die for
라타샤 할린스, 그 이름을 기억해...
왜냐면 오렌지 주스 한 병은...죽을 만한 이유가 아니잖아.[1]
투팍 샤커, <Something 2 Die 4>
파일:latasha-harlins-and-soon-ja-du.jpg
피해자 라타샤 할린스(左, 향년 15세)와 가해자 두순자(右, 사건 당시 48세)

Killing of Latasha Harlins

1991년 3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리커 스토어를 운영하던 한인 이민자 1세대 두순자가 자신의 가게에서 15세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Latasha Harlins)를 리볼버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 이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한인 이민자들[2]의 상점이 많은 피해를 입는 주 원인이 되었다.

2020년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시위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미국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기여한 몽족계 미국인 경찰 토우 타오(Tou Thao)가 구설수에 오르면서 재조명받았다.[3]

2. 역사적 배경

1970~90년대를 중심으로 다수의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이 이루어지기 전인 1950~60년대 미국에서는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났다. 미국 내 인종 분리, 투표권 제한, KKK의 린치와 박해, 인종 폭동 등의 흑인 차별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 킹을 위시한 평화적 시민 불복종과 맬컴 엑스를 위시한 무장 투쟁 등 온건파와 강경파를 아우르면서 저항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움직임 중에는 아시아인을 포함한 비흑인 유색인종의 연대도 존재했다. 일례로 1969년 흑표당의 창립자인 휴이 뉴턴이 체포되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흑표당원의 옷차림을 하고 " 블랙 파워와 연대하는 황화론( Yellow Peril Supports Black Power)"이라고 적힌 팻말을 든 아시아인 시위자의 사진은 그러한 연대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유명하며 해당 문구는 21세기에도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지지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의해 자주 인용된다. # 이에 따라 1964년 미국 연방 민권법 통과 및 선거권이 보장되었고 얼마 뒤 이민국적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4]이 통과되었다. # 이를 계기로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합법적으로 이주할 수 있었고 많은 한국 이민자들이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으며 한인 타운의 형성과 이민 사회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저소득층의 확대 및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인한 미국 사회 내 코카인 범람으로 인해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7월 사이에 코카인 관련 사건이 도시에서 전례없는 수준으로 폭발했다.[5] # 레이거노믹스로 인한 교도소 민영화 미국 흑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초범 및 저소득층 재소자들로부터 범죄자 양성이 급속도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다수의 갱단이 출현 및 확산되었고 이러한 갱단에 의한 범죄 중에는 한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있었다. 이로 인해 상당수 한국인 업체들은 흑인 손님들을 차별했고 흑인 직원 고용을 거부하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흑인과 한국인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긴장의 기류가 흘렀으며 많은 흑인들이 로스앤젤레스 남중부 지역에서 성장하던 한국 이민자 공동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뉴스 보도에서는 "일부 흑인들은 한국인들을 흑인 사회를 이용하는 상인 계급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일부 한인들에 의해 흑인들에게 가해진 인종차별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LA 폭동 당시 한인 자경단 중 한 명이었던 이성진에 의하면 당시 한국 사람들이 주류점을 운영하면서 흑인 상대로 돈을 벌면서도 흑인이나 히스패닉들을 등한시했으며 인종차별은 한국인들도 많이 했다고 술회했다. #

하지만 그런 만큼 같은 유색인종이자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다는 점에서 흑인과 한인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연대도 이루어졌다. 1992년에 LA 타임스에서 일하던 한국계 미국인 존 H. 리의 말에 따르면 그때 LA 타임스에서는 한국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적대적인 관계로 특징짓는 기사를 게재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집중보도했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해 불만을 가졌으며 실제로 흑인과 친화적인 한인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 두순자의 살인 직후 흑인과 한인 커뮤니티 양측에서 협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견이 함께 나왔으며 # '흑한동맹(Black-Korean Alliance)'의 에드워드 장은 "양 공동체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흑인 주류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고 밝혔고 흑인 교회와 한인 교회 사이에서 추모 예배도 이루어졌다. #

즉, 한국인과 흑인 커뮤니티 사이의 민족적, 사회적 갈등이 있었음은 사실이지만 이를 흑백논리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커뮤니티 사이의 갈등을 집중보도한 기사들이 인종적 갈등을 더 고조시키는 원인이 되어 버린 셈이다.

라타샤 할린스의 살해 13일 전인 1991년 3월 3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로드니 킹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집단 구타를 당했고 이에 대한 흑인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2.1. 가해자: 두순자

사건 집행 유예 보고서를 준비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호 관찰관에 의해 따르면 두순자는 1943년 출생으로, 1976년에 미국에 도착한 한국 태생 미국 시민이었다. 미국에 거주한 10년 동안 의류공장에서 일했으며 그녀의 남편은 수리공으로 일했다. 그렇게 부부는 돈을 모아 샌퍼낸도에서 첫 주류 판매점을 인수했다가 매각한 후 소거스에서 다른 편의점을 인수했다.

두순자의 가족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89년에 Empire Liquor Market을 인수하였는데 해당 매장의 주 이용자는 지역 갱단과 마약 판매자였고 1990년 말 강도 사건으로 인해 잠시 가게 문을 닫았다가 막 다시 연 상태였다. 두순자의 아들은 계속된 강도 사건 때문에 부모에게 가게를 닫자고 계속 주장하던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2.2. 피해자: 라타샤 할린스

라타샤 할린스(Latasha Harlins)는 1976년 일리노이 주 이스트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며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남부에 있는 89번가/브로드웨이 근처로 이주했다. #[6] 라타샤의 아버지 에이코프 시니어(Acoff Sr.)는 라타샤의 어머니 크리스털 할린스(Crystal Harlins)를 지속적으로 학대했으며 자식들 앞에서도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라타샤의 부모는 1983년 이혼했고 2년 뒤인 1985년 11월 27일에는 크리스털이 전 남편의 여자친구에게 총격을 받아 숨졌으며 라타샤와 형제들은 할머니 루스 루슬린(Ruth Ruthlin)이 맡아 키우게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라타샤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7] 그 결과 할머니와 이모에게 반항하게 되었다.[8]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학교에서는 착실한 학생이었다. 라타샤의 사촌은 라타샤에게 여러 친구가 있었고 학업에 성실하여 6학년과 7학년에는 Honor Roll 상을 받았다고 증언했다.[9] 또 청소년 센터에서 치어리더 조수로 참가한 바 있었고 훈련팀 팀원이나 여름 주니어 캠프에 상담역으로도 참여했다.[10] 라타샤는 사망 당시 만 15세로 웨스트체스터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3. 사건 경위

이하의 내용은 법률보고서 CCTV 영상을 참조하였다.

두순자의 가족은 LA에서 Empire Liquor Market라는 주류점을 운영했다. 사건 당일인 1991년 3월 16일 아침 라타샤 할린스는 가게에 들어가서 오렌지 주스 한 병을 가방에 넣고[11] 손에 돈을 쥐고 계산대로 걸어갔지만 두순자는 라타샤가 오렌지 주스를 가방에 넣은 것을 목격하자 도둑으로 단정하고 욕설을 하면서 오렌지 주스를 훔치려고 한 것으로 몰아갔다. 이에 라타샤는 무슨 오렌지 쥬스냐고 되물었고 그럼에도 두순자는 라타샤의 가방에서 주스를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어 라타샤의 스웨터를 잡아 당겼고 라타샤는 그에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라타샤는 두순자의 안면부를 가방으로 가격했고 두순자가 옷을 놓지 않고 더 끌어당기려고 하자 주먹으로 안면부를 2번 가격했다. 두순자가 옷을 놓고 계산대 뒤로 기대자 라타샤는 계산대 위에 있는 자신의 가방을 가져가려 했고 두순자는 다시 가방을 잡아당기면서 이를 저지했다. 그 과정에서 라타샤는 한 번 더 주먹을 날렸고 두순자는 라타샤의 가방과 함께 카운터 뒤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 과정에서 오렌지 주스는 가방에서 카운터 앞 바닥으로 떨어졌다. 두순자는 다시 일어나 뒤로 물러나 있던 라타샤에게 의자를 던졌지만 빗나갔고 이에 두순자는 계산대 근처에 있는 38구경 리볼버를 꺼냈다. 두순자가 리볼버를 권총집에서 꺼내고 있을 때 라타샤는 카운터 앞바닥에 떨어진 오렌지 주스를 주워 두순자에게 넘겼다. 두순자는 오렌지 주스를 손으로 내쳤고 라타샤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뒤로 돌자 3피트(91.4cm) 거리에서 그녀의 후두부에 총격을 가했다. 라타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4. 기타 세부 사항

이 사건은 1991년 3월 16일 아침 두순자와 그녀의 가족이 소유하고 운영하던 두 개의 주류 판매점 중 하나인 Empire Liquor Market에서 발생했다. 원래 Empire Liquor Market는 남편인 빌리 두(Billy Du)와 아들인 조셉 두(Joseph Du)가 담당했는데 사건 당일에는 두순자가 아들을 대신해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빌리는 사건 당일 아침에 아내와 함께 판매점에 있었지만 그 전날 밤 늦게까지 일했던 관계로 두순자가 차에서 자도록 했고 때문에 사건 당시에는 차에서 자던 중이었다.

라타샤 할린스가 가게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매장 안에는 두순자와 앞서 매장에 들어온 러키샤 콤스[12]와 동생 이스마일 알리[13]가 있었는데 이후 이 두 사람이 사건의 증인이 되었다.

4.1. 두순자의 증언

사건 보고서에는 두순자는 라타샤가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주스가 있는 냉장고로 향했고 오렌지 주스 한 병을 가방에 넣어 카운터로 걸어왔다고 증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순자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절도범을 자주 본 경험이 있었다.[14] 증언에 따르면 이것 때문에 라타샤가 오렌지 주스를 훔쳐간다고 단정했고[15] 라타샤가 계산대로 오자 두순자는 오렌지 주스 값을 낼 것을 요구했는데 라타샤가 “무슨 오렌지 주스요?” 라고 대응했으며 이 답변 때문에 라타샤가 주스를 훔치려고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16]

또 두순자는 라타샤가 갱단 조직원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전에 두순자는 아들 조셉에게 미국 갱단 구성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고 이에 조셉은 바지와 두꺼운 재킷 차림에 불빛 운동화를 신으면서 모자나 헤어밴드, 헤드밴드를 착용하며 가방을 휴대할 때가 많다고 답했다고 하며 덧붙여 재킷이 이상하게 불룩한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라타샤가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더 가격했으면 자신이 죽었을 것이며 라타샤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4.2. CCTV 영상

0.01초: 두순자가 손을 뻗어 라타샤의 옷을 잡고 자기로 향해 잡아당긴다.
0.03초: 라타샤는 계산대로 끌려간다. 라타샤는 자신의 가방으로 두순자의 얼굴을 가격한다.
0:06초: 두순자는 두 손으로 라타샤의 옷을 다시 자기로 향해 잡아당긴다. 라타샤는 두순자의 안면 부위를 주먹으로 2번 가격한다.
0:08초: 두순자의 두 손은 라타샤의 옷에서 떨어지고 두순자는 계산대 뒤에 있는 벽에 기댄다.
0:09초: 라타샤는 가격을 멈추고 계산대 위에 있는 자신의 가방을 가져가려고 한다. 두순자는 손으로 라타샤의 가방을 자신을 향해 잡아당긴다.
0:10초: 라타샤는 다시 한 번 두순자의 얼굴을 가격한다. 두순자는 가방과 함께 계산대 뒤 바닥으로 쓰러진다. 라타샤는 뒤로 물러난다.
0:12초: 두순자는 바닥에서 일어나 라타샤를 향해 의자를 던진다.
0:16초: 두순자는 권총집에 담겨진 총을 꺼낸다. 그리고 총을 권총집에서 꺼낸다.
0:20초: 라타샤는 바닥에 떨어진 주스를 주워 두순자에게 건네준다.
0:21초: 두순자는 라타샤의 손목을 손으로 내려치고 주스는 계산대 위로 떨어진다. 두순자는 손으로 주스를 계산대에서 내쳐 버린다.
0:24초: 라타샤는 뒤돌아서고 가게 문으로 향한다. 두순자는 총을 발포한다. 라타샤는 바닥으로 쓰러진다.
하지만 공개된 폐쇄회로 영상은 두순자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았다.[17] 두순자는 라타샤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는데 영상을 보면 두순자가 먼저 라타샤의 옷을 잡아채서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고 이로 인해 라타샤가 계산대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영상 0.02초 참조) 이에 저항하기 위해 라타샤는 가방으로 두순자의 얼굴을 쳤고 그럼에도 두순자는 다시 두 손으로 옷을 잡아채서 끌어당겼다. (영상 0.05초 참조). 두순자가 계속 옷을 놓지 않자 라타샤는 주먹으로 얼굴을 2번 가격했다. 이 CCTV 영상으로 인해 라타샤가 두순자에게 살해 협박을 했다는 증언은 사실로 보기 어려워졌다.

또 두순자는 라타샤가 갱단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증언했는데 이러면 두순자가 행한 행위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두순자와 그녀의 가족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많은 절도사건[18]들이 있었고 1990년 말에도 강도사건이 일어나 아들이 갱단에게 협박당하자 잠시 가게 문을 닫은 이후 막 다시 연 상태였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두순자는 갱단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알았을 것이지만 두순자는 라타샤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손을 뻗어 라타샤의 옷을 잡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4.3. 목격자의 증언

목격자의 증언도 두순자의 증언과 달랐다. 두순자는 라타샤에게 주스값을 지불하라고 요청했을 때 “무슨 오렌지 주스요?” 라고 물으면서 발뺌했다고 증언했는데 당시 목격자인 러키샤와 그의 동생 이스마일의 증언에 따르면 라타샤는 2달러에서 3달러 정도의 돈을 들고 서 있었고 그녀가 카운터로 다가가자 두순자가 먼저 라타샤에게 욕설을 했으며[19] 오렌지 주스를 훔치려고 했다고 했다. 이에 라타샤는 두순자에게 돈을 지불할 의도가 있었다는 답변을 했다고 증언했다.
Latasha had $2 in her hand when she died.
라타샤는 사망했을 때 $2를 손에 쥐고 있었다.
- 법률보고서 (Court of Appeal, Second District, Division 5, California. PEOPLE of the State of California, Petitioner, v. SUPERIOR COURT of Los Angeles County, Respondent. SOON JA DU, Real Party in Interest. No. B063918) -
라타샤가 사망할 때 그녀의 손에 2달러를 쥐고 있었다는 것도 입증되었는데 이는 라타샤는 절도범이 아니며 주스 값을 지불할 의도가 있었다고 말해 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20] 심지어 CCTV 영상을 보면 오렌지 주스를 두순자한테 돌려주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라타샤가 발뺌을 했다는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졌다.

5. 우발적 살인?

두순자는 재판에서 전에 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어떻게 작동했는지 몰랐으며 총을 쏘는 것을 기억하지 않았고 라타샤를 죽일 의도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두순자의 남편은 호신용으로 1981년 친구로부터 권총( 스미스 & 웨슨 38구경 리볼버)을 구입했다고 증언했지만 그는 그 총을 발사한 적이 없었으며 두순자에게 총을 사용하는 법도 가르치지 않았다. 1988년 이 총은 소거스(Saugus)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으로 인해 도난당했고 1990년 두순자의 남편은 경찰에게서 총을 회수할 수 있었으며 총을 다시 엠파이어 리커 스토어로 가져갔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청 탄도 전문가인 데이비드 버틀러(David Butler)는 사건에 사용된 권총에 대해 설명했다. 요약하면 도난당했던 총의 해머 잠금 메커니즘과 총의 주 스프링 장력 나사가 모두 변경되어 방아쇠에 많은 압력을 가하지 않고도 해머가 풀릴 수 있도록 조잡하게 변경되어 있었다고 증언했다.[21] 안전 메커니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법원은 만약 총이 쉽게 발사되게 변경되지 않았다면 이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제기했다.

요약하자면 라타샤는 오렌지 주스를 고른 뒤 돈을 지불하려고 계산대에 갔는데 두순자가 욕설을 내뱉으면서 절도범으로 몰아갔고 폭력을 가하자 방어기제로 두순자의 얼굴을 가격했으며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두순자는 권총을 꺼냈고 가게 밖으로 나가려 하는 라타샤에게 우발적으로 총을 쏘게 된 것이었다.

6. 재판

재판에서 증언을 마친 후 배심원은 두순자를 2급 살인죄로 보고했다. 두순자는 자발적 살인죄(Voluntary manslaughter)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배심원은 두순자가 형법 1203.06 (a) (1)[22] 및 12022.5[23] 의미 내에서 총기를 사용한 사실을 밝혔다. 자발적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배심원은 두순자가 라타샤를 살해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그 살해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함축했다. 따라서 배심원은 두순자가 의도적 살인이 아닌 방어기제로 살해했다는 것에 대한 변호를 거부했다.

유죄 판결 후 이 사건의 집행유예 보고서를 준비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호관찰관은 두순자의 재범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징역 10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400시간을 선고했으며 두순자가 벌금 500달러와 라타샤의 장례식 비용을 지불할 것을 명령했다.

7. 반응

“You shoot a dog and you go to jail. You shoot a black kid and you get probation.”
“개를 쏘면 감옥에 간다.[24] 흑인 아이를 쏘면 집행유예를 받는다”.
- African American community of Compton ( 컴튼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 - #
“This system of justice is not really justice. They murdered my granddaughter!”
“이 사법 체계는 정의롭지 않습니다. 그들은 제 손녀를 죽였다고요!”
- 라타샤 할린스의 할머니 - #
결국 이 판결로 인해 흑인들의 사법 시스템 및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말았다. 흑인들은 분노했고 이 판결을 제기한 백인 판사인 조이스 칼린(Joyce Karlin)이 일하던 법원에서 시위를 했다. 이후 청원이 있었으며 수많은 서명이 모이자 변호사 아이라 라이너(Ira Reiner)는 캘리포니아 항소 법원에게 재판결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법원은 거절했다. ( #)

이로 인해 LA 폭동은 한국계 미국인과 기타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해 진행되어 버렸다. 흑인들은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시아인들에게 무차별 구타와 집단 난타, 투석, 총격을 가했고 격앙된 한국인 출신 이민자들도 흑인들을 발견하는 족족 끌어다가 구타, 폭행을 가하였다. 두순자의 가게는 약탈당하고 불에 타서 다시는 열리지 않았으며 칼린 판사는 시위자들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 출처) 한흑 갈등으로 인한 로스앤젤레스 시 전체의 피해액은 7억 1천만 달러 선으로 집계되었으며 이 중 재미 한국인/한국계 미국인의 피해액은 3억 5천만 달러로 절반에 달했다.

8. 왜곡

8.1. 미국

미국 언론은 로드니 킹 사건에서 흑인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도 보도되었는데 예를 들어 두순자가 맞은 건 보여주지 않거나 두순자가 총으로 라타샤를 쏜 것만 보도했고 뉴스 헤드라인에는 라타샤가 고작 오렌지 주스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왜곡된 보도로 인해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해당 사건이 인종적 동기를 바탕으로 한 증오성 의도적 계획살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버렸다.

8.2. 한국

한국 언론의 보도는 미국측과 정반대였다고 할 수 있다.

대다수 뉴스에서는 라타샤의 방어성 폭행만 강조했으며 두순자가 먼저 폭력을 가했다거나 절도범으로 몰아갔다고 보도하지 않았고 라타샤가 절도범이 아니라는 것에 해명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지의 문서에는 라타샤가 먼저 '황인종 년(Gook bitch)’라며 아시아인 혐오 발언을 하고 폭행을 했다는 법률보고서에 아예 없는 정보까지 넣어 버렸다. #, # 이는 확실히 날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24년 2월 16일자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선 문제의 왜곡된 문구가 삭제되었다.

이것 때문인지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두순자가 사살한 라타샤 홀린스가 무죄 판시되었단 인식이 없으며 이로 인해 1990년대 초반의 열악한 해외 취재 환경, 그리고 미국의 황색언론과 흑인사회의 총공세로부터 두순자와 재미한인을 지원하려던 국가적 배경이 작용하였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최종판결과 다르게 두순자는 정당방위를 행사했단 인식이 고착화되다.

9. 기타

10. 관련 문서



[1] 오렌지 주스 때문에 누명을 써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2] 한국계 미국인들과 다른 아시아인 이민자들(아시아계 미국인) [3] 아시아계 미국인 사회에서도 이를 통해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역시 이런 식으로 백인 사회에 영합해서 같은 소수 인종인 흑인을 탄압하지는 않았던가?"와 같은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4] 인종, 성별, 국적, 출생지 또는 거주지에 따라 이민 비자 발급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 난민, 특수 기술을 가진 사람, 가족 구성원을 우선 순위로 하는 시스템. 이 법의 통과는 1년 전에 개정된 미국 연방법으로 인해 가능했다. [5] Crack Epidemic이라 불린다. [6] 10여년 뒤 여기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라타샤 할린스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7] 라타샤의 가족에 의하면 라타샤는 어머니의 죽음에 항상 슬퍼했으며 무덤을 지나갈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8] 어머니는 아버지의 여자친구에게 살해당했고 아버지는 어릴 때 집을 나갔기 때문에 라타샤는 일찍 철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자신의 형제들도 챙겨야 했기 때문에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다. [9] Stevenson, Brenda (2013). The Contested Murder of Latasha Harlins: Justice, Gender, and the Origins of the LA Riots.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933959-4. Retrieved January 20, 2020. [10] 법률보고서 참고 [11] 가방에 넣었지만 주스 병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고 밖으로 나와 있었다. [12] Lakeshia Combs, 당시 13세 [13] Ismail Ali, 당시 9세 [14] 물품을 브래지어나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기고 계산대에서 소량의 물품만 구매한 후 떠나는 방식으로 절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15] 덧붙여 만약 라타샤가 정말로 주스 값을 지불할 생각이었다면 가방에 넣지 않고 손에 들고 카운터에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16] 두순자는 라타샤가 발뺌하기 전까지는 라티샤에 대해 별달리 우려하는 점이 없었다고 증언했으며 라타샤의 대응으로 인해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17] 영상이 워낙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0.5배속으로 보는 것을 권장한다. [18] 아들은 이 가게에서 일주일에 최소 강도사건이 30번, 절도사건이 40번 일어났다고 증언했는데 거기다 절도를 저지할 때마다 절도범은 총을 보여줬고 목숨을 위협당한 지 30번이 넘었으며 가게에 불을 지른다고 협박당한 건이 20번이나 됐다고 했다. [19] 증언에 따르면 bitch(개년)라고 했다. [20] 당시 주스의 가격은 1달러 79센트였다. [21] 방아쇠에 많은 압력을 가하지 않고도 총이 쉽게 발사될 수 있게 변경되었다는 뜻이다. [22] 살인, 절도 등을 저지르거나 시도하려고 총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 [23] 중범죄를 지르거나 시도하려고 할 때 개인적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것 [24] 라타샤가 사망하기 전에 일어난 개 학대 사건을 일컫는 것. 해당 사건의 범인은 동물 학대로 30일형을 선고받았다. [25] Something 2 Die 4 [26] Korean motherfuckers was crooked. so niggas had to burn and loot ’em. 미공개 곡이었으나 그의 사후 음반으로 공개되었다. [27] 다만 이후 부자들은 미국 사회의 가난하고 불우한 흑인, 멕시코, 한국 아이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걸 보면 한국인들 자체에 대한 깊은 증오가 있었던 것 아닌 듯하다. 애초에 한국 아이들을 언급한 것 자체가 미국의 한국인들이 흑인들과 비슷한 포지션의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꼈다고 볼 수도 있다. [28] 조승희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켰을 때 대한민국에서는 조승희가 인종차별의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하지 않았고 검은 머리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일 뿐이란 반응을 보였다. 사실 대한민국 국적은 말소되었으니 미국 내부의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