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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포되어 묶여 있는 소련 선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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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953년 8월 8일 | |
장소 | 일본 홋카이도 치라이베스 해상 | |
교전국 | [[틀:깃발| | ]][[틀:깃발| ]][[일본| ]][[틀:깃발| | ]][[틀:깃발| ]][[소련| ]]
지휘관 |
경찰청장관 사이토 노보루[1] 해상보안청장관 야마구치 덴[2] |
선장 필리프 파모비치 쿨리코프[3] KGB 요원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세로프[4] |
병력 | 순시선(함명 후지) 1척 |
공작선 1척 승조원 4명 |
피해 |
인명피해 없음 순시선 일부 피탄 |
조타장비 파손, 공작선 나포 승선인원 전원 구속기소 |
결과 |
침투 공작원 1명 체포 소련의 유감 표명 |
[clearfix]
1. 개요
1953년 일본 해상보안청이 소련 간첩선을 나포한 사건. 소련-일본 전쟁 이후 8년 만에 일본 측이 소련에 대해 무력을 행사한 사건이다.2. 발단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 일대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통치하고 있었으나 소련-일본 전쟁 시기에 소련에 의해 점령되어 소련령으로 편입되었다.소련은 제1세계의 주요 국가 중 하나인 일본과 인접한 이곳을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하여 쿠릴 열도에 잠수함 기지를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공작원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는데 이 중에는 전쟁 전 사할린 일대에 연고를 두었던 일본 어선에게 고기잡이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해상자위대, 해상보안청의 전력 배치나 항만 중요 시설 위치 등의 간단한 정보를 상납받는 고정간첩 행위인 "레포선(レポ船)" 외에도 직접 공작원을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3. 전개
이런 소련 측의 정보수집 행위로 인해 일본 경찰과 해상보안청의 신경은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그러던 중 1953년 8월 8일 붉은 기를 단 선박 한 척이 일본 영해를 침범해 홋카이도 소야 종합진흥국 사루후츠무라 치라이베스(知来別) 해안가에 접근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해상보안청은 순시선을 급파해 검문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소련 정부의 어업지도선이라고 둘러대던 이 선박이 계속되던 검문 요구에 총격을 가하고 도망치면서 해상보안청 순시선과의 교전이 벌어졌다.
교전 자체는 소련 선박이 일본 순시선의 대응사격을 받아 조타장치에 손상을 입고 항복하면서 싱겁게 끝났으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로 배 안에서 난수표와 20만 엔에 달하는 공작자금[5], 무전기 같은 공작원이나 쓸 법한 장비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3.1. 선박의 제원
KM-4형 소해정
건조일 - 1941년 9월 7일
함 번호 - RK 1403
배수량 - 12톤
길이/둘레/높이 - 19.3X3.4X0.8m
내연기관 - 126마력
속력 - 10노트
항속거리 - 220해리
무장 - 7.62㎜ 기관총 1정, 소해장비 탑재
승선 - 정원 10명
4. 재판
결국 선장 필립 파모비치 쿨리코프를 포함한 승무원 4명은 일본 경찰에 의해 구속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을 심문해 확보한 증거로 일본 국내에 침투해 활약하던 일본계 소련 공작원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1953년 9월 27일 일본 검찰이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승조원 3명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면서 선장을 제외한 승조원들은 소련대사관을 통해 추방되었다.
1954년 2월 28일에는 일본에 남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선장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소련으로 추방되었다.
사건 이후 소련은 외교부를 통해 일본 외무성에 유감을 표시했다고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