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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16:09:04

넵튠 스피어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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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44C9> 일생 생애 · 대통령 집권기
가족 배우자 미셸 오바마
평가 평가
역대 선거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정치인 조 바이든 · 힐러리 클린턴 · 존 케리 · 데니스 맥도너 · 수전 라이스 · 톰 빌색 · 로버트 게이츠 · 벤 버냉키
기타 PRISM · 오바마 빈 라덴 · 오붕가 · 추천작
오바마 행정부
정책 오바마케어
사건사고 넵튠 스피어 작전 · 오디세이 새벽 작전 · 월가 점령 시위 ·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파일:노란색 깃발.svg 자유주의 }}}}}}}}}

1. 개요2. 전개
2.1. 10년간의 숨바꼭질2.2. 빈 라덴의 위치 추적2.3. 작전 진행2.4. 시신의 처리2.5. 작전 성공 이후
3. 진행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들
3.1. 헬리콥터 추락3.2. 뜻밖의 트위터 생중계
4. 세 명의 파키스탄인
4.1. 샤킬 아프리디
5. 죽음에 대한 논란과 음모론6. 미디어에서

1. 개요

“For God and country, I pass Geronimo. Geronimo E.K.I.A.[1]
“하느님과 국가를 위하여, 제로니모를 전송한다. 제로니모. 을 사살했다.”[2]
특수부대 DEVGRU가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한 후 임무 성공 사실을 알리기 위해 보낸 암호 무전
Operation Neptune Spear (Killing of Osama bin Laden)

2011년 5월 1일 미국 윌리엄 H. 맥레이븐 사령관의 지휘로 9.11 테러의 주범이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개전 원인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사살한 작전.

2. 전개

2.1. 10년간의 숨바꼭질

9.11 테러로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힌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전면전까지 벌였지만 정작 빈 라덴을 잡지는 못했다. 게다가 탈레반 세력의 패배로 끝날 것처럼 보였던 전쟁은 빈 라덴이 도주에 성공하면서 길어지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이라크 전쟁으로 미군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에 다시 세력을 키워나갔고, 빈 라덴은 간간이 자신의 성명을 담은 비디오를 내보내며 건재함을 알리면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미국은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정말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나 볼 법한 각종 첨단 장비를 총동원했고, 이것도 모자라 빈 라덴의 목에 최대 5,000만 달러(한화 약 590억 원)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끝내 빈 라덴을 잡는 데 실패했다.

사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반에 빈 라덴을 거의 잡을 뻔한 적이 있었다. CIA의 아프가니스탄 파견대였던 조브레이커(Jawbreaker) 팀이 오사마 빈 라덴의 흔적을 확보하고 그가 있는 건물을 확실히 파악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CIA는 레인저 1개 중대 정도만 와도 확실하게 제압이 가능하다면서 빨리 병력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CIA 내부의 삽질로 인해 이 정보가 미국 국방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바람에 빈 라덴 일당은 악천후를 틈타 도주했다. 당연히 CIA 국장은 그대로 경질되었다. 이후에도 무인 공격기 프레데터에 무장을 추가해서 시험운용하다가 오사마 빈 라덴을 포착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때도 황당한 이유로 빈 라덴을 놓쳤는데, 당시만 해도 무인 공격기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탓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고 그래서 무인기에 공격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었다. 이때 발사 명령이 내려졌다면 빈 라덴은 헬파이어 미사일 한 방에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그야말로 길길이 날뛰었고, 이 사건 이후 미군은 무인 공격기를 대대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로도 미국은 빈 라덴을 잡을 기회를 여러 번 날렸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라진 그의 행방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2.2. 빈 라덴의 위치 추적

그 사이 미국은 2009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퇴임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테러리스트에 대해 치를 떠는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를 찾기 위한 노력은 새 정부 하에서도 계속되었다. "빈 라덴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잡겠다!"는 일념하의 오랜 첩보 활동 끝에 CIA에서는 마침내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은신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빈 라덴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미국은 파키스탄에서 소아마비 백신 무료접종 캠페인을 진행했다. 소아마비 백신은 진짜 무료로 접종해 주었지만 여기서 주사기 및 바늘 잔류을 통해 몰래 채취한 혈액의 DNA로 개인정보를 추적해 마침내 빈 라덴의 자녀들의 DNA를 확보했고, 이를 기반으로 빈 라덴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는 설이 있다.[3]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있던 곳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동쪽으로 56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 아보타바드의 호화 주택가 안전가옥이었다.[4] 파키스탄 상류층이 주로 사는 지역이었고 인근 경찰서와 불과 250m 거리인 데다 가까운 곳에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한 파키스탄군 군사 시설들도 자리잡고 있었다. 공권력이 잘 미치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의 산골이나 동굴 같은 곳에 은둔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한참 동떨어진 곳이었다. 물론 오사마 빈 라덴도 초기에는 동굴의 입구 앞에서 '대미국 성전'을 촉구하는 방송을 일부러 흘려보내는 식으로 미국 첩보기관을 농락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5] 그러나 그도 미국 첩보기관이 집요하게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과 측근들이 미국의 공격으로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빈 라덴에게는 자신이 숨어있다는 의심을 전혀 받지 않을 만한 장소가 필요했고, 그래서 아보타바드의 은신처가 최적이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토마호크 미사일로 안전가옥을 날리는 것, B-2로 파키스탄의 방공망에 몰래 들어가 융단폭격으로 빈 라덴을 날려버리는 것, 그리고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빈 라덴을 사살하는 것, 이 3가지의 옵션을 고안했다. 다만 폭격이 필요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옵션은 빈 라덴이 은거한 안전가옥이 파키스탄의 수도에서 불과 56km 떨어진 곳이라서 수도 방공권에 포함되는 데다가[6] 근처에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가 위치해 있어서 군관 장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미국이 대놓고 파키스탄과 전쟁을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서야 이곳에 함부로 진행이 불가능한 노릇이었다.[7] 사실 무인기의 월경 작전은 종전부터 파키스탄 정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있었으나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수도 방공권 내의 접근은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무리였으며 사전통지 또는 허가를 받는다는 선택지도 고려하기 어려웠다. ISI 내부에 탈레반 세력이 침투해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무인기가 파키스탄군 방공망에 격추되지 않고 공습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무인기의 제한적인 폭장량으로는 안전가옥에 대한 확실한 파괴를 장담하기 어려웠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선 반드시 시신을 회수하고 신원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파키스탄 군 수뇌부 사이에 숨는다는 빈 라덴의 판단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폭격으로 끝장낸다는 작전은 실행이 어려웠다. 결국 남은 방법은 비밀리에 현장으로 직접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사살하는 방법뿐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 미군 최정예 특수부대중 하나인 미 해군의 대테러부대 DEVGRU를 아보타바드에 침투시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8] 이 작전의 명칭이 바로 넵튠 스피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이다.

2.3. 작전 진행

영화 《 제로 다크 서티》에서의 재현
연기와 연출이 가미된 것이므로 실제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파키스탄 현지시각으로 2011년 5월 1일 새벽 1시 특수부대원 25명[9] MH-60 스텔스 호크 헬리콥터 2기와 CH-47 치누크 헬리콥터 2기에 분승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안전가옥을 기습공격했다.[10] 이중에 CH-47 치누크 2기는 예비대 및 중간 급유용이었다. 이 헬리콥터들에 타고 있던 예비 병력은 안전가옥에 직접 진입하지 않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아보타바드 외곽에 대기하고 있었다. 작전 종료 후 퇴각 시 추락한 MH-60 페이브 호크 승무원들과 대원들 및 현장에서 노획한 각종 자료로 늘어난 짐을 실었고 중간에 착륙해 연료가 바닥난 페이브 호크에 급유작업도 수행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던 저택은 주위의 저택보다 거의 6배 가량 큰 데다가 반 요새화되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쓰레기 소각장이 앞마당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 지점이 착륙 지점으로 선정되었고 덕분에 DEVGRU 대원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순식간에 착륙해 내부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다만 벽이 교도소 장벽 수준으로 높아서 헬리콥터가 오래 체공하기에는 여러모로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원들은 소총을 난사하면서 저항했으나 모두 사살되었다. 그리고 빈 라덴은 자신의 침실에서 DEVGRU 포인트맨의 HK416에 눈과 심장이 피격당해 사살되었고[11] 함께 있던 여성이 총격전 중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12][13] 작전 당시 같은 건물에 있던 빈 라덴의 27세 연하 아내는 DEVGRU 대원들에게 덤벼들었으나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제압되었다.

2.4. 시신의 처리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은 페르시아 만에 전개된 미 해군 항공모함 CVN-70 USS 칼 빈슨으로 옮겨져 신원 확인을 위한 여러 검사를 거쳤으며 9시간 만에 미 해군 이슬람 군종장교의 간단한 의식 이후 추를 달아 아라비아 만 수장되었다. 미국은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이슬람의 전통이며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을 받아 줄 나라도 없기 때문에 수장시켰다고 공식 발표하였지만 세간의 평은 무슬림[14]이라 화장할 수 없고, 그렇다고 시신을 땅에 묻자니 빈 라덴의 무덤이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서두른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15] 이에 대해 이슬람권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장시켜서는 안 된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는데 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슬람 전문가들은 수장은 할 수 있지만 이슬람식 전통 예법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시신 수장은 이슬람 전통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시신은 오사마 빈 라덴의 친척을 제외한 가족에게 인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빈 라덴 가문은 9.11 테러 전후로 오사마 빈 라덴을 호적에서 진작에 파버린지라 미군이 시신을 인도하려고 시도했어도 이들이 받아줬을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에 떠돈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은 가짜다. 2009년에 합성되어 올라온 것이라고 하며 파키스탄 방송에서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내보냈고 이를 외신들이 앞다투어 올렸다가 가짜로 판명되면서 사진을 삭제했다. 결국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의 모습이 너무 끔찍한 탓에[16] 사진이 공개될 경우 나타날 파장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링크 이는 2017년 DEVGRU의 전쟁범죄 폭로로 어두운 이면이 드러났다. 원래 지휘부는 절대 오사마 빈 라덴의 머리에 쏘지 말 것을 강조했는데 기어코 팀장급 대원 중 둘[17]이 원래 작전상의 위치를 벗어나 그중 한 명[18]이 카누잉[19]해버렸다. 그러니까, 합동특수전 사령관과 대통령이 보고 있는데 무단 이탈을 해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카누잉을 해버렸다는 뜻이다.

2.5. 작전 성공 이후

2011년 5월 2일 미국 시간으로 밤 11시에 진행된 긴급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음을 공식 발표하였다.[20]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인들은 "사탄이 드디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환호하면서 백악관에 몰려들어서 'USA'를 연호하고 미국 국가를 부르는 등 기쁨을 누렸으며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9.11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모임도 있었다. 뉴스에서도 앵커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소식이 들어오자 대놓고 "Happy days! Happy days!"라고 외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미국인들에게 오사마 빈 라덴은 아돌프 히틀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불구대천지원수 그 자체였다.[21] 이후 미국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관련 기념품이 불티나게 팔렸고 인터넷에서 빈 라덴을 풍자하는 이미지도 쏟아졌다.
발표 당일 프로레슬링 단체 WWE 익스트림 룰즈 이벤트에선 메인 이벤트 매치가 끝나고 존 시나가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소식을 전하자 모든 관중이 USA를 외쳤다. 여기서 존 시나는 빈 라덴의 최후에 대해 "compromised to a permanent end"라는 시적인 표현을 썼다.
I walk out here every night with hustle, loyalty, respect on my sleeve.
That is a credo I have adopted from the men and women who defend the freedom of this country.
We have caught and compromised to a permanent end Osama bin Laden.
저는 매일 밤마다 열정, 충성, 존경을 품고 이곳에 걸어 나옵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자유를 수호하는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제가 받아들인 신조입니다.
우리는 오사마 빈 라덴을 붙잡았으며 영구적인 종말로 굴복시켰습니다.
존 시나
파일:attachment/800px-Obama_and_Biden_await_updates_on_bin_Laden.jpg
백악관에서 공개한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22]

사진 속 인물들을 사진에 새겨진 번호 순서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번호 직책 이름
1 미국 부통령 조 바이든(Joe Biden)[23]
2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3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지원부사령관
Assistant Commanding General,
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
마셜 웹(Marshall Webb)
4 합동참모의장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마이크 멀린(Mike Mullen)
5 국가안보보좌관
National Security Advisor
톰 도닐런(Tom Donilon)
6 비서실장 빌 데일리(Bill Daley)
7 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
National Security Advisor to the Vice President
토니 블링컨(Tony Blinken)[24]
8 대테러국[25]
Director for Counterterrorism
오드리 토마슨(Audrey Tomason)[26]
9 국토안보 및 대테러수석비서관
Assistant to the President for Homeland Security and Counterterrorism
존 브레넌(John Brennan)[27]
10 국가정보장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제임스 클래퍼(James Clapper)[28]
11 CIA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부 차장 존 (John)[29]
12 안보차석비서관
Deputy National Security Advisor
데니스 맥도너(Denis McDonough)[30]
13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14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31]
이외의 미상 2명[#1][#2]
화면에서는 흐릿한 이미지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영상을 본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MH-60 블랙호크 1기가 하강하면서 약간 휘청거렸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파악하기도 전에 맥레이븐[34]이 헬리콥터가 일시적으로 양력을 잃어 저택 담장 측면에 부딪혔다고 알려주었다. 순간적으로 감전된 듯 공포가 밀려들었다. 머릿속에서 재앙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헬리콥터가 추락하고 DEVGRU 대원들이 빠져나올 때 기관총이 불을 뿜고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나 보려고 집에서 나오고 파키스탄군이 현장으로 달려오는데, 맥레이븐의 목소리가 나의 악몽을 깨웠다. "괜찮을겁니다." 마트에서 자동차 펜더가 쇼핑 카트에 부딪혔다고 말하는 듯한 말투였다.[35]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 <약속의 땅> 해당 부분 내용
참고로 이 사진은 작전에 투입된 헬리콥터 1기에 문제가 생겨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순간 일동 모두 긴장하는 찰나에 찍은 것이라고 한다. 이 사진은 타임지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장의 사진'에 선정되었고 전직 백악관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임무 결행 직후 첫 헬리콥터 2기가 임무를 위해 목표지점으로 떠나고 도착하기까지의 1시간 30분동안 오바마는 지루하다고 중간에 나가서 카드 게임을 하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한다. 카드 게임을 포함한 1시간 30분이 지난 후 헬리콥터 2기가 예정대로 목표지점에 도착하고 대원들이 착륙하려고 했는데 그중 1기가 경미한 불시착으로 파괴되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찍힌 사진이다.

미국 수뇌부들이 좁은 방에 모여서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긴장한 모습이 드러난 드라마틱한 사진이다. 공개된 지 며칠 만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 사진이 유명해진 것은 대통령, 부통령, 국방장관 등 서열이 훨씬 높은 사람들은 옆자리에 있고 겨우 준장 계급인 작전 지휘관이 중앙의 상석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서열이 아니라 지휘관을 훨씬 우대하는 미국 군대 문화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빈 라덴의 은신처에 있던 노트북에서 대량의 정보를 얻었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한 정보관계자에 의하면 노트북에 있는 정보의 10분의 1만 써먹을 수 있어도 거의 노다지 수준이라고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딸은 작전 종료 후 파키스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는데[36] 체포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비무장 상태에서 DEVGRU 대원들에게 생포되어 가족들 앞에서 사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작전 직후 미국 정부에서 밝힌 공식입장은 "오사마 빈 라덴이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생포할 수도 있었다"였기 때문에 사실이라면 꽤나 논란이 될 듯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찬장에 있던 AKMSU를 집으려다 사살당했다고 한다. 이러면 처음에는 비무장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무장하려고 한 것이니 사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DEVGRU 대원들은 규정에 따라 처리한 셈이지만 이는 비소넷의 증언과는 확연히 달라 조금 애매한 부분이다.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은 "이번 작전은 암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전은 사살 또는 생포 작전이었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항복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생포되었다고 해도 오사마 빈 라덴은 10여 년 전에 최후를 맞은 사담 후세인처럼 공개 교수형으로 처형되거나 이것 저것 증언하는 대가로 관타나모로 끌려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이 뻔했다. 다만 이러면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주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다룬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에서는 실제 상황에서는 생포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에 사실상 사살작전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석했다.

이 작전으로 큰 타격을 입은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당시 트럼프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경선 후보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오바마가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우기면서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출생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등의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오바마는 자신의 출생기록을 공개하면서 "이런 바보같은 놀음(silliness)에 더 이상 얽매이고 싶지 않다. 나는 신경써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발언하였으며 이 작전을 성공시키면서 자신의 말을 입증하게 되었고 트럼프는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어 결국 경선을 포기해야 했다. 반면 오바마는 이 작전을 성공시키면서 지난해 중간선거 참패 후 추락한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듬해 재선에 성공했다.

작전 지역의 주권국인 파키스탄은 이 작전을 지지하지 않아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표현하거나 하지도 못한 채 어물쩍 넘어갔다. 엄연히 자기 국토에 미국이 멋대로 특수부대를 보내 '군사작전'을 실시한 것이지만[37] 파키스탄이 오사마 빈 라덴의 뒤를 봐주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미국의 증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괜히 주권 침해를 운운하며 작전을 방해했다가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테러를 옹호하는 똑같은 부류로 취급되어 폭격을 당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38] 파키스탄은 미국이 자국 영토에서 군사작전을 벌인 것을 눈감아 주고 미국 측은 파키스탄이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것을 모른 척 해 주면서 서로 윈윈한 셈이다.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동족에 대한 암살을 반기지 않았으며 이것 때문에 알카에다의 미국에 대한 보복 테러 위험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왔다.[39]

3. 진행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들

3.1. 헬리콥터 추락

파일:attachment/오사마 빈 라덴/sh00.jpg 파일:attachment/오사마 빈 라덴/sh01.jpg
현장에서 발견된 페이브 호크의 꼬리날개
작전 과정에서 DEVGRU 대원들을 태운 MH-60 스텔스 호크[40] 1대가 와류 고리 현상[41]이 발생해 추락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고 추락한 헬리콥터는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DEVGRU 대원들이 폭파했다.

추락하기 전 대원들 사이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대원 대부분이 헬리콥터 추락을 경험해봤을 정도로 추락이 잦았기 때문에 "설마 또 추락사고가 일어나겠어?"라는 식의 대화를 나눴는데 이번 작전에서도 추락을 했다.[42] 다행히도 추락으로 인해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대원들은 없었다.

당초 작전 계획은 헬리콥터 2기만 동원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먼저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이 예비기가 전혀 없으면 작전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예비기를 둘 것을 제안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여 결국에는 총 4기를 동원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헬리콥터 1기를 잃었음에도 나머지 3기에 전원이 무사히 탑승해서 작전 지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작전의 은밀성보다는 안전성 쪽에 무게를 두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당시 민간 자문단으로 참가했던 인사 중에는 영화 《 블랙 호크 다운》의 모티브가 된 모가디슈 전투 때 조종하던 UH-60 블랙 호크가 추락해서 아이디드 민병대에게 붙잡혔다가 간신히 석방된 퇴역 육군 준위 마이클 듀란트가 있었다. 듀란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헬리콥터를 통한 강습 작전은 너무 위험하다며 차라리 미사일이나 공중 폭격이 더 안전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오바마는 이를 통해 사태가 악화될 때 필요할 예비 전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이끌어냈고 예비기를 투입하도록 지시했다.

3.2. 뜻밖의 트위터 생중계

파일:53gS6rnCGQkRRf-teuFDV9xojArTMYn11AUj0G0lku0.jpg
※ 아래에서부터 위로
“새벽 1시인데 아보타바드 하늘에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있음 (흔치 않은 일임).”

“헬리콥터야 저리 가라 - 내 거대한 파리채 꺼내오기 전에 :-/”

“이곳 아보타바드 칸트에서 큰 창문이 흔들리고 쾅쾅거리고 있음.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S”

“터지는 소리가 나고 이제 모든 게 조용해졌지만, 6km 떨어진 곳에 살던 친구도 들었음… 헬기도 이제 가버림.”
이러한 작전 과정을 자신도 모르게 트위터로 생중계한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지역에 살던 당시 33살의 IT 컨설턴트 '소하이브 아타르'로, 넵튠 스피어 작전 당일 새벽 1시에 헬리콥터가 해당 지역 상공을 비행하던 것을 알고 "헬리콥터가 새벽 1시에 아보타바드 상공을 호버링하고 있다"는 역사적인 트윗을 올렸으며 이어서 "큰 창문이 흔들린다", "우리 헬리콥터가 아닌 것 같다" 등 트윗을 계속 올렸다.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이 자기가 살고 있던 곳의 지척에 숨어있다가 특수부대에게 사살당한 것을 알고 “헐, 나도 모르게 오사마 사살 작전을 생중계한 사람이 되어 버렸네.(Uh oh, now I'm the guy who liveblogged the Osama raid without knowing it.)”라는 트윗을 올렸다.

소하이브 아타르는 나중에 "내가 아보타바드로 이사한 건 안전 전략의 일부였다."는 트윗을 올렸다. 당시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접경국이라는 이유로 미군의 군사 작전이나 종교적 분쟁, 민족 분쟁으로 인한 테러 사건이 종종 일어났다. 즉, 군사작전이나 테러 같은 것에 휘말리지 않고 좀 조용히 살고 싶어서 나름 안전보장이 확실하다고 여겨진 파키스탄 고위층이 사는 아보타바드로 이사한 것이었는데 사람 생각하는거 다 똑같다고 오사마 빈 라덴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4. 세 명의 파키스탄인

넵튠 스피어 작전에 도움을 준 세 명의 파키스탄인이 있었는데 관련 영화에서도 묘사되는 사진 기자로 위장해 빈 라덴의 안전 가옥을 감시한 2인과 의사 샤킬 아프리디다.

4.1. 샤킬 아프리디

위키백과에 따르면 1962년에 태어나 파키스탄의 카이버 의과대학을 졸업한 샤킬 아프리디는 카이버 부족의 의료 책임자로서 미국이 자금을 대는 여러 예방 접종 프로그램을 총괄했던 사람으로 예방 접종 프로그램을 통해 DNA 샘플을 얻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CIA 에 의해 포섭돼서 아보타바드 소아들에게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이유로 들어 DNA를 수집해 그중 오사마 빈 라덴의 손자들의 DNA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넵튠 스피어 작전 종료 후 며칠 뒤 인근 지역을 탈출하려던 중 국경 지역에서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는데 미국 측은 그의 체포 전 미국 망명을 제의했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하며 파키스탄은 그를 체포해 놓고 다음해 5월 23일에야 반군에 자금을 제공하거나 자신의 병원에서 반군들을 치료하는 등의 지원 혐의로 33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샤킬 아프리디가 그 반군 단체에 억류되어 풀려나기 위해 백만 달러의 몸값을 지불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미국은 비공식 채널을 통해 그에게 매긴 징역 1년당 100만 달러의 지원금을 깎겠다고 경고했으나 파키스탄은 이를 무시했고 결국 33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실제로 깎았다. 샤킬 아프리디는 항소 끝에 2013년 8월 29일 형이 파기되었으나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엔 과거 자신의 환자의 사망에 연루되었다는 살인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자세한 상황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43]

5. 죽음에 대한 논란과 음모론

넵튠 스피어 작전에 참가했던 전직 DEVGRU 대원 맷 비소넷은 마크 오언이라는 가명으로 이 작전에 대한 회고록 《No Easy Day》를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런데 이 책에 오사마 빈 라덴이 비무장 상태에서 사살당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논란이 일었다. 《No Easy Day》와 영화 《 제로 다크 서티》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은 비무장 상태에서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 총에 맞았고 이후 방에 들어온 DEVGRU 대원들이 확인사살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DEVGRU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군기 문란이 겹쳐졌다. 《No Easy Day》는 2013년 2월 《No Easy Day: 빈 라덴 암살작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도 발매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폴 크레이그 로버츠는 넵튠 스피어 작전에 대해 자작극이라고 표방하고 애초에 오사마 빈 라덴은 10년 전인 2001년 12월 신부전증으로 이미 죽은 몸이었다고 주장했다. 로버츠는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인 정치경제연구소에 2014년 11월 7일에 올린 '또다른 빈 라덴 거짓 이야기'라는 글에서 "빈 라덴이 SEAL 팀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은 선전 조작이며, 그 목적은 오바마에게 영웅의 월계관을 씌우고 오바마의 재선을 위한 민주당의 지명 논의를 포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로버츠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미 연방수사국(FBI)이 스스로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기사가 서방과 아랍 매체를 통해 많이 공개됐다, 아무도 신부전증으로 10년을 살 수 없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가옥에서 신장투석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사마가 사살된 뒤 바다에 수장됐다는 백악관의 발표를 수장식이 이뤄진 선박의 선원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백악관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발표가 최소 24시간 안에 두 차례 바뀌었다 등을 들었다. 링크

그러나 로버츠의 말을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 로버츠는 원래부터 매우 극단적인 음모론 신봉자로 별다른 근거 없이 이러한 주장들을 거의 매번 펼쳐 온 인물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로버츠가 게시하였던 칼럼에서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이 프랑스를 워싱턴의 손바닥에 올려두기 위한 미국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 프랑스 정보부의 합동 자작극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연히 대놓고 '미친 음모론'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거기다 애초에 로버츠의 주장들에는 논리적인 결함이 많아서 신빙성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샤를리 엡도 자작극'의 근거로 최근 프랑스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스라엘 모사드와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고도 주장햤는데 이스라엘과 미국이 프랑스가 얄밉다는 이유만으로 자국민 유대인들을 타깃으로 하는 팀킬 테러를 주도했다는 뜻이 되며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사람이 봐도 불쏘시개 수준의 음모론이다.

무슬림들은 이때까지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행정부의 미 군부들이 수십만명을 죽일 때도 참았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예민한 무슬림들은 고작 만화 하나하나에 반발했을 것이었다. 테러 단체들이 얻을 게 없다는 걸 음모론의 근거라고 주장했는데 로버츠의 논리로 따지면 " IS가 공개처형한 무아트 알 카사스베 요르단 공군 중위의 분살도 서방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미친 주장까지 나올 수 있다.[44] 거기다 수 만 명이 죽었다고는 해도 유럽이나 미국의 민간인을 상대로 보복 테러를 하지 않은 무슬림들과 만화 하나만으로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케이스에 '똑같은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로버츠는 10년 전부터 9.11 테러 음모론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돈 사람 중 하나이며, 오사마 빈 라덴이 자기가 아니라 미국 정부의 짓이라고 둘러댔던 것을 신빙성 있는 근거라고 인용해 논란을 부른 바 있다.[45]

그 밖에도 알카에다 간부 안와르 알 아우라키[46]가 사살당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미국이 죽은 날"이라고 하면서 아우라키가 알 카에다 간부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거의 " 히틀러 나치가 아니다" 수준의 헛소리. 아우라키는 매우 활발하게 매체 활동을 했으며 아우라키의 사후에 알카에다가 대놓고 복수를 다짐하기도 했고 아우라키의 측근이었다가 다국적군에게 돌아서 아우라키의 사살에 일조한 전 알카에다 대원이 자서전까지 내 아우라키와의 일화를 상세히 기술한 바 있다.

거기다 주장 자체만 놓고 봐도 무리수가 많은데 오사마는 2004년과 2006년경에만 여러 번 알 자지라 방송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한 바 있다. 만약 오사마 빈 라덴이 2001년에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이었다면 미국은 그렇다치고 알 카에다까지 짜고 치며 이미 죽은 사람을 두고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인 양 방송매체와 측근을 통해 수만명의 극단주의 지지자들 상대로 10여년간 연극을 펼쳐왔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아무리 봐도 비상식적인 생각이다.

어쨌거나 테러 사건만 터지면 일단은 미국 정부가 주도했고 잘 알려진 1등급 테러리스트조차도 전부 다 일반 선량한 사람일 뿐인데 미국이 몰아가는 것이라고 우기고 들어가는 게 로버츠의 일상이다. 거의 기-승-전-미국 정부의 음모 수준. 로버츠의 음모론 중 아우라키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10년 전에 이미 죽었다, 샤를리 엡도 테러는 자작극이다 세 가지는 특히 근본 자체를 뒤집는 무리수라서 음모론자들조차도 로버츠의 전작인(?) 9.11 테러 음모론보다도 신빙성이 없다고 무시한다. 계속되던 비난에 하원의원 출신 폴 라울이 팩트라고 기정사실화하는 게 아니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뿐이라고 대신 변호해 줬을 정도였다.

6. 미디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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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의 사후 《No Easy Day》, 직접 작전에 참여한 인원들의 증언, 실제 국방부에서 발표한 자료 등의 정보들을 토대로 영화 《 제로 다크 서티》와 《 코드네임 제로니모》로 각색되어 미디어화되었다.

둘의 차이는 제로 다크 서티는 CIA 요원 마야가 주인공이라 블랙 사이트 등 고문 관련 분량이 많고 코드네임 제로니모는 현지의 파키스탄 협력자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점이다.

2019년에 출시한 게임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의 열 번째 파트 「은신처(Wolf's Den)」의 모티브가 된다. 진행 시간은 짧지만 건물 내부 구성이나 당시에 작전이 현장에서 어떻게 흘러갔는지 등등을 최대한 비슷하게 묘사하였다. 게임 플레이를 통해 넵튠 스피어 작전이 당시에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얼리 액세스 단계인 《 그라운드 브랜치》에도 당시 건물과 주변 환경을 비슷하게 묘사한 「Compound」 맵이 수록되어 있다. 오퍼레이터 복장을 NWU 사막 디지털에 4안 야간 투시경[47], 무장은 H&K HK416에 홀로사이트와 PEQ15, 그리고 소음기를 장착하고 임무 시작 시점을 00:30으로 설정하여 다른 유저와 코옵 플레이하면 정말 그럴싸하게 나온다.


[1] Enemy Killed In Action. '이, 케이, 아이, 에이'라고 읽는다. [2] '제로니모'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혹은 포획'에 대한 작전 코드였다. 빈 라덴이라는 '인물'에게 붙여진 코드명은 '잭팟(Jackpot)'. 한편 제로니모의 후손들은 선조의 이름을 저딴 테러리스트한테 쓰냐며 분노했다고 한다. [3] 이후 탈레반은 소아마비 백신 접종팀을 미국의 스파이로 간주해 사살할 정도로 강경한 백신 반대 운동을 벌였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전세계에서 거의 박멸된 소아마비가 아직도 빈번하게 발병하고 있다. [4] 고가의 주변 가옥들 중에서도 특히 가치가 10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 빈 라덴의 최고급 저택은 주변 가옥들보다 8배 정도 컸으며 4~5m 높이의 방벽과 보안문 2개, 그리고 자체적인 쓰레기 소각장까지 있었다고 한다. #1 #2 (오사마 빈 라덴의 침실) #3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 (구글지도) [5] 여기에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녹화본까지 섞어서 내보내 첩보기관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미 죽은 건 아닌지 의심토록 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6] 서울에서 평택까지의 거리가 50km 쯤 된다. [7] 당장 B-2 폭격기 2대를 동원해서 2,000파운드 폭탄 수십 발을 투하한다는 계획은 역시 주변에 은퇴한 파키스탄군 장성이나 정치인, 기업가 등 엘리트들이 사는 호화주택이 많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었고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거기에 미국은 빈 라덴이 하도 줄행랑을 잘 친 탓에 그의 시신을 확실하게 확보하기를 원했으며 남의 나라 땅에서 군사 행동을 벌였다고 항의할 게 뻔한 파키스탄의 입을 닥치게 하려면 결국 빈 라덴의 시체 말고는 답이 없었다. [8] DEVGRU가 투입된 이유는 당시 JSOC 사령관인 윌리엄 H. 맥레이븐이 해군이었기 때문이다. 사령관이 육군이었다면 델타 포스가 투입됐을것이다. [9] 전직 DEVGRU 대원인 맷 비소넷의 수기 'No Easy Day'에 따르면 작전에 참가한 인원은 네이비 씰 대원 22명, 해군 EOD 대원 1명, CIA 통역관 1명, 그리고 카이로라는 전투돌격견(CAD : Combat Assult Dog) 군견 1마리이며 이들은 전쟁 상태가 아닌 파키스탄에 미군이 군사 작전을 할 명분이 없다시피했으므로 임시로 CIA 소속으로 이전되었다. [10] 맷 비소넷(필명 마크 오언)의 수기인 No Easy Day에 따른 것으로, 투입된 헬리콥터의 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11] 첫날 국방부 발표에서는 빈 라덴이 무기를 가지고 저항했다고 했으나 백악관에서 이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하였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알려진 것과 달리 사살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이 무장하지 않았다고 5월 3일 밝혔다. 《No Easy Day》에도 빈 라덴은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탄창에 총알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12] 역시 첫날 발표에서는 이 여성이 오사마의 아내라고 발표했으나 백악관 측에서는 이것 역시도 부인했고 여성을 인간 방패로 썼는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링크 이에 대해 영국 텔레그래프는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에게 '비겁한 자'라는 이미지를 씌우기 위해서 조작했다고 주장했으며 사망한 여성은 오사마의 아내가 아닌 다른 남성의 아내라고 주장했다. 링크 《No Easy Day》와 《 제로 다크 서티》의 묘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오사마의 부하 아브라의 부인이었고 사살되는 남편을 도우려다 함께 총에 맞았으며, 선두의 포인트맨이 머리를 먼저 쏘고 심장을 쏴 확인사살했다고 한다. [13] 타임지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될 때 같이 있었던 여성은 오사마의 세 번째 아내 아말이었다고 한다. 오사마의 방에는 무기가 있었으나 무장은 하지 않았으며 아내를 인간 방패로 쓴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인 빈 라덴을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DEVGRU 대원들은 아말이 자살폭탄으로 무장했을 것을 염려해 아말을 밀쳐내고 장딴지에 총을 쐈다고 한다. [14] 이슬람에서는 교리상 이유로 화장을 금지하고 있다. [15]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도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7명의 일본 전범들도 시신의 일부분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 버려졌다. [16] DEVGRU 대원이 쏜 총탄 2발에 후두부를 맞아 머리가 터져서 사망했다. [17] NO EASY DAY를 쓴 맷 비소넷과 로버트 오닐. [18] 로버트 오닐로 밝혀졌다. [19] 카누를 모래밭 위에서 끌고 가면 V자 모양으로 모래가 파지는 데서 착안한 단어로, 총알을 쏴서 머리를 '예술적으로' V자 모양으로 쪼개는 악취미적 문화다. 두부 사격 금지 명령이 특히 강조된 것이 이런 카누잉이 DEVGRU 내에서 만연했기 때문이다. [20] 이 와중에 스펠링을 OBAMA BIN LADEN이라고 적어 띄우는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21] 적어도 히틀러는 미국 본토를 공격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히틀러도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당연히 최악의 악마로 불리며 평판이 나쁘다. 미국 본토 뉴욕의 심장부를 건드린 오사마 빈 라덴이 더 증오스러운 것이지, 히틀러가 더 낫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22] 사진 정중앙에 모자이크 처리된 지도가 한 장 존재하는데, 보정 감지 소프트웨어로 분석한 결과 모자이크 아래에 깔린 색상 자체는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오바마의 왼쪽 얼굴, 힐러리 클린턴, 마셜 웹의 정복 등이 더 눈에 띄도록 컬러그레이딩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23] 후일 46대 미국 대통령. [24] 후일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이 되었다. [25]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속기관이다. [26] 정보기관 요원이라서 이 사진 말고는 공개된 정보가 단 하나도 없다. 사진 속에서 40대 이하로 보이는 유일한 인물. [27] CIA에서 분석가로 일했고 2013년부터 CIA 국장이다. [28] 예비역 중장 출신이다. 미 해병대에서 잠깐 사병생활을 하다가 미 공군 ROTC에 들어가 중장까지 진급한 뒤 1995년에 퇴임했다. [29] 팔짱을 낀 양팔과 하얀색 넥타이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보국의 요청에 따라 AP가 미들네임만 공개했다. 빈 라덴 수색 책임자가 되기 이전에는 러시아/발칸 반도 전문가로서, 막 권좌에 올랐던 당시의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보고서를 상당히 정확하게 보고한 바도 있다고 한다. 그의 상사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빈 라덴 수색작전이 시작된 후에는 상관인 자신마저도 존이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고. NBC 기사 [30]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일했고 2013년부터 백악관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31] CIA 국장 등을 지냈다. [#1] 오드리 토마슨의 머리 주변을 잘 보면 뒤에 어깨만 나와있는 인물이 또 하나 있다. 마이크 뮬렌 참모총장의 셔츠와 색깔, 어깨 박음질 등이 매우 비슷한 옷을 입고 있기에 군인으로 추측되나, 밝혀진 정보는 없다. [#2] 사진 맨 앞쪽의 정수리만 나온 인물. 2023년에 추가로 공개된 사진에서도 뒷모습만 나왔으나, 육군 정복을 입었으며 최소한 상사(계급) 이상인 것은 식별되었다. [34] 당시 합동특수전사령부 사령관 [35] 군사작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걸 보면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기 일쑤지만 상기한 대로 DEVGRU 내에서는 대원들이 전부 다 헬리콥터 추락을 한 번 이상 경험해 봤을 만큼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맥레이븐도 아무 일 아니라는듯 무미건조하게 답변한 것이다. [36] DEVGRU 대원들이 빈 라덴의 딸을 비롯한 가족과 측근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헬리콥터 1기가 와류고리 현상(VRS)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나머지 3기에 이들을 태우기에는 정원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37]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무리 미국이라도 대놓고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범할 순 없었기 때문에 부대원들을 임시로 CIA 소속으로 변경하였고 국제적인 범죄자를 '체포'하는 작전으로 꾸몄다. 그렇지만 파견된 요원들은 전원 DEVGRU 소속 특수부대원들을 임시 보직변경한 것이므로 말 그대로 '명목상'에 지나지 않았다. [38] 미국에게 얻어맞기만 하고 끝나면 차라리 다행인 게 오랜 앙숙인 인도가 눈에 불을 켜고 파키스탄을 노려보는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이 인도를 이용하여 파키스탄을 차도살인시켜 버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39] 그러나 ISIL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관심이 ISIL에 집중되고 알카에다는 자연스레 묻혀버렸다. 웃지 못할 상황은 알카에다도 ISIL을 적대시했다는 점이다. [40] UH-60 블랙 호크를 특수작전용으로 개조한 기종인데 파키스탄이 공개한 헬리콥터 잔해가 기존 페이브 호크와 비교해 매우 독특해서 평범한 블랙 호크 개조 수준이 아닌 아예 새로 나온 기종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확히 어떤 기체가 사용되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미국에서도 시제기 외에는 존재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41] 일명 보르텍스 링(Voltex Ring) 현상. 특정 상황에서 공기가 헬리콥터 밑에서 돌아 조종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V-22가 뻔질나게 추락하는 원인이었다. [42] 영화 《 제로 다크 서티》 후반부에서는 작전 투입을 위해 헬리콥터 타고 가는 와중에 기체가 흔들리자 팀장인 패트릭(조엘 에저튼 분)이 "헬리콥터 추락 경험 있는 사람?"이라고 동료들에게 묻자 조종사를 포함한 모든 대원이 손을 들고 이에 질문했던 패트릭이 "전부 베테랑들이군"이라 말하는 씬으로 재현되었으며 영화에서도 무사히(?) 추락해서 후퇴할 때 폭파시킨다. [43] 아마도 2021년 이전에 석방됐을 것이다. [44] 같은 수니파 무슬림 청년을 참혹하게 살해하여 이슬람 중동국가들이 집단으로 등을 돌리게 만든 자충수로 IS가 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만 많은 셈이니. [45] 정작 오사마 빈 라덴은 2004년 알자지라 방송에서 9.11 테러를 성전이라고 지칭하며 자신들의 소행이 맞다고 인정했다. [46] 예멘을 주 무대로 활동했으며 알카에다의 리더격으로 간주되었던 거물로, 훗날의 샤를리 엡도 테러리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줬으며 그들과 접촉했다는 설도 있었다. [47] 1033 패치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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