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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22:08:10

델타 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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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DC143C> 제1특전단 작전분견대 - 델타
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파일:1sfod-d_emblem 0.png
[1]
창설 1977년 11월 19일
국가
[[미국|]][[틀:국기|]][[틀:국기|]]
소속 미합중국 육군
상급부대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미합중국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미합중국 육군특수작전사령부
역할 특수작전
별칭 The Unit / D-Boys / Task Force Green
본부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1. 개요2. 특징3. 부대 편성4. 창설 과정
4.1. 이단아 베크위스4.2. 프로젝트 델타: Detachment B-52 (B-52 분견대)4.3. 델타 포스의 탄생
5. 작전사례
5.1. 1980년대의 특수작전
5.1.1. 쓰라린 첫 경험: 독수리 발톱 작전5.1.2. 그레나다 침공 작전5.1.3. 아킬레 라우로 호 구출작전5.1.4. 파나마 침공 작전
5.1.4.1. 마누엘 노리에가 체포 작전5.1.4.2. 커트 뮤즈 구출작전
5.2. 1990년대의 특수작전
5.2.1. 걸프전과 스커드 사냥5.2.2. 소말리아에서의 아이디드 체포작전5.2.3. 1990년대 말 ~ 2000년의 아프간 작전
5.3. 2000년대 이후의 특수작전
6. 출신 인물7. 미디어에서
7.1. 게임7.2. 소설7.3. 만화7.4. 영화 및 드라마
8. 관련 사진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Delta Force, 1st SFOD-D (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제1특전단 작전분견대-델타), CAG (Combat Application Group, 전투적용단, 과거 명칭), ACE (Army Compartmented Elements, 육군구획제대, 현재 추측 명칭).[2][3] 델타 포스의 공식적인 부대 이름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불리는 명칭은 철저히 군의 최고 기밀사항이다. 로고가 존재하지 않는 델타 요원들은 대외적으로 미합중국 육군특수작전사령부 (USARSOC) 마크를 정복에 붙이고 다니며 델타 포스라는 이름 또한 대외적으로 자신들을 칭할 때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으로 칭하는 것 뿐이다.[4]

미합중국 육군의 최정예 특수부대이며,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분류 체계에서 미 해군의 미합중국 해군특수전개발단(DEVGRU)과 미 공군의 제24특수전술대대와 함께 1등급(Tier 1)으로 분류되는 미합중국 최고의 특수부대[5][6]이자, 특수전 최고봉으로 불리는 5개의 눈 소속 국가 특수부대 중에서도 전 세계의 특수부대 중 가장 뛰어난 부대라고 평가된다.[7] 미군 내, 그리고 여러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해서 DEVGRU 제24특수전술대대, ISA보다 더 윗급인 특수부대로 평가를 받으며[8] 합동특수작전사령부의 지휘체계에 따라 작전을 수행해 미국 육군 특전단이나, 네이비 씰, 제75레인저연대가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거나 비밀스러운 민감한 임무들에 투입된다.

이런 임무 중에는 적국에 대한 군사/정치 공작이나 암살, 흑색선전, 적지에 민간인으로 위장해 들어가 첩보작전 수행, 대테러 작전 및 테러리스트에 대한 방해 및 예방공작,[9] 국내 비밀임무 등이 있으며, 이들은 군사 분야를 떠나 미합중국이 관여하는 모든 사회분야에 있어 파격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2. 특징

수행하는 임무들이 워낙 중요한 탓에 심지어는 부대명칭과 존재 자체도 극비사항이었지만,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구출 작전 당시 해군 헬리콥터들의 삽질로 인해 작전이 대참사로 실패하게 되면서 그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한 기자가 국방부 관계자에게 '델타 포스는 어떤 부대입니까?' 라는 질문에 답변하길 ' 델타 항공사 이름입니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일단 알려져 있는 정식명칭은 '제1특전단 델타 작전 분견대(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로 이 때문에 흔히 '델타 포스'라고 불린다. 지금 현재도 ISA, CIA SAC, DIA DCS, NSA 등과 함께 미국 내에서 극도로 보안 유지에 신경 쓰는 곳이다.

그린 베레에는 크게 세 가지의 분견대가 있다. A (알파) 분견대는 실제로 작전을 나가는 특전 팀이고[10], B (브라보) 분견대는 A분견대를 지원하는 특전단 지역대 본부이며, C (찰리) 분견대는 A와 B분견대를 지원하는 특전단 대대 본부이다.

원칙적으로는 이렇게 세 분견대만 있는데, 아주 가끔 'D (델타) 분견대'를 모집한다. 바로 이 D분견대가 델타 포스 대원들을 뽑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델타 포스'는 사실 정식명칭이 아니며 그냥 별칭일 뿐이다. 정식명칭은 CAG(Combat Application Group, 전투적용단)였지만 2010년 이후에는 ACE(Army Compartmented Elements, 육군구획제대)로 바뀌었다고 추측하고 있다.[11]

대원 선발을 특수부대나 기타 정예부대 대원들 중에서 다시 걸러내는 작업을 거쳐서 하는지라 막 선발과정을 마치고 배치된 신참 델타 대원도 이미 이전부대에서 각종 실전 전투파병과 각종 특수훈련을 받은 베테랑 군인들인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미 특수부대인만큼 계급 불문하고 군 ASVAB 시험에서 장교급 인원과 동등한 점수대 그 이상과 IQ 테스트를 통한 특정 수준 이상의 IQ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전역자인 데일 콤스탁의 말에 의하면 작전대원들 대부분이 그린 베레(육군 특전단) 출신들이며 이외에도 제75레인저연대에서 바로 오는 경우도 있고, 다른 육군 정규사단(ex 제82공수사단)에서 바로 오는 이들도 소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육군에서만 모집하는 것은 아니고 4년 이상 군에서 복무한 해군, 공군, 해병대에서도 모집한다. 현재는 미 해병대 포스리컨 출신과 해군 DEVGRU, 네이비 씰 출신자도 확인되었다.[12]

델타 포스는 기본적으로 육군 소속이지만,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USSOCOM) 산하의 육군 특수작전 사령부 (USASOC) 소속( 그린 베레)이 아니라 SOCOM의 직할부대인 합동특수작전사령부 (JSOC) 의 지휘를 받으며 티어 1으로 구분되는 특수임무부대(SMU)이다. 이것은 날고 기는 미군 특수부대 중에서도 델타 포스가 최고의 부대 중 하나[13]라는 것을 나타내주는데, 왜냐하면 USSOCOM 산하에는 각 군의 특수전사령부가 따로 있어서 ( 해안경비대는 없음) 예를 들자면 해군의 네이비 씰은 해군특수전사령부 (NAVSPECWARCOM)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령부에 소속된 부대 중 하나라고는 해도 델타 포스 자체는 거의 독립된 사령부 수준의 예산과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파일:Delta Authority.jpg
...이러한 높은 작전 수요로 인해, 델타는 위험/보상 분석을 기반으로 해당 작전 및 임무 이행을 수락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체적인 정보와 분석 셀을 갖고있다.

델타에게 임무를 강요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높은 고위층 인물들 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그린 베레가 미국의 우방국 특수부대를 양성하는 임무를 맡아서 특수부대의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데 이 델타 포스가 그린베레에서 최정예만을 뽑아서 창설된 부대인 만큼 델타 포스도 최우방국의 0티어 대테러부대 창설 및 훈련교류에 가장 적극적인 부대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실전사례는 UDT/SEAL보다 적지만 국군내부에서 최정예라 취급되는 제707특수임무단도 그린 베레를 모티브로 창설했지만 정작 교류훈련은 델타 포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이 외에도 이웃나라 일본인 경우 동북아 3국 중 가장 늦게 군대에 속한 대테러부대 특수작전군이 창설되었는데 이때도 미국의 델타 포스가 1공정단서 선발된 최정예 병력들을 직접 훈련시켰고 현재도 델타 포스 주도 하에 교육 및 교류훈련이 이어지고 있다.
파일:external/lh5.googleusercontent.com/Scan-10.jpg
위장, 공작 작전을 위한 복장 중 한 가지
가운데 부대 마크가 보이는데 상위 문단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정식 부대 마크가 아니라고 서술되어 있고 상위 부대인 USASOC 마크를 달면 달았지 각개전투시에는 달지 않는다. 아예 영내에서 비정규 특수전 (통칭 흑색 작전)을 위해 사복을 입는 부대인데 부대 마크를 바라는 것이 바보. 이 마크는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노바로직 게임 제작진이 임의로 만든 마크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에, 대중적으로 알려도 되거나 알려야 하는 사항이 있을 때 부대 마크로 삼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원들의 신분을 철저하게 감추기 위해 군의 보수적인 높으신 분들이 보면 "저 양아치 같은 놈들은 뭐야?" 라고 할 만한 짓은 다 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거의 허용된다. 머리를 기르거나 염색하는 것은 기본인데 사실 이건 필요하면 민간인으로 위장하려는 작전상의 이유도 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초반에 델타 포스 소속 노만 '후트' 깁슨 중사(에릭 바나 紛)가 신문기자로 위장해 모가디슈 한복판에서 사령부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위에서 언급된 The Unit에서도 대원들이 민간인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수염이 덥수룩한 경우도 있다. 미군은 콧수염 외에는 얼굴의 어떤 모발도 기를 수 없게 되어 있다.[14][15]

왜냐하면 이들은 단순히 군사적인 부분의 업무 뿐만 아니라, 각종 해외 정치/첩보 공작 및 선전과 군사 외교, 관련 국내 비밀 임무 등 사회 전반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파격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미국 대통령이 해외 위험지역을 순방할 때에도 미 특수부대 오퍼레이터들이 항시 동원된다. 단순 경호 임무의 경우에는 시크릿 서비스도 존재하는데, 굳이 이들까지 함께 따라와서, 그 것도 단순경호 지원임무 치고는 언론에 따로 노출되지 않게 와서 무얼 할지는 말을 안 해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분쟁 진행지역의 경우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특히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당시 미 대통령 순방이 대표적인 예.[16]

거기다 실제 작전을 나갈 때 말고 그냥 근무시간에도 대놓고 사복을 입고 다닌다. 사실 미 특수부대 인원들, 특히 티어1 부대들은 사복을 입는 경우가 굉장히 많지만, 유독 델타 포스는 더욱 심하다. 그리고 위장작전 이외의 작전에 나갈 때도 사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1980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구출 작전 당시 델타 포스 대원들의 복장은 검게 물들인 야전상의에 리바이스 청바지였다. 그 외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드라마 The Unit을 참고할 것. 어쩔 수 없이 군복을 입을 때도 신분을 감추기 위해 군복에 붙이는 패치를 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행동도 군인처럼 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양아치 같은, 상당히 말 안 듣고 똘끼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고 한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면 후트 중사 제75레인저연대 소속 마이크 스틸 대위에게 기지 안에서 배식 도중[17] '아무리 델타라도 개인화기 조정간 안전으로 해놔야 하지 않나'라고 지적을 당하는데, 후트는 그를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정면으로 응시하며 껄렁한 말투로 " 제 손가락이 안전장치입니다"라고 대꾸하고 그냥 가버린다. 그리고 그 직후 대위에게 와서 후트를 커버쳐주는[18] 다른 대원도 대위가 한 말에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경례는 커녕 정면으로 눈을 노려보다가 마찬가지로 슥 가버린다.

이게 영화적 연출이긴 하지만[19] 괜히 전현역 미군들에게 고증까지 받은 제작진들이 이런 장면을 넣은 게 아니며, 실제로도 높으신 분들마저 쉽게 터치하지 못 하는 이들의 높은 위상과 자율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평소에 이런 짓을 하고 다녀도[20] 실전에 투입되면 명색이 '미 육군 최고의 특수부대원'들인 만큼 보여주는 실력은 대단하다고 한다. 수많은 전쟁터를 누빈 군사전문가이자 종군기자인 태상호는 이를 " 눈이 파래진다"라고 표현할정도.

3. 부대 편성

파일:a65464wn.jpg 파일:e804af5ef975488f8.jpg
비행기, 열차 인질구출 훈련 중인 델타 대원들
파일:m543age-2.jpg 파일:1732df13295db4e4.jpg
선박(해상) 인질구출 훈련 중인 델타 대원들

대외적으로 알려진 체계이나 델타 포스의 보안상 이는 수시로 바뀌며, 위와 같은 대략적인 틀 외의 세세한 인원수나 작전팀 내 체계는 모두 알려지지도 않았고 또한 기밀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세부사항을 서술하기 이전에, 티어1 특수부대는 장교[22], 최고참 부사관=작전요원의 지원 및 지휘, 작전요원(부사관[23])=현장 지휘권 전임, 전투, 첩보를 포함한 각종 전문 특기 임무를 수행한다.

델타 포스가 SAS와 흡사한 편제임을 감안해서 유추해볼 수 있는데, SAS는 영국 국방부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4인 1조의 팀 단위로써 4개 팀인 16명의 오퍼레이터가 1개의 트룹을 이루고, 4개의 트룹이 1개 공격조 스쿼드론을 이루는데, 이는 대략 64명쯤 된다. 그리고 공격조 스쿼드론이 총 4개(A, B, C, D)가 존재하니 SAS의 오퍼레이터 대원들의 규모는 16×4×4=256 대략 260명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델타의 경우 4개 공격조 스쿼드론마다 16명으로 구성된 트룹이 3개씩 존재하니 16×3×4=192 대략 190명 정도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거기다 1980년대 까지만해도 델타 포스에는 공격조 스쿼드론이 A, B 2개 밖에 존재하지 않았었고, 1990년에 세번째인 C 스쿼드론(공격조)이 추가되었으며, 이후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에 가서야 네번째 D 스쿼드론(공격조)이 추가되었다. 그만큼 델타 포스가 미 특수부대 중에서도 소수 정예들만 모여있다는 이야기다.

출신자의 증언에 따르면 각 공격조 스쿼드론은 3~5개의 트룹으로 나뉘며 각 트룹은 다시 4~5개의 팀으로 나뉜다. 그리고 1개 팀에 5~7명의 오퍼레이터가 배치되어 1개의 공격조 스쿼드론에 약 100여명이 배치된다고 하며 작전시 지원 스쿼드론의 인원들을 파견해 고전적인 보병대대에 가깝게 편성된다고 한다. #

각 스쿼드론은 보병부대로 치자면 중대와 소대 중간 정도 규모이며 중령(O-5)이 지휘하고, 각 트룹은 대략 12~16명 정도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소령(O-4)이 지휘한다. 또한 소령, 중령을 조언하는 주임원사 이상급의 고급 부사관(E-9)도 그들과 함께 지휘, 근무한다. 직접 임무를 수행하는 각 팀은 트룹 1개 당 4~5개 팀으로 나뉘어지며, " 작전대원" 혹은 "특수요원"이라고 불리는 부사관중에서 최고참 선임 부사관인 원사~ 상사(E-9 ~ E-8) 정도의 인원이 지휘하고 종종 선임 중사(E-7) 인원이 팀장을 맡는다. 준사관 인원들은 보통 1호 준위(WO-1) ~ 2호 준위장(CWO-2)까지는 팀에서, 그 이후 3호 준위장(CWO-3)부터는 사령부에서 참모 장교(Staff Officer) 역할을 맡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현장 지휘관들이 임무의 속행 및 연기, 세부 수행사항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으며, 이는 사령부의 상급 지휘관도 간섭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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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벨리즈에서 영국 SAS와 함께 정글전 훈련 중인 델타 포스

위관급 장교도 잠시나마 팀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일반 특수부대[24]와 달리 이 곳은 하는 일이 차원을 달리하므로 보통 전문성과 경력까지 모두 부족한 위관급 장교는 팀장을 맡지 못한다. 애초에 이 곳 티어 1 부대에선 위관급을 떠나서 영관급을 포함한 장교들이 100이면 거의 90 이상은 현장 팀장은 커녕 각 전문 특기를 지닌 현장 대원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작전팀의 오퍼레이터들도 준사관을 제외한 장교 인원들에 대해 불신까진 아니더라도 못 미덥다는 인식이 크다.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만큼 이 곳은 풋내기도 최고급 인력 대우를 받는 미국 내 특수부대 중에서도 최고의 대원들이 팀을 이루며, 이들은 대부분 시크릿 서비스 CIA FBI를 포함한 정부기관, 국내외 유명 민간군사기업에서 눈에 불을 켜고 스카우트 해가는 초 엘리트급 인원인데 이러한 하사[25]~원사 계급의 요원들이 델타 포스의 1개 작전팀을 이룬다. 그리고 그 만한 이들을 이끌 수 있는 전문성과 노련미 있는 상급 부사관이 팀장을 맡아 지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

델타 포스와 같은 JSOC내의 티어 1부대에서 장교들의 역할은 스쿼드론 사령관의 경우에는 사령부에서 이들을 지원, 트룹의 지휘관인 소령은 사령부 때로는 현장에서 거시적인 상황을 종합 지휘하며 둘 다 상부의 지시를 받아 원로급 부사관들의 조언을 토대로 작계를 짜는 것에 대부분의 임무가 국한된다. 괜히 사령부의 영관급 장교들이 현장 지휘관의 지휘권에 간섭을 할 수 없도록 체계가 짜여진 것이 아니다.

물론 장교들도 모두 작전 대원으로서의 훈련과 선발과정을 거친 후 부대에 들어오고, 실제로 대위~소령 계급 정도의 인원은 실력에 따라서 작전팀에도 자주 뛰는 만큼 상황실에만 박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무리 지휘관이라 해도 이들은 엄연히 델타 포스다. 다만 평균적으로는 부사관들이 너무 넘사벽으로 전문성이 쌓인 괴물인 것뿐이다. 굳이 장교급 신분으로 부사관인 작전대원들과 동등하게 합을 맞출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면 애초에 오퍼레이터 출신인 준사관(Warrant Officer)들정도.

4. 창설 과정

창설 과정 문단 작성과정에서 김민수 씨의 저서 '델타 포스'(전 2권)와 그림자 전사 특수부대( 양욱 저)에서 많은 자료를 인용했음을 일러둔다.

그린 베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 육군 특전단은 여러가지 특수작전을 수행 가능한 정예부대이지만, 이들의 주 임무이자 장기 중 하나는 게릴라전이다. 적 후방에 침투해서, 현지의 불평불만 세력을 규합해 게릴라를 조직해 후방에서 적의 뒷통수를 강타하며, 효율적인 민사심리전을 통해 현지인들의 지지를 얻어내어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그린 베레의 가장 큰 임무이다.[26] 베트남의 정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에 이르기까지 그린 베레는 이런 게릴라전을 수행해왔으며, 그 성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다만 그린 베레가 지나치게 게릴라전 수행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임무들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면이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고, 후일 델타 포스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는 전설적인 그린 베레 특수전 장교인 찰스 앨빈 베크위스(Charles Alvin Beckwith) 역시 그 중 하나였다.

4.1. 이단아 베크위스

파일:Charlwith535643.jpg

Charles Alvin "Charlie" Beckwith (1929. 1. 22 - 1993. 6. 23)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출신으로 조지아 대학교 ROTC를 거쳐 1952년에 미 육군 소위로 임관한 찰스 베크위스 6.25 전쟁으로 한국에 주둔중이던 미 육군 제7보병사단 17보병연대의 보병 소대장으로 참전한다. 이후 1955년 부터는 제82공수사단의 504공수보병연대에서 중대장을 역임, 1958년에 레인저 스쿨을 졸업하자마자 그린 베레(육군 특전단)에 지원하여 제7특전단에 배치된다. 1960년에 특전단 대위였던 베크위스는 당시 내전이 한창이었던 라오스에 2년간 파병된다.

이후 1962년부터 1963년까지 1년간 영국 특수부대인 SAS에 교환장교로 파견되었다. 이 시절 베크위스는 SAS와 함께 '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분쟁'에 참여하여 게릴라전을 수행한다. 그러다 말레이시아의 정글 속에서 전염병인 ' 렙토스피라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하나, 의사들의 예상을 깨고 몇달 만에 병원에서 다시 회복한다.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국의 제7특전단에 배치된 베크위스는 꾸준히 상부에 영국의 SAS와도 같은 '정예 직접타격 (Direct Action) 부대'의 창설을 상부에 건의하지만,[27] 상부에서는 베크위스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의 그린 베레(특전단)와 그 임무가 중첩되는 부대를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SAS보다 못난 게 어디가 있어서 영국식 특수부대를 만들어야 하는가.' 같은 차가운 반응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제7특전단의 작전장교였던 베크위스는 그린베레의 훈련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꾸는데 돌입한다. 베크위스는 '유능한 비정규전(Unconventional) 특수부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는 먼저 훌륭한 정규전(Conventional) 보병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린 베레(육군 특전단)에 오기전에 소총수 보병 소대장과 중대장을 경험하고 왔는데, 내가 특전단에 와보니 정규전 부대에서 복무한 적이 없는 장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28] 라고 말하며, 당시 제7특전단의 훈련 과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오늘날 그린 베레의 선발과정인 Q코스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4.2. 프로젝트 델타: Detachment B-52 (B-52 분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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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보이는 좌측의 사람이 베크위스 소령이다.

1965년,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제5특전단에 도착한 베크위스는 '프로젝트 델타'라는 이름의 특수 정찰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게 된다. 이들은 제5특전단의 직속 부대로서, 사/여단급 작전의 수행에 최소 1주일 이상 앞서서 작전 지역내의 선행 침투 및 정찰, 포격과 폭격 후 BDA, 남베트남군 특수부대와의 연합작전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후일 베트남에서 활약하게 되는 수많은 LRRP(장거리정찰수색대)[29]의 기틀을 마련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게 된다. 이런 대성공에 베크위스의 활약이 큰 영향을 주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프로젝트 델타의 주둔지에 처음 도착한 베크위스는 대원들의 군기불량을 문제로 첫 만남에서부터 30명의 전 대원중 7명을 제외한 전원을 프로젝트에서 퇴출시킨다.[30] 이후 베크위스는 과거 SAS 파견경험을 살린 선발과정을 통해 40명의 대원들을 확보한다. 베크위스는 자신이 선발한 대원들과 함께 여러 임무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과거 SAS에서의 경험을 실험해보며 자신의 '미국판 SAS' 창설 계획의 설계도를 그려나간다.[31]

프로젝트 델타에서 '돌격하는 찰리' (Charging Charlie)라는 별명을 얻은 베크위스는 안타깝게도 1966년에 임무수행 도중 부상을 입고[32] 후송되어 치료를 받는다. 부상에서 회복된 후 미국으로 귀국해서 레인저 스쿨을 총감독하는 간부로 재직한다.

1968년에 다시 베트남으로 간 베크위스는 SAS 개념의 새로운 특수부대를 만들 것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에게 직접 건의하지만 거절당한다. 이후 베크위스는 육군 제101공수사단의 대대장이 되어 다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고 여기서 네바다 이글 작전, 서머셋 플레인 작전, 밍고 작전 등등 많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73~74년엔 태국에 본부가 있는 JCRC (Joint Casualty Resolution Center)에서 전사자 유해 조사 임무를 맡기도 했다. 1975년부터 대령 계급의 배크위스는 포트브랙의 육군 특수전학교에서 근무했다.

4.3. 델타 포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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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델타 포스의 훈련사진. 티타늄 방탄모, 발터 MPK 기관단총 등등 당시의 최고의 장비들로 무장했다.
베크위스가 델타 포스를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은 1975년에 포트 브랙의 육군 특수전학교[33]에서 근무 도중, 특수전학교의 지휘관인 로버트 킹스턴 소장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였다. 베크위스와 킹스턴 장군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던데다, 킹스턴 역시 영국군 공수부대에서의 교환근무 경험이 있던지라 베크위스의 '미국판 SAS' 창설계획에 대한 지지자였다. 킹스턴은 자신과 친한 육군의 작전/계획 부참모총장 (The Army's Deputy Chief Of Staff For Operations And Plans)인 에드워드 마이어 장군을 통해 국방부에 베크위스의 SAS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면서 베크위스의 계획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이후 1976년 8월, 향후 델타 포스의 창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사건이 벌어진다. 킹스턴 장군과 베크위스 대령이 보병학교에서 윌리엄 듀푸이 장군[34]에게 SAS의 우수함과 미국판 SAS의 필요성에 대해 소개하게 되었는데, 듀푸이 장군 역시 육군 특전단이 지나치게 게릴라전에 쏠려있고, SAS와 같은 직접타격 작전을 상대적으로 외면한다고 생각하던지라 베크위스의 계획에 찬성하여 후일 델타 포스라 불리게 될 '미국판 SAS'의 창설에 큰 도움을 주며 그 계획을 펜타곤까지 이끌어준다.

특히 듀푸이 장군은 이 과정에서 베크위스에게 중요한 조언을 하나 해주는데, 이는 새로이 창설될 특수부대가 그때까지 미군의 그 어느 특수부대도 수행하지 않는 새로운 능력, 즉 "대테러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1977년 육군 참모총장을 앞에 모셔둔 프레젠테이션에서 SAS스러운 새로운 특수부대 창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베크위스에게 드디어 새로운 특수부대의 조직과 장비 편제, 그리고 필요 예산안을 준비하라는 요구가 들어온다. 그러나 하필 이때 베크위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특수전학교 교육단장 킹스턴 장군이 제1특전단의 K분견대[35]로 전출되고, 이후 베크위스의 프로젝트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맥멀 장군이 새로운 교육단장으로 부임해온다. 맥멀 장군은 새로운 특수부대의 등장을 달갑잖게 여기는 기존의 특수부대 지휘관들의 말빨에 넘어가 베크위스와 기존 특수부대원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새로운 특수부대가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린 베레나 레인저대대[36]의 견제를 받는데다가, 육군 참모총장의 공식 부대창설 재가는 떨어지지 않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어 베크위스의 염통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었다. 특히 베크위스의 속을 박박 긁었던 것이 바로 블루 라이트라고 불리는 제5특전단 예하의 임시 대테러부대였는데,[37] 원래 창설 목적은 델타 포스가 대테러전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의 땜빵이었지만 맥멀 장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블루 라이트를 델타 포스를 대신하는 정식 대테러부대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이다.[38] 결국 블루 라이트는 델타 포스와의 경쟁에서는 밀렸지만, 그린 베레로 원복한 뒤에는 베를린 A 분견대[39]와 함께 각 특전단 직할 대테러 특임대인 "그린 베레 CIF"팀으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지부진한 상황은 엉뚱하게도 서독에서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는데...

1977년 10월, GSG-9 서독의 테러리스트 단체인 바더 마인호프 (적군파)에 의해 납치되어 소말리아에 착륙한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대한 인질구출작전을 성공했다는 소식이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다. 이 소식을 통해 군 상층부에서 대테러전 능력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면서 베크위스의 델타 포스 창설계획은 다시금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결국 1977년 11월 19일, 델타 포스의 본격적인 '가동'에 대해 군 수뇌부의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진다. 베크위스의 15년간의 노력 끝에, '미국판 SAS'이자, 후일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로 명성을 드높이게 될 델타 포스가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40]

5. 작전사례

5.1. 1980년대의 특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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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의 델타 포스 대원들. 흔치 않게 전원이 시원하게 얼굴을 공개한 모습이다. 묘하게 척 노리스 주연의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사용하는 총은 더 좋다!

아래 항목들에 소개된 몇 가지 작전 이외에도 수많은 작전들이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델타 포스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또한 동맹국 대테러부대의 기량 향상을 위한 교관으로서의 파견 임무도 자주 다녔다. 한국 육군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이나 자위대 특수작전군이 창설 초창기부터 델타 포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5.1.1. 쓰라린 첫 경험: 독수리 발톱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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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작전을 준비하는 델타 포스 대원들.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란 미국 대사관이 이란 혁명에 동참한 대중들과 군인들에 포위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전개는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항목 참조.

독수리 발톱 작전 (Operation Eagle Claw)은 델타 포스의 첫 실전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당시 미국의 정보 수집 능력이 엉망이 된 바람에 작전에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힘들었고, 사막이라는 특수환경과 야밤 침투에 경험이 적은 헬기 파일럿 등등 여러가지 문제도 산재했거니와 각 군의 숟가락 얹기로 인해 작전이 지나치게 복잡한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 자세한 이야기는 항목을 참조할 것.

5.1.2. 그레나다 침공 작전

Operation Urgent Fury (긴급 분노 작전)

1983년 10월 25일에 벌어진 그레나다 침공작전에는 당연히 델타 포스도 동원되었다. A 스쿼드론은 섬의 세인트 조지 시 시내에 위치한 포트 조지와 정치범이 억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포트 루퍼트, 그리고 시내의 전화국과 무선 중계국을 강습하기로 되어 있었으며, B 스쿼드론은 리치몬드 힐 교도소를 강습해서 정치범들을 구출하고 포인트 살라니스 공항에 강습하는 레인저를 엄호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중 A스쿼드론의 작전은 레인저가 공항을 점령한 뒤 공항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는 TF-160의 헬리콥터들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B스쿼드론의 작전이 먼저 시작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도소 주변의 대공화기의 존재 여부를 모르고 갔다가 대공포화에 정통으로 걸려들어서 1대가 추락하고 2대가 대파되는 등의 피해를 입으며 강습은 취소되고, 결국 B 스쿼드론은 교도소 강습을 포기하고 두번째 임무였던 공항 강습작전 지원과 추락한 기체의 생존자 구조에 투입된다.

A 스쿼드론은 레인저가 점령한 공항에 수송기편으로 착륙해서 헬리콥터 강습을 시도하지만 이곳들 역시 격렬한 대공사격 탓에 제대로 된 구출작전을 수행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델타 포스와 브랜드 X[41]의 공습유도를 통해 파괴되었다.

이렇게 보면 델타 포스가 삽질을 많이 한 것 같고, 실제로도 사실이다. 다만 그레나다 침공작전은 정규군이고 특수작전이고 구분할 것 없이 제대로 일이 풀린 경우가 거의 없었다. 당시 델타 포스와 함께 투입한 네이비 씰 역시 무리하게 해상 강하를 했다가 익사자가 여럿 발생하고, 총독 관저에 침투한 팀이 실수로 통신장비를 두고 와서 대원의 개인 카드로 유료 국제전화를 이용해서 통신에 성공하는 등의 삽질이 발생했다. 델타 포스 역시 이런 총체적 난국탓에 고생을 한 것이지만... 이 자리에 있었던 슈워츠코프 장군은 베트남에서부터 생각해왔던 특수부대에 대한 불신이 더더욱 커져갔고, 이는 7년 뒤 여러 특수부대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5.1.3. 아킬레 라우로 호 구출작전

4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게 이탈리아의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 호[42]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JSOC에서는 델타 포스와 SEAL 6팀의 합동 구출부대를 편성해 구출작전을 준비했고, 바다에서의 구출작전이라는 임무 특성상 구출작전은 SEAL 6팀을 중심으로 델타 포스가 지원을 하는 식으로 준비되었다.[43] 그러나 문제는 구출작전 준비가 제대로 되기도 전에 테러범들이 이집트에 자수해버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출작전은 취소되고 구출부대는 그대로 짐싸서 본국으로 귀환하는가 싶었는데... 이들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진다.[44]

보잉 737기 편으로 이집트 밖으로 추방되기로 결정됐다는 납치범이 탑승한 여객기를 항공모함 CV-60 새러토가에서 발진한 F-14 톰캣을 이용해 이탈리아의 시고넬라 공군기지에 강제 착륙시킨 후, 이미 미국인 인질들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SEAL 제6팀과 함께 체포한다는 새로운 작전이 준비되었다. 한편 튀니지로 날아가던 여객기는 난데없이 F-14 톰캣 전투기에 둘러싸였다. 당황해서 본국으로 교신을 시도하지만 이미 여객기는 미 해군의 EA-6에 의해 F-14를 제외한 어디와도 통신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여객기는 미군의 유도 아래 이탈리아의 시고넬라에 소재한 미군과 이탈리아군이 같이 쓰는 활주로에 착륙했고, 구출부대원들을 태운 수송기 역시 미리 기지에 도착해서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여객기 안에 이집트 외교관이 탑승하고 있던 바람에 체포작전이 지체되는 사이,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갑작스런 미군의 대규모 주권침해 상황[45]에 빡친 이탈리아 군/경병력이 나타나 난데없이 이탈리아측과의 대치가 벌어지고, 결국 망나니 마친코를 대신해 새로이 SEAL 6팀의 사령관이 된 현장 지휘관 로버트 곰리 대령[46]은 이탈리아측과 협상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이탈리아 측에서 체포해 이탈리아 사법당국에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다.[47] 다만 이들중 PLO의 핵심 간부 아부 아바스는 다른 1명과 이탈리아에서 빠져나와 이라크로 도피해 미군을 심히 열받게 만들었지만, 결국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이 아부 아바스를 체포하며 마무리되었다.

5.1.4. 파나마 침공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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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침공 당시 촬영된 델타 포스 대원들의 모습.

Operation Just Cause (정당한 명분 작전)

파나마 침공 당시 델타 포스가 맡은 임무는 두 가지로, 첫째는 노리에가의 체포였고, 둘째는 파나마에서 반정부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파나마군에게 억류된 미국인 인질 커트 뮤즈를 구출하는 임무였다.
5.1.4.1. 마누엘 노리에가 체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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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에가의 은신처를 습격한 델타 대원들
Operation Nifty Package (니프티 패키지 작전)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하는 작전. 다만 델타 포스가 노리에가의 은신처를 덮쳤을 때 노리에가는 이미 도주한 뒤였다. 나중에야 파나마 시티 안의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주했음이 확인되었고, 미군은 헬리콥터와 험비에 앰프를 싣고 하루종일 대사관 상공과 지상에서 시끄러운 락 음악을 틀어놓고 온갖 소음을 발생시키며 노리에가를 압박했다.[48][49]결국 노리에가가 다음 해인 1990년 1월 3일에 투항하면서 작전은 종결되었다.

여담이지만, 해군의 SEAL팀도 이 작전에서 두 가지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노리에가의 국외 탈출을 막기 위해 발을 묶는 작전들이었는데, SEAL 2팀은 노리에가의 전용 선박 'Presidente Porras'를 파괴하는 임무를, SEAL 4팀은 푼타 파이틸라 공항을 접수, 노리에가의 전용기인 걸프스트림을 파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SEAL 2팀은 해군 특수부대의 기본기인 수중침투능력을 발휘해 팀원들의 사상자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지만 SEAL 4팀의 경우는 활주로 한가운데에서 파나마군의 매복에 제대로 걸려 4명이 전사[50]하는 대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건 이전에도 그랬지만, 파이틸라 공항 전투 이후로 CAR-15 M203을 장착해서 사용하는 대원들이 많아졌다.
5.1.4.2. 커트 뮤즈 구출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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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작전을 수행 중인 델타 포스 대원들을 재현한 포트 브랙에 소재한 특수부대 박물관의 디오라마 마네킹들

Operation Acid Gambit (매서운 한수 작전)

커트 뮤즈[51]가 수감된 모델로 교도소의 코앞에는 파나마군 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에 구출작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었으며, 특히 파나마군이 커트 뮤즈의 구출을 시도할 경우 뮤즈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파나마군의 눈을 돌리기 위해 TF-160의 AH-6 무장 헬리콥터 2대와 공군의 AC-130이 파나마군 사령부를 공격하여 시선을 끄는 가운데, 델타 포스 구출팀 16명을 태운 4대의 MH-6 리틀버드가 교도소를 강습했다. 교도소 내부와 인접한 파나마군 사령부 건물에서의 산발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이를 간단히 제압하며 인질 구출에 성공한 델타 포스는 뮤즈에게 방탄모와 방탄복을 입힌뒤 타고 왔던 MH-6에 함께 타고 퇴출하지만, 퇴출 도중 뮤즈와 다른 4명의 델타포스 대원들이 타고 있던 MH-6가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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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적적으로 헬리콥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고, 이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는 인접 건물에 숨어 파나마군과의 교전에 들어갔다. 이윽고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중이던 미 보병사단의 장갑차가 이들을 구출하며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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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포스를 태운 육군의 M113 장갑차.[53][54]

5.2. 1990년대의 특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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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의 델타 포스 대원들

참고로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대원은 퇴역 후 전술사격 강사로 활동하는 팻 맥나마라 대원이다. 자세한 것은 출신인물 문단 참조.

어쨌든 소련도 무너지고 테러와의 전쟁도 없던 시절이라 지금보다는 많이 평화롭던 시대이지만, 델타 포스는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굴렀다.(...)

80년대 특수작전 항목처럼, 여기서도 서술되지 않은 많은 작전들이 있다. 페루 일본 대사관 인질극과 같은 제3 국에서 벌어진 테러에 대한 군사고문이라든가, 유고 슬라비아에서의 특수작전 등등...

5.2.1. 걸프전과 스커드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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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전용으로 개조된 험비(덤비라고 부른다)에 몸을 싣고 있는 델타 포스 대원들. 특수전용 차량을 이용한 사막에서의 장거리 기동은 후일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빛을 발하게 된다.

1990년, 우여곡절 끝에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후세인과 미국의 기나긴 악연이 본격화되고, 곧이어 다국적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증파되면서 걸프만은 점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다국적군의 총사령관이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다. 다만 슈워츠코프는 베트남과 그레나다에서 특수부대의 삽질을 똑똑히 목격했던지라 특수부대에 깊은 불신과 혐오감을 갖고 있던 탓에 기껏 사우디에 집결한 각국의 특수부대는 적 후방에서의 소규모 정찰작전이나 화력 유도 등 평범한(?) 임무만을 수행했을 뿐,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스라엘에 스커드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 싸다구를 한대 얻어맞은 꼴이 된 이스라엘은 당장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며 별렀지만, 이는 미국으로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껏 이번 전쟁을 종교 문제에서 분리시키려고 아랍 국가들까지 모아서 다국적군을 만들었는데, 이스라엘이 끼어버리면 다국적군에서 아랍 국가의 대규모 이탈과 종교 전쟁의 성향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은 이라크도 이를 노리고 저지른 나름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달래기 위해 이스라엘에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들을 전개하는 한편, 다국적군으로 전개되어 있던 임무를 변경시켜 델타 포스와 영국의 SAS에게 스커드 사냥 임무를 맡기게 된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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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드 사냥 임무 중 가장 우측의 아저씨가 인기 전술사격 강사인 래리 빅커스다.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작전팀에 배속된 CCT 요원들은 이윽고 각 팀의 수색범위 내에서 발견되는 스커드 미사일 발사차량들에 대해 항공폭격 유도는 물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타고 있던 차량의 중화기나 대전차 로켓, 유탄발사기, 대물 저격총, 심지어 망치까지 사용하여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이용해서 때려부수는데 앞장섰다.

물론 이라크군의 더미에 낚인다거나, 스커드 미사일 발사 준비단계를 대폭 생략하고 냅다 발사하고 도망치는 등의 대응[56] 탓에 SAS와 델타 포스의 스커드 사냥은 전술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걸프전 참전을 억제하는 등 전략적/정치적으로는 목표 달성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5.2.2. 소말리아에서의 아이디드 체포작전

Operation Gothic Serpent (고딕 서펀트 작전)
199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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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주인공은 대니얼 부시 하사. 슈퍼 6-1의 추락 당시 추락 헬리콥터에서 기어나와 부상당한 상태에서 응전했던 사람으로, 결국 후송된 뒤 부상악화로 사망한다.

전사한 두 명의 델타 포스 대원 게리 고든 랜디 슈가트에게는 미군 최고의 훈장인 명예 훈장이 추서됐다.

모가디슈 전투 문서 참조.

5.2.3. 1990년대 말 ~ 2000년의 아프간 작전

빈 라덴 알 카에다는 이미 1990년대부터 미국을 상대로 각종 테러를 저지르며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고, 이 탓에 90년대 말경부터 이미 아프간에서는 CIA가 마수드의 군벌과 회합을 가지는 등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실무자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델타 포스를 비롯한 병력을 투입해서 빈 라덴을 체포 또는 사살하려는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는데, 이는 아프간 내부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여러가지 문제는 물론, 93년의 아이디드 체포작전의 유혈극이 아직도 생생한 까닭에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대신 해군이 아프간의 알 카에다를 향해 토마호크를 발사했지만, 빈 라덴의 숨통을 끊지는 못하고 오히려 빈 라덴의 화를 더욱 돋구고 말았다.

결국 2000년에 다시 빈 라덴 체포작전을 계획한다. 60여명의 델타 포스(일설에는 델타 포스와 DEVGRU의 합동부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대원들을 동원해 아프간에 침투시켜 빈 라덴을 잡아온다는 작전으로, 2000년 즈음엔 1998년과 달리 군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던데다 CIA 역시 아프간 내에 상당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던 탓에 작전 성공 가능성도 상당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결국 이 계획도 포기하고, 후임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 문제에 대해 클린턴만큼의 개념도 없었다.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2001년 1월 들어선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와 같은 비국가 무장세력을 상대하는 대신 마치 냉전시대의 외교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정책을 실행하며 적대 국가들의 위협에만 치중했다. 그들은 탄도 미사일 방어를 비롯해 기타 고급 방어체계에 역점을 뒀고 불쾌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테러 분야는 소홀히 했다. 공작원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클린턴 행정부 때와 어떤 차이도 느낄 수 없었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백악관이 알 카에다에 대해 훨씬 더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었다. 새 행정부는 알 카에다를 상대하는 우리의 전략을 수정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다른 많은 문제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은 것 같았다. 무엇을 새로운 전략으로 삼아야 할지에 대해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알 카에다에 대해 백악관이 특정해서 제기한 것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동맹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대테러센터의 한 분석가가 2001년 여름에 내게 말해서 알게 된 것이었다.
"부통령실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의 동맹에 대해 알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운을 땠다.
"무슨 동맹이라고?" 내가 물었다.
" 부통령께서 알 카에다와 이라크 사이의 동맹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인지를 물었습니다."
"이번 주에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이군."[57]
"부통령께 그렇게 말하기를 바라세요?" 분석가가 물었다.
"어… 그렇지는 않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후략)

헨리 A. 크럼프턴 저, '첩보의 기술' (The Art of Intelligence)

그리고 그 결과 믿기 힘든 참혹한 현실이 되어 21세기의 시작을 알렸다.

5.3. 2000년대 이후의 특수작전

Operation Enduring Freedom (항구적 자유 작전)
Operation Iraqi Freedom (이라크의 자유 작전)[58]
Operation Juniper Shield (향나무 방패 작전)
Operation Inherit Resolve (내재된 결단 작전)[59]
Operation Kayla Mueller ( 케일라 뮬러 작전)[60]

간단히 요약하자면 테러와의 전쟁. 오늘도 델타 포스는 아프간과 이라크는 물론 중동 여기저기, 중앙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이슬람 테러단체를 때려잡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 현재 이 시각기준으로 지구 어디서인가 작전, 임무 수행 중이라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결국 오사마 빈 라덴을 직접 제거한 것은 델타 포스가 아니라 DEVGRU였다. 델타 포스 출신의 존 맥피는 넵튠 스피어 작전에 델타 포스가 아닌 DEVGRU가 투입된 것은 단순히 사령관 윌리엄 H. 맥레이븐 제독 본인이 네이비 씰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2013년 10월 5일에는 1998년 케냐/탄자니아 미 대사관 동시 폭파 테러를 지휘한 알 카에다 상급 지휘관 아부 아나스 알 리비를 리비아 트리폴리의 은거지에서 납치하는데 성공 #, 미 본토로 끌고 와 재판에 회부했다. 여담이지만 같은 시각 해군의 DEVGRU는 케냐 나이로비 동시다발 테러를 저지른 소말리아 알 샤바브 지휘부 체포를 위해 모가디슈로 강습했으나 함정에 걸려드는 바람에 임무에 실패하고 철수하기도 했으며, 이것 때문에 미국의 몇몇 밀리터리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서는 델타 포스와 DEVGRU 중 누가 더 세냐는 키보드 배틀이 또 벌어지기도 했다.

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납치하자 2014년 7월 4일 비공식 구출작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질은 이미 IS가 다른 곳으로 옮긴 뒤였고, 이윽고 델타 포스 대원들과 IS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델타 포스는 IS 대원 5명을 사살했으나, 델타 포스 대원 1명 및 요르단인 1명이 부상당하고 작전은 실패했다. 그리고 결국 제임스 폴리는 다른곳에서 참수되었다. 여러모로 손타이 포로수용소 구출작전이 생각나는 작전.[61]

해군의 DEVGRU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원들 사진이 공개돼서(물론 얼굴은 가리지만) 대한민국의 군장 매니아들도 최근 DEVGRU 대원들의 개인장비를 완벽하게 모으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정도인데 반해, 델타 포스는 비교적 사진 공개가 드물다. 사실 DEVGRU의 경우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의 주역이었던 두 대원 매튜 비소넷 (필명 마크 오웬)과 로버트 오닐의 내용 누설과 그 해 있었던 Extortion 17 사건 (CH-47 치누크 격추사건)의 전사자 유족과 친구들이 SNS를 통해 생전의 사진들의 올리는 것이 컸다.

2015년 델타 포스에서 IS 고위지도자를 사살했다고 한다.

2015년 10월 22일 쿠르드 페쉬메르가[62] 소속 대테러부대와 함께 이라크 하위자 인근 구금시설을 급습하여 IS 대원 20명을 사살하고 인질 70명을 구출했으나 이 과정에서 델타 포스 대원 한 명이 숨졌다. #, 영상 풀버전

2016년 1월 15일 아프리카의 소국 부르키나파소에서 인질극 진압에 프랑스 육군의 특수부대인 제1해양보병공수연대와 함께 투입되었다. 부르키나파소 인질극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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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남자와 멀티캠 컴뱃셔츠 상의에 카키색 하의를 입은 남자가 델타 포스에 납품된다고 알려진 플레이트 캐리어와 가이슬리 오토매틱스 RAS를 세팅하고 있어 델타 포스 대원임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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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 사진의 두 델타 포스 대원을 재현한 12인치 피규어. 근데 우측 대원의 배스트에 부착된 패치는 옆동네 DEVGRU 골드 스쿼드론의 패치이다.


2019년 10월 26일, 델타 포스가 ISIS의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제거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사살하고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작전명은 Operation Kayla Mueller (케일라 뮬러 작전)이다. 델타 포스 작전요원들과 제75레인저연대, 그리고 기타 지원 병력을 포함한 50~70명 정도의 병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2022년 2월 3일에는 알바그다디의 뒤를 이어 ISIS의 수장이 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시가 숨어있던 시리아 북부의 안전가옥을 급습했으며, 알쿠라이시는 도망칠 길이 없자 가족과 함께 자폭하여 사망했다. 미군 사상자는 없었으나 MH-60 헬기 한 대가 적의 총격을 받고 불시착하여 자폭시켰다. # 제거한 특수부대가 어느 부대인지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시 델타 포스일 확률이 가장 높다.

6. 출신 인물

여기에 나와 있는 인물들의 목록은 VIP 경호 / 총기 전술 교육 회사를 운영하는 델타 포스 전역자들의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어디까지나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한 정보들이다. 델타 전역자들은 자신이 '델타 포스(Delta Force)'에서 복무했다고 잘 말하지 않는다.[63] 영국 SAS 네이비 씰과는 달리 전역한 뒤 자신의 군시절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간하는 경우도 드문 편이라[64] 교차검증이 안되거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일 가능성이 항상 있다.

위 이유 때문에 델타 포스 복무 이력을 강하게 의심받고 있으나 본인들이 이에 대해 말하기를 극도로 꺼려 복무 이력이 기정사실로만 받아지는 인물들이 여럿 있다. 마이크 글로버가 대표적인 예. 그린 베레의 출신인물 문단에 마이크 글로버를 포함한 해당 인원들이 다수 기재되어 있으며, 본 문단에는 본인이 직접 복무이력을 밝힌 사람들만 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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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시절의 월터 슈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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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훈장을 수여받는 존 R. 카바이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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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반대 기자 회견 중인 스탠 고프. 당시 그의 아들도 현역 군인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상태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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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오팔스키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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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스푸너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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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스푸너가 소속된 '노던 레드' 회사의 CQB 하이라이트. 참고로 저기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그린 베레 또는 (그린 베레 출신) 델타 포스 전역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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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스푸너(모자 쓴 사람)의 스피디한 2인 CQB 영상. 영상에 나오는 또다른 사람은 JD 포틴스키로 그린베레 제3특전단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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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T Show 2017의 콜트 사 부스에서 위의 래리 빅커스와 만나 콜트 사의 Colt Combat Unit Carbine을 홍보하는 동영상.
AZTEC Training Services 사 홈페이지에 기재된 대럴 홀랜드의 이력설명&홍보 페이지.[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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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피의 경찰특공대(SWAT) 훈련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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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피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대한 의견.[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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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새틀리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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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칼드웰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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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람의 로닌 택틱스 홍보 영상
보다시피 팻 맥나마라는 나이가 50이 넘었는데도 근육이 후덜덜하다. 피지컬 상태도 좋지만, 전역한 뒤로도 현역때의 감을 잃지 않겠다고 샌드백을 어깨에 들쳐매고 뛰다가 사격을 한다던지, 장애물 코스를 돌고 사격을 하는 식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사격 훈련도 계속하고 있다. 같은 델타 포스 출신의 전술사격 강사인 래리 빅커스가 전역 후 배 나온 옆집 뚱보 아저씨가 되어버린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참고로 래리 빅커스는 자신이 왜 뚱뚱한가를 설명하는 유튜브 비디오를 2015년에 찍은 적이 있다.[89][90] 팻나마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 있고, 타채널 인터뷰등도 활발히 하고 있다. '에임 포인트' (사이트 링크)라는 전술 사격 교육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으며 강사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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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팔머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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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토마스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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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프랑카의 영상

7. 미디어에서

델타 포스는 극비에 가까운 부대인 관계로, 알려진 실존인물이 드물다. 델타 포스 지휘관을 거쳐 장군으로 진급해야 델타 포스 출신이라고 알려지는 게 가능할 정도. 단, 가공의 작품에서는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미국 최고의 특수부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픽션에서는 델타 포스도 굴욕이 많은데 이런 최강 특수부대인 델타 포스가 투입되어도 발렸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해냈다! 따위의 기믹에 희생되는 패턴. 한편으로는 델타 포스 출신의 강력한 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100]

7.1. 게임

7.2. 소설

7.3. 만화

7.4. 영화 및 드라마

8.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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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창기 델타 포스의 모습.[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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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단체사진에서 델타 포스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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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소말리아에서 촬영된 델타 포스 C 스쿼드론 대원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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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의 델타 포스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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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라크에서의 델타 포스의 모습.[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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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델타 포스의 모습.[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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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L 세력과의 싸움이 한창인 2010년대 델타 포스의 모습.[114]

9. 관련 문서



[1] 해당 패치는 그냥 USASOC 패치이며, 부대 마크 자체가 극비인 델타 요원들이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 정복과 전투복에 붙이고 다니는 패치다. 델타 포스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부대명이 아니며, 정식 명칭과 부대 패치마저 군의 최고 기밀사항인 극비 부대이다. [2] 대외적으로는 일단 델타 포스라고 홍보는 하는데 실제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ACE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 실제 명칭이 공식적으로는 뭐라고 알려진 바는 없다. [3] 별칭은 "The Unit" 그 부대. [4] USARSOC 마크는 주로 사령부 소속이거나 기타 특수전 지원부대 소속인 대원들이 주로 차고 다니는데, 그럼에도 정복에 각종 리본이나 휘장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특히 위의 USARSOC 마크 위에 Ranger나 Special Forces 패치가 함께 붙어있으면 델타 포스 소속이거나 출신일 확률이 무척 높다. [5] DEVGRU 제24특수전술대대에서 델타 포스로 가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미군 내에서도 델타 포스가 다른 어떤 합동특수작전사령부 (JSOC) 소속 특수부대들보다 고평가를 받는다. 작전 권한이나 임무 재량권을 봐도 델타 포스가 더 높으며, 예산 배정도 위 두 부대와 ISA보다 델타 포스가 더 많다. [6] 다만 DEVGRU 또한 테러와의 전쟁을 겪으며 델타 포스와 교류하여 상호보완하는 관계로 폭넓은 임무를 수행했고 델타 포스 출신 중에 특정 부분은 DEVGRU가 더 뛰어나다는 말을 할 만큼 차이가 크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DEVGRU의 경우 태생적인 부대 특성으로 인해 DA 같은 소위 다 때려 부시고 죽이는 작전은 가히 델타 포스도 인정해줄만큼 굉장히 뛰어나다. 이는 24th STS, ISA도 마찬가지로, 넷 모두가 비슷비슷하며 상대보다 조금씩은 더 특출난 분야가 존재한다. [7]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2000년대 이후로는 USSOCOM이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한 최첨단 장비 + 지원 체계 + 전 세계를 무대로 온갖 전쟁과 비정규전에 개입하며 쌓아온 압도적인 노하우와 데이터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말 그대로 넘사벽이며 이는 모든 분야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는 미군과 비교했기에 드러나는 상대적인 격차에 대한 평가다. [8] 빈 라덴을 사살한 데브그루 대원 중 하나인 로버트 오닐 (Robert O'neil) 역시 Sofrep과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델타 포스가 데브그루보다 더 많은 예산과 지원을 받는다고 인정했을 정도. [9]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벌이기 전에 선제적으로 역습을 가하는 것이다. [10] 미드 A특공대의 제목 The A-Team이 바로 이 A분견대를 뜻한다. [11] 왜 이런 애매한 이름이 되었는가하면 에이스(ACE) 를 만들기 위한 말장난일 따름이다. 육군특수전사령부의 상징이 스페이드이기도 하고. [12] 밑의 출신인물 항목에서 델타 대원들의 출신부대를 알 수 있다. [13] 당연한(?) 얘기이지만 JSOC에는 델타 포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델타 포스와 유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해군의 DEVGRU나 공군의 제24특수전술대대 등의 최정예부대도 이곳 소속이다. 즉 JSOC에는 델타 포스 대원들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다른 부대 대원들도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물론 말이 수두룩이지 저 셋을 다 합쳐도 인원은 정말 적다. [14] 이유는 방독면 때문인데 수염을 기른 채로 방독면을 착용하게 될 경우, 안면과 밀착이 되지 않아 가스가 유입되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15] 안면 모발의 규정은 꽤 엄격하게 지켜지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기초 군사훈련 중 교관들의 임무 중 하나가 훈련병들이 면도를 제대로 했느냐를 검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한 것이 아닐 경우에는 지적을 하든지 자유시간을 이용해 다시 하라고 할 정도이다. 다만 인종적 관습이나 종교적 관습으로 인한 부득이한 경우는 허용하고 있다. [16] 관련 분야에 무지한 한국인들의 입장 및 작전역량이 몹시 제한적인 한국 특수부대의 특성을 고려해 비유한다면, 한국 버전으로는 707특임대+정보사/국정원 관련 부서라고 봐도 무방할정도로 엄청나게 광범위한 작전 범위 및 권한과 재량권을 자랑한다. [17] 배식 중에도 새치기를 하며 무질서한 모습에 옆의 레인저 대원이 컴플레인을 걸자 "어쩌라고"식의 일관된 답변을 하는 게 참 인상적(...)이다. 실제로 저런 일은 없었고, 오히려 레인저 병사들이랑 델타 포스 대원들이 서로 사이좋게 골탕 먹이곤 했다. [18] 무려 이틀씩이나 굶어서 저러는 거니 이해해달라나. [19] 기본적인 총기 안전수칙은 자율성이 허용되는 영역이 아니고 오히려 엘리트 부대원일수록 강박적으로 신경쓴다. 실제 당시의 AR15 시리즈의 안전장치는 해머가 콕킹된 상태가 아니면 안전위치로 레버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델타 포스 같은 최정예 대원들은 차라리 약실에서 탄 빼고 공격발을 해서 해머를 풀어놓은 상태를 더 안전하게 여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의 AR15 시리즈 개량형들은 해머가 코킹되지 않아도 안전위치로 레버를 움직일 수 있게 된 제품들이 많다. [20] 단, 1980년대에 델타 포스와 비슷한 목적으로 창설된 해군의 SEAL 제6팀 (現 해군특수전개발단 (DEVGRU))이 하는 짓에 비하면 델타 포스 대원들은 모범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두 부대 모두 임무가 임무인 만큼 두발과 복장의 자유가 인정되지만, 행정상 상위부대인 각군 특수전 그룹으로부터 '두발과 복장이 지나치게 개판'이라고 욕을 먹은 부대는 DEVGRU 뿐이었다고 한다. 과언이 아닌 게 하미드 카르자이 암살을 저지하다가 민간인 사상자가 나자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경호부대를 PMC로 교체하기 전까지 DEVGRU가 경호를 맡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는 놈들이지만 카르자이가 죽는 것보단 낫다는 이유였다. [21] 미 육군의 특수작전 및 CIA 비밀 비행 유닛으로 ISA와도 자주 연계되었던 부대이다.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JSOC 버전인 셈. 현재는 부대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다. [22] 영관급, 준사관 [23] 준사관이나 대위급 장교(극히 드물지만)도 있을 수 있음. [24] 그린 베레의 경우 ODA에 배치된 대위는 사령부에서 지원 임무를 수행하기 전, 2년 정도 현장에서 팀장으로 근무 가능하다. [25] 당연 한국으로 치면 짬중사급이다. [26] 이런 성격은 작전지역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어 미국의 우방국 특수전 부대에 대한 군사고문의 역할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한국 육군의 특수부대인 특전사가 제1공수특전단 창설시부터 미 육군 특전단에게 많은 것을 배워왔고, 지금도 정기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27] 흔히들 델타 포스를 '미 육군의 대테러부대'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대테러전은 델타 포스가 수행하는 임무들 중 하나일 뿐이다. 참고로 영국의 SAS가 대테러전 능력을 구축하게 된 계기는 1960년대 말엽에 북아일랜드에서 IRA와 투닥거리게 되면서부터이다. 60년대 초에 영국을 다녀온 베크위스는 대테러전에 대해 뭘 배울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28] 오늘날에야 육군 특전단(그린 베레)의 12명으로 구성된 A팀장은 대위 계급이지만, 60~70년대 베트남 전쟁까지만 해도 이제 막 새롭게 임관한 소위나 중위 계급의 장교들이 팀장을 맡는 경우가 있었다. [29] Long Range Reconnaissance Patrol. 육군 장거리 수색대. [30] 여담으로, 흔히들 델타 포스가 굉장히 '빠진' 부대로 묘사되곤 하지만, 팀장까지 같이 망나니짓을 하던 SEAL 6팀이 나중에 윗사람들의 분노를 사서 탈탈탈 털릴 때도 별 탈없이 지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지킬 것은 지키는 분위기일지도...? SEAL 6팀과 마친코가 두들겨 맞은 것은 군기불량 문제가 제일 컸지만, SEAL 6팀 창설과정에서 그 괄괄한 성격 탓에 상관들과 자주 마찰을 빚은 마친코에 대한 괘씸죄도 큰 작용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델타 포스의 창설과정에서 역시 상관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던 베크위스 역시 굉장히 자유로운 델타 포스의 분위기로 SEAL 6팀과 같은 공격을 받을 여지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에서 큰 잡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런 부대 풍조는 프로젝트 델타 시절의 이 일화에서 엿볼 수 있는 창설자인 베크위스의 영향 탓일지도... [31] 프로젝트 델타는 팀 구성조차도 SAS의 팀 구성과 같은 4인 1조의 작전팀을 기본 작전단위로 삼았다. [32] 이게 그냥 부상이 아니라, 소총탄에 복부관통상을 입고 군 병원에 후송되어 부상을 입은 내장 일부를 비롯한 부분을 수술받았다. 이 때 물을 마시고 싶어도 얼음으로 물을 마셔야 할 수준이었다고... 참고로 베트남 전쟁에서 군 병원 입원기록이 가장 긴 사람 중 하나다.(출처: 델타 포스 창세기 (월간 플래툰 2003년 3월호)) [33] 당시의 이름은 'U.S. Army Special Warfare School'. 그 후 이 특수전학교는 특수부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던 존 F. 케네디 前 대통령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이름을 딴 존 F. 케네디 특수전학교 (John F. Kennedy Special Warfare Center and School)란 명칭으로 1982년에 변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34] 공지전의 시초가 된 단기화력전 개념을 정립한 듀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 [35] 대한민국의 주한미군으로서 상주하는 그린 베레 병력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특전사의 각 여단들에도 '특전부대 연락관'이란 직책으로 상주 근무하고 있다. [36] 베트남전때까지만 해도 레인저 부대는 지금의 제75레인저연대처럼 하나로 통합된 단일 부대였던 게 아니라, 여러 야전 사단 부대들에서 필요에 따라 소규모의 레인저 중대들을 자체 조직해서 운용해왔다. 베트남전 이후인 70년대 중반부터는 잔존 레인저 중대들 몇개를 모아서 만든 2개의 레인저대대가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75레인저연대'라는 단일 부대는 1980년대에야 비로소 창설된다. [37] 다이 하드 2에 나오는 육군 대테러부대가 블루 라이트를 칭하고 있다. [38] 블루 라이트도 해체 전까지 상당한 대테러전 능력을 쌓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 내용 참조. [39] 임무는 베를린에 있는 공산권 스파이의 암살이나 납치 그리고 사보타주가 주 임무라서 대도시인 베를린이라는 특징 때문에 시가전과 실내전에서는 델타 포스와 블루라이트와 비교를 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40] 그러나 베크위스는 델타 포스의 작전 성공을 보지 못하고 1981년에 대령으로 퇴역한다. [41] 공군의 항공 통제반을 특수부대로 개편되는 과정에 있었던 과도기적인 공군 특수부대. 브랜드 X가 발전해서 현재의 CCT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42] 배 자체의 운도 꽤 없는지 90년대 초반 화재로 인해 침몰했다. [43] 물론 선박의 기국이었던 이탈리아도 카라비니에리 예하의 GIS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44] 이것때문에 작전 취소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푹 자려고 수면제를 먹었던 특수전 대원들이 다시 약을 토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45]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이탈리아 땅에서 벌어지는 대테러 작전인데 미국이 테러범을 잡느냐는 이유였다 [46] 곰리 역시 미군 특수전계에서 마친코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레전드이다. 여담이지만 마친코는 개인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령으로 강등되면서 SEAL 6팀 사령관에서 쫓겨나던 마친코는 곰리가 자기 대신 사령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47] 당시 미군 특수부대는 테러범들이 이송되는 비행기와 호송차까지 추적해가면서 감시했다. [48] 듣기로는 황당하지만 효과는 탁월했다고. [49] 이 때 틀었던 노래들은 매우 적절하게도 더 클래시 I Fought the Law 건즈 앤 로지스 Welcome to the Jungle(노래)이었다. [50] 1명은 과다출혈로 전사. [51] 당시 파나마에서 미술상을 운영했지만 실제로는 반 노리에가 세력을 돕는 인물이었다. 특히 노리에가의 연두교서 방송에 맞춰 해적방송을 전파했는데, 분노한 노리에가에 의해 구금당했다. [52] 이때 한 대원은 헬리콥터의 로터 블레이드에 헬멧 쓴 머리를 제대로 얻어 맞아 중상을 입었다. (출처: 그림자 전사, 세계의 특수부대) [53] 파나마 침공당시에는 M1 에이브람스나 M2 브래들리같은 크고 무겁고 튼튼하고 강한 차량들이 못 오고, M551 셰리던이나 M113, 해병대의 LAV-25 같은 '가벼운' AFV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54] 위의 마네킹 사진에도 보이지만 장갑차 위의 대원들이 소총이나 기관총에 도트사이트로 보이는 물건을 장착한 것도 보인다. 아마 에임포인트 3000일 것으로 추정. 해당 모델은 블랙 호크 다운 무렵까지도 쓰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 영화에서는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compM2가 등장. [55] 다만 이스라엘은 결국 자체적인 특수전 팀을 비공식적으로 이라크에 파견했다고 전해진다. ' 브라보 투 제로'에서 생포당한 SAS 정찰팀원들을 이스라엘군이라고 의심하던 이라크군의 태도가 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56] 하지만 이 바람에 스커드의 명중률은 이론치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57] 후세인은 이라크 바트당을 집권기반으로 삼았는데 바트당은 민족주의와 세속주의를 내세운 정당이다. 당연히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는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 [58] 미군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와 전쟁을 시작할 때 붙인 작전명으로, 이라크전 내 미군 개입 전체를 뜻한다. [59] 이 작전명은 이라크에서 다에쉬를 소탕하기 위한 미군의 개입 전체를 뜻한다. [60] 다에쉬의 수장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사살 작전. [61] 월남전 당시 북베트남 측에 억류된 미군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 그린 베레가 수행했던 작전. 구출부대의 침투작전과 퇴출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정보가 문제였다. 구출할 포로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이감되었는데 어떻게 구출하겠나... [62] 서방권의 무기지원과 훈련으로 이미 단순 민병대 수준을 넘어섰으며 아예 자체적인 특수부대까지 보유하고 있다. [63] 언론을 자주 탔거나 업계 유명인인 경우에도 델타 포스라는 단어 자체를 조심스럽게 쓰는 편이다. 심지어 드물게 어떤경우가 있냐하면, 델타 포스 출신인게 이미 알려진 동료가 자기랑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다고 옆에서 말하는데도 끝까지 자기입으로는 특수부대라는 단어도 안나오는 사람도 있다. [64] 사실 SAS 출신들도 베어 그릴스를 제외하곤 철저히 침묵을 유지하는 편이며, 그나마 베어 그릴스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또한 네이비 씰을 제외한 미국의 그린 베레, ISA 등도 마찬가지로 출신 대원들이 본인들 스스로 관련 발언을 금기시 하는 수준이다. [65] 76년부터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 드라마가 훗날 영화화 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미녀 삼총사이다. 미녀 삼총사의 원제가 'Charlie's Angels'이다. [66] 일단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26년 군 경력 대부분을 80~90년대 시기의 특수부대에서 보냈다. 게다가 군 복무 시절 인품도 좋았다는 증언도 있다. [67] 이때는 아직 미 해병대에 자체 스쿠버 교육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리콘마린들이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의 해군 전투 스쿠버 과정이나 육군 특전단 전투 스쿠버 과정에 위탁교육을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이후 1995년경에 해병대 자체 전투 스쿠버 교육 과정이 생겨난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해군의 스쿠버 과정은 네이비 씰의 BUD/S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68] SFARTAETC(Special Forces Advanced Reconnaissance, Target Analysis, and Exploitation Techniques Course)라고 불리는 교육과정으로 육군 특전단 그린 베레의 CIF 특임대를 위한 교육과정이다. 제2포스리콘중대가 1990년대에 잠깐동안 대서양통합군사령부(USLANTCOM)를 위한 CIF 특임대 역할을 담당하던 시기가 있었다. 해병레이더연대(해병특전단) 항목의 역사부분 참조바람. [69] 1990년대는 상대적으로 전쟁이 없던 평화시절이어서 해병대는 주둔지에서 통상적인 훈련 등 평상시 일과만 수행했고 실작전 투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소속 특수부대들만이 실전을 치르고 있었다고. 그래서 따분함을 느낀 많은 해병리콘대원들이 육군으로 재입대를 택했다고 한다. [70] 해병대 장교 임관 교육 프로그램 (Marine Enlisted Commissoning Education Program;MECEP)으로 장교가 되었는데 경쟁률이 높아 세 번이나 떨어졌다가 붙었다고 한다. 가정형편이 나빠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2년 안에 4년제 학위를 따야했고 이 때문에 많은 강의를 들어야 했다고. 의외로 장교가 될 처음에는 특수전 장교엔 뜻이 없었다고 한다. [71] 이 동료는 DEVGRU에서 복무하던 시절 1993년 모가디슈 전투에 참가했던 4명의 DEVGRU 대원 중 한명이었다고 한다. 이 동료도 모가디슈에서 델타 포스 대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 이듬해인 1994년에 DEVGRU에서 델타 포스로 지원하려고 했는데 DEVGRU 측에서 (델타에 지원하면) 쫓아내겠다고 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고. [72] 델타 시절에는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1년에 2번씩이나 파병간 적도 있다고 한다. [73] 이 문서에서 기재된 홀랜드의 이력 중 상당수가 이 사이트에서 출처를 두고 있다. [74]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부대를 지칭할 때 다른 말을 쓰지 않고 더 유닛이라고 부른다. [75] 맥피 본인은 크리스 카일을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 자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배설물(Crap)이라고 말한다. 실제 전쟁터에서는 쓰이지 않는 전술과 전투방식, 그리고 특수부대원들은 자신이 몇명을 사살했는지 카운트를 세지 않는다고 한다. 맥피 본인은 아프간전쟁 개전 당시 자신의 델타 작전팀이 첫날에만 1,000명 이상 죽였는데 누가 누굴 사살한건지 어떻게 일일이 다 확인하고 세냐고. [76] Team Leader, Troop Sergeant Major, Squadron Command Sergeant Major 등등 [77] 레인저 경연대회(Best Ranger Competition)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고. [78] 82공수사단에서 곧바로 델타 포스에 지원하였는데 선발과정에 와보니 정작 본인 외에는 대부분 레인저나 그린 베레같은 특수전 부대에서 수년간 복무한 베테랑들 밖에 없었다고. [79] 2001년 이후 테러와의 전쟁 시기에 복무한 대원들은 이 정도는 흔하다고 한다. [80] 참고로 이 시절 특전단 출신이 아닌 델타 대원들은 그린 베레 Q코스를 이수하러 많이 갔다고 하는데 본인(폴 하우)은 어차피 Q코스를 받고 와도 델타에서는 임무 특성상 필요가 없기때문에 Q코스 교육을 받으러 가지않았다고 한다. (특전단 출신이 아닌) 델타 대원들이 Q코스를 이수하러 가는 이유는 첫째로 진급이 빨라지기 때문이고, 둘째는 델타에서 나간 뒤 특전단에서 근무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81] 이 시기에 미 해병대의 기본 수색 과정(BRC)도 위탁교육으로 수료하였다. [82] 2017년도에 레딧에 올라온 풍문에 의하면 2005년도에 델타가 그야말로 미친듯이 작전에 나가면서 부대원 50% 가까이가 손실이 났다고 한다. 이때 24 STS, 데브그루, 그린 베레 등에서 서포트 대원을 많이 받았다고... 실제로 이 시기를 전후하여 데브그루의 활동이 대폭 늘어났고 제75레인저연대가 기존에 하지 않던 테러리스트 용의자 등에 대한 야간급습 임무 등을 많이 나가기 시작했다. [83] 낭인(浪人), 주인 없이 떠돌아 다니는 방랑무사를 뜻하는 단어로 와패니즘적인 것에 자주 붙여지는 이름이다. [84] 국내 명칭은 '최강의 검: 끝까지 벤다'. [85] 특히 빌 골드버그가 격투기 출신이다 보니 검을 주로 다루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약간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를 보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86]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서 나오는 킬로 64가 당시 밀러의 콜사인이다. [87] 휴 셸턴 합참의장이 NATO 회의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마이어스 합참차장이 합참의장으로 지명된 상태였다. [88] 임무가 동독군과 소련군이 쳐들어와 베를린을 점령할 경우 독일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점령지 내부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실제 상황이 벌어진다면 생존할 가능성이 아주 적은 자살 임무에 가까운 데다, 신분 노출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보안유지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소련군도 이들이 정확히 무슨 임무를 하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임무를 한다는 건 알아서 외부활동 시 염탐꾼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초창기에는 부대원 절반 가까이가 독일계,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군 소속으로 소련군과 싸웠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89] 요약을 하자면 자신이 델타 포스 생활을 하는 동안 큰 부상만 4번에 헬기 추락만 3번을 당했고, 그동안 입은 각종 부상도 대부분의 사람이 죽거나 평생 장애인으로 살거나 마비상태로 살 정도였다고 한다. 즉 운동은커녕 살아서 움직이는 게 가능한 것도 아주 운이 좋았던 것이며, 자신 역시 나이와 부상이 있으나 조금씩이나마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이어트에 성공했는지 빅커스 택티컬 채널의 2019년도의 비디오를 보면 몸의 좌우 사이즈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90] 설령 임무 중에 부상이 없어도 특수부대 생활은 절대 쉬운 게 아니다. 각국의 특수부대는 임무시 군장, 특히 정찰 임무시 군장무게가 90kg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고, 때문에 허리와 무릎 부상을 고질병으로 달고 사는 사람들도 수두룩 하다. 현역 군인이고 나이가 젊을 때야 어떻게든 버티지만 그 후로 운동능력이 이전 같을 리가 없다. 그리고 델타 시절 식습관에 대해서도 말한 적 있는데 매일같이 체력단련과 작전을 뛰기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하고, 그래서 틈날 때마다 먹어둬야 힘을 쓸 수 있다고 할 만큼 식습관이 불규칙하다. 제대 후 운동량은 줄어드는데 식습관이 그러니 살이 찌기 쉽다. [91] 아래 인터뷰를 보면 메디칼 의사가 아닌, 약학 박사로 근무한듯하다. [92] 그린 베레 제5특전단 의무주특기로 12년, 델타포스에서 8년, 총 20년간 복무 후 은퇴. [93] 그린 베레 제3특전단에서 4년, 델타 포스에서 17년 [94] 델타 포스는 주방위군에서도 지원이 가능하며, 선발되고나면 당연히 현역으로 전환된다. [95] 75레인저연대 직할 수색중대에도 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불확실 [96] 델타 포스에서 복무할 때 그린 베레 Q코스를 이수. [97] 베스트 레인저 선발대회는 레인저 스쿨을 졸업한 사람이면 육, 해, 공, 해병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토머스 페인은 델타 포스 시절 참여. [98] 서포트가 아니라 정식으로 OTC과정을 통과하고 오퍼레이터로 복무. [99] 미 해병특전부대(MARSOC)의 전신 부대 [100] 언씽커블, 디셉션 포인트와 같이 주인공 일행을 노리는 가장 큰 적으로 묘사되는 경우. 몹시 드물게도 홈랜드 시즌 6 같은 경우는 JSOC 사령관이 흑막으로 설정되어서는 델타 포스를 통째로 조종해서 하는 짓이... [101] 작중 설명으로는 델타 포스가 아닌 The Unit이라고 나온다. 그게 그거지만. [102] 델타 포스 출신은 아니고, 델타 포스의 훈련을 받았다. [103] 실종된 미군 제33차량화보병대대와 민간인 생존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두바이에 정찰 및 수색구조 목적으로 파견된 델타 포스 대원들. [104] 댄 브라운의 소설인 디셉션 포인트에서 높으신 분의 사주로 주인공 일행을 암살하고, 증거를 은닉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한다. [105] 데브그로인줄 알았지만 델타 포스였던 걸로 38화에서 밝혀진다. [106]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베크위스의 밑에서 계속 복무했다면 델타 포스에 배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07] 전직 델타 포스 출신. 베레모 착용 사진으로 미루어 보아 계급은 대위로 추정된다. [108] 델타 포스 저격수 [109] SAR 대원이나 10산악사단 대원 몇몇도 쓰고 있는데 감독 특성상 배역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관계로 구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110] 얼굴을 가리기 위해 전원 방독면을 착용 중인데, 당시 님로드 작전으로 유명해진 SAS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111] 맨 좌측이 찰스 베크위스의 사위인 폴 하우이다. 기밀 때문인지 대원들의 얼굴 위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뒤 모자이크를 덧씌운, 꽤 특이한 2중 모자이크 형식을 취하고 있다. [112] 공군 헬기 조종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4안식 야간투시경인 AN/AVS-10을 2005년도부터 이미 보급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113] HK416 돌격소총, AN/AVS-10으로 추정되는 4안식 야간투시경, AOR1 군복이 지급되었다. [114] HK416 돌격소총, 4안식 GPNVG-18 야간투시경과 OPS-CORE사의 FAST 헬멧 또는 Crye Precision사의 Airframe 헬멧이 지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