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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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대체역사, 빙의 |
작가 | 핏콩 |
출판사 | 제이플미디어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1. 11. 24. ~ 2022. 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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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병자호란을 시작으로 17세기 조선을 무대로 펼쳐지는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핏콩. 약칭은 남한산성(혹은 ㄴㅎㅅㅅ).2. 줄거리
3. 연재 현황
2021년 11월 24일 | 문피아 연재 시작 |
2022년 01월 10일 | 26화 분량부터 유료화 |
2022년 03월 18일 | 네이버 시리즈 연재본 발매 |
2022년 08월 18일 | 본편 완결 및 외전 연재 시작 |
2022년 09월 01일 | 완결 |
4. 특징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을 패러디한 제목과 장난스러운 구버전 표지[1]에서 느껴지는 개그의 향기와 달리, 난세 호걸들의 장쾌한 군담 및 정치극을 특징으로 한다.때문에 대체역사소설이면서도 작중 분위기가 대하 사극[2]에 가까운 편이며,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강한 나라를 만든다'라는 주인공의 트라우마 냄새 가득한 집념과[3] '오랑캐에게 복수하는 것'을 국시로 삼은 조선의 북벌론,[4] 이 과정에서 따라오는 조선의 변화상과 정치적 격동 등이 본작의 주요 이야기이다.
작가의 첫 장편이지만 몰입하기 좋은 묵직한 문체도 매력적이다.
5. 등장인물
5.1. 이자원
병자호란기 동명의 훈련도감 초관 이자원에게 빙의하게 된 현대인으로 본작의 주인공. 전생에는 군인이었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겪었다.성격이 굉장히 특이한데,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오직 '목적'만을 추구한다. 따라서 권력욕이나 재물욕 같은 사사로운 욕심이 전혀 없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설령 그 수단이 타인의 목숨이라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희생시킬 수 있다.[5] 자신에게 인간적으로 무한 신뢰를 보내는 임금( 소현세자)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이용해먹을 정도. 주인공치고는 인간미가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작가가 조심스레 흘리고 있는 복선들[6]을 보면 의도적으로 인간미에 결함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작중 언급된 정보들을 종합해보자면, 이자원의 이 기계 같은 부국강병 추구는 본래 성품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가족이 희생된 '어떤 사건'을 겪은 후 제정신을 붙잡으려고 '나라를 위해선 그 무엇도 희생시켜야 한다'는 자기 암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즉 트라우마 때문에 미쳐버린 인간. 작중에서도 그 특유의 섬뜩한 행보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서도 "악귀나찰 같다"느니, "하늘의 신장(神將)이 죄를 짓고 땅에 내려온 것"이라느니 하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나마 아내 강유주와 아들 이안세에게만은 살짝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편.
능력 또한 매우 출중한데, 무예 실력은 본신 이자원에게 물려받은 것이지만 장수로서의 전략적·전술적 판단력도 뛰어나다. 무장임에도 정치력 또한 뛰어나서, 종전 후 일등공신이 된 자신을 견제하려는 음모를 모두 성공적으로 받아쳐서 반대 세력들을 모두 숙청하거나 굴복시킨다. 현대에서 전쟁사를 연구한 덕에 호란기 동아시아 역사는 사건들을 날짜 단위로 외울 정도로 꿰고 있으며 만주어까지 구사할 줄 안다.[7]
빙의 직후 포를 쏘아 홍타이지를 사살했고, 이를 계기로 파총으로 진급한 뒤 남한산성을 빠져나가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병자호란을 조선의 승리로 이끈다. 전쟁 이후 사망한 인조의 복수를 위해 북벌을 원하는 임금과 조선의 부국강병을 원하는 이자원의 목적이 일치하여 정치적 동반자가 되었으며, 자신을 노리는 정치적 공작들을 이겨내고 명나라에서도 가도 총병 자리를 받으며 조선 최고의 권신이 된다.
후원자였던 소현세자가 죽은 이후엔 훈련대장에 병조판서, 삼군부제조를 겸하여 조선의 군권 대부분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훈련도감과 어영청 등을 망라한 북벌군 3만을 이끌고, 숭정제의 소환령도 무시한 채 마침내 도원수가 되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첫번째 방해물인 청나라를 멸하고자 북벌을 시작한다.
하지만 적비의 이간질에 넘어간 봉림대군이 갑자기 반란을 일으켜 대비 강씨와 이자원 일파를 역적으로 몰자 급히 회군하지만, 가족이 봉림대군의 인질로 잡힌 과정에서 아내가 아들을 구하려다 죽고 만다. 역모를 진압한 후에는 역적의 삼족을 멸한다는 명분으로 조선 왕족들을 대거 몰살하고, 스스로 통령 직에 앉아 실권을 장악한다.
5.1.1. 목적과 내면
"나는 청을 멸할 것이다."
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을 위해서도 아니라,
이젠 자신의 기억에만 남아있는 그 나라를 위해서.
그것을 위해선 앞을 가로막는 것이 청이든 명이든,
혹은 조선이 되었든.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132화)
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을 위해서도 아니라,
이젠 자신의 기억에만 남아있는 그 나라를 위해서.
그것을 위해선 앞을 가로막는 것이 청이든 명이든,
혹은 조선이 되었든.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132화)
이 나라를 기반으로
조국을 재건한다.
몇 백년이 걸리더라도.
설령 자신이 그 결과물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재건된 대한민국이 결코 자신의 기억과 같지 않은 형태라 해도.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것을 따진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새롭게 만들어질 나라를 위해서'
현 시대의 중국이나 일본에 별다른 유감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역사에서, 그들은 새로이 재건될 나라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난세가 끝났다고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이자원은 이 시대의 평화를 바라지 않았다.
조선은 끊임 없이 성장하고, 국체를 송두리째 바꾸어야 했다.
재건될 조국의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
중국을 찢고, 일본을 토막내고, 유럽을 눌러버리고, 미국을 소멸시키고, 러시아를 짓밟고.
그 어떤 나라에도 무너지지 않는 강한 패권을 확립해야만 한다.(167화)
몇 백년이 걸리더라도.
설령 자신이 그 결과물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재건된 대한민국이 결코 자신의 기억과 같지 않은 형태라 해도.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것을 따진다면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새롭게 만들어질 나라를 위해서'
현 시대의 중국이나 일본에 별다른 유감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역사에서, 그들은 새로이 재건될 나라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난세가 끝났다고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이자원은 이 시대의 평화를 바라지 않았다.
조선은 끊임 없이 성장하고, 국체를 송두리째 바꾸어야 했다.
재건될 조국의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
중국을 찢고, 일본을 토막내고, 유럽을 눌러버리고, 미국을 소멸시키고, 러시아를 짓밟고.
그 어떤 나라에도 무너지지 않는 강한 패권을 확립해야만 한다.(167화)
그는 고삐를 잡고 강석기의 집을 눈에 담았다.
담 너머로 유주의 방이 보였다.
'이미 놓쳐버린 것이다.'
한때 이자원에게 가족은 모든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존재는 사라져버렸고, 무슨 수를 써도 다시는 가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그의 가슴 속에 차오르는 어떤 감정은, 단순히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대용품을 갈구하는 나약한 심정이다.
싸움을 앞두고 이런 감상에 사로잡혀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72화)
담 너머로 유주의 방이 보였다.
'이미 놓쳐버린 것이다.'
한때 이자원에게 가족은 모든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존재는 사라져버렸고, 무슨 수를 써도 다시는 가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그의 가슴 속에 차오르는 어떤 감정은, 단순히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대용품을 갈구하는 나약한 심정이다.
싸움을 앞두고 이런 감상에 사로잡혀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72화)
'대의멸친이라'
이자원은 금강 너머 공산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의를 위해선 친족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된 신념인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일 뿐인가.
둘 중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그것을 따지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니까.(75화)
이자원은 한때 가족을 인생의 전부로 삼았으나 모종의 이유로 조국은 그의 가족을 희생하였다. 여기서 정신을 붙잡기 위해 그는 '조국'을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지켜내야 할 절대적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 희생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결국 멸망했으며, 이후 그는 조선시대로 넘어오게 된다.이자원은 금강 너머 공산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의를 위해선 친족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된 신념인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일 뿐인가.
둘 중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그것을 따지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니까.(75화)
따라서 이자원의 목적은 역사를 뒤틀어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패권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작중 이자원에게 조국이란 결코 '조선'이 아니며 '대한민국'이라는 점이다. 이자원의 목적은 민족주의적 차원에서의 '한민족의 영광' 같은 게 아니며, 조선인들은 '동포'라기보다는 단지 대한민국을 재건할 '인간재료'일 뿐이다. 즉 그가 조선의 무관으로 활약하는 것은 조선이 대한민국을 재건할 최적의 재료이기 때문이다.[8]
그렇기에 이자원은 조선에 태평성대를 선물할 마음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조선인들을 전쟁터로 밀어넣어서라도 끊임없이 난세를 유발하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 체제를 강제로 비틀어, 마침내 멸망한 그의 조국을 소환하는 것이 그의 목표인 것이다. 물론 시대적 한계가 있다 보니 허수아비 황제를 세워놓고 세습군사독재를 하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기틀 정도만 잡아두고, 중추원을 만드는 등 민주주의로 이행할 단서를 남겨두었으며 이자원 사후 서서히 민주정으로 이행하게 되면서 이자원이 원하는 대로 현대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목표도 스스로 자기합리화한 착각일 뿐, 그의 진정한 바람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면 무뚝뚝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을 내보이며, 무엇보다도 조선에서 얻은 장남의 이름을 안세(安世)라고 지은 점에서도 그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바라는 건 난세(亂世)가 아님을 보여준다. 아마도 자식의 이름에서는 자신의 진짜 바람을 드러내고 싶었던 무의식의 말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봉림대군과 박철균 때문에 아내인 유주가 죽임을 당하면서 조선 외의 온 세계를 불태워버리겠다는 정도로 흑화할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막상 반란 진압 후의 묘사를 보면 다른 대역소설인 대통령 각하 만세의 주인공 조지원처럼 애초부터 아내를 향한 사랑 따위는 없었다는 묘사를 보인다.[9]
주인공의 과거가 밝혀지기 전,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그가 원래 살던 세계선에서 국가를 위해 가족을 희생했으며,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멸망했다는 점으로 보아 대통령 각하 만세의 주인공 조지원,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의 주인공 김유진과 같은 세계선에 살던 한국군 장교이며, 조지원의 심복 부하였을 것이라는 밈이 있었다.
작품 후기의 작가 피셜로 주인공 이자원은 사실 모 대통령 각하가 아닌 2003년 출판한 신쥬신 건국사의 주인공 손월에 대한 헌정이라고 한다.
5.1.2. 과거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으며 그런 집구석을 벗어나고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서 군사사를 전공했고, 군인이 된 뒤 새로운 가족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이후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대만이 중국에게 멸망하며 일본은 핵무장을 하는 등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완전히 붕괴되고, 북한의 선제 핵공격과 중국의 참전으로 제2차 한국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주인공은 전쟁이 임박했을 때 자신에게 보금자리를 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의리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할 기회를 거절하고 가족들을 부산으로 보냈으나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부산에 핵이 떨어지며 사상당한 수백만 명의 피난민과 함께 가족들이 사망했다.
이후 대한민국이 침략당한 영토를 수복하고 북진할 때쯤, 3차 대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전후 복구 지원을 볼모로 삼은 개입으로 전쟁은 수백만 명의 사망자만 낸 채 전쟁 이전의 휴전선을 그대로 국경선으로 하여 종전되고 북한에는 중국의 괴뢰정권이 세워지며, 주인공은 포로학살 의혹을 받고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로 좌천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실업자와 장애인으로 넘쳐나게 되며 사실상 6.25 전쟁 휴전 직후의 상태로 돌아가 국제사회의 지원에만 의지하게 되었고 그 때와는 다르게 국민들도 희망을 잃어 출산율도 바닥을 찍게 되는데, 주인공도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상심한 채로 기분전환 겸 남한산에 올랐다가 산신령을 만나 병자호란 당시의 무신 이자원에게 빙의하게 되었다.
5.2. 조선 →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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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원(본신)
주인공이 빙의한 동명의 인물. 병자호란기 남한산성에 복무하던 훈련도감 초관. 주인공은 자신이 빙의하기 이전의 이자원에 대해 생각할 때 '본신'이라고 부른다. 광해군 시기 금군에서 광해군의 총애를 받던 이중전이라는 자의 아들로, 혼인을 했으나 사별했으며 유일한 가족으로 고향집에 적모가 있으나 부인과 사별한 후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어 주인공이 빙의한 후 본신에 대해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훈련도감 인근의 허름한 집에 혼자 살고 있었으며 음침한 성격 때문에 가까이 지내는 이가 없었던 듯하다고 한다. 또한 무예가 매우 뛰어나서 주인공은 '어째서 이 정도 실력자가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을까?'라고 의아해 할 정도이며, 청나라의 구왈기야 오보이,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 등과 동급의 실력자로 그려진다. 빙의한 후에도 본신의 무예 실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후 밝혀진 이자원 본신의 정체는 사실 이중전의 아들이 아닌 광해군의 사생아였다. 임해군이 유희서를 살해하고 빼앗은 첩 애생에게 반한 광해군은 몰래 애생과 관계를 맺었고, 이를 덮어주던 이중전은 광해군의 심복으로 총애받게 된다. 그러다 애생이 임신을 하자, 광해군은 이중전에게 애생과 아이를 없애버릴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이중전은 명령을 어기고 애생의 아들을 거둬 자신의 아들 이자원으로 키운 것이다. 이자원 본신이 뛰어난 무예를 가졌음에도 전쟁터에서 활약이 적고 덜 유명해진 이유가 이것으로 추측된다. 전쟁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유명해지면 출생의 비밀이 폭로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본래는 남한산성에서 전사하고, 동료들이 시신을 수습해 한쪽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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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왕
인조 이종
홍타이지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는 장면으로 첫 등장. 처음에는 한의 죽음에 대한 나비 효과가 두려워 이자원을 청나라에 압송하려 했으나 그에게 설득당해 항전을 결의하고 이자원을 밖으로 보내 근왕군을 데려오게 한다. 그러나 이자원이 출성해 근왕군을 데려오는 사이 요토의 책략에 걸려 수비군에게 공세를 지시했고 그 틈을 탄 청군의 침투 작전에 걸려 피난하던 중 국청사에서 조선 수비군의 오인사격으로 조총에 맞아 사망한다. 인조가 적이 아닌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한 것이 알려지면 심각한 정치적 스캔들이 되고 소현세자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것이기에, 이자원은 오인사격한 병사들을 모두 처형하고 인조가 청군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발표한다. 사후 소현세자가 밀어붙여 인조 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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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왕
고종 이왕
원역사의 소현세자로 이자원과 동갑이다. 그랬기에 인조가 은연중에 비교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후 인조가 수비군의 실수로 목숨을 잃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한다. 어떠한 욕망도 없이 나라만을 위하는 이자원을 주시하며 그에게 영향을 받는 모습도 보인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젊은 왕자의 모습을 띄다가 서서히 철혈이 철철 넘치는 정치인으로 각성을 한다. 그래서 독자들 사이에선 "또 다른 주인공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즉위한 이후로도 이자원의 듬직한 백으로 있으면서 왕권 강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가도 사태를 착각하고 이용하려던 김류와 김상용 일파를 단숨에 사화로 척살시킨 것과 권대용의 난 때 이자원이 거론되자 바로 이괄의 난을 사례로 들며 이자원을 옹호한 것이 그 예시다. 학질에 걸려 죽을 뻔했으나 이자원의 도움으로 예수회 선교사가 가져온 키니네를 먹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청나라를 견재하고 북벌에 매진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하고 제위 4년만인 1641년, 원 역사보다도 4년 이른 30세의 젊은 나이에 세자와 중전에게 이자원과 삼정승을 중용하고 북벌의 대업을 완수하라는 유언을[10] 남기고는 요절한다. 묘호는 고종.[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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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 강씨
원역사의 민회빈 강씨. 남편의 즉위와 요절로 원역사와 달리 중전을 거쳐 대비에까지 오르게 된다. 우의정인 강석기의 딸이자 강유주의 언니로 이자원의 처형이다. 아들이 6살의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올랐기에 이를 보좌하는 수렴청정을 맡게 되어 정계에 본격 데뷔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강단 있는 여걸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종의 유지를 받들어 삼정승과 이자원을 밀어주며, 이의 일환으로 삼군부의 재설치하여 병조판서 이자원에게 제조(提調)를 맡긴다.[12] 다만 수렴청정 시국에 왕의 외조부와 이모부가 각각 우의정과 병조판서 겸 훈련대장을 맡은 꼴이라, 강씨 세도정치를 걱정하는 이들도 은연 중에는 있어서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예정. 사적으로는, 자신의 동생인 강유주와 각별한 사이이며 제부(弟夫) 이자원을 신뢰하는 편이다. 봉림대군에 대해서는 딱히 불신은 없지만 그래도 어린 임금을 아들로 둔 어머니로서 껄끄럽게 여기고 있다. 봉림대군의 반란 때 부친 강석기가 살해당하고 본인은 폐위당하면서 봉림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나온다. 이후 사실상 궁에 유폐되어 있다가 이자원의 빠른 남하로 쿠데타 세력이 피신하는 과정에서 용케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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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왕
순종
이백
원역사의 경선군. 아버지 고종의 요절로 여섯 살에 보위에 오르게 된다. 봉림대군의 반란으로 남한산성에 인질로 끌려간다. 반란 진압으로 다시 복위하지만 이미 실권은 통령이 된 이자원에게 모두 넘어가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다. 이자원의 명령으로 유학 공부를 관두고 서양 학문과 공화주의 사상 등을 배우게 된다. 명 멸망 후 제위에 오르나 천황처럼 실권 하나 없이 자금성에 갇혀 제사나 지내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만다. 사후 묘호는 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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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대군 이호
원역사의 효종으로, 북벌을 추진하는 소현세자의 명에 의해 어영청 도제조에 임명된다. 여기서는 북벌이 부왕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명분까지 생기며 더 열정적이다. 그러나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혈기왕성하지만 어설픈 면모도 많이 보여 북벌 때 무슨 사고를 치는 건 아닌가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이자원처럼 전장에서 활약하고 싶어하지만, 소현세자가 가진 이자원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에는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 다만 자신이 여차하면 오해받기 딱 좋은 위치라는 걸 자각하고 있어서 왕이 된 형님인 소현세자의 우스갯소리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고종(소현세자)이 승하한 후에는 어린 왕의 삼촌이라는 자리의 위태로움을 느끼고 불안해하다 적비의 이간질에 넘어가 폐주의 아들 이자원이 왕이 되는 것을 막는 반정을 일으키겠다며 계유정난 스타일의 반란을 일으키지만 이자원이 회군하자 이자원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남한산성에 또 틀어박히지만 결국 진압당하고 본인 뿐 아니라 왕족 대다수가 사형에 처해지고 몰락한다. 다만 아들(원 역사의 현종)은 너무 어려 죽이진 않았다. 보안사의 감시를 받고 있지만 남만승들이 세운 사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성직자가 돼서 조선을 떠날 것이라고 한다. 후일담에서는 아마쿠사 시로가 죽고 난 뒤에 사제의 몸으로 구주의 실권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 안드레아라는 세례명도 있으며 서양인한테는 현명왕이라고 불린다.
은근히 합리보다 감정과 혈기가 앞서는 인물인데, 군문을 맡은 왕제(王弟)의 몸으로 왕의 총신을 견제하려 든다든가,[13] 오랑캐 승려가 가져온 정체불명의 약초를 군문의 대장과 함께 죽어가는 임금에게 진상한다던가 하는 식이다.[14] 이런 혈기는 형을 살리는 데 공헌했지만, 반대로 급발진하여 역모를 일으키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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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균
가공의 인물. 남한산성에서 이자원이 홍타이지를 격살한 후 성 밖의 근왕군을 불러올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가도 토벌 이후 이자원이 가도총병 겸 훈련대장에 오르자 덩달아 훈련도감의 초관에서 파총으로 승진한다. 북만주에서 벌어진 아민과의 전투와 밀약 사이에, 고향에 있는 형제들이 반역도로 가담하려 들면서 앞날에 구름이 끼었다. 이 때 드러나는 가정사를 보면 형들은 어릴 적부터 영특한 것에 비해 막내인 철균은 범재였지만 경쟁률 수천대 1인 과거에선 형들은 계속 죽을 쒔고, 무과에 급제한 철균은 임금의 총신인 이자원의 측근이 되면서 승승장구하자 형제들과 사이가 나빠진 듯 보인다. 앞날을 위해 형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으며, 공으로 형들의 명줄과 가문을 건사하기 위해 토벌군의 선두에 섰고 형들을 직접 처단했다. 이호의 난 편에서 자신이 형들을 죽였으니 이자원도 자기 가족을 죽여야 한다는 식의 배은망덕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캐붕 논란을 일으켰다가 작가가 해당 파트를 삭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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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주
이자원의 아내. 슬하에 아들 이안세와 딸을 낳았다. 감정이 메마른 이자원도 아내인 그녀와 두 자식들은 나름 아끼는 듯 했으나 봉림대군의 난 와중 남한산성으로 끌려가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전투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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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세
이자원과 강유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어릴 적에는 조선 최고 권신 이자원의 아들로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사촌인 임금 이백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호의 난 당시 인질이 되어 남한산성에 유폐되었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강유주가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겪는다. 이후 PTSD를 겪은 것인지 어린 나이에 부친 이자원처럼 감정이 거세된 듯한 행동을 보인다. 후일담에 의하면 이자원이 70대에 사망한 뒤 중추원을 통해 통령직을 세습하여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집권하여 대한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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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신립의 아들이자 원역사의 훈련대장으로 까마득한 차이지만 이자원의 직속상관. 남한산성 전투 당시 이자원과 함께 맹활약해서 원상 업무를 맡고 소현세자가 즉위하고 나선 좌의정에 임명되며 공서와 근왕파의 수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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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
의주부윤으로 청천강에서 퇴각하는 청군을 막아섰으며, 가도 토벌전에서도 이자원의 계책대로 심세괴를 도와주러 온 청군을 일부러 깊숙히 끌어들인 뒤 박살난 청군 토벌에도 활약한 무장. 그러나 이쪽도 명나라 관직을 받은 덕에 사대주의적 관념이 강해 호란 때도 "가도 명군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여 답답함을 유도한다. 그래도 이쪽은 청서와는 다르게 이자원 덕에 공을 세운 것도 많고 결정적으로 이자원이 총병직을 받아온 덕인지 그에게 나름 적극 협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명나라의 사신들이 피살되자 이자원과 대립하다 진중에 억류당했지만 이자원의 반간계에 따라 명나라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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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류
병자호란이 승리로 끝난 이후 새로 즉위한 소현세자의 측근이 된다. 논공행상을 비롯해 이자원과 같이 왕의 깃발이 되어야 했으나…. 청서와 공서의 사이에서 관당을 결성. 세를 끌어모아 국론을 좌지우지하는 킹 메이커가 되려고 한다. 단순히 왕의 총애를 받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왕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권신이 되려고 한 것. 이자원에게 접근해 서녀와 혼약을 제안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며 권신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기회를 노린 소현세자가 암약한 소문에 선동되어 "가도의 명군을 공격한 이자원을 역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심세괴와 가도의 명군을 옹호하다가, 심세괴의 반역 사실이 들통나면서 완전히 상황이 반전된다. 그제서야 자신이 왕의 살생부에 올랐음을 깨닫고 사직을 자처하지만, 소현세자는 그를 봐줄 생각이 없었기에 정당한 명분을 쥔 소현세자에 의해 가문이 풍비박산 난다. 애지중지하던 딸은 노비로나마 돌보아 줄 신경진의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독을 먹고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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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원역사에선 강화도에서 자폭을 했던 인물이지만 여기선 이자원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후 동생인 청음 김상헌이 자살해 공석이 된 청서의 수장이 되어 청서를 수습하지만 그 과정에서 관당과 협력하여 소현세자의 눈 밖에 나고 결국 관당과 청서 일부가 숙청된 정축옥사 때 관직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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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대표적인 주화파로 여기선 이자원의 개입으로 호란의 전세가 뒤집히면서 약간 피해를 봤다. 바로 주화를 주창한 인물로서 전후 파직당한 것. 그래도 호란 후반의 정세 수습에 기여했고 능력도 있는지라 많은 독자들이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간 다시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었고, 실제로 소현세자가 심기원의 추천서를 가납하는 형식으로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봉림대군 반란 때 결국 봉림대군 편에 서게 되며,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보려 반군과 북벌군 사이를 오가며 고군분투하지만 끝내 남한산성 포위전이 끝난 뒤 김상헌의 사당에서 자결한 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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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
봉림대군의 스승이자 산림의 거두로 정축옥사 이후 본격적으로 조정에 발을 들인다. 적극적인 북벌론자이자 반대동법파로서 정치활동을 벌이며 이자원에 대해서도 이전의 청서와 달리 아군으로 인식하고 행동 중이다. 다만 이자원이 너무 젊은 나이에 출세해서 그런지 약간의 우려는 하고 있어 봉림대군을 통해 자신의 우려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후 권대용의 반란 때 이자원이 거론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일단 이자원을 추궁해야 한다고 하지만 임금이 긁어 부스럼의 대표 사례였던 이괄의 난을 거론하자 바로 버로우 탄다. 이후 제자들인 양송과 이자원간의 정치 파워 게임에서 제자들이 패하면서 세력이 위축되고 나이도 있는 지라 송시열·송준길이 네덜란드에서 귀국할 즈음에는 이미 사직 후 낙향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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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원역사에서 효종부터 숙종시기까지 조선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인 겸 한국 성리학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유학자로 남한산성에서 대군사부로서 있다가 청나라와 화친을 맺는다는 소식에 반발하여 유생들을 이끌고 시위를 전개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 한다. 그 외에는 등장이 없는데 인조 시기까지는 대군사부직을 맡고 있긴 하지만 원역사와 달리 왕의 스승이라는 엄청난 위치가 아닌데다 나이로만 따져도 30살인, 아직 젊은 축에 들어가고 스승인 김집이 현역으로서 뛰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던 찰나 권대용의 난이 진압된 이후 청서측에서 재기를 위한 무관 세력 포섭 과정에서 이자원을 포섭하겠다고 나서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자원의 약점을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 약점은 이자원의 아버지가 영창대군 암살에 직접 가담했다는 것이었으며 이후 이자원과 틀어지자 성균관 유생들을 선동해 소를 올리지만 상대가 청나라도 이간질로 뒤흔든 이자원인지라 쉽게 발려버리고 목숨 부지도 될까 말까 할 처지로 몰리게 된다. 이후 산림이 완전히 나가리 되면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봉림대군에게 부탁해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고 3년 뒤 완전히 깨어있는 모습으로 귀국하며 이자원의 추천을 받아 원자의 스승으로 다시 복직하게 된다. 원래 모화주의자였으나 유학 이후에는 조선이 중원을 정복하고 천하를 도모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서슴 없이 내뱉는 극우 인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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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길
원역사에서 송시열과 더불어 양송으로 불리던 정치인 겸 유학자로 권대용의 난 이후 이자원을 청서로 끌어들이겠다고 주장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이후 송시열과 함께 이자원을 설득하러 가며 역시나 이자원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담으로 송시열과 다르게 정치인보다는 학자에 더 어울렸다는 사실을 고증한 것인지, 표정 관리·눈치 등 정치질 관련 능력에는 서툰 모습을 보인다. 이자원과 관계가 틀어지자 성균관 유생들을 직접 선동해서 약점을 상소로 올리지만 이자원의 좆간질에 말리며 본인이 직접 추포되는 신세가 된다. 역시 송시열과 함께 네덜란드에 갔다오면서 완전히 깨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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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사
홍익한· 윤집·오달제의 삼학사로 초기에는 강력한 반청인사들이라 아군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지나친 사대주의적 면모로 인해 소현세자가 관당 숙청을 위해 퍼뜨린 가도 건과 관련된 소문에 넘어가 이자원을 파직할 것을 요청해 적이 된다. 그러나 심세괴의 반역 사실을 몰랐다는 게 결정타로 작용해, 대국에 반기를 든 역적으로 몰려 국문장으로 가게 된다.[15] 그래도 강직한 인물들이라 모진 고문 속에서도 심세괴의 반역에 동참했다는 허위 자백은 하지 않았지만, 이후 전개를 보면 결국 사약을 들이키며 세상을 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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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
항왜 출신 조선 군관. 쌍령 전투 당시 항왜병으로 이루어진 별동대를 지휘하여 아이신기오로 요토 휘하의 팔기군을 측면에서 타격하여 조선군의 승리에 공헌한다. 전후 훈련도감 중군이 되어 북벌을 준비하는 조선군을 훈련시킨다. 늙은 나이에도 여러 전장에 종군하던 중 오이라트와의 전투가 끝난 뒤 진중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이 때, 이자원에게 그의 내면에 대한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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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
원역사에서 대동법의 확대 실시에 큰 공을 세운 명재상. 첫 등장은 동지사로 명나라에 가있다가 책봉사로 온 이자원과 만나는 것이 첫 등장. 민심을 중요시하던 성격 답게 이자원이 감자를 사들이자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기도 하며 북벌에 대해서도 민생을 이유로 들어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이자원은 그가 명신임을 알지만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들어갈 수 있을지 회의감을 가지기도 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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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림
원역사에서 김화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수. 원역사랑 달리 김화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조정의 명을 받고 퇴각하는 청나라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후 부원수로서 청나라 멸망전에 참여했으며 명나라 멸망전 이전에 노환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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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어영대장으로 어영청을 이끌며 훈련도감을 견제한다. 봉림대군에게 반란 참여를 권유받지만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진압군에 참여한다. 이후 명나라 멸망전에서 숭덕제의 자결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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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상
충청도 속오군 기총. 충청도에서 인망이 매우 좋은 군관으로, 김예상만 아니었다면 속오군 수백명이 포함된 천 단위의 반군은 처음부터 만들어질 수 없었을 수준이라고 한다. 이자원도 가담했다는 권대용과 홍영진의 거짓말에 속아 반란에 가담한다. 아니나다를까 이자원과 훈련도감, 어영청이 포함된 토벌군에게 크게 패해 공산성에 틀어박혔고,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분노하지만 이미 의미가 없었다.
결국 홍영진의 배반으로 문이 열리고 몰려온 토벌군에게 포위당한 채로, 자신이 어리석었다며 병졸들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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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용
원역사에서 안익신 옥사의 주동자 중 한 명. 원역사대로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원역사에선 임경업의 이름을 팔았다면 여기서는 이자원의 이름을 팔아 세를 불린다. 그러나 이건 거짓말이었던 만큼 반란을 일으킨 결과 이자원에게 탈탈 털려 공산성에 틀어 박혀 왕을 자처하는 등 정신 나간 행보를 보이다 결국 도감군에 추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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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신
원역사에서는 권대용과 함께 반란의 주모자였던 인물. 여기선 역사의 변화로 훈련도감에 입대하여 토벌군 소속이 되었다. 이후 진강 전투나 청나라 멸망전, 송산 전투에서도 도감군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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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익
훈련도감 마병별장. 실존인물이다. 첫 등장 당시에는 도원수 라인이라 이자원을 무시했으나 훈련대장으로 이자원이 임명되며 그에게 굴복한다. 뇌물을 많이 뿌렸다가 먹튀 당해서 훈련도감에서 깡술을 들이키다 취해서 이자원에게 걸리는 모습하며 이자원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 마냥 쩔쩔매는 등 군담극 내지는 대하사극 풍인 소설상에서 그나마 개그를 담당해 주는 캐릭터. 본디 이자원은 그를 부패 군인으로 보고 쫓아내려 했으나 그래도 맡은 일은 제대로 해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놔두었다. 평하기를 공명심이 없고 자기보신에 능하기에 도발이나 계책에 말려들지 않으므로 단지 지키기만 하면 되는 요충지나 이기는 전장에서는 제 역할을 다 한다고. 이자원이 정권을 잡은 이후 쉽게 끝날 줄 알고 나선정벌에 참여했다가 북방에서 몇 년이나 썩는 등 개고생을 하고 말년에 중추원 의원으로 천거되어 도성으로 복귀했다. 전적이 워낙 좋아서 사후 현대에는 당대의 명장으로 평가받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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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원
병자호란 당시의 도원수. 원역사에서도 전후 훈련대장의 직위에 올랐던지라 여기서도 훈련대장 유력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이 세계상에는 이자원이 있었기에 훈련대장이 되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이자원에게 부패 관련 약점을 잡혀버리게 되고 이를 눈 감아 주는 조건으로 가도 부총병으로 가게 된다.[17] 그 곳에서 자신의 모든 정치력을 동원하여 조선에 득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이후 명이 조선에게 금주의 방어를 맡기자 그 책임자가 되어 또 멀리멀리 떠나게 된다….[18] 결국 청나라가 멸망하고 조선이 명나라까지 패퇴시킨 뒤에야 형조판서로 복직하고는 이자원이 벌인 대숙청을 직접 주도하여 완전히 이자원의 충견이 되었다.
5.3. 명나라(멸망) → 조선령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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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제
망국을 향해가는 명나라의 황제. 무능하지는 않지만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의심병과 나라의 부패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홍타이지를 폭사시키고 청군을 물리친 이자원을 두고 "명에 귀화한다면 외국 출신인 너를 의심하지 않고 중용해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그가 광해군이나 인조보다 한 수 더 뜨는 의심병 환자임을 아는 이자원은 이를 거절한다. 그래도 이자원에게 가도 총병 직위를 내리며 가도 재건을 지시하는 한편, 적비라는 첩자를 붙여 이자원을 감시하게 한다. 그러나 이자원이 원숭환의 아들 원문필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 인조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 조선이 명나라의 관할이던 동북을 병탄하는 등의 사건으로 인해 의심병이 폭발해 명나라의 관직을 받은 이자원을 명나라로 소환하라고 명하며 명의 앞날에도 먹구름을 잔뜩 끼웠다. 이후 청이 멸망했다는 소식에 잠시 기뻐했지만, 곧이어 조선이 광개토대왕릉비를 발견해 제사를 지내고 요동으로 보낸 칙사가 이자원의 사주를 받은 청의 잔당에게 피살되자 끝내 의심병이 폭발해 1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공하다 마지막 남은 명의 여력을 완전히 말아먹고, 반란에 시달린 끝에 조선의 침공군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자 자결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본인의 실책과 잘못은 고려도 하지 않고 신하들을 숙청한 주제에 끊임 없이 반복하는 남 탓과 똥볼 탓에 마지막까지 매우 추한 모습만 보여 원 역사의 비장한 모습도 퇴색되어 버리고 독자들의 평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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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공 주자랑(왕가명)
부마 왕정의 조카로 다른 황족들과는 결이 다른 정통성과 명분을 확보하려 한 이자원의 의해 가짜 태자로 둔갑되어 즉위하였으나 얼마 후 조선왕에게 선양을 하여 봉양공으로 책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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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 오양
명나라의 장군이었으나 송산 전투에서 명군이 괴멸하자 아들 조선에 투항했다. 명나라의 멸망 후 주왕으로 책봉되었다. 작중 시점에서 지력이 다한 낙양이 옛 수도라는 이유로 그 곳에 천도를 한다던가 여색에 빠졌다던가 외왕내제를 추진하는 등의 문제로 오삼계를 골치 아프게 만든다. -
오삼계
오양의 아들로 원역사에서 남명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인물이자 삼번의 난의 주동자로, 여기서는 아버지를 따라 요동 전선에서 복무중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숭정제의 가도 토벌령이 떨어지자 이자원을 지원할 명군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가도 토벌에 나서고, 거기서 활약하며 독자들에게 유력한 가도 부총병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자신과 동갑인 이자원에 대해 호승심을 느끼고 있다. 이후 예상대로 가도 부총병에 임명되며 청나라가 내전이 벌어진 틈에 재빠르게 진강~봉황성에 이르는 동팔참 일대를 수복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봉황성에 주둔하며 청의 공세를 3년 동안 막아내다 도르곤이 직접 나서자 진강까지 밀려나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조선의 북벌에도 참전해 청 멸망에 일조하지만 명 조정에서 요동 수복을 부르짖으며 침공했고 오삼계는 바로 조선에 붙는다.[19] 아예 아버지인 오양에게 자신은 이자원과 함께 할거니 아버지도 빨리 합류하는 게 좋을 거라고 서신까지 보낼 정도. 이후 벌어진 송산 전투에선 아버지인 영원총병 오양·계요총독 조대수·좌도독 홍승주와 함께 완전히 조선에 넘어왔으며, 이자원으로부터 차후 조선이 중원을 정복하면 땅을 떼어 번왕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열심히 명나라를 약탈하는 중이다. 청나라에게 항복하여 직접 명나라의 숨통을 끊은 장본인 답게 이 작품에세도 오로지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쫓아 명나라 멸망의 선봉을 맡았고 수년간 조선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화북 전체를 오씨가 다스리는 주나라의 영역으로 분봉받고 본인은 세자가 되었다. 다만 아버지의 뻘짓 때문에 수습을 하느라 골치가 아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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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
정지룡
강남 지방에서 활동하는 해적이자 상인. 정성공의 아버지이다. 원역사에서 명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나름 명에 충성했던 것과 달리, 일본과 생사 무역이 중단되어 타격을 입고 설상가상으로 사가법에 탄핵되어 숭정제에 소환될 지경에 이르자 반란을 일으켰다. 조선에 협조한 보상으로 명나라의 멸망 후 월왕으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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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
조대수
명나라의 장수로 청이 조선의 공격을 막는 동안 군을 이끌고 대동(大同)을 탈환했다. 홍승주와 오양과 마찬가지로 조선과의 전쟁에서 명군이 패배한 이후 현실을 깨닫고 조선에 투항했다. 명나라 멸망 후 조왕으로 책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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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
홍승주
명나라의 거의 마지막 남은 명장으로 반란진압을 총괄했으나 숭정제의 명에 마지막 남은 10만의 정예군을 이끌고 억지로 요동까지 올라가 조선과 전투를 벌였다. 홍승주 본인의 군재는 뛰어났으나 이미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인 데다 이자원이 지휘하는 조선군을 당해낼 순 없었고 처절하게 싸우다 체념한 후 이자원에게 항복한다. 명나라의 멸망 후 오왕으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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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
시랑
정지룡과 마찬가지로 해적 군벌이었으며 정지룡의 세력이 커지는것을 견재한 이자원의 의도에 따라 명나라의 멸망 후 민왕으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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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왕 좌량옥
호광 일대를 지키던 명나라의 장수로 북경이 함락되자 남명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고 이자원군에게 투항했다. 순순히 호광을 넘기고 장헌충의 진격을 막은 공으로 명나라의 멸망 후 초왕으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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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괴
모문룡 사후 가도 총병직에 앉은 인물. 호란이 한창일 땐 가만히 있다 청군이 후퇴하자 그제야 기어나와 "같이 저지할 테니 조선군 지휘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다 대차게 씹히고, 따로 청군과 길 트기를 협상하다 그것이 청의 함정이었던 지라 청군에 탈탈 털린다. 이후 열심히 명나라 고관들에게 뇌물질을 하는 한편, 청나라와도 양다리를 걸치려다 휘하에 있던 조선인 승려 독보가 이 사실을 조선 사신단에 알리며 난처한 상태에 놓이자 결국 청으로의 귀순을 결정한다. 그러나 청의 지원보다 숭정제의 심세괴 토벌령과 그에 따른 조선군의 움직임이 더 빨랐고, 결국 포로로 잡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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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
청나라가 병자호란에서 패배한 여파로 명군의 전력이 상당수 보존되었고, 그 덕에 원 역사보다 일찍 홍승주가 이끄는 토벌대에게 패배해 사망하고 세력은 괴멸된다. 그러나 이미 이자성 뿐만 아니라 이미 수대에 걸친 황제들의 폭정으로 곳곳에서 엄청난 규모의 민란이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어, 명나라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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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충
원역사에서도 활동했던 농민반군 지도자. 이자성이 토벌된 뒤에도 계속 활동하여 명나라 조정의 골치를 썩인다. 명나라의 주력군이 조선에 꼴아박힌 후엔 아예 사천 전체를 장악하고 감숙과 섬서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다. 그러나 원 역사처럼 학살자로 변하진 않았으되 후궁들과 성교 중 복상사로 허무하게 사망하고 그가 세운 대서국은 대한에 의해 촉나라와 대리국으로 분할되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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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법
명나라의 관리이자 원 역사에서는 남명 최후의 충신 중 하나. 당시 막장이던 다른 명나라 관료들과 달리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로, 작중에선 강남에 파견되어 정지룡이 뿌리는 뇌물을 일절 받지 않고 부정을 밝혀내어 탄핵시키나 궁지에 몰린 정지룡이 반란을 일으키며 본의 아니게 명나라의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낙양성의 명나라를 강남에서라도 존속시키려는 계획에 엮여 남경에 머물다 북경이 함락되고 숭정제가 자결하자 마지막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결사항전했으나 끝내 이반된 민심을 잡지 못하고 자결하여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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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실존인물. 작중에선 금의위의 수장으로 숭정제의 최측근이다. 적비에겐 상관. 적비를 통해 조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으며, 칙사로 조선에 파견되어 조선군의 파병을 요구하는 것으로 첫등장한다. 적비의 회상을 통해 원래라면 처형되었어야 할 적비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정체를 숨기고 철저한 금의위의 수족으로 부려먹었음이 드러난다. 이후 숭정제가 조선 정벌을 외치자 조선군의 정예함을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제일 먼저 반대했으나, 곧바로 숭정제에 의해 동창으로 끌려간다. 숭정제가 조선에 대한 공작을 벌일 때 조선에 첩보망이 있다는 이유로 복직되었으나 더 이상 숭정제와 같은 폭군에게 놀아날 순 없다며 조선이 명을 침공하자 나라를 반쪽이나마 남기고 권신이 되기 위해 적당한 황족을 옹립하고 남명을 건국하지만 조선군의 상상을 초월하는 진격속도와 각 지방을 지키던 장군들의 배신으로 남명은 불과 반년도 유지되지 못하고 남경이 함락되며 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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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비
이자원의 명나라 방문 이후 숭정제가 이자원에게 붙인 첩자. 조선인 출신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조선어 실력이 출중하며 무예도 뛰어나 가도 토벌전이나 기야하찬 지원전 때도 활약했다. 이자원은 그가 첩자인 것을 진즉에 눈치채서 완전히 신뢰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본인의 호위직을 맡기곤 있으며 적비 본인도 이자원의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낙양성에게 이를 발설하지 않는 등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이쪽도 떡밥이 있는데 바로 이자원에게 빚이 있다고 본인이 말한 것. 이에 대해 원숭환의 아들이라는 설, 사르후 전투 당시 희생된 무명 용사의 자손이라는 설 등 정체 떡밥이 수두룩히 나왔다. 126화에서 정체가 드러났는데, 바로 원숭환의 양자인 실존인물 원조기(袁兆基).[20][21] 청나라 간자임을 간파당한 의붓동생 원문필을 이자원으로부터 살리기 위해 스스로 정체를 밝혔다. 이후 이자원은 이용가치가 있는 적비를 살려두기로 한다.
하지만 고종이 승하하고 이자원이 북벌군을 이끌고 떠나자, 어린 왕의 힘센 삼촌이라는 자리의 위태로움에 불안해 하던 봉림대군의 불안감을 찔러 봉림대군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예상 외로 쿠데타 세력이 빠르게 밀려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계획이 틀어지나 했지만 그의 진짜 계획은 명나라의 보존이었기에 설령 쿠데타가 빨리 진압되고 이자원이 숭정제를 밀어낼 명분을 얻어 숭정제만 없애도 명나라는 절반이나마 살아남을 수 있기에 쿠데타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적비에겐 남는 장사였다.
내란에서는 혼란을 틈타 탈출에 성공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결국 명은 멸망했다. 이후 복명 운동을 시도하다가 원문필에게 토벌당해 사망한다.
5.4. 청나라(멸망) → 조선령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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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
본작 시작시점의 청나라 황제. 등장 회차는 딱 1화에서만 나오지만, 바로 대포를 맞고 죽어서[22]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이렇게 생전 등장은 끝나지만 한 나라의 군주인 만큼 그 죽음으로 인한 나비 효과가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라 할 정도로 존재감이 있는 인물이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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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다이샨
홍타이지가 허무하게 죽고 나서 병자호란 원정군의 총지휘권자가 되었다. 한이 죽었으나 전쟁을 멈출 순 없었기에 근왕군을 막고 요토의 책략대로 침투 작전까지 동원하나 모두 이자원에 의해 실패해 결국 남한산성에서 철수한다. 이후 갑사창 전투에서도 패하며 궁지에 몰리자 결국 사죄문을 직접 쓰는 방향으로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 나선 나이도 있고 정치적 입지도 줄어버린 지라 칩거하게 된다. 청이 멸망한 뒤 이자원으로부터 몰락한 호거를 대신해 일가를 이끌고 몽골로 가 오이라트를 막을 것을 제안받지만, 이미 삶과 권력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뒤였기에 그의 제안도 거절하고 칩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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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요토
다이샨의 아들이자 이 소설의 초반 보스 포지션으로, 경상도 근왕군 저지를 위해 쌍령으로 출진한다. 그러나 원역사와 달리 쌍령에 이자원이 있어 패배를 피하지 못했고 이에 아버지에게 찍히자 수비군을 성 밖으로 끌어내고 그 사이에 성으로 침투하자는 작전을 제시하나 이것도 이자원 때문에 실패한다. 결국 양홍기의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며 화친의 조건으로 조선에 압송되어 참형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참형 직전에야 인조의 죽음이 조선의 책임 돌리기라는 걸 깨닫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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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호거
홍타이지의 장남으로, 원역사에서는 순치제에게 밀려 황제가 되지 못하고 이후 도르곤에게 숙청당한 인물. 소설 내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조선에 보복하자"며 한성 및 조선 왕릉의 파괴를 주장하는 강경파의 모습을 띄었다. 홍타이지의 이른 사망 탓에 순치제가 태어나지 못하며 나비 효과가 발생해 한의 자리를 두고 도르곤과 경쟁하나, 다이샨이 강덕제를 내세우며 한이 되진 못했고, 대신 도르곤과 함께 섭정왕이 되어 팔기를 양분했다. 도르곤에 비해 훨씬 더 권력을 손에 넣자는 야심이 강해 적극적으로 도르곤을 견재하며, 종국에는 강덕제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한이 되겠다는 목표를 품고 있다. 이를 위한 패를 늘리기 위해 과거에 홍타이지가 유폐시킨 정적 아민을 독단으로 사면하고, 군권을 쥐어주고, 동여진에 파견해 재기시키는 등, 나라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아민이 봄보고르를 완전히 토벌하자 자신의 권위도 세우고 악화되어가는 식량사정도 해결할 겸 화북으로 출병하지만, 그로 인해 빈틈을 보여 남겨둔 지르갈랑 마저 패퇴하고 순식간에 자신 휘하의 한 줌의 세력만 가진채 고립되어 버린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나머지 몽고아문 승정 에제이를 다시금 몽골의 칸으로 옹립하여 몽골을 청나라에서 그대로 독립시키고 자신은 만주의 한이자 몽골의 태사로 취임해 버리면서, 사실상 청을 2개로 쪼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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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도르곤
홍타이지 사후 호거와 같이 팔기를 양분한 거물. 홍타이지 사망 소식을 듣고 철군을 주장했으며, 갑사창 전투 당시에는 조선의 주력이 갑사창으로 올 것을 간파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모습하며 퇴각 때 조선군에게 포위되자 가도의 명군을 꼬셔 탈출로를 만들어내는 등의 면모를 보이는 이자원 최대의 적수.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의 최종 보스 유력 후보로 자주 거론하고 있다. 호란 이후에는 우섭정왕의 직위에 올랐으며 좌섭정왕인 호거와 지속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몽골이든 조선이든 명나라이든 분명 청나라를 멸하려고 작정하고 공격해 오리란 것을 확신하고 있어서 나라의 국력회복을 우선순위로 두었지만 호거를 무능하다고 판단하고 그의 정치적 야심이 급박한 지라 호거를 먼저 몰아낼 것을 다짐한다. 호거가 몽골을 거쳐 화북을 약탈하러 간 틈을 타 자신의 친위세력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청의 대권을 장악하지만, 아직 호거를 처리하기도 전에 강덕제와 범문정의 견재로 그들과 권력투쟁을 준비중이다. 진강에서 패배를 겪은 뒤 범문정마저 유폐시키고 강덕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나 이자원이 이끄는 조선군 5만이 요동으로 북진해오자 심양에서 조선군과 마지막 대회전을 벌인다. 원역사에서 대륙을 장악한 도르곤 답게 팔기를 이끌고 야전 역량이 강화된 조선군에게도 큰 출혈을 강요하였지만 끝내 근본적인 전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패배한 뒤 포로로 잡혔다. 이후 포박당한 상태로 이자원과 대화를 나눈 뒤 그에게 직접 참수당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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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제(아이신기오로 쇼서)
홍타이지의 5남.[24] 이 작품에서는 호거와 도르곤이 홍타이지의 후계 문제로 대립하자 내전을 우려한 청 내부의 목소리로 인해 9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실권은 모두 호거와 도르곤이 쥐고 있어 무시당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마냥 허수아비로 있기는 싫어서 범문정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실상 자신의 편을 드는 것이 범문정 밖에 없었기에 그에 대한 의지가 큰 편. 하지만 도르곤이 범문정을 꺾고 유배시켜 버리며 다시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도르곤의 찬탈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다. 도르곤이 몽골 원정을 나간 사이 범문정을 다시 불려들이러 하나 이미 살해당한 것을 알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이후 조선군이 도르곤을 포함한 청군을 모조리 갈아버려 청나라가 저항할 여력조차 남지 않자 "황제가 되어 처음으로 내리는 결정이 나라의 문을 닫는 것이라니…."라고 한탄하며 조선에 항복, 그대로 청은 멸망하고 망국의 황제가 되고 말았다. 조선이 대한으로 국체를 변경하고 중추원이 설치된 뒤엔 중추원 의원이 되었다. 본인 왈 맞지도 않는 황룡포보다 흉배 놓인 단령이 더 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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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수크사하
도르곤의 측근. 도르곤이 등장하는 장면이면 도이격 내지는 이인물이 거의 반드시 같이 나올 정도의 최측근이다. 청나라 멸망전 와중 박철균에게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고, 주군 도르곤도 죽었으니 이제 다른 뜻을 따르지 않겠냐는 이자원의 제안으로 심양에 보내져 강덕제에게 항복을 권유하였다. 청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이자원의 부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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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왈기야 오보이
청나라의 장수. 이 작품의 청나라는 강자의 기준을 보통 오보이로 잡는다. 그래서 오보이가 이자원에게 1:1 대결에서 밀리자 다들 경악할 정도다. 호거를 따라 몽골로 들어갔다가 그가 오이라트에게 패해 몰락한 뒤엔 조선에 항복하여 조선이 괴뢰국화한 몽골의 장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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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문정
청을 일으켜 세운 한인 출신의 명신. 홍타이지의 허무한 죽음으로 범문정 역시 권위와 뒷배를 잃은 허수아비 신세로 팔기를 양분한 두 친왕들의 거수기로 전락한 상태. 그 상태에서도 나라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능한 호거를 끌어내리고자 정변을 일으켰지만 아민을 양람기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포섭한다는 계획을 은폐하고 강덕제에게 신설한 군기대신의 직위를 받는 등 한족 중신으로써 만주족인 도르곤과 그 일파와도 수면 아래에서 권력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엔 도르곤과의 권력투쟁에 패하고 유배되었으며, 이후 도르곤이 몽골 원정을 나가기 직전에 범문정이 강덕제와 다시 연합하는 것을 우려하여 주살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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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중명
회순왕의 직위를 가진 가도 명군 출신 청장. 원역사대로라면 승승장구했겠지만 여기선 이자원의 개입으로 홍타이지가 나가리되며 본인의 입지도 좁아져 퇴각 준비를 위해 갑사창에서 물자를 옮기면서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조선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2번이나 배신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만 한인 출신 쿠툴러들이 대거 조선에 투항해 밀리게 되고 결국 자살하려 하지만 숨이 끊어지기 전에 조선군에게 목이 잘리며 자살도 제대로 못하고 적군에게 목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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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쇼토
다이샨의 차남으로 형인 요토가 병자호란에서의 연이은 패전으로 좌천된 덕에 형이 지휘하던 양홍기의 지휘권을 얻게 된다. 이후 심세괴가 항복 소식을 전하자 곧바로 이들을 받아들여 그 물자를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본인이 직접 원정을 가지만 이자원에게 역시나 패하고 한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지만 그마저도 이자원의 이간질에 걸리며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고 평민 신분으로 강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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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
원역사에서 이괄의 난에 참여했다 죽음을 맞은 한명련의 아들. 여기서는 쇼토의 가도 원정에 참전했다가 이자원에게 패하고 쇼토에 의해 조선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 쓸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이자원의 큰 그림으로 풀려난 한택이 모든 진실을 밝히며 쇼토가 실각했기에 최소한의 복권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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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아민
청 내부의 권력투쟁에 밀려서 한참을 유폐당한 상태였다가 자기 세력을 불리려는 호거에 의해 기야하찬이 주도한 동여진 반란 토벌을 위해 다시 나서게 된다. 이후 자신에게 다시 힘이 주어지자 이를 내심 기회로 여기고 있었고 앞에선 기야하찬과 그를 도우러 온 이자원과 싸우면서 뒤로는 이자원과 협상해 사실상 자립할 기반을 다시 만들게 된다. 다만 원역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남 좋은 일만 하고 갈 것으로 독자들은 예상 중이다. 봄보고르의 세력을 완전히 토벌하고 그의 목을 베어버린 뒤에도 몸이 좋지 않다는 묘사가 계속 나왔는데, 범문정의 본인의 팔기인 양람기를 돌려주겠다는 제안에 응해 회령에서 심양으로 회군하여 지르갈랑과 호거의 세력을 토벌한다. 이후 동만주 지역에서 조선과 교역하며 동해여진을 복속시켜 세력을 불리고 다시 재기할 기반을 쌓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거동조차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죽음을 앞두게 되었고, 이대로 아민이 죽고 청나라 조정에 다시 착취당할 것을 우려한 동해여진이 조선군을 끌어들여 친 도르곤파를 제압하여 예상대로 조선 좋은 일만 하게 되었다. 결국 조선이 자신이 일군 동만주 지역을 그대로 꿀꺽하는 것까지 보고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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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라 잉굴다이
용골대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청의 장수로 전후 조선과 명을 이간질하기 위해 소현세자의 조문을 명목으로 한 사신으로 파견되어 일부로 명을 쳐서 천하를 나눠가지자, 조선의 공주를 청 황제의 후궁으로 삼자는 등의 망발을 고의로 지껄이다가 그대로 투옥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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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필(袁文弼)
실존인물. 원숭환의 유복자. 원숭환의 죽음 이후 청으로 망명하여 쿠툴러(노예병)으로 지내고 있다가 도르곤이 반간계를 노리고 간자로 보낸다.[25] 간자임을 간파당한 이자원에게 죽을 뻔 했으나, 적비가 자신의 정체(원숭환의 양자이자 원문필의 의붓형 원조기)를 이자원에게 밝힘으로써 살아남게 된다. 다만 원문필은 적비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후에 조선군에 종군하게 되며 요서 공략전 때는 원숭환의 아들이라는 점을 활용해 원숭환의 부하로 있었던 요서 병력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공을 세운다. 명나라가 완전히 멸망한 뒤에는 옛 상관의 아들인 그를 각별히 여긴 조왕 조대수의 도움으로 동관후의 벼슬을 받고 그의 아버지의 고향인 동관으로 간다. 후에 복명 세력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형인 원조기(적비)를 죽이게 되고 그의 눈을 감겨주며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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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채
청에 투항한 명나라 출신 장수 이영방의 아들. 요양성의 한인 관리로 있다가 아지거의 명에 따라 조선군의 진군을 늦추기 위한 가짜 사절로 파견된다. 하지만 조선군은 이를 역이용해 진군을 늦추는 척 요양을 곧바로 공격하고 결국 성안의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옥에 갇힌다. 이후 이자원과 내통해 다른 한족 관리들과 함께 요양성과 아지거의 목을 그에게 바친다. 후에 이자원이 의로운 선비 6명만 희생하면 항복을 안 한 것에 대한 도성[26]을 취소하겠다고 하자 가족들과 함께 선뜻 나섰으며 이자원은 이에 감복해 그의 변발만 자르고 놓아주었으며, 요양의 한인 백성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데…. 사실 이 모든 게 이자원과 짜고 치는 연기였다. 이유는 그를 이런 식으로 영웅으로 만들어 놓으면 청 휘하에 있던 한인들은 청의 멸망 이후 명이 아닌 그를 중심으로 모일 것이고, 이영방 일가는 명에게 빼도박도 못 하는 배신자이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조선에 협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에 명이 요동 수복을 명분으로 쳐들어올 때도 이자원의 명을 받은 "요양의 여섯 선비"가 명나라가 요동 사람들을 죽여 화근을 없애려 한다고 선동하자 요동 한인들 사이에 급속히 반명 기조가 생기고 녹영병 출신들이 대거 조선군에 종군한다.
5.5.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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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
이천일류의 시조로 알려진 일본의 유명한 검호. 시마바라의 난 당시 진압군으로 출전해 난이 진압되고 벌어진 참극을 보고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첫 등장했으며, 이자원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마침 아들에게서 조선에 갈 사신단에 자신이 포함되었음을 듣고 기대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조선으로 가서 이자원과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며 조선에 잠시 남기를 청한다. 이후 훈련도감에서 검술 교관을 맡아 항왜병과 조선의 전술이 테르시오 기반으로 바뀌는 와중에 일부 검을 포기하지 못한 살수들을 교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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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원역사에서 시마바라의 난의 주동자. 하라 성에서 농성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했으며, 절망적인 전황에 순교를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자원이 손을 써서 성에 진입한 예수회 신부 브루노 가르시아의 설득과 성에 숨어 있던 간자를 발견하면서 이자원을 '주님의 사자'로 생각하게 되고, 때맞춰 장인인 아리에 켄모츠 또한 망명할 것을 다시금 설득하면서, 결국 조선으로의 망명을 결정하고 망명객들을 이끌고 조선으로 가게 된다. 만주 일대에 수많은 키리시탄들을 이끌고 정착한 뒤엔 자신들을 구원한 이자원을 주님이 보낸 성자로 여기며 자신을 따르는 왜인들을 이끌고 적극적으로 조선이 벌이는 전쟁에 참전했다. 후일담에 의하면 칭제건원 이후 대한이 유구국을 일본에게서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벌인 구주정벌이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100년간 9차례나 전 동아시아의 기독교도들을 모아 십자군을 일으켜 일본 서부를 거의 초토화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일본 전체를 정복하는 것은 실패하였고, 규슈는 20세기 초반 대한의 자치공화국이 된다.
5.6. 몽골
- 아부나이
- 다르한 조리그투
5.7. 오이라트
- 바투르 홍타이지
5.8. 네덜란드
- 니콜라스 쿠케박케르
5.9. 예수회
5.10. 온조왕
남한산에서 (현대인) 이자원을 병자호란기로 빙의시킨 인물.본편에서는 산신령으로 호칭되다가 본편 마지막 화에서 온조왕이었음이 밝혀진다. 실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전쟁에서 조선이 이길 힘을 달라며 온조에게 제사를 올렸고, 이후 온조는 남한산에 오는 이들을 지켜보다가 그 중 최초로 병자호란을 이길 능력을 가졌던 (현대인) 이자원을 발견해서 병자호란기의 무신 이자원의 육체에 빙의시킨 것이다.
하지만 인조는 '전주 이씨 왕실을 흥하게 해달라'가 아닌 그저 전쟁을 이기게 해달라고 빌었고, 그 소원대로 이자원이 빙의하면서 병자호란은 이기게 되었지만 인조 본인은 단명했으며 전주 이씨 왕실 또한 실권 없는 허수아비가 되고 나라를 빼앗긴다. 즉 인조의 실수는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모르고 잘못된 소원을 빈 것.
6. 개변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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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홍타이지와 인조 둘 다 죽고, 결과적으로 청군이 퇴각하면서 조선의 승리로 끝난다. 퇴각하던 청군은 청천강에서 조선군의 공격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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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즉위와 정축옥사
전쟁 중 인조가 죽자 소현세자가 즉위 후 병자호란을 승리로 이끈다. 이후 가도 정벌을 반대한 신하들에게 심세괴가 반역자임을 밝히는 장계를 보여주며 심세괴가 뇌물을 먹여서 가도 정벌을 반대했을 수도 있음을 근거로 옥사(정축옥사)를 일으켜 조정을 휘어잡고 김류 등을 몰락시킨다. 또한 지금까지 풍문거핵, 불문언근 등의 특권으로 방해가 되던 삼사까지 숙청하며 이자원이 외척이면서 삼군부 제조 겸 팔도도원수 겸 병조판서라는 거의 불가능한 겸직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호란에서의 승리와 옥사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 왕권을 구축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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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내전 & 멸망
전쟁 이후 청나라의 정세는 극도로 혼란해지는데 봄보고르와 기야하찬 같은 지방 유력가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내부가 혼란해지고 섭정왕들인 호거와 도르곤의 정쟁도 맹렬해지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그나마 지방 반란은 아민이 재등용되어 모조리 진압하지만 실권자들인 섭정왕들의 대립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었고 특히 좌섭정왕 호거의 무능은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라 결국 강덕제-범문정 라인이 도르곤, 아민과 손을 잡고 호거 세력을 공격하며 내전이 발발한다. 이에 호거는 몽골로 도주해 에제이 칸을 옹립하며 몽골 세력을 자기 편에 두면서 내전이 장기화되고 범문정과 도르곤의 대립도 시작된 데다 아민이 야심을 품고 움직이는 등 혼란상은 여전하며 내전 와중에 조선이 조종하는 가도 세력에 봉황성까지 빼앗기는 등 서서히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 결국 동만주를 잃고 심양 회전에서 청의 마지막 병력이 소멸해 강덕제가 조선에게 항복함으로써 청나라는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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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의
조선 진출
이자원의 요청으로 천주교 수도회인 예수회가 조선에 진출하여 훈련도감 인근에 성당을 세웠다. 봉림대군과 부인 장씨는 천주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예수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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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카쿠레키리시탄들의 조선
망명
예수회의 중재로 아마쿠사 시로를 비롯한 일본 키리시탄들이 조선으로 망명하여 북방에 정착했다. 막부 측에서 저들은 반역자들이니 받지 말라고 항의 사절을 보내자 조선은 이들을 모두 살해하고는 다 바다에 빠져 죽어서 여기 온 사람은 없다고 둘러댔다. 키리시탄들은 자신들을 망명시켜 주고 종교의 자유까지 보장해준 이자원을 성인으로 받들며 그의 휘하에서 청나라 멸망전, 명과의 전투, 이호의 난 진압 등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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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조선 진출
예수회의 중재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조선에 진출하여 교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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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동만주 병합
영고탑의 맹주 아이신기오로 아민이 병사하자 청나라의 지배를 거부한 동만주의 여진족들이 조선에 복속했다. 명목상으로는 조선의 영토로 병합하고 영고탑 등 요충지에 조선군이 주둔하되, 나머지는 여진족의 자치를 폭 넓게 보장하는 형태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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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북벌
청나라 내전이 결국 조선에 이득이 되는 형태로 종결되고 조선이 북벌하여, 만주를 집어삼키는 것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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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 전쟁 & 멸망
의심이 쌓인 숭정제가 조선의 행동을 명나라의 패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 판단, 14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송산 전투에서 대패하고 조선에 세폐나 뜯기는 신세로 전락했다가 그 여파로 명나라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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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라트의 동진
청나라가 망하고 몽골이 그대로 붕 떠버리자 오이라트 부족들이 몽골 고원을 정복하기 위해 진격하고, 이에 이자원이 이끄는 조선·몽골·만주의 연합군이 오이라트와 충돌한다. 조선군의 막강한 화력과 유목민 기병들의 공세로 오이라트가 패배하여 후퇴하고 특히 준가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 몽골 일대가 완전히 조선에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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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의 난
봉림대군 이호가 이자원이 역심을 품었다고 판단해 그와 그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 대비의 아버지이자 이자원의 장인인 우의정 강석기가 역모를 꾸민다며 제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왕과 대비를 확보한 뒤 이자원 역시 유인해서 죽이기 위해 선전관을 보내 이자원을 불러내려 하지만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이자원이 어영청과 접촉한 선전관을 족쳐 전모를 알아내게 된다.[27] 이자원이 이 사실을 휘하 부대에 밝히자 당연히 장졸들은 분개했고[28], 이자원은 쿠데타 진압을 위해 자신 휘하의 조선군과 항복한 팔기 출신 만주족 병력, 녹영 출신 한인 병력, 자신을 종교수호의 성인으로 모시는 키리시탄, 네덜란드 출신 화포병 등등 전군을 데리고 회군한다.
이에 대해 이호는 왕실을 강화도로 피신시키고 삼남의 속오군을 소집해 상대하면 이괄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붕괴할 거라고 예상하고 작계를 짜지만 이자원은 박철균에게 팔기 출신까지 편성된 기마대를 선봉대로 하여 빠르게 남하시킨다. 애초에 서북 방면은 북벌한다고 긁어모은 터라 병력이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평양감사 민영까지 선봉대에 항복하면서 선봉대는 장애물 없이 진군한다. 급하게 경기도 속오군을 소집하지만 전쟁에서 구르던 훈군과 팔기의 정예기병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결국 강화도로 이송되던 대비가 선봉대에게 구출되게 된다. 결국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히자 이호는 왕을 데리고 남한산성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이자원의 본대가 남한산성을 포위한다.[29] 곧이어 공성전이 시작되고[30] 며칠 지나지 않아 암문이 뚫리고 남한산성은 함락당하며 이호 역시 죽는 것으로 난은 완전히 진압된다. 난의 진압 이후 이자원은 통령 지위에 오른다.[31]
정리하자면 이자원을 암살하는데 실패한 시점에서 애초에 성공할 수가 없는 난이었다. 이자원 휘하에는 항복한 팔기, 녹영, 항왜와 서북군, 훈련도감, 어영청 등등 도합 5만 명의 군대가 있던데 반해 이호 휘하에는 수어청과 총융청, 호위청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제대로 소집된 병력 수천명 밖에 안 됐다. 게다가 이괄의 난 같이 내부 결속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도 아니고 이자원 휘하 부대는 북벌 때부터 함께한 조선군과 이자원을 종교 성인으로 모시는 키리시탄, 이자원의 지배에 자발적으로 복속된 한인과 만주인 등등 내부 결속이 매우 튼튼한 상태였다. 게다가 상술했듯 이자원의 조선 내 명성도 구국의 영웅이었던지라 이호 측 명분이 너무나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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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
19세기 말, 동아시아와 미 서부·러시아·벵골 동쪽의 모든 국가를 확고한 영향권에 넣은 대한민국과 벌인 그레이트 게임,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여파로 사회의 모순이 폭발한 영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진다. 공산주의 운동으로 변질된 태평천국 운동을 겨우 진압한 대한민국과 중원의 번국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큰 공포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도와 안남에서 일어난 혁명을 대한군이 파병되어 제압하자 이에 공산화된 유럽이 대한의 번국인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으로 전 세계가 반으로 갈라져 싸우는 세계 대전이 7년 동안 벌어진다. 결국 내부적으로 단합이 되지 않던 공산진영이 패배하면서 경쟁자들을 제거한 대한은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7. 사건 사고
7.1. 수정 전 버전의 박철균 캐붕 논란
박철균은 처음에는 출세할 야망은 나름 있지만 술 좋아하고 허접한 농담이나 하는 가벼운 캐릭터였으며, 이자원 덕에 크게 출세하며 이자원을 존경하게 된다. 그러나 형들의 역모 가담으로 가문이 멸족당할 위기에 처했고 이자원의 배려로 역모에 가담한 형들을 직접 죽이는 대가로 처벌을 피하고 살아남을 기회를 받는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형들을 직접 죽이고 PTSD에 시달리며 이전의 가볍던 모습도 사라졌지만 이후 이자원도 대의를 위해 자신의 친부 광해군을 직접 살해하는 것을 보고 이자원에게 존경을 품게 된다.그런데 이호의 난 편에서 갑자기 박철균의 캐릭터가 이상해진다. 역도들에게 이자원의 처자식들이 인질로 잡혔다는 것을 안 뒤로 마치 이자원도 대의를 위해 가족을 죽이는지 보겠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역모 진압 내내 '내 가족이 죽었으니 이자원의 가족도 죽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묘사를 보여주었고, 박철균이 마치 고의로 이자원 일가를 죽이거나 죽음을 방치할 것 같은 전개를 보여준다. 이자원의 부인 강유주는 결국 박철균의 행동과 무관하게 전투에 휘말려 사망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자 급하게 박철균과 무관하게 사망하는 걸로 수정했다는 추측도 있다.
박철균의 '내 가족을 죽였으니 이자원도 자기 가족을 죽여야 한다' 수준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괘씸한 적반하장이다. 박철균의 형들은 역모가 진압되면 누구에게든 죽을 수밖에 없는 역적들이었고, 박철균 자신도 같이 죽게 생긴 상황에서 어차피 죽을 형들을 직접 죽이는 것으로 박철균과 그 가문이 살아남을 기회를 주는 이자원의 일방적인 배려를 받은 것이다. 반면 이자원의 처자식은 역적들에게 붙잡힌 인질들로 무관으로서 죽여야 할 적이 아닌 구출해야 할 대상이며, 진압군의 목표를 넓게 본다면 그들을 구출하는 것도 임무의 일부라 할 수도 있다. 만일 이자원이 가족의 안위를 고려해서 역모 진압을 망설였다면 박철균이 실망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자원은 가족들이 있는 걸 알고도 남한산성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거나 성 함락 후 가족보다 임금의 확보를 우선 시도하는 등 가족의 안위 때문에 작전 진행에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웹소설 시장에서 주인공의 가족, 연인이 사망하는 전개가 선호되지 않기에 반쯤 금기시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나, 전개에 필요한 내용이고 잘만 묘사한다면 얼마든지 논란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작가가 생각해둔 플롯에 강유주의 사망이 필수적인 것이었기에 복선을 깔았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나쁜데도 강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PTSD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든든한 부관 캐릭터였던 박철균이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으로 변해버렸고, 강유주의 사망 복선이 거의 일주일을 질질 끌다가 결국 이뤄졌기에 독자들의 원성이 폭발하며 집단으로 하차를 선언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논란이 생기지 않았으려면 일단 박철균의 이자원을 감시하겠다는 식의 심리 묘사를 싹 다 빼버렸어야 하고, 강유주가 명백한 악인인 역적 측 인물 중 하나에게 살해당하는 식으로 처리했어야 한다. 또한 독자들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도록 연참을 하거나 전개 속도를 높여서 복선을 이렇게 길고 끌지 말고 역모 편을 끝냈어야 했다. 물론 애초에 강유주를 죽이지 않는 것이 제일 나았겠지만 이후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면 이런 식으로 해서 독자의 이탈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아내 사망이라는 고구마 파트에서 이런 최악의 전개를 보여주면서 댓글창은 하차 선언으로 가득 찼고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는 명군이 되어보세!의 삼랑진 사태가 연상될 정도로 불타오른다.
결국 작가도 무리수였음을 인정하고 며칠간 휴재를 하며 해당 파트를 수정해서 다시 업로드했다. 바뀐 버전에서도 강유주가 사망하는 것은 동일하나 독자들이 불타올랐던 박철균의 심리 묘사가 전부 사라졌고, 이자원이 황익에게 가족들을 부탁하거나 가족들의 안위에 대해 조금은 신경쓰는 묘사를 넣는 등의 수정이 들어갔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박철균은 원래 구상에서 끝까지 이자원에 충성하는 캐릭터였고 이자원의 등에 칼을 꽂는 캐릭터로 바꿔보려 했으나 좋지 않은 판단이었다고 한다.
8. 기타
- 주인공 이자원은 2000년대 초기 대체역사물의 국수주의적 철인형 주인공에 가깝지만, 주인공이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내면 묘사와 더불어 확실한 복선을 깔아둠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본작이 웃음기 하나도 없는 시리어스한 대역물인 것과 정반대로 작가의 차기작인 《 내 조선에 세종은 없다》는 완전한 개그 대역물이라서 대체 이런 작가가 남한산성을 쓸 때는 어떻게 개그 본능을 참았냐는 드립이 나오고 있다.[32] 하지만 노세종도 대명전쟁 중 독가스 살포씬처럼 각 잡고 쓴 장면은 정말 건조하고 진지하다.
- 시리즈 연재본 83화에 '시대극에 사이비라는 영단어를 쓰니 웃기다'는 댓글이 달렸는데, 사이비는 공자가 사용한 말에서 유래한 한자어다. 사이비가 사이버와 맞물려 들러리처럼 어감상 영단어라고 착각할 여지가 있긴 하고, 실제로 다른 사람도 헷갈린 경우도 있어 "그럴 수도 있다" 정도의 사태여서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다른 독자가 사이비가 한자어라는 것을 지적하니 "사이비가 한자어라는 것은 님의 일방적인 주장이죠+설령 그게 사실이어도 영어로 헷갈릴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한 작가의 잘못이다"라면서 틀려놓고도 되려 뻔뻔한 태도로 나오는 적반하장의 모습에 실시간 베스트는 물론이고 온갖 커뮤니티에 펴져나가 조리돌림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1]
[2]
특히
용의 눈물,
왕과 비,
태조 왕건 등 KBS 정통 대하 사극
[3]
가족이 희생되는 어떤 사건을 겪은 후, 제정신을 붙잡으려고 '강한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시킬 수 있다'라는 자기 암시를 한 것. 이 사건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본작의 주요 떡밥 중 하나이다.
[4]
특히 주인공으로 인해 역사가 뒤틀려, 호란 후 임금에게 북벌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처럼 이쪽도 트라우마에 기인한 동기인 것.
[5]
본인 왈: "이제 와서 하늘에 더 지을 죄 같은 것은 없다."(104화)
[6]
"이런 성격은 저주에 가깝다"는
김충선의 묘사, 이자원의 과거 등.
[7]
다만, 유창한 수준은 아니고, 단어 하나씩 끊어서 말하는 정도. ex) 내가, 너희, 한을, 죽였다.(그래도 충분히 알아듣는다.)
[8]
오히려 조선 외의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딱히 개인적인 유감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대한민국 패권에 방해될 싹들을 기계적으로 냉정히 뽑아내고 있을 뿐.
[9]
다만 자신을 조선으로 보낸 온조왕에게서 원래 가족들을 만날 수는 없다는 말을 듣고도 이쪽 세계에서 죽은 사람과는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붙잡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주에게 죄책감은 가진 것으로 보인다.
[10]
"너에게 이 나라의 대업이 맡겨져 있느니라. 항상 삼가고 조심하여 종사를 보전하고, 북벌의 대업을 완수하여라. 여기 삼정승과 병조참판이 너를 도울 것이다. 너같은 어린 아이에게 너무 과중한 짐을 지게 하니 내가 죄인이로다. 하지만 원수를 치는 일은 한시도 멈추거나 게을리 해서도 안되는 법이다. 네가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때까지 바깥 일은 이자원에게 맡기고 안의 일은 삼정승에게 물어보도록 하거라."
[11]
한국사에선
대한제국
고종의 기억이 강렬하여 그다지 좋은 인상의
묘호는 아니지만, 원래는 매우 격이 높은 묘호이다. 허나 대개 고종이라는 묘호를 쓰는 군주들은 장수하는 편인데 이 작품에 등장한 소현세자는 왕으로써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12]
이를 통해 각 군영의 대장들이 모두 삼군부의 유사당상으로 흡수되어 이자원이 군권을 효과적으로 장악하게 되고, 특히 봉림대군과 친분이 있는 어영대장 이완을 찍어누를 수 있게 된다.
[13]
봉림대군은 이 짓의 정치적 의미를 몰랐다. 보다 못한 최명길이, 살고 싶으면 그만두라 할 정도.
[14]
일신의 이해타산만 따진다면, 봉림대군이 형을 살렸을 때 얻을 이익은 실패했을 때의 위험과 비교하면 너무나 미미했다.
[15]
특히 홍익한은 사신단의 서신을 본 그 와중에도, 사신단의 서신에 나온 반역 사실을 두고 "사신단이 조작한 거 아니냐"는 현실 부정 발언까지 하면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상식적으로 이자원과 딱히 연도 없는 사신단이, 전쟁 영웅이긴 하지만 일개 파총인 이자원의 죄를 덮어주려고 "대국의 장수가 반역을 저질렀다"고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
[16]
일단 독자들은 이자원의 그림 속에서
김육 같은 인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는데, 아무리 이자원이 철인이라 한들 그도 인간인 만큼 실수 등이 나올 수 있으며, 그런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어 장치로서, 그리고 군사 동원에 있어서 동요할 수 있는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인사로서도 김육 만한 인사가 없기 때문.
[17]
실질적으로는 중앙 정계에서 멀어지는 처벌이지만 그 대국의 벼슬인 만큼 공식상에서는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18]
이 때 본인의 군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왜 나를 그런 요충지에 보내냐고 했지만 박철균이 "그럼 님이 오삼계 대신 진강에 가서 청이랑 직접 싸울래요?" 이 한마디에 바로
버로우를 타고 얌전히 금주로 떠난다….
[19]
본인 왈 이자원을 따르지 않고
명군(明軍)이 되어보세 해도 답이 없을 거라고 한다.
[20]
실제로도 금의위 천호였다고 한다.
[21]
이자원에게 입은 빚이란, 반간계로 양부 원숭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수 홍타이지가 이자원에게 죽은 것을 말했던 것.
[22]
나레이션 왈, 천지를 뒤엎는듯한 폭음과 함께 두동강이 났다고 한다.
[23]
한편 홍타이지의 이른 죽음으로
순치제가 태어나지 못하면서 이후
강희제를 포함한 역대 청나라 황제들은 전부 삭제되고 말았다.
[24]
이전에는 이름 없이 요절한 아들이라 서술되어 있었으나, 실제 이름 없이 요절한 것은 병자호란 무렵 태어난 홍타이지의 8남이며 실존인물 쇼서는 그보다 9년 일찍 태어나 20대에 죽었다.
[25]
명나라 금주에 보내졌으나, 금주에 주둔한 가도군이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가도총병(즉 이자원)에게 인도한다.
[26]
성을 점령한 뒤 군민을 모두 죽이는 행위.
[27]
사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자원이 오지 않을 경우 이호의 측근인 어영대장 이완을 통해 그를 제거하려했으나, 정작 이완은 누구에게 충성을 해야할지를 몰라 고민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한 암살도 실패한다.
[28]
그도 그럴 게 이 시점에서 이자원은 병자호란을 승리로 이끌고 청을 멸망시켰으며 명나라의 14만 대군을 송산에서 격파하는 등 말그대로 상승 장군이자 구국의 영웅이었다. 게다가 본인들도 북벌한다고 몇 년째 집에 못 돌아가고 있는데 정작 도성에서 가만히 있던 놈들이 난을 일으켜 자신들의 대장을 역적으로 칭하고 있으니 당연히 화날 수 밖에 없다.
[29]
이 때 이호는 이자원이 홍타이지를 죽인 사례를 보고 그가 벌봉에 오면 쏴죽일 계획을 세우는데 "그나 부하들이나 과연 올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자원은 정말로 벌봉에 올라왔고 그를 향해 포를 쏘지만 전부 빗나갓다. 애초에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계략이었던 것.
[30]
이 때 한 팔기 출신 병사는 자기가 다시 여길 오게 될 줄은 몰랐다고 신나 한다. 끔찍한 지형이라 원래라면 근처에도 오길 싫어했겠으나 자신들을 격파한 명장이 이끄는 조선군과 함께 성을 공략하기 때문에 사기가 올랐다고…. 그 뿐만 아니라 요동 출신 한인 병력, 키리시탄과 항왜, 네덜란드 화포병도 한마음이 되어 성을 공략한다.
[31]
이를 보고 무신 정변이나 김유신 등의 사례를 떠올린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성계를 떠올렸다고 한다.
[32]
사실 노골적이지 않았을 뿐, 남한산성에도 찬찬히 살펴보면 병자호란 이후 파트부터 군데군데 개그 코드가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