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 《녹정기》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오배(녹정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강희제 보정 4대신 | |||
허서리 소닌 | 구왈기야 오보이 | 나라 수크사하 | 니오후루 어빌룬 |
노년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
( 1614년 ~ 1669년, 향년 5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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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청나라 초기의 대신이자 권신.만주족으로 만주팔대가인 구왈기야(瓜爾佳) 씨족이었으며, 팔기(八旗) 중 양황기(鑲黃旗) 출신이었다. 후금오대신 피옹돈의 조카였다.
2. 상세
어린 나이였던 후금의 천명 연간 말엽부터 활약했다. 뒤이어 즉위한 태종 숭덕제를 섬기면서 원정때는 항상 선봉에 나서서 용맹하게 싸웠는데, 이런 오보이의 모습을 두고 태종이 최고의 용사라고 칭찬했다.1644년 산해관을 돌파하여 중원을 장악한 제3대 세조 순치제가 일찍 붕어하고, 어린 성조 강희제가 즉위했을 때 허서리 소닌[1], 나라 수크사하[2], 니오후루 어빌룬[3]과 함께 4명의 보정대신들 중 한 명이 되어 권력을 휘둘렀는데, 백성들의 땅을 빼앗아 사유지를 넓히고 수크사하와 그의 일족들을 죽이는 등의 방자한 행동을 했다.[4] 이 때문에 오보이의 전횡에 분노한 강희제가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효장황태후의 반대로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친정을 시작한 강희제는 급습으로 오보이를 체포했다. 젊은 황제는 그를 죽이려 했으나 곧 구금으로 형을 낮췄다. 몇몇 기록에 따르면 오보이는 사로잡힌 순간, 어릴 때부터[5] 천명제와 숭덕제, 순치제 등 선대 황제들을 온몸으로 지켜내며 얻은 수많은 상처를 보여줬다. 이 때문에 강희제는 마음이 흔들려서 오보이의 형을 낮추었다고 한다.
오보이는 사후인 1713년이 되어서야 명예를 회복했다. 환갑 직전의 장~노년이 되어서야 강희제는 젊은 자신에게 반항했던 늙은 신하의 죄를 비로소 용서했고 제5대 세종 옹정제는 오보이에게 최고의 장군급 벼슬과 함께 '초무'(超武)라는 시호를 내렸다. 하지만 훗날 제6대 고종 건륭제가 존경했던 조부를 괴롭혔던 오보이의 치적을 살펴보고 벼슬을 강등시켰다.
여담으로 오보이의 몰락은 삼번의 난이라는 초대형 사건의 전조가 되었는데[6] 오보이는 삼번의 왕들로부터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이 뭘 하든 그냥 내버려 두었지만 오보이의 몰락 이후 권력을 잡은 강희제는 삼번을 없애고자 마음먹었고, 이에 오삼계가 반발해서 터진 것이 삼번의 난이었다.
3. 대중매체
소설 《 녹정기》(1969~1972)에서는 오배(鰲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자세한 내용은 오배(녹정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2001년 드라마 <강희왕조>에 등장한다. 백성들의 토지를 수탈해 악명이 높다. 보정대신인 소극살합에게 탄핵당했으나 오히려 소극살합을 탄핵했다. 강희제의 명령으로 단신으로 궁에 불려간 오배는 시위들에게 포위되어 체포되었다.
2016년 드라마 <황제의 봄>에 등장한다. '대청제일무장'이라는 별칭이 있고, 실제로 초인 수준의 무예를 지녔다. 1화에서 강희제의 명령으로 시위들이 몰래 쇠사슬로 오배를 결박했으나, 오배는 오히려 쇠사슬을 무기로 활용해 16명의 시위를 기절시켰고, 강희제를 제거하려는 순간에 쇠사슬에 묶여 날아온 돌기둥에 머리를 맞고 기절해 체포된다.
2017년 드라마 <용주전기>에 등장한다. '대청제일용사'로 불리며, 고령임에도 일당백이 가능한 엄청난 무예를 지녔으나 강희제의 독에 당해 체포되고 실각한다.
[1]
赫舍里 索尼, 혁사리 색니
[2]
納喇 蘇克薩哈, 납란 소극살합
[3]
鈕祜祿 遏必隆, 뉴호록 알필륭
[4]
사실 오보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소닌은 너무 늙었고 건강이 나빠 일을 할 수 없었으며, 어빌룬은 같은 팔기 출신이라서 오보이에게 포섭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다른 팔기 출신이었던 수크사하를 숙청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수크사하는 정백기 출신으로 원래 예친왕
도르곤의 부하였다.
[5]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오보이는 권력투쟁을 벌이던 시기가 많이 달라서 체감이 안될 뿐이지, 예친왕 도르곤보다 두 살 어린 사실상의 동년배였다. 도르곤도 14살 때 어머니가 순장당하는걸 지켜보며 형과 동생의 목숨을 걱정하던 처지였다가 10대 후반부터 태종 홍타이지의 지원으로 본격적으로 공을 세우고 실력을 기른 것이었는데, 오보이는 그보다 어린 나이부터 전장을 누비며 고생하며 커온 것이었다.
[6]
물론 오보이와 삼번의 난 간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보정대신의 숙청을 통해 강희제가 삼번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고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강희제는 황권을 강화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보이와 삼번이 방해가 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