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11:47:30

아이신기오로 요토



愛新覺羅岳托
(1599 ~ 1638)

1. 개요2. 행적

1. 개요

청나라의 황족.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의 손자이자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의 장남이었다.

2. 행적

처음에는 타이지가 되었다. 1621년에 명나라를 공격하는 전투에 종군했고, 후금의 군사들이 봉집보를 공략하면서 더걸러이와 함께 명군을 추격했으며, 3월에는 심양의 명나라 총병 이병성을 백탑포에서 격파하고, 홍타이지가 30,000명의 명나라 구원군을 저지하자 요토는 즉시 공격을 단행하여 다이샨 및 홍타이지와 함께 명군을 물리쳤다.

1623년 4월에는 아이신기오로 아바타이와 함께 몽골의 자루트부를 정벌하면서 버일러 앙안을 공격해 이겼으며, 1626년에 조부인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가 병사했을 때 '한'의 승계는 공동이 추대하는 제도라 버일러들이 한의 자리를 노렸는데, 요토는 셋째 동생인 사할리얀과 함께 부친인 다이샨에게 홍타이지의 옹립을 권유했다.

1627년 아이신기오로 아민을 따라 정묘호란에 종군했다. 당시 인조가 아민에게 화친을 제안했을 때 아민이 거부하려고 하자 요토는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 아이신기오로 아지거, 아이신기오로 두두, 아이신기오로 쇼토 등과 함께 아민에게 반대했다. 아민이 정묘호란으로 조선 땅(전부 또는 일부)을 먹고 독립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628년에는 명나라의 금주를 공격했다.

1629년에 명나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면서 지르가랑과 함께 우익군을 이끌었을 때, 다이샨과 망구르타이 등이 군대를 되돌릴 것을 요구했지만 요토는 지르가랑 등의 버일러와 구사 어전 등과 연합해 진출할 것을 요청했다. 1632년에 지르가랑과 함께 몽골의 차하르부를 공격했고 더걸러이와 함께 명나라를 공격했다.

1633년 8월에 여순을 공략했고 1636년에는 호쇼이 무터부러 친왕(화석성친왕, 和碩成親王)이 되었으나, 망구르타이가 군사가 많이 상했다고 했다가 태종 홍타이지로부터 질책받은 일로 분노해 홍타이지의 앞에서 칼을 뽑는 불경죄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8월 경 요토는 망구르타이의 불경을 비호한 죄로 탄핵당하여 도로이 버일러로 강등되었다.

1636년 12월에 조선을 정벌할 때( 병자호란) 종군하여 남한산성을 포위했으며, 1637년에는 활쏘기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지만 거만한 태도를 보여서 처벌을 받아 구사이 버이서(고산패자)로 강등되었으며, 1638년에 버일러로 회복했고 8월에 양무대장군이 되어 두두와 함께 명나라를 공격했다.

9월에 담자령에 이르렀다가 만리장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어서 경서를 따라 산서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진격해 산동 제남부를 공격했다. 19개의 성을 빼앗는 등의 전과를 올렸으나 얼마 후에 제남에서 병사했으며, 태종 홍타이지는 함께 종군한 도르곤으로부터 부음을 듣고 며칠간 조회를 폐하며 애통해하다가 요토의 공적을 생각해 도로이 키처허 군왕(극근군왕, 克勤郡王)에 추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