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지국장의 기사1.3.2. 각 단체의 정보공개 청구1.3.3. 언론의 의혹 제기1.3.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청와대의 대응1.3.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진행 상황1.3.6.
탄핵소추 가결 이후1.3.7.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해명1.3.8.
윤전추 행정관 증언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1.3.9. 2017년 1월 10일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제출된 대통령의 행적1.3.10. 2017년 10월 31일 국정감사에서 추가로 밝혀진 행적1.3.11. 2018년 3월 28일 서울중앙지검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및 대통령훈령 불법 변개 등 사건’ 수사결과 발표 내용
세월호 7시간 30분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를 방문한 오후 5시 15분까지 대통령
박근혜의 행적이 불분명했던 7시간 30분을 말한다. 박근혜정부는 이에 대한 진상규명을 끈질기게 방해하였으나,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에 대한 재조사가 이루어졌고, 2018년 3월 28일 검찰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근 4년만에 이에 대한 의혹이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청와대에서는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대본에 나타나기 전까지 오전 9시 반, 10시 15분, 10시 30분에 세 차례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이 주장은 이후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타난 것은 지시를 내린지 무려 7시간 가량이 지난 17시 15분이었고, 이때 세월호는 이미 빠져나오지 못한 304명의 실종자와 함께 선수만 내놓은 채 완전히 침몰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뜬금없이 구명조끼를 운운하는 등 세월호 사건의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구명조끼 발언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한 지시 없이 몇 가지 엉뚱한 이야기나 질문만 하다가 중대본을 떠났으며, 이후에도 세월호 당일에는 보고만 받고 특별한 지시를 내리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안전행정부 2차관: 갇혀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갇혀있어요?
안전행정부 2차관: 예.
참사 당일에는 온 국민이 너무나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당연히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의문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7월 7일 열린 청와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업무보고에서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물었고, 김실장은 '당일 서면보고를 하긴 했는데,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는지 있지 않았는지는 모른다.'라는 이상한 답변을 했다.
당시의 속기록 일부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다면 비서실장이 그걸 모를 리가 없고, 비서실장이 7시간 동안이나 대통령의 행방을 몰랐다면 대통령이 집무실 대신 비서실장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곳에 있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말이 맞지 않는다. 박영선 의원이 이에 대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계속 추궁을 했으나 김실장은 말돌리기로 일관하면서 확답을 피했다. 이런 비서실장의 태도가 국민들에게 의혹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면서 '대통령의 숨겨진 7시간' 의혹이 본격 점화되었다.
이처럼 유가족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라는 요구가 쏟아져 나왔지만 청와대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이런 요구를 묵살하고 대통령의 행적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정부와 여당은 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행적은 국가기밀 사항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통령의 행적은 밝히지 않는다', '정상적인 집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밝힐 것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해명하라는 요구를 묵살해 버렸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
2015년 이후 한동안 7시간 논란은 잠잠해졌으나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면서 다시 이 7시간 의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7시간 의혹을 비롯한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자 그간 무시로 일관해왔던 청와대는 이를 해명한답시고 청와대 홈페이지 내에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게시판을 급하게 만들었으며 아래 그림처럼 7시간 의혹에 대해 도표까지 만들어서 게시했다. 그런데 이 해명은 정부가 스스로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에 대한 해결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자폭성 해명이었으며, 그나마도 이 해명은 나중에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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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이 전혀 먹혀들지 않자 청와대는 저 표를 제시한 이후부터는 공식 해명을 포기하고, 대신 음모론이 나올 때마다 이를 부인하는 식으로 소극적인 대응을 했다.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그런 적 없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이렇게 대응하는 방식.
청와대가 끝끝내 대통령의 행적을 제대로 밝히지 않자 각종 의혹과 음모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한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북한개입설, 박근혜가 7시간 동안 진도로 가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빈손회귀설 등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들도 많이 있었지만 나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그럴듯한 주장들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후술한다.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다쓰야 지국장은
조선일보 칼럼을 인용해
행방불명… 누굴 만났는가?라는기사를 2014년 8월 3일에 게재했다. 여기서 가토 지국장은 "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정윤회를 만나고 있었고, 이 사람은 박근혜가 젊은 시절부터 긴밀한 사이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이에 청와대와 국내의 몇 보수 시민단체들이 가토 지국장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는데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물론 이 무죄판결은 가토 지국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가토의 기사가 범죄요건에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준 것 뿐이다.
구체적으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30분경
김영재와
박근혜는 같이
롯데호텔 36층
VIP룸에 머무르며 미용 시술(
필러 수술)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참사 사고를 듣고, 하지 않으려다가 모두 무마됐다는 보고를 들은 뒤에 시술(약 1시간 소요)을 강행한다. 그 후 1.4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청와대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다가 의료용
가글[3]을 가져오라고 한다. 이에
간호장교
신보라 대위가 의료용 가글을 전달한다. 이상이 롯데호텔 시술설의 전말이다.
그러나 특검의 조사 결과 문제의 36층에는 VIP룸이 아닌 단순 연회장 '벨뷰스위트'만 존재하고, 당직자 진술이나 출입 기록에도 박근혜가 출입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중앙일보.
세월호 참사 당일
최태민 추모 굿판을 벌이느라 7시간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4월 16일이 최태민의 실제 사망일이므로 이때 최태민의 추모제를 벌였다는 것인데, 날짜 끼워맞추기 이상의 정황은 없다.
관련 내용. 그런데 이 굿판에 대한 의혹은 국회에서도 제기되었고, 청와대의
이원종 비서실장은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부인하였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도
2차 담화문에서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라고 밝히면서 이 의혹을 부인하였다.
인신공양설 관련 자료 정리.
이 굿판 설에 한술 더 떠서 인신공양설까지 등장했다. 박근혜가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에 대해 '고귀한 희생'이라고 언급한 점을 관련시켜서, 세월호 사건은
최태민이나
박정희를 환생시키기 위해 영세교와 박근혜가 계획한 일종의
인신공양 의식이라고 주장하는 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에 피부 리프팅 등 성형수술,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 의혹은 7시간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던 시절부터 있었는데, 한동안은 다른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후 대통령이 최순실을 통해 연결된 비선 의료진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미용시술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특히 JTBC 뉴스룸에 의해 세월호 사고 당일이나 이후의 수습 기간 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입 주변에 리프팅 시술 흔적이나 주사 바늘 자국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면서 이 미용시술 의혹은 단순한 음모론 수준을 넘어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세월호국민대책회의의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은 2015년 6월 22일
마약, 보톡스 등 의혹을 제기했다.[4] 이와 관해서 2016년 11월 5일 방송된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의 240회 프린세스 메이커 특집 2 (with 이상호) 편에서 이상호 기자가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 자신이 취재 중이며, 연예인 보톡스를 위해
프로포폴 등을 맞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다시 제기했다.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불면증'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를 여러 경로로 들었다는 한 측근의 제보를 토대로, 참사 당일 수면제를 먹고 잔 게 아니냐는 가설을 제기했다.
# 또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이 창간 15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말을 토대로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추측하는 기사를 썼다. 강 기자는 불면증 등 다양한 건강이상이 박 대통령 세월호 7시간의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면서 기존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계속 드러나면서 최순실이 사고 당시 최순실이 대통령에게 사고 발생 정확히 7시간 후 지시를 내렸다는
반 농담조의 음모론이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최순실(최서원)은 차움 의원 내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침몰 뉴스를 보고 황급히 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검찰조사로 드러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실제로 최순실이 개입한 것이 확인되면서 음모론을 뛰어넘어서 근거가 있는 주장으로 격상됐다.
말 그대로, 출근하지 않고 아무런 스케줄도 없이
관저에 틀어박혀 있었다는 주장이다. 전 청와대 조리장의 증언과 박근혜는 수요일을 무조건 쉬는 날로 보냈다는
증언이 나왔는데 마침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정호성도 "그날은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다른 가설과 달리 정황과 증언이 확보되면서 꽤 유력한 설로 부상했다.
2016년 12월 6일
한겨레 신문,
SBS, 그리고 다음날
JTBC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단골 미용사 2명이 청와대 관저에 출입했다고 보도하였으며, 청와대에 이들이 도착한 시각은 3시 22분경으로 추정했다. 1명은 평소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담당하고 다른 1명은 화장을 담당했기 때문에, 세월호 당일에도 청와대에서 같은 작업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국회에서 진행된 청문회에서 7시간 의혹에 대한 규명을 시도하였다. 당시 청와대 간호장교였던
조여옥,
신보라를 비롯해서 박근혜의 비선 주치의였던
김영재, 김상만 등이 출석하였는데 주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미용시술을 받았는지 여부에 촛점이 맞추어졌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이 미용시술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답을 할 수 없다고 발뺌하거나 말을 흐리는 바람에 의혹을 증폭시켰다. 검찰 조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이들 중 일부는 위증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전추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7시간과 관련된 언론의 의혹들은 사실무근이라면서 "대통령은 세월호 당일 통상적인 업무를 보았고, 세월호 침몰 당일 미용사 외에는 아무도 청와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당일 2시 경 최순실에 청와대에 들어온 것이 검찰조사에 의해 확인되면서 이 증언은 위증으로 밝혀졌다.
2017년 1월 9일에는 청와대가 세월호 당일과 관련된 청와대의 기록을 'VIP 기록'으로 지정하여 30년간 봉인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지정 기록물로 넘긴다면 최대 30년간 박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볼 수가 없게 되는데,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있던
황교안 총리가 이 기록들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버렸다.
2016년 12월 18일에 공개된 탄핵 답변서에서는 세월호 사건 때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를 하였다고
해명하였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세월호 당일에 대통령이
신속하게 현장 지휘를 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12월 22일 헌법재판소의
이진성 재판관은 문제의 7시간에 대해 시각별로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2016년 12월 30일 박근혜 대리인단이 박근혜가 세월호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대통령이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이것이 팩트입니다' 도표는 어떻게 작성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2017년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에서 예정에 없던 공식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으며 여기서 7시간과 관련된 해명을 내놓았다. 그날 정상적으로 관저에서 업무를 보았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안도 모두 챙겼다는 것이 골자인데, 세간에 떠도는 의혹만 강하게 부정했을 뿐 그날 구체적을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그때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날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정상적으로 계속 보고 받으면서 체크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 일정이 없어서 관저에서 일을 챙기고 있었다. 일정이 없는 날은 관저에서 밀렸던 업무를 한다. 그날도 일하고 있었는데 보고가 와서 '특공대도 보내고 다 보내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하라'고 했다. 해경 상황을 챙기면서 각 수석실 보고도 받고 있다가 전원 구조됐다고 해서 너무 기뻐 안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오보였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
그래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빨리 가려고 하니까 경호실에서 경호에는 필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 마음대로 제가 못 움직였다. 거기에 중대본도 무슨 상황이 생겨서 바로 떠나지 못했고, 다 준비됐다고 한 뒤 달려갔다.
(사건에 대한 본인 심경)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헌법재판소가 그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제출해달라고 해 대리인단을 통해 다 정리하고 추가해서 지금 만들고 있다. 제출하면 헌법재판소에서 재판하게 될 텐데 이번만큼은 그런 허위가 완전히 걷혔으면 생각한다.
('세월호 7시간 밀회설'을 비롯한 각종 소문에 대해)
말도 안 되고 입에도 담기 민망한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이 어떻게 밀회를 하겠나. 시간이 지나니 '굿을 했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됐다. 너무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성형수술 의혹도 떠올랐다. 법원에서 7시간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판결이 나서 정리가 되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똑같은 이야기가 버전이 달라져서 시작된 것. 미용시술 건은 전혀 아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가 없는 일.
(참사 당일 외부인 출입에 관해서)
그날 기억을 더듬어보니 머리를 만져주기 위해서 오고, 목에 필요한 약을 들고 온 것 외에는 아무도 없다.
큰일이 터지고 학생들을 구하는 데 온 생각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누가 다른 일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은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상황.
(당일 본관 집무실로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실 현장이 중요하다. 앉아서 회의를 해도, 보고를 받고, 지시를 받아도 현장에서 잘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 해명은 오히려 자충수가 되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데다(햇수로는 이 발언이 나오기 3년 전에 발생) 어차피 현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집무실에 가지 않았다거나 경호와 의전에 무려 7시간을 소요했다는 등의 납득할 수 없는 주장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2017년 1월 10일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제출했다. 하지만 제출된 자료에는 청와대의 업무 흐름만 기술해 놓았을 뿐 대통령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아래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30분의 진실-의혹을 근거로 사실을 추론한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출근을 하지 않고 관저에서 쉬는 날이었다.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수요일은 자체적으로 쉬는 날로 지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전 9시 30분 이후 침묵의 7시간 30분이 시작된다.
오전 9시 30분: 박근혜 대통령은 이 때 최초 서면 보고를 받는다. 하지만 이후 45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오전 10시 15분: 세월호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재난 상황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명령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발빠르게 진행될 것이라 여겼다고 보고 있다.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라"라는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명령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고, 지시가 내려졌으니 알아서 해결될 것이라 여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로 이러한 지시를 박근혜가 내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서 늦잠을 자고 개인 용모를 가꾸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샤워를 하고 TV를 켜서 뉴스를 조금 본 후, 오락 프로를 시청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전 11시: 언론사에서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 전원 구출 이라는 오보가 나왔다. 해경이 승객들을 약 200여 명 정도 구출하면서 많은 사람이 몰려 나오니 대부분 구출이 완료된 줄로 착각한 것이었다.이때
해경은
청와대와의 연락을 통해 대통령의 자세한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서 상황 보고를 들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처음에 전원 구출됐다는 오보가 난 원인이 자신이 너무 포괄적인 명령을 내려서인지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전원 구출이라는 잘못된 상황을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평소와 같이
미용사를 불러 머리 손질을 하면서, 1시간 동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막연하게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정오~오후 1시: 점심을 먹으면서, 상황 보고를 계속 들었다고 주장하는 청와대 관계자들과 박근혜 대통령도 전원 구출이 아니고, 점점 실종자와 사망자가 늘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 패턴과 정황상에, 이때까지도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오후 1시~오후 3시: 수많은 의혹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 시간에 성형 시술을 받거나 TV를 보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후 3시 ~ 오후 4시 30분:
간호장교
신보라 대위와
조여옥 대위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미용 시술을 마치고, 박근혜 대통령은 연예인들이 TV에 출연하기 위해 헤어샵에 들르듯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가기 위해 파마를 하기 위해 미용사를 불러서 머리 손질을 1시간 30분이나 하였다는 것은 이미 증언이 나온 사례가 있었으나 아직도 의혹으로 남아있다. 다만, 이때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정홍원 총리가 직접 박근혜 대통령에게 연락을 하였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님, 상당히 많은 학생들과 선원 및 여행객들이 사망하였습니다"라는 말을 전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오후 4시 30분에 심각한 상황이 왔음을 직감하고 관저 근처 비상상황실로 움직이고, 오후 5시쯤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도착해서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그렇게 구출하기 힘든가요?" 라는 상황 판단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일부러 연출을 위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는 증언이 있다.
이번 검찰 수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 10월 청와대가 박근혜 정권 당시 캐비냇 문서를 발견하여 이에 대하여 브리핑을 가졌고 이를 대검찰청에 넘김으로써 시작되었다.
2017년 11월부터 세월호 보고 시각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사 때문에 이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 30분의 비밀이 조금 더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2017년 12월 15일, 검찰에서 '세월호 조작 사건' 수사를 위해 세종시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기사
2018년 3월 28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및 대통령훈령 불법 변개 등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항목 참조.
박근혜 대통령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언론사를 통해 9시 19분에 사고 사실을 인지하고, 관련 사항과 구조 인원을 파악한 상황보고서 1보가 9시 57분에 완성되어 오전 10시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전달되었다.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받지 않자,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연락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에 김 전 실장은 신 전 센터장에게 이 상황보고서 1보를 전달하라고 지시하였고, 신 전 센터장은 10시 12~13분 사이에 상황병에게 보고서 전달을 지시하였다. 상황병은 10시 19분쯤 관저에 도착하였고 보고서가 관저 경호관을 거쳐 내실 담당자에게 전달되었지만 담당자는 평소와 같이 별도의 구두전달 없이 대통령 침실 앞 탁자 위에 보고서를 올려둔 것으로 밝혀졌다. 안 전 비서관은 전화를 받은 후 오전 10시 20분쯤 관저로 들어갔다. 안 전 비서관이 침실 앞에서 수차례 대통령을 부르자 박 전 대통령은 그제서야 침실 밖으로 나왔고 안 전 비서관이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하자, 박 전 대통령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10시 22분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락가락하던 최초 보고 시간은 9시 30분도 10시도 아닌 오전 10시 20분 이후였다. 그리고 김장수에게 처음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한 시간은 10시 15분이 아닌 22분. 검찰은 청와대에서 골든타임 10시 17분 이전에 대통령 보고와 지시가 있었음을 가장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즉, 보고시간을 30분 늦춰서 박근혜의 지시가 늦었음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는 아무 이유없이 연락이 안되었고 애초에 보고와 지시가 이미 늦었음을 감추려고 보고시간을 20분 빠르게 조작했던 것이다.
최순실은 청와대에 있었다
최순실은 당일 이영선 전 행정관의 차를 타고 2시 15분경 A급 보안손님으로 관저를 방문했다. 박근혜는 최순실이 오기 전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최순실이 온 뒤에 관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문고리 3인방의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이 결정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회의 이후에 미용사를 불러 머리와 미용을 마친 뒤 5시 15분 중대본에 박 전 대통령이 도착했다.
요약하자면 '오전에는 '
이불 밖은 위험해'를 하고 있었고, 오후에는 최순실을 기다리느라 아무 것도 안 했으며, 청와대는 이 어처구니 없는 실상을 은폐하느라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위에 열거한 가설 중 '그냥 관저에 있기만 했다'에 가장 가깝다.
다만, 검찰의 조사결과로도 여전히 비는 시간대가 있다. 즉, 박근혜와 국가안보실, 해양경찰청이 의사소통을 한 이후부터 최순실이 관저에 오기까지의 시간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불충분하다. 이전에 관저 주방 근무자가 당일 박근혜가 점심 식사를 관저 내 침실에서 식사를 했다고 증언한 바가 있기에, 아마도 저 4시간 가량 침실 내에서 계속 머물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4시간 동안 침실 내에는 오로지 박근혜만이 있었기 때문에 당사자가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 않는 이상 이 비어 있는 4시간의 진실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9.11 테러가 이 발생한 시점에서테러 직후 부시는 보좌관으로부터 "미국이 공격 받고 있다"는 첩보를 듣게 되지만, 약 7분의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당시 부시는
플로리다 주의 한 초등학교 수업을 참관하며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중이었다. 부시는 이후 국정 조사에서 왜 이 시간 동안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지 상세하게 해명을 해야만 했다. 부시의 해명을 요약하면 '당시 학생들과 이후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을 볼 국민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소 지체했다' 이다. 또한 '당시 부시는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머릿속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라는 증언도 있다.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지도자로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이해할만한 여지가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분을 지체한 것에 대한 강한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박근혜의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면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이후, 삼성동 자택으로 귀가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말하지도 않고, 과거 자신의 대변인을 지냈던
민경욱에게 대독시켰다.
#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헛소리 하지 말고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이나 밝혀라"라고 격노하였다.
이어 2017년 10월 박근혜가 법정구속된 이후 구속기간이 연장되면서 박근혜는 법정에서 또 다시 이런 말을 남겼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절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언젠가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법치에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기 바로 며칠 전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세월호 최초 보고시간이 실제보다 30분 늦춰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다.
한편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30분 국정공백 사태가 불거진 이후 우리나라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국가원수들의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고,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의 24시간 일정을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게 되었다.
#
실제 청와대 홈페이지의 대통령 일정표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그때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27] (중략)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28]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박근혜 전 대통령, 2017년 1월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
대규모 재난과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 상황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까지 갖는다. (중략) 앞으로도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2016헌나1 결정문(탄핵 심판 결정문),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
세월호 7시간 30분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2014년 4월 16일) 대통령
박근혜가 마지막 사고 관련 지시를 내린 오전 10시 30분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를 방문한 오후 5시 15분까지 대통령
박근혜의 행적이 사라진 7시간 30분을 말한다.
당초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대통령
박근혜는 당일 오전 10시 참사 관련 첫 보고를 받았고 15분과 30분 2차례 구조지시를 내렸다. 그 후 대통령의 행적이나 지시사항이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7시간 후인 오후 5시 15분 중대본을 방문함으로서 참사 후 비로소 공식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참고로 참사가 뉴스 특보로 처음 YTN에 보도된 때가 오전 9시 19분이고, 세월호가 선수만 남긴 채 완전 침몰한 게 오전 11시 18분이다.
세월호 참사 72시간 타임라인 보기.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박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한 시간은 오히려 7시간보다 늘어나고 있다. 10시 15분과 30분에 유선으로 2번의 지시를 했다는
청와대 측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나타나지 않는 것.
박범계 의원은 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기사.
그런데
2017년
10월 12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의해 최초 보고시점으로 알려진 오전 10시라는 시각마저 조작된 것이 밝혀졌다.
# 기사에 따르면 세월호 당일 첫 보고시간이 오전 9시 30분인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오전 9시 30분과 첫 유선 보고를 한 시간으로 추정되는 오전 10시 15분 사이의 45분간의 행적이 불분명해지고, 어떤 일을 했기에 최초 보고시점까지 조작하여 행적을 은폐하려했는가에 의심을 가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시간도 아니고 이 45분은 세월호가 본격적으로 침몰하고 구조 작업이 시작된 그 시간, 바로
골든 타임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세월호 7시간 의혹이 아니라 세월호 7시간 반의 의혹으로 고쳐불러야 하게 됐습니다. 대통령 보고 시각을 조작해서 검찰과 법원, 심지어 탄핵심판에까지 이용하고, 무엇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국민 모두를 속였습니다. 광장에서 외쳤던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이 또다시 참담한 정당성을 찾게 되는 순간입니다.
손석희 앵커,
2017년
10월 12일[29]
JTBC 뉴스룸
원문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10시 15분에 첫 지시를 내렸다는 것 자체도 불분명하다! 10시 15분에 박근혜가 처음으로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단 하나도 속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2016년 12월에 있었던 청문회 때의 내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유섭(당시
새누리당 의원): 10시 15분에 대통령이 안보실장께 지시하셨다고 돼 있어요. 지시사항 기억 안 나시죠?
김장수(당시
국가안보실장):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세월호와 관련해서 '이것이 팩트다'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보고 제가 기억을 더듬어서 말씀드리는데…
즉, 당시 국가안보실장이었던 김장수는 정말로 10시 15분에 박근혜가 지시를 했었는지 아닌지조차 기억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당시 관저에 있었다던 前 행정관
윤전추 또한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에 있었기 때문에 통화 여부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라고 진술했다. 아래에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관저 집무실이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10시 15분에 정말로 박근혜가 이러한 지시를 내렸는지는 통화 기록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17년 초에
헌법재판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 대통령 대리인단에게 박 전 대통령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통화기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하지만 한 달 뒤에 돌아온 대리인단의 대답은 '못 찾겠다.\'였다. 오래된 통화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30]
기사 참조
만일 10시 15분의 첫 지시사항마저도 거짓말로 밝혀질 경우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는 그 날 오전 9시 30분부터 중대본에 나타난 17시 15분까지 7시간이 아닌 8시간의 행적이 비어버린다는 것이고 참사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천하태평으로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고 국민들이 죽어가는 걸 방임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세월호 7시간 30분과 직접 연관된 사항은 아니지만 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국가안보실에서 발견된 문건에 기록된 세월호 사고 시각은 08시 35분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부가 발표한 사고 시각인 08시 48분과 13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미디어오늘 이 사안도 매우 심각한것이, 당시 청와대가 이 시간대의 세월호의 상태를 처음부터 인지하지 못할만큼 무능했거나, 모종의 이유로 정부의 발표 시각과 실제 문건에 기록된 시간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된 후 청와대 서버가 무더기로 폐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 이 서버 안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특검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려 했으나 청와대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어떠한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서버를 폐기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간에는 세월호 7시간으로 알려져 있고, 나무위키 문서의 표제어 역시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옛날에는 박근혜가 10시에 서면보고를 받고, 이후 7시간동안 행방이묘연했으므로 7시간 의혹으로 알려졌으나,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이것마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9시 30분에 보도를 받고 7시간 30분이 비는 상황이다.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대본에 나타나기 전까지 7시간 동안 단 세 차례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아래와 같이 각 지시가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분석했고, 대통령이 사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리기 위해 필요한 보고와 보좌를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이 충실히 했는지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09:30 첫 번째 지시: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선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할 것"[31]
10:15 첫 번째 지시: 거짓으로 밝혀짐
10:30 두 번째 지시: "해경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현장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은 거짓으로 밝혀짐(
노컷뉴스)
17:15 세 번째 발언: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국가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장장 7시간 만에 정적을 깨고 3번째로 반응을 보인 것은 17시 15분이었다. 그러나 이때 세월호는 이미 빠져나오지 못한 304명의 실종자와 함께 선수만 내놓은 채 완전히 침몰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뜬금없이 구명조끼를 운운하는 등 세월호 사건의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한 지시 없이 몇 가지 엉뚱한 이야기나 질문만 하다가 중대본을 떠났으며, 이후에도 세월호 당일에는 보고만 받고 특별한 지시를 내리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안전행정부 2차관: 갇혀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갇혀있어요?
안전행정부 2차관: 예.
참사 당일에는 온 국민이 너무나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당연히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의문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7월 7일 열린
청와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물었고, 김 실장은 "모른다"는 답변과 "집무실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상호 모순되는 답변을 하면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다면 비서실장이 그걸 모를 수가 없고, 비서실장이 7시간 동안이나 대통령의 행방을 몰랐다면 대통령이 집무실 대신 비서실장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곳에 있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당시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완전히 직무유기를 하고 어딘가에서 놀고 있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아래는
당일 국회 속기록 일부.
영상. 김기춘의 교활한 면모가 잘 드러나는 답변으로, 기자 출신인 박영선 의원마저 말려들 정도로 애매하게 말을 빙빙 돌리고 있다. 결론은 '당일 서면보고를 하긴 했는데,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는지 있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박영선: 김기춘 비서실장님, '대통령께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서면보고로 10시에 했다'라는 답변이 있었지요?
김기춘: 예.
박영선: 지금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때 대통령께서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김기춘: 그것은 제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국가안보실에서 1보를 보고를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영선: 그러니까 대통령께서 어디에 계셨는데 서면보고를 합니까?
김기춘: 대통령께 서면보고하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박영선: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긴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청와대가 인지하지 못했나요?
김기춘: 그렇지 않습니다.
박영선: 그런데 왜 서면보고를 하지요?
김기춘: 아마 정확한 사항을 보고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으로 압니다.
박영선: 그럼 대통령께서 집무실에 계셨습니까?
김기춘: 그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박영선: 비서실장님이 모르시면 누가 아십니까?
김기춘: 비서실장이 일일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박영선: 대통령이 이날 일정이 없었던 것으로 저희가 알고 있는데요. 집무실에 안 계셨다는 얘기지요, 지금?
김기춘: 그렇지 않습니다.
박영선: 그렇지 않은데, 집무실에 계신데 왜 서면보고를 하나요?
김기춘: 집무실도 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서면으로 많이 올립니다.
이처럼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숨기고 말 돌리기로 일관하는 김기춘 실장의 발언이 국민들에게 의혹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면서 '대통령의 숨겨진 7시간' 의혹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대통령의 행적을 감추려는 시도가 반대로 의혹을 키운 셈인데, 아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김기춘 비서실장뿐만 아니라 정부가 7시간 의혹을 감추고 관심을 돌리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7시간에 대한 의혹과 관심이 더 커지는 기현상을 낳았다. 어설프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를 시전하려는 모양새가 '어디 이상한 데 있었는데
뻥을 칠 수는 없으니 어떻게 얼버무려 보자'라는 걸로밖에 안 보이기 때문인 듯.
전술한 것처럼 청와대와 대통령 주변인물들이 참사 당일 확인되지 않은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자, 유가족을 비롯한 각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행적은 국가기밀 사항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통령의 행적은 밝히지 않는다', '정상적인 집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밝힐 것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해명하라는 요구를 묵살해 버렸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모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이완구의 이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행적은
홈페이지를 통해 분 단위로 공개가 되며,
프랑스의 경우 홈페이지는 물론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1주일 일정에 대해 국민들에게 의견이나 비판을 듣기도 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32] 또한 마찬가지로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철저하게 자신의 행적을 공개하고 있다.
선진국이 이러한 문제에 얼마나 예민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은
911 테러 당시 행사의 일환으로 유치원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33]공식적인 행보였다. 심지어 부시가 책을 읽는 모습은 생중계까지 됐었다!], 보좌관의 귓속말로 테러에 대해 최초보고를 받은 뒤 약 7분 동안 계속 책을 읽다가 7분이 지나서야 자리를 떴는데,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내며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즉시 자리를 떴다'''고 하는 바람에 이후 국회에서 강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2014년 7월 18일
조선일보는 최보식 컬럼을 통해 세간에 사라진 7시간이
정윤회와
박근혜의 사생활과 연관이 있다는 루머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기사를 실었다.
#
이에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다쓰야 지국장은
조선일보 칼럼을 인용해
행방불명… 누굴 만났는가?라는 기사를 8월 3일 게재했다. 여기서 가토 지국장은 "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정윤회를 만나고 있었고, 이 사람은 박근혜가 젊은 시절부터 긴밀한 사이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청와대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가토 지국장을 고소한다. 여기에 대해 "대통령의 일정만 밝히면 끝나는 문제를 왜 이렇게 복잡하게 국제 문제로 끌고 가려고 하는가?"라는 비판이 있었다. 청와대 외에도 국내의 몇 보수 시민단체들이 8월 6, 7일
가토 다쓰야 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2015년 12월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이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당 기사가 허위 사실을 직시했다고 봤지만 면책 사유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해당 사안이 공인인 박 대통령에 대한 것으로 일본인들에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알릴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으며, 공인에 대한 기사는 허위 사실이라고 해도 작정하고 비방의 목적을 가진 것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면책 사유가 되며, 기사 내용도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사회적 판단에 맡겨야지, 범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토가 한 행동 자체가 반드시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었다. 5일 뒤 검찰도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무죄가 확정되었다.[34]
이 재판에서 검찰은
정윤회를 소환해 사건 당일 자신은
롯데호텔도 아니고 청와대도 아니고 강북 지역에서 알고 지내던 역술가 이세민(가명)을 만나고 있었다는 진술을 받는다.[35] 검찰과 재판부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산케이신문의 보도가 허위라고 결론 짓는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정윤회의 행적이 아니라 대통령의 동선이라는 점에 대한 의문은 변함이 없어서, 그저 산케이 신문의 보도가 허위라는 결론을 내기 위한 조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36]
비록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가토 지국장 고소 사건은 7시간 이슈가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이 사건 이후 산케이신문은 완전히 반 박근혜 정부 성향으로 돌아섰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일본 언론 가운데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하여 일본에서도 대서특필되도록 하는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여담이지만, 가토 지국장은 그 후 형사보상 청구를 하여 일부 인용결정(재판 출석에 든 항공료, 변호사비용 등)을 받았다.
#
세월호국민대책회의의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은 2015년 6월 22일
마약, 보톡스 등 의혹을 제기했고, 2015년 8월 3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이와 관해서 2016년 11월 5일에 공개된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의 240회 프린세스 메이커 특집 2 (with 이상호) 편에서 이상호 기자가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 자신이 취재 중이며, 연예인 보톡스를 위해
프로포폴 등을 맞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다시 제기했다.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불면증'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를 여러 경로로 들었다는 한 측근의 제보를 토대로, 참사 당일 수면제를 먹고 잔 게 아니냐는 가설을 제기했다.
# 또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이 창간 15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말을 토대로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추측하는 기사를 썼다. 강 기자는 불면증 등 다양한 건강이상이 박 대통령 세월호 7시간의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산케이 신문의 가토 지국장의 기사 논란이 정리된 후 한동안 7시간 의혹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세월호 유족들이나 시민단체 및 일부 언론들이 간간히 7시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면서 다시 이 의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최순실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사실로 드러나자, 이 사건에 대한 상상 이상의 각종 의혹과 음모론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하단 음모론 항목 참고. 물론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답만 계속 하면서 의혹 확인을 거부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쓴 사실과, 특정 병원과 긴밀한 관계라는 정황과, 청와대로 의구심이 드는 약품을 다량 반입했다는 자료로 인해 상황은 뒤집어졌다.
이는 청와대의 적극적인 해명을 이끌어 내었다. 이를 해명한답시고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게시판을 급하게 만들었는데, 청와대의 해명이 거듭될수록 의혹이 가라앉기는 커녕 오히려 더 의혹을 증폭시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놀라운 역효과를 발생시켰다. 이 7시간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차움 병원에서 미용시술을 자주 받았고, 정식으로 임명된 주치의가 아니라 비선 의사들을 동원해서 미용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문제의 7시간 동안 미용시술을 받고 있었거나 약물에 취한 상태라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6년 11월 19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코너에서 '세월호의 7시간과 대통령의 비밀을 푼다'라는
방송을 보도하겠다고 발표하자, 청와대는 '이것이 팩트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용시술 또는 약물주사에 대한 해명을 시도했다.
청와대의 해명.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러한 해명이 기존의 감사원 자료를 비롯해서 다른 자료와도 부합하지 않는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해당 기사.
이때 청와대의 해명에서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은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지시를 하고 있었다고 해명하였다. 관저 집무실이라는 표현은 매우 기만적인 표현이다. 관저는 일종의 대통령의 숙소로서 관저에는 따로 집무실이 없을 뿐더러 업무시간 동안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서 집무를 한다는 것도 매우 이상한 이야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관저에 가 본
유시민이 썰전에서 지적한 바가 있다. 참고로 대통령 관저가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은 사람은
이 영상과
이 영상을 통해 보면 된다. 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오전에 출근 전 비서관들과 일정 관련하여 회의를 갖는 모습이, 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침 7시 30분경에 출근하는 모습이 잡혀있다. 아무튼 청와대의 해명이 진실에 부합하는지 여부와 별도로, 일단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집무실에 없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확인시켜 주었으며, 이에 김기춘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비서실장인데도 대통령이 관저에 있는지조차도 몰랐냐는 조롱을 받았다. 야당 측에서는 왜 비상 상황에서 출근조차 하지 않고 관저에 있었냐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또 청와대는 언론이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를 보도한 탓에 승객이 모두 구조된 줄 알고 혼란에 빠졌다는 해명을 했으며,
문고리 3인방 중의 1인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도 검찰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이 전원 구조로 정리된 줄 알았다가 나중에 상황을 파악했다"라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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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해명은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력을 갖고 있어야 할 정부기관에서 그 긴박한 상황 판단을 언론보도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정부가 스스로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에 대한 해결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자폭성 해명이며, 그나마도 이 해명은 나중에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다.
청와대 '7시간 거짓말'…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오전부터 알았다.
잇따른 해명에도 의혹과 비난의 목소리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청와대에서는 홈페이지에 7시간에 일어났던 일을 오른쪽에 있는 표로 만들어 올리면서 상황을 진화하려 했다. 그런데 이 표 역시 의혹을 해소시키기는커녕 더 키웠다. 일단 진짜로 그 시간에 서면보고와 유선보고라도 제대로 받았다면, 그걸 2년 반 동안이나 감출 이유가 있었을까? 설령 참사를 막지 못했어도 대통령이 일상적으로 보고 받고 지시를 내렸다면 굳이 그걸 감출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저 표대로 7시간이 진행되었다고 해도 문제가 심각한데, 저 표에 의하면 박근혜는 단 한 번의 대면보고 없이 서면과 전화로만 보고를 받고, 계속 보고를 받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보고를 받고도 상황에 대해서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해상사고 등의 대재난에 대해 아무런 대응 능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정상적인 사람 수준의 판단력조차 갖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결국 저 표는 자신들이 국정 수행 능력이 없다고 광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애초에 이 표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 자체가 없었고, 실제로도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이 표가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는 지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관련 기사. 저 표에 있는 내용이 맞는다고 해도 부실대응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수두룩한데, 실제로는 저 표에 있는 수준의 대응조차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청와대의 이런 거짓말 퍼레이드는 오히려 7시간에 대한 여러가지 가설과
음모론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음모론의 내용은 아래 문단 참고. 이처럼 해명이 전혀 먹혀들지 않자 청와대는 저 표를 제시한 이후부터는 공식 해명을 포기하고, 대신 음모론이 나올 때마다 이를 부인하는 식으로 소극적인 대응을 했다.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그런 적 없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이렇게 대응하는 방식. 문제는 시중에 떠도는 음모론에 대해 반박만 했을 뿐, 정작 중요한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좀처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가 계속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하자, 각종 음모론에 대한 관심과 지지도는 오히려 점점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11월 21일,
JTBC 뉴스룸은 차움병원 출신인 녹십자아이매드의 김상만 원장의 진료 기록을 확보하여 김상만이 최소한 2014년 3월까지 최순실에게 대리처방을 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2014년 4~5월 사이에 최순실 자매를 치료한 또다른 2명의 의사가 있으며, 이 의사들에게 "사고 당일에 대통령을 진료했느냐?"라고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면서, 검찰이 이 3명의 의사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도하였다.
11월 28일 언론은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세월호 사건 시기에
청와대에 2명의
간호장교(
신보라,
조여옥)가 근무하고 있었으며, 언론보도 시점에
신보라는 전역하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근무하고 있고,
조여옥은
미국
텍사스에 연수 중이라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신보라와
조여옥은 모두 세월호 당일 대통령이 의료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였는데,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다고 발뺌하거나 말을 흐리는 바람에 의혹을 증폭시켰다.
2016년 12월 6일 한겨레 신문에서 "드디어 비밀의 7시간 중 일부 시간에 있었던 일을 확인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한겨레 신문은 세월호 참사 당일 1시부터 90분 가량 청담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단골 미용사를 불러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편
SBS에서는 5시 15분 구조본부에 나타날 때
일부러 흐트러진 머리를 연출하기 위해
또 다른 시간을 할애했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다음날인 1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3시 22분에 박근혜 대통령의 단골 미용사 2명이 청와대 관저에 출입하였으며, 75분 후인 4시 37분에 청와대를 떠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두 미용사는 자매 관계로 1명은 평소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담당하고 다른 1명은 화장을 담당했기 때문에, 세월호 당일에도 청와대에서 같은 작업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기사.
이에 대해 청와대는 그동안 2014년 4월 16일에는 청와대를 방문한 외부인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가 갑자기 말을 바꾸면서
해명(?)을 내놓았는데, "4월 16일 출입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오후 3시 20분경부터 약 1시간 가량 청와대에 머문 것으로 확인되며, 당사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머리 손질에 소요된 시간은 20여분"이라고 밝혔다. 시간을 대폭 줄이기는 했지만 일단 머리 손질을 받은 것 자체는 인정했으며, 그간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그런데 거짓말이 이것뿐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2016년 12월 14일에는 머리 세팅에 대한 다른 증언도 나왔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던 동안, 시술 시간에만 3시간이 걸리는 아이롱 파마를 해주었다는 증언이다.
# 청와대는 3시간 아이롱 파마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했지만,
# 지금까지 청와대가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해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해온지라 청와대의 반박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편 노컷뉴스는 머리를 손질한 시각이 너무 늦은 것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업무를 시작하기 전인 오전 7~8시에 아침식사, 세면과 함께 머리 손질을 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가 오후 3시가 넘어서 머리를 손질했다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도 평소에는 오전에 머리를 손질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에 대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2016년 12월 18일에 공개된 탄핵답변서에서는 세월호 사건 때
청와대에서 정상근무를 하였다고 해명하였다.
#[40]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세월호 당일에 대통령이
신속하게 현장지휘를 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12월 22일 헌법재판소의
이진성 재판관은 문제의 7시간에 대해 시각별로 해명하라고
요구하였다.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비서관이 오후 2시 넘어서 관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봤으며,
# 그때 사태의 심각함을 전했다고 한다.
#[41] 그렇다고 그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심각함을 몰랐다는 의미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정호성의 보고 사항은 청와대가 공개한 7시간에 없는 내용이며, 탄핵답변서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윤전추와
이영선이 관저에서 대기하였다고 한다.
#
2016년 12월 30일 박근혜 대리인단이 박근혜가 세월호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지금까지 그날 뭘 했는지 그렇게 지겹도록 추궁을 당했으면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이 날 법 한데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을 한 셈이다. 만약 박근혜가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을 진짜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청와대가 '이것이 팩트입니다' 등을 통해 해왔던 해명들은 다 거짓말이다. 이미 국민들은 대부분 안 믿었기 때문에 놀라울 일도 아니긴 하지만, 팩트랍시고 표까지 만들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사실인양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한 셈이다. 그게 아니면
전두환 시절 청문회에서부터 지금 국정감사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수없이 써먹었던 마법의 단어 '모릅니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를 써먹은 것이거나… 게다가 주장대로 정상근무를 하였다면 기억이 없을 수는 있어도 기록은 있어야 한다.
2017년 1월 9일, 청와대가 세월호 당일을 'VIP 기록'으로 지정하여 30년간 봉인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참사 당일 기록물을 애초부터 비공개 처리하고 비밀문서로 지정하려던 단서가 Jtbc에 의해 포착되었다.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지정기록물로 넘긴다면 최대 30년간 박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볼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992일이 흐른 뒤인 2017년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에서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요약하면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논란이 일어나는 상황이 황당하고 어이없다.'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 그럴 리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으며[42], 사태에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수사적인 표현으로 말을 흐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여러 모로 답변이 상당히 애매하지만, 결론적으로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적인 답변은 경호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답변을 종합해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공식적인 업무 장소가 아닌 자신의 관저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보고를 받고 구조 지시를 내렸고, 전원 구조 오보를 받고 기뻐했다. 그러나 11시경 이것이 오보로 밝혀진 뒤, 중대본에 빨리 가려고 했지만, 경호에 필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갈 수 없었고, 중대본에 무슨 상황이 생겨서 당장 출발할 수 없었고, 7시간이 지난 뒤 중대본으로 달려갔다.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당일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있었던 이유는 현장이 중요하고, 현장에서 잘 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경호에 걸리는 필수 시간이자 중대본에 생긴 무슨 상황이 해결되는데 걸린 7시간 동안 자신의 관저에 있었는데, 큰일이 터지고 학생들을 구하는 데 온 생각이 집중되어 다른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저는 그날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정상적으로 계속 보고받으면서 체크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 일정이 없어서 관저에서 일을 챙기고 있었다. 일정이 없는 날은 관저에서 밀렸던 업무를 한다. 그날도 일하고 있었는데 보고가 와서 '특공대도 보내고 다 보내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하라'고 했다. 해경 상황을 챙기면서 각 수석실 보고도 받고 있다가 전원 구조됐다고 해서 너무 기뻐 안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오보였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
그래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빨리 가려고 하니까 경호실에서 경호에는 필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 마음대로 제가 못 움직였다. 거기에다가 중대본도 무슨 상황이 생겨서 바로 떠나지 못했고, 다 준비됐다고 한 뒤 달려갔다.
(사건에 대한 본인 심경)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헌법재판소가 그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제출해달라고 해 대리인단을 통해 다 정리하고 추가해서 지금 만들고 있다. 제출하면 헌법재판소에서 재판하게 될 텐데 이번만큼은 그런 허위가 완전히 걷혔으면 생각한다.
('세월호 7시간 밀회설'을 비롯한 각종 소문에 대해)
말도 안 되고 입에도 담기 민망한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이 어떻게 밀회를 하겠나. 시간이 지나니 '굿을 했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됐다. 너무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성형수술 의혹도 떠올랐다. 법원에서 7시간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판결이 나서 정리가 되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똑같은 이야기가 버전이 달라져서 시작된 것. 미용시술 건은 전혀 아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가 없는 일.
(참사 당일 외부인 출입에 관해서)
그날 기억을 더듬어보니 머리를 만져주기 위해서 오고, 목에 필요한 약을 들고 온 것 외에는 아무도 없다.
큰일이 터지고 학생들을 구하는 데 온 생각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누가 다른 일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은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상황.
(당일 본관 집무실로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실 현장이 중요하다. 앉아서 회의를 해도, 보고를 받고, 지시를 받아도 현장에서 잘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9시 1분: MBC 생활 날씨 기사에 세월호 관련 정보 입력
#
9시 19분: 국정조사에서
김기춘 실장이 기존에 밝힌 인지 시간 (방송 보도 청취)
9시 20분: 청와대에서 해경상황실로 전화 통화, 침몰 사실 및 인원 확인
9시 25분: 119 소방상황실, 8시 30분 침몰 추정
9시 30분: 해경 → 청와대로 상황보고서 발송
9시 30분: 국가안보실, 세월호 침수 1보 보고서 제작, 보고.
1.3.11. 2018년 3월 28일 서울중앙지검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및 대통령훈령 불법 변개 등 사건’ 수사결과 발표 내용
새누리당을 탈당한
정두언 전 의원이 28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 7시간'을 두고 "지금까지 (청와대가) 이유를 대지 못한 것은 폭동이 일어날 것 같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세월호 참사에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정부 측 관계자는 해경 123정이다. 그러나 이 해경 123정 정장은 이후 "충분히 구조해서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이고 매우 미숙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사상자를 발생시켰다"는
대법원의 판단으로 과실치사 혐의 유죄(징역 3년)가 확정되었다. 따라서 지휘계통에 있는
해양경찰청 청장-
해양수산부 장관-
청와대와
박근혜가 정치적으로는 과실치사 책임이 있는 것이다.
2016년 12월까지 7시간 의혹에 대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청와대는 이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구조 관련 활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국민들의 분노가 겉잡을 수 없이 터져나올 것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린" 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발 후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엄청나게 높아졌는데, 처음 음모론이 제기되었을 때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등장한 '세월호 7시간'이나,
JTBC가 입수한 태블릿 PC에
세월호 7시간 관련 문서가 들어 있었다는 소문이 확산되었을 때
손석희의 대처[43]를 보면 이 문제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차라리 이 7시간에 대한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이에 대해 솔직하게 해명하고 대국민 사과 및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철저한 사후지원을 약속했다면 당시에 큰 비난과 질타는 받았겠지만, 이처럼 참사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의 의혹과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는 해명의 골든타임을 놓친 후 계속 모호한 답변과 해명 거부로 시간을 끌었으며, 유족에 대한 처우 결정과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대신 보수단체를 동원하여 유족들을 모욕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등의
각종 정치공작을 통해 세월호 이슈를 진화시키는 데에만 힘을 기울였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탄핵 정국이 다가오면서 온 국민이 이 7시간의 의혹에 집중하게 되자 정부는 더 이상 출구가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2016년 11월 3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위해 임명된
박영수 특검이 이 7시간 문제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겠다고 천명하였으므로 7시간의 규명은 이제 시간 문제가 되었다… 였는데, 늘 하던 짓거리 그대로 청와대가 특검의 압색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정권이 교체된 후에야 7시간 규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청와대의 이런 웃지 못할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 "왜 7시간의 행적을 공개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 대신 "왜 7시간의 행적을 공개 못할 수밖에 없을까" 라는 질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처절하게 행적을 은폐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면 결국 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결코 정상이 아니었으며, 이것이 알려질 경우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인즉슨 청와대가 암묵적으로는 그 7시간을 대통령이 인명구조가 아닌 딴 데다 허비하고 있었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감출 필요도 없을 테니까.
애초에 이 의혹은 '대통령이 일을 했다면 그 증거가 남는다'라는
명제의 대우 '증거가 없다면 대통령이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와, '유리한 증거가 있다면 그를 제시하는 것이 정상이다'의 대우 '증거가 있는데도 그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그 증거는 불리한 것이다' 라는 두 가지가 근거인 주장인데, 7시간 반 간의 행적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시점에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거면 박근혜가 정상적으로 일하지 않았다는 증거밖에 없는 것이고, 증거가 진짜로 없는 거면 박근혜가 일을 하지 않아서 제시할 증거가 없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많이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그간 7시간 규명에 반대하는 주장도 꽤 있었다. 이런 주장들은 주로 여당과 공직자,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었으며, 이런 반대의견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각종 막말과 거친 언사로 세월호 유족들에게 심각한 모욕과 상처를 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거의 모두 대통령의 직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망각해서 나온 궤변에 불과하며,[44]단순히 '상대적으로 다른 의견이다'라고 치부할 만한 문제가 절대 아니다. 한편으로는 '도대체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무슨 행동을 했길래 이렇게 결사적으로 규명을 반대하는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면서 오히려 규명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는 역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것이 아닌데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7시간 규명을 주장하는 어느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를 일으켰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7시간 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해난 사고의 구조와 수습의 책임을 진 대통령의 직무유기 여부를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다.[45]
세월호 사건의 가해자가 세월호의 선장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가해의 책임을 지게 되는 사람은 가해자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이물질 혼입이나 제품 불량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 불만이나 클레임에 대해서
CEO 선에서 대처할 일이 많은 기업체들에서는 이미 이를 잘 인식하고 있으며, 《Journal of Business Ethics》 같은
저널들에서도 진작부터 관련 연구들이 출판되어 왔다. 이는
정부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라서 어떤 대규모의 참사, 특히 인재(人災)가 벌어졌을 때 그 최종적인 책임(responsibility)을 질 누군가를 국민들이 원하는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장 《Law and Human Behavior》에
2003년에 기고된 한 문헌에서는,
9.11 테러 사건의 가해자가 항공기 돌진과 함께 이미 죽었음에도, 심지어
조지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에 군을 파병하여 진짜 주범인 빈 라덴을 잡도록 하는 대처를 취했음에도 여전히 그가 테러 희생자들에게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이 나타났음을 지적하고 있다.[46][47] 이처럼 어떤 참사의 주범이 아니라고 해서 비난의 화살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 CEO들이 까마득한 말단 직원의 잘못으로 인해 카메라 앞에서 허리 숙여 사죄하게 되듯이,
대통령이라는 자리 역시 임기 중의 인재에 대해서 최종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48] 자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49] 이러한 종류의 권력자의 의무는 어떠한 종류의 정치체계에서도 발생하며, 심지어 가장 원시적인 정치 체계인 부족 단위의 추장들조차도 이런 책임을 져야만 한다. 대부분의 부족장, 추장들도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앞장서 싸워야 하는 책임을 가진다.
남미의 부족장들의 별칭은 아예 "가장 앞서 싸우는자" 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추장조차도 평소에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할 정도로 궁핍해서, 허울 뿐인 추장자리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보는 건 거의 없는데도 위기 상황시 생명을 걸라는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열심히 구조를 지시했어도 어차피 희생은 못 막았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7시간 동안 열심히 세월호 구조를 지시했을 경우 구조가 가능했을지 불가능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박근혜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을 방기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서 "팩트" 는 박근혜가 국민들이 납득할 만큼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며, 오히려 박근혜가 그 무렵에 "에이 어차피 해봤자 안돼" 하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과거 정권에서도 이러한 종류의 비극적인 사건은 많았으며,
김영삼 정권 때는 사고가 정말 한 달 걸러 하나씩 터질 정도여서 김영삼이 운이 지나치게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았었다. 하지만 당시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정부에 책임을 묻긴 했어도 사건 이후의 행적 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진 경우는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치적인 견해차이로 비난을 받거나 대비 또는 대처가 미흡했다고 비판받을지언정, 이러한 종류의 책임을 지는데는 물러섬이 없었다. 다들 최대한 빠르게 현장이나 중대본에 등장했고, 이후 나름의 대응책을 지시했다.
이와 같은 사후설명적, 결과중심적 반응은 "박근혜는 잘못이 없다" 는 결론을 정한 후, 그 결론을 뒷받침할 이유를 억지로 찾으려다 보니 발생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즉 박근혜가 구조에 열심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까지는 양보하겠다는 것인데, 박근혜가 잘못이 없다는 억지 결론을 빼고 다시 생각해 보면,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구조의 성패와 무관하게 핵병기급의 타격을 입을 일이다.
그걸 정당화하려다 보니 "어차피 해봤자 안 됐을 일이다, 따라서 박근혜도 잘못이 없다" 식의 비논리적인 옹호가 되는 것이다. 이런 소리는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
다시 말해 박근혜가 세월호에 관해 잘못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나 설득력이 있을 뿐이다. 더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박근혜가 잘못한 게 없다는 자신만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진
일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세뇌시켜서 안정을 되찾기에는
꽤 좋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세월호 전복 직후 박근혜가 관심을 갖고 직접 상황보고를 받고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면, 희생자들의 구조 여부와 별도로 최소한 납득할 수 없는 구조 작업이 벌어졌던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참사 초반에 국민 여론과 언론을 실망시킨 것은 정부의 믿을 수 없는 재난 관리 역량이었다. 이 무렵에 흔히 나오던 기사는 다름아닌 "콘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박근혜의 책임은 넓게 잡아보면 심지어 참사 이전으로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 취임 당시 박근혜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직접 개명하면서 공식적으로 국가위기관리 콘트롤타워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참사 초기에 중대본과 정부부처들이 우왕좌왕하던 이유를 풀어내는 데에는 박근혜가 그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를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학문적으로 보더라도,
사회과학자들은 상대방에게 실제로 이익이나 혜택을 주었는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익이나 혜택을 주려는 의지가 있었는가의 여부임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의 차원에서 "제가 지금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면목 없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이
복권이라도 받아 주십시오" 라고 했을 때, 그 복권이 당첨되었는가 아닌가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보인 연구가 있다(Okimoto, 2008). 복권이 꽝이더라도 어차피 상대방의 참회의 의지를 읽은 사람들은 마음이 누그러진다는 얘기다. 세월호의 경우에도, 박근혜가 무슨
원더우먼처럼 날아와서 여객선을 바다에서 쑥 끄집어내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에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국가수반으로서 행정부를 지휘할 마음이 처음부터 있기나 했느냐'를 따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 주장은 "박근혜는 7시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는
청와대의 입장 표명과 상충될 여지가 있다. 청와대는 박근혜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까지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
물론 당시 대통령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지휘했더라도 구조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을 수 있다.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비전문가이고 구조 현장에서 효과적인 지시를 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며, 현장의 판단이 대통령의 판단보다 정확할 수 있다. 구조 가능성에 대해서는 7시간의 의지 문제와는 별개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누차 언급하듯이 국민들은 박근혜가 원더우먼처럼 구조하지 못한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객관적 구조 가능성이 낮았으리라는 추정을 근거로 하여 7시간 행적을 규명할 필요성 자체가 없다는 주장을 펼칠 수는 없다.
위의 내용과는 별개로 1분1초를 다퉈 탈출해야 하는 침몰상황에서 예외가 되는 선장 선원이 가장먼저 탈출하고 승객들에게는 갑판집결이나 탈출이 아닌 선내대기라는 치명적인 방송을 한 시점에서 전체구조는 불가능 했을거라는 주장 자체는 완전히 일리가 없지는 않다. 여기에 더해 해경 등도 탈출하라는 방송을 하지 않고 스스로 나오는 사람만 구조한 것도 대규모 참사가 된 큰 원인이 된다. 박근혜의 중대본에서의 행보[50]등 정부의 행보도 무능함 그 자체였으나 총체적 난국 상황에서 정부의 대처가 주요한 원인이었다는 여론은 약간은 뒤집어쓰는 감도 없지않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일 뿐인데 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보험 등의 체계가 잘 되어 있고 피해규모가 적은 도로교통의 경우는 사고가 나도 민간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항공기나 선박의 경우에는 일단 사고가 나면 필연적으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국가의 상시관리와 감시가 반드시 필요하며, 일단 사고가 났을 경우에는 반드시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습과 대책에 개입해야 한다. 게다가 9시 반에 청와대가 대통령 박근혜에게 서면 보고를 하였다. 청와대의 우리나라 최고위직 공직자들도 대통령의 국가적인 개입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참사 당시 세월호는 안전점검도 제대로 받지 않은 데다 과적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에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세월호 사고는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人災)에 가까운 사고이기 때문에, 반드시 책임자가 규명되고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구조 작업이 논란을 불러 일으킬 만큼 미숙했고, 대통령은 사건 발생 당시부터 계속 이 사건의 수습과 책임을 피하려고만 할 뿐 해결에 대한 어떠한 성의나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7시간 부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슈다.
말이 필요 없다. 이것은 정부와 아무런 연관도 없이 여행자제국에 입국했다가 변을 당한
김선일 피랍 사건 당시 박근혜의 발언 영상으로, 직접적인 관계 여하와 무관하게 자국민의 생명이 걸린 국가적 사안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음을 박근혜 본인의 입으로 들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또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책임 규명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각종 정치공작과 언론플레이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계속 차일피일 미루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그 7시간 규명이 저 위의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과 최소한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예 상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호 7시간 이슈가 잠재적인 뇌관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박근혜의 "무능한 모습" 이 아닌 "비정한 모습" 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대통령 박근혜의 능력에 대한 실망" 을 갖게 했다면, 세월호 7시간은 국민들이 인간 박근혜 그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차별성을 갖는다. 심리적으로 무능하지만 따뜻한 인물은 동정심을 일으키지만, 무능하면서 비정한 인물은 즉각 혐오와 경멸을 동반한 반응을 불러온다. 실제로 정치심리학자들은 정치인들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특성이 다름아닌 따뜻함(warmth)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박근혜가 무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시민들이 "무능하니까 끌어내려라" 를 외치는 동안
박사모는 "무능하니까 얼마나 안쓰럽냐"(…)를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박근혜가 최소한의 인정도 도의도 인간미도 없다는 것이 공적으로 확인된다면, 적어도 박사모는 그것을 인정할 것 같진 않지만, 96%의 국민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상당히 정치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세월호 7시간이 갖는 파급력 자체는 결코 작지 않으며, 밝혀지는 바에 따라서는 오히려 잠재적인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가 바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안 어쩌고 해봤자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던 그 순간만큼은 세월호 사고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중요한 사안이다.[51] 국민의 목숨을 구하는 게 국가가 하는 일의 최우선순위이며 국가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집단이다. 7시간 규명보다 중요한 사안이 많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국가 및 국가지도자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지속적으로 7시간 동안의 행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7시간이 지난 뒤 처음으로 중대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했던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발언이다. 개요를 봐도 알 수 있듯 이 때는 이미 배가 완전히 침몰한 상황이었고, 구조하지 못한 희생자들은 배 안에 갇혀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대통령이 7시간만에 모습을 드러냈더라도 이 때 상황에 대하여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설령 행적이 지금처럼 불분명하였더라도 '세월호 7시간'은 그렇게까지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드냐'고 묻고, 안전행정부 차관이 '갇혀있어서 구명조끼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하자 '갇혀있어요?'하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동안 아예 사고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거나 대략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다고 추정하는 가장 큰 이유다.
추가적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는 7시간 규명에만 국민들의 관심사가 쏠려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그 이후에 사태 수습과 관련하여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만만찮게 심각한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5시 15분에 중대본에 나타난 후 잠깐 머물다 다시 관저로 돌아가서 당일 일정을 종료해 버렸는데, 5시 15분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면 그제서라도 중대본에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든가, 아니면 최소한 국민을 달래기 위해 상황실에서 관계자들과 같이 모니터링이라도 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7시간 동안만 아무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날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는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이었던 세월호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언론사를 통해 9시 19분에 사고 사실을 인지하고, 관련 사항과 구조 인원을 파악한 상황보고서 1보가 9시 57분에 완성되어 오전 10시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전달되었다.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받지 않자,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연락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에 김 전 실장은 신 전 센터장에게 이 상황보고서 1보를 전달하라고 지시하였고, 신 전 센터장은 10시 12~13분 사이에 상황병에게 보고서 전달을 지시하였다. 상황병은 10시 19분쯤 관저에 도착하였고 보고서가 관저 경호관을 거쳐 내실 담당자에게 전달되었지만 담당자는 평소와 같이 별도의 구두전달 없이 대통령 침실 앞 탁자 위에 보고서를 올려둔 것으로 밝혀졌다. 안 전 비서관은 전화를 받은 후 오전 10시 20분쯤 관저로 들어갔다. 안 전 비서관이 침실 앞에서 수차례 대통령을 부르자 박 전 대통령은 그제서야 침실 밖으로 나왔고 안 전 비서관이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하자, 박 전 대통령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 10시 22분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락가락하던 최초 보고 시간은 9시 30분도 10시도 아닌 오전 10시 20분 이후였다. 그리고 김장수에게 처음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한 시간은 10시 15분이 아닌 22분. 검찰은 청와대에서 골든타임 10시 17분 이전에 대통령 보고와 지시가 있었음을 가장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즉, 보고시간을 30분 늦춰서 박근혜의 지시가 늦었음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는 아무 이유없이 연락이 안되었고 애초에 보고와 지시가 이미 늦었음을 감추려고 보고시간을 20분 빠르게 조작했던 것이다.
최순실은 청와대에 있었다
최순실은 당일 이영선 전 행정관의 차를 타고 2시 15분경 A급 보안손님으로 관저를 방문했다. 박근혜는 최순실이 오기 전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최순실이 온 뒤에 관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문고리 3인방의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이 결정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회의 이후에 미용사를 불러 머리와 미용을 마친 뒤 5시 15분 중대본에 박 전 대통령이 도착했다.
요약하자면 '오전에는 '
이불 밖은 위험해'를 하고 있었고, 오후에는 최순실을 기다리느라 아무 것도 안 했으며, 청와대는 이 어처구니 없는 실상을 은폐하느라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위에 열거한 가설 중에서는 '그냥 관저에 있기만 했다'에 가장 가깝다.
[1]
이후 22:09까지 총 11회 상황보고서 이메일로 발송. 정호성은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않고 오후, 저녁 각 1회씩 보고서 일괄로 전달.
[2]
해당 판결에서 대통령과 청와대도 정보공개 의무가 있는 기관이라고 인정한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나,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청와대를 의식하는 것인지 너무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3]
통상적으로 의료용 가글은 필러 시술을 한 경우에 사용한다.
[4]
박래군 위원장은 2015년 8월 3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5]
김기춘을 비롯한 다양한 박 전 대통령 측 증인들이 '관저 집무실'이나 '관저에서 업무를 했다'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이는 그 자체로 기만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업무공간인 동시에 생활공간이며, 관저는 소수의 측근을 제외하면 철저히 경호받는 대통령의 주거공간이다. 우연히 회사 바로 옆에 집을 얻게 된 직장인의 예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6]
하지만 국가안보실 첫 보고문건에는 08시 35분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정부가 발표한 시각과 실제 사고 발생 시각 사이에 13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
[7]
2017년
10월 12일 최초 서면보고가 10시가 아니라 9시 30분이었음이 밝혀졌다.
[8]
참고로 중앙부처 보고용 문서는 5분 단위로 기재하는 것이 관례이다.
[9]
침몰 전 최후의 교신이다. "선장이 상황을 판단해서 승객을 탈출시키라(진도 VTS)",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세월호)".
[10]
원래는 10시에 최초 서면 보고가 있었다고 발표됐으나,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나온 문건을 보면 9시 30분에 최초 서면 보고가 있었다. 10시 최초 서면 보고는
박근혜 정부의 조작인 것으로 확인됐다.
[11]
아래에도 있는
김기춘의 걸작 변이다. 대통령이 서면 보고를 받긴 했는데, 자신은 서면 보고를 올렸으니 그 시각에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뜻. 물론 일부러 말을 빙빙 돌린 것이다.
[12]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13]
http://v.media.daum.net/v/20180328171054299?f=m?rcmd=rn
[14]
현재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10시에서 11시 사이에 2번 유선으로 구조를 지시했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박범계 의원은 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기사.
[15]
"해경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현장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거짓임이 밝혀졌다.
#
[16]
10시 21분경 박준혁 군.
[17]
즉, 최초 변침 시점부터 완전 침몰까지 불과 109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큰 배가 불과 109분 만에 완전히 침몰한 이유로는 평형수 부족이 꼽힌다.
[18]
물론 오보이며, 유가족들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19]
인도네시아 대통령 방한 시기 조정 관련 사안.
JTBC 기사.
[20]
자율형 사립고 관련 사안에 대해 유선 보고.
JTBC 기사.
[21]
당시 청와대 조리장의 증언(
채널A 보도).
[22]
기초연금법 국회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 최용원 고용복지수석과 통화.
[23]
기사.
[24]
JTBC 보도. 파면된 이후에도 삼성동 사저에 들고 있는 정송주, 정매주 자매이다.
[25]
JTBC 보도.
[26]
여기서 그 유명한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망언을 하게 된다.
[27]
세월호 사건은 2014년이었다. 즉, 작년도 재작년도 아닌 재재작년, 즉 3년 전이다. 백번 양보해서 '재작년'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기라도 했으면 '새해 첫날이라 헷갈렸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라고 물어 정말로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이 신년인사회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직무가 정지된 상태인 박근혜가 위법하게 기자들을 상춘재로 불러들여 언론플레이를 했던 행사다. 자신이 탄핵소추된 사건에 대해 변명을 할 목적으로 기자들을 불러모아놓았으면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이 정도로 무관심한 태도로 가볍게 이야기한 것이다.
[28]
이 역시 교묘하게 피해자 행세를 하며 논점을 이탈하려는
물타기에 불과하다. 세월호 7시간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이 왜 이런 대형 사고에 대해 보고를 받고도 7시간 동안이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며,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필사적으로 감추는가' 즉 공적인 업무수행의 태만과 유기이지, 대통령이 밀회를 했는지 아닌지 즉 대통령의 사생활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 만약 실제로 그 시간에 밀회를 했더라도 밀회를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면 욕은 좀 먹었을지언정 탄핵국면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29]
세월호 첫 서면보고 시점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공개된 날
[30]
통상 통화내역의 보관 연한은 1년이다. 그러므로 2014년 4월 16일 당시의 통화기록은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31]
이 시각 이미 세월호는 입구와 갑판이 침수되어 진입이 불가능했다.
[32]
구마모토 지진 당시 지진 발생 34분 만에 NHK에 모습을 보였다.
[33]
즉
[34]
이 기사를 번역한 사람도 입건을 검토한 바 있으니 해당 기사의 번역은 해서 공개하지도 부탁하지도 않는 것이 좋다. 단,
정윤회,
최태민 등의 실명이 언급됐으나 세간에 알려진 것과 같은
롯데호텔 등 장소에 대한 언급은 없다.
[35]
애초에 정윤회는 집에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이 위치추적 자료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번복하고 이세민을 만났다고 진술한다.
[36]
이세민은 대구 역술가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거의 모든 대통령들의 (
이명박 제외) 사주를 직접 봐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정재계에 두루 걸친 인연이 있다. 특히
이희호 여사(
김대중 대통령 부인)와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 때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여당 중진 의원이 탄원을 해주기도 했다.
[37]
해당 판결에서 대통령과 청와대도 정보공개 의무가 있는 기관이라고 인정한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나,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청와대를 의식하는 것인지 너무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38]
관련자가 확인되었거나 근거가 있는 보도만 인용하였다.
[39]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에 있다고 증언을 하였다.
#
[40]
최순실 국정조사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호성도 그 당시 관저에 있었다고 하였다.
[41]
이렇게 자세히 진술하였는데, 2시 이전 상황은 언급이 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호성도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42]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상식을 버린 짓을 벌인 전과가 있어서 '상식적으로 그럴 리 없다'는 말로는 변명이 안 된다(…)
[43]
뉴스룸에서 '아직 해당 사건에 관해서는 확실히 밝혀낸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단순 루머로 취급하고 넘어가도 괜찮았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대처는 극히 이례적이다.
[44]
대통령은 개인 생활의 희생과 사적인 이해관계의 배제를 전제로 한 직책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통령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일을 추진해서는 절대 안 되며, 국익이나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기꺼이 행적을 공개해야 한다. 애당초 그럴 자신이 없다면 대통령직에 나서지조차 말았어야 한다.
[45]
경찰이 범죄신고를 받고도 늦장대처를 해서 상황이 악화되었다면, 경찰이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지만 여론의 질타를 받는 것과 같은 맥락.
[46]
Tyler & Thorisdottir, 2003.
[47]
심지어 미국은 "자드로가 법" 이라고 해서 현장에서 숨진 경찰관 제임스 자드로가의 이름을 딴 희생자 보상 법안을 통과시켰다. 게다가 한 번 더 개정을 거쳐서 첫 보상 범위에서 누락되었던 7,800명의 부상자를 포함한 63,000명의 공무원과 민간인들에게 아낌없는 보상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48]
여기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이 아닌, "책임을 지게 되는" 으로 굳이 적힌 것에 유의할 것.
[49]
그리고 대통령은 최종 통수권자이기도 하다.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 권한으로 인해 발생한 일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따른다. 권리에는 그만큼의 의무가 따른다란 격언을 상기해본다면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다는 건 권한을 행사할 자격 또한 없다는 소리와 똑같다.
[50]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갇혀있어요?'(....)
[51]
이걸 무시했기에 국가가 국민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제대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런던 아파트 화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영국의 언론들이 든 예시가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