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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9:25:11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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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서양 역사에서의 고전3. 가치가 인정되는 이유4. 입문 난이도

1. 개요

/ Classic
고전(Old school)과 구식(Outdated)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전은 원시적이지만 다시 하더라도 재미있는 것이고, 구식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 AVGN. 타이거 일렉트로닉스 게임기 리뷰[1]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구닥다리 취급을 받지 않고 오히려 시대를 거듭하여도 여전히 흥미롭거나 재미있으며, 가치를 세간에서 널리 인정 및 존중받는 것을 일컫는다. 특히 그냥 '고전'이라고만 하면 고전 서적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고전의 기준은 명확하지는 않으며, 단순히 무조건 오래되었다고 '고전'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보통은 시대가 지나서도 재평가되거나 계속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작품성 및 완성도가 빼어난 명작들을 말한다.

그 예로는 고전음악, 고전소설, 고전게임, 고전 애니, 고전 영화, 일부 오페라 등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 과목 중에는 고전의 의미와 고전을 읽는 방법, 각 분야의 고전의 일부 내용에 대해 알아보는 과목이 있다. 이름도 ' 고전 읽기'다. 고전이 100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힐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교육이다. 아무리 독서량을 줄이는 현대인들조차 교과서에 등장하고 수능에 출제되는 이러한 작품들은 읽지 않을 수 없다.

2. 서양 역사에서의 고전

서양 역사에서의 '고전'은 때때로 단순히 '오래된 좋은 작품'이 아닌 '고전적 전통'(Classical tradition)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쉽게 말하면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분위기를 말하는 것으로, 르네상스부터 이것들을 추종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등의 변화된 문화, 사조가 나왔지만 이것을 거부하고 다시 한 번 고전인 고대 그리스, 로마의 분위기로 돌아가자는 사조가 신고전주의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고전'은 '오래되고 좋은 작품'이란 뜻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3. 가치가 인정되는 이유

전술했듯이 간단히 말해 그냥 오래되어서 좋다는 게 아니고, 수많은 작품 중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정될 만큼 훌륭한 것들만 고전으로 남는다.

보통 어떤 것이 등장한 이후로 대략 100년 정도의 시간은 지나야 고전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이런 세월을 견뎌내는 작품은 생각보다 별로 없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오늘도 새로운 자기개발서가 흘러넘치고 있다. 그런데 그 것들 중에 100년씩이나 기억되고, 100년 후에도 사랑받을 만한 게 과연 얼마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2] 즉, 무엇이든 처음 나올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인기를 끌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바뀌고 다른 작품들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묻힌다. 그 사이에서 정상 급의 몇몇 작품만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전의 가치와 관련해 발터 카우프만 교수 1970년대 중반에 나온 ' 인문학 미래'라는 저서에서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10년을 채 견뎌내지 못할 과 자료들만 잔뜩 읽으며 졸업하고 있다'며 당시 미국 대학의 지적 풍토를 비판한 바 있다.

따라서 고전의 수가 적은 것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화, 사회, 언어가 달라지므로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작품이 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3][4] 즉, 긴 시간 동안 가치를 검증받은 질좋은 작품은 앞으로도 그런 가치를 지닐 가능성이 높으며, 적어도 지금 사회에서는 필요하거나 쓸 만한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고전 서적은 그저 옛날 책이지만 자기개발서 따위하고는 궤를 달리하는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고, 고전이라는 말이 붙은 것들이 다소 고급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가치가 낮을수록 고증하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아래 문단의 입문 난이도에서 후술하였듯이 고전은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사서 보고 읽고 들으려고 함은 그 자체로 커다란 가치가 있음의 방증이다.

정치학자 김영민은 고전의 독서와 여타 독서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했다. #
...고전 읽기는 단지 정보를 위한 독서, 위로를 위한 독서, 공감을 위한 독서, 소일하기 위한 독서와 다르다. 정보를 얻기 위해 글을 읽을 때, 혹은 위로나 공감을 찾아 글을 읽을 때, 혹은 소일하기 위해 읽을 때 사람들은 각자 정신의 그릇에 안전하게 담아 둘 예쁜 혹은 유용한 물건을 찾는 중이다. 그러나 고전 읽기는 다르다. 고전은 그릇에 담을 것을 찾으려고 읽는 책이 아니라, 그릇을 뽀개기 위해 읽는 책이다. 그릇이 뽀개지고 나야 비로소 새로운 그릇을 만들 수 있다. 그 새로운 그릇은 전과 완전히 다른 새 그릇이 아니라 상처를 통해 더 넓어진 옛 그릇이다. ...

4. 입문 난이도

기본적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만, 대체로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하며,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예시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한국어판(도서출판 길) 해제를 읽어보자.
수식 어구가 없는 그의 경제적 표현은 압축적이고 생략이 많고 함축적이며 숨어 있는 전제들을 지니고 있어 그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요청된다. 또한 암호 찾기와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이, 게임의 법칙을 늘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만 한다. 어느 시인(토머스 그레이 Thomas Gray)의 표현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다는 것은 '마른 건초를 씹는 것'과 같다. 이렇듯 수사적 어구를 사용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가 『 수사학』이란 작품을 남긴 것은 아이러니하다.
논의의 전환이 너무도 돌연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는 것은 포장되지 않은 거친 자갈을 급하게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양옆에 펼쳐진 경치를 구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독자들은 그 길에서 그가 사용하는 기술적 용어에 질리고, 어색한 구문에 놀라고, 때로는 저자의 불친절함에 넌덜머리를 내기도 하고, 철학 문제 난해함에 지쳐버리게 되어 비전문가들에게서 진리를 향한 거친 자갈길을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앗아간다.
『정치학』, 김재홍 번역, 해제 中

고전 읽기의 진입장벽이 느껴지는가? 누구나 읽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출판계에서는 아예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표현까지 있다. 책 전체 페이지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독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비율 계산한 것이다. 스티븐 호킹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호킹의 저서 역시 이렇게 인지도는 높지만 난이도 역시 높은 책들이 대부분이어서 붙은 표현이다.

그러니 고전이 전하는 이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고전 ' 강의'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며, 해설서가 나오는 건 예사이다. 고전과 비슷한 종교 경전도 이걸 교리대로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성직자가 존재하는 것도, 일반인들은 그냥 읽어서는 교리를 깨닫기가 매우 힘들거나 오독을 하기 때문이다.

이건 책에만 제한되는 평가가 아니다. 고전 혹은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들은 원래 입문 난이도가 만만하지 않다. 그나마 고전 영화는 좀 입문이 쉬운 편이다. 흔히 현대의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시민 케인이나 대부 등. 이러한 저작물들은 시간도 오래 지나지 않았을 뿐더러 현재 기준으로도 밀리지 않는 연출력과 이야기 전개 등을 보여주기 때문에 고전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흐름에 의한 차이'와 관련된 문제점들이 적거나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는 난이도가 대개 다들 높은 편이다. 책은 물론이고, 고전 음악도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오페라도 현재 뮤지컬보다 훨씬 진입장벽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전게임은 구동부터가 문제가 된다.[5] 설령 구동한다고 해도, 시대가 너무 벌어진 경우 별로 재밌다고 느끼지 못하기 십상이고, 난이도도 무시무시한 경우가 많다.

인문계열 책은 그 내용을 생각 없이 읽어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라 왜 굳이 이렇게 써야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장황한 문장들이나 너무 황당무계하고 말이 안 되는 문장들이 넘쳐난다. 다만 이것은 그 책이 쓰일 당시와 현재 읽는 시점 사이에 오랜 시간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장황한 문장의 경우 예컨대 근대 정치학 고전들을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읽어보면 어째서 이러한 복잡하고 많은 표현을 사용해서 간단한 개념 설명해야 하는지 느낄 때가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글이 쓰일 당시에는 애초에 그 저자가 말하는 개념 자체가 없거나 부정확했다.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히 여기는 개념들은 옛 사상가들의 그렇게나 장황하고 어려운 토론 결과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황당무계한 사상의 경우 극단적인 예로 과거에 쓰인 상당수의 윤리학 고전들은 노예제의 효율성에 대해 입증하려고 한다. 이 역시 그 시대의 상식은 노예제가 합리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쓰인 것이고, 우리들 역시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조차 먼 훗날 사람들은 어이없어하는 게 많을지 모른다.

즉,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 고전이 읽기 불편하고 어려운 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고전의 특성상 많은 사전 조사와 노력을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이 쓰일 당시와 현재 독자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실제로 그 저자가 을 못 쓴 것이 맞기도 하지만. 어떤 내용은 원래 대중을 염두에 두고 형식에 맞춰서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전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 다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강의 노트 내지는 청강생들이 받아 적은 강의 노트이거나 거듭해서 개작이 이루어진 초고 형태의 원고 내지는 지속적인 탐구를 위한 기록물이다. 이런 게 술술 읽히면 그게 특이한 거다.

다만 고전 소설은 진득하게 읽다 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때가 있다. 소설은 특정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서사적 구조가 있어 몰입력이 있고, 위에서 언급했듯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도 그 의미와 감동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전 철학, 사상에 대한 책에 비하여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을 확률이 훨씬 높다.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장르의 법칙 혹은 클리셰를 완성한 거라 생각보다 익숙하고, 돈키호테,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그냥 너무 재밌어서 고전이 된 사례도 있으니 너무 재미없을 것이라고 단정짓기보다는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후대의 작품을 먼저 접하고 나중에 고전을 읽는 경우 '이거 흔하고 진부한 내용인데 어째서 명작이라는 거지?'라고 의아해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고전이 먼저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자. 옛날에 어떤 작품이 나왔는데 인기를 끌어서 이후 비슷한 내용이 많아지면서 클리셰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고전이 당신이 아는 그 클리셰의 시초라고 보면 된다. 앞서 언급한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복수극 플롯 구조를 완성했다는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 역시 가진다. 즉 이후의 복수극의 클리셰들은 거의 대부분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등장한 요소들에서 비롯된 것이다.[6]

물론 소장하고 싶은 고전이라면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단순히 읽어보기 위해서 찾는 것이라면 근처 도서관을 방문하여 바로 열람하는 것이 훨씬 낫다. 가격을 고려할 때 고전 문학은 대형 출판사 여러 곳에서 '세계 문학 전집' 등으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아서 대개 철학이나 사상 책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편이다. 단, 대한민국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해외 고전 서사시 등의 작품은 학술 상의 목적으로 출판되는 경우도 많아 가격이 만만치 않은 점과 번역이 딱딱하여 생각보다 재미없게 느낄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1] # [2] 자기개발서 분야를 확립한 데일 카네기의 자기개발서들이 이제 90년 정도 됐다. 자기개발서도 고전이 될 수 있을지는 2040년에 다시 얘기해 보자. [3] 물론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현대와는 달리 옛날엔 인구도 적었고 교육도 지금보다 덜 발달했으며 정보화가 덜 되어 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이 더 높았고 오랜 세월을 거쳐 수많은 고전들이 몽땅 타 날아가 버리는 등 불미의 사고로 소실되는 일이 많았다는 점도 있다. [4]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작품의 예로 20세기 초의 책인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가 무려 한 챕터를 허버트 스펜서에 할애한 것을(그러니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프랜시스 베이컨, 스피노자, 볼테르, 칸트, 쇼펜하우어와 같은 반열에 둔 것을) 들 수 있다. 스펜서가 19세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에 60여년 후 사람인 듀란트가 이러한 고평가를 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21세기에 돌이켜보면 스펜서는 여전히 네임드이기는 하여도 그 정도까지 중요한 철학자는 아니다. [5] 주로 호환성이 문제가 된다. 호환성을 해결했다면 사양 문제는 의미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다행이다. [6] 김유정의 동백꽃이 유명해진 이유가 중학교 때 일괄적으로 배워서 삽화(점순이 그거 맞다.)도 있지만 이 책의 요소가 라노벨의 츤데레와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주인공에게 관심이 있지만 표현이 서투른 츤데레 여주인공, 둔감하고 눈치없는 남주인공, 남녀 주인공의 신분의 차이에 갈등으로 점철된 고구마 전개 끝에 연애 시작이라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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