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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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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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국성 橫城 高氏 횡성 고씨 |
|
관향 | <colbgcolor=#fff,#191919>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
시조 | 동명성왕 |
중시조 | 고인승(高仁承) |
집성촌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충청북도 제천시 |
인구 | 9,996명(2015년) |
웹사이트 | 횡성 고씨 종친회 |
[clearfix]
1. 개요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자 고구려의 국성(國姓)이다. 고구려의 초대 국왕인 동명성왕을 시조로, 고구려 제28대 보장왕의 아들 고인승(仁承)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1]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9,996명이 조사되었고, 본관에 걸맞게 횡성을 비롯한 강원 서남부 인근에 많이 분포한다.[2]
2. 상세
제주 고씨에 비하면 몹시 마이너한 축에 속하다 보니 존재 자체를 거의 모르다시피 해서 남해안 지역에 기거하는 소수의 횡성 고씨에게는 제주 고씨 종친회에서 일괄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족보 등록하라는 내용인데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고을나를 시조로 삼는 제주 고씨의 방계이자 고을나의 11세손 고인비를 시조로 삼던 제주도 출신 횡성 고씨가 실제로 존재했었기 때문이다.이들 제주출신 횡성 고씨들은 다른 제주출신 고씨들과 함께 1988년 모두 제주 고씨로 합본하여 제주 고씨 화전군파로 분류되며, 이 이후 더 이상 고을나를 시조로 하는 횡성 고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따금 이들 제주 고씨 화전군파가 횡성 고씨이었던 사실만 아는 사람들이 고인승을 시조로 모시는 횡성 고씨들을 제주 고씨의 방계로 여기며 고구려 왕족이라는 주장을 사기극이라 여기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위 사례와는 역으로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고씨하면 우선 고구려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고, 한국 고씨들이 고구려 고씨와 제주도 고씨가 비슷한 정도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인지도와 역사에서의 비중이 무색하게도 고구려 고씨는 만 명 남짓밖에 남아있지 않고 현존하는 고씨들은 대부분 제주 고씨다.
3. 역사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부여의 성씨는 해씨였지만, 고구려를 건국하면서 시조왕 추모가 성씨를 고씨로 고쳤다. 그러므로 해씨와 고씨의 자손은 동질적으로 부여 계통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 역시 해씨, 고씨와 같은 계통이다.5호 16국 시대 후기 북방 지역에 있었던 북연의 혜의제는 기록상 고구려계 고씨였으며, 남북조시대 후기 북제 또한 국성(國姓)이 고씨였긴 한데, 북제는 강태공의 9세 손 고혜(高傒)를 시조로 하는 발해 고씨라서 고구려계 고씨와 큰 연관은 없다.
다만, 고구려계 이주민들이 족보 세탁용으로 애용하던 가문이라 역덕이나 연구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다.[3] 당시에는 5호 16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의 혼란통에 고구려에서 선비족으로, 거꾸로 선비에서 고구려로 유입되어 온 유민들도 많았다.
4. 해외의 고씨
중국에는 제20대 장수왕을 선조로 하고 랴오닝성의 랴오양시[4]를 본관으로 하는 요양 고씨(遼陽 高氏)가 있으며, 약 2,000여 명이 집성촌과 족보를 지키며 산다고 하지만 사실상 중국 성씨에선 본관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런 증거도, 예전 기록조차 하나 없는[5] 이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동북공정의 일환이라는 의심도 있다.[6] < 역사스페셜>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요양 고씨의 후손이 한국으로 유학을 온 적이 있었다. #일본에는 고구려 왕족인 약광(若光)을 선조로 하는 코마(高麗)씨가 코마 신사(高麗神社)를 중심으로 하여 현대까지 성씨를 이어오고 있다.
5. 의문점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횡성 고씨는 고구려 왕족의 후예인 것으로 보여지나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이를 확신하기에 근거가 부족하다.일단 횡성 고씨 측에서 내세우는 근거는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라는 집안의 내력이 적힌 1824년본 《횡성 고씨 족보》가 1995년에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인데 이 서적이 실제로 19세기에 간행된 것인지, 아니면 후대의 필사본인 것인지, 심지어는 실존하는 책인지조차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애초에 서지적인 면에서 결격 사유가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 족보에 실린 기록이라면서 돌아다니는 내용 역시 그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실제로 그러한 책이 있다고 쳐도 그 내용에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조선시대 말기는 숭조사업의 일환으로 족보에 대한 왜곡이나 조작, 위조 등이 워낙에 성행하던 시기라 그때 편찬된 족보에 대한 사료적 가치는 매우 낮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에선 엄밀한 교차검증을 통해 족보의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아직까지 횡성 고씨 족보에 대하여 그러한 연구가 수행된 적은 없다.
게다가 처음으로 횡성 고씨를 조사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은 서경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서길수인데 일단 역사학계 인물이 아닌[7]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1996년 11월 28일자에 CBS 춘천 라디오 방송에서 한 담화를 보면 실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다소 존재한다.
일단 전국적으로 1만 명 정도가 흩어져 사는 횡성 고씨의 인구를 4만명이라고 한 발언이 그렇고,[8] 덧붙여 횡성에 이미 예전부터 횡성을 본관으로 하는 제주 고씨가 존재해왔다는 점 역시 위의 내용들과 함께 고구려 후손설의 진위를 의심케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횡성 고씨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고구려 출신임을 숨기는 관습 때문이라고도 밝혔는데 과거에 고구려 출신을 차별하는 대우는 통일신라 때 골품제의 한계를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이 또한 의구심이 가는 부분이다.[9]
즉, 종합해 보자면 학계에서 엄밀한 검증을 거치기 이전까지는 횡성 고씨가 고구려의 왕족이 맞다고 확정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별개로 횡성 고씨가 왕족이 아닌 횡성에 거주하던 고구려인들의 후손일 가능성도 있다.[10]
6. 여담
- 제주 고씨가 스스로 '髙'를 쓰기로 정한데 반해 이쪽은 高를 그대로 써서 서로 간 구별을 염두에 뒀으나, 횡성 고씨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보통 혼용되는 추세이다.
- 과거의 서길수의 조사에서도 그렇고 몇몇 인터넷 글에서도 그렇고 횡성 고씨의 인구가 4만명대 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하나 실제로 조사된 인구는 1만명 정도이다. #.
- 인터넷에서 부계 혈통을 추적할 수 있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 조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떠돌아다니곤 하는데 이런 것은 실제로 조사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고구려 국왕의 미라가 발견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어느 인물에 관한 Y염색체 이야기들을 접한다면 그냥 유사역사학으로 간주하고 믿지 않는 것이 좋다.
[1]
안승(安勝)과는 다르다.
[2]
거주인구는 경기도(2,500명), -횡성이 있는- 강원도(2,015명), 서울(1,661명), 경상북도(822명), 충청북도(675명), 인천(553명), 울산(364명), 대구(362명), 부산(314명), 충청남도(220명), 경상남도(200명), 대전(158명), 전라남도(42명), 전라북도(35명), 광주(33명), 제주도(24명), 세종(18명) 순이다.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을 제외하면 횡성이 위치한 강원도와 그 강원도 서남부 인근지역에 많이 분포함을 알 수 있다.
[3]
이름 그대로 고구려에 인접한 지역으로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나 고구려인의 유입이 용이한 곳이다.
고구려의 후예라고 북연처럼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부터 해서 발해 고씨로의 편입이 에둘러 언급되는 경우, 고구려와 발해 고씨를 겹쳐서 언급하는 가탁의 점차적인 과정이라던가 고구려의 언급이 세탁되어 가는 경우까지 다 남아있기 때문에 발해 고씨라는 출신 만으로도 연구자나 역덕들의 눈이 가는 경우가 많다.
[4]
옛 고구려
요동성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5]
있었다 해도
문화대혁명 때에 대부분이 파괴되어 사라져 버렸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국조선족(재중동포)들도
문화대혁명 때에 그 집안에 소장하고 있던 족보를 '봉건 잔재'랍시고 찾아내 불살라 버렸고,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이나
한글로 쓴
편지 한 장만 나와도
홍위병들에게 고초를 겪었다. 중국 '이주민'인 중국조선족이 이럴진대 '원주민'인 한족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6]
실제로 횡성 고씨와 일본 고마 씨의 족보는 어느 정도 대수가 일치하는데 반해 이들 요양 고씨는 아예 대수가 2배 이상 따로 논다. 애초에 족보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서 학계에서 그렇게 크게 신뢰성을 두지 않고 있으며, 횡성 고씨나 고마 씨라고 해서 정말 고구려 왕족 후손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7]
고구려발해학회의 전신인 고구려연구회(1995년 설립)의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원래 전공은
경제학이다.
[8]
4만명은 1996년 기준이므로 지금과 차이가 있다고 할 수도 있으나 20년만에 전체 인구의 25%만 남았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9]
애초에 골품제는 특정 귀족에게만 고위 관직을 허용하는거라 고구려 출신임을 숨긴다 한들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0]
고구려의 모든 고씨가 왕족이었을리는 만무하다. 사성(賜姓)으로 고씨 성을 받은[11]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성이 없었지만 고구려인 후손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 고씨 성을 칭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