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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 전쟁/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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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한국
2.1. 대한민국 임시정부 → 조선 자치정부 → 대한민국 정부2.2. 해외파 독립운동가2.3. 국내파 독립운동가2.4. 조선방송협회(청년조선)2.5. 민간인2.6. 동양척식주식회사 & 남만주철도주식회사
3. 일본
3.1. 역대 천황3.2. 역대 총리3.3. 역대 조선총독 및 통감3.4. 일본군
3.4.1. 육군
3.4.1.1. 관동군
3.4.2. 해군
3.5. 일본공산당3.6. 청년일본3.7. 민간인3.8. 친일파
4. 만주국5. 영국6. 소련
6.1. 소련 수뇌부6.2. 극동관구 및 제4인터내셔널6.3. 친소파
7. 미국8. 중화민국9. 중화소비에트공화국10. 독일11. 폴란드12. 인도

1. 개요

한국 독립 전쟁의 작중 등장인물에 대해 정리한 문서.

2. 한국

2.1. 대한민국 임시정부 → 조선 자치정부 → 대한민국 정부

원 역사의 임시정부 인사들이다. 사쿠라다몬 의거가 성공하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국내, 해외 독립운동가와 협력하여 조선 자치정부를 수립하여 원역사와 비교하면 매우 큰 수혜자들이 되었다.

2.2. 해외파 독립운동가

2.3. 국내파 독립운동가

조선에 남아있던 독립운동가들이며 사쿠라다몬 의거가 성공한 후에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일제의 직접적인 공격을 당했다. 한인애국단이 서대문형무소를 점령하고 서울을 탈환하자 민중의 도움으로 풀려나고 임시정부가 귀국하고 자치정부가 수립되자 거국내각에 참여하여 조선의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사상적으로 좌, 우익 인사들이 골고루 있는 편이며 좌익이어도 민족주의 성향을 더 보이는 편이다.

2.4. 조선방송협회(청년조선)

조선에 라디오 방송을 하는 방송국으로 산하에 '청년조선'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중이다. 본래 조선에 남은 일본인들을 달래고 협력시키기 위한 목적이 강했지만 연재가 진행되면서 동아시아 정치 격변의 핵심이 되었다.

2.5. 민간인

2.6. 동양척식주식회사 & 남만주철도주식회사

3. 일본

3.1. 역대 천황

3.2. 역대 총리

3.3. 역대 조선총독 및 통감

3.4. 일본군

원 역사에 비하면 엄청나게 약화되었는데 조선을 상실하고 반복되는 덴노의 암살로 인해 정치세력으로서 완전히 몰락해버렸다. 육군은 해군과의 힘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만주로 흩어지고 수뇌부는 망명했다. 해군은 일시적으로 정권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헤이세이 덴노를 죽게해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결국 해군의 실정이 겹쳐서 대규모 잇키가 발생하고 결국 레이와 덴노에게 완전히 밀려버리고 대만으로 도주한다. 관동군은 만주에서 세력을 형성했지만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기에도 버거웠다가 레이와 덴노의 명령으로 도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근위대장까지 진급한 홍사익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군축을 거쳤고, 숙군을 통해 과거의 군국주의 정신도 제거했다고 한다.

3.4.1. 육군

3.4.1.1. 관동군

3.4.2. 해군

3.5. 일본공산당

3.6. 청년일본

3.7. 민간인

3.8. 친일파

4. 만주국

5. 영국

6. 소련

6.1. 소련 수뇌부

6.2. 극동관구 및 제4인터내셔널

6.3. 친소파

7. 미국

8. 중화민국

회귀전에는 훙커우 공원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에 여러 도움을 주며 꽌시를 쌓았지만, 역사가 바뀌면서 그런 관계가 아니게 되었던지라 김구가 장제스의 폭주를 보며 착잡해한다. 최악의 경우가 되면 구명운동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9. 중화소비에트공화국

10. 독일

11. 폴란드

12. 인도



[1] 현실에선 덴마크령 그린란드가 이 정도 수준의 자치를 누리고 있다. [2] 실제로 영국이라는 '식민제국'이 분리세력인 임시정부의 편을 들어준다는 상황이었던지라 영국의 심기를 거스르기 힘든 상황상 어차피 독립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다가는 대영제국의 각지에서 분리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 [3] 그리고 이 독소조항은 후에 레이와 덴노가 되는 노부히토가 조선과 만주를 말장난을 이용하여 강제 독립시키는데 아주 알차게 써먹히려고 했다. [4] 얼마나 뻔뻔했는지, 공정한 제3의 공증인이라는 핑계로 일본을 압박하고 있는 영국측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얼굴을 굳혔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게 군권도 안 되고 대권(자치권)도 안 된다고 뭐든 안 된다고 하니 도대체 협상을 하러 나온 건지 생때를 쓰러 나온건지 구분할 수 없었을 정도였기 때문. [5] 백범이 워낙 골수 반공주의자로 유명했던지라, 일본에서도 그들이 좌우합작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일로 따지던 일본에서도 홍범도가 와서 자치정부가 손을 쓰지 못한다는 백범의 말 한마디에 어쩔 수 없어서 저런거라고 납득했을 정도. [6] 아예 대놓고 예상한 이유가 ' 우남이라면 이 때 어떻게 했을까'라고 추리한 결과였다. [7] 요약하자면 일본을 보증인으로 내세우고 미국산 신용카드를 무제한으로 긁어서 자본을 한가득 채워서 인프라를 복구하고, 산업시설을 유치하는 등 국력신장에 투자하는 것. 채권자인 미국 측 금융 거물들도 조선이 현실적으로 빚 갚을 능력이 없다는 거 뻔히 알지만 보증인인 일본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킨다는 엄청난 메리트 때문에 조선이 카드를 긁도록 내버려두며 무제한적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8] 좌우막론하고 어느누구도 집정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을 정도다. 이 때문에 현재의 거국내각에서 안창호의 사임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일이라고 한다. [9] 사실상 지역별로 우세한 정당이 다르기에, 자치령 조선은 연방이나 다름없는 상태임. [10] 정작 윤봉길 본인은 김구가 보낸 밀서를 보고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해 "일본 내 좌익계열단체가 이번 일에 협력하고 있다"는 '상식적인' 결론을 내린다. [11] 원역사에서 미군정이 창설한 조선국방경비대는 삼팔선 이북의 소련군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명목상 정규군이 아닌 경찰예비대였을 뿐 사실상의 삼팔선 이남 지역의 군대 역할이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대로 정규군인 대한민국 국군으로 발전했다. [12] 진짜 간첩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소련이 만주를 침공한 상황에서 일본에서 파병을 요청했는데도 자랑스러운 신민이라면서 몸을 사리며 불로소득만 얻고 있는 친일파 놈들을 때려잡으라는 것. [13] 작중 현대전은 총력전이다→단순히 군인만이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땀흘려 일하는 것부터가 전쟁에 한몫 거드는 것→나라가 총력을 다하는 와중에 일을 하지 않는다?→네놈 소련의 간첩이구나!라는 기적의 논리가 나온다. 애초에 작중 시점에서 조선은 친일파라도 차별대우를 받아가면서 등골빠지게 일하는 상황이기에 직업 없이 불로소득을 누리고 있는 자들은 매국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고위급 친일파들 밖에 없다. 일본과 타협하는 바람에 '친일파 조지기'를 대놓고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친일파를 조지기 위해 꺼낸 논리. [14] 거처를 방문한 백범이 이러다가 암살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걱정할 정도. [15]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이다. 더 슬픈 사실은 합의를 한 두 사람이 이걸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거다. 둘 다 어차피 원래 있는 연결망을 계속 쓰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합의를 한 것이었는데 사실상 주미대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16] 조선이 외교권 없는 자치령 상태라 공식 외교관은 아니다. [17] 또한 이범석과 그가 다 빠져버리면 만주 내의 한국 군사력은 사실상 붕괴한다. 관동군도 상황이 여의치않아서 한국군이 빠지면 전선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사실상 지청천과 이범석의 한국군이 없으면 만주 전체는 소련군의 공비들에게 점령달할 것이 분명. [18] 자신의 호인 매헌을 가명으로 썼다. [19] 만주로 도주한 친일파들은 영친왕의 보호 아래 있었으므로 임정이 더이상 건들수 없었지만 임정에 속하지 않고 독자활동을 지속하던 김원봉은 만주의 친일파들을 처단해도 뒷탈이 없기에 김원봉이 만주의 친일파들을 상대로 의거를 벌이도록 유도한 것. [20] 공산당 동지들과 계획을 논하면서도 단 한 번도 '혁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당시 공산당에게 혁명은 필수적인 단어임에도. [21] 이때 대표적 친일파 승려인 퇴경 권상로가 동자승까지 무적 황군 100만 총칼 앞에 세울 생각이냐고 하자 그 100만 왜군의 총칼만 보이고 삼천만 조선민족의 울분이 들리지 않으면 그게 귀머거리가 아니면 뭐겠냐고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인다. [22] 순경들은 한반도 전역의 만세시위를 탄압하러 가서 손이 부족하고, 헌병들은 함경도 일대의 빨치산을 막으러 가서 손이 부족한 상태였다. [23]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걸린 조선총독부 청사로 안내하는데 시민군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역시 무리였는지 업무에 필요한 물건들은 제외하고 청사 안의 값비싼 물건들은 모조리 시민군이 털어갔다고. [24] 조선 총독부는 친일파들의 불법행위을 묵인해주는 댓가로 그들의 친일활동을 목줄 삼아 통제하고 있었다. 즉, 여운형은 이런 불법행위를 명분으로 재산을 모조리 압류할 생각이며 그럼에도 말 안 듣는 자들에게 김구가 성의를 보여도 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25] 본디 임시정부의 요인이나 체포 후 국내로 압송되어 옥고를 치렀으므로 국내 독립운동가 항목에 서술. [26] 일본 본토보다 식량사정이 양호한 조선의 상황을 드러내는 요소일 수도 있다. [27] 1930년대 당시 일본인 여학생은 고등여학교, 조선인 여학생은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일본인인 후유코가 경성여자고보에 다닌 것은 설정오류에 가깝다. [28] 그래도 배급 자체는 처음이었고 여자아이 혼자 살고 있다는 말에 측은함을 느낀 배급관이 다음에는 친구라도 데려오라고 하면서 그냥 줬다. [29] 조선 때문에 쌀값이 올랐다고 덮어 씌우려고 했으나, 앵커가 하필 '밥이 없으면 고로케를 먹으면 된다' 드립을 쳐버렸고, 덕분에 분위기가 을씨년해졌다. 곡물가가 올랐는데 그런 곡물에서 추출하는 기름이나 밀가루라고 값이 낮을 리 없기 때문. [30] 원문에서는 그냥 "...엄마."라고 나왔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후유코의 찰진 욕설도 그렇고 작가의 오덕 성향도 고려하면 단순한 비명이 아니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마지막 장면에서 소멸되면서 어머니를 찾은(사실은 '애미 씹...'이란 의미였지만 발번역으로 인해 어머니로 떴다.)닉 퓨리를 패러디했을 가능성이 있다. 댓글란에서는 아예 확정 상태. [31] 현실 역사에서 옥음방송이 나온 광복절이다. [32] 모전구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33] 내지는 천황이 두번이나 바뀐데다가 지금 정권 잡고 있는 건 천황을 시해한 반역도당들이고, 게다가 허구한 날 공산당의 볼셰비키가 시위를 벌이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며, 만주는 쇼와 대역을 막지도 못한 무능한 놈들을 숨겨주고 있는데다가 볼셰비키와의 전선이면서도 온갖 파벌이 부딪히며 내분이 치열한 상황인데, 조선은 내분도 딱히 없고, 장사에 방해되는 건 고작해야 임시정부일텐데, 그건 대타협 당시 세워진 통감부에서 무마해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통감부장 의친왕이 자치정부와 짜고 치는 상황이었다는 거지만... [34] 그뿐만 아니라 당시는 1933년, 나석주 의사의 의거가 일어난 지 7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고 조선 자치정부가 권력을 잡은데다 날짜는 3월 1일. 언제고 제2의 나석주 의사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던 상황이다. [35] 실제 역사에서는 패전 후 일본국 제5대, 14대 운수대신(한국의 교통부장관에 해당), 킨키 일본 철도 제6대 사장을 역임했다. [36] 약 1년 뒤 태어날 예정이었으나 히로히토가 죽는 바람에 태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37] 이 사과 발언이 쇼와 덴노 사망 1주기 행사에서, 거기에 김규식이(실행범은 아니어도 명백히 임시정부 소속이던) 참석한 자리에서 나와서 죽은 두 덴노를 쌍으로 욕보인 꼴이 되었다.물론 해군 입장에서는 해군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레이와 덴노를 견제하면서 본토 내에서 덴노를 살해한 역적으로 신망을 잃은 해군측이 향후 정국에서 이러한 역적이라는 오명을 벗어내고자 하는 시도. [38] 이를 두고 육해군이 하도 서로 싸워대니 평화를 명한다는 연호를 쓴 게 아니냐는 드립이 나왔다. [39] 사실 히로야스의 칭호는 '친왕'이 아니라 이보다 낮은 '왕'이며 작중 1930년대 기준으로 세습친왕가 당주가 친왕인 곳은 단 한 군데 간인노미야뿐이다. [40] 해군측에서 덴노의 고유 권한인 식민지 정책을 대놓고 침범하여 선을 넘었다. 만약 이 마저도 덴노가 아무 권한 행사를 하지 않으면 진짜로 인간 옥새 역할을 제외하면 덴노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41] 참고로 이 움직임을 보인 조선인들은 한국 측에서 주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임정의 집권치하에서 도망친 친일파들이 다수라고 언급된다. 즉 임정 측의 후원이 없진 않았지만 자기들 판단으로 움직였던 것. [42] 억지로 보일 수 있는데, 그동안의 국제 정세가 일본이 편들었으면 편들었지 적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안창호도 이렇게 될 줄 알고 백범이 독소조항을 넣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회귀자인 백범 입장에선 미래에서 보고 왔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갑갑할 지경. [43] 원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 했으나 히로히토의 반려와 사이온지 긴모치의 중재로 유임한다. [44] 내지인들의 반발을 사유로 반대했지만, 이미 조선을 축에 올려서 해군을 몰아내려던 문민정부(천황)의 행보 덕에 내지에서 문민정부는 더할나위 없는 친조파벌이라서 의미가 없었다. [45] 특히 본인이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강우규 의사에게 암살당할 뻔한 적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46]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이유가 쌀 수급 문제지만, 문제는 조선 쌀을 저가로 후려치고 가져오는 탓에 일본 농촌은 극도로 망했다. 그래서 이 세계관에선 조선이 자치령이 되면서 조선산 쌀값이 올랐다는 소식에 일본 농촌에서는 이제야 한 숨 돌렸다며 좋아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선 쌀도 저리 가라 수준의 초 저가 덤핑가인 중국 쌀을 수입하게 되면 일본 농촌은 망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아예 말라 죽게 되는 상황까지 갈 수밖에 없다. [47] 사실 일본의 혼란에 기름을 부은 '청년조선'부터 일본공산당의 움직임, 심지어 재일들 정치적 이동에도 조금은 손을 댄 걸 생각하면 대부분 거짓말이다. 사실이라곤 조선에서 재일 조선인들을 못마땅히 여기고, 완전히 통제할 생각도 조건도 없다는 것 뿐. 문제는 거짓말일텐데, 듣고 있으면 맞는 말 뿐이라서 사이토 마코토조차 이게 진실인건가 하고 속아 넘어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조선이 일본을 미국에 가져다 바친다고 전해도, 미국이 그걸 믿고 군선을 보낼 가능성부터 없기 때문. [48] 문화통치로 전환한 게 사이토 마코토이므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49] 실제로도 의친왕이 언제 조선으로 귀국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적어도 1940년부터는 조선에 있었다는 게 확인된다. [50] 이는 일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조금 더 탕아처럼 굴었다는 의혹도 있는데 자세한 건 문서 참조. [51] 적이 무모하게 강을 넘어오자 모험주의자들이라 판단하고 더 많은 적들을 잡을 미끼로 여겨 유인하는데, 하필 그 군대가 패튼이었고, 미끼로 쓰려는 작전이 패튼의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앞뒤로 털리고 말았다. 오죽하면 패튼의 무모한 돌진에 그 츠지가 행복회로에서 탈출해 버렸다고. [52] 일본 해군에는 일본 육군과는 반대로 상대적으로 부유층의 비중이 높았다. 이는 일본 해군이 사츠마 번과 도쿠가와 막부의 수군이 합쳐진 것에서 유래한 탓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이 많았기 때문으로, 반대로 일본 육군은 죠슈 번의 타카스키 신사쿠의 기병대가 기원이 돼서 상대적으로 하층계통이 많았다. [53] 사실 해군의 히로야스에게는 작은 아버지들 중 하나에 해당된다. [54] 내지의 지원은 끊기다시피 했는데 먹일 입은 왕창 늘었고, 자신들을 미워하는 독립군 출신 조선 군벌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소련군한테 열세다. [55] 복귀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조선과 일본 해군인데, 조선은 굳이 귀국하는 관동군을 막을만큼 원한이 없고, 해군은 이번 사태로 사실상 붕괴상태. [56] 실제 역사에서도 핵무기의 등장과 2차 대전 발발을 정확히 예측했고 당시 일본군 내에서 드물게 전략적 사고를 갖춘 인물이었던지라 저런 모습이 보여도 이상할 건 없다. [57] 사상 자체는 아무리봐도 멍청이지만, 의외로 쿠데타 과정 자체는 나름 철저했다. 내각장관들 외에도 육군참모본부와 헌병대 사령부를 동시에 날려버려서 도쿄를 완전 점거할 때까지 아무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58] 작중에서 히로야스를 '친왕'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친왕보다 한 단계 낮은 '왕' 작위였다. 작중 시점인 1930년대 기준으로 세습친왕가 황족 중에서 '친왕' 작위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인데 그 사람은 바로 작중에서도 등장하는 육군측을 대표하는 황족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뿐이다. [59] 대략적으로 해군참모총장 쯤에 해당하는 직위로 본다. [60] 작중에서 언급되지 않지만 사실 노부히토 친왕과 다카히토 친왕이라는 작중에는 단 둘 밖에 남지 않은 메이지 덴노 직계 혈통이 모두 사망할 경우 그 다음 덴노 승계권은 바로 세습친왕가의 필두인 후시미노미야의 당주인 이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다. [61] 작중 시점이 1932년에는 노부히토는 해군 포술학교를 다닐 무렵이였다. [62] 왕토사상을 들먹였다. 나라의 토지는 전부 왕의 소유라는 사상으로 동양. 특히 천황제를 이용하는 일본에서는 매우 상식적인 사상. 즉, 일본과 식민지인 조선의 모든 땅은 천황인 자신의 소유이며, 조선에 자치령을 세우면서 그건 조선왕에게 돌려줬고, 조선왕은 자치정부에 전권을 위임했는데 그걸 자신에게 따지는 건 왕토사상을 부정한다는 소리다. 라는 논리를 사용했다. [63] 사실 히로야스의 아내는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9녀인데 노부히토 덴노의 아내 키쿠코 비에게는 고모에 해당되는 존재. [64] 실제로 히로야스는 전대 후시미노미야 당주인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 친왕의 서장자로 가쵸노미야를 잇기 위하여 입양되었다가 하필 후시미노미야 가문의 적장자가 정신박약 등의 문제가 있어서 가문 승계가 어려워지자 후시미노미야 당주의 서장자인 히로야스가 가쵸노미야에서 후시미노미야로 다시 입양되게 된다. [65] 이 때문에 총리대신이나 대원수 등의 직함을 달지 못하고 있다. [66] 산업화와 제국정권 하에 일본의 빈약해진 농업 생산력으로는 7천만에 달하는 일본인구를 부양할 방도가 없다. 원역사에서도 일제의 조선침공 목표는 부족한 식량 수급이었는데, 여기서는 대타협으로 인해 조선에서 수입하는 곡물값을 제대로 치러야 한다. 하다못해 잇키를 잠재우기 위해서 만주나 조선처럼 토지개혁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텐데, 히로야스 본인이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라며 거절해버렸다. [67] 쇼와 사망 1주기를 기념해서 천황가의 위패 앞에서 조선 사절로 찾아온 김규식한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68] 엄밀히 말해 다 쓸지도 못한다. 조선은 어느정도 체계가 갖추어져서, 아무리 더 근대화되었다고 해도 육군이 없는 해군육전대 정도로는 돌파할 수 없다. 관동군처럼 자생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이토 마코토도 해군만 가지고는 조선을 어떻게 못하니까 관동군을 말려죽이라고 할 정도. [69] 사실 노부히토를 끌어내린 다음에 작중에서는 아직 미성년자인 노부히토의 동생이자 메이지 덴노의 막내아들 다카히토를 덴노로 세워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노부히토가 덴노에 오르기 싫어하자 다카히토를 세울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카히토도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다면 다카히토 다음 덴노 계승권자인 자신이 직접 덴노에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70] "자기들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밥만 잘 먹게 해 달라. 그리고 왜 내지를 역차별하느냐."라면서 전원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만을 꺼내들었다. [71] 공산당 입장에서는 진압을 하면 고맙게 고쿄에 적기를 꽂으러 갈 수 있고, 진압을 하지 않으면 시위를 이어갈 수 있으니 어떻게 하든 남는 장사였다. [72] 지켜지는 수준이 아니라 돌을 던지던 동네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한 다음 웃으면서 마사루에게 인사했다. [73] 윤덕영은 한일병합조약 채결을 위해 일본인들조차 치를 떨 정도로 고종을 협박하고 조카인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못 준다고 버티자 직접 빼앗았던 인물이다. 이왕가에게는 황실을 능멸한 역적 중의 역적인데 외척이라는 것 하나만 믿고 영친왕이 뒤를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면 꽤나 황당한 부분. [74] 항목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지만, 본래 역사에서의 노덕술은 자신의 '전문기술'을 살린 고문경찰로 부침을 겪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에 훈장까지 받으며 68살까지 나름 잘'먹고 잘 살다가 간다. [75] 파쇼들이 정당을 차리고 출마하지 않은 것에 의문을 품던 김구의 독백에 의하면, 조선 귀족세력이 정당을 차리고 출마를 결심하자 끄나풀이 될 만한 악질들을 100명 정도 저승에 보내는 과정에서 함께 보내준 것이었다고 한다. 노덕술 이외에도 최연 등의 악질 경찰들도 여기에 휘말리며 죽었다고. [76] 당시 지명은 안동이다. 단동으로 개칭된 것은 1965년이다. [77] 일본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였으나, 원역사에서도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으로 살았다. [78] 이방자 여사의 부친은 원래 구니노미야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때마침 또 다른 가문인 나시모토노미야가 절문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곳으로 입양되었다.이러한 것 때문에 이방자 여사와 쇼와의 아내 나가코 황후와는 친사촌 사이가 되는 것이다. [79] 작중에서 지나가듯 언급했듯이 당시 일본 황족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목소리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목소리만 듣고 덴노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그 덕분에 작중에서도 노부히토 덴노를 만난 적 있는 조선통감 의친왕 이강조차도 긴가민가해할 정도. [80] 정확히는 진짜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품게만들어 선전활동을 벌이려는 목적이였다. 김겨울도 딱히 정치적인 걸 노린 건 아니었고 그저 선전방송만으론 러시아에서 귀기울이지 않을 거라 여겨 떡밥을 던진것 뿐인데 일이 이렇게 커져서 당황한다. [81] 차르 일가의 처형에 관여한 소련 볼셰비키 출신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작중 등장한 어지간한 권력자들도 진짜일리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진짜 아나스타샤 황녀는 1918년 17세에 사망하였는데 가짜 아나스타샤가 본격적으로 조명받은건 1940년이였으므로 살아있었다해도 39세일테니 그보다 한참 어린 가짜 아나스타샤가 진짜의 숨겨진 딸이면 몰라도 진짜 아나스타샤 황녀일 리 없다고 판단했던 것. [82] 시베리아 출병 당시 아나스타샤를 구출해 일본에서 보호하고 있었다고 선전했는데 이게 또 수십년동안 가족도 못만나고 억류당한 불쌍한 황녀라는 동정여론까지 끌어모았다. 실제로 출병 시기가 로마노프 일가 처형과 시기가 비슷하다보니 살아남은 황녀가 일본군에게 구출되었다는 음모론을 담은 창작물이 있다. [83] 1920년대만 하더라도 친자검사는 가능했다. 다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유전형질의 매개체가 DNA라는 걸 모르던 시기였던지라 혈액 속의 각종 단백질을 토대로 판정하던 시기였는데 덕분에 친자인지는 몰라도 친족 같음이라는 정도의 결론은 낼 수 있는 시기이므로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다. [84]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남작 가문이였던 만큼 조상 중에 로마노프 황가와 피가 이어진 사람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소련측도 이 바로 다음화에서 로마노프가의 사생아의 후손 정도로 추론하고 크렘린에서 아나스타샤의 가묘를 파헤쳐서 시체를 보여줘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걸 보면, 적어도 진짜 아나스타샤 황녀는 소련에 의해 사망한게 맞다. [85] 안 그래도 로마노프의 후예라는 아이콘으로 백계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끌어모은 상태에서 전제군주인 로마노프의 이름을 버리고 인간선언을 한 것은 공산주의 혁명정신과 부합되어 적계 러시아인들의 반발도 상쇄되는데다, 폴란드가 내세운 괴뢰정권은 소련 인민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던 상황이라 결과적으로 적백 상관없이 소련 인민의 지지가 아나스타샤에게 쏠릴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 것. [86] 본명은 헨리 스미스. [87] 독일과 내통하여 빠져나갈 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정말로 베리야를 구원해줄 생각도 없었고, 무엇보다 영국의 눈이 있는데 소련을 도와줘서 뭘 하냐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베리야를 손절했다. 여담으로 독일측 통화 상대방이 마지막 통화에서 프로이라인 하이드리히라는 이름을 댔는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로 추정된다. [88] 적의 진격을 막기 위해 시베리아 철도를 끊어놨는데 주민들이 풍족한 지원을 받으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자발적으로 즐기면서 철도를 세 갈래로 부설하는 걸 봐버렸고, 저건 누가 와도 못 이긴다고 직감했다. [89] 원 역사에서도 콜라에 맛들려 냉전시기에 스탈린 몰래 즐기기 위해 미국 측에 무색투명한 콜라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90] 그런데 이건 바실렙스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 주코프의 옛 부하들도 태도가 180도 바뀐 주코프를 보고 바실렙스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91] 어차피 싸우건 안싸우건 스탈린의 의심병과 숙청을 피하기 어려울거라 여겼고, 친구 손에 피를 묻힐 바에는 차라리 용맹한 자와 싸우다 죽을 생각이었다고. [92] 원 역사에서 부됸니는 말 엉덩이만 아는 사람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기병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사람인데 패튼 역시 말 대신 차량이나 전차를 타고있을뿐 하는 짓은 중세시대 기사 그 자체라 부됸니의 성향에 딱 맞아떨어진것. 패튼과 만난 에피소드의 제목도 유유상종이다. [93] 단순히 자기들이 써준 대본을 읊은 게 아니라 자기 정체를 제외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연설하였는데, 이게 미국으로부터의 풍족한 물자 지원과 결합하여 주민들이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황녀를 칭송하며 철도 공사에 열성적으로 임할 정도로 국뽕을 최대로 충전시켜버린것. [94] 흑색선전을 덮어씌우기에는 유인당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이봉창의 쇼와 암살을 떠올릴테니 화제성으로도 끝판왕에, 치안유지법을 물 먹이는 당명이라 친일, 근왕, 수구반동등의 프레임을 씌울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 게다가 조일관계를 파탄시킬 당명이라 힐난하기에는, 현 조선 상황상 절대로 흠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항일투쟁에 앞장선다는 프레임을 씌워주는 꼴이라서 이도저도 못 하기 때문. [95] 투표율이 100%를 오버하는 지역이 나올 경우 부정선거가 확정되며, 그 경우 비정상적으로 득표율이 높은 유인당에게 부정선거 의혹 프레임을 걸어버릴 수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40% 투표율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 [96] 친일파들은 지금까지 좌익 축출을 돕겠답시고 임정에 매달려 왔기 때문. 선거과정에서의 부정과 과잉홍보도 있었다. [97] 이 때의 상황을 작가는 빨치산이 거세된 숫퇘지를 잡았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고자가 된 상황을 '(중략) 그 액체의 정체가 방광에서 새어나온 소변이기를 마음속 깊이 바랬겠으나─천지신명께서 보우하심에 액체는 홍시만큼이나 탐스러운 붉은 빛이었다.'라고 표현했다. [98] 당시에 중학교 중퇴면 그리 낮은 학력은 아니라지만 애매하긴 했다. 현대로 치자면 딱 석사수료 정도의 학력. [99] 만우절까지는 아직 보름도 넘게 남았던데다가, 이제 겨우 취임하고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100] 해당 에피소드 제목이 대놓고 . [101] 온갖 다양한 세력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멕시코 혁명때와 유사하다 평했다. [102] 거기다 필리핀에서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하는동안 술에 쩔어서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본 미국인들이 "얘가 이렇게 생겼던가?"라며 의문을 표할 정도로 표독하게 인상이 변하는 바람에 이런 인식을 부채질했다. [103] 유배생활이 원 역사보다 길었던지라 회귀 전의 맥아더를 본 백범도 순간 누군지 못알아볼 정도였다. 역사개변에 의해 이리 된거라는 걸 알게 된 백범은 그러나 회귀 전에 반목한게 있던지라 장제스와 다르게 동정은 하지 않았다. [104] 정확히는 일본에 도착해서 명령서를 받긴 했다. [105] 원 역사에서도 패튼은 전략적 목표는 잘 따르는 편이였지만 그 외에는 통제불능에 가까워서 그를 통제하느라 상관들이 뒷목을 잡는 일이 허다했다. 본 작품에서는 본인도 만주 발령(?)을 희망하고 일 저지른 참이니 잘됐다며 정식 발령을 내려 사실상 치워버린 것이다. [106] 개그물 같이 각색은 하긴 했지만 지휘관이면서 몸소 돌진하는 것이나 적을 묶어 끌고 왔다는 행적은 멕시코 혁명 당시 실제로 했던 일이다. [107] 맥아더는 멧돼지의 심장에 늑대의 두뇌라고 비유했고, 부관은 처음부터 미친놈이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생각할 줄 알면서 일부러 안하는 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냐며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108] 마오쩌둥의 적군을 상대할 때 징발이란 명목으로 말과 젊은이들을 끌고 가긴 했지만 점령 후 약탈한 자들은 본보기로 차량에 묶어 끌고다녔다고. [109] 맥아더에게는 안타깝지만, 소련 점령 당시, 이 땅에서 우크라이나 대흉작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면 더 큰일 날 거라는 듯한 뉘앙스의 언급이 있었다. [110] 황녀를 돕기로 정한 이후 패튼 본인도 성기사단장을 자처하고 있다. [111] 급박한 전투상황인지라 통역 내용이 순화(?)를 거쳤는데 거 영감탱이 도통 힘을 못 쓰는구먼!패튼 장군께서 원수님의 건강이 걱정된답니다! 수준. 다만 패튼이나 부됸니나 말투 같은 걸로 그런 뜻을 가진 욕설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다. [112] 청방이 비밀조직인 이상 그 접선장소와 암구호를 안다는 것은 청방과 관계된 자와 꽌시를 주고받으며 돈독한 사이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 [113] 앵글로 색슨의 국가는 미국과 영국인데, 당시 미국은 국제연맹의 회원국이 아니었다. [114] 실제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금방 찌질해지며 정신줄을 놔버렸고, 보다못한 군인이 약을 놓아 잠재워버렸다. 다들 이렇게 뻗어버리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될거라 여길 정도. [115] 이후 사항에 대해선 사람 하나 자살시킬까봐 자세히 묻지 못했다. [116] 이렇게 된 원인중에는 당연히 채권이 진짜인지부터 조사를 해 보려고 했으나, 월가의 채권자들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 채권 맞다"며 기꺼이 채권 사본을 제출하는 바람에 한동안 서류더미에 쌓이게 된 것도 있는 모양. [117] 원래는 당연히 소련에서 지원을 나와서 구조해줄테니, 성공하면 마오쩌둥 본인의 위업으로 삼을 셈이었고, 실패하면 책임을 늦게 구하러 온 바실리 블류헤르에게 떠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바실리 블류헤르가 버린다라는 선택을 하며 본격적으로 스탈린에게 항명의사를 표하면서 이 모든게 꼬였다. [118] 이렇게 된데에는 밥 먹듯이 외교적 약속을 어겨대는 히틀러를 제거하길 바라던 영국과 프랑스의 사주가 있는 것으로 언급된다. [119] 정확히는 당시 나치 독일에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퓌러 자리와 독일국 퓌러 겸 국가수상 자리가 있었는데, 히틀러가 두개 모두 겸직하다 전자를 총통 대리였던 루돌프 헤스가 맡게 되고 후자를 괴링이 맡게 된다. [120] 대신 군부의 반란을 제압하고 총통직에 오른 뒤에 국민들과 수하들에게 숭배받는다는 권력에 취해버렸다. 나치 독일의 경례 구호도 하일 괴링으로 바뀐 건 덤. [121] 특히 괴벨스는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괴링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122] 실제 괴링도 전범재판 과정에서 약을 끊자 능수능란하게 자신과 다른 전범들을 변호했다. [123] 사실상 당대표 자리로, 본래 히틀러는 나치당의 퓌러, 독일의 퓌러 겸 국가수상 두 직책을 겸임했다. [124] 헤르베르트는 식민지 조선도 제대로 간수 못하면서 소련과 중화민국을 상대할 수 있겠냐며 미국과 손잡지 말고 자기들과 손 잡으라는 식으로 나오고 마치다는 이에 맞서 자기들은 1차 대전의 승전국이라며 패전국인 독일과 손잡을 생각 없다는 식으로 역으로 도발해버린다. [125] 시미그위 본인은 국익에도 도움되면서 순수하게 사람 하나 도울수 있으니 좋아했지만 정작 가짜 황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를 일이다. 해당 내용이 담긴 회차의 제목 자체가 인본주의(?)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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