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한국 독립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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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독립 전쟁의 작중 등장인물에 대해 정리한 문서.2. 한국
2.1. 대한민국 임시정부 → 조선 자치정부 → 대한민국 정부
원 역사의 임시정부 인사들이다. 사쿠라다몬 의거가 성공하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국내, 해외 독립운동가와 협력하여 조선 자치정부를 수립하여 원역사와 비교하면 매우 큰 수혜자들이 되었다.-
백범 김구
안두희에게 암살 당하여 회귀. 빨갱이는 문답무용으로 거부하는 골수 반공주의자였던 원 역사와는 달리, 일단 회귀 이전에 나이를 먹으면서 얻은 연륜에 더해 고집부리다가 기껏 해방된 조국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걸 두 눈으로 본 기억까지 남아있는터라 필요하다면 좌익과도 손을 잡는 등 원 역사보다는 유해진 편이다. 그래도 반공 성향이 사라진 건 아니며 이봉창에게 정확한 천황의 마차를 알려줌으로 인해 성공한 천황 폭살을 시작으로 한 혼란에 일본이 구심점을 잡지 못하고 무너질듯이 흔들리고 소련의 극동군이 남하하며 관동군을 지나치게 빨리 밀어내자, 이대로 적화통일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하다못해 일본이 소련을 견제할 정도의 무게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반도 적화를 피할 수 있는 판단 하에, 손을 내밀어온 영국에게 일본의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일본과 손을 잡은 영국의 손을 잡는 거래를 받아들이고, 영국의 중재로 일본과 협상을 하여 조선이 일본 아래에 남는 조건으로 외교권과 군사권을 제외한 완전 자치를 누린다는, 어느 의미로는 완전 독립을 꿈꾸는 모든 독립운동가를 배신하는 것에 준하는 조약을 체결한다.[1] 일제를 상대로 자치를 받아내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 시점의 자치는 변절과 민족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지던 시대이기 때문. 다행히 천황과 총독을 암살했다는 전무후무한 네임벨류 덕분에 변절 의혹을 피해갈 수는 있었지만, 작중에서도 일왕과 총독, 친일귀족들의 목을 차례로 따버린 백범이 아니라면 변절을 의심했을 것이라고 언급된다. 백범 본인도 이를 알기에 협상을 마친 뒤 조소앙과 다른 임정 요원들에게 미안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며 진심을 다해 사과한다.[2] 하지만 그 와중에 미래의 기억을 토대로 거기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을 하나 새겨넣는데 성공한다.
만일 그대들이 영국, 혹은 미국 같은 해양제국과 전쟁을 벌이면 우리 조선은 참전을 거부하고 즉각 독립하겠소. 그것이 조건이오.
상기했듯 완전 독립을 주장하면 영국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지만, 이 조건은 바로 그 영국이나 영국의 우호국인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영국의 심기를 전혀 건들지 않는 조건이다. 영국도 일본도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판단하는 내용이기에 중재 역을 맡은 영국 체면을 세워주는 립서비스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게다가 이때 영국은 계속 일본과 손 잡는 것에 회의적 기류가 돌며 차라리 조선을 적당히 키우자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게다가 저 조항대로면 조선은 결코 영국과 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아군은 늘리고 적은 줄이는 것이 상책인 외교에서 구태여 영국이 막을 이유도 없다.) 백범 입장에선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사람이 담배를 끊을수는 있어도 일제가 전쟁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평하면서 그 부분을 제대로 노린 독소조항이었지만. 설령 일본이 저 조항을 의식하더라도, 조선을 마음대로 착취 못하게 된 일본은 원 역사 이상으로 자원 부족에 허덕이게 될것이고 그에 따라 살기 위해선 남의 것을 뺏을 수밖에 없는데 당시 아시아의 주요 자원지는 네덜란드, 미국, 프랑스, 영국 등 타 식민제국들의 손이 안 뻗친곳이 없기에 자연스레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주요 열강과의 충돌은 필연이 된다.[3]
여기에 더해 참정권과 한국인들의 임정이 차후 정당한 정부로 인정받도록 대권까지 약속받는다. 물론 일본 협상단은 '천황폐하에게 최선을 다해 간언해보겠지만 우리에겐 즉답할 권한이 없다'는 상식적이지만 뻔뻔한 태도로 거부했지만[4] '그럼 나도 상(천황)에게 최선을 다해야겠군'이라고, 여차하면 니네 천황 모가지 또 날려버리고 네 황제의 해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며 자신과 임정이 지금 일본을 혼돈에 빠뜨린 원흉임을 상기시키며 밀어붙인다.
그 후 임시정부 각료들과의 향후 대책에 관한 논의에서 귀국하여 자치정부를 구성하게 되더라도, 영친왕 이은이 귀국해서 친일이 대부분인 현직관료가 다수 포함된 친일파들을 규합하게 되면 조정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의견이 나오자, '그 경우 내가 주상께 성의를 다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척을 지지 않기만 해도 걱정의 반이 사라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의 개보다 조선의 탕아가 더 낫다는 말과 함께 영친왕을 폐하고 의친왕을 이왕으로 삼자는 생각을 한다.
천황과 조선 총독을 연달아 날려버리며 일본을 혼란에 빠트려 일본이 협상장에 나오게 만들고, 비록 완전한 독립은 아니지만 독립에 준하는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 자치정부라는 이전의 독립운동가들이 거두지 못했던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있어서 백마 탄 초인, 민족의 성웅이자 메시아가 되었고, 반대로 일본의 입장에서는 성의를 다하는 식인 호랑이이자 동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가 되었다. 그 악명이 일본인에게 확실히 각인이 되었는지 '성의를 다하겠다'는 한 마디 만으로도 와카쓰키 레이지로와 사이토 마코토 등 김구와 대면한 여러 일본인들이 공포에 떨게 만든다. 이후엔 좌익으로 분류되는 홍범도와 협력하여 조선의 매국노들을 공격하면서 일본에 들통나지 않도록 조율하고 있다.[5]
민주주의의부터 배워나가야 했던 본래 역사와는 달리, 신탁통치 오보사건등 해방직후의 굵직한 사건들을 겪었던 경험이 있어 선거에도 나름 수를 쓰는 모습을 보인다. 나라 잃고 해외에서 떠돌아 다니던 사람들이 모인 당이니 당명을 '유인(流人)'이라 정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봉창이 암살한 적궁유인(미치노미야 히로히토, 迪宮裕仁)에서 이름을 따온지라 사람들 모두 기겁했다. 김구 본인조차 우리는 유인당이오 하고 너스레를 떨지만 실수로 히로히토 당이라고 말실수를 해버리고는 겸연쩍어 한다. 안창호가 당명으로 디스를 하는데, 솔직히 누가 봐도 Outcast Party(떠돌이 당)이 아니라 Hirohito Corpse Party라면서, 아나키스트인 유림의 영입보다 당명이 더 위험하다고 까자 본인도 인지는 하고 있는지라 차마 반론하지 못했다.
조소앙이 연구한 삼균주의를 내세우며 부의 재분배를 주장한다. 박현영이 부정투표를 준비한다는 것을 미래의 지식을 바탕으로 예상하고[6] 홍범도에게 '투표의 공정성을 인증해달라'고 부탁한 뒤, 개표식 도중에 부정선거 프레임이 씌워지기 직전, 차기 집정(총리)을 도산에게 넘긴다는 발언을 터트리며 도산 본인은 물론이고 백범이 집정이 될거라 생각한 박헌영을 비롯한 개표식에 참가한 모든 당원들에게 충격을 주면서 부정투표 프레임이 힘을 잃어버린다. 내각요직 중에 그의 이름이 없자 다들 의아해 하는데, 초야로 물러나는 게 아닌, 국정원이나 FBI같은 성격의 중앙수사본부의 장을 맡는다 선언하며 그와 어울리는 역할을 계속 맡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후 전개에 따르면 말이 중앙수사본부장이지 치안과 법령 외에도, 경찰 타이틀을 단 군사 부분과 경제 부분에도 안창호와 비슷할 정도의 발언력 있다.
홍범도가 박헌영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시키자 이 죽음을 이용해서 반민특위로 좌익에 원한이 쌓인 친일파가 노렸다고 덮어 씌운 뒤 일본제국 법률 제46호 제1조 제1항을 적용하여 치워버린다. 그 후, 문화의 힘이 정치와 얽히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알고 있는 백범이 공산당의 열기도 빼놓고 일본도 살짝 방해할 겸, 조선 공산당이 일본 공산당을 지원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돕기로 한 뒤, 후유코와 렌야의 방송에 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안재홍에게 노래 작곡을 의뢰한다.
식민제국 국가원수를 직접적으로 2킬(일왕과 조선총독), 간접적으로 2킬(5.15 쿠데타로 인한 총리와 일왕) 이후 자치령으로 반독립해 역으로 식민제국의 고혈을 알차게 빨아먹는 모습[7]이 일방적으로 눌려살던 식민지 국가들의 심금을 울렸는지 모범적인 식민지로서 세계의 식민제국들이 이 이후로 식민지의 무장투쟁과 독립운동을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레이와 덴노가 조선과 만주의 카드빚을 덤터기 쓸 수 없다라는 일념으로 한일 대타협 조항의 독소조항에 말장난을 섞어 해석하자, 이걸 받아들이면 더 이상 카드깡을 긁지 못한다는 사실에 어떻게든 이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가, 대타협 조항에서 조선왕은 조선의 국주를 겸한다라는 조항에 말장난을 섞어, 빚을 진 조선은 조선왕 이은이 대일본제국 조선의 국주를 겸하는 조선이지 국민이 주인일 독립 조선의 빚이 아니다라고 대놓고 비틀어버린다. 당연히 이를 듣고 있던 안창호가 백범에게 야 이 사기꾼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라면서도 웃겨서 죽으려고 하는데, 만약 일본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조선과 만주는 조선왕을 국주로 섬기는 동군연합이니 한 나라가 되어도 되겠지라면서 일본이 그렇게 경계한 일본제국 이상의 경제규모를 지닌 경제공동체가 탄생하는 선택지를 들이밀 생각. 그러면서 미국에게 땅끄와 뱅기 좀 주쇼하고 전하라는 말을 하자 결국 안창호는 너무 웃긴 나머지 바닥을 뒹굴었다.
1부 후반부에는 전 세계 열강에 폭탄을 터트렸다. 안그래도 조선이 식민지이면서도 부쩍 성장하는 것을 다른 식민지들이 부러워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예 라디오에 출연해 '너희들도 왕 모가지 따면 팔자 펼 수 있다' 라는 뉘앙스로 선전하자 전 세계 식민지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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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바뀐 역사의 분기점. 역사에서는 히로히토 암살이 실패하였지만, 미래를 본 김구가 히로히토가 탄 마차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준 덕분에 히로히토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의거 후 원 역사처럼 당당하게 체포되었으며 이후 정황상 대역죄로 사형 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거가 알려진 그날 그때부터 훗날까지도 이름 석 자 앞에 항상 '대한건아' 네 글자가 붙는다. 그의 존재는 백범과 유인당이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민중의 흔들림 없는 성원과 지지를 받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작중에서 간간이 언급되는 정도에만 그치고 장례를 거행한다거나 하는 내용이 없어서 아무리 조국이 일본의 골수를 신명나게 쪽쪽 빨아먹는 중이라 일본 눈치를 본다고 쳐도 작중 대우가 좀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독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부 완결 직전에, 춘배의 입을 빌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은 아무나처럼 대우받아서는 안 될 일이라는 언급이 등장하더니, 바로 다음 화에 유해가 고국으로 비밀리에 봉환된다. 이때 부산항에서 문화재 거래를 하는 척하며 유해를 돌려받은 이는 바로 윤봉길. 그리고 곧이어 조국이 투표를 통하여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룩하게 되었으니, 이 세계선의 이봉창 의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원한 쾌락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아마도 수많은 독립유공자들 중에서도 맨 첫 줄 첫 번째의 원훈(元勳)으로서 세세대대로 칭송받게 될 것이다. 다만 비밀리로 봉환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외교적 문제 때문에 공식적으로 봉환되었다는 발표를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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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원 역사대로 김구와 사이가 안 좋은 상태였지만 미래를 보고 온 김구가 이봉창 의거 성공 후 임시정부가 대피할 때 같이 도망가자고 권유하러 만난 것으로 첫 등장. 이때 안창호는 김구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나는 여기서 챙겨야 할 이가 많으니 당장은 도망치기 어렵다고 답하며 적당한 때에 피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이후 미국에서 활동 중이며 루스벨트와의 합의로 이승만을 사실상 주미 조선대사로 확정짓는다. 한국에 귀국하고 김구와 보조를 맞추면서 총선 승리를 위해서 협력 중이다. 총선승리 후 김구에 의해 날치기로(?) 집정으로 추대된다. 조별과제 조장이나 다름없는 자리이나,[8] 백범과의 진지한 대화 이후 집정직을 수락하여 토지분배 및 내각구성, 군제일원화, 정당별[9] 자치경찰제도 등을 추진한다.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시골 농민들과도 얼싸안으며 경호원들을 걱정시킨다. 이에 조금 경각심을 가지자는 윤봉길에게 내가 죽으면 김 본부장이 나온다는 걸 좌우 모두 알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제 왜정 쪽에서 조약을 무시하거나, 핑계를 대면서 개입해올 것을 걱정하다가 시선을 돌리기 위해 후유코를 앞세워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 이후 김구와는 톰과 제리 관계를 구성하는데 주로 안창호가 김구에게 딜을 먹이는 편이지만 간간히 들어오는 김구의 묵직한 한 방에 바로 녹다운 되어 버리는 것이 개그 포인트다. 이런 관계와 일본 제국의 꿀잼 행보, 약방의 감초 역인 후유코-모전구 콤비덕에 독자들은 이 소설 장르는 단순 대체역사가 아닌 시트콤이라고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끔씩 막나가면 백범보다도 더욱 막나가는 성향이 있는데, '월 스트리트에서 갚을 방도도 없는 수준의 빚을 지자'라는 발언에 '우리가 못 갚으면 연대책임자인 일본이 독박쓰는 거 아니냐'는 유일한의 발언이 겹치자, 좌우 할 것 없이 자치정부 요원들이 '일단 그 돈으로 근대화부터 하자'라고 바로 전까지 미적지근한 태도를 전환하여 하나된 마음으로 외치는데, 빌린 자금보다 근대화에 들어갈 돈이 더 많이 들어가자 '그냥 돈을 더 빌리고 다 합시다. 어차피 내지의 자비로우신 천황폐하께서는 저희가 그런 사소한(?) 돈문제로 골치앓는 걸 원치 않으실 겁니다'라면서 모든 계획서에 OK를 내린다. 그 다음화 언급에 따르면 이런 한도 무제한의 블랙카드를 5년이나 긁어댄 모양. 마침 일본의 정국이 혼파망스러운 덕도 있었기에 단순히 거품으로 끝날지도 몰랐던 조선의 개혁은 서서히 실물경제로 안정화를 찾아갔다고 한다. 더 놀라운건 일본 내부에도 막대한 미국 자금이 쏟아져 들어갔으나, 그쪽은 돈잔치로 불평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서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수준으로 효율이 안 나오는지라 실제로 경제발전에 돈을 쏟아부은 조선은 덴노에게는 내지에 비해 돈도 많이 안 쓰고, 튼실한 경제발전을 하는 실물자산 취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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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거국내각에서 외무부장 직을 맡았다. 일본의 정국이 혼란에 빠지고 상황을 파악하고자 자치정부를 대표하여 쇼와 덴노의 조문사절로 일본에 간다. 문민정치인과 해군부 할 것 없이 극진한 구애와 대접을 받았으며, 심지어 야스쿠니에서 조선인을 학살한 것에 대한 사과를 받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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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녕
임정 주석. 조선의 자치령화가 일제와 화의를 맺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한 장제스 때문에 귀국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본래 세계에서의 김구가 기억하고 있는 청방의 연락망을 이용하여 장제스의 신임을 회복한 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거국내각의 내무부장 직을 맡았다.
1부 최종화에서 3.1일 독립투표를 보면서 김구와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대담을 하며 '왜정 밑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는 일념하에 독립이 확정되는 그 순간까지 의식을 붙들고 있다가, 천지사방을 뒤덮는 만세소리와 함께 지극히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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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원 역사와는 다르게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천장절 기념 행사 대신 3월 1일 조선총독부 청사에서 열리는 행사를 노린 의거를 벌이고, 일본 내부자의 협력[10]으로 총독을 비롯한 여러 고위층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대성공을 거둔다. 그 후 고문을 당해 초췌해진 모습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있다가, 서대문 형무소를 습격한 경성 시민들에 의해 구출된다. 이후 경무관이 되어 반민특위를 내쫓으려 경찰을 부른 이항구 및 백범에게 반민특위로부터 구명을 청하는 민대식을 비롯한 조선귀족들 앞에 나타나 살인미소(?)를 띄운다. 서릿발같이 깐깐하기 그지없는 백범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무장해제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예 자신에게 말을 놓으라고 했을 정도. 한국 정부의 요인 경호과 대표가 되었는지, 집정 안창호를 호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일정에도 없이 안전 확인도 안하고 사람들과 접촉하고 다니면 위험하다는 경험에 근거한 조언은 덤. 이후 김원봉을 밀착케어하며 그를 유인당에 합류하게 만들고,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봉환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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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과거의 모습과 달라진 김구의 모습에 의아해하면서도, 임시정부의 손에 꼽히는 실권자로서 그와 같이 협상에 나선다. 거기서 군권만은 정말로 어쩔 수 없다는 일본 협상단에게 경찰권을 받아오겠다고 다짐을 받아낸다. 독자들 반응은 아마도 그 경찰들은 기관총은 기본에 전차포도 가지고 있을 거라고.[11] 이 시점에도 삼균주의를 연구한 것은 여전하며, 조선에 돌아온 이후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부의 재분배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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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
1938년 기준 만주국 의정대신 자리에 올라있는데, 일본 제국의회에 만주국의 일본 합병을 주장한다. 김규식이 저건 욕심이 과하다면서도 잘못하면 일본이 터지고 조선이 덤터기를 쓰게 되는 터라 이를 말리는 일본 제국의회 의원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는 상황이 연출되는데, 실은 홍진은 진심으로, 그 이유는 다름아니라 일본의 체급을 키워서 대출한도를 더욱 늘리기 위해서였다. 김규식은 그걸 홍진과 개인적으로 대화한 직후에야 깨닫고 아쉬워 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드는 꼴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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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백범의 추천으로 내각에 들어가게 된다. 본인은 전혀 만나본적도 없는 백범이 자신을 추천했다는 것에 놀라는데, 정말 믿을만하냐는 안창호의 말에 절대 사리사욕을 챙길 자가 아니라며 백범이 믿는 모습을 보여준다.
2.2. 해외파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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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10화에서 나온 스탈린과 멘진스키의 대담에서 언급되었다. 스탈린이 좌익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한 인재를 물어보자 노련한 군인으로 추천받은 인재. 20화에서 연해주 은신처에서 박헌영 다음으로 휘하 독립군에게 짧지만 굵은 연설을 하고 두만강을 건넌다. 후에 김일성에 의해서 회의 장소가 일본군에게 들통났으나, 이미 육해군 대립이 극에 달한 일본군답게, 김일성의 정보를 받고 잡으러 온 육군 부대가 지나가던 해군 비행기 편대의 폭격으로 전멸하자 '…우리 조선이 언제부터 왜적과 동맹 관계였던가?'라며 어이없어 했다. 이시와라 간지에게 얻은 정보 덕에 군수물자를 어느정도 보급받는 것에 성공하면서 함경도에서 종횡무진하며 활약가도를 벌인다. 그러나 좌익이라고 해도 적극적이지 않은 그를, 박헌영과 김일성이 암살하려 들지만 김일성이 포섭한 모전구렴야의 현장고발로 목숨을 구하고 김일성을 징벌한다. 그 후, 박헌영이 임정을 비판하면서 일본에 나라 팔아먹은 브루주아지라며 그에 동의하는듯한 홍범도를 규탄하는데, 홍범도는 반대로 김일성을 끌어내서 자신을 암살하려고 한 박헌영을 역으로 규탄한 뒤 자신의 당원증을 박헌영 얼굴에 던져버린다. 이후 경성으로 복귀한 임시정부와 합류한 뒤 백범이 간첩을 때려잡으라[12][13]라고하자 그 의미를 이해하고 서로 씩 웃는다. 이후 반민특위를 진두 지휘하고 있으며, 이런 둘의 밀약을 상상도 못한 친일파들이 우익 민족주의자인 김구와 협력해서 빨갱이들을 몰아내자!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반민특위를 지휘한 이후에는 더 이상 공직에 나오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좌익 독립운동가 중 가장 거물인 인사이다 보니 공직에 계속 머무르게 되면 자칫 좌우 대립이 심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만 백범의 예정이었던 의친왕의 조선왕 즉위를 꺼림찍해하며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공화주의자라 조선왕 즉위를 못마땅해 하는데 그냥 헝가리처럼 왕 없이 섭정이 나라를 다스리면 안 되겠냐"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 후 만주를 두고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백범은 홍범도의 이 발언을 떠올리고 정말로 섭정 의회를 내세울 생각을 하게 된다.
정식정부가 출범하고 친일파들 엄벌이 끝이 나면 귀향해서 야인으로 돌아갈 작정이라 서울에서도 쓰러져가는 판자촌에서 살고 있었다.[14] 백범과의 대화에서 박헌영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고 약속한 후에 혈겁에 익숙한 우리가 정치의 전면에 서도 문제없는지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이는 백범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얼마 후 조선 공산당 당사를 방문.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서 호위들에게 박헌영과 조용히할 이야기가 있다며 물러가라고 한 후에 박헌영을 제거한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며 야인이 되는 것으로 등장을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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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안창호와 루즈벨트의 합의를 통해 주미 한국대사로 선정되었다. 이게 은근 이승만에게 독인게, 루즈벨트의 연임기간 동안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귀국길이 10년 이상 막혀버린 것...[15] 그 사람같지 않은 치사함과 정치력은 김구도 안창호도 인정해서 가끔 '이 박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백범의 안목을 틀리게 한 이 박사' 등으로 언급된다. 그 후로도 루즈벨트의 아시아 부문 자문을 맡아[16], 미국과 조선의 이득을 위해 특기분야인 정치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주로 루즈벨트가 조선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이승만을 찾으면 이승만은 우연을 가장하고 가까운 곳에서 독서하다 우연히 만난 것처럼 바로 만나게 되는 패턴이 많다. 동아시아 시장에 들어가고 싶은 재벌들의 뇌물이며 미국 정계의 인정,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도산등 자신의 정적들이 사라지자 거의 숭배받다시피 하는 대우에 지극히 만족해 현재로서는 조선에 돌아갈 생각도 없다. 내각이 인재 포화 상태라 돌아가도 얻을게 없다고. 이를 두고 독자들은 작가의 전작 폭종의 프린스 흥선 루트라며 폭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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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천
김구와 만나 장쉐량이 군을 움직일테니 이를 기회삼아 국내로 진공하라는 부탁을 받게되고, 실제로 장쉐량이 관동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자 휘하의 한국독립군을 이끌고 국내로 진공한다. 대타협 이후 소련의 만주 침공으로 인한 일본의 요청으로 만주로 파견되며 그곳에서 최대한 싸움을 피하며 군대를 소모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범석에게 국내로 귀국하지 말고 만주에서 한국 독립군의 정체성과 긍지를 지키며 살자는 제안을 받는다. 본인도 관동군과 어깨를 나란히 한 현실이 황당했지만 그렇다고 임정에게 등을 돌릴만큼은 아닌지라 거절한다.[17] 그 후에는 이범석마저 파시즘에 취해 소화할 수도 없는 만주에 욕심을 내는 걸 보고 고뇌중. 심지어 소련은 이제 자기들 편을 들라고 압박하고, 일본에서조차 내지가 해양제국, 조선이 대륙을 경영하는 이중 제국 체제를 만들자고 하지만 당연히 허울 좋은 개소리라고 여겨서 개새끼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세번째 개새끼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조선으로 귀국해 거국내각에서 군무부장 직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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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흑룡강성 성장 마잔산의 작전참모이자 중국동북항일군 작전과장. 블류헤르가 만주 내 무장 세력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홍진과 함께 적군에 합류하라는 압력을 받으나 어차피 독립군인 이범석 입장에서 만주는 활동 거점에 불과했기 때문에 무기만 반납하고 조선으로 귀국을 결정한다. 초청 자리에서 겪은 코민테른의 협박과 만주 인민의 해방을 위해 만주에 진주했다는 소련군이 만주 인민의 식량을 트럭째로 약탈해가는 광경을 목격하고 소련의 본모습에 치를 떤다.
귀국 후 지청천과 같이 자치정부에서 만주에 파견된 조선경비대로서 관동군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소련군과 대적하게 되자 지청천에게 자치정부의 대타협과 조선경비대라는 직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란함을 드러낸다. 때문에 조선에 돌아가 경비대의 직함을 받느니 만주에서 말뚝박고 대한 독립군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한편 만주를 두고는 우리가 살기 위해선 만주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식으로 제국주의적 입장을 보이는 중. 이후엔 단군교 교주와 면담하고, 배달민족론을 펴면서 본격적으로 ' 환빠'식 제국주의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사이토 마코토와 면담할 때는 작중에서도 '방향만 뒤바뀐 일선동조론과 만선사관의 합체'라는 묘사가 나올 지경. 실제로도 환빠와 같은 극우 유사역사학 계열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과거 식민사관의 그것을 방향만 바꾼 것에 가깝다. 관동군이 일본으로 이동하고 나서는 만주의 실권자가 되었고 만주도원수의 직책으로 전시동원령까지 선포했다. 지정천이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조선과 같은 편이라는 소리를 하자 말도 안 된다며 비꼬지만, 지정천이 익명의 애국자들에게서 기부받은 애국채라며 황금으로 가득 찬 궤짝을 몇개 가져오자 그제서야 동척이 조선과 같은 편이라는 말이 농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깨닫고 다음과 같은 명언(?)의 감상을 남긴다.
세상에, 설마하니 정말로 동양척식주식회사까지 한패란 말인가.
이범석은 지금이라면 사실 천황이 파충류 외계인이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후로는 자신이 만든 유교 결속주의를 진지하게 주장하기보다는 만주국을 통합시키는 도구로만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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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김구가 안창호를 집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방첩기구의 수장이 되겠다고 말할 때 잠시 언급된다. 자치 노선에 반대하여 귀국을 거부하였다고 나온다. 이후 131화에서 김겨울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는 장면으로 소설상에 첫 등장했다. 132화에서 찾아간 이가 여운형이었음이 밝혀졌는데 그를 찾아온 이유가 다름 아닌 자주 독립이 아닌 현 시국에 만족하는 이들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였다. 이를 위해 파시즘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장제스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번 소설의 빌런이 되는 듯 보였다. 이에 김구는 윤봉길을 파견하여[18] 김원봉의 감시와 회유를 맡겼는데, 점점 여유로워지는 조국과 만주의 모습에 본인의 뜻이 점점 흔들리다가 윤봉길의 정체를 넌지시 눈치채고는 독자노선을 접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김구는 김원봉을 만주로 도주했던 친일파들을 처단하는데 이용하기도 했다.[19] 이후 사정이 여의치 않아짐에도 자신을 따르는 윤매헌의 정체를 간파하고 그를 처단하려 하나, 그가 총독부를 날려버린 윤봉길이라는 것과 백범의 심모원려를 전해 듣고는 결국 항복을 선언, 유인당에 합류한다.
2.3. 국내파 독립운동가
조선에 남아있던 독립운동가들이며 사쿠라다몬 의거가 성공한 후에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일제의 직접적인 공격을 당했다. 한인애국단이 서대문형무소를 점령하고 서울을 탈환하자 민중의 도움으로 풀려나고 임시정부가 귀국하고 자치정부가 수립되자 거국내각에 참여하여 조선의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사상적으로 좌, 우익 인사들이 골고루 있는 편이며 좌익이어도 민족주의 성향을 더 보이는 편이다.-
안재홍
조만식에게 이봉창 의거를 전해듣고, 이봉창 의거 관련 기사를 실은 신문을 잔뜩 인쇄해 서울 시내에 뿌려버려 1.18 만세운동을 촉발시킨다. 그 후 총칼을 내세우는 일본 경찰에게 당당히 맞서면서 선비의 본분을 다한다는 후의 묘사가 나운 후 수감되어 있다가 시민군의 봉기 때 구출되었다. 거국내각에서 문화부장을 맡는다. 이후 김구에게 청년조선 홍보를 위한 겨울양이 불러줄 노래 작곡을 부탁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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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혁
공산주의자이지만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좌우합작 노선을 추구한다. 오히려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사상은 우선순위가 크게 낮은 듯한 태도를 보인다.[20] 그 덕에 좌우익 회담 때도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는데 이념 차이로 엄항섭과 얼굴을 붉힌다. 그래도 이래저래 말이 통하는 인사인지라, 여운형과 함께 박헌영을 제끼고 거국내각에 참여, 교통부장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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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
국내에 남은 몇 안되는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밀서를 안재홍에게 전해준다. 독립선언서의 재낭독과 함께 일제에 선전포고를 전달한다. 자치령화와 총선 이후에는 의정원장(국회의장)직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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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으나, 일본이 조선에 간섭할 여유가 없어지자[22] 형무소를 습격한 시민군에 의해 풀려난다. 이후 시민군을 이끌며 일본군이 물러난 경성의 치안을 장악하고 귀국한 임정 인사들을 환영한다.[23] 그리고 친일파들의 재산 환수 문제에 대해 김구와 논의하며 그들을 조질 방법으로 경성 안을 샅샅이 뒤져 모은 각종 장부들을 김구에게 보여준다.[24] 사회주의 성향이라 공산당의 영입제안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이후 공산당에 입당하여 현준혁과 함께 박헌영을 견제하고 연립내각에 참여, 좌우합작을 이루면서 재무부장 직위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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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원 역사에서도 임시정부에 합류하지만, 백범이 역행한 현 상황에서는 아직 합류하기 전. 아나키스트이며, 대한노농당이라는 아나키즘 정당의 당수로 등장한다. 본디 극우인 백범과는 상극이나 마찬가지이나, 작중 천황과 조선총독, 조선귀족들의 모가지를 날려버린 그의 행적이 아나키스트들에겐 백마 탄 초인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유인당에 먼저 적극 협력하겠다 제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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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25]
임정에서 백범과 동고동락한 동지이자, 유림의 대표인사. 총선에서 민족혁신당이라는 이름의 유림계열 계급정당을 창당하여 참여한다. 총선 후 무난하게 거국내각에 참여하여 농업부장 직위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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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나 병원에서 몸조리하고 있다는 여운형의 언급으로 간접적으로 등장했다. 이후 첫 총선 최종개표에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짤막하게 등장한다.
2.4. 조선방송협회(청년조선)
조선에 라디오 방송을 하는 방송국으로 산하에 '청년조선'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중이다. 본래 조선에 남은 일본인들을 달래고 협력시키기 위한 목적이 강했지만 연재가 진행되면서 동아시아 정치 격변의 핵심이 되었다.-
무타구치 렌야
일본 군부의 도를 넘는 진압 계획을 보고 개탄하더니 함경도 쪽으로 발령된다. 부하들의 민간인 학살을 두고 소시민적인 마인드인 자신은 광신에 찌든 부하들과 언쟁하며 갈등하다가 국내로 진공한 홍범도 휘하의 독립군에게 생포당하며 최초로 포로가 된 좌급장교라는 영예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는 조선의 일본군들에게 민간인 학살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해적방송을 하게 된다. 패전도 모자라 일본에서는 일개 비적단으로 폄하하는 독립군에게 포로가 된 신세인 이상 장교로 출세길은 막힌 상황. 도리어 친척들이 렌야의 이력이 형제들의 출세길을 막을 것을 우려해 묻어버릴 위험이 크다고 한다. 때문에 렌야는 독립군이 성공해서 자리를 잡게 되면 자기도 열심히 했다고 어필해서 콩고물이나마 받아먹어 가족들과 조선으로 이주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후술할 김일성이 홍범도 암살을 위해 써먹어 보겠답시고 '날 따르면 풀어주겠다'고 떡밥을 뿌리는데, 원 역사에서 황국의 장군 자리를 손에 넣을 정도로 정치질 능력이 뛰어났던 렌야는 자길 쓰고 버리려고 한다는 걸 간파하고 공을 세울 기회라고 역으로 김일성을 추적한다. 작중에선 이를 정신나간 단 한줄로 요약하는데...
그리하여 대한독립군 무다구치 렌야가 공산 비적 김일성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과거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그의 컬트적인 인기에 작중 그의 독립투사적 행보가 더해져 그가 출연하는 회차의 댓글란에서는 그의 본명 대신 '염야 모전구 장군', '렴야 선생' 등의 찬사 가득한 콜네임으로 불리며, 더불어 앞으로도 얼마나 눈부신 활약을 할 지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다. 일부에서는 작가가 언급했던 이상한 놈( 이형), 나쁜 놈( 조지원)에 이은 좋은 놈이 혹시 김구가 아닌 렌야가 아닌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김일성의 공작을 다른 간부를 불러와서 몰래 듣게 한 뒤 직접 고발하는데 성공한다. 원래는 뒤를 밟아 증거를 캐려 했으나 김일성이 생각보다 철저해서 증거가 남지 않아 현장 고발을 택한 것. 그 결과 김일성은 고자가 되었다.
대타협의 결과로 조선에서 자치가 시작되자 렌야도 함께 왔으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협력하도록 프로파간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성실한 협력을 통해 자치령화를 이룩하는 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초대 국영 방송국장이 되어 맹활약하고 있다.
그 후 후유코와도 나름 딸뻘이다 보니 친해졌는데 후유코에게 지금 자신의 처지(항장+매국노)에 대해 고민이 없냐는 소리를 듣게 되자, 물론 자신도 고민은 했지만 지금 공인으로서 방송국장 업무에서 자긍심을 가지면서 해결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죠가 조선으로 보낸 해군의 통신 감청 내용을 보고는 '난 잘못한 거 없고, 잘못한 놈들이 제발 저리는 거다'라는 마인드로 얼굴에 뻔뻔하게 철판을 딱 깐 뒤 석유를 끼얹고 횃불을 던지는 연설을 일본에 송출했다. 해당 연설의 포인트는 다 끝난 뒤 아무렇지도 않게 물 마시고 시루떡을 우물거린 것. 후유코는 어이를 잃었다. 방송이 끝나면 늘상 주전부리를 먹으며 후유코와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간식의 퀄리티가 주먹밥에서 떡으로, 떡에서 깨엿으로 점점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보아 꽤나 괜찮은 대접을 받으며 만족스런 생활을 영위하는 듯.[26]
작정하고 한국에 눌러앉을 생각이어서인지 모전구란 이름을 쓰면서 방송 때마다 대머리 네타를 사용한다. 자칭 여러분의 빛나는 전구. 아래 후유코는 방송중에만 스스로를 겨울이라고 부르고 지문에서는 여전히 후유코로 기재되는데, 모전구는 아예 지문에서부터 모전구로 호칭된다. 영국의 인도-태평양 유색인종 식민지들의 자치령 선언에 작중에서 또 한줄로 요약한다.
자유 동아의 반짝이는 두피, 모전구는 언제나 비겁하게 팩트로만 승부를 보는 참 방송인이었다. -
후유코/겨울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소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경기여고) 학생이라고 나온다.[27] 부모가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고향은 조선이고 친구들도 반은 조선인인데 자신이 왜 내지(일본)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가오는 조선경비대원을 보자 부모님이 뒤도 안 돌아보고 배에 먼저 올라타면서 사실상 버려졌다. 이후 조선인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었기에 후유코는 내지로 떠날 마음을 완전히 정리한다. 후유코가 첫 등장한 에피소드이자 후유코를 빗댄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토종일본인'. 여담이지만 부모님이 탄 배가 눈 앞에서 떠나자 엄청 찰진 조선어 욕설을 쏟아내었고, 이것 때문에 독자들도 작중의 경비원도 조선인이라고 인정해주었다.
몇 화 뒤 다시 등장. 집에 쌀은 떨어졌고 배급은 1인 단위로 해주지 않아서 이도저도 못하다가[28] 라디오에서 들리는 무다구치 렌야의 선전방송에서 어설픈 조선어에 거슬려 하다가, 자신이 무다구치보다 젊고 예쁜 여자아이인데다 조선말도 더 잘 한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여 방송 업계로 나아갈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튼 저 무다구치인가 하는 사람보다야 후유가 훨씬 조선말도 잘하고, 젊고, 무엇보다 귀여우니까.
뭐,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데.
그리고 다시 등장했을 때는 방송국에 취직해 있었다. 백범이 유인당의 선거 선전을 위해 방송국에 갔을 때 후유코가 일본인이라고는 전혀 눈치 못 챈 걸 보면 조선어는 완벽하게 익힌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나운서로 일했지만 하필 출근길에 프로파간다에 휘둘린 학생들이 만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면서 길막을 해버리는데다, 그걸 뚫고 지나가는데 눈치 없는 치한이 성희롱을 하자 무심결에 주먹을 휘둘렀고, 대표가 그 주먹에 맞고 내팽겨쳐지면서 대규모 패싸움이 일어난다. 이는 같은 에피소드에서 파시즘을 경계하던 백범이 자신에게 달라붙으려던 해당 사람들을 '남자란 놈이 여자 주먹이나 맞고 날아가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며 마초스러운 답변으로 회피하는 핑계로 써먹었다.
학교에도 여전히 다니고 있어서 첫 총선 때 다른 학우들과 함께 선거 진행을 도와주는 봉사자로 동원되어 활동하는데, 선거 과정에 대해 잘 모르는 유권자들 때문에 짜증난 나머지 또 찰진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한 노파의 투표를 도와준 뒤 마음을 다잡는다. 그 후 안창호가 일본인들에게는 예쁘장한 처녀의 방송이 더 귀에 들어오리라는 판단하에 라디오를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모전구와 김겨울이 진행하는 '청년조선'은 DJ 덕에 조선 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에 송출이 된다.
결국 심훈의 그 날이 오면을 심훈 본인이 개작한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을 부른 것 역시 송출되었고, 일본 방송국 측의 바보같은 짓[29]으로 인해 결국 도쿄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게 된다. 여담으로 이 시위를 덴노가 해군과 대립하는데 이용하는데, 마무리로 '목소리가 곱고 듣기 좋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김구와 안창호는 일본의 내분을 가속화 시킬 기름으로 그녀를 아예 혁명의 아이돌로 내세울 작정이다. 내심 자신의 방송일을 광대짓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나 무다구치 렌야의 공인이란 말에 마음을 다잡는다.
해군이 중국산 쌀을 수입해서 곡물가를 잡겠다는 계획을 알게 된 도죠가 절대로 들키지 않을 루트로 해당 정보를 일본 전역에 송출하기 위하여 '도쿄 사는 익명의 청취자'라는 이름으로 보낸 사연을 보고는 다시 한번 엄청 찰진 욕설을 내뱉으며 방송사고를 일으켜버린다. 이걸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인데, 레이와 덴노가 자신의 말을 일본에 퍼트릴 수 있는 수단으로 조선의 방송국을 떠올리고 옥음을 녹음한 레코드 판을 믿을 수 있는 사람 손을 통해 전달하자 상상을 초월한 상황에 엄마를 찾았다.[30] 게다가 그 후에는 이왕비 인터뷰까지 해야 한다는 점에 사실상 정줄을 놓고 만다. 이걸 대체역사 갤러리에서 각 편을 뒤지며 조사한 결과, 1932년 8월 21일 입사해서 1년도 안 지난 1933년 8월 15일[31]에 옥음방송 송출 및 이방자 인터뷰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어떻게 조선인들에게 신뢰를 얻었는지 묻는 이방자 여사의 발언을 감안하면 '조선에서 가장 성공한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겨울 커리어
1932. 8. 21. 조선방송협회 면접(아마도 이때 입사)
1932. 9. 8. 적위대-복벽주의자 충돌 이니시
1932. 9. 30. 유인당 선거유세 방송 어시스턴트
1932. 11. 12. - 26. 안창호 지시로 방송 데뷔
1932. 11. 27. DJ 히데키, 청년조선 전파 증폭 개시
1932. 12. 18. 1집 「그날이 오면」녹음
1932. 12. 25. 「그날이 오면」신주 데뷔(고로케 사건)
1933. 1. 20. 김구 인터뷰(뇌파먹)
1933. 7. 6. - 8. DJ 히데키 편지 사건(에엑 씨발 이게 뭐야)
1933. 8. 15. 옥음방송 송출 및 이방자 인터뷰 ← 지금 여기
백범 김구와 도산 안창호가 아이돌마스터 하는 대역(놀랍게도 진실)
일본에도 유명하고, 친부모가 낳아준 은혜 운운하며 후유코를 부르는 사연을 조선방송협회에 투고하였으나 사연을 딱 보자마자 미소와 함께 사연을 구기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후유코'라는 이름과 성격, 그리고 전작에서 보여준 이스터 에그와 작가인 리첼렌이 오타쿠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티브는 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의 마유즈미 후유코다. 재미있는 점은 샤니마스의 후유코 역시 한국 샤니마스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반 농담으로 반쯤 한국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예 '김겨울'이란 이름까지 있을 정도. 이 작품의 후유코도 라디오에서는 자기 스스로 '겨울'이라고 칭한다. 100화까지 모전구와는 달리 지문에서는 후유코로 기재되었으나 131화에 들어서며 김겨울이라 기재되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 방송협회의 새끼치기로 분가한 부여 방송협회 국장이 되어 활동중인데 퇴근길에 만난 사람이 무려 김원봉인지라 거물과의 접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후 이름이 비슷하다면서 아나스타샤를 가짜 황녀로[32] 내세우다가 사태를 키워버리고 이후 금의환향한 아나스타샤에게 업보청산의 의미로 유라시아 최고의 가희라는 보복을 당하게 된다.
2.5. 민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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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배
전형적인 이 시대의 시골청년. 인민위원회가 독립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자치권을 세운 것에 1차로 실망하고 시골에서 이루어진 반민특위 재판에서 친일지주 김달영이 뒷돈을 써서 무죄로 방면되는 것을 보면서 2차로 실망했던, 윗대가리가 바뀌어봤자 자신의 삶은 나아지지 않아 탈력감을 느끼던 민중들의 심리를 잘 드러내주는 인물이다. 한문은커녕 한글도 못읽는 까막눈에, 김달영 밑에서 소작하며 살고 있다. 마누라와 자식들도 있는데, 아내의 이름은 춘자이다. 하지만 동네 선비 최씨 노인에게 총선에서 유인당의 토지분배 얘기를 듣고는 다시 한 번 서툰 기대를 갖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이 끝난 후 공약대로 토지 분배가 이루어져 제 몫의 토지대장을 받아들고 덩실덩실 춤추며 집으로 향하다가 김달영의 집에 경관들이 쳐들어와 깽판을 놓는 것을 목격한다. 또다른 과잉진압의 현장을 민간인에게 목격당한 경관들이 난색을 표하고 김씨 부인이 춘배에게 경관들이 생사람을 잡았으니 동네 사람들을 불러오라며 도움을 청했으나 그는...
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기며 김달영 일가의 악행을 고발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꿀잠을 잔다.
이후 '먹물쟁이'들이 농민들에게 굽신대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해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 조선인의 시각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사실상 낙점.
221화에서 대한건아 이봉창을 떠올리고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이 아무나 받을 대우를 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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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노인
다 떨어진 도포 차림에 꼬질한 갓을 쓰고 다니는, 전형적인 시골 잔반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 바로 위 춘배의 아내인 춘자의 아버지로 춘배의 장인어른이다. 까막눈인 춘배에게 선거벽보의 내용을 알려준다. 춘배를 비롯한 마을 청년들이 왜놈들의 우민화 탓에 글 한 자 못 읽는 것을 보고는 가슴을 치며 매우 통탄해한다. 후에 토지대장을 받아들고 마구 입을 맞추며 오두방정을 떠는 춘배를 보고는 못 볼 꼴을 봤다며 혀를 차며 지나간다.
이후 드러난 바로는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 상도는 경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일파 관료들이 촌장과 마을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고 업무 폭탄을 맞고는 돌아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돌리며 감격에 겨워 한다. 왜정의 주세법이 없어지고 공출도 없으니 다시금 조선 사람이 조선 쌀로 조선 술을 빚을 수 있게 되었던 것.
지난 겨울에는 안창호 집정이 손수 지방을 돌며 이번 겨울만 조금씩 나눠먹어가며 견뎌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정말로 다음해가 되자 조선은 보릿고개 넘을 만큼 남기고도 술을 빚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식량사정이 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조선의 농업생산물을 공출할 수 없게 된 일본에서는 곡물가가 거의 열 배나 오른 끝에 대대적인 잇키가 발생하고 있었다.
221화에서 복날에 돌아가셨다고 언급되었다.
2.6. 동양척식주식회사 & 남만주철도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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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오
헤이세이 대역으로 혼란스러워진 사이 경성 지점의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일본 본토로 튀면서 어쩌다 보니 임시 지점장으로 쾌속승진을 거듭해 올라온 젊은 청년. 동척의 40%를 차지한 최대주주인 조선총독부의 후계인 통감부에서 찾아온 조선 통감 이강의 설득에 미국과 합작은행을 설립하며 조선 편을 들기로 한다. 다만 이 과정이 상당히 개그스러웠는데, 이강은 내지와 만주를 보고 조선을 보라고 했고, 다케오는 다시 보니 선녀 같다라며[33] 조선 편을 들기로 했는데, 이 와중에 마지막으로 거부하려고 했으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는 이강의 질문에 날짜에 내포한 의미를 떠올리고, 의친왕 이강의 한마디. 주어가 빠졌으나 "좋은 장작더미군"이라는 말에[34]
"아, 물론 주어는 없소. 그냥 오늘처럼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에는 딱일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어렸을 적부터 꼭 한번 동아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바로 한 입에 두말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경성 지점을 시작으로 조선 지부가 일본에 있는 본사에 대한 쿠데타를 준비하게 된다. 다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무서워서 고개를 숙인거지, 상식적으로 조선 지부가 본사를 집어삼킬 수 있겠냐'라는 마인드였는데, 정작 도쿄쪽의 정국이 크게 터져버리면서 사실상 조선지부가 중심부가 되어버리자 '내가 고개를 숙인 것은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라며 태도를 순식간에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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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기이치(村上義一)
1930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는 실존인물.[35] 다만 고증 오류인건지, 한자의 이름을 잘못 읽은건지, 처음에는 기이치(義一)를 요시이치라 표기했었다. 지금은 수정. 만철이 지금 개판이라며 조선 자치정부와 조선통감부의 지원을 요구했으나, 의친왕이 만철에게의 조언자라며 백범을 데리고 오자 천황도 총독도 잡아먹은 식인 백호랑이를 1만난 탓에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만다. 이후 의친왕이 첩들을 데리고 백범과 단둘만 남자 거의 고문실에서 취조받는 심정으로 백범의 의견에 따른다.
3. 일본
3.1. 역대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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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쇼와 덴노)
역사의 분기점. 본래는 이봉창의 의거에서 살아남았었지만, 미래를 보고온 김구의 조언으로 타고 있는 마차가 정확하게 특정되어버린 바람에 백주대낮에 경찰서 앞에서 폭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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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히토(헤이세이 덴노)
원 역사의 헤이세이가 되는 아키히토가 태어나기 전이라[36] 당시에 황태자 대행 업무를 보던 야스히토가 자동으로 형 쇼와 덴노의 뒤를 이었고 이후 연호를 ' 헤이세이'로 바꾸게 된다. 하지만 해군 출신 젊은 장교들이 헤이세이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쿠데타를 벌여 아라키 사다오 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대신들이 살해당한다. 당연히 그에게 다시 전권을 쥔 천황이 되시라며 기뻐하는 쿠데타군에게 "내 손발을 다 끊어 놓고 무슨 개소리냐"고 악을 썼다가 억류당해 사실상 트로피 신세가 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일본 해군은 경악. 당장 조선에 파병된 육군이 귀국하기 전에 사태를 막기 위해 쓰시마 해협을 봉쇄하고 진짜 포격까지 해가며 일본 육군의 귀국을 방해한다. 그리고 다급히 도쿄를 공격했으나 마음이 급한데 쿠데타군의 저항과 민심이반이 격렬하자 아예 도쿄에 함대 포격까지 퍼부었다. 그렇게 개판 와중에 전투의 혼란을 틈타 탈출하다가 오인사격으로 사망하며 1932년을 세 천황의 해로 만들어 버린다. 레이와 덴노와 해군간의 갈등이 격화되자 해군측에서 쇼와 대역이 일어난 후 조선을 향해 강경 대응을 주문한 것을 사과하는 바람에 폭군 취급을 당하게 생겼다.[37] 역으로 육군과 농촌 등의 세력에서는 잇키를 벌이면서 역으로 야스히토 천황을 일본을 개혁하려다 살해당한 비운의 천황으로 치켜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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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히토(레이와 덴노)
황실전범에 의해 야스히토의 뒤를 잇게 된 다음 덴노. 즉위 시점서 27세로, 연호는 레이와[38]로 밝혀졌다. 본인은 해군에 의해 사망한 헤이세이 다음으로 해군 출신인 자신이 즉위하게 될 경우 자신이 어떤 이미지가 붙을지 너무 뻔하다면서도 분노한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즉위를 촉구할 뿐 계속 거절한다면 좋은 꼴을 못 보게 될 것이 뻔해서 그런 해군을 박살 내기 위해서 덴노 자리를 잇는 것을 결심한다. 즉위 과정에서 나온 서사로 보아 그는 군사 정권보단 과거 다이쇼 데모크라시로의 복귀를 모의할 것으로 보인다. 육군은 복종을 거부하고 중국에 망명, 해군은 사실상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문민정부도 자신을 도장 찍는 기계로 만들 요량임을 알자, 조선을 다른 축으로 만들어 판에 넣겠다고 다짐한다.
조선발 방송에 의해 일본에서 대규모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민심이 들끓자 조선에 개입해 방송을 중단하는 대신 이걸 역으로 이용해서 해군을 견제한다. 당연히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친왕[39]은 경악하면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치킨게임에 돌입.[40]
이후 해군측이 쇼와 사망 1주기 행사에서 조선에서 벌어진 각종 학살들의 배후에 헤이세이 덴노가 있다면서 행사에 참여한 조선 자치정부측 인사인 김규식에게 사과하면서 사실상 해군과 레이와 덴노는 더 이상 화해불가능한 수준까지 오고야 말았다. 또한 해군이 조선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려 기를 쓰는 모습을 보고, 조선 세력을 얻는 것만이 역전할 기회임을 확신한다. 이를 위해 조선의 민생을 발전시킬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려고 하며 공식 조선 국왕인 영친왕보다도 조선에 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덕분에 독자들은 그를 조선천황이라고 부르고 있다. 레이와 잇키에서 해군의 권위를 바닥으로 쳐박으건 좋은데, 그 후의 선택을 잘못하면 자신이 해군 손에 죽게 된다는 사실에 고민하다가, 한국 임시정부에서 미나미 지로가 자신의 살해를 의뢰했다고 알려준 편지 원본을 보고는 방송국이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떠올리고는 레코드판에 옥음을 담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청년 조선으로 보낸다. 당연히 겨울양은 상상을 초월한 편지(?)에 어머니를 찾았다. 그리고 이 도박은 성공하여 일본에 있는 온갖 조선인들이 노부히토를 지키기 위해 고쿄 앞에 모여들어 해군을 가로막고, 결국 히로야스가 이들을 제압하려는 순간 노부히토가 기미가요를 부르며 나타나며 조선인들을 신뢰하며[41] 치하하면서 해군을 막고 정국을 바꾸는데 성공하나, 이번에는 도조 히데키를 필두로 하는 육군 잔존병력들이 정국을 혼돈스럽게 만드려고 하는 판이다.
그 후에 조선과 만주에서 언급되는 바로는 일본 내 민심을 온전히 얻기 위해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아직 법률 개정에 손을 대는 건 없어서 여전히 트로피에 가깝다고.
그런데 미국에서 루스벨트(FDR)가 소련의 확장행보를 경계하며 일본을 투견 삼으려는 의도를 담은 방송을 하자 이를 듣고 홍사익과 대담을 하던 중, 과거 김구가 한일대타협에 끼워넣은 독소조항인 만일 일본이 영국이나 미국같은 해양제국과 전쟁을 벌이면 한국은 참전을 거부하고 즉각 독립을 선언한다를 떠올리고 일본이 해양제국과 전쟁을 벌이면에서 쓰인 조사 과/격조사 と가 한국어/일본어의 부사격 조사[한]/관계를 의미하는 격조사[일] 외에도 접속 조사[한]/대등을 의미하는 격조사[일]의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는 걸 이용, 문구를 일본이 해양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이 아니라 일본이 해양제국과 편 먹고 전쟁을 벌이면이라고 의도적으로 곡해[42], 조선, 만주를 비롯한 일본제국의 전 식민 영토에 독립과 잔류 의사를 물어보는 신민투표를 제의한다. 하지만 백범은 이걸 일본의 골수를 빨아먹을 기회를 놓치고 빚도 자신들이 갚게 되는 것이 귀찮다고 판단, 남들 눈치 안 보고 일본의 골수를 추가로 빨아먹을 수 있는 방도를 고려한다.
그리고 미국까지 독립한 조선의 채무능력을…
조선과 만주는 동군연합이다.
만주왕을 임명(봉신)한건 일본이다.
따라서 조선의 빚은 독립하면 동군연합인 만주국의 빚이며, 만주국의 빚은 만주왕을 봉신한 일본의 빚이다.
라는 기적의 삼단논리로 떠넘기지 못하게 해석해버리자 골머리를 썩다가…
중국의 주장에 따르면 만주는 일본이 중국의 양해를 받아 일시적으로 위임통치중인 곳이다.
따라서 중국의 주장에 따르면 만주의 지분은 중국에도 있다.
그러면 조선의 빚이 만주의 빚이 되니, 중국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만주의 빚은 곧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의 빚이기도 하다.
라는 또 다른 기적의 삼단논리를 적용하여 중국에게도 빚을 전가하는 미친 듯한 정치력을 발휘하게 된다. 게다가 이게 또 의도치 않았지만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는 소리가 됐는데, 다이리가 만주 관련 협정을 맺은 뒤 빚의 액수를 보고 절대 조선/만주만으로는 감당 안 되는 액수라서 이상하다고 조사를 해 보니 중국 재계가 조선-만주를 통해 일본 국적법을 우회해 미국에서 돈을 빌렸다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3.2. 역대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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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카이 쓰요시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이봉창의 폭탄 의거가 성공하며 히로히토가 폭살당하자 거기에 책임을 지고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다.[43] 하지만 이 덕분에 5.15 정변이 일어났을 때 목숨을 잃은 원 역사와 달리 목숨을 건지게 되었으니 인생지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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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사다오
황도파의 우두머리. 육군 황도파 주도로 내각을 장악하고 총리대신이 되었다. 이후로는 해군의 쿠데타 모의에 관한 첩보를 받고도 현 상황이 전부 좌익세력의 음모라는 망상에 빠져 무시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해군의 5.15 정변로 인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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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쓰키 레이지로
현실 일본 제국의 정치판에서 리버럴 성향의 양대 정당이었던 입헌민정당의 총재이자 전 내각총리대신. 작중에서 영국의 주선 하에 임시정부 측과 조선의 거취를 놓고 협상을 하는 일본 측 대표로 나온다. 이 후 존재감 없이 지내다 김규식이 일본에 오자 마중을 나갔고 거기서 해군과 정부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만다. 그런데 백범에 의해, 일본 내 조선인들이 대거. 자그마치 10만명이나 입헌민정당에 입당하면서 당권이 흔들리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실은 백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재일 조선인들의 자체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일본인들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조선인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폭주하지 않는 입헌민정당에 입당하려고 했던 것. 조선인들을 받아들였다가는 조선을 무시하는 내지인들의 역차별 대상이 되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쫓아내려 하지만, 이를 노리고 와카쓰키를 몰아내려는 라이벌들과 당내 진보파들이 반대하면서 방도가 없이 뒷방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44] 이것으로 이미 윤기협의 뜻대로 흘러가는 일본공산당에 이어 입헌민정당도 조선인들의 입김에 휘둘리게 되었다는 걸 깨닫고 내지의 정치적 무관심에 한탄한다.
3.3. 역대 조선총독 및 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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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마코토
전직 해군 대장이자 전 조선 총독. 원 역사에서는 5.15 사건 이후 총리로 임명되나 여기선 육군이 내각을 장악했던 탓에 공직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한일 대타협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 일본 대표로 경성을 방문해 김구와 만나고는 그의 우람한 체격을 보고 긴장한다.[45] "천황 폐하의 은덕으로 이나마 얻은 것이니 말조심하라"고 김구에게 큰소리를 치나 천황과 조선 총독을 연달아 날려버린 '동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의 조소에 잘못하면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굴욕적으로 한일 대타협 문서에 서명한다. 반민특위 문제로 김구와 연락하다 김구에게 "너 빨갱이 아니야?"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대해 사이토는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천황을 죽인 장본인인 김구에게 "그대도 이제 천황 폐하의 신민이오."라고 말하는 것도 개그 포인트. 이후 만주 관동군이 만주로 추방한 공산주의자들을 멋대로 목포로 보내버리고 조선은 또 이 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이는, 한 마디로 현 해군 군정, 즉 해군 막부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어지러워하던 히로야스가 현실을 아는 전임자로서 불러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하자 '천황을 시해하고 시민들을 제압부터 한 해군에게서 민심이 떠났으니 그럴 방도는 없다'라고 완곡하게 돌려까는데, 히로야스가 초 근시안적인 시야+듣고 싶은 말만 듣는 필터를 장비한 탓에 여기서 제멋대로 민심을 잡겠다며 중국산 쌀을 수입하려고 하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46]
그 후 혁명의 아이돌인 후유코의 부친을 통해 연락해보려 했지만 사실상 절연 상태인지라 실패. 전 조선총독에 해군출신인 사이토 마코토로선 재일 조선인 측에도, 육군 잔당 측에도 붙기가 애매한지라 절약생활을 하면서 망명이든, 가세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김구에게 연락해 천황을 독대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김구에게 지금 재일 조선인들 문제는 자기들 손을 떠난 문제라는 확언을 듣고 설령 거짓말이라고 해도[47] 자신이 다시 일어나려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김구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한다. 이는 현재 일본 내부가 온갖 정쟁과 모순이 가득차 있어서 누군가가 총대를 매지 않고서야 봉합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인데, 객관적으로 봐도 일본이 감당할 수 없는 조선과 만주라는 두마리 금송아지를 잡아먹고 배탈이 난 것이기 때문. 즉, 자신이 총대를 매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여론을 하나로 묶고, 상처를 봉합, 그리고 조선과 만주를 뱉어낼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게 스노우볼링을 일으키며 조선 암약론 및 재일 지배론이 그대로 신빙성을 잃어버린다. 이게 단순하게 조선을 육성한게 자신이라고 주장한 것만으로 끝났으면 몰랐는데[48], 조선어와 일본어와의 문법 일치성을 기반으로 일본의 뿌리는 조선이라고 주장한걸로도 모자라서, 절대불가침의 영역인 천황까지 언급하며 천황이 부여씨의 계보라고 주장해버린 바람에 미친놈의 미친소리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버렸기 때문. 게다가 조선이 할 줄 아는 게 농사밖에 없다는 인식까지 주어져서, '무지렁이들이 일본을 지배한다는 소리는 헛소리다'라는 쪽으로 여론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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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센주로
개판이 나버린 한반도의 독립운동 저지를 위해 해고된 우가키 가즈시게 다음으로 온 임시 총독. 박영효를 비롯한 조선귀족들을 달래면서도 속으로는 철저히 멸시하는 전형적인 일본 제국주의자. 조선귀족들을 달래다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한 줌 먼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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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 지로
한용운을 비롯한 승려들이 시위에 나서며 진압이 난관에 부딪혔다는 보고를 받으며 탈력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그 뒤 임시정부에 그들의 행보를 규탄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행간이 무척 띄워진 것을 수상히 여긴 김구가 편지를 그을려 보니 드러난 편지의 진짜 내용은 새로이 등극한 해군파 덴노를 암살해달라는 의뢰였다! 처음에는 임정에서 이를 받아들이려 하였으나 덴노에게 해당 밀서 원본을 송부하는 것으로 방침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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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백범이 임시정부와 척을 지지 않을, 일본의 개 대신 조선의 탕아가 이왕이 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언급한다. 일본에서도 이 경우라면 무작정 이왕을 폐지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비해서는 딱히 반대하지 않을테니 차라리 나은 선택이라는데, 백범은 일본이 보내주지 않으면 강제로 모셔온다고 했는데 이는 의친왕이 일제에 반항하여 공화국의 시민이 되겠다면서 1919년 상해 임시정부로 가려고 하던 시도가 실패로 끝난 이후 1930년까지 일제의 감시 속에서 지내다가 장남 이건에게 공족 작위를 물려준 다음에 1930년 말부터 1930년대 어느 시점[49]까지 일제의 감시 하에서 큐슈 지역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을 회유하려는 일본 측의 의도에 따라 신임 조선 통감으로 임명되었다. 통감이 된 직후 김구에게 일본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일본의 내분을 부추길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조선에 온 뒤로 재조선 일본 기업이나 매국노들에게는 일부러 정체를 감추고 있다가 김구와 함께 동척 경성지사장을 만나 정신적 타격을 주는데 협조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중. 그 와중에 첩을 13명[50]이나 들였을 정도의 쾌남아지만 조선 경영에 대해서는 조선 자치정부에 맡겨놨다. 너무나 협조적이라 김구는 이런 의친왕이 무언가 음모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진저리를 쳤다.
3.4. 일본군
원 역사에 비하면 엄청나게 약화되었는데 조선을 상실하고 반복되는 덴노의 암살로 인해 정치세력으로서 완전히 몰락해버렸다. 육군은 해군과의 힘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만주로 흩어지고 수뇌부는 망명했다. 해군은 일시적으로 정권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헤이세이 덴노를 죽게해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결국 해군의 실정이 겹쳐서 대규모 잇키가 발생하고 결국 레이와 덴노에게 완전히 밀려버리고 대만으로 도주한다. 관동군은 만주에서 세력을 형성했지만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기에도 버거웠다가 레이와 덴노의 명령으로 도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그 후 근위대장까지 진급한 홍사익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군축을 거쳤고, 숙군을 통해 과거의 군국주의 정신도 제거했다고 한다.
3.4.1.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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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마사노부
조선으로 진군해온 관동군과 대치하다가 꼴사납게 항복하던 중 홍범도의 빨치산 부대에게 습격당한다. 어떻게 도망쳐서 홀로 관동군 쪽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관동군도 만주군 문제와 조선 사태 탓에 우왕좌왕하는 탓에 홀로 헤매다가 만주로 내려오는 소련군 전차와 마주쳐서 포로가 된다. 이후에는 중국 공산당 휘하에 들어가서 시(辻)라고 이름까지 중국식 발음으로 갈아치웠다. 하지만 정작 마오쩌둥 일파가 패배하면서[51] 갈 곳은 잃은 그는 어떻게든 병사들의 사기를 잡기 위해 전투 한번을 바라다가 돌격하나, 하필 그 상대가 기갑병력이라 또 항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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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히데키
5.15 쿠데타군과 대치하던 중 해군이 도시에 포격까지 하고 육전대를 진군시키는 걸 보고 경악하고 해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추리하고는 전 해군을 반역자로 선포한다. 당연히 당시 총무부 과장 따위인 도조 히데키가 맘대로 소리쳐도 되는 내용이 아니다.
사실 상황 자체는 지나치게 과격하단 것 말고는 방향성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육군파였던 현 내각이 해군 과격파에 의해 몰살당하고 그걸 또 해군에서 수도에 육전대며 함포까지 동원하며 엄청난 속도로 공격을 퍼붓는 걸 보고 해군의 자작 쿠데타에 육군이 완전히 당했다고 판단한 것. 도조라고 이러면 해군과 육군의 전쟁이 수렁에 빠진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지는 것보단 낫다는 판정하에 실행한 것이다.
후에 해군이 권력을 잡으며 한직으로 쫓겨나서 조선의 방송을 감청하고 차단하는 일을 맡았으나, 해군이 엿돼야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조선의 농지개혁안에 대한 렌야와 후유코의 선전방송을 일본 전역에 송출한다. 이쯤부터 독자들의 호칭은 DJ 히데키. 이후 백범이 의친왕의 말에 따라 쥐불놀이를 거하게 벌이기 위해서 방송에 나와 해군이 일본이 조선에 한 패악질을 사과했다는 두리뭉실한 발언을 하자 쾌재를 부르며 불령선인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며 대놓고 해군이 엿돼보라는 백범의 의도를 따라주려고 한다.
후에 우연히 감청된 해군 통신에서 해군이 지나산 쌀을 수입해서 곡가를 잡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역시 부자놈들이라 일본 농촌 사정을 모른다고 디스한 뒤[52] 이 정보를 일본 전역에 들키지 않고 풀기 위해 청년 조선에 익명의 투고자라는 형태로 편지를 보낸다. 그래놓고 해군을 육군이 막고 화려하게 육군의 시대로 돌아온다…라는 계획을 짜 놨는데, 입헌민정당 당원들이 해군을 막아세우고 덴노가 그들을 치하하는 장면을 보며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었다.
후퇴하다가 '재일이 천황 폐하를 인질로 잡고 있다!'라는 미묘하게 맞는듯 아닌듯한 흑색선전을 떠올리면서 정국은 더욱 혼돈으로 치닫게 된다. 그래도 이 핑계로 일본 육군 잔존병력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지만, 사이토 마코토의 자폭으로 말미암아 재일이 일본을 지배한다는 흑색선전 자체가 의미를 잃어버린다. 거기다 이시와라 간지가 귀국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결국 그에게 납작 엎드린다.
이후 시베리아로 와서 트로츠키의 공산당을 지원하러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내실은 이시와라 간지와 홍사익이란 현 레이와 덴노의 측근들의 철통같은 입지를 넘을 방도가 안보여 온 것으로 평생 그들 밑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생각을 하던 중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낯익은 꾀고리 목소리와 흔한 이름의 러시아계 처자의 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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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
육군참모총장이자 세습친왕가들 중 하나인 간인노미야의 황족이다.[53] 대부분의 육군이 조선에 파병된 사이 해군에 의한 쿠데타로 정권이 전복되면서 홍범도와 임정의 독립군, 점차 격해지는 만세운동 조선인 시민군, 관동군, 해협을 봉쇄한 해군 사이에 끼인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게 된다. 물론 수는 많아도 가장 만만한 시위대를 학살하자는 참모들의 의견을 묵살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조선반도를 평정해봤자, 해군에게 눌린 상황의 타개는 안되기 때문. 그들의 주적은 일본 해군이므로 이이제이를 위해 조선인 시민군에 항복하기로 한다. 정확히는 무장을 해제하여 조선 측에 무기를 넘겨주고, 관동군과 모종의 거래를 맺어 예하 부대를 관동군 측에 포로 형태로 넘겨주는 대신 관동군의 양해를 얻어 수뇌부만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 사실상의 반역 행위에 노부히토 천황은 격노했지만 육군의 자리를 아예 없애버리면 해군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 본토에서는 아무런 처벌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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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익
원 역사에서도 일본 육군의 중장까지 오른 사람 답게 1933년 기준으로 일본 육군 소좌. 쿠테타를 일으키며 레이와 덴노를 죽이려고 하던 히로야스를 역도라며 고쿄 앞에서 가로막았다. 히로야스는 원래는 그냥 무작정 치우려고 했던 모양인데, 홍사익이 나노리를 시도하는 바람에 그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중세 일본에서는 나노리(자기소개)중인 자를 도중에 치워버리는 건 그야말로 평생 욕 먹어도 싼 행위였다. 그 전통이 남아있던 일본 제국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놓친 것. 히로야스는 감히 조센징 따위가 자신을 역도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서 휘하 해군들에게 어서 저 놈을 쏴 죽이라고 했으나, 하필 그 곳이 1년 전 해군의 손에 의해 헤이세이 덴노가 사살된 저주받은 골목이라 해군들이 주저하는 사이, 입헌민정당 당기를 든 시위대가 해군을 가로막게 된다. 심지어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충신.
이후 김구에게 연락한 사이토 마코토는 홍사익을 필두로 한 재일 조선인들이 김구와 안창호의 조종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김구와 안창호는 이들을 싫어하면 싫어했지 별 관계가 없다고 단정했다. 한국이 자치권을 얻은지도 1년이 지나가는 시점이라 지금까지 남은 재일 조선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일본에 남은 이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실제로 접점이라고 해봐야 정보를 살짝 흘려준 것 뿐이고, 후원을 받았어도 문화통치 시절에 심어놓은 관료들이 했지 임정이 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근위사단장이 되어 군부내 사조직들을 족치고 다녔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로 인해 일본의 군벌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언급된다. 후에는 레이와 덴노의 최고 측근이 되어 덴노가 이시와라 간지보다도 신뢰하여 독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밝혀진다. 하지만 홍사익의 충성은 믿으면서도 왜 충성하는지는, 조선 출신이어서 유학자이기 때문인지 일본국의 사무라이로서인지 그저 출세를 원했던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3.4.1.1. 관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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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와라 간지
일본군이 독립운동을 진압한다고 경성에 항공폭격을 가하자, 일본의 2등시민인 조선인을 보호하겠다고 관동군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으로 진격한다. 대동아공영권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이 조선을 식민지로만, 조선인을 적으로만 보는 관동군을 보고 신뢰까지 거둔 상태라서, 관동군의 식량창고와 무기창고의 위치가 적힌 기밀지도를 임정에 전달했다.
결국 권력 싸움에 여념이 없는 황국 자체에 완전히 실망하고 대동아공영권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을 후원하는 황당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독자들에게는 '석원완이 선생'이나 이름을 뒤집어 읽은 '이원석', '이완석', '간지 센세' 등으로 불리는, 무다구치 렌야에 버금가는 인기인물이다. 특히 군사지도를 전달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국공한일합작.
원역사에서도 대동아공영에 관해 특히나 이상주의적인 인물이었다. 관동군에서 이왕을 만주의 대군주로 추대하려하자 남모를 웃음을 지었다는 것을 보아 나름의 큰 그림이 있는 듯하다. 군문을 떠났고 민정부장이 되었으며, 내지의 혼란을 틈타 만주 자체를 하나의 국가체제로 기능하도록 기업들을 매수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그를 의심하는 일본인들도 상황 자체는 합리적이라[54] 어쩔 수 없이 그의 정책을 지지하는 중. 다만 남만주철도회사의 이사인 무라카미 기이치는 사이비 땡중에 사이비 종교라고 디스했다.
결국 내지의 분열이 친조선 친위대와 민심을 등에 업은 노부히토 천황의 판정승으로 결정나면서 복귀할 전망이 서게 되자[55] 결정을 하지 못하는 혼조 시게루 사령관을 천황의 칙서를 내세워 하대하며 도쿄 진공을 결정한다. 도쿄에 와서는 사이비 종교적 신념에 따라서 대동아 공영권을 소리 높여 외치는데, 여기에 노부히토 천황이 정국 안정을 위해서라면 자기 이름을 파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자신이 간지를 임명했다고 직접 방송에서 옥음을 전파하면서 순식간에 파벌이 늘어나게 된다. 도쿄 입성 후에는 군인보다는 오족협화를 주장하는 사상가이자 정치가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있다. 이후 육군대신이 되어 안창호를 만나 조선의 군비 확장을 적극 돕겠다고 밝혀 안창호의 기를 차게 하지만 그의 치밀한 대전략과 미래 예지 능력이 더해져 그럴싸하게 들리는지라 이를 알게 된 백범이 혹여 저 자도 회귀자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56] 여기까지 본 독자들은 간지가 미친 놈이긴 한데 사리분별에 자기객관화까지 가능한, 체계적으로 미친 놈이라 더욱 무섭다는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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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시게루
관동군 사령관. 독단적으로 진군한 이시와라 간지를 불러다 구타하며 질책한다. 하지만 이내 간지가 해군 편을 들어 육군을 치라고 충동질하자 이에 넘어가게 된다. 이후 만주국 집정으로 세우려던 푸이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만주국을 꼭두각시로 세우는 걸 넘어서 아예 일본의 식민지로 잡아먹으려 하고 푸이가 도망간 만주의 얼굴마담으로는 조선왕으로 오게 될 영친왕을 내세우려는 꼼수를 보인다.
노부히토 천황의 판정승으로 인해 재일이 일본을 점령했네, 해군이 밀려났을 뿐이네 등으로 모순된 정보를 들으면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3.4.2.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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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히토시
원 역사에서는 5.15 사건의 주모자였으나 막상 쿠데타 전에 전사했던 일본 해군 중위. 육군 본대와 관동군이 싸우는 틈을 타 5.15 쿠데타를 성공해 천황의 신병을 확보한다. 물론 당장 국정운영에 필요한 총리 포함 기타 장관들로 구성된 육군내각을 죄다 죽여버리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국정이 무너진 거라 인정하지 못하는 천황을 강제로 가둔 것.[57] 그 후 천황을 내세워 강제적으로 병력을 징집하고 여론을 선동했지만 전국에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오는 해군 토벌병력의 공중폭격과 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한다. 해군이 진압과정에서 덴노 시해의 원인을 제공하여 역적이나 다름 없었지만 해군과 레이와 덴노간의 갈등이 폭발하여 평가가 뒤집혔는데, 레이와 잇키때 신민들을 위한 개혁을 하려다 수구꼴통 해군에게 살해당한거라고 포장되었다. 작중 언급으로는 고인능욕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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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58]
해군 소속의 군령부총장.[59] 일본 황족의 방계인 세습친왕가 후시미노미야 가문의 당대 당주이기도 하다.[60]
누구도 예상 못한 해군 소장파의 쿠데타에 다급히 해군 장성들을 데리고 요코하마로 피신했다. 그리고 현재 육군으로 구성된 내각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은 것을 깨닫고, 해군의 손으로 사태를 진압하지 못하면 조선반도에서 회군한 육군의 손아귀에 해군 전체가 박살날 것을 직감한다. 사태 해결을 위해 면피성만 잔뜩인 명령으로 육군의 귀국을 막고, 도쿄에 가용가능한 전력을 마구잡이로 때려박으며 쿠데타파와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이것이 본토에 남은 소수의 일본육군에게 의심을 사는 바람에 양군의 대립이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사고로 야스히토 천황을 죽여버리는 대형사고를 쳤고, 본래 해군에 우호적일 수도 있었던 노부히토 친왕[61]을 덴노 자리에 눈이 멀어서 형을 죽인 패륜아란 오명과 같이 강제로 즉위시키면서 해군과는 철천지 원수가 된다. 조선의 토지개혁에 의해서 일본 공산당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덴노에게 토지개혁을 당장 멈추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안 그래도 철천지 원수 같은 해군이 민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캐치한 덴노는 역으로 그건 자신이 허락한 일이라며[62] 민심을 등에 업어서 해군과의 정면승부에 나선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이 인간은 정이대장군 취급[63]하며 노부히토 덴노로부터는 서자라고 비웃음 당한다.[64]
현재 일본 내에서의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집권에 정당한 명분도 없고,[65] 미래는 어두운데 해결할 비전이라고는 없는 답 없는 상황이라서[66] 해군에 의하여 사망한 야스히토 천황을 폭군으로 몰아세우는 등[67] 해군에 의한 폭주가 점차 심해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제 딴에는 자기가 상식인이라 여기고 있는 모양인데, 부하 해군들이 당장 조선이고 일본이고 뭐고 다 공격해서 싹 쓸고 그 위엄으로 해군을 유지하자라고[68] 제출한 방안을 보고 이랬다가는 정말로 망한다고 여긴 듯 물러서는데, 원로들도 그 계획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놈들 투성이라서 그나마 해군 출신이었던 전직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조언을 구하나, 사이토도 '이미 망했다, 고로케 사건 때 민생 살릴 생각도 안 하고 진압부터 한 해군이 어떻게 살겠냐'라고 어서 포기하라고 돌려 말했으나, 제 귀에 듣고 싶은 말만 듣는 모드가 된 히로야스는 민생을 살리겠다며 경제는 [ruby(전문가, ruby=자이바츠)]에 맡기고 중국산 쌀을 수입할 계획을 세운다. 게다가 노부히토가 옥음방송을 청년조선을 통해 일본에 송출하자 사이토의 말을 완전히 곡해해서 사이토의 충언대로 덴노를 죽여버리겠다고[69] 이를 갈고 해군 정예병과 일반 수병 등을 이끌고 진공하나, 헤이세이 덴노가 해군에 의하여 살해당한 그 길에 홍사익을 위시로 한 일련의 육군 잔존세력들이 가로막고 입헌민정당 당기를 든 시위대가 해군을 가로막게 된다. 이에 조선놈들이 황국을 뒤흔들려 한다라며 폭주하여 당장 쏴죽이라고 명령하지만, 맨손으로 덴노를 지키려 나온 홍사익과 시위대와는 반대로 총검을 들고 덴노를 겁박하러 온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괴감을 떠올린 해군들이 명령을 거부하자, 혼자 총을 뽑아 시위대와 명령을 거부한 장교를 쏘아 죽이나 오히려 이 상황으로 시위대가 더욱 열이 받혀 천황폐하 만세, 자유 일본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하는 계기를 제공하며, 이 소리에 노부히토가 기미가요를 부르며 직접 나타나자 해군들이 스스로 무기를 천황에게 반납하며 속속히 전투를 포기. 홀로 도주하게 된다.
대만으로 함대를 이끌고 대피했지만 어차피 항공유를 보급하지 못하면 전투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 부하들에게도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미국 태평양 함대가 동북아 근처에 온다는 정보를 접하자 그들과 손을 잡을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점에서 미군 상선이 관동군을 일본으로 실어 나를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결국 미국에게도 외면 받고 영국조차 손을 내밀지 않자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하필 가이샤쿠로 나선 이가 부사관으로 위장한 대만 독립운동가였던지라 할복을 하기도 전에 대가리가 둘로 쪼개지며 허무하게 최후를 맞는다.
3.5. 일본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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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협
재일 조선인 공산주의 운동가. 조선 공산당에서 대규모 시위를 일으키고 그 경험과 지원, 자금을 일본 공산당에 보내주자 이걸 이용해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한다. 마침 청년 조선에 의해서 조선의 토지개혁 논란이 빠르게 확산되고, 여기에 더하여 일본 해군에 의한 검열에서 한번 더 사건이 터지며('밥 대신 고로케' 발언) 도쿄에서 대규모 시위가 터지자 이걸 발빠르게 이용. 무적의 논리[70]로 진압도 못 하게 막는다.[71] 그런데 이러저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상당히 이상하게 얽혀서, 공산당은 근왕을 외치고 덴노는 조선을 밀어주는 이상한 전개가 벌어진다. 이후 만주로 추방되었으나 관동군의 묵인하에 목포로 탈출에 성공했고 거기서 교육부장인 김두봉을 만나 교편을 잡아 교육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러다가 도조의 정보를 받은 청년 조선이 일본 전역에 방송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에서 대규보 잇키가 일어나자, 목포에 모인 일본 공산당원들이 일본 도심 노동자들의 시위를 유도하게 된다.
3.6. 청년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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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무라 신이치
시골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영리해서 가족들의 지원과 기대를 한몸에 받은 끝에 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하고 육군의 장교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신이치가 그 과정에서 황도파에 소속했으며, 5.15 사건로 인해 황도파와 친하던 헤이세이 덴노가 사망하고, 그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러 갔다가 내지의 정치 사정으로 칼도 못 뽑아보고 항복, 관동군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귀국해서 이미 해군이 장악한 군부에서 푸대접을 받다가 전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리하고 자랑스러운 장남이던 신이치는 가문의 무능한 패전장교라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이후 우울하게 시간을 허비하다가 문득 라디오를 통해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만주도 조선도 나날이 발전하고 개혁하는데, 내지만 퇴화중이라면서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다시 상경해 청년일본에 가입한다.
여러모로 쥐어짜이다가 대타협 이후 회생하고 있는 조선 농촌과는 정반대로, 나날이 쥐어짜이다 몰락을 눈앞에 둔 일본 농촌의 현실을 대변한다.
3.7. 민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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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루
성씨는 불명. 후유코를 버리고 떠난 후유코(겨울)의 아버지. 아내는 생각 없이 저 방송의 여자애가 자기 딸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다가 조선놈과 붙어먹었다고 핍박 받아 집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로도 조선놈에게 붙어먹은 변질자 이미지가 붙어서 어디서고 항상 돌이 던져지고 하는 위치였는데, 일본 공산당원들이 후유코의 아버님이라고 지켜드린다는 걸 보며[72]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를 못 하다가, 차라리 조선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이후 175화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는데, 후유코의 집 근처를 서성이며 빌붙으려고 하다가 거동수상자가 집앞을 어슬렁거린다라고 신고한 후유코에게, 경찰의 감시를 뚫고 돌입해서 계속 이러면 온 나라에 망신살 뻗치게 만들겠다라고 협박하자 그냥 후유코는 집을 처분하고 튀어버렸다고.
3.8.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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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구
그 유명한 이완용의 차남. 친일 선전을 하다가 일본군의 시위진압 폭격에 휘말릴 뻔 하게된다. 이후 홍범도가 주축이 된 반민특위에게 출두요청을 받는데 아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뻗대다가 경찰을 불렀으나 출동한 경관이 그 윤봉길인 것을 보고 곧바로 태세변환하여 도게자를 시전했다. 후에 인감까지 뺏겨서 멋대로 재산을 기부(당)하고, 사죄를 (강요당)하고 하며 고초(?)를 겪다가, 이왕 전하가 돌아왔다는 말에 앞으로 이 빨갱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일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친정을 떠난 이왕(영친왕)이 계시는 단동으로 추방당… 아니, 상경했다. 이후로는 만주로 도망간 친일파들을 처단하던 김원봉에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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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대규모 만세운동 진압으로 한반도에 대규모 병력이 상륙하자, 조선귀족들의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총독부를 찾아갔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새 총독인 하야시 센쥬로와 함께 폭사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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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영
인민재판에 출석하여 사형을 언도받는데, 이항구와 비슷하게 대타협이라고 해봤자 이왕가와 덴노 사이의 타협이고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을 반민특위 따위가 자신을 건드려봤자 곧 돌아올 이왕과 일본군이 손을 봐줄 것이라 생각하며, 이왕대비의 큰아버지이자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운운하나[73] 상대는 특권층 목치는데는 조선팔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게 함정. 곧바로 총구를 들이미어지고서야 상황파악이 되어 꼴사나운 모습으로 뒤늦게 목숨을 구걸한다. 후일 친일파들 회담에 의하면 잘해봐야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꼴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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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술
울산에서 근무하는 고등계 고문경찰. 일제에 부역하여 독립투사들을 앞장서 괴롭힌 장본인으로서 나름 영화를 누렸다. 본인은 자신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위해서 일하는 전문(고문)기술자'라고 여기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곤 전혀 생각하지 않고 죄의식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민특위의 활동이 개시되고 소련의 남하에 맞서 자치정부가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면서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앞날에 먹장구름이 끼었다. 당장 백수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자신의 전문기술'을 써먹어줄 일자리를 찾아서 '대세'로 보이는 공산당으로 전향하여 신분세탁을 꾀하려 했으나 공산당은 잠깐 반짝인 것에 불구했고, 이후 빨갱이 사냥에 걸려서 붙잡히며, 최종적으로 과잉진압으로 현장에서 즉사하고 만다. 여담으로 빨갱이 체포를 위해 나선 경비대원들이 노덕술을 알아보고, 일개 경위인 노덕술을 '윗선에서 이름까지 지정하며 특별히 지시내린 것'으로 보아 미래지식을 보고 온 김구가 직접 손을 쓴 것으로 보인다.[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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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영
일제 하 조선귀족들과 노덕술과는 다르게 가공의 인물로 보인다. 춘배와 같은 동네에 사는 친일 지주. 일제에 붙어 온갖 행패는 다부리던 인물이다. 소작인 춘배네에게도 못할 짓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반민특위에서도 돈을 주고 무죄방면 되었지만, 토지 개혁 와중에 쳐들어온 경관들에 의해 위기에 처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춘배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오히려 김달영이 저질러 왔던 그간의 악행을 모조리 고발당하며 파멸을 맞이한다. 1년이 지난 후에 춘배네의 언급에 의하면 그날 끌려가서 제대로 두들겨 맞고 오더니만 아직도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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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대식
60화에서 백범을 매수하기 위해 찾아가 금괴가 든 가방을 내놓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에 백범이 자신은 청탁을 받을 마음이 없으니 돌아가라 하자, 자신들은 할 수없이 일제에 붙었던 것이며 반민특위가 필요하긴 하나 지나치게 좌경화되어 있다고 하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횡을 막아야한다고 한다. 이에 백범이 넘어간 듯이 소련이 만주에 쳐들어오는데 발맞춘듯 공산주의자들이 설치는 게 어떻게 우연이냐며 동아를 적화하기 위한 코민테른의 음모가 틀림없다고 말하더니 저들을 막기 위해 과거를 잊어두자고 말하자 기뻐하며 맞장구친다.
그러나 백범이 곧바로 가져온 자금이 부족하다고 하자 몇배로 가져오겠다 하지만, 그걸론 한참 모자라다면서 결국 자신을 매수하려 든거냐고 화를 내고는, 일본이 망하거든 바다건너로 달아나려는 거 아니냐며 추궁하며 입만 살아있는 비국민새끼라고 욕하고 뒤돌아서자 결국 전재산이라도 갖다바치겠다며 엎드린다.
이후 토지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백범에게 항의하고자 찾아가지만 푸대접만 당한다. 그 와중에도 자신들이 필요할 거라 하지만 곧바로 멱살을 잡혔으며, 백범에게 자신은 자본주의자가 아니고 너희 재산을 몰수해서 국민들에게 분배하는 건 우리도 차이가 없다고 하자 충격받고 기절한다.
이후 자민당을 차려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발악하나 자민당은 득표율을 거의 올리지 못한 채 몰락했고, 곧바로 박헌영을 죽인 죄가 뒤집어씌워져 치안유지법 위반을 명목으로 서대문형무소로 소환되어 쇠고랑을 차는 것으로 등장이 끝난다.
이후엔 다른 조선귀족, 지주들과 다를 바 없이 서대문형무소에서 매타작을 당했을 것으로 보이며, 재산을 거의 다 몰수당한채 만주로 추방되나 만주에서 은행가로 재기해 성공했음이 이후 밝혀진다. 그러나 만주에서 활동하며 도망치거나 추방된 악질 매국노들을 처단하던 김원봉에게 살해된다.
4. 만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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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푸이
관동군의 인질로 붙잡혀 있다가 만주에서 한창 관동군과 소련군이 치고박고 싸우고 있는 사이 관동군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도주했다. 덕분에 관동군이 의도한 만주국 성립 자체가 꼬인 상황. 심지어 망국의 군주답지 않게 충신들이 자결해가며 도주한 목적지를 불지 않는터라 찾는 게 더 힘든 상황이다. 관동군은 만주국 성립을 못 하게 되자 다른 방도를 찾다가, 만세일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격이 낮지 않은, 동시에 일본 대신 반일감정을 흡수할 피뢰침이 되어줄 자로 영친왕을 떠올리는데, 이게 크나큰 나비 효과를 일으켜서 백범은 전하께서 친정을 가셨으니 행궁은 대충 단동[76]이나 봉천 어디쯤에 차리게 두고 한양 조정은 섭정 의회가 다스린다는 방침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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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영친왕
임시정부에서 일본이 자치권을 획득한 조선에 보내면 골치아프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이미 조선에서의 민심이 땅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라 사실상 조선의 중심이 되기는 힘든 상황…이었는데, 푸이가 도주하자 관동군이 만세일계를 깨지도 않지만 격이 낮지도 않은 사람. 즉 왕공족인 이왕가를 만주국에 세우자고 발상을 전환하면서 영친왕이 만주국의 국왕이 될 예정이다. 백범은 이를 역이용하여 조선의 전하가 북적 침략에 맞서 만주 백성을 지키고자 친정에 나섰으니 한양의 조정은 섭정 의회에서 다스려야 한다라면서 조선을 호르티 미클로시의 헝가리 왕국 마냥 왕 없는 왕국으로 세울 작정을 하는 중.
그리고 한국에 귀국한다. 언행을 보면 임정 쪽에서 무얼 계획하고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 여기서 자신의 불행을 되돌아보는데, 어릴 적엔 순진하고 어린 탓에 일본의 야심을 몰랐고, 설령 알았다한들 10대 꼬마에 불과한 자신이 뭘 할 수 있었겠냐고 생각한다. 또한 부유하기는 했지만 일본의 감시하에 놓인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고 괴로웠다고 생각한다. 배에서 내리면서 정당한 국왕으로서 팔도를 유람하며 백성을 돌보는 선왕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재산을 압수당한 매국노들만이 자신을 반기고 자신도 매국노와 묶어서 경멸하는 국민들을 보고 완전히 얼어붙고는 도망치듯이 만주행 기차에 오른다.
그 후 실의에 빠져 하던대로 존재감없는 트로피에만 충실했지만, 아내의 간언을 듣고, 만주에서나마 성군으로 살아볼 것을 다짐한다.
스탈린이 영국과 독일의 회담이라는 첩보를 듣고 영국의 진의를 알아볼 겸, 동시에 동아시아 문제를 한큐에 해결할 겸 중국 공산당을 부추겨서 만주를 공격하는데, 이로 인해서 오히려 만주가 단합하며 다음과 같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칭호가 사실이 되어버린다.
스탈린: "그 뭔 씹…?!" -
이방자[77]
일본 방계황족 나시모토노미야 출신[78]으로 영친왕 이은의 부인이다. 남편인 영친왕 이은과 같이 조선에 보내지나 조선에 발을 붙이자마자 대다수 조선인들의 냉엄한 반응과 극소수 친일파들의 환영이라는 기묘한 현실에 얼어붙어 제대로 말 한마디 못 내뱉고 조선 자치정부측의 의도에 따라 열차편으로 만주국으로 보내졌다.
이후 해군이 잇키를 진압하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하여 노부히토 천황이 청년조선측에 보낸 레코드를 재생할 때 일본인들이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목소리가 덴노라는 사실[79]을 부정 못하게 하려면 일본 방계황족 출신인 이방자 여사의 보증이 필요하다는 김구와 안창호의 판단으로 조선방송협회를 방문해 후유코와 천황의 연설을 들으면서 라디오 녹음에 참가했다.
일이 끝난 후에 후유코에게 내지라면 이를 가는 조선인들에게 인정받는 방법이 뭐냐고 물어본다. 이에 내지인이라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내지가 그동안 조선을 괴롭히고 착취했다는 사실만이라도 확실히 아는 모습을 보이면 조선인들에게 별 다른 해코지를 걱정할 일은 없다고 듣고는 쓸쓸하게 웃으며 떠나간다.
이후 만주로 폐기처분된 것이나 다름없어 좌절하고 있었던 남편을, 여기서 더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만주의 성군이 되도록 분기시킨다. 오히려 정치적인 면에서는 남편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중. 철저하게 백성들의 호감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라 민선투표 요구까지도 거리낌없이 받아들였기에 만주국을 흔들려던 외부의 시도들이 오히려 유연하게 흡수당하는 이상한 전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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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샤
어느 남작 가문 출신의 백계 러시아인 난민. 여기까지 쫓겨온 주제에 차르 신앙이나 모스크바 탈환 같은 소리를 떠드는 어른들을 마음 속으로 비웃고, 소소한 평온을 줄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좋다는, 만주국의 일반인 입장을 대변하는 포지션에 서 있다. 본인은 구호품을 얻으러 갔다가 은행원에 채용되어 간신히 일자리를 구했는지라 '이 얼기설기 세워진 아버지 조국이 하루라도 더 무탈하기'만을 기원하였으며, 그렇게 안정된 생활이 5년쯤 계속되자 점차 황인종 차르로 대변되는 만주국에 대한 애향심조차 갖게 되었다. 현재는 선양 정부와 미국의 중개 아래 북만주에 밀수품을 전달하는 명목상의 업무를 제안받는다. 위의 후유코와 비슷한 이유로 이 쪽도 아이돌 마스터의 아나스타샤가 모델이라는 독자들의 추측이 많다.
이후 이름이 똑같고 출신도 비슷하단 이유로 김겨울에게 스카웃되어 본의아니게 부여 방송협회에서 아나스타샤 황녀 행세를 하게 된다.[80] 문제는 본인은 사칭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가짜인 걸 알면서도[81]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바실리 블류헤르와 폴란드의 시미그위가 진짜 황녀라고 인증하고 일본[82]과 소련 혁명으로 휴지가 된 로마노프 왕가의 채권을 가진 자본가들도 로마노프 복위에 성공하면 손실을 메꿀 수 있다는 판단에 이러한 주작질에 힘을 실어주는 행보를 보인탓에 세계적으로도 진짜 아나스타샤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덕분에 본인도 설마 내가 진짜 황녀인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그런데 1940년. 예상 외의 반전이 발생하는데, 일본에서 친자검사를 해 본 결과[83], 표본이 손상되어 친자인지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하게 친족관계로 추측된다는 예상외의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84] 물론 아는 사람들은 전부 결과가 조작됐거나 로마노프 가의 사생아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는데, 아나스타샤가 황녀로서의 지위를 포기하는 인간선언과 동시에 소비에트 총선거를 제안하여 판을 아예 뒤집어버리게 된다. 문제는 아나스타샤 본인은 가시방석같은 자리에서 물러나 마음 편히 지내려고 질러놓았는데 소련 인민의 지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되어 버려서 마음 편히 살고싶다는 소망은 물 건너 가버린 것.[85] 결국 이로 인해 국민적인 인기에 등떠밀려 신생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당했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가서 러시아 제국의 황녀와 러시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연달아 앉히게 한 만악의 근원인 김겨울을 조용히 갈구고 마찬가지로 유명세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원하던 그녀를 유라시아 최고 가희로 선전해서 엄청난 인기인으로 만드는 식으로 보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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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만주국에서 조선공산당 당원들을 이끄는 장면으로 등장. 중국공산당의 선동을 진압하러 온 전차부대의 전차 위에 올라타 조선공산당은 노동환경도 개선하고 교육도 하고 있는데 중국공산당은 선동 말고 한게 뭐냐며 팩트폭력을 날린다. 결국 중국공산당이 계란을 던져대며 발악하자 전차부대에 진압을 맡기는데, 올라탔던 전차를 조종하는 부대장이 바로 막내동생 박정희였다.
5.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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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 맥도널드
노동당 출신의 수상. 일본 육군이 귀국하기 위해 영국 상선을 강탈하면서 영국인을 살해하는 대형 사고를 치자, 일본을 규탄하기로 한다. 그러나 내심 사실상 내전 상태에 접어든 일본과의 국가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한다. 프랑스 대통령 알베르 르브룅과 극동 문제에 대해 논의하며 "어차피 중국은 만주의 통제권도 잃어버렸고 만주는 중국의 고유영토도 아니니 만주를 독립시켜 날뛰는 일본놈들 진정시키고 소련놈들 내려오는 걸 막는 완충지대로 삼자"고 한다.
- 로버트 세실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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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 체임벌린
여기서는 뮌헨 협정을 맺을 일도 없으니 불명예스러운 퇴진은 피할 거라고 여겨졌지만, 결국 조선 자치정부의 공작으로 인해 식민지들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하자 현실과 같이 불명예 퇴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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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6세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조인하는 장면에서 등장. 쇼와 대역으로 인해 식민지들에서 무장투쟁 여론이 강해지고 미국이 환태평양 경제권을 확대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휘하 식민지들을 전부 자치령 형태로 독립시킨다는 어려운 결정 때문인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6. 소련
6.1. 소련 수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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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
조선인의 독립운동이 격화되고 일본군이 강경진압에 나면서 조선이 혼란에 빠지자 일본군을 방해하기 위해 홍범도를 위시로 한 좌익계 독립군을 한반도로 파견한다. 그리고 그 일본군이 독립군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면서 지금 일본 상태가 개판이라는 게 확실해지자 만주를 먹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 신음하는 만주 인민들의 해방'을 명분으로 만주 침공을 지시한다. 만주 침공 이후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 인민정부를 세우기로 하고 중국 영토 안에 새로운 국경선을 그어 동튀르키스탄과 내몽골, 만주를 중국에서 떼어낼 궁리를 한다. 다만 이 결과가 스탈린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가져오게 되는데...
서쪽에선 폴란드에게 형편없이 밀리는 와중에, 극동에서는 바실리와 트로츠키, 아냐스타샤 황녀라는 상상도 못할 기이한 조합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기세를 올려가자 폴란드와 대치하는 군인들을 불러서 닦달하다가 참다 못한 군부 동지들의 항의를 듣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군부탓만 해서 장성들이 스탈린을 끌어내릴 모의를 시작했고 이를 캐치한 베리야가 스탈린을 감금함으로써 사실상 권좌에서 쫒겨나버렸다. 후에 베리야의 혼잣말을 고려하면 감금한 뒤 입막음을 위해 암살당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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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렌티 베리야
스탈린에게 블류헤르의 내통에 대해 보고하면서 등장. 거리의 문제로 인해 블류헤르를 곧바로 숙청하기는 어려울거란 판단에 일단은 감시를 지속하라는 식으로 명령받지만, 이후 블류헤르가 대놓고 항명을 시작하자 긴급 체포를 시도하나 역시 거리의 문제로 인해 실패한다.
스탈린을 향한 군부의 불만이 심상치않음을 감지하고는 스탈린에게 알리기는커녕 역으로 먼저 스탈린을 잡아가두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혼자 폭주하는 베리야에 의해 소련 내부의 불만이 베리야에게 집중, 결국 편집증에 걸린 베리야는 정말로 자신을 구하러 온 부하들조차 믿지 못하고 전 서류 소각 후[87] 권총으로 집무실에서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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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주코프
근현대 소련 최고의 명장으로 꼽힐 인물. 이르쿠츠쿠 시에 주둔한 극동 관할군 사령관. 제4 인터내셔널과 SSR, 만주국이 공세로 전환한다면 가장 먼저 노려올 곳이 이르쿠츠쿠임을 알기에 모스크바의 부진한 지원에도 나름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상상을 능가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전쟁준비 속도에 당황해 정찰을 해본 결과, 이상할 정도로 열정에 가득찬 백계 러시아인들의 모습을 목격하고,[88] 극동 관할군은 자원뿐만이 아니라, 사기에서도 한참 밀리는 것 같다는 불길함을 느꼈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이루어져 '성 패튼 기사단'과 만주군의 공세에 결국 이르쿠츠쿠에서 패전하여 포로로 잡힌다. 포로 수용소에서 옛 부관의 로마노바 황녀 찬양과 콜라의 변명을 듣다가 포로들도 이미 민심이 황녀측으로 기운다는 걸 알고는 홧김에 콜라를 마시고 그 맛을 알게되고, 옛 병사들의 얼굴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바로 전향한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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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백계 러시아군과의 협상장에 소련측 대표로 등장하였는데 백계 러시아측 대표로 주코프가 나온데다가, 주코프가 열변을 토하며 자신들과 협력하여 스탈린을 제거하고 순수했던 시절의 소비에트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걸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여기고 있다. 이때 주코프가 콜라병을 들고 틈만 나면 들이켜대는 모습을 보고 미국놈들이 저 음료에 약을 탔다고 오해하고 언젠가 그를 반드시 구해내겠다고 다짐하는 중.[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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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묜 부됸니
소련군 원수. 패튼의 부대가 단독으로 우랄산맥을 넘어왔다는 소식을 듣자 미친놈이라는 칭찬(?)과 함께 아주 기뻐하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직접 출진하였다.[91] 원거리에서 확성기를 통해 패튼과 직접 대화하며 상마초 스타일의 패튼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였고,[92] 지는 쪽이 술을 대접하기로 내기까지 걸은 상태. 전투가 시작되자 패튼과 칼싸움을 벌였는데 너무나도 즐거워서 도우러 온 아군에게 위협사격을 가해 쫒아내버릴 정도로 즐기고있었다. 나중에 패튼과 정말로 술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는데, 베리야에게 스탈린이 죽은걸 알고 분노하다 친구의 복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패튼의 설득에 넘어가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 원수라는 직책에 걸맞게 연설 한번만으로 패튼조차 공군 지원이 필요하겠다고 여긴 난공불락의 모스크바를 무혈로 입성한다. 베리야 사후에는 패튼과 나뉘어 폴란드 침략군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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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칼리닌
반 베리야 혁명을 주도하는 것으로 등장.
6.2. 극동관구 및 제4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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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블류헤르
만주 침공의 총지휘를 맡은 극동군관구 사령관. 만주 침공 후 사실상 소련의 꼭두각시 역할을 맡을 중화소비에트공화국 대표단과 함께 독립군을 비롯해 만주에 존재하는 여러 무장세력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자신들의 만주 침공 목적을 설명하고 소련군의 지시에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만주 인민의 해방을 위해 만주에 진주했다는 사탕 발린 소리와는 다르게 그 만주 인민에게서 엄청난 양의 식량을 약탈해간다. 정황상 그 식량들은 우크라이나로 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참 후에 재등장. 본인의 영지인 극동을 망가뜨리기 싫어서 관동군이 빠지는 중인 만주를 침공하지 않고 있다. 속내야 어쩄든 모스크바의 강령과 바실리 본인의 경력 덕에 부하들도 아무 말도 못하는 중. 심지어 만주 내의 한국군과 내통하며 함부로 공세를 취하는 이들을 함정에 빠뜨려서 희생시킬 생각이다.
그러다 스탈린이 기어이 자신을 숙청하려는 것을 알자 극동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결국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며 한국, 만주와 내통해 한때 솔빈부라 불렸던 우수리스크에 제4 인터내셔널 '고려 민주 공화국'을 세운다. 이전에도 크렘린에서 편지가 왔다는 말만 들어도 비명을 지르며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고, 다른 인물들에게 봉건주의 영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보신주의적이었는데, 스탈린이 빼도박도 못할 수단으로 자길 숙청하려 하자 기어이 반기를 든 것. 트로츠키를 대표로 내걸었지만, 최근 모스크바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내세운 가짜 황녀가 보여주는 의외의 능력에[93] 진짜 한번 그 쪽에 붙어볼까도 생각하고 있으며, 아나스타샤의 인간선언이 가져올 후폭풍을 계산하고 극찬하면서 그녀를 밀어주기로 결정하였다.
볼셰비키 중에서는 가장 경제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인물로 나온다. 조선에서부터 시작된 빚잔치에 자신들마저 엮이게 되자 오히려 이것을 기회라 여기며 고려 공화국을 세운 것도 조선과의 합작을 제안하기 위한 밑밥이자 경제 특구를 만들려는 의도였다. 거기에 흰 고양이건 검은 고양이건 쥐 잘잡는 게 좋은 고양이라는 말까지 하는 등, 등소평이 떠오르는 방식으로 경제를 부흥시키려 한다. 작중에서도 볼셰비키 맞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 물론 레닌때부터 활약한 성골 볼셰비키 짬밥이 어디 간건 아니라서, 고려 공화국 건립을 반대하는 트로츠키에게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스탈린 정권이야말로 러시아 민족주의에 기반한 파시즘이라고 주장하며 그 트로츠키가 기립 박수를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작중 인물들의 평가는 탐욕스러운 것은 맞지만 탐욕스럽기에 이념 때문에 통수 칠 인간은 아니라고. 마침 조선 자치령도 미국 자본을 통한 공급은 차고 넘치지만 인프라 부족 등의 이유로 수요가 부족했던 차였던지라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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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트로츠키
블류헤르가 스탈린에게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협조를 받아 극동관구로 초빙되어 온다. 이후 극동관구에서 제4인터내셔널을 확장하게 되며, 조선 공산당은 만장일치로 제4인터내셔널의 휘하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 실세는 조선 공산당과 바실리 블류헤르이며 트로츠키는 얼굴마담, 오히려 마담급도 못되는 홍보문구에 불과했다. 트로츠키 본인은 그 명성을 이용해 정당성을 얻었을 뿐 본래부터의 거만한 인격적인 결함 덕에 점차 몰리고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러다 아나스타샤가 기대 이상의 선전 능력을 보이자 더이상 얼굴마담으로 필요없다 생각한 블류헤르가 간병을 핑계로 구금하면서 등장은 종료. 성질머리도 문제였지만 아나스타샤를 비롯한 로마노프 일가의 몰살을 강하게 주장했던 인물인지라 공존이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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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천
블류헤르가 스탈린에게 반기를 들면서 풀려나 연해주 일대에 명목상 세운 고려 SSR의 주석이 된다.
6.3. 친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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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독립군 내의 입지에서 실력과 인격이 받쳐주는 홍범도를 이기기 어려워지자 소련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김일성과 함께 홍범도를 암살할 모의를 꾸민다. 이후 임시정부가 일본과 대타협을 벌이자 이를 규탄하는 척 하며 동시에 홍범도까지 규탄하려고 했다가,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증거를 이미 다 챙긴 홍범도가 김일성을 끌어내서 들이민 뒤 자신의 당원증을 박헌영 얼굴에 내던졌다. 그 후의 행보는 나오지 않지만, 홍범도를 따라서 실전병력이 죄다 나가버리고 자신의 추종자들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나와 앞길이 어둡다. 그 후 자치정부 내에서 활동하며 조선을 적화시키라는 소련의 지령을 받아 국내에서 친일파들과 반공주의자들, 제국주의자들을 한패로 매도하는 선동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백범이 자신들의 당명을 '유인당'이라고 하면서 급진성으로는 끝판왕급 이름을 꺼내드는 바람에 이걸 어떻게 급진성으로 이겨야 하냐며 황당해하다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94] 이후 선거에서 사실상 공산당 텃밭이라 할 수 있는 함경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참패하자 본래는 바꿔치기용으로 준비했던 선거함을 이용해 부정선거로인한 선거무효를 계획한다.[95] 그런데 정작 유인당의 당수인 백범이 집정으로 안창호를 추대한다는, 그걸 상회하는 대형 폭탄을 개표식 도중에 터트리면서 부정투표 프레임은 씌우기도 전에 파탄났다. 이후 공산당에서 현준혁과 여운형에 의해 영향력을 잃고 축출당한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으로 매달렸던 코민테른에게도 버림받고 곧 자신을 찾아온 홍범도에게 자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중앙수사본부장이 된 김구가 민대식을 비롯한 조선귀족들의 자민당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서 치안유지법을 적용해 잡아들이는데 이용되었으며,[96] 이후 그들이 서대문형무소에서 한창 고문당할 때 김구는 엄항섭과 잡담을 나누던 중 박헌영에 대해 "물론 그 놈은 죽어도 쌌다."라고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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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일본군에게 정보를 누설하여 일본군이 홍범도를 죽이게 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지나가던 일본인 포로를 풀어주고 홍범도 위치에 대한 떡밥을 쥐어줘서 홍범도를 어떻게든 일본군 손에 죽이려고 발악한다. 하지만 정작 그 일본인 포로가 이미 독립군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는 데다가 정치만렙의 무타구치 렌야였기에 역으로 뒤를 밟힌다. 결국 무타구치 렌야의 현장 고발을 통해 이 공작이 들통나게 되는데 이를 무타구치와 함께 본 독립군 간부 왈…
어쩌긴, 불알을 으깨서 모든 걸 고백하게 만들어야지.
적어도 불알만 으깰 리 없다는 것은 안다는 렌야의 생각을 고려하면 처절하게 고문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코민테른에서 독립군을 토사구팽할 계획이라면서 자기가 확인한 것도 아닌 사실까지 마구 털어놓으면서 목숨을 구걸하다가 홍범도에게 걷어차여서 고자가 되어 일명 백두혈통은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97] 이 녀석의 과장 아닌 과장 탓에 홍범도의 독립군이 코민테른의 통제에서 점차 벗어날 것이 암시된 것은 덤. 실제로 홍범도가 자신의 당원증을 박헌영 얼굴에 던지는 장면이 나왔기에 사실상 코민테른과 결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서 온갖 심문을 받아 초췌해진 모습으로 한 장면 나온다.
이후 홍범도가 박헌영을 찾아와 그를 죽이기 전, 박헌영에게 "김일성을 김구에게 넘겨 줬다."라고 말해준다. 중앙수사본부로 바뀐 서대문형무소에서 심문을 받다가 김구가 찾아오는데, 살기 위해 비굴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 확심함에도, 보복성 한풀이로 극심한 고문을 당한 것인지 다리도 크게 망가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김구는 그가 변변한 학식도 없고[98] 성불구에다 몸도 망가진 장애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고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가망도 없다고 판단하여 "이왕 새 삶을 얻었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예쁜 아내도 만나고 아이도 낳아다 둘이서 잘 기르며 행복하게 살라." 라는 격려를 가장한 조롱과 함께 풀어주었다. 아마 죽느니만 못한 구차한 삶을 살거나 오래지 않아 제 손으로 목숨을 끊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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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즈벨트
이승만을 앞세워 자기 입맛에 맞는 연설을 시키는 것으로 첫등장. 원 역사대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안창호와의 회담에서 이승만을 반공식 주미 한국대사로 낙점지어서 자신과 한국정부의 통로로 삼는다. 조선 정부와 연을 맺으면서도 "이성적인 일본인들이라면 미국과 마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리고 안창호가 만철과 동척과의 합작을 추진하자 보고를 들으면서도 이게 만우절 농담은 아니겠지라며 웃다가,[99] 조선에서 대놓고 일본에 빨대는커녕 10만 당원의 컨트롤러를 심어둔 것을 알고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경제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에 월가의 자본가들과 도쿄만 각을 잡는다.[100]
"공존은 무슨."
집안 살림을 홀라당 털어가는 게 언제부터 공존이었지?
만약 이들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오히려 집주인이 제발 독립해달라고 빌어야 할 판인데
그러면서도 이대로 가면 일본이 조선에 독립을 요구할 거라고 중얼거렸는데, 레이와 잇키에서 일본 독립 만세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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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해먼드
미국 제계를 대표하는 가공인물.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파견되어 처음에는 FDR이 머나먼 조선에 파견했다고 궁시렁댔으나, 안창호가 그 사이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지부를 접수하여 그 거대 기업인 동척과 합작은행을 설립해 빨대를 깊숙히 꽂을 수 있게 해 주자 좋아 미쳐 날뛰었다. 그런데 안창호가 그 이후 아예 만철에도 빨대를 꼽자고 제의하자 이제는 상상을 넘은 상황에 황당해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속으로 기뻐 날뛴다. 후에 일본이 조선을 독립시키려고 하자 그래도 미국의 입장은 조선과 동군연합인 만주국의 만주왕을 봉신한 일본에게 지불 의무가 있다고 해석했다라면서 자본가들을 안심시킨다. 미국에서 로버트의 위상은 환태평양 연방준비제도를 거의 완성시킨 서부의 패왕이지만, 본인은 자신의 능력이 행운을 잘 거머쥐는 것 뿐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루스벨트에게 부탁, 이 완성 직전의 환태평양 연방준비제도를 미국 연방정부에게 넘겨서 미국이 흐름에 관여하도록 만들고 조선만 건들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은퇴를 선언한다. 본인은 자본가들이 날뛰는 미국에서 벗어나 아직 경제흐름이 초짜나 다름없는 초보자 지역(조선)에서 놀겠다는 의도이며, 루스벨트도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아 사생결단을 내기보다는 모든걸 내주고 명예로운 은퇴를 해주겠다는 것에 해당 의도를 모른 척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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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보너스 군대 사건으로 필리핀으로 쫒겨나고, 그 필리핀도 미일 관계의 변화로 인해 한직이 되자 술에 찌든 홀아비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자치정부의 초청을 받아서 전차의 도입 및 운용을 위해 조선에 온다. 조선경비대 군사고문직을 담당하게 되자, 현재 아시아의 최고 분쟁지인 만주에서 재기할 수 있다는 야망에 불타 의욕적으로 나서지만 요청받은 것은 퇴역군인을 전차로 밀어버리기. 보너스 군대 사건이 어지간히 강렬했는지, 홍군이건 마적이건 할 거 없이 만주에 그 미친 살인마가 나타났다며 공포에 떨며 설레발을 치는 게 압권.
선양 외 지역은 군벌들이 난립하며 이범석과 부여민족청년단도 협조적이지 않은 현실에 남미나 중동 이상 개판이라고 좌절했지만[101] 그 와중에도 정치군인으로서의 경력이 어디 가지 않은건지, 먼로 독트린을 해석을 바꿔 미국이 고립주의를 택한 당시와 사정이 다르니 먼로 독트린 역시 국가가 고립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미국인을 건드리면 혼쭐을 내줘야 한다라는 해석으로 선전한다. 하지만 이를 들은 기자가 맥아더를 기독교 정신에 투철한 십자군의 기수로 쓰기에는 이미 전적이 강렬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패튼을 중용한게 맥아더였지?라는 발상과 함께 맥아더가 범생이 같은 성격이지만 실은 속에 패튼과 동급의 똘끼를 품고 있는 아메리카 마피아 같은 성격이다. 라는 왜곡(?)이 섞인 기사를 내게 되면서[102][103] 전 미국에서 미국의 영역을 건드리는 소련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적대심이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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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
맥아더가 이끄는 만주의 상황을 신문으로 보고는 바로 비행기로 만주로 날아온다. 심지어 이는 정식 발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휴가를 내고 바로 비행기를 잡아 날아온 것.[104] 맥아더는 이에 뒷목을 짚었다. 하지만 패튼이 만주에 올 때 일본을 거치게 되면서 만난 주일 미국 공사가 패튼에게 서류 한장 넘겨주고 보내준 것을 보면 미국 정계에서 패튼을 잠시 만주로 치워버릴 생각이라는 걸[105] 깨달은 맥아더는 그냥 만주의 골치거리 군벌들을 패튼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만주에서 매드 맥스를 찍으며 자기 적성을 찾은 마냥 행복하게 마적들을 썰고 다니기 시작한다.[106] 작중에서도 패튼에게는 지상낙원 발할라가 따로 없었다고 언급되며, 만주의 병사들 입장에서도 삼국지연의에서 튀어나온 장비나 다름없었다면서 서로에게 윈-윈 관계나 다름없는 기상천외한 공존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사실이 기사를 통해서 미국에 알려지며, 미국 전토의 카우보이 지망생들이 모여드는데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고. 만주 활동이 본격화된 후에는 복장도 만주식 가죽옷을 입고 다닌다고 언급되었다. 거기에 가뜩이나 정신이 아득해지는 중이었는데 해병문학까지 끼얹어 지면서 더욱 괴상한 맛을 내게 된 건 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107], 하고 싶어서 시작한 종횡무진 패튼 성기사단의 활약은 어찌어찌 맥아더와의 합동작전으로 변질되어 중화 소비에트군의 대붕괴라는 성과를 내게 된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점령지역에 남아있을 빨갱이들을 색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르크스, 레닌 개XX 해봐를 시전했다. 참고로 그것도 그냥 시키는 것도 아니고 차량 뒤에 묶어서 끌고 다닌다는 모양. 당연히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뒷목을 잡았다. 그런데 점령군이 물건을 강탈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108] 민심을 사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맥아더는 도대체 이 땅은 뭔 꼬라지였냐며 제정신을 잃고 만다.[109]
맥아더와 아냐스타샤의 만남 장소에 숨어있기라도 했는지, 아냐스타샤가 굳은 의지와 결심 끝에 스스로 미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녀를 극찬하고 명목상 통수권자가 없는 민병대장이라면서 얼굴을 비춘다. 게다가 맥아더도 패튼의 난입에 지금 패튼이 사실상 통수권자 없는 민병대장인지라 어디에 지원을 가도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고, 미국은 아나스타샤를 지원하지 않는다라는 핑계도 댈 수 있으며, 동시에 지원하는 거나 다름 없는 선을 타는데 최적화된 인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다만 그 이후의 행적을 보면 자기 차에 황녀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고 있는 모양.
통역 겸 부관이 하나 있는데 패튼 성기사단[110] 일원 중에 유일한 정상인이라 패튼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지만 본능을 따라 들이대는 똘끼 가득한 지휘관과 부하들을 보고 고통받고 있는 중. 특히 패튼과 부됸니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에서 칼싸움을 벌이면서 주고받는 상남자의 대화를 옆에서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생고생을 치렀다.[111]
통수권자 없는 민병대라 정말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다. 만주에서는 마적들과 중국 적군을 상대했고, 우랄산맥을 넘어 부됸니의 군대와 싸우고, 부됸니와 친구가 되고나선 모스크바까지 갔다가 나중엔 폴란드 군대와도 싸웠다.
8. 중화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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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이봉창 의사의 의거후 복수 대상을 찾던 일본이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자 억울해 한다. 자기들 영토인 만주에서 관동군과 소련군이 싸우고 있는데도 노골적으로 일본 편만 들어주며 만주에서 손 떼라는 영국에 앙심을 품고 독일에 접근하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백범이 미래의 자신이 가르쳐준 접선장소와 암구호를 이용하여 청방을 통해 장제스에게 서신을 전하자, 장제스는 조선의 앞날을 이끌 유망주가 친중인사라고 생각,[112] 위(僞)만주국을 중국에서 공산당을 내쫓는 그 잠깐동안 조선인들에게 맡겨 조선인들이 헛된 꿈을 꾸는 정도는 봐주려고 한다. 그런데 조사를 해 보니 백범이 청방과 연이 아예 없다보니 방첩이 뚫렸다고 판정 내리는데, 그런 상황에서 백범이 실리주의자라면 지금의 행보가 전부 이해가 된다면서 중화민국이 일본을 넘으면 바로 중화민국의 손을 잡을 거라고 예측하고는 살생부에서 백범의 이름을 완전히 지운다.
이후 괴링 집권으로 인해 나치 독일과의 동맹마저 파기되고 조선과 만주, 일본, 국적법을 우회한 중국 재계에 의해서 수십년치 국가예산에 달하는 수천억불의 빚을 중화민국이 떠맡게 될 판이 되자 백범을 찾는데, 백범이 보낸 아리송한 말인 국제연맹의 앵글로색슨이라는 힌트를 토대로[113] 영국에게 폭탄을 떠넘기려고 준비중이다. 다만 이 와중에 왜 조선이 조용한가 의문을 가지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설마 조선이 그 모든 빚의 근원일거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 작중 나레이션에서는 다음과 같은 드립을 섞어 설명했다.
상식적으로 일본이 중국을 옭아매고자 만주를 이용해 채권으로 장난을 친 거라고 생각하지, 조선에서 서로 짜고 모든 굴레(※채무)와 속박(※보증)을 벗어 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났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테니까.
회귀전에는
훙커우 공원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에 여러 도움을 주며 꽌시를 쌓았지만, 역사가 바뀌면서 그런 관계가 아니게 되었던지라 김구가 장제스의 폭주를 보며 착잡해한다. 최악의 경우가 되면 구명운동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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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쉐량
원 역사대로 아편중독자. 작중 인물들이 입을 모아 아버지 장쭤린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본인도 이러한 평가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관동군이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희망회로를 불태우면서 군을 움직이지만,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다음과 같은 한 줄로 정리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아편에 취한 채 생각해 낸 전략이 제대로 된 전략일 리가 만무했다는 사실 뿐이었다.[114]
그리고 결국 원역사보다는 선전해서 관동군을 일시적으로 장춘까지 밀어 붙이는데 성공하지만 끝내 패배하여 요서로 도주한다. 나중에 만주국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미국발 물자가 서민들에게까지 퍼지며 풍족한 것을 보고는 눈이 돌아가서 약에 찌든 몸으로 채찍질을 하며 죽이고 시체를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러 마적 세력들의 반항심만 더 키우며 고전하는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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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리
국민정부의 정보기관인 조사통계국 과장이자 장제스의 심복. 원 역사처럼 장제스가 명하면 바로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장제스에 광적인 충성심을 보인다. 장제스와의 독대에서 김구가 조사통계국의 비밀연락망인 청방을 통해 장제스 앞으로 서신을 전했음을 보고한다. 후에 일본이 만주/조선에 얽힌 빚을 중국에도 전가하기 위해 만주의 주인이 중국임을 인정하는 협상을 할 때, 빚의 액수를 보고 말도 안 된다고 여겨 조사를 해 보니, 중국 재계가 조선-만주가 뚫어놓은 일본 국적법의 헛점을 통해서 우회, 미국에서 돈을 빌렸다는 결과를 얻어내게 된다.[115] 당연히 재정경제부에서는 다이리와 외교부를 죽여버린다고 악을 쓰는 중이다.[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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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음
만주국 연길도 시골마을의 소녀.
무지막지한 수량의 트럭들이 땅에 아스팔트를 쏟아부어 도로를 만드는 것을 바라보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인지 경악하는 것으로 등장했다.
9. 중화소비에트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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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만주 하얼빈에서 공산당 비적의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언급으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근거지를 중국 대륙에서 만주로 옮기려 하고 있음이 언급된다.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아 만주를 공격하지만, 전차를 타고 공산당을 잡으러 온 패튼의 돌+I같은 행동과 블류헤르의 배신때문에 역으로 중국 공산당이 궤멸당하며[117] 밑천을 잃고 중국으로 도망친다.
10.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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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폴란드 침공 전까지는 원 역사대로의 행보를 보이며, 조선이 유대인들을 데려가는 것에 신경질을 부리고 아예 조선이 단 지파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여 유대-조선이라고 부른다.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조약 적용을 확대하기로 하자 이전부터 영국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의가 있던 히틀러가 제국이 저무는 것에 비애감을 느끼며 폴란드 침공을 미뤘는데, 이때 검은 오케스트라의 암살 모의가 더 일찍 진행되어[118] 1939년 9월 20일 검은 오케스트라에 의해 히로히토와 같은 수법으로 폭사당한다. 역설적으로 2차 대전을 일으키지도 못한 체 안슐루스와 베르사유 조약 파기로 영토 확장과 군비 증강만 성공하고 사망한지라 작중에서는 박수칠 때 쫓겨난 불세출의 외교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홀로코스트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훗날에도 당시 유럽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자 정도로 평가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를 해치지 않아서인지 수카르노도 뮌헨 맥주홀 폭동을 따라한 집회를 가졌다. - 사실 세세히 따지자면 히틀러가 2차 대전 이전에 시작한 악행에는 T4 작전도 있지만, 당시 미국을 포함한 열강들도 비슷한 종류의 우생학 정책을 펴던 시기라 물타기가 가능하다. 오히려 T4 작전이 당시 미국의 우생학 정책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를 변호한 몇몇 나치 전범들이 사형을 면하기 직전에 이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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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괴링
히틀러 암살 사건 후 독일국 법령에 의거하여 히틀러의 뒤를 이은 퓌러 겸 국가수상의 자리에 오른다.[119] 원 역사처럼 모르핀 중독자 신세였으나, 히틀러 암살 사건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느껴서 정신 차리고 약을 끊었다.[120] 한편 다른 나치당 인사들 사이에서는 인망이 없어서 괴벨스[121]와 SS는 둘 다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내심 그나마 인성만은 좋던 헤스를 약간 더 지지하는 상황.
그러나 권좌에 오른 후에는 엄청나게 유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122] 히틀러 폭사 이후 헤스와의 만남에서도 헤스가 경계했던 것과 달리 관료들을 불러서 무리한 군비 확장으로 독일 경제가 파산 직전인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를 통해 폴란드를 침공하는 대신 협상을 제안하고, 소련 극동관구에 트로츠키가 돌아왔다는 영국이 넘겨준 정보를 흘려서 소련의 내란을 틈타 소련 서부를 노리라고 충동하는 대신 단치히를 돌려받고 군수물자를 수출해서 독일 경제를 회복시킨다. 그 후 소련의 내란이 끝나고 폴란드가 위기에 처하자 버리면서, 고토를 수복하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무리한 침략전쟁을 일으킨 폴란드를 경제적,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아넣는 놀라운 외교적 승리를 거둔다. 경제 회복 이후 지지도도 올라갔고, 1차 대전 영웅이라는 타이틀로 군부를 찍어눌러서 군축을 감행하며, 만주국과 접촉해서 유대인들을 전부 보내주기로 약속하는 등 원 역사와 비할 바 없이 건실하게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후 영국과 동맹을 맺고, 식민지에서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도움을 요청 받자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서 거부하는 등 독자들에게 괴스마르크라고 불리고 있다. 거기에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단순히 열강을 약화시키고 전쟁 특수를 노리는 것 이상을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백인의 의무 같은 기만으로 식민지 착취에만 의존하다 미국의 경제 압박에 몰락할바엔 제국주의를 때려치우고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이 하나로 뭉쳐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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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괴링
주중독일대사로 등장. 나치즘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건 현실과 똑같지만, 형 헤르만 괴링이 유태인 정책을 만주국 이주 지원으로 전환하자 조금만 고생하면 독일이 정상화 될 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식으로 합리화한다. 장제스에게 인도차이나 반도 해방을 도와줄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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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헤스
히틀러 암살사건 후 히틀러의 뒤를 이은 나치당 퓌러[123]의 자리에 오른다. 여담으로 헤스 게이설을 채택했는지 헤스 시점에서 히틀러를 사랑해 마지않는 반쪽이라고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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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요제프 괴벨스
히틀러의 사망 직후 큰 충격에 빠지지만, 선동가 기질은 어디 안 가는지 곧바로 히틀러의 죽음을 예수의 십자가형에 비유하며 치켜세운다. 한편 새 지도자들인 괴링과 헤스를 각각 모르핀 돼지, 허수아비로 부르며 둘 다 못미더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괴링의 권력이 반석에 오른 뒤에도 삐딱한 태도를 보일 정도. 다만 사적인 불호와는 별개로, 국가를 위해서든 당을 위해서든 괴링이든 괴벨스 둘 다 서로가 필요한 사이였기에 사무적이다못해 적대적인 협력관계를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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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힘러
히틀러 암살 사건 직후 괴벨스의 병문안을 오면서 등장. 히틀러를 경호해야 했던 SS가 암살을 막는 데 실패하여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언급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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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독일의 전 외무장관. 괴링의 부름을 받고 외교업무로 복귀하고 폴란드와의 협상을 성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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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카이텔
암살사건 직후 내부 정리를 위해 각 군부대에게 충성 맹세를 받고 있다고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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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폰 디르크젠
원역사에선 트라우트만 공작에 참여했던 주일 독일대사. 히틀러의 지시로 일본 외무대신 마치다 츠지에게 방공동맹을 제안하나 서로 외교적 모욕[124]만 퍼붓고는 결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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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베리야가 독일로의 망명을 위해 이전에 만들어 놓은 커넥션으로 접촉하지만, 약속했던것과 달리 베리야를 손절하고는 조롱하며 무시한다.
11.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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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치 모시치츠키
폴란드 대통령.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사후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인해 연정 중인 국방총감 에드바르트가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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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리츠시미그위
폴란드의 국방총감이자 권력 실세. 독일과의 거래로 시작된 소련과의 전쟁을 총괄하고 있다. 독일에게 단치히를 돌려주는 대신 군수물자를 수입하며 독일과의 관계가 완화되었고, 소련은 블류헤르가 일으킨 제4인터네셔널의 반란에 대응하느라 서부전선의 대응이 부실해져 전쟁에서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소련군이 지나치게 허접해서 싸웠다하면 이기기만 하니 폴란드군의 사기는 드세져만 가는데 정작 폴란드군의 체급으로는 더 진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이걸 어째야하나 골치아파하던 중, 아나스타샤 황녀가 살아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짜인 걸 알면서도 백계 러시아를 단결시켜 소련을 압박하고 공세종말점에 처한 폴란드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짜 황녀가 맞다고 인증해줬다.[125] 외교관들을 보내서 아냐스타샤에게 자신들에게 붙으라고 제안하는데 황녀를 명분으로 잡아 점령지의 치안을 안정시킬 계획이었지만 아냐스타샤는 돈을 노리는 외세와 국토를 노리는 외세가 같을 수가 있냐며 뼈를 찌르는 답변으로 거절한다. 그리고 외교관들은 총감의 분노가 두려워서 억양이 어눌해서 말이 안 통하네요라고 변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폴란드가 예상 이상으로 선전하자 독일군이 협약을 깨고 폴란드를 견제하기 위해 발트를 영향권에 두고 개입을 시작했다. 독일이 손을 내민 것이 아니고, 발트가 원해서 그랬다는 핑계는 덤. 옆구리가 훤히 뚫린 폴란드는 자신들보다 체급인 큰 양국을 대상으로 양면전선을 편다는 건 자살행위이므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모스크바를 한달 내로 따라는 명령을 내렸고, 덕분에 점령지에서도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12.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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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와할랄 네루
웨스트민스터 헌장 조인 이후 등장. 헌장에 대해 의심하면서도 종교,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인도 내부 정국을 보고서는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1]
현실에선 덴마크령
그린란드가 이 정도 수준의 자치를 누리고 있다.
[2]
실제로 영국이라는 '식민제국'이 분리세력인 임시정부의 편을 들어준다는 상황이었던지라 영국의 심기를 거스르기 힘든 상황상 어차피 독립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다가는 대영제국의 각지에서 분리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
[3]
그리고 이 독소조항은 후에 레이와 덴노가 되는 노부히토가 조선과 만주를 말장난을 이용하여 강제 독립시키는데 아주 알차게 써먹히려고 했다.
[4]
얼마나 뻔뻔했는지, 공정한 제3의 공증인이라는 핑계로 일본을 압박하고 있는 영국측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얼굴을 굳혔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게 군권도 안 되고 대권(자치권)도 안 된다고 뭐든 안 된다고 하니 도대체 협상을 하러 나온 건지 생때를 쓰러 나온건지 구분할 수 없었을 정도였기 때문.
[5]
백범이 워낙 골수 반공주의자로 유명했던지라, 일본에서도 그들이 좌우합작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일로 따지던 일본에서도 홍범도가 와서 자치정부가 손을 쓰지 못한다는 백범의 말 한마디에 어쩔 수 없어서 저런거라고 납득했을 정도.
[6]
아예 대놓고 예상한 이유가 '
우남이라면
이 때 어떻게 했을까'라고 추리한 결과였다.
[7]
요약하자면
일본을 보증인으로 내세우고 미국산 신용카드를 무제한으로 긁어서 자본을 한가득 채워서 인프라를 복구하고, 산업시설을 유치하는 등 국력신장에 투자하는 것. 채권자인 미국 측 금융 거물들도 조선이 현실적으로 빚 갚을 능력이 없다는 거 뻔히 알지만 보증인인 일본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킨다는 엄청난 메리트 때문에 조선이 카드를 긁도록 내버려두며 무제한적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8]
좌우막론하고 어느누구도 집정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을 정도다. 이 때문에 현재의 거국내각에서 안창호의 사임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일이라고 한다.
[9]
사실상 지역별로 우세한 정당이 다르기에, 자치령 조선은 연방이나 다름없는 상태임.
[10]
정작 윤봉길 본인은 김구가 보낸 밀서를 보고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해 "일본 내 좌익계열단체가 이번 일에 협력하고 있다"는 '상식적인' 결론을 내린다.
[11]
원역사에서
미군정이 창설한 조선국방경비대는
삼팔선 이북의
소련군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명목상 정규군이 아닌
경찰예비대였을 뿐 사실상의 삼팔선 이남 지역의 군대 역할이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대로 정규군인
대한민국 국군으로 발전했다.
[12]
진짜 간첩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소련이 만주를 침공한 상황에서 일본에서 파병을 요청했는데도 자랑스러운 신민이라면서 몸을 사리며 불로소득만 얻고 있는 친일파 놈들을 때려잡으라는 것.
[13]
작중 현대전은 총력전이다→단순히 군인만이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땀흘려 일하는 것부터가 전쟁에 한몫 거드는 것→나라가 총력을 다하는 와중에 일을 하지 않는다?→네놈 소련의 간첩이구나!라는 기적의 논리가 나온다. 애초에 작중 시점에서 조선은 친일파라도 차별대우를 받아가면서 등골빠지게 일하는 상황이기에 직업 없이 불로소득을 누리고 있는 자들은 매국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고위급 친일파들 밖에 없다. 일본과 타협하는 바람에 '친일파 조지기'를 대놓고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친일파를 조지기 위해 꺼낸 논리.
[14]
거처를 방문한 백범이 이러다가 암살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걱정할 정도.
[15]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이다. 더 슬픈 사실은 합의를 한 두 사람이 이걸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거다. 둘 다 어차피 원래 있는 연결망을 계속 쓰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합의를 한 것이었는데 사실상 주미대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16]
조선이 외교권 없는 자치령 상태라 공식 외교관은 아니다.
[17]
또한 이범석과 그가 다 빠져버리면 만주 내의 한국 군사력은 사실상 붕괴한다. 관동군도 상황이 여의치않아서 한국군이 빠지면 전선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사실상 지청천과 이범석의 한국군이 없으면 만주 전체는 소련군의 공비들에게 점령달할 것이 분명.
[18]
자신의 호인 매헌을 가명으로 썼다.
[19]
만주로 도주한 친일파들은 영친왕의 보호 아래 있었으므로 임정이 더이상 건들수 없었지만 임정에 속하지 않고 독자활동을 지속하던 김원봉은 만주의 친일파들을 처단해도 뒷탈이 없기에 김원봉이 만주의 친일파들을 상대로 의거를 벌이도록 유도한 것.
[20]
공산당 동지들과 계획을 논하면서도 단 한 번도 '혁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당시 공산당에게 혁명은 필수적인 단어임에도.
[21]
이때 대표적 친일파 승려인 퇴경 권상로가 동자승까지 무적 황군 100만 총칼 앞에 세울 생각이냐고 하자 그 100만 왜군의 총칼만 보이고 삼천만 조선민족의 울분이 들리지 않으면 그게 귀머거리가 아니면 뭐겠냐고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인다.
[22]
순경들은 한반도 전역의 만세시위를 탄압하러 가서 손이 부족하고, 헌병들은 함경도 일대의 빨치산을 막으러 가서 손이 부족한 상태였다.
[23]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걸린
조선총독부 청사로 안내하는데 시민군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역시 무리였는지 업무에 필요한 물건들은 제외하고 청사 안의 값비싼 물건들은 모조리 시민군이 털어갔다고.
[24]
조선 총독부는 친일파들의 불법행위을 묵인해주는 댓가로 그들의 친일활동을 목줄 삼아 통제하고 있었다. 즉, 여운형은 이런 불법행위를 명분으로 재산을 모조리 압류할 생각이며 그럼에도 말 안 듣는 자들에게 김구가
성의를 보여도 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25]
본디 임시정부의 요인이나 체포 후 국내로 압송되어 옥고를 치렀으므로 국내 독립운동가 항목에 서술.
[26]
일본 본토보다 식량사정이 양호한 조선의 상황을 드러내는 요소일 수도 있다.
[27]
1930년대 당시
일본인 여학생은 고등여학교,
조선인 여학생은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일본인인 후유코가 경성여자고보에 다닌 것은 설정오류에 가깝다.
[28]
그래도 배급 자체는 처음이었고 여자아이 혼자 살고 있다는 말에 측은함을 느낀 배급관이 다음에는 친구라도 데려오라고 하면서 그냥 줬다.
[29]
조선 때문에 쌀값이 올랐다고 덮어 씌우려고 했으나, 앵커가 하필 '밥이 없으면 고로케를 먹으면 된다' 드립을 쳐버렸고, 덕분에 분위기가 을씨년해졌다. 곡물가가 올랐는데 그런 곡물에서 추출하는 기름이나 밀가루라고 값이 낮을 리 없기 때문.
[30]
원문에서는 그냥 "...엄마."라고 나왔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후유코의 찰진 욕설도 그렇고 작가의 오덕 성향도 고려하면 단순한 비명이 아니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마지막 장면에서 소멸되면서 어머니를 찾은(사실은 '애미 씹...'이란 의미였지만 발번역으로 인해 어머니로 떴다.)닉 퓨리를 패러디했을 가능성이 있다. 댓글란에서는 아예 확정 상태.
[31]
현실 역사에서 옥음방송이 나온
광복절이다.
[32]
모전구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33]
내지는 천황이 두번이나 바뀐데다가 지금 정권 잡고 있는 건 천황을 시해한 반역도당들이고, 게다가 허구한 날 공산당의 볼셰비키가 시위를 벌이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며, 만주는 쇼와 대역을 막지도 못한 무능한 놈들을 숨겨주고 있는데다가 볼셰비키와의 전선이면서도 온갖 파벌이 부딪히며 내분이 치열한 상황인데, 조선은 내분도 딱히 없고, 장사에 방해되는 건 고작해야 임시정부일텐데, 그건 대타협 당시 세워진 통감부에서 무마해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통감부장 의친왕이 자치정부와 짜고 치는 상황이었다는 거지만...
[34]
그뿐만 아니라 당시는 1933년,
나석주 의사의 의거가 일어난 지 7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고 조선 자치정부가 권력을 잡은데다 날짜는 3월 1일. 언제고 제2의 나석주 의사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던 상황이다.
[35]
실제 역사에서는 패전 후 일본국 제5대, 14대 운수대신(한국의 교통부장관에 해당),
킨키 일본 철도 제6대 사장을 역임했다.
[36]
약 1년 뒤 태어날 예정이었으나 히로히토가 죽는 바람에 태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37]
이 사과 발언이 쇼와 덴노 사망 1주기 행사에서, 거기에 김규식이(실행범은 아니어도 명백히 임시정부 소속이던) 참석한 자리에서 나와서 죽은 두 덴노를 쌍으로 욕보인 꼴이 되었다.물론 해군 입장에서는 해군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레이와 덴노를 견제하면서 본토 내에서 덴노를 살해한 역적으로 신망을 잃은 해군측이 향후 정국에서 이러한 역적이라는 오명을 벗어내고자 하는 시도.
[38]
이를 두고 육해군이 하도 서로 싸워대니 평화를 명한다는 연호를 쓴 게 아니냐는 드립이 나왔다.
[39]
사실 히로야스의 칭호는 '친왕'이 아니라 이보다 낮은 '왕'이며 작중 1930년대 기준으로 세습친왕가 당주가 친왕인 곳은 단 한 군데 간인노미야뿐이다.
[40]
해군측에서 덴노의 고유 권한인 식민지 정책을 대놓고 침범하여 선을 넘었다. 만약 이 마저도 덴노가 아무 권한 행사를 하지 않으면 진짜로 인간 옥새 역할을 제외하면 덴노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41]
참고로 이 움직임을 보인 조선인들은 한국 측에서 주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임정의 집권치하에서 도망친 친일파들이 다수라고 언급된다. 즉 임정 측의 후원이 없진 않았지만 자기들 판단으로 움직였던 것.
[42]
억지로 보일 수 있는데, 그동안의 국제 정세가 일본이 편들었으면 편들었지 적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안창호도 이렇게 될 줄 알고 백범이 독소조항을 넣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회귀자인 백범 입장에선 미래에서 보고 왔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갑갑할 지경.
[43]
원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 했으나 히로히토의 반려와
사이온지 긴모치의 중재로 유임한다.
[44]
내지인들의 반발을 사유로 반대했지만, 이미 조선을 축에 올려서 해군을 몰아내려던 문민정부(천황)의 행보 덕에 내지에서 문민정부는 더할나위 없는 친조파벌이라서 의미가 없었다.
[45]
특히 본인이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강우규 의사에게 암살당할 뻔한 적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46]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이유가 쌀 수급 문제지만, 문제는 조선 쌀을 저가로 후려치고 가져오는 탓에 일본 농촌은 극도로 망했다. 그래서 이 세계관에선 조선이 자치령이 되면서 조선산 쌀값이 올랐다는 소식에 일본 농촌에서는 이제야 한 숨 돌렸다며 좋아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선 쌀도 저리 가라 수준의 초 저가 덤핑가인 중국 쌀을 수입하게 되면 일본 농촌은 망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아예 말라 죽게 되는 상황까지 갈 수밖에 없다.
[47]
사실 일본의 혼란에 기름을 부은 '청년조선'부터 일본공산당의 움직임, 심지어 재일들 정치적 이동에도 조금은 손을 댄 걸 생각하면 대부분 거짓말이다. 사실이라곤 조선에서 재일 조선인들을 못마땅히 여기고, 완전히 통제할 생각도 조건도 없다는 것 뿐. 문제는 거짓말일텐데, 듣고 있으면 맞는 말 뿐이라서 사이토 마코토조차 이게 진실인건가 하고 속아 넘어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조선이 일본을 미국에 가져다 바친다고 전해도, 미국이 그걸 믿고 군선을 보낼 가능성부터 없기 때문.
[48]
문화통치로 전환한 게 사이토 마코토이므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49]
실제로도 의친왕이 언제 조선으로 귀국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적어도 1940년부터는 조선에 있었다는 게 확인된다.
[50]
이는 일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조금 더 탕아처럼 굴었다는 의혹도 있는데 자세한 건 문서 참조.
[51]
적이 무모하게 강을 넘어오자 모험주의자들이라 판단하고 더 많은 적들을 잡을 미끼로 여겨 유인하는데, 하필 그 군대가 패튼이었고, 미끼로 쓰려는 작전이 패튼의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앞뒤로 털리고 말았다. 오죽하면 패튼의 무모한 돌진에 그 츠지가 행복회로에서 탈출해 버렸다고.
[52]
일본 해군에는 일본 육군과는 반대로 상대적으로 부유층의 비중이 높았다. 이는 일본 해군이 사츠마 번과 도쿠가와 막부의 수군이 합쳐진 것에서 유래한 탓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이 많았기 때문으로, 반대로 일본 육군은 죠슈 번의 타카스키 신사쿠의 기병대가 기원이 돼서 상대적으로 하층계통이 많았다.
[53]
사실 해군의 히로야스에게는 작은 아버지들 중 하나에 해당된다.
[54]
내지의 지원은 끊기다시피 했는데 먹일 입은 왕창 늘었고, 자신들을 미워하는 독립군 출신 조선 군벌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소련군한테 열세다.
[55]
복귀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조선과 일본 해군인데, 조선은 굳이 귀국하는 관동군을 막을만큼 원한이 없고, 해군은 이번 사태로 사실상 붕괴상태.
[56]
실제 역사에서도 핵무기의 등장과 2차 대전 발발을 정확히 예측했고 당시 일본군 내에서 드물게 전략적 사고를 갖춘 인물이었던지라 저런 모습이 보여도 이상할 건 없다.
[57]
사상 자체는 아무리봐도 멍청이지만, 의외로 쿠데타 과정 자체는 나름 철저했다. 내각장관들 외에도 육군참모본부와 헌병대 사령부를 동시에 날려버려서 도쿄를 완전 점거할 때까지 아무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58]
작중에서 히로야스를 '친왕'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친왕보다 한 단계 낮은 '왕' 작위였다. 작중 시점인 1930년대 기준으로 세습친왕가 황족 중에서 '친왕' 작위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인데 그 사람은 바로 작중에서도 등장하는 육군측을 대표하는 황족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뿐이다.
[59]
대략적으로 해군참모총장 쯤에 해당하는 직위로 본다.
[60]
작중에서 언급되지 않지만 사실 노부히토 친왕과 다카히토 친왕이라는 작중에는 단 둘 밖에 남지 않은 메이지 덴노 직계 혈통이 모두 사망할 경우 그 다음 덴노 승계권은 바로 세습친왕가의 필두인 후시미노미야의 당주인 이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다.
[61]
작중 시점이 1932년에는 노부히토는 해군 포술학교를 다닐 무렵이였다.
[62]
왕토사상을 들먹였다. 나라의 토지는 전부 왕의 소유라는 사상으로 동양. 특히 천황제를 이용하는 일본에서는 매우 상식적인 사상. 즉, 일본과 식민지인 조선의 모든 땅은 천황인 자신의 소유이며, 조선에 자치령을 세우면서 그건 조선왕에게 돌려줬고, 조선왕은 자치정부에 전권을 위임했는데 그걸 자신에게 따지는 건 왕토사상을 부정한다는 소리다. 라는 논리를 사용했다.
[63]
사실 히로야스의 아내는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9녀인데 노부히토 덴노의 아내 키쿠코 비에게는 고모에 해당되는 존재.
[64]
실제로 히로야스는 전대 후시미노미야 당주인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 친왕의 서장자로 가쵸노미야를 잇기 위하여 입양되었다가 하필 후시미노미야 가문의 적장자가 정신박약 등의 문제가 있어서 가문 승계가 어려워지자 후시미노미야 당주의 서장자인 히로야스가 가쵸노미야에서 후시미노미야로 다시 입양되게 된다.
[65]
이 때문에 총리대신이나 대원수 등의 직함을 달지 못하고 있다.
[66]
산업화와 제국정권 하에 일본의 빈약해진 농업 생산력으로는 7천만에 달하는 일본인구를 부양할 방도가 없다. 원역사에서도 일제의 조선침공 목표는 부족한 식량 수급이었는데, 여기서는 대타협으로 인해 조선에서 수입하는 곡물값을 제대로 치러야 한다. 하다못해 잇키를 잠재우기 위해서 만주나 조선처럼 토지개혁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텐데, 히로야스 본인이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라며 거절해버렸다.
[67]
쇼와 사망 1주기를 기념해서 천황가의 위패 앞에서 조선 사절로 찾아온 김규식한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68]
엄밀히 말해 다 쓸지도 못한다. 조선은 어느정도 체계가 갖추어져서, 아무리 더 근대화되었다고 해도 육군이 없는 해군육전대 정도로는 돌파할 수 없다. 관동군처럼 자생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이토 마코토도 해군만 가지고는 조선을 어떻게 못하니까 관동군을 말려죽이라고 할 정도.
[69]
사실 노부히토를 끌어내린 다음에 작중에서는 아직 미성년자인 노부히토의 동생이자 메이지 덴노의 막내아들 다카히토를 덴노로 세워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노부히토가 덴노에 오르기 싫어하자 다카히토를 세울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카히토도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다면 다카히토 다음 덴노 계승권자인 자신이 직접 덴노에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70]
"자기들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밥만 잘 먹게 해 달라. 그리고 왜 내지를 역차별하느냐."라면서 전원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만을 꺼내들었다.
[71]
공산당 입장에서는 진압을 하면 고맙게 고쿄에 적기를 꽂으러 갈 수 있고, 진압을 하지 않으면 시위를 이어갈 수 있으니 어떻게 하든 남는 장사였다.
[72]
지켜지는 수준이 아니라 돌을 던지던 동네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한 다음 웃으면서 마사루에게 인사했다.
[73]
윤덕영은
한일병합조약 채결을 위해 일본인들조차 치를 떨 정도로 고종을 협박하고 조카인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못 준다고 버티자 직접 빼앗았던 인물이다. 이왕가에게는 황실을 능멸한 역적 중의 역적인데 외척이라는 것 하나만 믿고 영친왕이 뒤를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면 꽤나 황당한 부분.
[74]
항목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지만, 본래 역사에서의 노덕술은 자신의 '전문기술'을 살린 고문경찰로 부침을 겪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에 훈장까지 받으며 68살까지 나름 잘'먹고 잘 살다가 간다.
[75]
파쇼들이 정당을 차리고 출마하지 않은 것에 의문을 품던 김구의 독백에 의하면, 조선 귀족세력이 정당을 차리고 출마를 결심하자 끄나풀이 될 만한 악질들을 100명 정도 저승에 보내는 과정에서 함께 보내준 것이었다고 한다. 노덕술 이외에도 최연 등의 악질 경찰들도 여기에 휘말리며 죽었다고.
[76]
당시 지명은 안동이다. 단동으로 개칭된 것은 1965년이다.
[77]
일본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였으나, 원역사에서도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으로 살았다.
[78]
이방자 여사의 부친은 원래 구니노미야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때마침 또 다른 가문인 나시모토노미야가 절문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곳으로 입양되었다.이러한 것 때문에 이방자 여사와 쇼와의 아내 나가코 황후와는 친사촌 사이가 되는 것이다.
[79]
작중에서 지나가듯 언급했듯이 당시 일본 황족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목소리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목소리만 듣고 덴노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그 덕분에 작중에서도 노부히토 덴노를 만난 적 있는 조선통감 의친왕 이강조차도 긴가민가해할 정도.
[80]
정확히는 진짜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품게만들어 선전활동을 벌이려는 목적이였다. 김겨울도 딱히 정치적인 걸 노린 건 아니었고 그저 선전방송만으론 러시아에서 귀기울이지 않을 거라 여겨 떡밥을 던진것 뿐인데 일이 이렇게 커져서 당황한다.
[81]
차르 일가의 처형에 관여한 소련 볼셰비키 출신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작중 등장한 어지간한 권력자들도 진짜일리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진짜 아나스타샤 황녀는 1918년 17세에 사망하였는데 가짜 아나스타샤가 본격적으로 조명받은건 1940년이였으므로 살아있었다해도 39세일테니 그보다 한참 어린 가짜 아나스타샤가 진짜의 숨겨진 딸이면 몰라도 진짜 아나스타샤 황녀일 리 없다고 판단했던 것.
[82]
시베리아 출병 당시 아나스타샤를 구출해 일본에서 보호하고 있었다고 선전했는데 이게 또 수십년동안 가족도 못만나고 억류당한 불쌍한 황녀라는 동정여론까지 끌어모았다. 실제로 출병 시기가 로마노프 일가 처형과 시기가 비슷하다보니 살아남은 황녀가 일본군에게 구출되었다는 음모론을 담은 창작물이 있다.
[83]
1920년대만 하더라도 친자검사는 가능했다. 다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유전형질의 매개체가 DNA라는 걸 모르던 시기였던지라 혈액 속의 각종 단백질을 토대로 판정하던 시기였는데 덕분에 친자인지는 몰라도 친족 같음이라는 정도의 결론은 낼 수 있는 시기이므로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다.
[84]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남작 가문이였던 만큼 조상 중에 로마노프 황가와 피가 이어진 사람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소련측도 이 바로 다음화에서 로마노프가의 사생아의 후손 정도로 추론하고 크렘린에서 아나스타샤의 가묘를 파헤쳐서 시체를 보여줘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걸 보면, 적어도 진짜 아나스타샤 황녀는 소련에 의해 사망한게 맞다.
[85]
안 그래도 로마노프의 후예라는 아이콘으로 백계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끌어모은 상태에서 전제군주인 로마노프의 이름을 버리고 인간선언을 한 것은 공산주의 혁명정신과 부합되어 적계 러시아인들의 반발도 상쇄되는데다, 폴란드가 내세운 괴뢰정권은 소련 인민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던 상황이라 결과적으로 적백 상관없이 소련 인민의 지지가 아나스타샤에게 쏠릴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 것.
[86]
본명은 헨리 스미스.
[87]
독일과 내통하여 빠져나갈 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정말로 베리야를 구원해줄 생각도 없었고, 무엇보다 영국의 눈이 있는데 소련을 도와줘서 뭘 하냐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베리야를 손절했다. 여담으로 독일측 통화 상대방이 마지막 통화에서 프로이라인 하이드리히라는 이름을 댔는데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로 추정된다.
[88]
적의 진격을 막기 위해
시베리아 철도를 끊어놨는데 주민들이 풍족한 지원을 받으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자발적으로 즐기면서 철도를 세 갈래로 부설하는 걸 봐버렸고, 저건 누가 와도 못 이긴다고 직감했다.
[89]
원 역사에서도 콜라에 맛들려 냉전시기에 스탈린 몰래 즐기기 위해 미국 측에 무색투명한 콜라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90]
그런데 이건 바실렙스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 주코프의 옛 부하들도 태도가 180도 바뀐 주코프를 보고 바실렙스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91]
어차피 싸우건 안싸우건 스탈린의 의심병과 숙청을 피하기 어려울거라 여겼고, 친구 손에 피를 묻힐 바에는 차라리 용맹한 자와 싸우다 죽을 생각이었다고.
[92]
원 역사에서 부됸니는 말 엉덩이만 아는 사람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기병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사람인데 패튼 역시 말 대신 차량이나 전차를 타고있을뿐 하는 짓은 중세시대 기사 그 자체라 부됸니의 성향에 딱 맞아떨어진것. 패튼과 만난 에피소드의 제목도 유유상종이다.
[93]
단순히 자기들이 써준 대본을 읊은 게 아니라 자기 정체를 제외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연설하였는데, 이게 미국으로부터의 풍족한 물자 지원과 결합하여 주민들이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황녀를 칭송하며 철도 공사에 열성적으로 임할 정도로 국뽕을 최대로 충전시켜버린것.
[94]
흑색선전을 덮어씌우기에는 유인당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이봉창의 쇼와 암살을 떠올릴테니 화제성으로도 끝판왕에, 치안유지법을 물 먹이는 당명이라 친일, 근왕, 수구반동등의 프레임을 씌울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 게다가 조일관계를 파탄시킬 당명이라 힐난하기에는, 현 조선 상황상 절대로 흠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항일투쟁에 앞장선다는 프레임을 씌워주는 꼴이라서 이도저도 못 하기 때문.
[95]
투표율이 100%를 오버하는 지역이 나올 경우 부정선거가 확정되며, 그 경우 비정상적으로 득표율이 높은 유인당에게 부정선거 의혹 프레임을 걸어버릴 수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40% 투표율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
[96]
친일파들은 지금까지 좌익 축출을 돕겠답시고 임정에 매달려 왔기 때문. 선거과정에서의 부정과 과잉홍보도 있었다.
[97]
이 때의 상황을 작가는 빨치산이 거세된 숫퇘지를 잡았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고자가 된 상황을 '(중략) 그 액체의 정체가 방광에서 새어나온 소변이기를 마음속 깊이 바랬겠으나─천지신명께서 보우하심에 액체는 홍시만큼이나 탐스러운 붉은 빛이었다.'라고 표현했다.
[98]
당시에 중학교 중퇴면 그리 낮은 학력은 아니라지만 애매하긴 했다. 현대로 치자면 딱 석사수료 정도의 학력.
[99]
만우절까지는 아직 보름도 넘게 남았던데다가, 이제 겨우 취임하고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100]
해당 에피소드 제목이 대놓고 각.
[101]
온갖 다양한 세력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멕시코 혁명때와 유사하다 평했다.
[102]
거기다 필리핀에서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하는동안 술에 쩔어서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본 미국인들이 "얘가 이렇게 생겼던가?"라며 의문을 표할 정도로 표독하게 인상이 변하는 바람에 이런 인식을 부채질했다.
[103]
유배생활이 원 역사보다 길었던지라 회귀 전의 맥아더를 본 백범도 순간 누군지 못알아볼 정도였다. 역사개변에 의해 이리 된거라는 걸 알게 된 백범은 그러나 회귀 전에 반목한게 있던지라 장제스와 다르게 동정은 하지 않았다.
[104]
정확히는 일본에 도착해서 명령서를 받긴 했다.
[105]
원 역사에서도 패튼은 전략적 목표는 잘 따르는 편이였지만 그 외에는 통제불능에 가까워서 그를 통제하느라 상관들이 뒷목을 잡는 일이 허다했다. 본 작품에서는 본인도 만주 발령(?)을 희망하고 일 저지른 참이니 잘됐다며 정식 발령을 내려 사실상 치워버린 것이다.
[106]
개그물 같이 각색은 하긴 했지만 지휘관이면서 몸소 돌진하는 것이나 적을 묶어 끌고 왔다는 행적은 멕시코 혁명 당시 실제로 했던 일이다.
[107]
맥아더는 멧돼지의 심장에 늑대의 두뇌라고 비유했고, 부관은 처음부터 미친놈이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생각할 줄 알면서 일부러 안하는 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냐며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108]
마오쩌둥의 적군을 상대할 때 징발이란 명목으로 말과 젊은이들을 끌고 가긴 했지만 점령 후 약탈한 자들은 본보기로 차량에 묶어 끌고다녔다고.
[109]
맥아더에게는 안타깝지만, 소련 점령 당시, 이 땅에서
우크라이나 대흉작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면 더 큰일 날 거라는 듯한 뉘앙스의 언급이 있었다.
[110]
황녀를 돕기로 정한 이후 패튼 본인도 성기사단장을 자처하고 있다.
[111]
급박한 전투상황인지라 통역 내용이 순화(?)를 거쳤는데 거 영감탱이 도통 힘을 못 쓰는구먼!→패튼 장군께서 원수님의 건강이 걱정된답니다! 수준. 다만 패튼이나 부됸니나 말투 같은 걸로 그런 뜻을 가진 욕설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다.
[112]
청방이 비밀조직인 이상 그 접선장소와 암구호를 안다는 것은 청방과 관계된 자와
꽌시를 주고받으며 돈독한 사이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
[113]
앵글로 색슨의 국가는 미국과 영국인데, 당시 미국은 국제연맹의 회원국이 아니었다.
[114]
실제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금방 찌질해지며 정신줄을 놔버렸고, 보다못한 군인이 약을 놓아 잠재워버렸다. 다들 이렇게 뻗어버리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될거라 여길 정도.
[115]
이후 사항에 대해선 사람 하나 자살시킬까봐 자세히 묻지 못했다.
[116]
이렇게 된 원인중에는 당연히 채권이 진짜인지부터 조사를 해 보려고 했으나, 월가의 채권자들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 채권 맞다"며 기꺼이 채권 사본을 제출하는 바람에 한동안 서류더미에 쌓이게 된 것도 있는 모양.
[117]
원래는 당연히 소련에서 지원을 나와서 구조해줄테니, 성공하면 마오쩌둥 본인의 위업으로 삼을 셈이었고, 실패하면 책임을 늦게 구하러 온 바실리 블류헤르에게 떠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작 바실리 블류헤르가 버린다라는 선택을 하며 본격적으로 스탈린에게 항명의사를 표하면서 이 모든게 꼬였다.
[118]
이렇게 된데에는 밥 먹듯이 외교적 약속을 어겨대는 히틀러를 제거하길 바라던 영국과 프랑스의 사주가 있는 것으로 언급된다.
[119]
정확히는 당시 나치 독일에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퓌러 자리와 독일국 퓌러 겸 국가수상 자리가 있었는데, 히틀러가 두개 모두 겸직하다 전자를 총통 대리였던
루돌프 헤스가 맡게 되고 후자를 괴링이 맡게 된다.
[120]
대신 군부의 반란을 제압하고 총통직에 오른 뒤에 국민들과 수하들에게 숭배받는다는 권력에 취해버렸다. 나치 독일의 경례 구호도 하일 괴링으로 바뀐 건 덤.
[121]
특히 괴벨스는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괴링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122]
실제 괴링도 전범재판 과정에서 약을 끊자 능수능란하게 자신과 다른 전범들을 변호했다.
[123]
사실상 당대표 자리로, 본래 히틀러는 나치당의 퓌러, 독일의 퓌러 겸 국가수상 두 직책을 겸임했다.
[124]
헤르베르트는 식민지 조선도 제대로 간수 못하면서 소련과 중화민국을 상대할 수 있겠냐며 미국과 손잡지 말고 자기들과 손 잡으라는 식으로 나오고 마치다는 이에 맞서 자기들은 1차 대전의 승전국이라며 패전국인 독일과 손잡을 생각 없다는 식으로 역으로 도발해버린다.
[125]
시미그위 본인은 국익에도 도움되면서 순수하게 사람 하나 도울수 있으니 좋아했지만 정작 가짜 황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를 일이다. 해당 내용이 담긴 회차의 제목 자체가 인본주의(?)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