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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독립 전쟁의 개변된 역사를 정리한 문서.2. 일본령 조선 → 조선 자치령 → 대한민국
2.1. 자치령 수립 전
- 회귀한 김구의 조언으로 인해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성공하여 히로히토가 사망한다. 히로히토에게 아직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1] 동생 야스히토가 헤이세이 덴노에 오른다. 그리고 우가키 가즈시게 조선 총독이 암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임되고 하야시 센주로가 후임 조선 총독이 된다.
- 회귀한 김구가 자신의 강경한 태도를 버리고 안창호 세력, 좌익 세력들에게 먼저 협조의 손을 내민다.
- 히로히토의 사망으로 인해 1.18 만세 운동이 일어나며, 일제는 이를 폭력진압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이를 빌미로 허버트 후버 정부를 비판하며 이승만을 선거운동 찬조연설에 내세운다. 그러나 미국 기레기 때문에 이승만이 식민지 자치론을 주장했다는 오보가 나버린다.
- 윤봉길 의사가 상해 공원이 아닌 조선 총독을 목표로 의거를 벌였다. 그런데 상기한 이시와라 간지가 천황의 회군명령으로 인해 신의주에 발이 묶여 쿠테타가 실패할 것 같으니까 쿠테타의 명분을 위해 조선에 크나큰 혼돈을 발생시키기로 결심하고 임시정부측에 임시든 정식이든 상관 없으니 총독의 암살을 의뢰하려고 하는 개판이 발생한다. 임시정부는 이게 진짠지 함정인지 반신반의하다가 일단 속아는 보잔 심정으로 이시와라가 보낸 정보를 윤봉길에게[2] 보내고, 결국 19화에서 윤봉길의 폭탄의거로 하야시 센주로가 박영효를 비롯한 조선귀족들 일부와 함께 폭사한다. 그 결과 잠잠해지려 들던 항일시위에 다시 불이 붙었고, 일본군은 다시 강경진압을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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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를 암살하기 위해 일본군에 사주한 김일성이었으나, 일본군은 오히려 육해군 갈등을 제압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던 나머지 홍범도를 암살하기는 커녕, 자기들끼리 신나게 지지고 볶았다.[3] 이에 김일성은
그냥 평범한(?) 일본인 포로 한명을 자유롭게 만들어주겠다며 꼬시는 방식으로 "포로가 된 일본군이 탈출하여 독립군 수괴의 위치를 까발린다"라는 방식으로 홍범도를 일본군 손에 죽게 만들려고 했으나, 정작 그 일본인 포로라는게 하필 정치력은 만렙인
무타구치 렌야였던지라, 반대로 렌야가 김일성이 수상하다며 그 뒤를 캐기 시작했다.
아예 작중에서도 "그리하여 대한독립군 무다구치 렌야가 공산 비적 김일성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라는 한 줄로 이 개판을 설명. 그 결과 렌야에게 고발당한 김일성이 고자가 되면서 김씨 일가 자체가 사라졌다.
- 천황 폭살을 시작으로 굴러진 스노우볼로 인해 일본 내부가 개판이 되어버린 가운데, 조선 측에서 영국의 비밀지원을 받은 한인애국단 단원들이 조선에 기습상륙하고 무장봉기해 서대문형무소를 해방하고 서울을 손에 넣자 조선의 만세시위는 그야말로 독립문에 자유종이 울리는 상황이 되면서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되고, 꼼짝없이 포위당한 조선총독부에서는 시위대에 백기를 들었고, 궁지에 몰린 일본 정부가 결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영국의 중재를 가장한 압력으로[4] 임시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임시정부측은 ' 제1차 한일협약으로의 복귀'를 요구했고,[5] 한국의 독립을 받아들일 수 없던 일본측은 '외교권과 군사권을 제외한 한국의 완전 자치'를 제안했다.[6] 이에 향후 일본의 행보를 아는 김구는 "만일 일본이 영국이나 미국같은 해양제국과 전쟁을 벌이면 한국은 참전을 거부하고 즉각 독립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독소조항을 넣고 총독들이 내린 제령 철회,[7] 군권을 제외한 대권[8]을 넘겨받고 자치를 하는 조건으로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일본 대타협 협상이 시작되었다.
- 일본 전권대표 사이토 마코토와 김구가 회담하여 대타협 협상이 확정. 협상 내용은 상위 항목 참조.
2.2. 자치령 수립 후
- 조선에서 자치가 시작되자 (본인은 코민테른과 결별했지만) 좌익으로 분류되는 홍범도가 반민특위를 통해 친일파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핵심 매국노들은 잡혀가거나 일본으로 도주했고, 몇몇 남은 친일파들은 그래도 공산당을 싫어하기로 소문난 우익 민족주의자 김구와의 협력을 바라게 되었다.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자치정부의 보복을 피해서 일본으로 다수가 되돌아 가고 있는 모양.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선이 좌, 우 대립으로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일파에 대한 비리 자료는 여운형이 김구에게 넘겨줬고, 김구는 반민특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겉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입하지 않은 홍범도의 독자행동이라는 핑계를 대며 눈 가리고 아웅을 하고 속으로는 묵인하는 걸 넘어 경찰 인력을 동원하는 등 암암리에 도와주고, 일본에게 오히려 지원을 안해준다며 큰 소리치고 있다.[9] 홍범도는 반민특위를 통해 신나게 매국노들을 때려 잡고 있다.
- 푸이가 도주하고 잠적한 탓에 원 역사의 만주국은 수립되지 않았다. 관동군은 영친왕을 대신 만주왕으로 세우려고 하며, 만주의 군벌들도 영친왕을 지지하려고 한다. 서울의 임시정부는 이를 노리고 왕이 만주에서 친정 중이란 명목으로 국내에 섭정의회를 새워 간접적으로 공화정을 수립하려고 한다.
- 전국총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는데, 김구가 내세운 당의 이름은 임정이 떠돌이 신세였으니 떠돌이(流人)라는 의미로 유인당을 내세웠다. 당연하지만 죽은 히로히토(裕仁)를 조롱하기 위한 이름이다.[10] 한자의 한국어 발음은 둘 다 유인으로 같지만, 일본어 음독의 경우 다른 발음이 되는지라[11] 한자 발음상 동음이의어일 뿐이라는 핑계거리로 내세우기도 좋다. 유인당의 압승으로 선거는 마무리 되었고, 거국 내각을 수립하여 안창호가 집정의 자리에 올랐다. 이 유인당이라는 문구와 연설이 강한 인상을 남긴 덕에 정부나 정치와는 연이 없는 아나키스트도 유림을 중심으로 당을 만들어 유인당에 합류했고, 근왕파가 설칠지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파시스트들이 알아서 백범을 찬양하다보니 당을 만들지도 않았다.
- 이범석이 사이토 마코토와 대독한 자리에서 배달민족이란 단어를 내세우며 부여의 후예로 만주족, 조선 민족, 그리고 일본 민족까지 같은 민족이라 내세우며 만주 정복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주체만 바뀐 일선동조론[12] 그 자체라고 사이토가 평했을 정도.
- 조선의 토지개혁을 재료로 일본의 봉기를 유도하기 위해 조선 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이 협력하게 된다. 이를 본 김구는 아예 한술 더 떠 이전 생애에서의 대중선동매체를 참고, 그날이 오면을 개사하여(작사자 심훈이 개사했다) 토지개혁 선동노래를 만들어 방송으로 퍼트린다.[13] 여기에 구 육군출신의 도조 히데키가 해군 내각을 흔들기 위해 저지른 검열기관의 적극적인 방조[14]까지 겹쳐 일본 전국에 조선의 토지개혁이 알려지게 되고 일본 공산당의 암약하에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15]
- 덴노의 지지 표명에 김구는 이리 된 거 덴노의 조선통치 대리인이라는 자격으로 사절을 보내는 게 어떠냐고 건의한다. 다만 국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쇼와 대역 1주년에 맞추어 보내자는 소리에 안창호는 어이를 상실하게 되는데, 결국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했다.
- 의친왕이 덴노의 강권으로 조선통감부장으로 오게 된다. 신임 조선통감부장을 통해 조선의 위치[16]와, 일본의 사정과, 탈군국주의를 원하는 덴노의 성향을 전해들은 김구는 다시 없을 기회가 왔음을 확신, 청년조선을 이용한 대대적인 선동 공작을 계획한다. 그 결과, 해군 내각은 실각, 히로야스는 정권을 잃고 도주하며, 레이와 덴노가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을 빼고 정국이 움직이는 꼴이 눈꼴시렵던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잔존 일본 육군 파벌들이 재일이 덴노를 인질로 잡았다라는 흑색선전을 터트리게 된다.
- 쇼와 대역과 조선 자치령화의 영향으로 타 식민제국의 식민지에서도 종주국을 향해 무장투쟁을 벌여서 권리를 쟁취하자는 기류가 일기 시작했다.
- 그 와중에 레프 트로츠키가 극동관구에서 제4인터내셔널을 창설하자 조선 공산당에서는 코민테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창업군주의 일등공신이 될 기회라고 여기고 제4인터내셔널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 조선 경비대의 무장으로 톰슨 기관단총이 라이센스 생산으로 채용된다.[17] 이는 전생에 OSS와 협업하여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던 김구의 판단하에 정해진 것.[18][19] M1917 경전차와 당시 일본에서 인정 못 받던 야기-우다 안테나도 채용하는 건 덤. 여기다 돈 냄새를 맡은 미국의 무기회사들이[20] 대전차포를 비롯한 온갖 무기를 어떻게든 팔기 위해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딜을 걸고 있다.
- 만주국과 러시아, 그리고 조선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라시아 총선거에 의해 대한민국이 일본에게서 독립하게 된다.
2.2.1. 환태평양 경제권
기나긴 폭탄 돌리기의 시작.[21]
- 루스벨트가 환태평양 경제권에 대한 소련의 도전을 막겠다는 듯 사실상 대 소련 선전포고나 다름 없는 방송을 하자, 레이와 덴노가 이를 듣고 과거 한국 임시정부와 협상했을 때 김구가 끼워넣은 조항인 해양세력과 전쟁을 벌이면 즉각 독립을 떠올려서 묘안을 떠올린다. 해양세력과의 접속사 과에 해당하는 일본어 격조사 と가 관계성을 표시하여 ~를 상대로. 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등함을 의미하는 ~와 함께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22] 말장난 형식을 이용하여 환태평양 경영권의 도덕적인 우위와 소련의 침공에 대한 명분을 쌓는 방도를 떠올려, 해양세력인 미국과 힘을 합쳐 소련과 싸우면 조선은 독립이다. 라는 형식으로 해당 문구를 의도적으로 곡해하고 일본제국의 모든 식민영토에 독립에 대한 신민 투표를 제의한다. 당연히 이시와라 간지는 이 소식에 아주 흥분하면서 소련이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면서 식민 영토를 늘리려고 하는 행태에 날을 세워 비판을 쏟아낸다.
- 문제는 이렇게 독립당하게 되면 조선과 만주가 그동안 미국에서 무제한 블랙카드로 끌어온 카드빚을 독박쓰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인데, 백범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장난에는 말장난이라는 묘수를 떠올리고 만다. 다름아니라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 이름대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한일대타협 조항에서는 이왕의 직함을 '조선왕(朝鮮王)'으로 격상하며, 조선왕은 대일본제국 조선의 국주(國主)를 겸한다.라는 조항이 들어가 있는 점을 이용해서 현 대일본제국 조선령이 진 빚은 조선왕 이은 전하를 국주로 지닌 조선의 빚이지 국민이 주인인 임정의 법통을 이을 독립 조선이 진 빚이 아니다. 라고 받아치게 된다. 즉, 모든 빚은 조선이 공화국으로 독립하면 국주 조선왕으로 성립되는 대일본제국의 조선령이 떠맡게 되니 당연히 일본이 그 빚을 갚아야 한다. 라는 막나가는 해석. 게다가 일본이 만약 여기에 딴지를 건다면 조선과 만주국은 이은 전하를 왕으로 섬기는 동군연합이므로 병합한다라는 선택지를 들이밀 생각이다. 이 경우라면 빚을 갚아야 하기는 해도 이미 일본 본령보다 경제규모가 커진 만주와 조선이 한 덩어리가 되면서 거대한 경제연합체로 성립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방법이라고.
- 설상가상으로 레이와 덴노의 조선의 독립 관련 발언을 들은 미국에서도 우연이겠지만 백범과 거의 동일한 해석을 하면서 조선이 독립해도 만주국과 동군연합이었으니 만주왕(조선왕)을 봉신한 일본에게 지불 의무가 있다라고 해석한지라 일본은 어떻게해도(설령 진짜로 영미한테 전쟁을 걸어도) 빚에서 헤어날 수 없는 신세다.[23]
- 그러자 만주가 중국의 양해를 받아 일본이 일시적으로 위임통치중이라는 중국의 주장의 헛점을 이용, 레이와 덴노가 그러면 만주의 빚(=조선의 빚)은 중국에게도 채불 의무가 있다라는 초월 해석을 하며 중국에도 빚을 떠넘겨버린다. 여담으로 일본이 왜 이렇게까지 빚을 떠넘기려고 하는지 밝혀졌는데, 1930년대 말에 1000억달러 단위의 빚을 지고 있었던 것.[24] 다만 이 빚은 순수하게 조선/일본만 진 빚이 아니고, 일본 국적법을 조선, 만주가 우회시킨 덕분에 중국의 금융계가 조선/만주 국적을 얻고 미국에서 떼온 빚까지 겹쳐진 탓이었다. 작중에서 국가 단위의 폰지 사기라고 언급될 정도.
- 심지어 여기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까지 엮어서 중화소비에트 공화국은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국이라고 주장하며 소련에게까지 빚을 전가하려고 시도한다. 맥아더 왈, 빨갱이들은 내꺼 네꺼 안 따지는 법이다. 이후로 언급이 없는걸로 보아 이 발상은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 그 와중에 바실리 블류헤르는 만주 연합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어서 카드깡에 편승할 생각을 하고 있다. 다만 생각보다도 논리적인 이유에 의한 것인데, 조선에서는 그 막대한 자금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어서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공사나 기본적인 공업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라고 추측한 뒤[25], 그러면 고려인들을 위한 사회주의 경제특구라는 핑계를 통해서 러시아로 물건 수출이 가능하도록 가교를 놓아주면, 조선에서는 넘치는 자금을 투자할 수 있으며, 자신은 그 중간수익을 챙길 수 있으며, 러시아는 싸게 대량의 물품을 얻을 수 있어서 서로 좋다는 이유.
- 결국 대한민국이 독립하며 조선 명의의 빚은 일본과 러시아가 나눠지게 된다.
2.3. 대한민국 독립 후
3. 일본
- 일본이 조선으로 통하는 물류/전신을 모조리 차단하고 강경진압을 시작. 만세운동을 폭격기까지 써가면서 진압해대자 일본 수뇌부가 미쳤다고 판단한 이시와라 간지가 쿠데타를 위해서 관동군을 이끌고 남하한다.
- 정작 조선 총독부와 친일 귀족들이 폭사했는데도 도쿄에서는 여전히 정쟁이 이어져 국정이 마비, 헤이세이(야스히토) 역시 '관동군의 임시 주둔을 허용한다'라는 황명을 내렸는데, 이에 관동군이 '왜 회군하지 않냐. 조선이 언제부터 황국 시민이냐'고 항의하자 이시와라 간지가 헤이세이 유신은커녕 관동군에 대한 신뢰까지 버리는 사태[26]로 이어진다.
- 해군에 의해 해상 보급이 막혀버리자 일본 육군 장교가 목포에 정박해 있던 영국 상선의 상선사관을 살해하고 상선을 무단으로 징발해 버린다. 이에 분노한 영국은 일본의 내전으로 인해 책임소재를 제대로 물을 곳도 없어지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교섭하기로 결정한다.
- 후지이 히토시를 중심으로 한 일본 제국 해군 소장파가 5.15 사건을 일으켜 육군 황도파 내각을 뒤엎고 도쿄를 장악하지만, 이를 반역으로 간주한 연합함대가 쿠데타를 진압하던 도중 진압군인 해군의 실수로 야스히토가 해군에 의해 사망한다. 야스히토에겐 자식이 없었으므로[27] 그의 동생 노부히토가 레이와 연호로 덴노에 오르게 된다.
- 결국 해군 출신 덴노를 인정할 수 없었던 육군파 임시총독 미나미 지로가 임시정부에 밀서를 보내서 덴노 암살을 사주한다. 하지만 계속 덴노를 암살해서 사회적 혼란만 일으키다가 소련의 침공에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진 백범이 임정 회의의 결과로 해당 밀서를 덴노에게 그대로 배송하기로 결정.
- 해군, 관동군, 독립군, 소련에게 포위당해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한 일본 육군 조선 진주군이 조선에 항복을 결정한다. 결국 육군 수뇌부는 무장을 해제하여 조선 측에 무기를 모조리 넘겨주고 관동군과 거래하여 포로 형태로 예하 부대를 관동군에게 넘긴 다음 모조리 중국으로 망명해버린다.[28]
-
조선 자치령 수립 후 일본 전역에 발생한
잇키[29]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내각을 장악한 해군의 수장[30]인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31]이 노부히토 덴노를 압박한다. 하지만 안 그래도 허수아비로 세워져 해군에 반감이 많았던[32] 노부히토 덴노는 하나하나 이 악물고 동의하다가 기어이 친왕의 조선내정개입 압박에 폭발,[33] 전부터 구상했던 조선을 한 축으로 끌어들이기를 앞당겨 아예 조선 자치령의 모든 개혁과 행각은 왕토사상에 근거하여 자신의 지시로 이루어졌다고 선언한다. 이로써 조선자치령은 그 동안의 친일파 청산 및 토지분배개혁을 덴노의 지시 및 승인을 받은 게 되었으며, 선거로 구성된 자치령 거국내각 역시 덴노의 인준 및 보증을 받은 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자치령( 구 임시정부+ 독 립 군+ 독립운동세력)+ 일본 근왕 공산당+일본 신민 세력+ 덴노 VS 일본해군+일본 기득세력+ 후시미노미야 친왕의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경악스러운 캐삭빵 구도가 되었다. 독자들의 평은 조선천황의 등장. 적어도 군주로서 영친왕보다는 조선자치령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34]
- 5년 만에 일본에서도 당장 타오른 불길은 잡았지만 사실상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했다. 심지어 일본을 멋대로 보증인으로 내세우고 마음껏 차관을 끌어쓴 조선, 그리고 만주는 그 콩고물을 받아먹은 덕에 제대로 된 산업화에 한참 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주된 경공업 수출시장이던 조선과, 중국을 잃은 판에 차관을 국가발전에 제대로 사용한 조선과 만주와는 달리 미국에서 얻어온 차관을 각 세력에 민심 달래기용 꽁돈으로 뿌리는 바람에 완전히 빚만 덤터기 쓰고 말았다.[35] 자기들을 멋대로 보증 세운 만주와 조선의 효율적인 실물경제 발전만이 내지의 희망이 된 것은 덤.
4. 소련 → 러시아 공화국
- 일본의 내란이 심해지자 식량난을 해결할 겸 스탈린은 현실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서 만주 침공 계획을 승인하고, 이에 호응하여 박헌영과 김일성이 홍범도 암살모의를 꾸몄다가 실패한다. 이후 총선 때 박헌영을 지원하나 결과물이 시원치 않자 손절해 버린다.
-
영국과 독일이 협상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영국의 진의를 알아보기 위해 중국 공산당을 부추겨 만주를 공격하지만, 정작 만주가 스탈린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이은과 반공주의를 중심으로 단결해버려서 스탈린이 당황하게 된다.
만주: "몽골의 가한이시자 러시아의 숭고한 차르이시며 중화의 천자이자 만주의 대군주이기도 하시며 조선의 왕인 동시에 일본의 정이대장군이신 여섯 민족의 보호자[36] 이은 폐하 만세!"
스탈린: "그 뭔 씹…?!"
149화 기만전
- 바실리 블류헤르도 대숙청의 대상이 되자 마오쩌둥 지원 명령을 거부하는 항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크렘린에 반기를 들기 시작, 영국의 주선을 통해 스탈린 최대의 정적인 레프 트로츠키가 소련 극동관구로 귀국, 극동관구에 제4 인터내셔널을 확장하면서 나라가 두쪽이 난다.
-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의 소련 침공이 개시되어 양면전선에 처한 소련은 이도저도 못하고 패배만 거듭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게오르기 주코프는 아예 패배하여 만주 & 백계 러시아쪽의 포로가 되었다가 전향했을 정도.
- 스탈린은 베리야에 의해 감금되어 실권을 잃었고, 베리야는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 소련을 지배하려고 하나, 만주에서 블류헤르가 아나스타샤와 미리 말을 맞춰서 소련 전체를 대상으로 선거를 하자고 제안한 것을 코웃음치며 무시하며 자살을 향한 빌드업(?)을 시작한다. 결국 베리야도 각계의 불만을 억제하는데 실패하고 미하일 칼리닌을 중심으로 반역의 기미가 보이자 독일로 망명하려다 다가오던 부하들을 반란군으로 오해하고 자살하고 만다.
- 이후 유라시아 총선거를 통해 러시아 공화국이 수립되고 휘하의 SSR들이 독립, 아나스타샤가 초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5. 중국
- 만주가 소련의 침공을 받게 된다. 이왕을 데려와 건국된 남만주국, 소련이 손에 넣은 북만주로 나뉘어 대치하게 된다. 한국도 파시즘에 휩쓸린 세력 탓에 여론 관리에 고전중.
-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내전 판도가 크게 바뀌게 되었다. 장제스는 만주를 잠깐 러시아를 포함한 이들과 조선 손에 넘겨주지만 반드시 되찾아올 각오를 하고 있으며, 마오쩌둥은 국민당에 밀리는 본토가 아닌 러시아의 지원도 있는 만주지역으로 세력을 이전하고 있다. 그런데 마오쩌둥이 소련의 지원을 받고 만주국에 침공을 하나 똘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패튼의 미친 진격과 대국을 본 맥아더의 지휘, 그리고 블류헤르가 대놓고 스탈린에 대한 항명을 저질러 극동관구 전역이 독립해서는 만주와 손잡고 마오를 배신하면서 기반을 모조리 잃고 다시 중국으로 기어들어가게 된다.
- 괴링 집권 후 동맹이 파기당하지만 무기 장사를 시작한 독일에게 대량으로 독일제 무기들을 사들여 무장한다.
6. 만주국
- 만주가 이시와라 간지와 이범석 등 일부의 독단으로 자체적 국가로 기능하도록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만주와 내몽골, 동투르키스탄을 소련이 강점한데 이어 영국과 미국 같은 서구 열강한테도 버림받자 분노한 장제스가 독일에 접근하면서 원 역사 이상으로 나치 독일과 가까워지지만, 히틀러 사후 내부문제에 집중하기로 한 괴링의 결정으로 동맹이 파기당한다.
- 만주에 쫓겨난 영친왕이 이방자 여사의 설득으로 인해 이시와라 간지가 시작한 육족협화[37]를 내걸고 러시아계 유민들까지 받아들여 영향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 한편 내부는 매우 혼란스러운 것으로 묘사되는데, 공산당 계열 정치깡패와 이범석의 파시즘 계열 정치깡패들이 서로 총기를 동원해 패싸움을 벌이는게 일상처럼 그려지고 있다.
- 아나스타샤를 백계 러시아인들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아나스타샤 황녀라고 속이는 만주 방송협회의 계획이 어쩌다보니 일본군, 일본, 정교회, 진위는 몰라도 정치적으로 써먹기 좋다고 느낀 소련 일부 세력, 제4 인터내셔널, 소련과 전쟁중이던 폴란드의 속내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면서 진짜 황녀라고 대형 사기극이 벌어진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었으니, 1940년. 내지(일본)에서 친자검사를 해 본 결과 표본이 손상되어[38] 친자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으나 친족 관계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당연히 크렘린에서는 자신들이 아나스타샤 황녀를 살해했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진짜 황녀일리는 없고, 그냥 로마노프 왕조의 성은을 입은 문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이 증거가 될 아나스타샤 황녀의 시체를 공개했다가는 자신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차르 일가를 살해했나라는 게 드러나 소련의 위신 추락은 물론이고 백계 러시아인들만 더 단결시킬 판이라 이도저도 못하며 가짜라고만 주장하고 있다.[39] 당연히 이렇게 된 이상 친자검사라는 증거를 들고 나온 자유세계가 반증도 없이 아무튼 가짜라고 주장만 하는 소련보다 더 설득력을 얻게 되며 아나스타샤가 사실상 진짜 황녀 취급받고 있다. 게다가 아나스타샤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의 속내를 자신이 가짜라는 것만 제외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연설에 백계 러시아인들이 하나같이 제정러시아 뽕이 가득 차올라서 확실하게 백계 러시아인들의 구심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40] 오죽하면 가짜라고 확신하는 바실리 블류헤르가 진짜 황녀라도 데려다 놓은거 아니냐며 나도 진짜 저 쪽 편에 붙어볼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정도로 진짜보다 더욱 진짜 황녀같은 대민 선동능력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폭풍의 핵이 되어가는 중. 황녀 본인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냐며 한숨을 쉬었지만 그 직후 세계 각지에서 지원금과 각종 물자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 양면전선에 처해 소련군의 저항이 약해진 데다 미국의 물자지원+유대계의 자본지원+패튼&부됸니 성기사단의 앞뒤 안 가린 닥돌에 힘입어 시베리아를 돌파, 우랄 산맥 너머까지 진격하였다고 한다.
- 1부 결말에서 조선과 함께 러시아 공화국으로 따로 독립한다.
7. 미국
-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대공황 극복을 위해서 일본에 빨대를 꽂을 계획으로 한국에 합작 은행을 설치하는 등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이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관여한 일로, 일본이 휘청인 틈을 타서 태평양으로 미국의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기 위한 것. 루스벨트는 이를 보험이라 칭했다. 운산금광을 초기 담보로 내세워 한미합작은행이 설치되고 블루오션이나 다름없는 광대한 극동시장에 월가의 막대한 자본과, 대공황으로 쌓여 악성재고로 남아있던 물품이 흘러들어가자, 악성재고가 흘러들어가는 걸 넘어 신규 생산이 시작되자 공장이 돌아가고, 자본이 순환되면서 소비가 촉진되자 대공황의 여파를 극복하고 점차 경제가 즐거운 기지개를 키며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다. 조선과 만주가 5년 동안 무제한으로 카드깡을 긁으며 미국 물품의 수요를 늘려준 결과 미국은 대공황의 후유증을 떼어내고 극동을 경제블록으로 묶어버리며 다시 호황기에 접어든다.
- 극동지역에 아나스타샤 황녀가 등장한 뒤 미국으로 망명했던 백계 러시아 인사들을 황녀에게 보내 정부를 꾸리게끔 지원하고 있다. 간혹 반발하는 자들에겐 금융치료를 통해 설득하는 모양. 거기다 만주에서 명목상 민병대장으로 활동중인 패튼을 붙여줘 애매모호한 선에서 백계 러시아를 지원해주고 있다.[41]
- 태평양 전쟁처럼 직접적인 참전이 없는 탓에 아직도 돈만 많은 졸부 국가라는 인식이 있다. 안창호도 김구와 대화할때 돈은 많지만 소련하고 싸우기엔 좀 그렇지 않냐며 미국의 전투력에 회의적이었고, 회귀 전에 미국의 저력을 봤던 김구도 절대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작중 언급으론 미국인들에게 물어봐도 어지간한 국수주의자가 아닌한 영국이 최강이라 생각할거라고.
8. 독일
- 검은 오케스트라의 히틀러 암살모의가 영국과 프랑스의 사주 때문에 현실보다 더 빠른 시점서 진행되기 시작하더니, 1939년 9월 20일, 폭탄 테러에 의해, 히틀러가 타고 있던 관용차량이 새까만 숯덩이가 되며 히틀러가 원 역사보다 6년이나 일찍 사망한다.[42] 하지만 발퀴레 작전은 실패하여 나치 정권은 유지된다.
- 이후 하인리히 힘러는 친위대장으로서 암살을 방지하는데 실패한 책임을 지고 권력경쟁에서 탈락하고, 법령대로 헤르만 괴링이 독일국 퓌러 자리를 계승[43], 히틀러의 죽음에 위기감을 느끼고 마약을 끊고서 무리한 군비확장으로 인해 경제가 위기에 빠졌단 소식을 관료들에게 전해듣고는 확장을 위한 전쟁 대신 경제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한다.[44]
- 폴란드를 침공하는 대신 협상에 들어가나 독일에 경계심을 지니고 있던 폴란드는 독일의 제안을 무시하려고 하는데, 영국이 전해준 정보를 통해서 극동에 트로츠키가 복귀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독일은 폴란드에게 러시아의 서부 경계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전해준다. 그러면서 뮌헨 협정 당시 같이 재미 본 사이라며 꼬득이는 건 덤.[45] 그 결과 폴란드가 소련 침공을 개시하여 승승장구하고 있으며,[46] 독일은 단치히를 돌려받고 폴란드에 무기수출을 하며 독일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윈윈 관계를 구축하였다.
-
만주에서 유대인들을 계속 데리고 가는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으나, 만주에서 온 사자가 자국민을 유대인보다 혐오한다라는 분위기를 풍기자 독일인에게 유대인=만주국에게 중국인이라는 구도를 눈치채어, 인구비에서 이미 중국인에게 압도당하는 만주국이 민선을 앞둔 상황에서 중국인과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유대인들을 뒤섞어서 하나 되는 걸 막으려고 한다라고 깨닫고 만주국에 독일 영토의 전 유대인들을 보내는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는 괴링의 착각이었으며, 정작 만주국 입장에서는 육족협화가 완성되어 가는 중이라 여기는 중이다. 독일에서도 마구 격리하여 괜히 대량학살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보조금까지 지원하면서 만주로의 이주를 권장하며 전 세계에서 유대인들의 기금이 만주로 쏟아질 예정이라는 모양. 이에 대해서는 알베르트 괴링[47]도 잠시만 고생하면 다시 고향인 독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 끝내는 괴벨스가 만들었던 나치 독일의 표어인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지도자를 민족자결주의를 의미하는 구호로서 내세우고 세계 각지의 식민지 해방을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했다.[48][49]
- 이후 소련이 양면으로 짖눌리면서 폴란드가 예상 밖으로 너무 잘 나가기 시작하자 폴란드를 견제하기 위해 폴란드와의 협약을 우회해서 발트해 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다만 소련과 전쟁중인 폴란드에 대한 물자지원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
9. 폴란드
- 히틀러가 사망하면서 독일과의 전쟁 위기를 벗어났고 괴링이 뮌헨 협정에서 같이 재미 봤다면서 제시한 소련 침공안을 받아들이면서 단치히 회랑을 돌려주고 독일의 물자를 수입해 소련과의 전쟁에서 1차 폴소전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너무 지나치게 승승장구해서 공세종말점에 도달할 정도로 광활한 영역을 점령한 탓에 이를 해결하고자 극동지역에 등장했다는 아나스타샤 황녀가 진짜 황녀라고 인증해주었다. 이는 황녀가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이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어 백계 러시아를 단결시키고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을 넘겨줘 같이 소련을 압박하게 만들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폴란드의 속셈이 자신에게 우크라이나를 떠넘겨서 러시아인들끼리 싸우게 할 생각이란 걸 간파당해 제안이 거절당한다.
- 이후 폴란드의 기세가 예상을 벗어났다고 여긴 독일이 발트 해로 우회하여 압박을 가해오자 모스크바를 한 달 안에 함락시킨다는 무리한 작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10. 대영제국
11. 프랑스
- 알자스-로렌 지방의 영유권을 가지고 독일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측의 고집이 강해 지지부진 한 상황.
[1]
원 역사의 아키히토는 약 1년 뒤 태어났다. 아키히토 이전에 낳은 자식들은 딸이다.
[2]
물론 윤봉길 본인도 '총독부에 협력자가 있다'라는 정보를 받자 처음엔 '이거 백범 선생이 보내신 거 맞나? 맞다면, 혹시 백범 선생도 속으신 거 아냐?'라며 혼란스러워 했고, 결국엔 '
일본공산당과 같은 좌익 계열이 지원하나 보다'라는 '상식적인' 결론을 내린다.
[3]
홍범도와 독립군 수뇌부를 체포하려 온 육군을 지나가던 해군 비행기가 폭격해 날려버리는 어이 털리는 광경에 방금 전까지 진영논리로 다투던 독립군이 경악하며 다툼을 멈췄을 정도.
[4]
협상 장소가 영국이 통치 중인
상하이의 영국
조계지이며 협상장에 상하이 주재 영국 영사가 참관인으로 나왔다. 협상장 역시 영국군이 쫙 깔려 두눈 부릅뜨고 감시 중이었다.
[5]
즉, 일본의 '
식민지'에서 벗어나 일본의 '
영향권에 속한 독립국'이 되는 것이다.
[6]
일본 대표인
와카쓰키 레이지로 전 총리가
아일랜드와
헝가리를 예시로 드는데, 아일랜드는 형식상
대영제국 산하의
자치령이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외교권과 군사권까지 가진 완전한 독립국이었고, 헝가리는
이중제국 체제 아래에서 외교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공동으로 하였지만 완전한 자치를 누리고 있었고 자체적인 군대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조건에서 한국은 아일랜드나 헝가리보다는 더 불리한 조건에 놓인 셈이다.
[7]
본래 조선은 형식적으론 합방되어 일본인과 같은 헌법과 권리를 누려야 했지만 실제론 일본과 똑같은 헌법이 아닌 총독의 제령을 기반으로 한 통치가 이뤄졌다.
[8]
조선 총독이 형식적으로 천황의 재가를 얻어 조선에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군권을 포함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
[9]
이 때의 대화가 압권인데 김구는 만주의 상황과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려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너 이 새끼 빨갱이 아니야?"라는 소리를 했고 사이토는 덴노 암살범에게 "이제는 그대도 천황폐하의 신민이오."라고 했다.
[10]
그랬기에 안창호는 우리 당 이름은 Hirohito Corpse Party 아니냐며 김구를 놀렸고 이때 김구는 저게 틀린 말이 아니라 아무 말도 못했다. 의역하면 히로히토죽였당 정도.
[11]
裕仁는 음독을 하면 ゆうじん(유-진), 流人은 일본어 한자어로 るにん(루닌, 유배인) 혹은 りゅうじん(류-진, 방랑자)이 된다.
[12]
이 배달민족이란 개념대로라면 부여에서 고구려, 백제로, 고구려는 신라와 합쳐 조선으로, 백제는 일본으로 계보가 내려오므로 일본이 주체이자 근원이 될 수 없고 조선이 근원이 된다.
[13]
독자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조선-POP, 그러니까 J-POP이라고 하고 있다. 하필 부른 사람이
조선에 잔류한 일본인
여고생이라 독자로 하여금 기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14]
단순히 방조하는 것을 넘어 증폭 송출까지 한다.
[15]
이 봉기의 주동자들을 만주로 보내자 만주의 관동군들이 그들을 조선으로 다시 추방하게 되는데, 이를 일본 해군에서 '조선과 만주도 토지개혁을 하고 있고 관동군들이 빨갱이들을 아무 탈없이 조선으로 보낸걸 보니 조선-관동군-빨갱이들이 다 한통속이다' 라며 군대를 보내려 했다. 노부히토가 식민지의 권한까지 뺐길 수 없다며 반대하지 않았으면 또 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
[16]
소제목부터 대놓고 "
조선을 얻는 자 신주를 지배하리라"이다.
[17]
당시 톰슨 기관단총은 마피아나 우편배달부들 아니면 구매하는 자가 거의 없었는데, 이런 악성재고를 천자루나 산다 하니 무기회사에서 금손 취급하며 라이센스 생산까지 하게 해준 것.
[18]
당시 경험 상
BAR은 너무 무거워서 대원들이 쩔쩔 맸다고 한다.
[19]
사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돌격소총 개념을 미리 생각해내는 편이 낫지만, 문제는 김구가 돌격소총이란걸 접해보기는 커녕 OSS와 협업하던 경험 빼고는 당시 전쟁 진행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아서 '
유럽에서 히틀러가 전차를 앞세워서 프랑스를 6주만에 항복시켰다'든지 '
일본이 원폭을 맞고 항복했다' 등의 큰 사건 정도만 기억하고 있던 것.
[20]
조선에 생산공장을 차려놓기만 하면 거기서 생산된거라는 핑계로 중국이나 일본에도 마음껏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21]
실제로 환태평양 경제권에 대해서 작가가 미는 공식 별칭중 하나가 대동아 보증권이다. 188화, 똥개의 본문 가장 마지막 줄에서 작가가 대놓고 대동아보증권이 확산하는 순간이었다.라고 표기하며 확인사살.
[22]
이는 한국어도 마찬가지로, 한국어의
와/과가 부사격 조사로 쓰인다면 해양세력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접속 조사로 사용되면 해양세력과 같이 전쟁을 벌인다. 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23]
작중에 언급은 없지만 만약 이런 짓을 했다가는 전쟁 배상금이라든가가 더 얹혀지고 괘씸죄로 이자도 오르고 체불 독촉까지 올 수도 있어서 더 위험할 정도.
[24]
심지어 이때 발언을 잘 보면, 0의 개수로 천억 단위까지 간 뒤에 "그 앞자리는 자그마치-"라면서 앞자리가 절대 1이 아니라는 늬앙스로 언급된다. 즉, 최소 2000억불에서 최대 9000억불까지 갈 수 있다는 소리. 이게 얼마나 정신나간 수치인지 비교해보자면, 한창 전쟁중이던 1944년 기준 미국 1년 예산이 913억 달러였다. 현대로 풀어쓰면, 일본이 몇십 경(=1016) 원 정도의 빚을 졌다는 것이다.
[25]
자신도 그 자금에 빌붙어서 행동했기 때문에 모를 수 없었다.
[26]
이시하라 간지는 "언제부터
조선인이 황국 신민이 아니었나!"라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망발이라고 밖에 못할 소리로 휘하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27]
실제 역사에서도 없었다. 다만 원 역사에서는 4년여 후에 아이가 생겼다가
2.26 사건의 여파로 유산했다.
[28]
여기서 나비효과가 하나 발생하는데 무기 없이 몸만 관동군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관동군은 병력이 있지만 무기가 없어서 소련의 침공을 막을 여력이 없다. 무기획득한 조선 자치정부만 좋은 셈.
[29]
이때 '일본 독립 만세'라는 구호가 나온다.
[30]
작중에서 진짜로
정이대장군(쇼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31]
사실 작중에서는 히로야스를 친왕이라 표기했으나 실제 히로야스는 '
친왕'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왕' 칭호를 받았는 데 아무래도
세습친왕가의 황족이다보니 그냥 친왕 작위를 가진 걸로 오인한 걸로 보이지만
1930년대 세습친왕가 가주들은 작중에서 등장하는 육군 수장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을 제외하고는 전부 '왕'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32]
게다가 사사로이는 친형이자 이전
덴노는 해군의 도쿄 함대 포격에 탈출하다가 해군에 의하여 오인사격으로 살해당했고 하필 노부히토는 해군 출신이라 원치않게 권력에 눈이 멀어 형을 죽인 패륜아라는 오명을 쓰게될 걸 알면서도 해군측이 억지로 덴노의 자리에 앉혔다. 이로 인해 작중에서 노부히토가 해군을 원수라고 속으로 칭할 정도로 반감을 가진 상태였다.
[33]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 정책은 메이지 헌법이 보장하는 덴노의 권리로 심각하게 선을 넘은 것이다. 게다가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현 노부히토 덴노에게 남은 유일한 실권이었기 때문에 인간 옥새 노릇에 염증내던 덴노 입장에선 폭발할만했다.
[34]
만약 덴노가 해군의 자치령 내정개입에 동의했으면 바로 일본해군에 의해 기껏 주권 일부라도 되찾은 조선자치령이 쑥대밭이 되었을것이다.
[35]
군인들 봉급과 농민들 토지개혁용 자금은 그렇다 쳐도 화족들에겐 더 멋진 주택과 자가용을, 재벌들에겐 조건 없는 보조금을 뿌리면서 앞뒤가리지 않고 돈을 뿌렸다.
[36]
작가 본인의 미출간 단편인 '여섯 왕국의 왕이 되었다'의 패러디로 보인다.
[37]
기존의 오족협화에 적백내전을 피해 온 러시아인을 추가.
[38]
정황상
오쓰 사건 당시에 얻어진 니콜라이의 피를 말한다. 혹은 그 시대 영국에 살고 있던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로마노바도 있고.
[39]
원 역사에서도 소련은 니콜라이 2세를 처형한 것까진 시인했으나 그 가족들까지 모조리 처형한 것에 대해서는 숨기고 있었다. 차르는 몰라도 그 가족까지 재판을 통한 처형도 아닌 그냥 몰살시켰다는게 드러나면 국제적으로 비난받을게 뻔했기에 1998년도에 DNA 검사를 통해 차르 일가의 시신이 확인될 때까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었다.
[40]
백계 러시아인들은 아나스타샤가 그랬듯이 정치적 분쟁으로 삶이 위협받는 것에 진저리가 난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육족협화'니 뭐니하는 얼토당토 않은 선동까지 적지않은 지지세력을 챙길 정도로 안정된 나라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나라(미제 자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명분을 쥐어주자 광신도화해서 막노동과 곡괭이질도 즐기고 있다. 작중에서 나온 묘사만 하더라도 풍족한 지원 하에 수녀들이 망치를 들고, 사제로 보이는 노인들은 축성을 하며, 어린이들은 기꺼이 심부름을 하고 청년들과 중년들은 노동의 기쁨을 즐기고 있을 지경. 게다가 소련에서 시베리아쪽의 진격을 막기 위해 횡단철도를 끊어놨는데, 이런 광신도들이 즐기고 기뻐하며 철도를 세 갈래로 깔고 오는 광기를 보여주자 그걸 직접 목격한
주코프가 이건 누가 와도 못 이긴다라고 직감해버렸다. 물론 이들의 이러한 광신은 조선과 만주가 마음대로 쓰고 또 써도 차고 넘칠 정도로 쏟아지는 미국 공장발 생필품과 조선과 만주의 일본 명의로 카드깡을 긁어대며 비효율적인 구조로 손실되는 금액조차 아득히 뛰어넘는 무지막지한 월스트리트발 자본의 공급이 함께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41]
소련측에서 항의하면 패튼은 민병대장이라 자의로 움직이는거지 미국의 뜻이 아니라고 변명하면 그만이고, 빨갱이들에 맞서는 황녀를 안돕냐는 미국 내의 여론은 그 괄괄한 패튼을 보냈다는걸로 설명하면 끝나는 상황이다.
[42]
이때의 묘사가 의도한 듯이 히로히토 폭사 장면의 완벽한 재탕이다.
[43]
히틀러가 겸직하던 나치당 퓌러 자리는
루돌프 헤스가 이어받는다.
마르틴 보어만은 권력이 커지기 전에 히틀러가 죽어버려서 언급되지 않는것으로 보인다.
[44]
사실 전쟁을 포기한 데에는 암살 사건으로 인해 이대로 내부 정리 없이 융커들을 믿고 전쟁을 수행했다간 일본처럼 군벌정치 꼴이 날거란 판단도 있었다.
[45]
뮌헨 협정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폴란드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일부를 나눠먹었다.
[46]
이때 소련은 대숙청이 끝난 직후라 군 인사가 부실해졌고 극동관구가 반란을 일으킨 탓에 양면전선에 빠져버렸다.
[47]
원 역사에서도 나치의 대 유대인 정책에 반대하며 조용히 유대인들을 구명하고는 했었던 선인이다.
[48]
그 이면에는 폴란드로의 무기수출만으로는 모자라다며 기회만 되면 온갖 곳에 팔아먹으려한다는 경제적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분쟁지역이 늘어날수록 무기를 팔 수 있는 시장이 더 많아지기 때문.
[49]
참고로 이 시점의 유럽에서 원래 의미의 식민열강이라고 할 만한 국가는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정도인 상황이고, 독일은 식민지가 없으므로 성공하면 식민열강들의 국력을 대폭 깎아먹을수 있으니 대박이고 실패해도 무기를 팔아먹어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뭘해도 남는 장사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