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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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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파일:Otto_Wegener_Proust_vers_1895_bis.jpg
본명 발랑탱 루이 조르주 외젠 마르셀 프루스트
Valentin Louis Georges Eugène Marcel Proust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출생 1871년 7월 10일
파리 16구역 오퇴유 구 라 퐁텐가 96번지
사망 1922년 11월 18일 (향년 51세)
파리
직업 소설가, 평론가
서명
파일:마르셀 프루스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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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colbgcolor=#fff,#1f2023>프랑스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
장례일 1922년 11월 21일
학력 파리 정치대학
사조 모더니즘
활동 기간 1890년 – 1922년
혈통 유대계 프랑스인
언어 프랑스어
종교 가톨릭[1] 무종교 ( 무신론)
부모 아버지 애드리언 프루스트 (1834-1904)
어머니 잔느 웨일 프루스트 (1849-1905)
형제 남동생 로베르 프루스트 (1873-1935) }}}}}}}}}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습작, 비평 활동2.3. 소설가 활동2.4. 사망2.5. 작가 연보
3. 특징4. 주요 작품
4.1. 즐거움과 나날들4.2. 장 상퇴유4.3. 존 러스킨 작품 번역4.4. 생트뵈브에 반대하여4.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평가와 영향력6. 그에 대한 말들7. 어록8. 여담9. 외부 링크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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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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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20세기 전반의 소설 중 질과 양에 있어 모두 최고로 일컬어지는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작가다. 그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고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는 1871년 7월 10일 파리 근처 오퇴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애드리언 프루스트[4][5] 박사는 보스 지방 출신 위생학의 대가로 매우 부유한 파리 의과대학 교수였으며, 어머니 잔느 웨일 프루스트[6] 알자스 출신의 유대계 부르주아 집안 규수였다. 그녀는 섬세한 신경과 풍부한 교양을 갖추어 모자간 마음의 교류가 프루스트의 정신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외가 쪽으로 인척이 된다.

프루스트는 유복하고 단란한 환경 덕분에 일찍이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맛보며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9세에 첫 발작을 시작으로 갑작스럽게 발병한 천식 때문에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행한 소년이기도 했다. 프루스트는 청년 시절 밤이면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절의 파리지엥답게 성장을 하고 한 손에 우아하게 지팡이를 잡고 문을 나서며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마들렌 사원을 한번 바라보고 그 앞 그랑 대로(Grand boulevard)를 걸어다니기도 했다. 프루스트는 아름다운 계단과 욕실이 있는, 말레르브 대로 9번지의 이 새 아파트에서 세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살았다. 51년의 생애 중 반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의 징표로 성역화했고, 평생 지병인 천식 발작을 일으켰고, 명문 콩도르세 중고등학교에서 시인 말라르메를 만났고, 문청의 열병을 앓았고, 첫사랑을 겪었고, 사교계 귀부인들이 베푸는 파티의 맛을 보았고, 그 자신 또한 파티를 주재하며 파티 전후의 미묘한 흥분과 피로감을 경험했으며, 작가를 꿈꾸었다.

아버지의 고향 이리에, 할머니와 피서 갔던 노르망디의 해변, 파리 샹젤리제가 유소년기의 경험을 쌓은 장소들로 모두 후에 소설로 옮겨져서 중요한 무대가 된다. 풍족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9세 때 천식에 걸렸는데, 이는 평생의 숙환이 되었다. 또 어떤 시기부터 자각하게 된  동성애의 습벽이 그의 인생에 어두운 부분을 형성하게 되었다. 타고난 민감한 감수성과 늘 그에게 책을 읽어주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루스트는 일찍이 독서를 즐겨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2.2. 습작, 비평 활동

파일:1136_proust.jpg
파일:gettyimages-3433164.jpg

파리의 콩도르세중학으로 진학하여 상류사회의 자제들이 모이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몇 사람의 친구와 함께 동인지 《향연(饗宴)》을 발행하였다. 또 사교계와 문학 살롱에 출입하면서 카이야베 부인, 스트로스 부인 등 여러 인물들과의 만남이 작가로서의 인간관찰의 안목을 길러 주었다. 《향연》이라는 문학 동인지를 친구들과 함께 창간하게 되면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회계검사원이 되기를 바랐지만 프루스트는 사교계에 진출해 문학적 재능을 한층 키우고 싶었다. 당시 사교계의 화려한 생활도 선망의 대상이긴 했지만, 작가수업으로써 그곳에 모인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이 벌이는 온갖 진기한 일들을 몸소 관찰하고 경험해 보고 싶었다. 준수한 외모에 섬세하고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했던 프루스트는 이내 사교계의 총아로서 인기를 얻었고, 이런 그를 두고 문단에서는 문학을 교양으로 즐기는 속물이라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남들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사물이나 사소한 일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는 탁월한 지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생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과의 만남으로 그는 명민한 의식을 지닌 자유로운 흐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타고난 감수성이 더해져 사물이나 인간내면을 관찰하여 기술하는,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소설을 세상에 내놓는다. 《향연》시대의 문장은 A.프랑스의 서문을 얻어 《즐거움과 그 나날》(1896)에 종합되었는데, 동료들간에서도 묵살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병약 무위하게만 보였던 프루스트가 일관하여 문학적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이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발굴된 방대한 미발표 원고에 의해 밝혀졌다. 《장 상퇴유》는 1,000매를 넘는 대작으로 3인칭 수법으로 저술되었는데, 1896년 1900년에 걸친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 《생트 뵈브에 반대하여》는 1908년 1910년경의 습작인데, 모두가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대성될 일관된 노력이 남긴 행적으로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프루스트는 비평가로 문단에 입문해 활동하다 소설가가 된 드문 예에 속하는 작가다. 그의 비평적 성찰은 작가가 된 이후에도 계속돼,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삶과 예술의 진정한 관계를 조망하고자 했다. 북이탈리아를 동경하고 베네치아, 파도바 등지를 여행하면서 문학과 예술에 관한 폭넓은 견문을 쌓았다. 19세기 영국의 수공예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의 스승 영국 작가 존 러스킨에 심취하여 그의 저서《아미맹의 성서》《참깨와 백합》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던 프루스트는 그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진정한 유일한 현실'이라 받아들이게 된다. 프루스트는 30대 초반에 부모를 연달아 여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특히 어머니의 사망은 심한 충격을 주어 한동안 문학활동을 중단하기도 했고, 심한 자책감과 상실감으로 괴로움을 겪었다. 어린시절부터 병약한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던 어머니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그의 삶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자신의 행복한 기억들을 찾는 데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3. 소설가 활동

프루스트는 38세 때부터 외부세계와 단절에 들어갔다. 미세한 먼지와 꽃가루에도 천식발작을 일으켰고 바깥의 작은 소음도 견디지 못하는 민감한 신경을 지닌 탓에, 그는 이중창문과 사방에 코르크를 두른 방에서 나머지 여생을 보내며 작품 집필에만 몰두한다. 그는 밤에만 밖으로 나왔는데, 이는 창작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료수집을 위해 리스의 올리비에 호텔에 들러 낮 동안 손님들이 나눈 대화내용을 종업원이나 지배인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고를 썼는데, 총 2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에 끊임없는 수정과 첨삭작업으로 원고는 다 헤진 조각천 같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중 제1편《스완네 집 쪽으로》가 출간된 당시만 해도 그의 소설이 지닌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들은 적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가혹해서, 불분명하고 복잡한 문체에다 특별한 주제나 내용도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당시 출간을 거절한 이들 중 하나였던 앙드레 지드(자신의 일기에서 프루스트에 대한 동성애적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는데)는 후에 프루스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당시의 일을 두고 자신의 일생일대의 실수라 토로한 바 있다. 어쨌든 이후 독창성을 인정받으면서 프루스트는 '20세기 소설의 혁명을 이끈 작가'로, 당시 주조를 이루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중심의 리얼리즘 소설들과는 전혀 판이한, 이른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신(新)심리주의 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권 《스완네 쪽으로》는 1911년경에 대체로 완성을 보았으나 출판사를 구하지 못하여 1913년이 되어 가까스로 자비출판되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하였는데,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가 발간된 것은 1918년이었다. 이 작품으로 이듬해에  공쿠르상[7]을 수상하여 프루스트는 비로소 평생의 이었던 문학적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폐렴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코르크로 둘러싼 병실 안에서 죽음의 예감과 대결하면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성을 위한 수도자와 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일생과 바꿀 대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프루스트는 작가로서의 영광과 비참을 모두 맛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작품 외에 2권의 문집, 10여 권의 서간집과 미발표 원고가 있다. 

프루스트가 1910년부터 51세로 사망하기 전까지 병약한 몸을 이끌고 13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한 시대의 역사이자 동시에 한 의식의 역사"다. 우리는 스완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19세기말 새로운 지도계층으로 부각하기 시작한 부르주아의 면모와 당시의 시대상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스완을 비롯한 베르뒤랭가의 사람들을 통해, 부와 명예를 손에 넣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교양과 지적 능력이 모자란 당시 일부 부르주아들의 허풍과 위선, 속물근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프루스트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자신의 행복한 유년시절이자, 존재의 바탕을 형성하던 근원적 세계다. 프루스트는 '무의식적 기억을 통한 회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들을 현실의 시간 속에 회귀시키고자 한다. 작품 속에서 사건 전개의 필수요건이라 생각해온 인물들간의 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스완의 사랑》에서도 스완의 사랑은 오데트와는 직접적인 관련없이 순전히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변화를 통해서 생성되고 변화하는데, 현실에서 덧없이 끝난 그의 사랑은 뱅퇴이유의 음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의 세계는 오직 인간의 내면에만 존재하며, 예술적 창작을 통해서 구현 가능하다고 본 프루스트의 예술관을 접할 수 있다.

2.4.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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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당시 마르셀 프루스트.

1922년 11월 18일 토요일 기관지염을 치료받지 못한 나머지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때 그는 파리의 44번 가에 있었다.  장례식은 11월 21일 화요일, 성 Pierre-de-Chaillot 교회에서, 헌병대 병사들이 참여한 명예와 함께 열린다. 프루스트는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매장되었으며 많은 작가들과 시민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파일:the-tomb-of-marcel-proust-at-pre-lachaise-cemetery-AY1J5C.jpg
마르셀 프루스트의 묘지.

2.5. 작가 연보

년도 사건
<colbgcolor=#fff,#1f2023> 1871년 <colbgcolor=#fff,#1f2023> 7월 10일, 의사인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 어머니 잔느 웨일의 첫째 아들로 파리의 라 퐁텐 가 96번지에서 출생.
1873년 동생인 로베르 프루스트 출생. 로베르는 후에 의사가 됨.
1881년 첫번째 천식 발작.
1882년 10월에 콩도르세 고등학교 5학년에 입학.
1886년 전년도에 병으로 심하게 앓았기 때문에 2학년을 다시 다님.
1888년 바칼로레아 1부 통과. 콩도르세에서 <라일락 문예지>를 만듦.
1889년 바칼로레아 2부 통과.
1890년 1년 기간의 지원병 근무. 11월에 제대함. 부모의 강권에 따라 법학부와 정치학교에 등록.
1892년 21세. 문예지 <항연> 창간. 프루스트는 거의 정기적으로 여기에 글을 실음. 이 텍스트들은 훗날 <즐거움과 나날들> 속에 다시 모아짐.
1893년 22세. 2월에 <향연>에 [비올랑트 또는 사교성]을 발표. 3월에 <향연>의 마지막호를 냄.
1894년 23세. 5월에 <르 골루아>에 [베르사유에서의 문학 축제] 발표. 6월에 같은 신문에 [화가들의 초상화들], 10월에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을 발표.
1895년 24세. 철학사가 됨. 6월에 마자린 도서관 사서가 되었으나 곧바로 휴가 신청.
1896년 25세. <장 상퇴이유> 집필 시작. 6월에 <즐거움과 나날들> 펴냄. 7월에 <백색 문예지>에 [모호함에 반대하여] 발표.
1897년 26세. 뤼시앙 도데와 프루스트가 동성애 관계에 있기 때문에 뤼시앙의 아버지인 알퐁스 도데가 프루스트의 책에 서문을 써줄 것이라고 빈정거리는 장 로랭과 결투.
1898년 27세, 드레퓌스주의자인 프루스트, 졸라 재판을 방청. 마담 프루스트가 수술을 받음.
1899년 28세, 드레퓌스 사면. 프루스트는 존 러스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아미앵의 성서> 번역 시작.
1900년 29세. 연구했던 러스킨 사망한다. <장 상퇴이유>를 포기한다. 2월에 <르 피가로>에 [프랑스에서의 러스킨적 순례들], 4월에는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아미앵의 노트르담에서의 러스킨]을 발표. 5월에 어머니와 베네치아 여행. 10월에 다시 혼자서 베네치아에 감. 프루스트 가족, 쿠르셀 가 45번지에 정착.
1902년 31세. 9월 에밀 졸라가 사망한다. 프루스트는 네덜란드를 여행, 베르메르(Jan Vermer van Delft, 1632-1675)의 <델프트의 풍경>( View of Delft) 관람.
1903년 32세. 2월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가 결혼한다. 11월 26일 아버지 아드리앵 프루스트 사망한다. 2월, <르 피가로>에 첫번째 [살롱]인 [마틸드 공녀] 발표. 5월, [마담 르메르의 살롱], 9월, [폴리냑 대공 부인의 살롱] 발표.
1904년 33세. 프루스트의 번역과 서문으로 <아미앵의 성서> 출간.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들> 번역 시작. 8월에 <르 피가로>에 [성당들의 죽음] 발표.
1905년 34세. 9월, 어머니 마담 프루스트가 에비앙에서 요양, 9월 26일 신장염으로 사망한다. 12월, 불로뉴에 있는 솔리에 의사의 개인 병원에 요양하기 위해 들어감.
1906년 35세. 1월 24일 솔리에 의사의 병원 나옴. 8월, 베르사유에 거주. 12월, 오스만 가 102번지로 이사. 마르셀 프루스트 번역과 주석을 단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들> 출간.
1907년 36세. 카부르에서 바캉스, 이때 택시 기사인 아고스티넬리를 만남.
1908년 37세. 르무안이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고 사기를 침. 거기서 영감을 받은 [르무안 사건]을 <르 피가로>에 게재. 생뜨-뵈브에 관한 계획서로서 미래 소설의 기초를 품고 있는 노트 한 권 작성.
1909년 38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 시작. 1부 <스완네 쪽으로>의 집필 시작. 카부르(Cabourg, 발베크의 모델, 왼쪽 사진은 카부르의 해안)에서 여름을 보냄.
1910년 39세. 카부르에서 여름을 보냄.
1912년 41세. 카부르에서 여름을 보냄. 3월 21일 <르 피카로>에 [백색 가시들, 분홍 가시들] 발표. <스완>의 다른 발췌문들도 <르 피가로>에 실림.
1913년 42세. 11월, 프루스트의 비서인 아고스티넬리가 비행사가 되기 위해 프루스트의 집을 나감.[8] 또 11월, <스완네 쪽으로>가 그라셰 출판사에서 나옴.
1914년 43세. 5월 30일, 아고스티넬리 비행기 사고로 사망. 8월, 선전 포고. 9월 카부르로 감. 10월, 절친한 친구인 베르트랑 드 페늘롱 전사, 6월과 7월에는 <게르망트 쪽>의 발제문들이 N.R.F(Nouveau Revue Francais)에 실림.
1916년 45세. N.R.F와 계약 체결.
1918년 47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2부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가 출판. (N.R.F.)
1919년 48세. 오스만 가의 집을 비워져야 함. 잠장적으로 로랑-피샤 가에 있는 레잔의 집으로 감. 10월에는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로 공쿠르 상 수상. 아믈랭 가 44번지에 정착하여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게 됨. <모작들과 잡문들>(N.R.F) 출간. 자크-에밀 블랑슈의 <다비드에서 드가까지>의 서문을 달아줌.
1920년 49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3부 <게르망트 쪽>이 출판. (N.R.F.)
1921년 50세. 12월 11일 젊은 시절의 우상이었으며 샤를뤼스의 모델인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사망. <게르망뜨 쪽>(II), <소돔과 고모라>(I), 폴 모랑의 <부드러운 재고들>의 서문, 6월 [보들레르에 대하여]가 출판 (N.R.F.)
1922년 10월, 폐렴에 걸림. 11월 18일 마르셀 프루스트 사망. 향년 51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4부 <소돔과 고모라>가 출판. (N.R.F.)
1923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5부 <갇힌 여자>가 출판.
1925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6부 <사라진 알베르틴>이 출판.
1927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부 <되찾은 시간>이 출판.
1952년 <장 상퇴유>가 출판된다 (베르나르 드 팔루아 출판사)
1954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플레이야드 판 출간, 피에르 클라락과 앙드레 페레에 의한 원고 검토, 편집. <생트뵈브에 반대하여>가 출판된다. (베르나르 드 팔루아 출판사)
1987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플레이야드 판 재출간(4권으로 구성), 장-이브 따디에 지도하에 원고 검토, 편집.

3. 특징

프루스트는 인상주의 예술, 아르누보 운동, 만국박람회 등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를 살았던 작가다. 철학, 미술, 음악, 심리학 등이 하나의 언어로 말하고 서로 교섭하는 유일한 책을 쓰려고 프루스트는 평생을 바쳤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0명 이상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대하소설로서 시간과 기억, 그리고 예술에 관한 성찰이 담겨 있다. 흘러가 버린 과거의 시간 안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회상 형식으로 묘사되고, 스완의 사랑과 질투, 동성애 등 다양한 주제들이 담겨 있다. ‘잃어버린 시간’은 가공의 인물,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 마르셀을 내세워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가고 있다. 파리의 살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류층 인물들의 모습과 삶에 대한 그들의 경멸과 매혹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작가 프루스트 자신이 경험했던 인물들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으며 이들에 대한 묘사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와 그림이다. 그는 시간의 흐름과 일상 위에 교차되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예리하게 관찰하였으며 부단히 변화하고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도 영원한 그 무엇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프루스트는 어둠의 바닷속에 좌초된 잃어버린 시간을 탐험하면서 진정하게 의미 있는 것들만 낚아 올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다. 소설은 어린 시절이라는 옛 ‘고향’에로의 초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비춰주는 삶의 거울이다.

또 그의 소설이 근본적으로 물질과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간, 존재, 영원 등 형이상학적 주제들도 감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감각적 경험들은 나로 하여금 찰나 속에서 불변하는 ‘그 무엇’을 느끼게 함으로써, 아니 내가 그 자체가 됨으로써 영원성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 우연의 왕국은 순간적으로 영원성을 맛보는 영역이기도 하며, 우연히 맛본 차와 과자가 말로 형언하기 힘든 환희를 느끼게 한다. 프루스트의 문학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사라진 후에도 냄새, 맛 등의 감각적인 것들은 죽은 시간의 무덤에서 부활을 꿈꾸는 파수꾼들이다. 시간의 공동묘지 속에서 감각적인 것들은 약하지만, 시간에 줄기차게 저항하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한다. 가장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영원성을 지닐 수 있다는 진리는 허구적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과거의 회상은 추상이나 관념이 아니라 지극히 감각적인 것의 부활이다. 프루스트의 회상은 지난 과거의 경험이 구체적인 감각과 생생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며 허구적 이야기만이 그것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고,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프루스트는 “고전적인 소설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는 한 권의 책을 독자들이 받아들여주도록 해줄 의향이 있는 출판사를 찾는다”고 쓴 적이 있다. 그는 “‘기억의 우발성’을 지니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매우 엄격한 구성’을 갖추었으므로 ‘소설’이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자신도 정확하게 그 장르를 규정할 능력은 없다고 말했다. 1913년에 그는 새로 나올 그의 책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 중요한 저작은 이를테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프루스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이 특이한 것임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즉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거나 어떤 일정한 주제를 다루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중요한 것을 모두 다 말하고 싶어했다. 그의 책은 삶의 총결산이었다. 그는 경험의 총체를 보고하듯이 쓰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전통적인 소설의 테두리 속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이었다. 프루스트의 새로움은 1인칭을 사용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1인칭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었다.[9] 프루스트 자신은 그의 모든 작품이 다 완성되어 발표될 때까지 기다려본 다음에 그 전체에 대한 판단을 내려줄 것은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큰 관심거리는 바로 작품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문제였었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분명히 말했다. 그는 그 구성이 “거대한 척도에 따라 전개되어가는” 것이며 “복합적”이며 “비록 은폐되어 있긴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엄격성을 지닌”구성임을 강조했는데 그것으로서 그는 자신의 구성방식이 어떤 모험적 이야기의 전개나 어떤 성격의 강조와는 다른 그 무엇과 상호관련을 맺고 있다는 시실을 충분히 말한 것이다.[10]

“상징주의 세대의 소설”
① 리얼리즘 비판

잃어버린... 는 그 중요성으로 인해 그 앞세기에 있어서 “인간희극”[11]이, 그리고 그보다 한층 더 “ 루공 마카르[12]”가 차지하고 있었던 비중과 맞먹는 소설적 대집성을 이룬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발자크와 졸라가 마음속에 품었던 그것과는 매우 다른 야심에 부응하고 있다.... 이 작품은 리얼리스트 문학에 맞선 거대한 반작용적 운동에 그 맥이 닿아있다.... 발자크에서 졸라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헌들을 쌓아둔 창고”였다. 그러나 상징주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받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호적부와 경쟁을 해보겠다는 야심은 헛된 것으로 보였다... 작자는 누구나 사는 평범한 삶에 대한 지식들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소 희귀한 어떤 인상의 질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계층’이라든가 돌아가는 세상 형편이라든가, 돈이라든가, 삶의 물질적이고 범속한 조건 따위에는 거의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13]

② 이데올로기 비판

프루스트는 소설 작품 속에 담겨있는 이데올로기를 배격한다. 그는 “소설은 현실의 사진이어도 안 되고 어떤 이상의 표현이어도 안 되는 것이었다. 프루스트의 독창성과 위대함은 개별성과 일반성, 현실성과 사상성을 통합하고자 한 데 있다. 작품은 미리부터 구상한 어떤 사상으로부터 생겨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프루스트는 리얼리즘과 상징주의를 동시에 배격했다. 그는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이기에 더욱 심오한 예술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이렇게 썼다.
“다시 한 번 더 상징주의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시간과 공간의 우발성’을 무시함으로써 우리들에게 영원한 진실들만을 보여주겠다고 자처하면서 상징주의는 또 다른 한 가지 생명법칙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것, 혹은 영원한 것을 실현하되 그것을 개인들의 삶속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법칙을 말이다. 순전히 상징적이기만 한 작품들은 그러므로 생명이 결여되고, 그리하여 깊이가 결여될 위험이 있다.”[14]

질 들뢰즈의 문학론의 중심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놓여 있다. 들뢰즈는 <철학의 사유>에서 감각 존재를 창안하는 자를 예술가라고 말하며 프루스트를 그 예로 들고 있다.

① 재현을 폐기하는 감각적 인상

들뢰즈는 “감각 존재를 창안한 자”(QP.240)로서 프루스트를 언급하고 있다. 프루스트는 『감각의 논리』에서도 언급되는데, 여기서도 그는 “프루스트는 사실 너무 ‘지적인’ 추상적 문학을 원하지 않았고, 더욱이 어떤 스토리를 전개하기에 적합한 구상적, 삽화적, 서술적 문학도 원하지 않았다”(LS.81)고 말하며 재현적인 것들과 단절하기 위한 자신의 방법론을 구축한 자로서 제시된다. 그렇다면 프루스트는 어떻게 스스로 서는 감각 존재를 창안했는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도입부에는 ‘꿈과 꿈에서 깨어나기’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왔다. 때로는 촛불을 끄자마자 즉시 눈이 감겨서 ‘잠드는구나’하고 생각할 틈조차 없는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반 시간 후, 잠이 들었어야 할 시각이라는 생각에 깨어난다.”

잠드는 과정이 30페이지 가량 펼쳐지고 있는 이 부분을 당시 출판업자는 이해할 수 없어했다. 하지만 꿈은 인상들이 산란하게 얽혀있는 기억이며, 꿈에서 깨어나는 일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어떻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것인가의 문제와 상응한다. “꿈과 꿈에서 깨어나기”는 이완과 수축의 리듬을 형성한다. 꿈, 혹은 가수면 상태에서 지성은 휴식을 하고 이완된 신체를 뚫고 인상들이 스며든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신체는 고정된 사물들에 의해 수축된다. 화자의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이 되찾아지는 거대한 순환적 리듬이기도 하다.

신체는 꿈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고정된 코드들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형성되기를 강요받는다. 이러한 질서화된 코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베르뒤랭, 오데뜨, 빌파리지 부인, 게르망트 공작 부인 등의 계열로 이어지는 살롱이다. 이들 살롱에서 인물들은 부르주아지, 귀족, 예술가, 학자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속물근성을 보이는데 이는 그들이 살롱 내의 소통체계인 일정한 코드를 학습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 게르망트 공작 부인에게서 예절이란 코드의 다른 이름이다. 이들의 예절이란 상황이나 대상과 주체 사이에서 각각의 상황 속에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가문의 습관으로서 그들은 상황과 대상에 관계없이 살롱의 코드인 예절을 방사한다. 특히 할머니의 죽음과 관련에서 게르망트 공작의 태도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마르셀의 집에서 그를 손님으로 맞이하기를, 그래서 마르셀이 그의 어머니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는 마르셀이 슬픔에 빠진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소개하지 않자 그들을 예절 따위를 습득하지 않은 괴이한 자로 판명한다.


마르셀 역시 코드화된 미적 관념에 실제를 등치시키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스완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스완은 오데트를 처음 소개받았을 때만해도 그녀를 육체적 염오의 정을 일으키는 여인, 관능이 요구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타입의 여인으로 느낀다. 그가 오데트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두 볼에서 장밋빛 도는 산뜻한 광대뼈 언저리만을 떼어 마음속으로 그려야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오데트의 집에서 “풀어헤친 머리채가 볼을 따라 흐르듯 늘어지게 내버려둔 채, 활기를 띠지 않았을 때에는 지치고 침울해 보이는 그 커다란 눈으로, 머리를 숙여 판화를 들여다보려고 힘들이지 않고 몸을 기울이기 위해서, 가볍게 춤을 추는 듯한 자세로 다리 하나를 구부리는 그녀의 모습”(RTP(2).56)이 시스티나 성당 벽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제트로의 딸 십보라의 모습과 동일함을 본다. 스완은 실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보다 이미 주어진 미적 관념을 실제에게 부착한다. 이는 오데트라는 실제 속에서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의 재현으로 오데트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만 실현될 뿐인 미적 관념이 실제에 부착되지 않을 경우 끊임없이 실망한다. 마르셀에게 라 베르마가 그러하다. 그는 라 베르마의 연극 무대에 관한 책들, 기사들을 통해 먼저 미적 관념을 선취한다. 하지만 연극 무대에 선 라 베르마를 보자마자 그는 실망한다. 관념과 실재는 언제나 이렇듯 어긋난다.

사실 이런 구상적인, 코드화된 세계와 어떻게 단절할 것이가 하는 문제가 프루스트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이 첫 번째 문제는 관념과 실재의 어긋남이 어디서 발생하는가와 관련되어 단절의 지점을 찾게 된다. 관념과 실재를 끊임없이 어긋나게 하는 것은 범람하는 감각들과, 인상들에 의해서이다. 마르셀은 라 베르마의 연극을 다시 보면서 예전에 자신이 라 베르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방해했던 것들이라 생각한 감각적 인상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된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공통적인 관념을 갖는다. 하지만 그러한 공통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 미지의 형태가 집요하게 어른거린다. 그것이 마르셀에게 라 베르마를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정신은 기존의 미적 관념과 다른 어떤 형태의 “날카로운 소리를, 기이하게 울어대는 가락”을 듣게되며 그것이 “아름다움이냐? 내가 느끼는 바가 감탄의 정이냐? 이게 빛깔의 풍요함이냐, 고귀함이냐, 힘이냐?”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이 물음 앞에서 미지의 형태는 그 물음에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 신기한 질문의 가락, 모르는 인간에서 비롯하는 횡포한 인상, 빈틈없이 물질적이라서 그 안에 연기의 넓이를 위해 남아 있는 빈 자리가 조금도 없는 인상”(RTP(5).60)으로 응대한다.

이 인상들은 기존의 미적 관념을 범람하기에 늘 우리를 실망시키고, 어떤 재난처럼 다가오지만 오히려 정신에 포착된 적 없기에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이러한 감각적 인상들이야 말로 프루스트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개성적인 특질들이다. 그렇기에 프루스트는 재현적인 것들로부터 단절하고 감각 존재를 세우기 위해 먼저 물질적인 감각적 인상들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를 마르셀보다 선취한 예술가로서 화가 엘스티르가 등장하는데 그는 “직접 감각한 것에서 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떼어내려고”(RTP(6).137)애쓰는 자이고, 그리하여 이러한 감각 구성물을 순간 속에 담아내는 자이다. 엘스티르의 예술론과는 별개로 이런 감각적 인상들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는 할머니의 죽음 장면에서도 돋보인다. 여기서 마르셀은 할머니의 죽음의 과정을 육체적 역동성으로 포착해내며 스러져 가는 육체 위에 ‘미소’만이 남는 형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물질에서 일어나는 인상들이 프루스트의 재료들이며, 이는 정신의 관습적 관념을 넘어서는 일차적인 것이자 사실로서의 감각적 구성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은 장 라신Jean Racine의 <페드르Phèdre>를 반복해서 본다. 이 반복 속에서 라 베르마(가상인물)라는 여배우로부터 관념 속 미로부터 벗어나는 감각적인 것의 출현을 마주하게 된다.
② 기억의 블록화

두 번째로 프루스트는 감각적 구성물들이 재현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도록 기억을 블록화한다. 기억을 블록화한다는 것은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현재 아이가 되어가는-생성들인 유년의 블록들을 통해”(QP.240)글을 쓰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어른 화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로 읽는 것은 다시금 예술을 하나의 재현으로서 취급하는 것이고, 그 작품이 생성하는 감각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마르셀이 어머니와 입맞춤을 하기 위해 계속 애썼던 그 밤을 상기하는 것, 레오니 고모와 함께 먹었던 마들렌과 홍차를 상기하는 것은 유년 시절을 추억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러한 유년은 기억의 블록화를 통해 감각적 구성물들에 골조를 부여한다.

프루스트가 “집착하였고 탄생하도록 원하였던 것은 구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아무런 구상적 기능도 없는 일종의 형상”으로서, 이를 위해 그는 “무의식적 기억”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무의식적 기억이 과거를 삽화적으로 밝히거나 서술하는 의식적 기억과는 반대로 이 순수한 형상을 솟아나게 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라고 들뢰즈는 말한다.(LS.81) 기억을 블록화하는 방식인 무의식적 기억으로서 상기란 무엇인가. 성인 화자인 마르셀은 흘러간 집의 옛 생활, 콩브레에 있는 대고모 댁, 발베크, 파리, 동시에르, 베네치아, 그 밖의 고장에서 생활을 회상하며 밤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조차 아리송할 때 추억souvenir이 구원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사물 뿐 아니라 나라는 부동성과 그 부동성에 대한 확신은 우리 사고의 부동성 이며,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습관이 만들어낸 것이다. 오히려 사물이나 나는 불확실한 것들의 수면 위에 있다. 달리는 말을 구경하면서 영사기가 나타내 보이는 연속적인 자태를 실제로 분리해서 판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화자에게 기억mémoire 또는 기억을 한다는 것이란 연속적이고 확실한 것 아래서 일렁이는 불확실한 것들을 상기évocation해내는 것이다. 프루스트에게 무의식적으로 기억한다는 것, 상기는 “4차원의 현재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망각으로 탈환되는 영토를 망각의 바다 속에 솟아올라 다시 지어지기”(RTP(1).97)를 기다리는 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상기의 방식은 다시 두 가지로 세분화될 수 있다. 먼저는 ‘마들렌과 홍차’로 대표되는 인접성에 의한 상기의 방식이다. 화자는 어느 날 어머니가 주신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게 된다. 이때 불현듯 그 물질적 대상은 화자에게 “무상과 재앙, 짧음을 넘어선 형용하기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 힘찬 기쁨”(RTP(1).66)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물질적 대상은 과거 콩브레의 유년과 관계되어 있다. 마들렌과 홍차는 레오니 고모가 주일날 아침이면 방에 찾아온 내게 내주었던 것이다. 이 기억은 커 버린 마르셀의 기억 밖의 기억이자 버려진 기억이 되었지만 마들렌과 홍차라는 물질의 감각, 냄새와 맛만은 “연약하게, 그만큼 뿌리깊게, 무형으로, 집요하게, 충실하게 오랫동안 변함없이 넋처럼 남아 있어, 추억의 거대한 건축을, 다른 온갖 것의 폐허 위에, 환기하며, 기대하며, 희망하며, 거의 촉지되지 않는 냄새와 맛의 이슬 방울 위에 꿋꿋이 버”(RTP(1).69)티며 숨어 있다. 과거는 지성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물질적 대상 속, 그 감각 안에 숨어 있다가 우연적으로 다가와 펼쳐진다. 콩브레라는 미학적 형상은 성인의 어린아이-되기라는 감각적 생성의 응결이다. 이는 물질적 대상 속에 격리됨과 동시에 되기로서 펼쳐짐으로써 특유의 리듬을 갖는다. 하지만 마들렌과 홍차라는 인접성에 의한 상기 방식은 늘 재현의 위험에 노출된다. 마들렌과 홍차의 예가 성인 화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처럼 빈번하게 읽히는 이유가 이러한 인접성의 상기 방식에 기인한다.


여기서 두 번째 상기의 방식이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르와 콩브레’가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아상블라쥬 방식의 상기라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 마르셀은 가수면 상태에서 동시에르의 아침을 떠올린다. 동시에르는 친구 생 루의 병영이 있는 곳인데, 한 해 전에 갔던 그곳의 인상들이 안개 속에서 펼쳐진다. 특이 이 안개 속에의 인상들 에서 혁대를 윤내고 있는 마치몰이꾼이 벽화에 나타난 인물처럼 돋아난다. 이런 동시에르의 아침은 거리로 나오면서 콩브레의 시기와 연결된다. 안개로 인해 가로등 빛이 약해서 지척이 분간이 안 되는 칠흑 같은 어둠은 언젠가 밤에 도착한 콩브레를 상기시킨다. 양립불가능한 기억이 상기되면서 그 둘은 자신의 집을 이루는 면들을 부수고 틀들은 결합된다. 이들은 어떤 인접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조의 돋아남과 안개의 결합이 일구어내는 공통된 리듬에 의해 연결된다. 이것을 우리는 더 깊은 인접성, 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프루스트에게 이런 무의식적 기억, 상기의 두 가지 방식은 현재의 판에 박힌 기억에 칼자국을 내는 것이며, 그 사이로 하나의 빛이 스며드는 것이다. 이로써 프루스트는 버려져 있는 기억의 비가시적 시간의 힘들을 독자로 하여금 보게 만든다.
③ 무한 생성의 리토르넬로

앞서 재현적인 것과 단절하기 위한 상기의 두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리듬에 대해 언급하고 지나간 바 있다. 하나는 “마들렌과 홍차”의 인접성의 상기에서 고립과 펼쳐짐의 리듬, 다른 하나는 “동시에르와 콩브레”의 아상블라주식 상기에서 나타나는 돋아남과 결합의 리듬이었다. 재료들의 감각, 물질적 사물들의 감각을 넘어서서 이제 리듬들이 감각이 된다. 그리고 리듬은 각각의 미학적 형상물들의 공통의 일을 만들어내며 각각의 윤곽을, 집의 거주자로서 위치를 파기하기에 이른다. 고립과 펼쳐짐의 리듬이 아직 형상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일이라면, 돋아남과 결합은 형상과 풍경(이는 세계이자 우주이다)사이의 일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둘러싼 거대한 리듬 혹은 순환적 리듬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꿈과 꿈에서 깨어나기”의 테마에서 나타나는 이완과 수축의 리듬이다.

이 리듬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구성하는 세 가지 시간의 힘이기도 하다. 먼저 도취의 시간이 있다. 도취의 시간은 삶의 목적을 현재의 찰나적 행복에 두는 시간이다. 이 도취의 시간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발베크에서 취기 속 마르셀의 모습이다. 마르셀은 할머니와 함께 간 여행에서 낯선 호텔, 낯선 사람들, 낯선 방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긴장 상태에 있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의 보살핌 없이 그 공간을 견디질 못한다. 하지만 잠시 생 루와 술을 마시는 그 취기의 시간 동안 근심에서의 해방을 느낀다. “현재의 찰나에 밀착, 감각 이상의 확장을 못 갖고 감각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목적밖에 없으므로, 현재의 찰나의 감각만이, 그 야릇한 힘, 그것이 가져다주는 희열” 속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이는 취한 시간 동안만 삶의 “가치를 바꾸는 계수”(RTP(4).247)를 갖는다. 형상은 현재의 찰나 속에서 자신의 감각을 고립시키면서 오로지 그 안에서만 펼쳐짐, 즉 감각의 해방이 일어난다. 고립과 펼쳐짐의 리듬은 취기가 끝날 때까지만 형상 안에서만 일어나는 리듬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취의 시간은 충분히 감각적이지만 이 감각은 스스로 보존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다. 두 번째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 이 잃어버린 시간은 알베르틴과의 만남 속에서 포착된다. 발베크 바다에서 만났던 알베르틴이 파리의 마르셀의 집으로 찾아온다. 발베크에서 그의 입맞춤이 거절당한 이후로 처음 만남인데 마르셀은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만남에서 마르셀이 알베르틴과의 입맞춤에서 포착한 형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베르틴과 입맞추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는 마르셀에게 발베크의 인상들이 다가온다.

“발베크에서의 우리의 생활의 온갖 추억, 창 밑에 부서지는 물결 소리, 어린이들의 고함”이 일렁이며 알베르틴의 형상(머리칼, 두 볼, 눈과 볼 사이의 곡선)이 발베크의 거대한 풍경, 산맥과 봉우리, 골짜기가 된다. 비인간적 풍경 되기 속에서 형상은 비인간적 되기라는 감응을 촉발한다. 그리고 알베르틴이라는 형상은 풍경의 변화와 속도 속에서 열 사람의 알베르틴이 돋아난다. 이 형상과 풍경 사이에 돋아남과 결합의 리듬이 있다. 형상은 풍경-되기를 통해 풍경과 결합함과 동시에 더욱 그 형상은 돋아난다. 이때 돋아나는 형상은 구상적 형태가 아닌 변화하는, 비인간적인 것 되기로 변화하고, 생성되는 신체이다. 이 시간은 형상과 풍경 사이의 생성의 리듬을 담지하고 있지만 마르셀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이기도 하다. 이 돋아남과 결합의 리듬이 무한의 구도 속에서 수축과 이완의 리듬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이 리듬은 마르셀에게 잃어버린 시간이 되는 것이다.

마르셀은 지속적으로 소멸에 대한 힘을 느낀다. 하지만 한번은 죽음의 편에서이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때야만 이 힘은 오히려 생성의 편으로 탈취될 수 있다. 엄마가 함께 해주지 않는 콩브레의 밤과 발베크의 낯선 호텔에서 마르셀은 긴장하면서 잠들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오이디푸스적 인 것이 아니라 소멸에 대한 힘 때문이다. 그 힘이 마르셀을 짓누르는 것이다. 소멸은 소박하게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인간적 소멸에서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등을 돌리거나 붕괴될지 모른다는 존재적 소멸에까지 이른다. 마르셀의 할머니의 죽음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 존재적 소멸이 죽음의 편에서가 아닌 생성의 편으로 탈취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독증에 의한 증상들은 눈멈과 귀먹음은 차례로 다가와 할머니의 얼굴을 흔들어 놓는다. 할머니나 식구들은 이 힘을 외면하고자 발작이 일어나지 않은 듯, 여전히 들리고 보이는 듯 행동한다. 그녀는 죽음 직전까지 이 소멸의 힘 속에서 웅크린다.

“침대 위에 몸을 반원형으로 구부리고, 할머니가 아닌 다른 인간, 그 머리털을 뒤집어쓰고, 그 시트에 누운 일종의 동물이, 헐떡거리며, 신음하며, 경련하며, 이불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RTP(6).37) 소멸의 힘에 의해 신체는 수축하면서 더욱 도드라지는 육체적 감각들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숨결과 맥박은 이완 속에서 ‘한 지류’, ‘새소리’로, 거대한 자연으로 이행한다. 그것은 고정된 의미의 말이 아니지만 “말하고 싶은 것이 모조리 이와 같이 흘러나오듯, 참으로 장황하게, 열성 있게. 진심을 토로하여 우리한데 말하고 있는 듯하다”(RTP(6).45) 거대한 우주 속으로 스며든 형상이 표현하는 것은 바로 형상과 풍경을 통과하는, 거대한 이완과 수축의 리듬의 순수한 순환적 시간이다. 이 이완과 수축의 거대 리듬의 구도 속에 형상과 풍경이 소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

이 소멸의 힘을 우리는 카오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익숙한 것들을 삼켜버리는 재난. 프루스트는 이 카오스와 대결한다. 그리고 그와 대결하기 위해 상기하는 것이며 글을 쓰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 카오스를 통과해내야만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은 시간이 될 수 있다. 되찾은 시간, 혹은 새로운 세계는 이미 곁에 있는 세계로서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이다. 이 잃어버린 세계, 우연히 사물들·인상들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 세계를 가시화하는 하는 것이 예술의 길이다.

프루스트에게서는 무의식적 기억, 인접성과 아상블라쥬라는 상기의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 감각적 인상들의 가시화가 이루어졌다. 예술은 카오스에서 탈취한 구도를 통해 동일한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하며, 그것은 이미 새로운 세계이다. 소멸조차도 생성의 편에서 힘으로 포착해내는 것, 그래서 소멸조차 우주적 생성의 무한으로 열리게 하는 세계를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주어준다. 할머니가 남긴 이 비인간적인 ‘미소’만이 되찾은 시간이며 대상이나 주체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서는 감각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루스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일찍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고 신비주의자의 침잠, 산문 작가의 예술, 풍자가의 열정, 학자의 지식, 편집증자의 광기가 모인 문제적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작품에 나타나는 ‘무의식적 기억’에 주목한다. 프루스트에게 기억은 과거의 일을 되새기거나 회상하는 능동적인 활동이 아니라 분명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되지 않은 것, 기억할 수 없는 것, 망각되었던 것이 불현듯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프루스트 그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기억은 우연에 의한 충격적인 발견, 그리고 이러한 발견을 통해 과거의 그 시점을 통과할 당시에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사건의 의미가 총체적으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벤야민 역시 기억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했다. 그는 프루스트를 통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일상의 경험들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작은 경험 하나 속에도 얼마나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프루스트의 이야기를 줄거리라는 형식으로 축약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간신히 밝혀낸 순간들의 의미를 다시 잘라내는 것과 같다. 이야기를 다루는 이전까지의 다른 형식들이 이야기의 목적에 따라 사건을 재단하고 배치하고 구성하는 방법을 택해왔다면, 프루스트는 삶의 실제 모습과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 기억을 매개로 기억의 중심과 주변을 있는 할 수 있는 한 그대로 옮기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가장 완벽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도시와 정확히 일치하는 지도를 만들었다는 보르헤스의 이야기 속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프루스트가 다루는 기억에는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놓여 있다. 유년기부터 장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겪었던 사랑, 또 가까운 주변에서 지켜보았던 사랑의 여러 모습들이 등장한다. 프루스트가 주목하는 기억의 특징과 유사하게, 사랑을 우발적인 것, 우연한 것, 자신이 의식적으로 선택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프루스트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의 이러한 특징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사랑에 빠진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무의식적 힘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그 사랑에 앞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세계의 의미를 조직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예외적이고 특권적인 영역이다. 아주 쉽게 바꾸어 말하면, 누군가의 사랑을 보면 그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불가피한 것으로서의 사랑, 인간의 내면과 심리에 작용하는 힘으로서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프루스트의 이야기 속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믿음(croyance)이다. 무엇보다 믿음의 양가성이다. 한편으로 믿음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건전한 판단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적 지식을 결여한 맹신을 의미한다. 또한 과학적 지식이나 객관성을 결여한 주관적 의견이라는 측면과, 초월적 가치 체계의 적극적인 수용이라는 윤리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믿음의 이러한 양가성에 주목하면서 비평가들은 프루스트가 주로 믿음을 유년기의 특징과 연결시키고 있음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유년기는 경험의 대상을 해부하고 분석하는 지성의 시기가 아니라 부분과 전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융합하는 믿음의 시기이다. 이를 테면 어른들은 ‘명절’에서 교통난, 명절 선물, 차례 준비, 연휴 등을 떠올리는 반면, 아이들은 그러한 분절 없이 명절을 하나의 총체적 경험으로서 체험하는것이다. 어른들이 주위 대상을 추상화, 개념화, 도구화하는 반면 아이들은 대상에 구체성, 개별성, 특수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어린 시절의 경험은 다른 어떤 시기의 그것보다 풍요롭기 마련이다. 경험에 풍성함을 더하는 유년기의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소실된다. 어른이 된 후에는 현저히 떨어지고, 노인이 되어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많은 비평가들은 믿음과 나이의 반비례 관계에서 믿음과 생명의 정비례 관계를 읽어낸다 그리고 믿음의 동반자로서 꿈, 상상력, 욕망을 제시한다. 앞서 살펴본 믿음의 양가성은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의 경험의 특징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 이성복은 프루스트를 통해 믿음의 양가성이 사랑에 있어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를 위해 기억과 믿음의 관계에 주목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 한 모금으로 유년기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고장의 풍경과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들을 하나씩 추적하듯 복원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은 숲과 성당, 호수와 정원의 모습은 정작 기억 속 느낌과는 딴판이다. 마르셀은 ‘모래알이 쌓이고, 새들이 선회하는 가파른 해벽’ 위에 있다고 기억했던 ‘발베크 성당’을 찾다가 엉뚱하게도 그곳이 ‘두 갈래 전차 노선의 분기점이 되는 광장’에, ‘당구장을 겸한 카페’의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실망하기도 하고, ‘여신의 낙원’으로 기억했던 불로뉴(Boulogne)의 숲을 찾았을 때 그곳에서는 ‘비인간적 공허’만을 목격하기도 한다. 프루스트는 마르셀이 느꼈던 실망과 환멸에서 기억과 믿음의 관계에 대한 통찰로 나아간다. 즉 대상의 매혹, 체험의 강렬한 인상은 경험적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마음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과 믿음 위에 세워진 환상 가운데 프루스트가 선택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닌 믿음 위에 세워진, 스스로 만든 환상으로서의 실재이다. 믿음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창조의 순간부터 언제나 붕괴의 위험 앞에 놓여 있지만, 매혹과 사랑의 영역으로서 그것을 긍정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관념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 사이의 차이와 그 차이의 의미가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차이는 부정확한 현실 인식이나 합리성을 결여한 그릇된 사실 판단이 아닌, 무엇보다 인간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에 관련한 차이다. 우리는 타인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고, 만들어내고, (우리의 내면에 그것들을) 다시 창조하는 방식으로 파악하고 이해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루스트는 진정한 현실을 내면적이라고 말한다. 프루스트에 따르면 인간에게 현실은 외부 세계로서의 현실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의해 인간의 내면에 다시 만들어지는 방식을 통해 주어진다. 따라서 현실의 의미를 끊임없이 외부 세계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은 끊임없는 착오의 연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프루스트는 바로 이 오해 때문에 인간의 삶은 자신의 바깥으로만 맴돌며, 오해와 오류 속을 헤맨다고 말한다. 인간의 내면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외부 세계와는 다르다는 면에서 일종의 환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외부 세계라는 관념 자체가 도무지 불가능한 개념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환상이야말로 현실보다 더 실재적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루스트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올 생각’만, 즉 외부의 대상들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기 때문에 끝없는 착오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장성한 마르셀이 유년기를 보낸 고향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곳곳의 도시로, 사람들 속으로 떠도는 긴 여정을 돌아야 했던 까닭은 바로 이 착오 때문인 셈이다.

또 프랑스의 소설가 에드몽 잘루는 프루스트의 이야기가 사랑에 대한 대단히 독창적인 접근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프루스트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 외부 세계가 아닌 우리 자신 안이라는 극단적인 주관주의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4. 주요 작품

4.1. 즐거움과 나날들

Les Plaisirs et les Jours

1896년 칼만-레비에서 발행된 시와 뉴스 모음집이다. 이 모음집은 특히 Dandy Robert de Montesquiou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그의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인데, 그것은 La Recherche(연구)의 편집 중에 그것의 재인쇄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4.2. 장 상퇴유

Jean Santeuil

19세기 말 파리에서 사나이다운 젊은 남자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La Recherche의 초안으로 간주되는 장 상퇴유는 프루스트가 완성하지 못한 미완성 작품이다, 프루스트는 특히 그가 직접 목격했던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반역죄로 기소된 프랑스 대위의 탄원서를 배포하고 아나톨레 프랑스가 서명하도록 한 최초의 사람이다.

4.3. 존 러스킨 작품 번역

프루스트는 1904년 존 러스킨의 성경책을 번역하여, 지난 해 사망한 아버지에게 헌사를 바졌다. 이 작품과 그의 두 번째 번역인 세 자매와 라이(1906)는 앙리 베르그송을 포함한 비평가들에 의해 높이 평가받았다. 반면 프루스트 본인으로서는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번역은 미래의 프루스트의 문학적 성격이 확고해지는 순간이 된다. 실제로, 그는 번역된 텍스트와 거의 같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풍부한 음절과 길고 풍부한 그의 문체를 그의 번역에 동반했다. 무엇보다도, 프루스트는 러스킨을 번역함으로써 그의 미적인 입장이 눈에 띄게 된다. 그것은 그가 처음 세 가지에서 표현한 감탄과 함께 나누는 그의 "미국의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특히 눈에 띈다. 그는 특히 러스킨의 미학적 우상주의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Montesquiou의 Robert에게 연설했고 Swann이 연구에서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4.4. 생트뵈브에 반대하여

Le Contre Sainte-Beuve 

이 작품은 프루스트 사후에 출판된 책이다. 1954년 후기 출판된 책들이며 일종의 프루스트의 평론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프루스트가 존경하면서도 비판하는 작가들에 대한 짧은 이야기와 짧은 시를 결합한 모음집이다. 그는 이 책서 찰스 아우구스틴 생트뵈브 작가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그의 삶의 반영이 될 것이고 오직 그녀만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비판적인 방법을 공격한다. 프루스트는 생트뵈브에 대한 비판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당시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 공포와 혐오감을 일으켜 공중도덕을 해친다는 이유로 6편의 시가 삭제되고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고초를 겪을 때 생트뵈브는 그를 위한 증언은 거부한 채 보들레르에게 그의 시를 옹호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 편지가 공개될 거라는 것을 알자 서둘러 돌려줄 것을 요청한 일화도 공개한다. 이에 반대하여, 프루스트는 자신의 시를 내세웠으며, 이 페이지들에 나와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그 중 일부는 프루스티안 나레이터인 레 레트로피드 타임(Retroved Time)에서 언급되거나 캐릭터에 할당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소설에서 많은 서술적 구절들이 개발되었다.

4.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그의 필생의 역작이자 인생을 바쳐 쓴 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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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평가와 영향력

톨스토이 19세기에 했던 것처럼 프루스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 그레이엄 그린[15] (영국 소설가, 비평가)[16]

마르셀 프루스트는 전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들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20세기 초 문학사에서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17]와 함께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가이다.

작품 전체가 완간된 1930년대부터는 일반 독자들, 비평가들, 문학이론가들, 젊은 작가들로부터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관심의 폭은 갈수록 심층적인 연구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스트의 작품은 현재진행형 작품이다. 50년대 이전까지 작품은 작중인물과 실존인물과의 관계,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 자서전이다, 아니다) 등, 전통적 방식으로 읽혔교 그 후에는 구조주의 비평과 함께, 읽기는 주제주의 방식(리샤르), 서사학적 방식(쥬네트, 타디에), 정신분석적 방향(풀레, 크리스테바), 철학적인 관점(들뢰즈, 라트르), 문체 연구(미이), 사회학적인 방향(벨로이)으로 다변화된다. 이제 프루스트는 타 작가들에 대한 연구에서도 거의 언제나 인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어떤 참조대상, 레퍼런스가 된 것이다. 프루스트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모방하면서 글쓰기 자습을 했듯이 프루스트의 후대 작가들은 모두가 프루스트를 읽었고 많건 적건 그에게 진 빚을 고백한다. 누보 로망의 소설가 나탈리 사로트는 어느 대담에서 프루스트가 없었으면 자신의 『의혹의 시절』은 존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보다 몇 년 후 내놓은 『황금 과일』 역시 작품에 대한 다양한 독자들의 반응, 내면의 목소리들을 은유와 이미지를 통해 반향시키는 점에서 프루스트를 연상시키는데, 그 책에서 작가는 문학계는 ‘황금과일’ 이후와 이전의 세대로 갈린다고, 자기네는 이후에 위치한다고 말한다. 이 황금 과일, 이 역사의 한 획, 그것은 곧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완전한 예술적 전체 속으로 무너뜨리는 인생을 그려내는 20세기 문학에서 획기적인 영향력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 율리시스』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바꾸었고, 소설의 여러 가지 기본 원칙들을 변화시켰다. 그의 작품은 소설의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킨 작품이다. 또한 집요할 만큼 강박적으로 비전을 표현하고 전달함에 있어서 그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바는 문인의 현대적인 역할을 규정해 주었다. 프루스트는 타고난 감수성으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같이 세밀한 언어를 사용하여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작품 안에 펼쳐놓았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으로 이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시간에 관한 놀라운 성찰, 곧 ‘회상’을 통해 드러나는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 그리고 그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통찰이 소중하게 담겨져 있다. 바로 이것이 작품을 고전으로 만든 것이다.

1999년 영국에서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고 다음 세기에 가장 영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했던 20세기 소설가를 마르셀 프루스트라고 밝히기도 했으며,[18] 저명한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3명으로 조이스, 카프카와 함께 마르셀 프루스트를 꼽았다.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대표 소설이며 20세기 문학의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작가들은 그것을 모방하려고 노력했고, 다른 작가들은 그것을 패러디하려고 했다. 2007년 126명이 유명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을 뽑았는데 그의 작품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8위에 뽑혔다.[19] 스페인어권 작가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책 1위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뽑혔다.[20] 전세계의 최고의 책 리스트들을 모두 모아 알고리즘으로 환산해 만드는 사이트 'The Greatest Book'에서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위를 기록했다.[21]

자국 내에서도 프루스트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희영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교수에 따르면 프루스트는 프랑스의 국민작가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22] 이탈리아는 단테, 독일 괴테가 대표적 작가로 거론되지만 프랑스는 워낙 대표 작가가 많아서 딱 한 명을 꼽기 힘들었지만 최근 프루스트만큼 총체적인 세계를 보여준 작가가 없다는 면에서 그가 프랑스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경향이다. 또한 프랑스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며 좋아하는 작가중의 하나다. 2009년 프랑스 작가 1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뽑는 조사를 했는데 거기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23][24]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를 기록했다.[25][26][27]

6. 그에 대한 말들

“진정으로 내게 가장 큰 체험은 프루스트였어요. 그 책이 있는데 과연 앞으로 쓸 게 뭐가 남아 있을까요? 어떻게 어떤 사람이 내 손에서는 언제나 빠져나갔던 것을 확고하게 담아내서 이 아름다우면서도 완벽하게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책을 내려놓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군요.”
프루스트는 내 자신의 표현 욕구를 너무 자극해서, 문장 하나도 쉽게 쓸 수 없어요. ‘아, 내가 그렇게 쓸 수 있다면’ 하고 나는 외치죠. 그리고 순간 그가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흥분과 충만함 때문에 나도 그렇게 쓸 수 있다고 느끼고 펜을 잡게 되지만, 나는 그렇게 쓸 수 없어요.
내가 지금 흠뻑 빠져 있는 프루스트와 비교하면 어떻든 아무것도 아니다. 프루스트의 정수는 최고의 감수성과 최고의 집중력을 결합시켰다는 데 있다. 그는 나비의 그림자의 마지막 결까지도 추적한다. 그는 현(絃)만큼이나 질기고 나비의 피부만큼이나 섬세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에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쓴 모든 문장들에 내가 화를 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물론 너무 위대해서 내 자신 그것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수년간 나는 그 책의 완독을 미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을 다시 펼쳐 들게 되었고, 내 서툰 문장도 제 갈 길을 가게 두었습니다. 주님, 내 책이 얼마나 구제불능으로 형편없는 책이 될까요!
버지니아 울프[28]

“프루스트의 작품에 대한 나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분석을 바탕으로 한 위대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창조 문학에는 이와 같은 분석력의 예가 없다고 생각한다.”
조지프 콘래드[29]

“어떠한 작가도 이보다 더 뚜렷한 소명 의식을 가진 예가 없으며, 어떠한 생애도 이처럼 온전히 한 작품 속에 바쳐졌던 예가 없었다.”
― 앙드레 모루아 (프랑스 소설가)[3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조이스의 『 율리시스』와 더불어 20세기 2대 걸작 중 한 편이다. 이들을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할 수 없다.”
T. S. 엘리엇[31]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프랑스 소설가)[32]

“프루스트 이전의 소설들은 모두 여기로 도착하고, 이후의 소설들은 모두가 여기서 출발한다.”
― E. R. 커티스 (독일 문학학자, 철학자)[33]

사람들은 프루스트를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위대한 작가들 중에서 가장 동반자가 되기 때문이다.
― 에드먼드 화이트 (미국 소설가)[34]

프루스트를 읽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며 경험을 거부할 수 없다.
― 윌리엄 개디스[35](미국 소설가)[36]

프루스트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문장은 길고, 그의 사교계 파티는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에게 두려움을 준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책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소설과 같은 작품에 과감히 뛰어들어 그 작품을 진정으로 끝까지 읽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온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20쪽[37]

프루스트를 읽는 것은 자신을 읽는 것이다. 프루스트가 하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의 생각과 관찰은 수없이 우리의 뇌리를 스쳤다. 우리는 그가 본 것과 우리가 느낀 것을 보았다. 우리는 그가 우리 행성에서 숭배하는 모든 것, 즉 아름다운 일몰,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운 얼굴들을 동경해 왔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가 두려워하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바로 그 상황 앞에서 주저해왔다; 비록 그와 달리, 우리는 항상 그들을 그렇게 많이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그가 그토록 세세하게 묘사하는 감정들, 즉 우리 자신을 난처하게 만들까 두려워 우리가 친숙하다고 인정하려고 애쓰는 감정들, 즉 그가 묘사하는 종류의 감정을 느꼈다. 프루스트가 태양 아래에서 새로워진 것에 대해 쓰는 것은 정말 거의 없다: 어머니의 굿나잇 키스를 기다리는 것,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가장 수치스러운 질투심에 찢겨지는 것,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의 신호, 편지, 전화를 기다리는 것; 전야를 멈추는 것.어떤 것의 향기가 우리에게 결코 죽거나 묻히지 않는 과거를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도, 우리가 가장 기대하지 않을 때, 그들의 사랑과 우리의 죄의식을 일깨워 주기 위해 돌아온다. 반복한다: 프루스트를 읽는 것은 자신을 읽는 것과 같다. 문제는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평생 치료사와 함께 보낼 수 있고, 여전히 우리 자신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너무 많고 이질적인 가닥의 매듭이 아니라, 이 가닥들을 풀 수 있는 도구를 찾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가려내는 일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프루스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만드는 도구들이다. 커닝을 하거나 모서리를 자르거나 쉬운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이 복잡하게 갈린 가닥들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매우 정밀하고 날카로운 도구가 필요하며, 프루스트의 경우 그 도구가 그의 스타일이다. 그 스타일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만들고, 우리가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거나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느끼는 것을 담아내는 경련을 패러디할 필요가 있다. 프루스트의 스타일은 항상 정신을 차리고, 무례하며,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의 문장은 길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 확실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안드레 아시먼 ( 뉴욕 시립대학교 문학 교수)[38]

“프루스트가 죽은 지 90년이 돼 가는 지금 그의 작품은 위대한 고전이 됐으며, 많은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혁명을 말하듯이 프루스트의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 김화영 ( 고려대학교 불문학 명예교수)[39]

“프루스트는 난해한 작가가 아닙니다. 프루스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는 다릅니다.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전개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프루스트는 굉장히 논리 정연한 문법을 따랐죠. 그가 전위적 작가로 간주된 이유는 구조주의 기호학 탓이 큽니다. 프루스트는 하나의 사건을 외부에서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한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까지 묘사했어요. 이러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 작가로서의 면모가 부각돼서 난해한 작가로 치부돼 왔죠. 프루스트는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 굉장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썼습니다. 일상적 아픔이나 고통도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가죠. 그가 체험한 굉장한 이야기들이 화자의 예민한 시각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데, 너무 방대하고 미세한 묘사가 많다 보니 길을 잃기 쉬워요. 하지만 퍼즐 맞추듯 조금만 노력하면 길이 보입니다. 아버지가 의사였던 그는 몸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쓰기를 했어요. 정신보다는 육체를, 이성보다는 감성을, 남성보다는 여성적 감성을 앞세웠죠. 그는 사소한 일상의 가치를 아는 작가였습니다. 문학작품의 생명력이 거기에 있어요. 프루스트를 난해한 작가라고 생각해서 멀리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요. 프루스트야말로 우리 가까이에서 아픔이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작가입니다. 프루스트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고 깊어요. 시간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했거든요. 알 수는 없지만 알려고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프루스트를 읽으면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질 거예요.”
― 김희영[40] (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명예교수)[41]

7. 어록

모든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자기만의 "음색"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생략) 작가가 글을 잘 쓰려면, 그에 앞서서 독창적이어야 하며, 또한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확성, 즉 문체의 완벽성도 분명히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창성의 저쪽에, 그것도 그 모든 잘못을 거친 다음에야 있는 것이지, 이쪽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략) 언어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를 공격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스트로스 부인! (생략) 이 세상에 확실성 따위는 없습니다. 심지어 문법에서조차도 말이죠. 오직 우리의 선택, 우리의 취향, 우리의 불확실성, 우리의 욕망, 우리의 약점에 인상을 남기는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을 뿐입니다.
프루스트가 20세기 초 문인 중 하나인 루이 강드락스의 글을 읽고 불만에 차 스트로스 부인에게 쓴 편지 내용 中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인간의 지성도 자연처럼 자신의 풍광들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결합해야만 비로소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불멸성이 생겨난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잦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지혜란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영행을 한 후, 우리 스스로 지혜를 발견해야만 한다.

이제 더 이상 나는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련다. 소유하기도 전에 싫증이 난 것이다. 플라토닉 사랑 또한 나름 물리는 법.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은 무대에 올려질 때보다 서재에서 상상할 때 더욱 아름답다.

열망은 모든 것을 꽃피우지만 소유라는 것은 모든 것을 시들고 스러지게 한다.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않다 보면, 원한이 가라앉을 뿐 아니라 때로는 우정이 싹트게 된다.

설령 거짓이라도 입밖에 내는 슬픈 말에는 고유한 구슬픔이 있어, 우리 마음속깊이 슬픔을 불어넣는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단지 그 목소리만 들어보아도 이쪽의 생활에 티끌만큼도 걱정하지 않는 게 금세 드러나는 무감각한 그러나 신의있는 정직한 인간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곁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에게 애정을 품고 눈물이 나도록 감동하나, 몇 시간 후에는 신랄하게 야유하는 것으로 비기고 그러다가 다시 우리 곁에 오면 여전히 이해심 깊고 매력있고 일시적으로 우리와 같아지는 인간이다. 이 두 종류 가운데 나로서는 정신적인 가치에서는 아니지만 교제상으로는 후자의 인간을 선택한다.

세상에는 삼인칭으로 얘기할 줄 아는 사람과 삼인칭으로 얘기할 줄 모르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서로 겹쳐진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입으로만 하는 말로 이루어진 세계이며, 그 뒷면에 똑같은 그들이 하는 행동의 계열로 이루어진 세계가 또 따로 있다.

세상이 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되풀이하여 말한다는 것은 정치상에 있어서 열등한 머리가 아니라 우수한 머리의 표시다.

그제야 우리는 달도 울고 있었다는 것, 달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달빛의 폐부를 찌르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우리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처럼 달이 울고 있었고, 우리가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달도 영문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태양의 작별에 아직도 놀라고 있는 구름들

세월은 말없이 흘러가고, 젊음은 늙음에 밀려나니 가장 견고한 재산이나 왕위도 와르르 무너지고, 명성이 덧없는 것임을 아무리 깨달은들 무슨 소용이랴.

세월의 흐름에 시대착오가 매우 많이 끼어 있듯이 우리의 일생은 연대순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늘 그 소유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속물 근성에 걸려들면 다른 병에 대해 면역시키는 특이하고도 항구적인 병적 상태에 이르게 된다.

속물 증오는 대개 자기 자신의 속물 근성에서 비롯되는데 사람들은 그를 속물이 아닌 줄로 여긴다.

스노비즘은 영혼을 망치는 중한 병이기는 하나, 국부적이어서 영혼 전체를 망치지는 못한다.

슬픔은 벌 받을 만한 죄는 아니지만 의지로써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병이다.

습관은 증오나 경멸이나 권태도 이겨낸다.

습관은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던 친구들을 친한 사이로 만들고, 그들의 형태에 나름대로의 꼴을 주고, 목소리에 호감을 느끼게 하고, 마음의 성향을 변하게 하는 소임을 맡고 있다.

사랑에 가슴 태우며 병이 난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본인 자신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별들과 산들바람뿐만 아니라 수학적 분할까지 뭔가 애달프고도 시적인 성향을 띤다.

사랑에서는 우리의 행복한 경쟁자, 즉 연적은 우리의 은인이라 볼 수 있다. 육욕밖에 돋구지 않던 시사한 여자에게 연적은 순식간에 무한한 가치를 부가시킨다. 물론 그것은 그 여자하고는 상관없는 가치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여자와 혼동한다. 만일 연적이 없거나 연적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육체적 쾌락은 사랑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의혹이나 질투가, 있지도 않은 연적 주위에 꾸며내는 가공적 생활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랑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버림받음에 의해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은 꽤 일찍 올 수 있는 어느 나이의 숙명이다. 그때 상대방의 얼굴은 몽롱하고, 그 영혼도 대수롭지 않을 뿐 아니라 좋아진 게 최근이라 그 이유도 모르고, 상대방에 대해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나를 맞아들이시겠어요?"하고 그에게 말하게 허락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뿐이다.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는 그들 자신이 자기 병을 고치는 의사이다. 위안은 고통의 원인이 된 이로부터밖에는 오지 않으며 그 고통은 그 사람의 방사물이어서, 치료책을 찾아내는 곳은 고통 속이다. 어느 시기가 오면, 고통 스스로 혼자서 위안을 발견한다.

사랑을 하는 인간이 항상 헛된 시도를 되풀이하며 비싼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반면에, 사랑을 하지 않는 인간은 곧바르고도 끄떡도 없는 우아스러운 길을 편히 따라간다.

사랑에 있어서는 행복 전부의 상실(喪失)과 맞먹는 질투가 체면상실 이상으로 민감하다.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뚫고 들어가게 하는 미지의 삶에 존재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싹트게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 중 가장 중요하다. 남성을 오직 외모로만 판단한다고 자처하는 여성들마저도, 그 외모에서 어떤 독특한 생활의 발산물을 알아본다. 그래서 그런 여자들은 이따금 군인이나 소방관하고도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제복이 그들의 얼굴을 덜 고달프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 여자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겉모습과는 다른, 모험을 좋아하는 다정스런 마음을 이해한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젊은 군주나 황태자에게는 그가 방문한 타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냥감을 얻기 위해서만은 주식 중매인이 갖추어야 할 균형잡힌 얼굴 따위가 별로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의 통찰력에 대한 증거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욕망은 언제나 우리들과는 가장 반대적인 것을 향해 가면서, 우리에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사랑하라고 강요하니까 말이다. 어떤 사람의 매력, 그 사람의 눈이나 입이나 키가 지닌 매력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내재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일, 사랑하기 시작하는 일은 우리가 그것을 아무리 순진한 것인 양 말할지라도, 이미 또 다른 근거에 의하여 그 사람의 온갖 배신이나 과오를 읽는다는 뜻이다.

사랑은 참으로 사념의 지질학적인 융기를 일으킨다. 며칠 전만 해도 매우 평탄한 벌판 과 비슷하여 아주 멀리 지면과 같은 높이에 한 덩어리의 관념조차 눈에 띄지 않았으련만, 이제는 그곳에 난데없이 바위처럼 단단한 산악지대가 나타난다. 마치 어떤 조각가가 그 자리에 끌로 새기기라도 한 듯, 분노, 질투, 호기, 부러움, 미움, 괴로움, 거만, 공포, 그리고 사랑의 거창한 군상으로 꿈틀대는 산악지대가 우뚝 서게 된다.

습관이란 인간에게 생겨나는 식물 가운데 비옥한 흙을 가장 덜 필요로 하여, 보기에 가장 황량한 바위에서도 제일 먼저 뻗어 나간다.

승리는 상대방보다 15분 동안 더 견디는 쪽에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간은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 남들의 속에 있는 것을 더 아름답게 보기 마련이다.

신경병 없는 위대한 예술가는 없다. 위대한 학자도 없다. 비약하자면, 그 자신이 신경병에 걸리지 않고서는 신경병의 명의(名醫)는커녕 옳게 다루는 의사조차 되지 못한다.

신경병 환자란 뜻밖에도 제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일이 가장 적은 인간이다. 그들은 자기 속에서 실로 허다한 목소릴를 듣지만 그런 것에 겁먹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경험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런 신호의 위험성을 참작하지 않는 습관이 들고 만다. 그래서 가령, 오한을 느끼는 것은 몸을 따뜻이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꾸중을 들었다는 것을 뜻하고, 식욕부진이 오면 비가 올 듯한 날씨 때문이지 식사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닐 것라고 자신을 타이르곤 한다.

실현을 믿는 데는 마음에 바라는 욕구가 있으면 충분하다. 병사는 전사하기까지, 도둑은 잡히기까지, 우리들은 죽기까지 아직 가없는 유예기간이 주어져 있는 줄로 확신한다. 이거야말로 개인을 -때로는 대중을- 위험에서가 아니라 위험에 대한 공포로부터, 실제로 위험한 신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적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용겅지 않고서도 위험을 무릅쓰게 한다.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서 건강이나, 행운을 희생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신비 따위는 언젠가는 관심 밖의 일이 되기 마련이다.

심상의 아름다움은 사물 뒤에 깃들이고 관념의 아름다움은 사물 앞에 깃들인다. 따라서 전자는 우리가 사물에 도달하자마자 매력을 잃지만, 후자는 우리가 사물을 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된다.

현실에 결코 만족할 수 없음을 예감하기에, 당면한 고통을 외면한 채 삶에 대한 신비에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언제나 매혹적인 존재다. 피로도 느끼기 전에 휴식을 필요로 하는 이런 이들을 바다가 위로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조차 한다. 대지와는 달리 바다는 인간들의 노동과 삶의 흔적들을 지니지 않는다. 어떤 것도 머물지 않으며 스치듯 지나가기에, 바다를 건너는 배들의 항적은 그 얼마나 빨리 자취를 감추던가! 이로 인해 지상의 사물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바다의 엄청난 순수성이 생겨난다. 곡괭이를 필요로 하는 딱딱한 대지보다 바다라는 순결한 물은 훨씬 더 섬세하다.

물 위를 밟는 어린아이의 발은 또렷한 소리를 내며 깊은 고랑을 파고, 물의 통일된 뉘앙스를 한순간 깨뜨리지만, 곧이어 모든 파장은 지워지고, 바다는 태초의 날처럼 다시금 고요해진다. 지상의 행로에 지치거나 앞으로의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예견하는 사람은 이런 막연한 바닷길에 매료될 것이다. 바다의 길은 위험할수록 더욱 달콤하며, 어렴풋하고 황량하다.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촌락이며 나무 수풀이며 하늘에 삼라만상을 만들어 놓는 구름 때문에 바다 위에 펼쳐지는 거대한 그림자들도 그러하다. 이들은 거칠 것 없는 바다의 들판 위로 평화롭게 떠다니기 때문이다.

바다는 밤에 침묵하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불안한 삶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허락이면서, 그렇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약속의 매력 말이다. 마치 아이 방의 야등(夜燈)이 빛날 때면 꼬마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듯이. 대지처럼 바다도 하늘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법. 언제나 하늘의 빛깔들과 조화를 이루며, 미묘하기 짝이 없는 하늘의 뉘앙스들로 요동친다. 태양 아래 빛나는 바다는 매일 밤 태양과 함께 죽는 것만 같다. 태양이 사라지고 난 뒤, 바다는 여전히 태양을 아쉬워하며, 온통 컴컴한 대지를 마주한 채 그 찬란했던 추억의 조각만이라도 간직하려 한다. 애조 어린 바다 노을의 순간은 너무도 감미로워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이 녹는다고 느낀다. 밤이 다가와 하늘이 대지 위로 어두움을 드리울 때도, 바다는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파도 아래 묻힌 대낮의 어떤 찬란한 유물에 의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그 신비로움에 대해 알 길이 없다.

바다가 우리의 상상력을 새롭게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인간의 마음처럼 무한하지만 무력한 열망이고, 끊임없이 추락하는 도약이며, 달콤한 한탄이기에 우리를 흥겹게 한다. 바다는 음악처럼 매혹적이다. 인간의 말과는 달리 음악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지만, 우리네 마음의 움직임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정(心情)은 영혼의 움직임이라는 파도와 함께 솟아올랐다가 급격히 떨어지고는 하는데, 바다와의 내밀한 조화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자기 자신의 실패의 슬픔을 잊을 수 있다. 이렇듯 세상만사의 운명과 함께 뒤섞여 있는 바다.

우리의 허영, 우리의 열정, 우리의 모방 정신, 우리의 추상적 지성, 우리의 습관은 오래 전부터 줄곧 작용해왔으며, 예술의 과제란 이런 것들의 작용을 취소하는 것, 우리로 하여금 이제껏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우리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채 놓여 있는 깊이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현실 그 자체와는 너무나 다른 표현의 한 형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히려 현실 그 자체로 간주되어야 마땅한 것에 순응하는 습관.

이 견해에 따르면, 현실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실제 현실과는 일치하지 않는데, 이 생각이 종종 부적절한, 또는 오도된 보고에 의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한 클리셰적인 묘사로 둘러싸여 있는 까닭에, 모네의 ‘인상, 일출’에 대한 우리의 첫 반응은 르아브르 항구는 전혀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는 훼방과 불평일 것이다... 그(모네)가 전통적인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제한적인 르아브르의 재현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풍경에 대한 자기만의, 오염되지 않은 인상에 보다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일 것...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자신의 독자이다. 저자의 작품은 만약 그 책이 아니었다면 독자가 결코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어떤 것을 스스로 식별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시력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책들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진실성에 대한 증명이다.

우리는 애인에게서 버림받았을 때 - 그녀는 자기만의 시간을 좀 더 보낼 필요가 있다며, 정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방식으로 이별을 통보해온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배려의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은 인간의 경험이 생략 앞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즉 우리가 뭔가에 중요성을 부여할 때마다 그 길잡이가 되는 보다 뚜렷한 이정표들이 얼마나 쉽게 제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그 소재를 아침식사 때마다 신문 요약이라는 형태로 먼저 만났다면, 상당수의 문학과 드라마는 짐작컨대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42]

병약함이야말로 우리에게 눈치를 채고 배우게 만들며,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몰랐을 과정을 분석하게 한다. 매일 밤 곧장 침대로 들어가는 사람, 그리하여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그 순간까지는 죽은 듯 푹 자는 사람은 잠에 관해서, 반드시 대단한 발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사소한 관찰도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약간의 불면증은 우리에게 잠을 음미하게 해주고, 그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비춰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틀림없는 기억이란 기억의 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매우 강력한 자극은 아니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43]

행복은 몸에 좋지만, 정신의 강인함을 발달시켜주는 것은 바로 슬픔이다.[44]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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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는 "매일 두통이 온다. 눈이 끔찍해."
프루스트가 대답했다, "내 불쌍한 배. 난 어떡하지? 정말 죽겠다. 사실 나는 즉시 떠나야 한다."
"나도 같은 처지야." 조이스가 대답했다. '만약 내가 내 팔을 잡을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잘 가!"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프루스트가 말했다. "아이고, 배야, 배야."
제임스 조이스는 그들의 대화가 '아니오'라는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조이스가 프루스트에게 두두(duc du so-so-so)를 아느냐고 물었다. 프루스트는 '아니오'라고 말했다." 조이스는 프루스트에게 율리시스를 읽었느냐고 물었고,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조이스는 "상황은 불가능했다"고 기억했다. 다른 손님들도 그 모임을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드니 쉬프의 아내 바이올렛은 조이스가 술에 취해 그들 두 사람과 프루스트와 함께 택시에 자신을 초대하고, 재빨리 창문을 열었던 것을 떠올렸다. 프루스트 사이트 바이올렛은 "프루스트의 초안의 공포를 알고 즉시 창문을 닫았다"고 썼다. 그 택시가 프루스트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프루스트는 "그 택시가 그를 집으로 데려다 주도록 하기 위해 아일랜드 사람을 재촉했다"고 말했다. 조이스는 프루스트의 편안한 환경에 대한 일부 부러움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 만남 이후 6개월 후에 사망한 프루스트는 그들의 만남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남기지 않았다.
파일:Jacques-Emile_Blanche_Portrait_de_Marcel_Proust_1892.jpg }}} ||

9. 외부 링크

10. 관련 문서


[1] 부모님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믿었다. [2] 오른쪽이 마르셀 프루스트. 왼쪽은 동생. [3] 당시 나이 15세 때이다. [4] 유럽과 아시아에서 콜레라를 연구하는 유명한 병리학자 겸 역학학자였다. 프루스트 박사는 자신의 원칙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1869년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를 여행하여 이전의 전염병에서 콜레라가 러시아와 그 결과 유럽으로 유입된 경로를 알아냈다. 이 성공적인 조사와 그에 따른 효과적인 위생 및 검역 캠페인으로 프루스트 박사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5] 프루스트의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원래 가톨릭 사제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의사로서 그의 일에 거의 종교적인 열의를 가져왔다. [6] 그녀의 큰 외삼촌인 아돌프 크레미에는 상원의원이었고 주에서 장례식을 치렀을정도로 대단히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만국동맹의 회장이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 아델은 무엇보다도 루이 14세의 궁정 중 한 사람인 마담 드 세비뉴의 편지를 사랑한 교양 있는 여자였다. [7]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이며 노벨문학상, 맨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다. [8] 프루스트의 애인이기도 했다. [9] 미셸 레몽, 프랑스 현대소설사, 현대문학, 308쪽 [10] 미셸 레몽, 프랑스 현대소설사, 현대문학, 326쪽)이다. [11] 오노레 드 발자크의 대하소설 시리즈. 약 90편(!). [12] 에밀 졸라의 소설 시리즈. 전20권. [13] 미셸 레몽, 프랑스 현대소설사, 336쪽 [14] 미셸 레몽, 프랑스 현대소설사, 338-339쪽 [15] 많은 사람들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영국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영국 소설가. 문학적인 찬사와 폭넓은 인기를 결합하여 그린은 생애 초기에 주요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6] # [17] 이 셋을 가리켜 3대 모더니즘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18] 출처 [19] # [20] 2위는 스페인 문학 최고 소설 돈키호테. # [21] 출처 [22] 출처 [23] 2위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3위는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였다. [24] 출처 [25] 2위는 윌리엄 포크너, 3위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26]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셰익스피어의 경우 영국 공영 방송사 BBC에서 조사결과 영국 위대한 인물 5위,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작가 1위에 올랐고 세르반테스의 경우 방송사 안테나 3에서 조사 결과 스페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2위에 랭크되었고 단테의 경우 이탈리아 공영 방송사 Rai 2에서 조사 결과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인물 10위에 올랐다. 괴테의 경우 독일 공영 TV인 ZDF의 조사 결과 독일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7위에 올랐다. 프랑스의 경우에 공영 방송인 프랑스2에서 조사 결과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중에서 10위권 이내에 대작가는 단 2명 뿐으로 6위에 빅토르 위고 8위에 몰리에르가 올랐다. [27] 참고로 프랑스2에서 조사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명단에 프루스트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외에 포함된 인물은 앞서 언급한 빅토르 위고, 몰리에르, 장 드라퐁덴, 쥘 베른, 에밀 졸라, 볼테르, 알베르 카뮈, 모파상, 샤들 보를레르, 피에르 코르네유, 아르튀르 랭보 등이 있다. [28] 출처 [29] 출처 [30]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88901238777출처 [31] 출처 [32] 출처 [33] 출처 [34] 출처 [35] 20세기 가장 중요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 중의 한 명. [36] 출처 [37] 출처 [38] 출처 [39] 출처 [40] 국내에 프루스트에 관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다. [41] 출처 [42] 프루스트가 어떤 그림의 주인공을 보면서 “어? 이건 로 후작을 닮았잖아?”했다고 하여 로 후작 현상인데, 이것은 어떤 예술작품에서 그 실제 주인공이 아닌 다른 것들을 연상하는 현상을 말한다. [43] 그는 고통스러운 쪽의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44] 이 슬픔은 우리가 더 행복한 시절이라면 회피했을 일종의 정신적 체육 활동을 거치도록 해준다. 실제로 그의 말에 담긴 암시란, 우리가 정신 능력의 발달에 진정한 우선순위를 둔다면, 우리는 만족보다는 오히려 불행한 채로 있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그리고 플라톤이나 스피노자를 읽는 것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여자, 그리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여자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천재적인 남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심오하고 더 필수적인 감정의 전 영역을 우리로부터 끌어낸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관해서 상당수의 심오한 증언을 남긴 사람들은 만족스런 삶을 살던 사람들이나 열정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지식은 대개 극도로 비참한 사람의 특권적인 영역이거나, 또는 그런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축복이기 마련이다. 교훈? 우리의 만족을 위한 최고의 기회란 바로 우리의 기침, 알레르기, 사교상의 실수, 감정적인 배신 등을 통해서 암호화된 형태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완두콩, 따분한 사람, 시간, 날시를 탓하는 사람들의 배은망덕을 피하라는 것이다. [45] 1871년 8월 5일 생루이 단틴 교회에서 받았다. [4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알베르틴의 모델이 된다. 그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요절한다. [47]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의 그 주인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