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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2:46:34

타카하시 카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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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fff> 타카하시 카즈키
[ruby(高, ruby=たか)][ruby(橋, ruby=はし)] [ruby(和, ruby=かず)][ruby(希, ruby=き)]|Kazuki Takahashi
파일:external/images.wikia.com/KazukiTakahashi.jpg
파일:Kazuki_takahashi.jpg
본명 [ruby(高, ruby=たか)][ruby(橋, ruby=はし)] [ruby(一, ruby=かず)][ruby(雅, ruby=お)] (타카하시 카즈오, Kazuo Takahashi)
출생 1961년 10월 4일[1]
도쿄도
사망 2022년 7월 4일 추정 (향년 60세)[2][3]
오키나와현 나고시 아와 해안(安和海岸) 앞바다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만화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4]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5]

1. 개요2. 생애
2.1. 유희왕 연재 이전2.2. 유희왕 연재 이후2.3. 사망
2.3.1. 부고2.3.2. 사인2.3.3. 관계사들의 추도사 및 반응
3. 특징
3.1. 성향3.2. 그림체
4. 일러스트가 실린 카드 목록5. 본인이 디자인한 카드 일러스트6. 정치 발언7. 주요 작품8. 어록9.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의 만화가. 유희왕의 원작자이다. 본고장인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미국, 중국 등을 포함해 전세계 다양한 나라에서도 인기가 아주 높은 유희왕 시리즈의 아버지이다.

2. 생애

2.1. 유희왕 연재 이전

1960년 10월 1일,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많이 병약한 소년이었는데, 이 때 마징가 Z 타이거 마스크, 울트라맨. 가면라이더 같이 TV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 및 만화를 즐겨 보면서 점차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공부에는 그닥 흥미가 없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루는 중학교 1학년 시절, HR 시간 때 담임 선생님이 너는 먹고 자기만 할 뿐인 똥 제조기다!라는 폭언을 대놓고 내뱉은 적이 있었는데, 이 때 그는 겉으로는 웃어넘기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똥 제조기도 만화를 그릴 수 있다,"라고 다짐하여 만화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데즈카 프로덕션의 배경 애니메이터가 되고파 면접을 치르러 갔지만, 아직 실력이 미숙했던 관계로 탈락해서 곧장 애니메이터로서의 진로를 포기하였다.[6] 이후로는 기업 로고나 배너를 디자인하는 일을 맡으면서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생계를 꾸려갔는데, 한창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히 그린 원고들을 출판사에 투고해가면서 조용히 만화가로서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20세를 맞이한 1981년, 미야비 하지메(雅はじめ)라는 필명으로 투고한 단편 "러브 볼"이 쇼가쿠칸 신만화상에 수상하면서 주간 소년 선데이에 실리게 되었고, 이후 강Q초아 잇키맨의 코믹스판을 담당하여 드디어 만화가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뷔 초부터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그의 일화를 보면 거의 30살이 넘어서까지 보릿고개의 연속이었다. 원고들은 그리는 것마다 죄다 퇴짜만 맞기 일쑤였고, 집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신용카드는 할부만 서른 여섯 넘게 했을 정도로 가난이 심각했다고 한다. 결국 주간 소년 선데이에서 만화를 연재해오다가 주간 소년 점프로 이적하게 되었고, 거기에서도 만화를 그리면서 근근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2.2. 유희왕 연재 이후

어느덧 34살이 된 1996년, 그는 새로운 신작으로 전투를 테마로 한 공포 만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싸우는 건 너무 식상하니까 손 안대고 대결하는 방식을 밀고나가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게임"이라는 아이디어에 영감을 얻어 최종적으로 게임 두뇌배틀로 테마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만화가 바로 훗날 카드게임으로 대성공을 거두는 전설적인 소년만화, 바로 유희왕이다.

다만, 유희왕도 처음 연재했을 부터 막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다양한 게임을 통해서 악인들을 징벌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오컬트 만화였는데, 기괴한 분위기가 원인인 건지는 몰라도 인기 순위가 거의 밑바닥을 해매고 있어서 거의 출하되기 직전까지 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 연재했던 매직&위저드 편이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평가가 올라서 조금씩 인기가 상승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완전히 카드게임을 주력으로 방향성을 틀면서 우리가 아는 현재의 유희왕이 되었다.

아무튼 카드게임이 메인이 된 덕분에 만화의 인지도는 크게 올라갔으며, 1999년에는 코나미의 코즈키 카케마사가 유희왕의 모든 것을 인수하여[7] 공식 카드게임을 출시하였다. 그리고 이 카드게임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쳐서 처음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주었고, 지금도 카드가 벌어놓는 수익이 어마어마하다보니 2005년 이후로는 일본 만화가 연간 수익 5위권 안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8]

유희왕을 완결시킨 후에는 더 이상의 장편 연재에 손을 뗐고,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 및 스토리 검수 등을 맡으면서 다른 쪽으로 일을 해나갔다. 제작 참여에 빠진 ARC-V부터는 간간히 단편만화를 소년 점프에 기제하거나, 습작 일러스트를 업로드하는 것으로 여생을 보냈다. 물론 관련 행사나 이벤트가 있을 때는 따로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등 아예 은퇴한 것은 아니었다.

2.3. 사망

2.3.1. 부고

2022년 7월 6일 수요일 아침 10시 반 즈음에 오키나와현 나고시의 바닷가에서 표류 중인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NHK 속보 등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과 의료진에 의해 오전 11시 27분 사망이 진단되었으며, 신원은 타카하시 카즈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발견 당시 검은색의 티셔츠 차림에 수중 마스크, 스노클, 오리발(핀)을 착용한 상태였으며, 스노클링 중 불의의 사고로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NHK 뉴스 인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실제 사망 시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후 수 일이 지난 것으로 보이며 #, 상어와 같은 해양 생물에게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12일에 추가로 올라온 기사로는 4일 오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진단했다. 11일 나고 해상 보안서가 밝힌 바로는 사인은 익사이며, 사후 동시기 오키나와 현에서 잦은 출몰이 목격된 황소상어 등에 의해 사체의 복부와 하반신이 훼손된 것으로 발표했다. # 한국 한정으로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중독사했다는 루머가 있지만 사실무근이다.

2.3.2. 사인

이후 3개월 후 10월 11일 해외 언론[9]을 통해 사실상 유력한 사인이 밝혀졌다. 당시 사건으로 군사훈장 후보에 오른[10] 로버트 부르조(Robert Bourgeau) 소령의 증언으로 당시 상황이 자세히 설명되었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해안에서 약 100야드 떨어진 이안류(소용돌이)에 주일미군 병사와 모녀가 휩쓸렸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자신과, 같은 스쿠버 다이빙 강사[11]와 함께 구조에 나서게 되었다. 이때 다른 수강생들이 타카하시가 돕겠다며 같이 입수하는것을 목격하였다. 얼마나 격렬한 상황이었는지, 부르조 소령이 여자아이와 그 어머니[12]를 구조하는 와중에 같이 들어간 강사가 힘이 빠질 정도였고 남은 제 3의 병사를 구하려 다시 물에 뛰어들었지만 소용돌이가 거세지고 같이 들어간 동료 강사마저 휩쓸릴 위기에 처하자 먼저 빠져나온 뒤 강사와 병사도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인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병사까지는 동료 구조자와 함께 어떻게 극적으로 끌어내어 구조하는데 성공했으나, 프로 구조자들조차 두 명 다 위험에 빠진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그 두 명이 타카하시 카즈키를 추가로 발견했더라도 구조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타카하시 카즈키는 결국 소용돌이에 휩싸여 실종된 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 이 와중에 해상보안청은 위의 목격자 진술을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이 사실을 증언한 부르조 소령은 "그는 누군가를 구하려다 죽었던 영웅"이라고 증언하였으며, 소식이 전해지자 "마지막까지 의인으로 살고 갔다"라는 안타까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후까지 애청자들도 끝까지 생각했고 사람을 구하다 의롭게 간 진정한 의인.

한편, 침묵을 지키던 해상보안청은 10월 14일에야 해당 보도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발표하였다. 해당 발표에서 해상보안청은 시신 발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구출된 소녀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여 발표를 미뤘다고 밝혔다. #

2.3.3. 관계사들의 추도사 및 반응

유희왕과 제일 관련이 깊은 회사라고 할 수 있는 코나미 측에서 추도에 대한 반응이 관계 인물들이나 타 기업에 비해 다소 늦어지자 이에 대해 불평의 반응이 올라오는가 하면, 이를 두고 너무 섣부른 의견이라며 반박하는 측도 많았다. 개인 입장과 달리 회사측 입장으로서 코나미는 최대한 정성을 들여서 추모글을 올려야 하고, 법적인 문제의 확인과 그에 따른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것에 시간이 걸리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실제로 사망 소식이 나온 뒤에는 본래 활발하게 갱신되는 유희왕 공식 트위터 계정[13]의 갱신과 코나미 본사의 트위터도 갱신이 정지되었다.

며칠 후 실제로 올라온 추모문은 이하와 같다. # TCG 코나미 역시 추모문을 올렸으며, # 한국 유희왕을 정발하는 대원미디어에서도 추도문을 올렸다. # TCG와 대원미디어 측 추도문은 전부 코나미의 원문을 번역하였다.
추도 타카하시 카즈키 선생님

2022년 07월 07일

주식회사 코나미디지털엔터테인먼트

타카하시 카즈키 선생님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고 매우 놀라움과 함께 애석함을 금치 못합니다.

'유☆희☆왕'이라는 위대한 콘텐츠를 만들어주신 선생님에게 이제는 그저 깊은 감사를 드리며,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유☆희☆왕]을 팬 여러분과 함께 계속 사랑하며 미래로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코나미의 추도문
타카하시 카즈키 씨를 기리며
타카하시 카즈키 씨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을 듣고 우리는 충격과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가 창조해낸 멋진 '유희왕' 유니버스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생각은 이 어려운 시기에 그의 친구, 가족과 함께 합니다.
그의 수많은 팬들과 함께, 우리는 "유희왕"의 유산이 받을 만한 모든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이어나갈 것을 맹세합니다.
TCG 코나미에 올라온 추도문
유희왕의 연재처였던 주간 소년 점프도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
파일:kazuki_rip.jpg
「유☆희☆왕」 원작자 타카하시 카즈키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2년 7월 10일에 방영된 유희왕 고 러시!! 15화에선 에피소드 종료 이후 스폰서 대신 위와 같은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유희왕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과 성우, 기타 아티스트들도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아 SNS 등에 추모 글을 남겼다.
[ 유희왕 관련 인물 추도사 모음 ]
* 호시노 타카노리 # - 잭 아틀라스의 성우
  • 오쿠이 마사미 # - 유희왕 듀얼몬스터즈 2기 오프닝 곡 'Shuffle'과 2기 엔딩의 담당 가수이자, GX 1기 엔딩곡 '한계배틀'의 담당 가수인 JAM Project의 멤버.
  • 키타다니 히로시 # - 오쿠이 마사미와 마찬가지로 JAM Project 출신이며, JAM Project 명의로 GX 1기 엔딩을, 솔로 명의로 유희왕 GX 4기 엔딩곡인 Endless Dream을 담당했다.
  • 이쿠자와 유이치 #: 유희왕 듀얼몬스터즈의 4기 오프닝 곡 'Warriors'와 4기 엔딩 곡인 'あふれる感情が止まらない(넘쳐흐르는 감정이 멈추지 않아)'를 담당한 가수. 추도를 위해 해당 엔딩 곡을 자체 커버하였다.
  • 미하라 켄지( 프레데릭(밴드)) # - 유희왕 고 러시!! 1기 오프닝곡인 신기루을 담당한 밴드 멤버.
  • 후지와라 아키나 # - 령사 시리즈 등 여러 유희왕 OCG 일러스트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아키나에게 유희왕 카드의 일러스트를 맡아달라고 권유한 사람이 다름 아닌 타카하시 카즈키였다.
  • 아다치 요스케 # - TCG 일러스트레이터.
  • 츠다 켄지로 # - 카이바 세토의 성우. 푸른 눈의 백룡 한 장이 찍힌 사진만 업로드했다. 타카하시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몬스터가 푸른 눈의 백룡이었으며, 현 유희왕 시리즈의 시작이 된 것이 바로 푸른 눈의 백룡 에피소드.
  • 마루야마 슈지 # - 유희왕 5D's 메인 캐릭터 디자이너 및 애니메이터.
  • 미야시타 유우야 #1, #2 - 후도 유세이의 성우. 하필이면 사망 소식이 전해진 날이 자신이 담당한 캐릭터인 후도 유세이의 생일[14]이었고, 이 날을 기념해서 유세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트윗도 업로드하였기에 더욱 충격을 받아 다음 날에야 추도문을 업로드하였다.
  • 국내판 GX 1기 엔딩곡 '한계배틀'을 부른 한국의 애니송 가수인 TULA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 이후 3기 오프닝인 WILD DRIVE의 커버곡을 올리면서 개요를 통해 또 한 번 추모의 뜻을 밝혔다.


더 화이팅 작가인 모리카와 조지도 매거진 시절부터 시작해 마지막까지 친구로 지냈던 관련 일화들을 트위터를 통해 풀었다. #그 외에도 여러 유명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들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유희왕 듀얼 몬스터즈와 동종 장르로 양대산맥을 구축한 TCG게임인 매직 더 개더링의 일본 계정에서도 추모하는 글이 올라왔다. #

원펀맨 리메이크에서 그림을 담당하는 만화가 무라타 유스케도 추모글을 작성했다. #

유희왕 관련 성우,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들뿐만 아니라 카드파이트 뱅가드[15] 등 각종 TCG들을 만들고 있는 부시로드 # 등에서도 추모하는 글이 올라왔다. 리처드 가필드, 하지메사쵸[16] 등등 유명 인물들도 추모하는 글을 올리며 추모했다. 유희왕 관련 유명 유튜버들, 프로들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해당 소식이 들려온 달, 소년점프에서 연재중이던 작가들 또한 점프 코멘트란에 추모의 메시지를 올렸다. #

유유백서, 헌터x헌터의 작가로 유명한 토가시 요시히로가 점프 코멘트에서 "서로 (별이) 들어있네"라고 담소를 나눴던 추억.
편히 쉬시길 <토가시>"라는 코멘트로 추모글을 작성했다. #
한국에서도 유희왕이 큰 인기를 얻었고 타카하시 카즈키 작가가 어떤 논란 하나 없이 건실하게 산 것은 물론, 유희왕 연재 시절에 진짜 죽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고생을 해서 몸에 큰 부담을 주는 만화를 그리지 않아 컨디션 문제도 없었고, 작가 본인도 병이 있다는 소문도 없었던지라 이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메루카리 등의 중고 장터 사이트에 타카하시 카즈키가 직접 손을 댄 카드를 고액[17]으로 판매하는 등 추모를 가장한 무개념 행동에 질타도 나오고 있다.

3. 특징

3.1. 성향

드래곤을 굉장히 좋아했다. 당장 유희왕만 봐도 그의 사심이 잘 드러나 있는데, 카이바의 에이스 몬스터인 푸른 눈의 백룡부터 이미 드래곤족이며, 마찬가지로 팀 파이브디즈의 상징적인 에이스 또한 시그너 드래곤이다. OCG에서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 건지는 몰라도, 유독 드래곤족이 전사족과 마법사족 등과 함께 대우가 굉장히 좋다.

상당한 게임광이이었으며, 롤플레잉 게임 보드게임 전반을 좋아했다. 허나, 본인이 창시한 유희왕 카드게임은 연재 당시에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는 만화가 카드에 조종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츠다 켄지로와의 대담에서 밝혔다. 물론 아예 안 즐겼던 건 아닌 듯 하다.[18]

온라인 게임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본인이 원하는 게임과는 거리가 멀어서 작품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실제로 유희왕 본편에서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는 일은 없었으며, 대신 극장판 유희왕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디멘션즈의 개봉 전 관련 단편인 'TRANSCEND GAME'에서 VR 게임이 등장했다. 이 외에도 AR 게임인 포켓몬 GO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수준급의 디지털 작업 실력을 자랑했던 것과는 반대로, 컴퓨터를 다루는 게 많이 서툴렀다고 한다. 타카하시의 어시스턴트 출신이었던 이토 아키라[19]가 밝힌 내용인데, 오죽하면 그가 인스타그램을 처음 시작한 모습을 보고 경악하여 '이렇게나 성장하다니...'라고 코멘트할 정도였다. 다만, 코멘트를 읽는 법밖에 몰랐으며, 코멘트에 첨부하는 일러스트조차도 종종 틀리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팔로워 1순위는 유희왕 GX/코믹스를 담당한 카게야마 나오유키였다.

유희왕을 자세히 보면 막장부모인 죠노우치의 아버지나 아버지를 향해 존속살해를 저지른 마리크 등, 아버지를 나쁘거나 엄격한 존재로 묘사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를 근거로 본인의 가정사를 반영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물론 실제 아버지와의 관계는 지극히 양호했다고 밝혀져서 완전히 묻혀진 상태. 단행본 12권의 코멘트를 보면, 정월에 오랜만에 친정에 돌아가서 유희왕 카드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이미 카드를 가지고 계셨다는 일화가 있다.

해외의 동물 애호 단체 ' TeachKind'[20]를 방문하여 동물 학대 등에 관한 인터뷰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동물애호가였던 듯. 그곳에서 좋아하는 동물이 뭐냐는 질문에 이라고 대답했다.

3.2. 그림체

파일:yugiohart1.jpg
파일:yugiohart2.jpg
파일:yugiohart3.webp

만화가로서 커버할 수 있는 스타일의 폭은 넓은 편. 대표작 《 유희왕》에서만 해도 미국 만화를 연상시키는 근육질 몬스터부터 귀여운 미소녀, 거기다 고전 카툰을 연상시키는 몬스터 등 다양한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그림은 스타일이 안정될 때까지 코미컬한 그림, 리얼한 그림, 애니 그림 등 여러 그림체를 전전하다 전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며, 최종적으로 모든 스타일을 집대성해서 유희왕이 생겨났다고 여긴다.

그 중에서도 미국 만화의 영향이 두드러지는데, 바짝 마른 인체, 초차원적인 머리모양, 굵고 강렬한 선 등의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유희왕의 작중에서 나오는 히어로 캐릭터 좀바이어가 타카하시 카즈키의 아메리칸 코믹스의 팬심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마블 코믹스와의 콜라보 작품인 'Secret reverse'에서도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의 코스튬도 나름대로 위화감이 없이 그려졌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사이먼 비즐리(Simon Bisley)를 꼽았으며,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만화가는 아라키 히로히코였다고 한다.[21]

작가 본인은 자신을 만화가라기보다 디자이너라고 칭하며, 만화의 컷을 하나의 디자인으로 취급하는 등 독자적인 발상을 보인다. 이러한 특이한 컷 배치가 만화가로서 타카하시 카즈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희왕의 컷 배치를 보면 정말 특이한 배치가 많다. 슬라이드를 보는 듯한 컷 배치나 하나의 그림을 중심으로 강조선 처럼 컷 배치 등 정말 다양하고 특이한 방식의 컷 배치를 보여준다. 이러한 특이한 컷 배치를 사용하면 가독성이 떨어지기 쉬우나 독자가 만화를 읽을 시선을 모두 신경써 컷을 배치한 덕에 오히려 볼때는 가독성이 뛰어남은 물론 "컷이 특이하다" 라는 생각은 전혀 안들게 하는 뛰어난 배치를 보여준다. 유희왕의 컷 배치 예시

유희왕 연재 중에는 1000가지 이상의 몬스터 디자인을 해냈으며, 온몸이 총이나 장미로 된 드래곤 등 자유로운 발상에서 탄생한 디자인도 시리즈의 특징이 되었다.

유희왕 연재 종료 후에는 또다시 화풍에 변화를 겪으면서 이전의 굵고 강렬한 개성은 다소 사라졌지만, CG를 다루는 솜씨가 만화가가 아닌 프로 일러스트레이터급이 되었다.[22][23] 컬러 화풍은 담수성 잉크, 수성 마카, 코픽 등을 거쳐 CG를 다루며 유채화 게열 작풍으로 정착했다. CG 묘사는 윤곽을 뚜렷이 그리면서도 색을 덧입히는 등 일러스트레이터 드루 스트루전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4. 일러스트가 실린 카드 목록

일본어판 발매 순서대로 정렬하였다. 해당 일러스트에는 모두 본인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5. 본인이 디자인한 카드 일러스트

추측이 아닌 개인 화집이나 유출된 설정화에서 타카하시 디자인으로 확정된 몬스터만 등재.

6. 정치 발언

2019년 7월 15일, 인스타그램에 일러스트집 ANNIVERSARY MONSTER ART BOX 발간 소식을 전하면서 겸사겸사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의 투표 독려 일러스트를 올리며[27][28] 자유민주당을 매국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원본 번역 소문이 퍼지면서 와전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원문에서도 '매국정권(売国政権)'이라고 쓰여있다.

당연히 작가의 인스타그램은 우익 세력과 진보 세력의 싸움터가 되어 버렸다. 좌익 팬덤에서는 타카하시 카즈키를 옹호하고 있으며, 우익 팬덤은 유희왕 카드를 찢는 상품 파괴 인증을 하고 있다.[29]

본인도 이를 의식했는지 다음 날 사과문을 업로드[30]했지만, 어디까지나 ' 유희왕 캐릭터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사과일 뿐 발언 자체는 철회하지 않았다.[31]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사과문도 삭제해버렸다. 2020년 4월분 아카이브

사실 타카하시가 반전주의자라는 건 유희왕 만화 33권 속지에 첨부된 작가의 말에서 드러난 적이 있었다. 단지 그 성향을 유희왕 연재 당시부터 변함없이 고수해 오고 있었을 뿐이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카이바 세토의 행적이 그의 성향을 아주 잘 드러내는데, 카이바는 군수사업을 하던 양아버지를 제거하고 본인이 회사의 실권을 잡은 뒤 회사를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게임 사업 기업으로 개조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상을 드러냈다.

또한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해당 글들이 올라온 시점으로부터 약 한 달 후, 일본 마토메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캐릭터에 관한 매국정권 발언으로 물고 뜯는 반응이 있는 한 편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트위터에서 최악의 혐한 발언을 한 탓에 타카하시에 대한 평가가 상승하였다. 다만 일본 내에서는 일본 내 정치나 외국에 대해 대해 함부로 발언하거나 증오발언을 하는 작가나 만화가는 많은데[32] 왜 타카하시 카즈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현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대중에게 강제로 사죄해야 하냐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타카하시의 사망이 알려진 바로 다음 날에 그가 비난했던 아베 신조 전 내각총리대신이 유세 중에 암살당했다.

7. 주요 작품

8. 어록

이 만화를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군요. 카드라던지 게임같은 것은 수없이 나오지만 매일 책상에 앉아 있는 저로서는 여러분들이 어떤 게임을 즐기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답니다. 으아~ 궁금해 죽겠다~!! < 유희왕>이라는 매개물로 인해 여러분에게 친구가 한 명이라도 더 생겼다면 제게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답니다.[33]
유희왕 13권 작가 코멘트.

파일:유희왕 33권 속지 일본판 작가의 말.jpg
2003년 3월 20일 지구의 반대편에서 또 전쟁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사람을 다치게 하고 서로 죽이는 행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 미래, 우리들마저도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에는 인종이나 국경을 뛰어넘어 모두가 사이좋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희왕 33권 작가 코멘트.[34]
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누구나 어떤 불안을 품고 있지 않을까요. 몸을 둘러싼 테크놀로지에 지배당해, 우리는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없이는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세뇌"를 받고 있습니다. 그 "세뇌"는 몸을 맡겨, 네트워크 사회에 안심을 느낄 정도입니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써 SNS를 활용하여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것은 멋진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릇된 집단사상을 향하는 위험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플라나를 품은 아이가미의 존재는 순식간에 주파수를 묶는 SNS의 메타포이기도 하며, 배타적인 위험한 사상을 따르는 자들의 선도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다툼에도 공통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이바, 아이가미는 각자의 "집착"에 지배당하고 있지만, 한편 유우기 일행은 동료를 위하는 마음으로 안즈와 헤어질 때조차 웃는 얼굴로 보내줍니다. 즉 유우기 일행은, 각자의 "자립"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 중 누가 가진 삶의 방식에 공감할 것인가. 부디 관객 여러분께서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극장판 유희왕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디멘션즈 개봉 기념 팜플렛 인터뷰 #

9. 기타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드게임의 창시자가 되었지만, 대외적으로 공개된 정보와 사진들이 그리 많지 않다. 2016년에 자택을 탐방하는 DVD에서도 몸통만 찍힌 것을 보면 원래부터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때가 MAGIC 2019 행사였는데, 직접 실시간으로 관객들 앞에서 어둠의 유우기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1] 만화피디아에서는 1963년생으로 기재했으나 # 사망 기사에서 60세로 기재하며 1961년생으로 밝혀졌다. [2] 일본 경찰의 추정일. 시신 발견일은 7월 6일이다. [3]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가 사망하였다. [4] 2010년대 초반까지는 열려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폐쇄되어 이후로는 계속 공사 중이라는 메시지만 뜨고 있다. [5] 현재는 비공개 상태. [6] 만약 합격한다면 바로 고등학교를 자퇴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7] 사실 원저작자는 거의 무시하고 게임만 인수하여 유희왕을 출시해도 문제는 없었지만, 상상도 못할 뒷통수를 생각한 것인지 원작자까지 데려오는 계약을 체결했다. [8] 참고로 2위는 드래곤볼 시리즈의 토리야마 아키라, 1위는 원피스의 오다 에이치로. [9] Stars and Stripes라는 신문으로, 해외 주둔 미군을 다루는 언론이다. 한국에서는 '성조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0] '적과의 교전'과는 무관한 일로 민간인을 구했기에 후보 조건에 충족했다고 한다. [11] 부르조 소령은 스쿠버 다이빙 강사를 겸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2] 아이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다. 결과적으로 부르조 소령은 미군 병사와 모녀까지 총 3명을 구조했으며 부르조 소령 자신 또한 살아남았지만, 타카하시 카즈키는 이 사건에서 유일한 사망자가 되었다. [13] V 점프 등의 선행 정보를 공개하는 계정과 행사나 굿즈 등의 일반적인 정보를 공지하는 계정 2개가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엔 가벼운 분위기를 포함한 트윗도 자주 올라오고, 상품 발매일의 지속적인 공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갱신이 잦은 편이다. [14] 유세이 외에 카이바 모쿠바의 생일이기도 하다. [15] 전술했듯이 뱅가드의 원작자인 이토 아키라는 타카하시 카즈키의 어시스턴트 출신에, 과거 타카하시의 도움을 받아 유희왕 R이란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게다가 첫 뱅가드 애니메이션 감독은 다름 아닌 유희왕 GX의 감독이었던 츠지 하즈키였다. [16] 세븐스에서 고하 사장을 맡은 바가 있다. [17] 적게는 2,000엔 초반대에서 많게는 9,000엔 후반대까지 그 가격이 폭등했는데, 한정된 숫자의 경품으로 증정된 빛의 창조신 호르아크티나, 해외로 나가면 북미판에선 당초 발매 리스트에서 빠져서 뒤늦게나마 이벤트로 등장한 애니버서리 팩 버전 블랙 매지션 걸 등을 제외하고는 그저 일러스트를 그려줬을 뿐 일반적인 루트로 판매된 카드가 훨씬 많기에 가격이 그렇게 높지가 않다. 원래대로라면 중고로라도 1,000엔도 안 되는 카드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타카하시는 따로 상금을 둔 대회를 금할 정도로 유희왕이란 게임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즐기는 걸 원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고인 모독이다. [18] 99년에 발매된 '더 밸류어블 북 1'에서는 '듀얼은 몇 번이고 해본 적은 있다'라고 코멘트하였고, 유희왕 5D's/코믹스, 유희왕 OCG 스트럭처즈의 작가인 사토 마사시의 연재 만화에서는 푸른 눈 덱을 사용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19] 유희왕 R의 작가이며, 다른 카드 게임인 카드파이트!! 뱅가드의 원안과 코믹스 연재도 담당했다. [20] PETA의 '인도적 교육부(humane education division)'다. PETA의 인도적으로 동물권을 교육하는 부서다. [21] 죠죠 25주년 당시 축전을 그리기도 했고, 주간 소년 점프 창간 30주년 특집에서도 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추천작으로 밀었다. 출처: 일본 위키페디아 실제로 스탠드처럼 몬스터를 듀얼리스트 뒤에 놓는 연출을 자주 쓰기도 했고, 뜬금 없이 나오는 기행들을 생각해보면 거의 확실하다. [22] 그림체의 변화 때문에 문고판 작업할 때 마리크 안 닮았다고 어시들이 평하자 바쿠라 그릴 때는 자기 예전 그림을 열심히 모방해 그린 뒤 코믹스판 GX 작가이기도 한 카게야마한테 한참동안 닮았냐고 물었다고 한다. [23] 그의 일러스트레이트 실력은 유희왕 15주년 기념으로 발행한 일러스트집인 'DUEL ART'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동안 그려온 유희왕 관련 일러스트들은 물론, 신 일러스트 버전 오시리스의 천공룡을 예시로 일러스트 방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24] 애니버서리판, 우주판, 카이바판 3종류 디자인. [25] 도트 디자인에 사용할 러프 스케치를 담당했다. [26] 「Yu-Gi-Oh! World Championship 2007」 대회 기념 사전 모집 질문에서 타카하시 카즈키가 대답한 바에 따르면 이 테마 자체가 타카하시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것이다. 기존 유희왕에 비해 더 리얼하고 등신대스러운 걸 도입하려고 생각했을 때, 미국 만화 히어로를 떠올렸다고. 다만 어디까지 그의 디자인인지 알 수 없다. [27] 아트북 표지 일러스트에서 어둠의 유우기가 잡고 있는 블랙 매지션 블랙 매지션 걸 카드만 각각 "Let's", "VOTE!"로 바꾼 것이다. [28] 일러스트에 첨부된 문구는 '일본에서 살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독재정권 = 미래는 암흑차원!' [29] 실제로 한 유희왕 팬은 트위터에서 초판 푸른 눈의 백룡 등 고가의 카드들을 구기고 찢은 사진이 올렸다. 다만 비난 받고 트윗을 삭제했다. [30] #1 #2 [31] 지는 해 사진을 올려 우익들을 돌려까는 패기가 대단하다 [32] 적지 않는 애니메이터나 일러스트레이터 들이 히마소라 아카네 등 논란발언을 많이 한 우파 정치인을 지지하는 트윗을 작성하거나 혐한 혐중 발언을 하거나 [33] 실제로 TCG 장르는 기본적으로 플레이하는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인 게임이라 새로운 사람들과 매칭되며 대화를 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또한, 스토리 자체도 원작도 원작이지만 끝나고도 오리지널 시리즈가 계속 되었던 작품의 특성상 작품 자체의 떡밥 등의 할 이야기도 굉장히 많다. 이런 특성상 작가가 말했던 친구를 사귀는 건 당연히 큰 도움이 되고, 당시 유희왕 TCG 오프라인 게임을 즐기기 위해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 집 밖으로 나와 대인기피증을 이겨냈다는 감동적인 사연도 굉장히 많다. [34] 그림 속에는 전쟁은 안 돼요 -카즈라고 적혀있다. [35] 츠다 본인이 계속 공개하지 못했다는 언급이 있어 그려준 정확한 시기는 불명이지만, 카이바의 얼굴형을 보아 2015 ~ 2019년 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