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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07:23:46

가나의 혼인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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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해석4. 대중매체에서5. 기타

1. 개요

파일:가나의혼인잔치.jpg
가나의 혼인잔치(The Wedding Feast at Cana), 1563년, 파올로 베로네세, 루브르 박물관
[1]

요한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 기적 중 하나로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한 이후 첫 번째로 일으킨 기적으로 기록돼 있다. 가톨릭에서는 카나 혼인 잔치라고 한다.

2. 내용

1.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 째 되던 날[2]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 혼인잔치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1. 예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고 와 계셨다.
1.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렸다.
1. 예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어머니[3],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1.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
1. 유다인들에게는 정결 예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 예식에 쓰이는 두세 동이들이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1.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그 항아리마다 모두 물을 가득히 부어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1. 예수께서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 하셨다. 하인들이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었더니
1.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물을 떠간 그 하인들은 그 술을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술맛을 보고 나서 신랑을 불러
1.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 일이오!" 하고 감탄하였다.
1.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요한의 복음서 2장 1~12절 ( 공동번역 성서)

예수가 자신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과 함께 가나의 지인(혹은 친척)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식 피로연 중에 그만 포도주가 다 떨어지게 되어 하인들이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성모 마리아가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예수는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며,[4]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면서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자, 예수는 하인들에게 물통에 물을 부은 후 그것을 그대로 손님들에게 내어주라고 명했다. 하인들이 그대로 하자 놀랍게도 물이 포도주로 변해있었고, 그것도 전에 마시던 것보다 더 질이 좋아서 연회를 책임진 사람이 "보통 좋은 술은 먼저 내놓고 나중에는 덜 좋은 술을 내놓는 법인데 아직도 좋은 술을 남겨뒀구려!"하고 감탄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제자들이 놀라워했다는 이야기다.

3. 해석

결혼식 등 잔치에서 손님들에게 결혼식 행사에 걸맞은 좋은 음식과 술을 접대하는 것은 손님을 결혼식에 초청한 양가 가족들의 입장에서 꽤나 민감한 사안이다. 특히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 동안 잔치를 하였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특히 잔치에 술이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손님들을 접대하는 입장에서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난감한 경우였다.

가톨릭에서는 이 이야기를 성모 마리아 전구를 실행한 대표적 사례로 해석한다.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파악한 마리아가 예수에게 이를 알리고, 처음에는 예수가 소극적인 태도를 나타냈음에도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대로 해라"라고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결국 예수가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첫 기적을 행하도록 이끄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전구 기도와 연관시키는 가톨릭의 해석에 반대하는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이 일화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아닌 이상 부모가 불필요한 것을 지시하더라도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는 완전한 새 몸을 입고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가졌던 윗사람으로서의 지위가 없어[5]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성모 마리아에게 순종할 의무가 없다고 보며, 단순 기도 요청을 넘어 성모 마리아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지위가 있다고 믿고 자신의 소원 성취를 위해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 요청을 하는 것은 예레미야 17장 5절[6]에 따라 죄에 해당하고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얄팍한 꾀로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는 태도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기도를 들어주는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마리아의 기도빨(?)을 의지하는 것은 사실상 마리아를 신적인 존재로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며[7] 하나님은 물주 정도로 전락시킨다는 견해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하는 야고보서 5장 16절도, 개신교 측에서는 의인은 올바른 관점과 마음으로 기도를 하기 때문에 역사하는 힘이 큰 것이지, 의인 자체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다른 해석으로는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라는 문장의 원문(Τί ἐμοὶ καὶ σοί[발음])이 정확히 마르코의 복음서 1장 24절과 5장 7절에서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비난할 때 썼던 표현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해당 표현은 어떤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의지에 반해 억지로 무엇을 하게 될 때 적개심을 가지고 비난하는 표현[9]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질책하는 상황이다.[10] 이 해석에서는 해당 일화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가족과 절연 당하는 상황에서 공동체적 회개로 부름받은 것이 혈연관계를 대체함을 기억시키기 위해 해당 일화가 기억되었다고 보고 있다.[11]

해당 구절의 γύναι(여자여)는 공경의 의미를 담고 있으나, 어머니에게 하는 대답으로는 부자연스러운 것으로[12] 어머니를 부를 때에는 κυρία라는 호칭이 더 적절한 것이므로 요한복음의 독자들은 이 대답이 다소 퉁명스럽다고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해당 본문은 요한 복음서 7:6~8과 확실히 평행을 이루는데, 그 본문에서 예수가 나중에서야 요청된 것을 하며 이는 예수가 자신만의 신적인 시간표를 따른다는 것을 함축한다.[13]

정경에 따르면 예수가 행한 첫번째 기적이다. 천주교 묵주기도의 빛의 신비 2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혼인잔치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보통 성모 마리아가 직접 하인들을 부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친척, 혹은 지인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4. 대중매체에서

5. 기타



[1] 6.8m x 10m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대작으로 루브르 박물관 소장 회화중에 가장 크다 [2] 예수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뒤 제자를 모은 일이 있은 지 사흘째. [3] 원어로는 γύναι(gunai)라고 하며(γυνή의 호격), 직역하면 woman, 즉 여성이 된다. 이 단어가 어떤 늬앙스로 쓰였는가는 꽤 논쟁의 대상이다. '여인이시여'(가톨릭 성경)나 'Dear woman'(NIV)같이 존칭으로 번역한 곳도 있고, '여자여'(개역성경)나 'Woman'(KJV)같이 번역한 곳도 있다. 신학계에선 마담, Mrs. 정도의 존경을 담은 정중한 호칭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가톨릭에서는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 창세기 3장 15절 공동번역 성서)"라는 구절과 연결하여 구원사적 의미를 가지는 호칭으로 보고 있다. [4] 천주교 번역에서는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는, 좀 더 공손한 문장으로 썼다. [5] 개신교는 가톨릭 보편 공의회의 결정이라고 하여 그 권위를 무조건 절대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될 수 없기에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어머니이기도 하여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이 옳다고 결정한 칼케돈 공의회에 대한 시각은 개신교 안에서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교단 차원에서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정한 교리를 차용하고 있고, 성공회 루터교회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목회자의 견해에 따라 마태복음 22장 4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님이었던 자신이 어찌 다윗의 자손이 되겠냐고 말한 것은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며 네스토리우스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고(가톨릭에서 네스토리우스주의는 명백히 이단이고 개신교 안에서도 네스토리우스주의가 이단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개신교에선 네스토리우스에 대해서 관심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네스토리우스주의 때문에 이단 시비가 걸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신교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사안이 아니면 의견이 달라도 적당히 넘어가려는 개신교 전반의 분위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직 성경'을 주장하는 개신교 안에서 보편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를 근거로 이단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모순적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미 개신교는 가톨릭 입장에서 이단이다.), 어떤 사람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도 마리아에게서 난 것이 없으니 마리아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조차 아니고 마태복음 22장 30절에도 천국에서는 지상에서의 부부 관계가 끝난다고 나와있으니 모자 관계도 끝나는 것이 맞다고 하는 등, 개신교 안에서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견해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어떤 견해는, 인간은 단순히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인성이란 어떤 존재가 인간의 정의에 부합할 때에 파생되어 발생하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고 신성과는 상관 없는 독립 변수여서 신성과 결합할 여지 자체가 없는데, 칼케돈 공의회가 용어의 정의 자체를 제대로 안 내리고 추상적 개념을 물질화 시켜서 인성과 신성이 분리될 수 없게 결합되었다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하며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전반적인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천국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성모 마리아가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것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6] 야훼가 하는 말이다.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사람을 믿는 자들, 사람이 힘이 되어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 [7] 가톨릭 공식 교리는 성모 마리아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개신교 측에서는 교리적으로만 마리아가 신이 아니라고 한다고 우상숭배가 합리화되는 것이 아니라며, 교리적으로 신으로 믿지 않는 대상을 실제로는 신으로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오의 복음서 6장 24절

제 힘을 하느님처럼 믿다가 죄를 지은 자들은 바람에 날려가듯 사라지리라.-하바꾹 1장 11절
[발음] 고대 그리스어: 띠 에모이 까이 소이, 코이네 그리스어: 띠 에미 깨 시 [9] 대략 "내 일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자분, 당신 일에나 신경 쓰시죠!"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10] 해당 구절이 반드시 책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이는 예로 열왕기하 3:13 및 호세아 14:8이 제시되기도 하나 이 구절들도 역시 불손 혹은 적대감을 보이는 대화이다. 크레이크 S. 키너, 요한복음 II, CLC, 1473p 이하 '키너 요한복음 II'로 표기 [11] 앤서니 르 돈, 역사적 예수, 100, 2018 참고 [12] 반가톨릭 보수 개신교에서 성모 공경에 반대하는 근거로 삼는다. [13] 키너 요한복음 II, 1470~1472p [14] # [15] 그래서 천주교 표기는 원음을 살려 '카나'이다. 실제로 영어로 발음해보면 꽤 다른데, 아프리카 가나는 영어로도 '가나'지만, 갈릴래아의 카나는 영어로는 '케이너'에 가깝게 발음된다. [16] 초기 한국기독교의 금주금연 문제, 윤은순, 윤정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2호 출처. [17] 유대교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신성을 가진 성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구약에 중점을 두어도 상관 없다. 하지만 예수를 성자로 인정하고 숭배하는 가톨릭, 개신교는 다르다. [18] 비슷한 케이스가 다른 종교에도 있는데 바로 불교의 금육주의다. 실제 불교와 육식은 아무 상관이 없다. 고기 자체를 못 먹게 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말자는 것인데 이게 인도에서 중국을 거치면서 양무제가 육금령을 내려버렸고 이게 한반도로 수입된 것. 즉 금주든 금육이든 원래 종교에서 선언한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후대에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확대해석해서 교리로 만들어버리고 그게 그대로 받아들여진 케이스이다. 당연하지만 현대에는 이게 교리의 일부가 아니라 영향력 있는 과거인물의 개인 사상일 뿐이라고 다들 인식하기에 엄격한 개신교인이거나 불교신자여도 적당히 술과 고기를 즐기는 경우도 있고 이런 걸로 책을 잡지도 않는다. [19] 고대의 와인은 포도 껍질에 있는 자연 효모로만 발효를 했기 때문에 포도를 으깬 다음 그대로 발효를 시켰는데. 이렇게 되면 불순물이 너무 많아 물보다는 죽에 가까울 정도라서 걸러낸 다음 물을 타지 않으면 제대로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고대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포도주를 물에 타먹는 것이 상식이였고. 물을 타지 않고 그대로 마시면 야만인 취급을 했다. [20] 한국 천주교에서는 공식 미사주로 주로 마주앙 백포도주를 사용한다. 적포도주는 혹시 튀거나 묻을 경우 얼룩이 남는데, 얼룩을 없애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세탁할 때 사용한 물을 다 마셔야 한다. 당연히 세제나 비누는 못 쓰고, 드라이클리닝 같은 것도 안 된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번거로워지기에 얼룩이 잘 남지 않는 백포도주를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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