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
오세훈 | 박형준 | 홍준표 | 유정복 | ||||||
광주 | 대전 | 울산 | 세종 | ||||||
강기정 | 이장우 | 김두겸 | 최민호 | ||||||
경기 | 강원 | 충북 | 충남 | ||||||
김동연 | 김진태 | 김영환 | 김태흠 | ||||||
전북 | 전남 | 경북 | 경남 | ||||||
김관영 | 김영록 | 이철우 | 박완수 | ||||||
제주 | |||||||||
오영훈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임기: 2022년 7월 1일 ~ 2026년 6월 30일(예정) |
|||||||||
1960-1961 · 민선 1기 · 민선 2기 · 민선 3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 |
충청북도지사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초대 윤하영 |
제2대 이광 |
제3대 이명구 |
제4대 정현모 |
제5대 정낙훈 |
제6대 김학응 |
제7대 정인택 |
제8대 황종률 |
제9·10대 조대연 |
제11대 고광도 |
|
제12대 최세인 |
제13대 신명순 |
제14대 김효영 |
제15대 정해식 |
제16대 태종학 |
|
제17대 오용운 |
제18대 정종택 |
제19대 김종호 |
제20대 임성재 |
제21대 강우혁 |
|
제22대 노건일 |
제23대 민태구 |
제24대 주병덕 |
제25대 이동호 |
제26대 이원종 |
|
제27대 김덕영 |
제28대 허태열 |
제29대 주병덕 |
제30·31대
이원종
|
제32대 정우택 |
|
제33-35대
이시종
|
제36대 김영환 |
||||
}}}}}}}}} |
<colcolor=#fff>
충청북도지사 忠淸北道知事 Governor of Chungcheongbuk Province |
|
현직 | <colbgcolor=#fff,#191919> 김영환 / 제36대 (민선 8기) |
취임일 | 2022년 7월 1일 |
정당 |
|
홈페이지 |
1. 개요
1.1. 충청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3. 역대 선거 결과3.1.
1960년 지방선거3.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3.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3.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3.6.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3.7.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3.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3.9.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3.10.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 역대 정당별 전적5. 역대 후보별 순위6.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충청북도지사7. 도정 지표8. 관련 문서[clearfix]
1. 개요
충청북도지사는 충청북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충청북도청에서 근무한다.종전의 민선 1기부터 민선 7기까지는 행정고시를 패스한 행정가 출신들만이 충청북도지사를 맡았으며, 이번 민선 8기 김영환은 최초의 의사 출신이다. 카운터 파트너 격인 충청남도지사가 민선 4기 이완구 전 지사를 시작으로 대권을 꿈꾸는 직업 정치인들이 줄줄이 당선된 것과 대조적이다.[1] 역대 충청북도지사 중에 그나마 정치적 중량감이 있었던 사람이 정우택 전 지사인데, 이 쪽은 충청북도지사 재선 실패 이후 여의도로 돌아가 지방정치보다 당권 등 중앙정치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데다[2]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후로는 실권자에서 원로 라인으로 접어들고,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면서 22대 총선 결과에 따라 국회의장 영전 가능성도 있었던 완벽한 중앙 정치인으로 복귀했었다.[3]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참고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충청북도 관찰사는 1908년에 부임한 권봉수(權鳳洙)이다.
역대 민선 도지사들의 출신지를 살펴보면 음성군(주병덕)- 제천시(이원종)- 진천군(정우택)[4]- 충주시(이시종)- 청주시[5](김영환)으로, 아직까지 남부권(보은군-옥천군-영동군) 출신 충청북도지사는 나오지 않았다.[6] 특이하게도 충북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청주시장 출신이 한 명도 없고 민선 8기가 되어서야 청주시 출신 도지사만 배출했다.[7][8][9]
1.1. 충청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
충청북도지사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방선거 8회만 시행되었다. 충청북도지사 선거는 의외로 적중 지역이 청주시 단 하나뿐이다. 다만 청주시는 2014년 청원군과 통합하여 4개 일반구로 개편된 상태라 현재의 청주시 행정 구역에 맞춰서 이전 선거 결과를 다 분석해야 할 듯 하다.[10] 이 중 옥천군[11] 육영수의 고향이기도 하다.]은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일하게 100% 적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도지사 선거에서는 3번 빗나갔기 때문에 완전히 상반된 결과였다.[12]2. 목록
2.1. 일제강점기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충청북도지사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
초대 | 스즈키 다카시 (鈴木隆) | 1910년 10월 1일 ~ 1916년 3월 28일 | [13] | ||
2대 | 유혁로 (柳赫魯) | 1916년 3월 28일 ~ 1917년 6월 13일 | [14] | ||
초대 | 장헌식 (張憲植) | 1917년 6월 13일 ~ 1921년 2월 12일 | [15] | ||
2대 | 요네다 진타로 (米田甚太郎) | 1921년 2월 12일 ~ 1923년 2월 24일 | |||
3대 | 박중양 (朴重陽) | 1923년 2월 24일 ~ 1925년 3월 31일 | |||
4대 | 김윤정 (金潤晶) | 1925년 3월 31일 ~ 1926년 8월 14일 | |||
5대 | 한규복 (韓圭復) | 1926년 8월 14일 ~ 1929년 11월 28일 | |||
6대 | 홍승균 (洪承均) | 1929년 11월 28일 ~ 1931년 9월 23일 | |||
7대 | 남궁영 (南宮營) | 1931년 9월 23일 ~ 1935년 4월 1일 | |||
8대 | 김동훈 (金東勲) | 1935년 4월 1일 ~ 1939년 4월 26일 | |||
9대 | 유만겸 (兪萬兼) | 1939년 4월 26일 ~ 1940년 9월 2일 | |||
10대 | 윤태빈 (尹泰彬)[16] | 1940년 9월 2일 ~ 1942년 10월 23일 | |||
11대 | 이창근 (李昌根) | 1942년 10월 23일 ~ 1944년 8월 17일 | |||
12대 | 박재홍(1892) (朴在弘)[17] | 1944년 8월 17일 ~ 1945년 6월 16일 | |||
13대 | 정교원 (鄭僑源) | 1945년 6월 16일 ~ 1945년 8월 15일 |
2.2. 미군정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충청북도지사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초대 | 윤하영 (尹河英) | - |
2.3. 대한민국
2.3.1. 관선 1기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충청북도지사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정부 | 비고 |
초대 | 윤하영 (尹夏榮) | 1948년 8월 15일 ~ 1949년 1월 27일 | 이승만 정부 | |
2대 | 이광 (李光) | 1949년 1월 28일 ~ 1951년 7월 25일 | ||
3대 | 이명구 (李明九) | 1951년 7월 26일 ~ 1952년 9월 16일 | ||
4대 | 정현모 (鄭顯模) | 1952년 9월 17일 ~ 1953년 11월 23일 | ||
5대 | 정낙훈 (鄭洛勳) | 1953년 12월 10일 ~ 1955년 8월 29일 | ||
6대 | 김학응 (金鶴應) | 1955년 9월 2일 ~ 1958년 7월 29일 | ||
7대 | 정인택 (鄭麟澤) | 1958년 7월 29일 ~ 1960년 4월 30일 | ||
8대 | 황종률 (黃鍾律) | 1960년 5월 12일 ~ 1960년 10월 7일 | 허정 내각 | |
9대 | 조대연 (趙大衍) | 1960년 10월 7일 ~ 1960년 12월 30일 | 장면 내각 |
2.3.2. 민선 1기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충청북도지사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8] | 비고 |
10대 | 조대연 (趙大衍) |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5월 24일 |
|
2.3.3. 관선 2기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충청북도지사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정부 | 비고 |
11대 | 고광도 (高光道) | 1961년 5월 24일 ~ 1962년 3월 14일 | 국가재건최고회의 | |
12대 | 최세인 (崔世仁) | 1962년 3월 14일 ~ 1963년 12월 17일 | ||
13대 | 신명순 (申明淳) | 1963년 12월 19일 ~ 1966년 3월 30일 | 박정희 정부 | |
14대 | 김효영 (金孝榮) | 1966년 3월 31일 ~ 1969년 5월 13일 | ||
15대 | 정해식 (丁海植) | 1969년 5월 13일 ~ 1971년 6월 11일 | ||
16대 | 태종학 (太鍾學) | 1971년 6월 12일 ~ 1973년 9월 26일 | ||
17대 | 오용운 (吳鏞運) | 1973년 9월 26일 ~ 1976년 10월 11일 | ||
18대 | 정종택 (鄭宗澤) | 1976년 10월 12일 ~ 1980년 1월 17일 | ||
19대 | 김종호 (金宗鎬) | 1980년 1월 17일 ~ 1980년 9월 9일 | 최규하 정부 | |
20대 | 임성재 (林城宰) | 1980년 9월 9일 ~ 1983년 10월 14일 | 전두환 정부 | |
21대 | 강우혁 (姜祐赫) | 1983년 10월 14일 ~ 1986년 1월 8일 | ||
22대 | 노건일 (盧健一) | 1986년 1월 8일 ~ 1988년 5월 19일 | ||
23대 | 민태구 (閔泰求) | 1988년 5월 19일 ~ 1990년 3월 9일 | 노태우 정부 | |
24대 | 주병덕 (朱炳德) | 1990년 3월 14일 ~ 1990년 9월 19일 | ||
25대 | 이동호 (李同浩) | 1990년 9월 19일 ~ 1992년 3월 30일 | ||
26대 | 이원종 (李元鐘) | 1992년 3월 31일 ~ 1993년 3월 4일 | ||
27대 | 김덕영 (金德泳) | 1993년 3월 4일 ~ 1994년 9월 23일 | 김영삼 정부 | |
28대 | 허태열 (許泰烈) | 1994년 9월 23일 ~ 1995년 6월 30일 |
2.3.4. 민선 2기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충청북도지사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9] | 출신지 | 비고 |
29대 | 주병덕 (朱炳德) |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
[[자유민주연합| |
충북 음성 | [20] |
30대 | 이원종 (李元鐘)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충북 제천 | ||
31대 |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
|||
32대 | 정우택 (鄭宇澤)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
부산 연제[21] | |
33대 | 이시종 (李始鍾)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민주당(2008년)| |
충북 충주 | [22] |
34대 |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
[[새정치민주연합| |
[23] | ||
35대 |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
|
|||
36대 | 김영환 (金榮煥) | 2022년 7월 1일 ~ 현재 |
|
충북 청주[24] |
3. 역대 선거 결과
역대 민선 충청북도지사 | ||||||
1960 | 1995 | 1998 | 2002 | 2006 | ||
민주당
|
자유민주연합
|
한나라당
|
한나라당
|
|||
조대연 | 주병덕 | 이원종 | 정우택 | |||
2010 | 2014 | 2018 | 2022 | |||
민주당
|
국민의힘
|
|||||
이시종 | 김영환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주요 후보 득표율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분 | 주요 후보 득표율 | ||||
1960년 |
1위: 조대연 44.45% 2위: [[신민당(1960년)| |
|||||
1995년 |
1위: [[자유민주연합| 2위: 이용희 24.50% 3위: [[민주자유당| |
|||||
1998년 |
1위: [[자유민주연합| 2위: 주병덕 25.85% |
|||||
2002년 |
1위: 이원종 58.59% 2위: [[자유민주연합| |
|||||
2006년 |
1위: 정우택 59.66% 2위: [[열린우리당| |
|||||
2010년 |
1위: [[민주당(2008년)| 2위: 정우택 45.91% |
|||||
2014년 |
1위: [[새정치민주연합| 2위: [[새누리당| |
|||||
2018년 |
1위: 이시종 61.15% 2위: [[자유한국당| |
|||||
2022년 |
1위: 김영환 58.19% 2위: 노영민 41.80% |
}}}}}}}}} |
3.1. 1960년 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경(金鏡) | 24,928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8.80% | 낙선 | |
2 | 조대연(趙大衍) | 125,825 | 1위 |
|
44.45% | 당선 | |
3 | 김관묵(金寬墨) | 16,928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98% | 낙선 | |
4 | 민종식(閔宗植) | 12,640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46% | 낙선 | |
5 | 이규석(李圭錫) | 93,631 | 2위 |
[[신민당(1960년)| |
33.0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632,051 |
투표율 44.78% |
투표 수 | 283,045 | ||
무효표 수 | - |
3.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덕영(金德永) | 159,911 | 3위 |
[[민주자유당| |
23.29% | 낙선 | |
2 | 이용희(李龍熙) | 168,209 | 2위 |
|
24.50% | 낙선 | |
3 | 주병덕(朱炳德) | 250,105 | 1위 |
[[자유민주연합| |
36.43% | 당선 | |
4 | 양성연(梁成淵) | 25,603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72% | 낙선 | |
5 | 윤석조(尹錫祚) | 27,880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06% | 낙선 | |
6 | 조남성(趙南星) | 54,748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9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72,170 |
투표율 72.67% |
투표 수 | 706,480 | ||
무효표 수 | 20,024 |
||<-7><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1b5b40><bgcolor=#1b5b40>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시군구별 개표 결과 ||
민주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은 각각 관선 충청북도지사 출신 후보를 내세웠고, 상대적으로 당세가 약한 민주당은 남부 3군의 터줏대감이었던 이용희 전 의원을 공천했다.
충청북도는 상대적으로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영향력이 약하고 보수 성향이 강한 만큼 민주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의 2파전에 민주당의 인물론이 도전하는 양상이었는데, 이곳 역시
문민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자유민주연합 주병덕 후보가 낙승하였고, 이용희 후보가 김덕영 후보를 근소하게 제치고 2위를 기록하면서 작은 이변을 연출했다.<colbgcolor=#eee,#353535> 정당 | 민주자유당 | 민주당 | 자유민주연합 | 무소속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김덕영 | 이용희 | 주병덕 | 조남성 | ||
득표수 (득표율) |
159,911 (23.29%) |
168,209 (24.50%) |
250,105 (36.43%) |
54,748 (7.97%) |
-81,896 (▼11.93) |
72.67% |
청주시 상당구 | 16.76% | 20.36% | 49.84% | 5.94% | ▼29.48 | 67.95% |
청주시 흥덕구 | 17.73% | 21.17% | 47.39% | 6.32% | ▼26.22 | 65.31% |
충주시 | 36.11% | 19.83% | 29.80% | 7.40% | △6.31 | 72.32% |
제천시 | 32.91% | 19.10% | 23.01% | 16.58% | △9.90 | 72.45% |
단양군 | 21.74% | 16.40% | 18.36% | 35.52% | ▼13.78 | 77.71% |
청원군 | 21.34% | 22.89% | 45.13% | 5.19% | ▼22.24 | 75.06% |
영동군 | 26.34% | 37.58% | 20.57% | 4.71% | ▼11.24 | 78.14% |
보은군 | 19.69% | 46.21% | 20.57% | 6.34% | △25.64 | 80.01% |
옥천군 | 15.19% | 56.68% | 20.57% | 5.15% | △36.11 | 80.26% |
괴산군 | 24.48% | 21.93% | 40.93% | 5.09% | ▼16.45 | 78.73% |
음성군 | 19.68% | 19.08% | 48.08% | 5.15% | ▼28.40 | 78.41% |
진천군 | 18.99% | 27.33% | 41.58% | 4.19% | ▼14.25 | 78.44% |
지역별로는 주병덕 후보가 충청북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청주권(청주시, 청원군)과 본인의 지역 기반인 중부 3군(진천군, 음성군, 괴산군)에서 큰 격차로 승리했고, 이용희 후보는 자신의 기반인 남부 3군(보은군, 옥천군, 영동군)에서 승리했다. 반면 김덕영 후보는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던 충주시와 제천시에서 근소하게 승리하는 것에 그쳤고, 단양군에서는 이 지역 출신인 무소속 조남성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3.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주병덕(朱炳德) | 157,459 | 2위 |
|
25.85% | 낙선 | |
3 | 이원종(李元鍾) | 451,533 | 1위 |
[[자유민주연합| |
74.14%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025,022 |
투표율 60.91% |
투표 수 | 624,298 | ||
무효표 수 | 15,306 |
3.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원종(李元鍾) | 343,546 | 1위 |
|
58.59% | 당선 | |
3 | 구천서(具天書) | 196,253 | 2위 |
[[자유민주연합| |
33.47% | 낙선 | |
4 | 장한량(張漢良) | 46,459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9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76,451 |
투표율 55.78% |
투표 수 | 600,550 | ||
무효표 수 | 14,292 |
3.5.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한범덕(韓凡悳) | 185,426 | 2위 |
[[열린우리당| |
30.60% | 낙선 | |
2 | 정우택(鄭宇澤) | 361,157 | 1위 |
|
59.70% | 당선 | |
4 | 배창호(裵昶晧) | 39,095 | 3위 |
[[민주노동당| |
6.50% | 낙선 | |
5 | 조병세(趙炳世) | 19,646 | 4위 |
[[국민중심당| |
3.2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26,282 |
투표율 54.69% |
투표 수 | 616,053 | ||
무효표 수 | 10,729 |
3.6.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우택(鄭宇澤) | 313,646 | 2위 |
|
45.91% | 낙선 | |
2 | 이시종(李始鍾) | 349,913 | 1위 |
[[민주당(2008년)| |
51.22% | 당선 | |
7 | 김백규(金伯奎) | 19,551 | 3위 |
[[진보신당| |
2.8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83,811 |
투표율 58.83% |
투표 수 | 696,393 | ||
무효표 수 | 13,283 |
충청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정우택 | 이시종 | 격차 |
전체 | 48.5% | 49.6% | 1.1%p경합 |
3.7.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윤진식(尹鎭植) | 346,152 | 2위 |
[[새누리당| |
47.68% | 낙선 | |
2 | 이시종(李始鍾) | 361,115 | 1위 |
[[새정치민주연합| |
49.75% | 당선 | |
3 | 신장호(申璋鎬) | 18,590 | 3위 |
[[통합진보당| |
2.5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61,119 |
투표율 58.76% |
투표 수 | 741,049 | ||
무효표 수 | 15,192 |
충청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윤진식 | 이시종 | 격차 |
전체 | 48.2% | 50.3% | 2.1%p경합 |
3.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시종(李始鍾) | 468,750 | 1위 |
|
61.15% | 당선 | |
2 | 박경국(朴景國) | 227,371 | 2위 |
[[자유한국당| |
29.66% | 낙선 | |
3 | 신용한(愼鏞漢) | 70,330 | 3위 |
[[바른미래당| |
9.1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18,186 |
투표율 59.34% |
투표 수 | 782,316 | ||
무효표 수 | 15,865 |
충청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시종 | 박경국 | 격차 |
전체 | 65.4% | 26.6% | 38.8%p |
실제로 여기는 개표 다음날 오전 12시 50분 경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에서 가장 먼저 당선이 확정되었다. 현직이던 이시종 전 지사가 여론조사에서나 출구조사에서나 무난히 당선이 예상 되었으며, 단 한 번도 상대 후보에게 밀리지 않고,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참고로 직전 지방선거에서 전연령층에게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여 사실상 승부가 일찍이 갈려버린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엔 아예 자유한국당 박경국 후보를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앞지르고, 충청북도지사 최초로 3선에 성공하며 8전 무패를 기록했다. 1995년 이래 단 한 번도 선거에 지지 않은 이시종 후보는 이번에도 큰 이변 없이 3선에 성공하였다.
특히 충청북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인 단양군에서 10% 이상의 차이로 이겼기에 주목을 받았다.[25] 한편 제일 적은 표차로 접전을 벌인 곳은 의외로 보은군이다. 이건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박경국이 보은군 토박이여서 그런 것이다.
3.9.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노영민(盧英敏) | 284,166 | 2위 |
|
41.80% | 낙선 | |
2 | 김영환(金榮煥) | 395,517 | 1위 |
|
58.19%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368,779 |
투표율 50.58% |
투표 수 | 692,324 | ||
무효표 수 | 12,641 |
충청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노영민 | 김영환 | 격차 |
전체 | 43.5% | 56.5% | 13.0%p |
3.10.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0 | ||
|
00.00% | ||
2 | 0 | ||
|
00.00% | ||
계 | 선거인 수 |
투표율 00.00% |
|
투표 수 | |||
무효표 수 |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
}}}}}}}}} |
충청북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eee,#353535> 후보 | ○○○ | ○○○ | 격차 |
전체 | 00.00% | 00.00% | 00.00%p |
4.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 보수 정당 | 제3후보[29] | |
1회 | 이용희 | 김덕영 | 주병덕[30] |
|
[[민주자유당| |
[[자유민주연합| |
|
낙선 24.50% | 낙선 23.29% | 당선 36.43% | |
2회 | - | 주병덕 | 이원종[31] |
|
[[자유민주연합| |
||
낙선 25.85% | 당선 74.14% | ||
3회 | - | 이원종 | 구천서[32] |
|
[[자유민주연합| |
||
당선 58.59% | 낙선 33.47% | ||
4회 | 한범덕 | 정우택 | 배창호[33] |
[[열린우리당| |
|
[[민주노동당| |
|
낙선 30.60% | 당선 59.70% | 낙선 6.50% | |
5회 | 이시종 | 정우택 | - |
[[민주당(2008년)| |
|
||
당선 51.22% | 낙선 45.91% | ||
6회 | 이시종 | 윤진식 | - |
[[새정치민주연합| |
[[새누리당| |
||
당선 49.75% | 낙선 47.68% | ||
7회 | 이시종 | 박경국 | 신용한[34] |
|
[[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 |
|
당선 61.15% | 낙선 29.66% | 낙선 9.17% | |
8회 | 노영민 | 김영환 | - |
|
|
||
낙선 41.80% | 당선 58.19% | ||
9회 | ○○○ | ○○○ | - |
|
|
||
- | - |
5.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rowcolor=#000,#fff>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6위 |
1회 | 주병덕 | 이용희 | 김덕영 | 조남성 | 윤석조 | 양성연 |
2회 | 이원종 | 주병덕 | ||||
3회 | 이원종 | 구천서 | 장한량 | |||
4회 | 정우택 | 한범덕 | 배창호 | 조병세 | ||
5회 | 이시종 | 정우택 | 김백규 | |||
6회 | 이시종 | 윤진식 | 신장호 | |||
7회 | 이시종 | 박경국 | 신용한 | |||
8회 | 김영환 | 노영민 |
6.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충청북도지사
- 이원종 (1998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재임, 민선 2·3기, 1942년 4월 4일 출생, [age(1942-04-04)]세)
- 정우택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재임, 민선 4기, 1953년 2월 18일 출생, [age(1953-02-18)]세)
- 이시종 (2010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5-7기, 1947년 4월 18일 출생, [age(1947-04-18)]세)
7. 도정 지표
주병덕 | <colcolor=#000,#fff> 힘 있는 충북 건설 |
이원종 | 열린 미래 희망찬 충북 |
으뜸 도민 으뜸 충북 | |
정우택 | 잘사는 충북, 행복한 도민 |
이시종 | 함께하는 충북 |
함께하는 충북 행복한 도민 | |
함께하는 도민 일등경제 충북 | |
김영환 | 충북을 새롭게, 도민을 신나게 |
8. 관련 문서
[1]
이유를 꼽자면 충청북도가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에 비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고 고위 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2]
충청북도지사를 맡기 전에 재선 국회의원 및
해양수산부장관 경험이 있었지만,
한나라당에서 기반을 닦은 것에 아닌
자유민주연합 출신으로 이룬 것이라 그 당시
한나라당에는 다소 입지가 약한 비주류에 속하는 정치인이었다.
[3]
그렇지만 정우택 본인은 돈봉투 사건으로 인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이 취소되었고, 더불어서 이로써 불명예스럽게 정계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4]
사실 출생지는
부산광역시이나 본적이
진천군이며,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있다.
[5]
출신지는
청주시지만 자란 곳은
괴산군이기에 괴산군이 고향의 개념은 괴산군이 더 가깝다.
[6]
다만 남부권 출신은
이용희(
옥천군),
구천서·
박경국(
보은군) 등 도전한 사례가 있다.
[7]
해당 선거에서는 출마한 두 후보가 모두 청주시 출신이었다. 다만 김영환 지사는 어린 시절을 보낸 괴산군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8]
청주시에 인구가 반절 가까이 거주하는
충청북도와
전주시에 인구가 반절 가까이 거주하여 인구 구조가 유사한
전북특별자치도에서는
전주시장 출신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둘이나 나왔다.
[9]
모두 재임 및 국회의원 선거 진출에는 실패하여 청주시장 출신들이 체급을 키울 수 없던 상황인 것도 한몫했다. 유일한 재선인
한범덕 전 시장도 재임으로 재선이 아닌 징검다리 재선에 성공한 케이스이며 청주시장을 지낸 뒤 국회의원으로 전직한 사람은 0명이다.
[10]
사실상 1회때 충주권과 남부권이 모두 빗나갔고 중부권은 모두 4회까지 100% 적중률을 보였으나 5회때 이시종 후보가 인구가 많은 청주시(옛 청원군 포함), 충주시 딱 2곳에서만 이기고 제천시랑 나머지 8개 군들에서 모두
정우택 후보가 승리하여 어긋나게 되었다.
[11]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친인
[12]
처음부터 빗나갔는데, 이 지역 연고인
이용희가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13]
초대 충청북도장관.
[14]
2대 충청북도장관.
[15]
3대 장관. 1919년 8월부터 도지사.
[16]
창씨개명으로 이토 야스아키/타이빈(伊藤泰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17]
창씨개명으로 마스나가 히로시(増永 弘)라는 이름으로 활동.
[18]
선거 당시 당적.
[19]
선거 당시 당적.
[20]
1996.1.10.
[[자유민주연합|
]] 탈당.
1997.11.19.
입당. [21] 출신지는 부산이나 본적지와 정치적 기반지는 진천이다. [22] 2011.12.23. 으로 신설 합당.
2013.5.4.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으로 당명 변경.
[23]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 [24] 출신지는 청주시이지만 유년 시절을 보낸 괴산군이 고향에 더 가깝다. [25] 다만 이시종이 과거 당적이 한나라당이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6] 그것도 있겠지만, 노영민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비호감도 크게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양정철과 함께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천거하여 결국에는 국민의힘에게 정권을 헌납한 원흉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예 노욕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중도층에서도 서울특별시와 청주시의 집 중 청주시의 집을 팔아서 민심이 좋지 않았다. [27] 노영민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 있겠지만 대통령 선거와 청주시장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을 보면 청주시가 보수화되었다는 설명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28] 읍면동별 결과를 보면, 청주시 오창읍, 진천군 덕산읍, 음성군 맹동면 단 3곳을 제외하고 김영환 후보가 올킬승을 했으며 청주시 오송읍 등 일부 진보 강세 지역들까지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이전 지방선거의 사례(당시 과거 한나라당 소속이던 민주당 이시종 후보가 보은군 일부 지역을 빼면 보수세가 매우 강한 지역들까지 전부 올킬승을 거두었다.)처럼 김영환의 과거 당적이 민주당계 정당 소속이였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29] 3% 이상 득표자만 기재. [30] 보수 정당 후보. [31]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 [32] 보수 정당 후보. [33] 진보 정당 후보. [34] 제3지대 정당 후보.
[[자유민주연합|
1997.11.19.
입당. [21] 출신지는 부산이나 본적지와 정치적 기반지는 진천이다. [22] 2011.12.23. 으로 신설 합당.
2013.5.4.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으로 당명 변경. [24] 출신지는 청주시이지만 유년 시절을 보낸 괴산군이 고향에 더 가깝다. [25] 다만 이시종이 과거 당적이 한나라당이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6] 그것도 있겠지만, 노영민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비호감도 크게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양정철과 함께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천거하여 결국에는 국민의힘에게 정권을 헌납한 원흉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예 노욕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중도층에서도 서울특별시와 청주시의 집 중 청주시의 집을 팔아서 민심이 좋지 않았다. [27] 노영민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 있겠지만 대통령 선거와 청주시장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을 보면 청주시가 보수화되었다는 설명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28] 읍면동별 결과를 보면, 청주시 오창읍, 진천군 덕산읍, 음성군 맹동면 단 3곳을 제외하고 김영환 후보가 올킬승을 했으며 청주시 오송읍 등 일부 진보 강세 지역들까지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이전 지방선거의 사례(당시 과거 한나라당 소속이던 민주당 이시종 후보가 보은군 일부 지역을 빼면 보수세가 매우 강한 지역들까지 전부 올킬승을 거두었다.)처럼 김영환의 과거 당적이 민주당계 정당 소속이였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29] 3% 이상 득표자만 기재. [30] 보수 정당 후보. [31]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 [32] 보수 정당 후보. [33] 진보 정당 후보. [34]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