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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49:06

종말론


1. 아브라함계 종교의 종말론2. 성경에서의 언급
2.1. 복음서2.2. 그밖의 성경에서2.3. 종말의 형태2.4. 종말의 때
3. 재림과 해피엔딩4. 시한부 종말론 배격5. 부활6. 관련 문서

1. 아브라함계 종교의 종말론

종말론()이라고 하면 포괄적으로는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모든 담론으로 포함한다. 단어 자체는 기독교 외에는 음모론자나 염세주의자 정도나 가끔 쓰지 그다지 흔히 쓰이는 단어는 아니기 때문에, 해당 문서는 아브라함계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 위주로 다룬다. 그 외 종말론에 대한 내용은 말세 문서 참고.

묵시(, Απōκάλυψις, apocalypsis) 문학과 관계가 깊다. 묵시 문학은 현실에 대한 비관, 선악 이원론과 뚜렷한 선악의 대립, 악의 시대에 대한 최후의 심판, 스러진 의인을 위한 원수갚음, 종말을 통한 부활과 구원 등이 내용의 중심이 된다. 학계에서는 당시 암울했던 유대인의 시대상 반영, 유대인의 비전(祕傳) 전승, 이방 종교의 영향 등을 발생 원인으로 본다.

2. 성경에서의 언급

기독교의 종말론은 신약성경의 복음서, 테살로니카 전후서와 베드로 전후서 등의 서간문, 예언서인 요한 묵시록에 많이 기록되어있다.

신약성경의 정경에 포함된 책들 중에서도 종말론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은데, 데살로니카 전서와 후서만 하더라도 전서의 경우 '빠른 재림', 후서는 '연기된 재림'에 가까운 논조를 보이는 등 차이가 뚜렷하다고 알려져 있다. 바울로의 초기 서간 등 기독교 극초기 문헌일수록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주장하지만 베드로후서와 같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의 문헌들은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식으로 서술이 애매해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역사적 예수 해석에 있어서는 예수가 종말론적 예언자, 유대적 묵시사상가였다는 설이 학계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바울로 또한 최소한 그의 경력 초기에는 살아 있는 동안 예수의 재림 종말이 올 것으로 믿었을 정도로 묵시적 종말론자였다고 여겨진다. 당대에 공존했던 에세네파(에세파) 역시 묵시적 종말론을 믿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고 보면, 여기에 씐 기독교다운 말세 기믹이 여러 매체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 잘 몰랐지만, 알고 보니 기독교다운 내용이었다" 라는 예가 많은 편. 창세기의 내용이 매체에 쓰이는 것과 거의 비슷한 맥락이다. 큰 전쟁이 발발한다거나 불의 비가 내린다거나 이상한 괴물 출현하는 등의 내용은 후일 많은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

2.1. 복음서

13.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마태오복음 25,13 (공동번역)
위 성경 구절은 예수가 직접 한 말으로 알려졌으며, 종말에 대한 경고를 하고있다. 예수가 전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세계의 질서가 금방이라도 끝나버릴 것 같은 긴장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약 2000년 전에 종말을 경고했는데, 아직도 종말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현재를 사는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가 기독교 종말론을 풀어가는 첫번째 열쇠로 볼 수 있다.
29"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30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31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모을 것이다."
34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공동번역)

2.2. 그밖의 성경에서

3.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4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하고 말할 것입니다.

(중략)

8.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파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릴 뿐 아니라
12. 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2서 3,3~12 (공동번역) 중
위 베드로의 말대로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은 예수가 한 약속을 기다리다 죽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했지만, 이 땅에 생겨난 것은 교회였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곧 온다고 했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재해석이 필요하게 되었고, 종말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신학은 이런 종말에 대한 물음 가운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약 2000년 동안 지연되고 있는 종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기독교 교파, 개인적인 신앙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여기서 어떤 한 가지를 정답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상황을 쉽게 풀어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TV 드라마에 비유해서 설명을 하면, 12부작 드라마의 최종회는 12회이다. 그 드라마의 정말 끝은 12회가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뒤, 모든 내용이 끝나고 엔딩 테마곡이 울릴 때겠지만, 12회를 최종회라 부르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왔음으로 이 세상의 최종회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세상의 정말 마지막을 알리는 엔딩곡은 울리지 않았다.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것. "최종회를 2000년동안이나 하다니, 너무 긴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년이고 예수가 온지 2000년이 지났으니, 이 세상의 역사를 1년이라 생각했 때 예수가 온 것은 12월 31일 밤이다. 지금 당장 종말이 온다면, 1년간의 드라마치고는 오히려 최종회가 매우 짧은 편인 것.[1]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1데살로니카 5,9 (공동번역)
다만 의외로 기독교 신자들이 다단히 오해하는 교리 중 하나이다. 이를테면 말세의 두려움, 예를 들어 "신자인 우리도 휘말려 멸망하면 어쩌나" 라는 등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이 두려움을 과도히 강조하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교리와는 오히려 반대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말세론은 '인류 멸망'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인류의 해피엔딩'이라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세상의 각종 모순[2]들을 부수고 지상낙원[3]을 강림하게 하여 믿는 기독교도를 구원하고 불신도[4]와 모든 악인을 단죄하여 인류사가 해피엔딩을 이룬다는 게 기독교 말세론의 핵심이다. 실제로 초기 교회의 신도들은 말세를 두려워한 게 아니라 말세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서 자신들의 믿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하였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내가 곧 가겠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자기 행적대로 갚아주기 위해서 상을 가지고 가겠다."
요한의 묵시록 22,12 (공동번역성서)

2.3. 종말의 형태

"그 때가 되면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지상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에 놀라 모든 민족이 불안에 떨 것이며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무서운 일을 내다보며 공포에 떨다가 기절하고 말 것이다.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루가복음서 21장 25-27절(공동번역))
그리고 물에 잠겨서 옛날의 세계는 멸망해 버렸습니다.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베드로의 둘째 서간 3장 6-7절(공동번역))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4장 29-30절(공동번역))
성경에는 종말의 형태에 대한 몇 가지 단서가 나온다.

2.4. 종말의 때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마태오 복음서 24장 36절 (공동번역)
성경에는 분명히 예수의 재림으로 인한 종말의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다만 그 때의 시대상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추측은 할 수 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는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바로 그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마침내 홍수에 휩쓸려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또한 롯 시대와 같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짓고 하다가 롯이 소돔을 떠난 바로 그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리자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루가 복음 17장 26-30절 (공동번역)
주님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결코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1데살 5장 2-3절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가복음서 18장 8절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사건과 소돔과 고모라 심판 사건은, 둘 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풍요 속에 심각하게 타락한 채로 살아가다가 세상이 심판을 받게 되고, 극단적일 정도로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구원을 받는 사건인데, 재림의 때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재림의 때에는 믿음을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또한 빠른 시일 내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시한부 종말론은 언제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성경이 아무도 재림의 때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재림의 때는 이런 시한부 종말론자들 조차 없어질 정도로 기독교의 교세가 약해진 세상일 가능성이 있다.[5]

3. 재림과 해피엔딩

이 모든 계시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 요한묵시록 22장 20~21절, 공동번역성서)
위의 구절은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구절이고 성경의 마지막 구절이기도 하다. 성경은 종말의 두려움이 아닌 이러한 해피엔딩에의 기다림과 간청으로 끝난다.

물론 기독교의 말세론에 의하면 이러한 해피엔딩은 열심히 믿는 기독교인과 자기 탓 없이 예수를 모르면서도 유일신 창조주에 대한 믿음으로 신의 은총을 간직한 사람들의 몫이며, 불신자들과 악인과 타락한 세상은 마지막에 영원히 징벌받으므로, 평범한 사람이 말세를 두려워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자녀들이여,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적이 오리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벌써 기독의 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1요한 2장 18절, 공동번역성서)
또한 말세는 교리상 차원에서 보면, 예수 초림 때부터 시작된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일로 믿어지고 그리스도가 약속한 것이다. 즉 기독교다운 시각에서 본 세상은 '서서히 해피엔딩으로 다가가는 것' 이다.

4. 시한부 종말론 배격

우리는 성서가 증언하는 심판, 천당, 지옥에 관한 교회의 도그마를 다 믿으면서도 그 도그마의 우주론다운, 인간학다운 표현에서는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것을 안다고 착각하였던 것보다 훨씬 적게 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고딕 시대나 바로크 시대의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c)한 묘사들은 신학상으로 별반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종말에 관한 계시는 깊은 신비의 장막으로 싸여 있고 종말론은 신학의 분야 중에서 가장 덜 천착된 분야이다.
( 가톨릭 대사전, <종말론> 항목 中)
물론 이 해피엔딩이 수십 년 후에 올지, 수십만 년 후에 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마가복음 제13장에서 예수가 직접 말하기를, 재림의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알고 천사 아들인 자신조차 모른다고 성경에 대놓고 기록되어 있다.[6] 재림의 장소나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면 사이비 종교이거나 이단일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 말세론의 본질은 인류사의 해피엔딩인데 이 교리를 왜곡해 사람들을 착취하려 든다면 모순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자신이 따르는 종파의 지도자가 말세를 이야기하면서 이나 성관계나 무조건 봉사를 요구하다면 이는 단언컨대 사이비 종교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기독교에서는 시한부 종말론이 1990년대만 해도 굉장히 판을 쳤다. 한 예로 1991년 미국이 다국적군과 함께 이라크를 공격한 걸프 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걸프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제 곧 세상을 끝장낼 대전쟁인 아마게돈이 일어나고 종말이 온다!"라는 공포스러운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걸프 전쟁이 막 벌어졌을 무렵에는 아직 소련이 존속하고 있던 터라[7] 한국 사회에서는 "소련이 결코 미국 걸프 전쟁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소련이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반드시 미국에 맞서려 들 것이다. 그러면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는 불길한 예측이 꽤나 강했다.

한 예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국민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던 김성일 장로[8]는 그의 칼럼을 모은 책인 <비느하스여, 일어서라>에서 이렇게 예측했다.
"소련은 중동에서의 소외를 만회하기 위해 리비아 이란 등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리비아와 이란은 그들과 손을 잡는 조건으로 이스라엘 침공을 제안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로 에스겔 38장에 나오는 종말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이란 리비아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중동의 모든 산유국들은 걸프전쟁 이후 미국편이 되어 있다. 결국 이 산유국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소련은 이들 세나라와 함께 아랍 국가들의 공적으로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치는 수밖에 없다. 이미 이 전쟁의 참패가 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소련은 이 자살적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비느하스여 일어서라/ 김성일 지음/ 신앙계/ 260~281쪽 #
그러나 걸프 전쟁 당시 소련은 국가 사회 전반이 만신창이 상태여서 도저히 걸프 전쟁에 끼어들어 미국과 싸워볼 처지가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1991년 막바지에 그만 15개의 나라들로 분열되어 소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른 중동 나라들이 소련과 연합군을 결성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든가 하는 일도 결코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걸프 전쟁이 불러온 세기말의 불안감은 걸프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 사회에 계속 남았고, 그러한 공포심이 불러온 집단 패닉 현상이 바로 1992년의 이른바 휴거 소동이었다. 물론 휴거 당일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1990년대가 완전히 끝나는 1999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시한부 종말론의 파동이 상당히 오랫동안 존속했다.[9]

서양쪽에서도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사례가 있는데 12세기 아일랜드 주교 말라키아스는 276대 교황시대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으며 뉴턴 2060년 경 또는 2132년[출처] 경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다. 이중 뉴턴의 경우는 위대한 과학자가 종말론을 외친 덕인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뤄지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아직 때가 오지 않았지만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성경에 반하는 것이니 만큼 크게 믿지는 말자.[11] 특히 뉴턴 같은 경우는 18세기 사람이니 만큼 거의 2백년 뒤인 2060년은 되어야 종말이 올 논의를 할 수 있을테니 지금 종말론 가지고 헛소리하지 말라는 의도로 발표한 것이니 그 의도대로 따라주는 것이 좋다.

5. 부활

참고로 신약성경에는 말세가 오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다시 깨어나 그리스도에 의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 화장하면 부활 때 시체를 못 찾잖아?" 하는 논리로 화장이나 시체의 과도한 훼손은 성경에 맞지 않다고 두려워하는 신도가 상당히 있었다.[12] 그러나 이건 중세다운 생각이고, 근현대 이후로 천주교와 주류 개신교를 비롯한 기독교 종파 대부분에서는 화장한 신자도 온전한 육체를 얻어서 부활한다고 간주하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가톨릭교회는, 매장을 전통 존중 차원에서 권장하지만, 화장 여부는 온전히 신자 자신에게 맡긴다. 개신교도 빌리 그레이엄을 위시한 주류 목사가 같은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다만 기독교가 오로지 시체가 훼손되어 부활하지 못할 걱정 때문에 화장을 터부시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교리를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하고자 화장하는 사람들이나 육체를 '사람의 혼을 붙잡아놓은 감옥'으로 해석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존재가 오히려 주된 이유였다. 아무리 전근대의 사람들이더라도 불타서 시체가 훼손되든 썩어서 훼손되든 똑같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천주교에서도 신성모독적 이유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화장을 허용하는 것이며 중세에도 전염병이 돌 때에는 시신을 화장했다.

6. 관련 문서



[1] 그런데 우주의 나이에 대해 몇몇 복음주의적인 기독교 교파에서는 과학적으로 밝혀낸 사실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젊은 지구 창조설이 바로 그것인데, 창세기의 천지창조 대목의 날을 인간의 하루로 생각하여 지구와 우주의 나이를 고작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지구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 신이 느끼는 시간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의 입장에서는 2000년도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이점을 가지고 천지창조의 날은 24시간이 아니라 특정 시대를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시간과 신의 시간은 같을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 이를테면 무한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는 굶주려야 한다"는 모순이나 핍박받고 고통받는 믿는 사람들의 수난과 사회 부조리. [3] 요한묵시록은 이것을 지상에 강림한 새 예루살렘, 즉 천국이자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으로 묘사한다. [4]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의 복음을 의도로 믿지 않은 수많은 사람도 포함된다. [5] 삶에 지쳐서 다소 왜곡된 신앙을 갖게 된 믿음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이므로, 삶에서 문제가 없어지고 즐길거리가 많아지면 금세 종교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6] 성부와 성자는 그 위격이 다를 뿐 같은 본질에 동일 본체인데 왜 성부만이 아는지는 모른다. [7] 2023년인 지금에 와서는 많이 사라졌으나, 소련이 붕괴되던 1991년 10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한국인들한테 세계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였다. [8] 성서무오설을 믿는 정도를 넘어서 "성경 속에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예언되어 있다!"라는 극단적인 문자주의를 신봉하는 성향을 지닌 인물이다. [9] 한국 기독교가 시한부 종말론을 자주 부르짖는 이유는 한국의 근현대 역사가 워낙 험난하고 어수선하여 (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한국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및 연평해전 등) 자연히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의 심리에 종말이 곧바로 들이닥친다는 공포심이 새겨졌기 때문이라고 도올 김용옥 교수가 그의 저서인 사랑하지 말자에서 주장한 바 있다. [출처] 앗 시리즈 [11] 당장 루가 복음서를 보더라도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것 자체를 경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12]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초반부와 중반부에서도 관련 장면이 나온다. 자살한 발리앙의 아내의 목을 자르고 매장(자살의 대죄를 지었으므로 부활할 때 온전한 육체를 못찾게)하라는 동생 신부의 지시 장면이나 전사자 시체를 방치하면 전염병이 돌기에 화장해야 하는데 여기서 부활 못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하는 주교와의 갑론을박(발리앙 왈: 하느님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겠죠.) 장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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