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케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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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클럽 | ||||
2대 |
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 ||||
에드윈 베리 (1904~1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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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케나 (1909~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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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애스버리 (1913~1917) |
존 애스버리 (1913~1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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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케나 (1917~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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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윌리엄스 (1919~1924) |
아일랜드의 前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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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케나 John McKen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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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 1855년 1월 3일 | |
아일랜드 모나한 주 | ||
사망 | 1936년 3월 22일 (향년 81세) | |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 ||
국적 |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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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 감독 축구 경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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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감독 | 리버풀 FC (1895~1896) |
경영인 |
리버풀 FC (1909~1913, 1917~1919 / 회장) 잉글랜드 풋볼 리그(1917~1936 /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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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의 축구인으로, 리버풀 FC의 2대 감독 및 4대, 6대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이후에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의 회장직을 20년간 지냈다. 리버풀 감독으로 있던 시절에는 윌리엄 바클레이와 함께 초창기 리버풀의 운영을 도맡은 핵심 인사였다.2. 지도자 및 경영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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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당시의 리버풀 FC[1] |
맥케나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870년대 이직을 위해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의 리버풀로 이주하였고, 이후 스포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리버풀 FC의 설립자 존 하울딩과 만나게 되었다. 이후 하울딩이 에버튼 FC와의 갈등 끝에 안필드에 리버풀 FC를 창단하게 되자 맥케나는 곧 바로 리버풀의 초창기 이사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맥케나는 초대 감독이었던 윌리엄 바클레이와 함께 직접적으로 팀을 운영하면서 1893-94 시즌에 팀을 2부 리그 우승으로 이끈 이후, 그 다음 시즌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나 공식적으로 감독직에 오른 1895-96 시즌, 다시 2부 리그에서 우승하며 1부 리그로 팀을 진입시켰다.
당시 리버풀의 감독직은 현대의 감독직과 다르게 선수들을 경기에서 지휘하는 인물과 선수단을 관리하는 인물이 서로 나뉘어져 있었기에, 바클레이와 맥케나는 사실상의 이원 감독의 형태로 팀을 지도했다. 맥케나는 당시 경기에 뛰는 선수들을 직접 고르고 선수단을 직접적으로 지휘하는 '코치'의 역할을 맡았다.[2] 맥케나는 초창기 리버풀의 선수단 구성을 위하여 글래스고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수들을 많이 데려왔는데 이 때, 이름이 맥케나와 같이 'Mc'으로 시작되는 선수들이 많아서 맥케나의 리버풀은 'Team of Macs'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었다.[3] 1895년, 바클레이가 감독직을 넘겨주고 보드진으로 완전히 합류한 이후 1895-96 시즌부터는 맥케나가 공식적으로 감독직을 맡았다. 이후 맥케나 체제에서 리버풀은 다시 한 차례 2부 리그에서 우승하며 1부 리그로 승격했고, 이 시즌 36경기 25승 3무 8패를 기록했다.[4]
리버풀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엔 계속해서 구단 이사진에서 일하다가 1909년부터 1913년까지는 리버풀의 4대 회장직을 역임했다. 이후 그는 1917년 풋볼 리그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1936년 3월 사망할 때까지 거의 20년 동안 회장자리를 지켰다. 1917년에서 1919년까지는 리버풀의 6대 회장직도 잠깐 다시 맡았다. 그는 풋볼 리그에서 일하면서도 리버풀에 40년 넘게 애정을 가지고 봉사했다고 전해진다.
3. 말년
1936년 3월 22일, 머지사이드를 넘어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널리 존경받던 맥케나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축구인들이 그를 추모했다. 그의 관은 세 명의 리버풀 선수들과 세 명의 에버튼 선수들에 의해 묘소로 옮겨졌으며, 이후 안필드의 출입문에는 그를 기념하는 명패가 설치되었다. 2011년 8월에는 아일랜드의 모나한 주 카운티 글래스로프에 그를 기리는 기념패가 공개되었다. 해당 기념패 공개 당시 리버풀 보드진은 매캐나의 업적을 두고 "존 맥케나는 리버풀 풋볼 클럽에서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증명했으며, 빌 샹클리와 존 하울딩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로, 잉글랜드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말을 남겼다.4. 기록
4.1. 감독
- 리버풀 FC (1895~1896)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895-96
5. 여담
- 풋볼 리그 회장직을 수행하던 중 포츠머스 FC의 홈 구장 프래턴 파크 내 '사우스 스탠드'를 공식적으로 개장하기도 했다. 이 스탠드는 당대의 유명 구장 설계자 아치볼드 레이치가 설계를 맡았다. 프래턴 파크에는 당시 맥케나가 스탠드를 개장한 기념 명패가 여전히 남아있다.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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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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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 현재 | ||||
초대 바클레이 ☆ |
2대 맥케나 ☆ |
3대 왓슨 ★★☆ |
4대 애시워스 ★ |
5대 맥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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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패터슨 |
7대 케이 ★ |
8대 웰시 |
9대 테일러 |
10대 샹클리 ( 샹클리 체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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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페이즐리 ( 페이즐리 체제) ★★★★★★ ★★★★★★★★ |
12대 페이건 ( 페이건 체제) ★★★ |
13대 달글리시 ( 달글리시 체제(1기)) ★★★ ★★ |
14대(대행) 모란 ( 모란 체제) |
15대 수네스 ( 수네스 체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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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에반스 ( 에반스 체제) ★ |
16&17대 에반스& 울리에 ( 에반스&울리에 체제) |
17대 울리에 ( 울리에 체제) ★★★★★ |
18대 베니테스 ( 베니테스 체제) ★★★ |
19대 호지슨 ( 호지슨 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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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달글리시 ( 달글리시 체제(2기)) ★ |
21대 로저스 ( 로저스 체제) |
22대 클롭 ( 클롭 체제) ★★★★ ★★★ |
23대 슬롯 ( 슬롯 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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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어 리그 / ★
FA컵 / ★
EFL컵 / ☆
EFL 챔피언십 ★ UEFA 챔피언스 리그 / ★ UEFA 유로파 리그 / ★ UEFA 슈퍼컵 / ★ FIFA 클럽 월드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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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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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 국적 | 이름 | 기간 | 우승 기록 | 비고 |
초대 | 존 하울딩 | 1892~1896 | ☆☆ | 구단 창립자 | ||
2대 | 윌리엄 하울딩 | 1896~1904 | ★ | |||
3대 | 에드윈 베리 | 1904~1909 | ★☆ | 새 이사회 구성 | ||
4대 | 존 맥케나 | 1909~1913 |
최초의 감독 출신 회장 최초의 외국인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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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 존 애스버리 | 1913~1917 | ||||
6대 | 존 맥케나 | 1917~1919 | 최초의 중임 회장 | |||
7대 | 윌리엄 윌리엄스 | 1919~1924 | ★★ | |||
8대 | 리차드 마틴데일 | 1924~1926 | 재임 중 타계 | |||
9대 | 토마스 크롬튼 | 1926~1932 | ||||
10대 | 왈터 카트라이트 | 1932~1935 | ||||
11대 | 윌리엄 해롭 | 1935~1941 | ||||
12대 | 리차드 마틴데일 주니어 | 1941~1944 | ||||
13대 | W. H. 맥코넬 | 1944~1947 | ★ | 재임 중 타계 | ||
14대 | 스텐리 윌리엄스 | 1947~1950 | ||||
15대 | 조지 리차즈 | 1950~1953 | ||||
16대 | 윌리엄 해롭 | 1953~1956 | 재임 중 타계 | |||
17대 | T. V. 윌리엄스 | 1956~1964 | ★☆ | |||
18대 | 시드니 리크스 | 1964~1967 | ★★ | 새 이사회 구성 | ||
19대 | 해롤드 카트라이트 | 1967~1969 | ||||
20대 | 허버트 로버트 | 1969~1973 | ★★ | 재임 중 타계 | ||
21대 | 존 스미스 | 1973~1990 |
★★★★★★★★★★ ★★★★★★★★★★★★★ |
최장 기간 재임 회장 역대 최다 우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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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 노엘 화이트 | 1990~1991 | ||||
23대 | 데이비드 무어스 | 1991~2007 | ★★★★★★★★★★ | |||
24대 | 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 2007~2010 |
최초의 공동 구단주 최초의 미국인 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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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 마틴 브러튼 경 | 2010 | 구단 매각을 위한 임시 구단주 | |||
26대 |
존 헨리 ( 펜웨이 스포츠 그룹) |
2010~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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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 ★
FA컵 / ★
EFL컵 / ☆
EFL 챔피언십 ★ UEFA 챔피언스 리그 / ★ UEFA 유로파 리그 / ★ UEFA 슈퍼컵 / ★ FIFA 클럽 월드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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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
* 리버풀 FC의 회장은 구단 이사회가 선출하는 최고직이었으나 데이비드 무어스부터 구단 지분 과반 이상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후 외국 자본이 구단을 소유하며 구단주로 명명. |
[1]
하단 정중앙의 인물이 리버풀의 창립자 하울딩이다. 왼쪽이 존 맥케나, 오른쪽은
윌리엄 바클레이
[2]
맥케나와 바클레이 중 누가 진짜 초대 감독인지에 관한 의견은 나뉘어지기도 하나, 당시의 감독직은 현대의 감독직 개념과 약간 달랐다. 이에 리버풀 구단측은 바클레이를 공식적인 초대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 단, 맥케나는 선수 선발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헤드 코치라고 불리기도 하는 현대의 감독직에 더 가까운 직책이기는 했다. 반면, 바클레이는 공식적으로는 감독이었지만 현대의 풋볼 디렉터에 가까운 역할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3]
당시의 던컨 맥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말콤 맥빈, 휴 맥퀸, 매트 맥퀸, 존 매카트니, 빌 맥오웬, 조 맥퀸 등의 선수들이 리버풀에 있었다.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 특유의 'Mc'가 이름에 포함된다.
[4]
바클레이와 함께 팀을 이끌던 시기까지 총합하면, 맥케나의 리버풀은 127경기에 77승 20무 30패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