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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스 사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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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조나스 사빔비 안토니우 뎀부 파울루 루캄바 가투 }}}}}}}}}}}}


<colbgcolor=#000><colcolor=#FFCD0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onas_Savimbi.jpg
본명 조나스 말례이루 사빔비
Jonas Malheiro Savimbi
출생 1934년 8월 3일
포르투갈령 앙골라 비에 주
사망 2002년 2월 22일 (향년 67세)
앙골라 모시쿠 주
묘소 루에나 주립묘지
재임기간 초대 대통령
1979년 9월 26일 ~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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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CD00> 부모 아버지 로테 말례이루 사빔비
어머니 헬레나 말례이루 사빔비
배우자 발렌티나 세케
카타리나 사빔비
자녀 최소 3명
인종 오빔분두족
소속 FNLA[1] (1964–66)
MPLA[2] (1964–1965)
UNITA[3] (1966–2002)
언어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
학력 리스본 대학교 (의학 / 중퇴)
로잔 대학교 (사회학 / 학사)
프리부르 대학교 (사회 및 정치과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신체 183cm[4]
소속 정당
군사 경력
복무 UNITA 게릴라, UNITA 최고사령관
1961년 ~ 2002년
병과 보병
주요 참전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앙골라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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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기2.2. 앙골라 내전2.3. 몰락2.4. 죽음
3. 사빔비는 억울하다?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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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골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앙골라의 정치인.

과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앙골라에서 무장 투쟁을 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정작 독립이 된 뒤에는 전범으로 전락한 인물이다. 비록 내전에서 패전하고 정부군에게 사살 당해 죽어버렸기에 앙골라 전역의 정권을 잡지는 못하고 앙골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자칭 대통령으로만 만족해야 했지만, 그의 일생은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다른 독재자들의 삶과 많이 비슷하며, 앙골라 내전 당시 앙골라의 정권을 쥐고 있던 MPLA 세력들을 전복시키고 권력을 잡았어도 전형적인 아프리카식 독재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2. 생애

2.1. 초기

포르투갈령 앙골라의 비에 평원에서 철도 역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톨릭 학교에 다니면서 기초 교육을 받았다. 이후 뛰어난 학생으로 인정받아 포르투갈 리스본 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을 기회가 생겨[5] 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할수록 앙골라인과 타 포르투갈령 식민지인들에 대한 차별 및 포르투갈의 압제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리스본 대학 내에서 연설가로 유명해지면서 포르투갈 비밀경찰(PIDE)의 정치적 압력이 커지자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중립국인 스위스로 이동, 로잔 대학교에서 미국 선교사의 장학지원을 통해 사회과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리부르 대학교에 가서 공부했고 그가 이미 유창했던 프랑스어와 영어 구사력을 크게 키우는 동시에 앙골라 내에서 혁명을 준비하던 세력들과 꾸준히 접선했다. 이후 1960년에는 앞서 독립투쟁을 벌이던 올뎅 호베르투(1923~2007)와 뜻을 맞춰 호베르투가 거느리는 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에 가입했다. 그러나 바콩고족 중심의 FNLA와 갈등을 빚어 1966년에 FNLA에서 분리독립하여 따로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 UNITA)을 만들게 된다.

그는 마오이즘 사상을 가진 일부 동지들도 받아들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았기에 무조건 반공 우익은 아니었다. 물론 중국이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논리로 미국과 밀월 관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빔비는 그렇게 미국, 이스라엘, 소련, 중국 등 세계 주요 군사 강국들과 알제리, 튀니지, 자이르, 잠비아, 탄자니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 아래에 포르투갈군에 무력 저항을 벌이던 끝에 1975년 앙골라는 독립을 이루게 된다.

2.2. 앙골라 내전

그러나 독립을 이루자마자, 서로 독립된 신생 국가의 정권을 차지하고자 포르투갈과의 독립전쟁을 벌였던 무장 독립군 세력들이 충돌하면서 30년 가까운 지겨운 앙골라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빔비는 UNITA를 조직하여 정부군 MPLA와 맞서게 된다.

그리고 사빔비는 이때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비록 우파라고는 하지만 공산주의자들도 어느 정도 수용하여 독립 하나에 전념하던 유연한 모습은 사라진 채 권력 하나만을 목표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아프리카식 정치인이 되었고, 보수우익 민족독립군인 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과도 갈등을 빚었다. 그 밖에도 좌파 세력인 앙골라 해방인민운동( MPLA)이나 한때 자신이 가입했던 앙골라 민족 해방전선(FNLA)과도 서로 전쟁을 벌이며 앙골라는 그야말로 헬게이트로 전락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Movimento_Popular_de_Liberta%C3%A7%C3%A3o_de_Angola_%28bandeira%29.svg.png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 깃발.

이 와중에 미국이나 서구권, 이스라엘, 중국은 다른 이유는 다 빼고 국제제재를 받던 불량국가 남아공이 지원을 하건 말건 우파에 반 소련이라고 하여 사빔비의 UNITA를 지원했다. 소련이나 쿠바를 비롯한 공산권은 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을 지원했다. 소련의 지원 아래 쿠바는 쿠바군 병력을 직접 앙골라에 파병했고, 이런 지원의 결과로 앙골라는 한반도처럼 냉전의 대리전 전쟁터가 되어야 했다.

이런 내전 와중에 자기에게 구호품 절반을 내놓지 않았다고 UN 구호물품을 실은 수송기를 격추시키며 국제적으로 막장성을 과시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독차지하면서 일꾼을 악랄하게 부려먹어 얻어낸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전 세계로 수출하여 배를 불렸으며, 소년병을 강제로 동원해 약물 중독시켜 살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 마디로 사빔비는 권력 하나만을 목표로 하고 온 나라를 희생시키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군벌로 타락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MPLA의 막장성 때문에 UNITA를 지지하던 이들조차 등을 돌릴 정도로 앙골라에서도 증오를 많이 받았다. 이러자 미국 국내에서도 저런 인간을 우리가 무기 지원하는 건 아프리카에서 반미 감정만 일으킨다며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이후 로널드 레이건이 물러나고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1989년 사빔비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했다.

한편 미국이 사빔비에 대한 지원을 끊자 사빔비는 미국으로 가서 미국 외교관들과 국회의 상원의원을 만난다. 그리고 "우리 군대에 대한 무기 원조를 끊어버리면 앙골라는 MPLA 빨갱이 놈들이 지배하는 공산당 독재 국가가 되어 그놈들 반드시 보복 탄압을 우리들에게 기어코 할 텐데 이래도 되냐? 이 배신자 양키 놈들아!"라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미국 정부의 군사 지원 중단 조치를 철회해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워낙 악명이 높아 지원을 재개하지 않았다.

다음해인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앙골라 내전 당시 MPLA을 돕던 쿠바군과 소련군이 철수하여 냉전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1992년에 미국과 유엔의 중재로 합법적 총선이 이뤄진다. 하지만 사빔비는 총선에서 자신이 MPLA 소속의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선거 결과에 불응하고 다시 내전을 일으키면서 10년이나 다시 앙골라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1994년 UN이 중재한 평화 협정에 다시 서명해 부통령 자리가 제안되었으나 오래 안 가 거절하고 MPLA 정권을 상대로 다시 내전을 벌이게 되었다. 미국은 또 다시 잠깐 사빔비를 지원했으나 당연히 국제적 비난에 처했고 결국 완전히 지원을 중단하며 이후에는 UNITA를 제재했다.

그리고 남아공 백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역시 지원이 끊어졌고, 우습게도 미국이 지원을 끊어버리자 한때 그를 지원하던 이스라엘은 반 사빔비 세력에게 무기를 팔고 훈련을 겸할 겸 이스라엘군을 몰래 용병으로 파병하여 사빔비의 UNITA와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군이 되어버린 MPLA와 이스라엘군 일부, 그리고 한때 그를 지원하던 남아공도 특수부대를 파병하여 사빔비의 UNITA를 공격한다. 1960, 70년대 식민지 독립전쟁 시절 자신과 싸웠던 과거의 적국 포르투갈 역시 UNITA와 전쟁을 벌이던 MPLA 정부군에게 무기와 장비들을 수출하여 MPLA 정권의 UNITA 진압을 통한 앙골라의 안정화를 지지했다. 중국과 유럽 국가들도 그를 외면하고 오히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등을 통해 UNITA를 제재하며 사빔비의 목줄을 죄었다. 게다가 장기간에 걸친 오랜 내전과 내전 당시 UNITA 반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가족을 잃어 그에게 원한을 가진 앙골라 국민들도 모조리 MPLA 앙골라 정부군을 지지하면서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되어 버렸다.

2.3. 몰락

그래도 독립투사 출신의 이미지와 리더십은 어디 가지 않아서 불리한 조건 하에서도 2002년까지 처절하게 MPLA 앙골라 정부군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결국 서서히 장비나 인력도 한계가 오며 거듭되는 패전 속에 UNITA가 장악하던 영토와 도시들 대부분을 잃고, 사빔비는 내륙 지역인 목시코 주로 퇴각하여 목시코주의 마지막 남은 반군 점령지에서 정부군에게 항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UNITA의 반군 병력 수보다 더 많은 육군 병력[6] Mi-24 공격 헬기와 MiG-21 전투기, Su-17 전투기, Su-25 지상공격기 등 여러 전술기들로 보유/무장하여 공군 전력을 갖춘 MPLA 정부군을 상대로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고 겨우 남아있는 점령지 땅조차 MPLA 정부군의 공세에 힘겹게 방어하는 형국이었다.

2.4. 죽음

결국 2002년 2월 22일 목시코주 일대에서 남아공 특수부대, MPLA 정부군, 이스라엘 용병부대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열람주의)시체에는 15발 이상 총알이 머리에서 발견됐으며 80발이 넘는 총알이 온 몸 곳곳에 박혀 있었다고 한다. 무려 95발이나 되는 총알을 맞고 죽은 셈이다. 이 시체는 앙골라 국영 TV로 영상이 보도되었고 최종 사망이 확인된 뒤에 초라하게 묻혀졌지만[7] 내전이 끝난지 약 6년 뒤인 2008년 1월 3일에 사빔비와 UNITA를 증오하던 내전 당시 피해자 시민들에 의해서 묘지가 부관참시되고 시체와 머리가 절단되어 무참히 거리 곳곳에 내던져지는 비참한 꼴을 당한다. 특히 머리는 잘려서 나무에 매달려 사진까지 찍혔다. 사빔비의 시체는 2019년이 되어서야 비석까지 갖춘 재대로된 무덤에 재매장되었다.

그가 정부군에 대항하면서 마지막 항전지로 목시코 주를 꼽았던 이유는 이곳에 까메이아 국립공원이라고 하는 거대한 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한 지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UNITA 반군 측에서 이곳에서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늪지대에 살던 온갖 희귀한 동식물들을 함부로 밀렵/채취하는 일이 발생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여파가 남아있어 많은 앙골라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고 한다. # 더구나 상술했듯 내전이 종식된 뒤 현지인들이 사빔비의 시체를 부관참시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동식물들뿐 아니라 현지 민간인들에 대해서도 횡포가 적지 않았던 듯 하다.

그가 사망하고 2인자이자 사빔비의 부하였던 안토니오 세바스티앙 뎀보(1944~2002)가 UNITA를 이끌며 앙골라 MPLA 정부군과 전쟁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그도 전투에 다친 상처가 덧나 사빔비가 죽은 지 겨우 사흘만인 2월 25일에 사망했고, 1인자였던 사빔비와 2인자였던 뎀보가 연이어 사망하면서 UNITA는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 이에 파울로 루캄바를 비롯한 UNITA의 남은 반군 지도부들이 MPLA의 보복 금지 및 정치권 참여 약속을 조건으로 정부군에게 항복/무장해체하면서 1975년 포르투갈 식민지배에서 독립 이래 장기간 이어졌던 앙골라 내전은 종식되었다.

이때 보복 살인이나 보복 행동이 금지되어 이들 병력 3만여 명이 무장해제와 동시에 항복했으며, 루캄바를 비롯한 간부들은 무장 해제를 대가로 정치권에 들어왔고 그의 정당인 UNITA는 현재도 앙골라의 제1야당이다. 그러나 과거 앙골라 내전 당시 반군 시절에 자행했던 학살, 고문, 탄압 등 전쟁범죄 전력들이 수도 없이 많다 보니 현 여당인 MPLA가 독재에 가까운 장기 집권과 부정부패로 악명이 높음에도 앙골라 국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앙골라 내전 당시 UNITA 반군들에 의해 전쟁 피해를 입었던 당시 피해자 국민들은 내전 시기 UNITA와 대립하였던 MPLA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2020년대 와서는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 및 코로나 19 로렌수 대통령의 개혁 정책이 동력을 받지 못하고 UNITA가 타 야당과 연합하면서 일단 여론조사 상으로 보면 2022년 총선에서 정권 교체가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으나, 2022년 8월 치러진 앙골라 총선에서 다시 MPLA가 압승을 거두면서 정권 교체는 사실상 물 건너가고 말았다.

3. 사빔비는 억울하다?

사실 사빔비만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순 없다. 물론 사빔비가 내전 중에 전쟁범죄들을 저지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빔비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었던 MPLA의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전 앙골라 대통령과 산투스의 전임이자 옛 주군이던 안토니우 아구스티뉴 다 실바 네투 전 대통령, 루치오 라라 전 MPLA 의장, 이코 카헤이라 전 MPLA 정부군 총사령관, 과거 UNITA로 분가하기 전 예전에 자신의 소속이었고 MPLA의 네투, 산투스와 함께 사빔비의 또 다른 경쟁자였던 FNLA의 홀덴 로베르투 전 의장 역시 역시 앙골라 내전 중에 소년병을 강제 동원하고 반대파 세력들에 대한 학살과 탄압을 자행하거나 개입했던 바가 있다. 사실 앙골라 내전 당시 사망자 수치로만 치면 사빔비의 UNITA보다 산투스와 네투가 이끌던 MPLA가 더 많이 죽였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미국이 사빔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이유는 사빔비가 잔혹했기 때문이 아니라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 입장에서 사빔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92년에 치른 첫 민주 총선은 말이 합법이었지 실상은 부정선거였다. 더구나 사빔비는 결과에 즉시 불복하고 내전을 재개한 것이 아니다. 1차 투표에 산투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긴 했지만 과반수를 얻진 못했고 헌법에 따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사람이 2차 투표에 출마한 뒤 과반수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사빔비는 UNITA의 2인자를 루안다로 보내 2차 투표 시기를 협상하려 했다. 그런데 MPLA는 협상하러 온 UNITA의 2인자는 물론 루안다에 있는 UNITA 지지자들까지 살해해버렸다. 이 사실을 알고 격분한 사빔비는 선거를 포기하고 내전을 재개했다. 그리고 1994년 산투스가 사빔비에게 부통령 자리를 제안했을 때 이를 거절한 것도 사빔비로서는 산투스의 진의를 의심하고도 남았다. 이미 MPLA 측에도 앙골라 부통령이 있는 상황에서 제2부통령직을 제안 받은 데다가 애당초 부통령은 실권이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미국의 부통령을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의 부통령은 실권이 있는 자리가 아니다.

게다가 UNITA의 무장해제를 전제 조건으로 내밀었는데, 사빔비가 그런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장 그런 식으로 투항하거나 정치적 거래를 했다가 뒤통수를 맞고 전 반군 지도자 및 정치가들이 보복, 살해 당한 사례들이 아프리카 중동 등 비서구권 세계의 정치판에서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존재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2002년 앙골라 내전이 끝나고 UNITA의 무장해제가 이뤄진 이후 MPLA가 약속을 지키기는 했지만 말이다.

4. 기타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 등장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나스 사빔비(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그런데 이 일로 사빔비의 유족들이 2016년 1월 제작진이 사빔비를 야만인으로 묘사했다며 액티비전 블리자드 프랑스 지사에 100만 유로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앙골라에서는 적반하장이라느니 제대로 잘 묘사했다며 유족들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물론 사빔비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오히려 영웅으로 묘사했다며 액티비전을 욕했다. 사빔비에게 가장 동정적인 여론조차 그놈이 그놈 이런 식이다. 프랑스 지사에 소송을 한 이유는 앙골라에 살았다간 국민들에게 맞아 죽을 판이라 사빔비의 유족들은 프랑스로 건너가 살고 있다. 프랑스 여론도 승소 가능성이 없는 유족들이 그냥 존재 확인하고자 징징거리는 거라고 비웃는 상황이다.

네이버 웹툰 웨스트우드 비브라토에 등장한다.

상술한 블랙 옵스 2에서의 등장 분량이 2018년 10월 경에 올라온 영상에서부터 낚시용 밈으로 쓰이고 있다. "STOP WATCHING THIS BROTHER, WE MUST FIGHT MPLA( 이런 건 그만 보게, 형제여! 우린 MPLA와 싸워야 한다네!)"라는 글자가 쓰여진 짤에 이어 "Our Journey to victory has begun! Death to the MPLA!(우리의 승리를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MPLA에게 죽음을!)"라고 외치는 영상을 붙여넣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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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앙골라 민족해방전선 [2] 앙골라 해방인민운동 [3] 앙골라 완전독립 민족동맹 [4] 직접 대면해본 사람에 의하면 6피트라는 기록이 있다. [5] 필수과목을 듣지 않아 장학금 받지 못했다. [6] 앙골라 내전 말기였던 2001년 당시 MPLA 앙골라 정부군의 병력수는 무려 130,000명이었다. [7] 그나마도 묘비조차 없어서 사진에서 보이는 무덤 봉분 뒤에 있는 나무에 사빔비라고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