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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5:32:37

정릉(병주일지)



1. 개요2. 지위3. 성격4. 특징5. 작중 행적6. 인물 관계
6.1. 가족6.2. 무장진6.3. 책사진6.4. 한나라 황실6.5. 낙양 저택6.6. 우호 군웅 세력6.7. 그 외 군웅 세력6.8. 이민족6.9. 기타 인물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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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름 정릉(丁陵)
화현(化賢)
고향 병주
거주지 낙양
지위 한나라의 대장군
한나라의 국서
가족 정원 건양(어머니)
정만(아버지)[1]
자녀 서희(서여)
여화(여포)
조앙(조조)
관평(관우)
장하(장비)
유정(유변)
유환(유비)
조비(조조)
유간(유변)

노벨피아에서 연재 중인 삼국지 연희물 기반의 대체역사물 웹소설 병주일지의 주인공이다.

이름은 정릉(丁陵), 자는 화현(化賢)으로 전생에 현대인이었다가 삼국지 연희 세계에 여성으로 바뀐 병주자사 정원 건양의 아들로 환생한 인물이다.

2. 지위

최신화 시점 기준으로 정릉은 한나라의 대장군이자 한나라 황제 유변의 남편, 즉 한나라의 국서이다. 이외에도 대도독, 녹상사서를 겸한다.

한나라 시기의 대장군이라는 직책은 나라의 군부를 총괄하며 군권을 모두 가진 직책이자 휘하의 직속 사병도 둘 수 있는 자리로, 관료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또한 동탁을 내쫓은 이후 정릉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된 황제 유변이 금군의 지휘할 수 있는 직책과 임명권을 거의 위임하다시피 넘겨준 상황이라 금군에 대한 지휘권 또한 가지고 있다.

즉, 실질적으로 한나라 황실이 다스리는 곳의 군권은 전부 정릉에게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황제와 혼인하여 국서가 됨으로써 금군과 대장군의 직속 사병인 부곡이 하나로 합쳐졌다.

한나라 시기에 대장군은 무관으로서 가장 높은 직책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장군보다 더 높은 직책으로는 신하가 오를 수 있는 최고 직책인 상국과 나라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서열 2위인 승상이 있다.

허나 상국은 한나라 초기에 개국공신들이 임명된 후 사실상 공석인 상태이며, 승상은 한나라 시기엔 폐지된 직책이기에 사실상 대장군은 관료 서열 1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비슷한 급의 삼공은 황제가 힘을 야금야금 갉아낸 상태라고 한다.

한나라를 재통일 할 때쯤에, 어머니인 정원을 경유해서 도끼(가황월)하나를 받았다. 저 도끼의 의미는 마음만 먹으면 신하들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다만 정릉의 성격상, 즉석에서 극악무도하다고 판단되는 범죄자들 외엔 쓸 일이 없다. 현재까지 정릉이 가황월과 상방검을 꺼낸건 가혹한 새내기 신고식을 하는 관리들을 벌할때였다.

후에 상방검이라는 검을 받았다. 황제를 위한 전용무기로, 신하에게 하사되면 가황월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죽여도 면책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황제가 국서인 정릉에게 공식적으로 황제 이외에 여인들과 문제없이 혼인하고 지낼 수 있게 비우의 권한을 주었다.

하나 사실상 직위 자체의 서열을 제외하고도 정릉의 위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휘하의 인물들의 수준과 충성심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도 여론이 상당히 좋다.[2]

선선대 황제인 환제[3], 선대 황제 영제, 십상시 때문에 망해가던 한나라를 수년 만에 되살리고, 통일까지 이루어낸 인물이라 그런지 사실상 황제를 초월하는 한나라 권력 1위의 인물이다.

만약 자신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황제에 등극하고자 하면 따라올 인물들이 수두룩하다고. 애초에 현 한나라 황제인 유변부터가 따라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도술을 배운 도사 혹은 신선들 일부에게는 정해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역천자라고 불리며 노려지고 있다. 서여와 여포의 운명이 뒤틀린 것과 원래 역사가 완전히 개변된 것 또한 정릉의 존재 때문인 듯.[4] 그래선지 본인의 성격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을 뻔한 위기를 자주 겪는다.[5]몽골과의 전투에서 배에 관통상을 당한 이후에는 아군 모두가 정릉이 최전선에서 지휘하는 것을 막으려 든다.[6] 신선조차 살아있는게 용하다고 할 정도였던 부상이었다.

다만 한의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도외시하지 않는 신선들에겐 긍정적으로 보이기에 적대자들을 어느 정도 처리하여 도와주고 있다. 순욱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펼치려는 세상은 태어난 이유로 불합리하게 목숨을 잃지 않는 세상이라고 했다.

과거 편에서 밝혀진 사실로 전장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은 없다. 또한 이런 전설적인 업적 때문에 세간에는 동방의 패자(霸者)라고 불린다고.

결국 수많은 업적이 쌓이고 쌓여서 백마지맹 이후 최초이자 최후의 이성왕(異姓王)에 올리려고 유변과 문무백관들이 작당중이다.

3. 성격

작중 등장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성격을 가진 대부분의 군웅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선한 성향의 인물이다. 병주에 있을 때는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거두어 주었으며, 어머니인 정원을 설득해[7] 모았던 재물들을 풀어 병주의 거주민들을 도와주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동탁을 몰아내고 사실상 천하제일인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올랐지만 유변에게 공손히 대하며[8] 권력을 탐하지 않고[9] 한나라의 부흥에 전력을 다한다.

이에 한나라의 백성들은 물론이고 한나라를 오랫동안 섬겨온 충신들인 왕윤, 노식, 황보숭도 정릉의 선한 성향과 올곧은 인품을 인정하고[10] 그와 친화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하내 지역의 호족인 사마 가문의 가주이자 사마의를 비롯한 사마팔달의 아버지인 사마방 및 형주 출신의 호족이자 방통의 숙부인 방덕공 등 뛰어난 견식과 지식을 가진 인물들도 정릉을 인과 의를 갖춘 이상적인 군주라며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동탁을 몰아내고 한나라의 대장군에 오르고 나서는 자신과 대적하거나 백성들을 착취하며 악한 짓을 벌이는 여러 군웅들에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한나라의 영토를 공격하며 물자를 약탈하려고 하는 여러 이민족들을 처리하며 영제와 십상시의 환관들이 해왔던 짓거리 때문에 사실상 몰락 직전이었던 한나라를 다시금 부흥시키고 끝내 재통일을 이뤄낸 실질적인 주역이자 장본인으로 그 명성과 위세가 대단히 높은 인물이다.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과 신나라를 박살내고 다시 한나라를 건국한 광무제의 재림이라 할 수 있을 정도.

영제와 십상시의 부정부패로 나라가 무너질 뻔했기에 뇌물과 부정부패를 싫어하며 만약 뇌물을 건네주거나 부정부패를 저지른 인물을 발견하면 그 즉시 잡아들여 처벌하고 있다. 한나라를 거의 통일한 시점에도 매관매직이나 횡포를 부리는 인간들이 있어서 잡으러 돌아다닌다. 또한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들 또한 어떤 의도로 주든지 간에 절대 받지 않으며 팔아서 국정에 보태 쓰라고 되돌린다.

또한 백성들을 위해 도적들을 발견할 경우 곧바로 토벌한다. 당연히 무고한 백성들을 착취하던 도적들 또한 가차 없이 잡아들였으나, 흑산적과 감녕처럼 갱생의 여지가 있는 인물들은 한 번 용서를 해주고 기회를 주는 편이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연좌제로 동탁 일가를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었으나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핏줄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가를 처형하되 20세 이하 및 어린아이들은 노비로 만드는 것으로 처벌을 내렸다. 애초에 정릉은 태어났다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데 연좌제를 당연히 혐오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릉이 자비를 베풀어 노비로나마 살려줬는데도 부모의 원수를 갚는답시고 암살을 획책한 또라이들이 있었다는게 문제다.

휘하의 무장들[11]과 책사진들[12]의 구성원을 보아 독자들에게 작중 최고의 인망을 지닌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일단 천하에서 정릉의 여론이 굉장히 좋고 휘하 장수들은 물론 항장들에게도 굉장히 자비로우며 모든 인물과 마찰 없이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정릉을 호위하는 친위대는 병주에서 직접 데려온 출신들로 이뤄져 있다. 마찬가지로 충성심이 높으며[13], 적을 고문할 때에 가차 없을 정도로 명령을 잘 따른다.[14]

심지어 인연이 깊은 몇몇 장수들과는 상호 간의 관계에서 상관과 부하처럼 딱딱하고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인 친구 및 자신에게 연심을 품은 일부 여성 부하들과는 연인으로 지내는 등 전혀 권위적이지 않으며 배려심 많고 자비롭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휘하 장수들이 자신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면 보상이나 대우도 확실하며 수시로 부하들에게 열심히 일하되 충분히 쉬면서 하라고 말하며 부하들을 걱정한다.[15]

만약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부하가 생기면 곧바로 의원과 약재를 보내는 등 자신의 사람을 끔찍하게 챙기고 아끼는 모습들 덕분에 많은 장수들과 책사들이 정릉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맺은 후 그를 따르고 있다.[16]

참고로 환생한 직후엔 어머니로부터 병주자사직을 인수받아서 조용히 살 계획이었으나 십상시의 난에서 권력을 잡은 동탁을 몰아낸 후 한나라의 대장군이 되어 일을 하다 보니 역사의 흐름에 타게 되었으며 자동적으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한나라 재통일 때 정릉이 왜 이러한 성격이 되었는지 나오는데, 환생 후 자라면서 아이를 지키려다 같이 죽어버린 여인을 보고, 전란이 많은 시대이므로 죽음에 태연해야 한다는 말을 했던 부관도 결국 죽자, 이 상황들이 성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17]

지금 가진 대장군, 대도독, 녹상사서의 직위도 충분히 부담스럽다며 승상이나 상국은 노리지도 않는다. 원래 역사에서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생긴 폐단을 알고 있으니 더 그럴 것이다.[18] 오히려 천하가 안정되면 모든 직위를 내려놓으려 했지만 당연히 실패. 그런데 이게 콩깍지 단단히 쓰인 사람들에겐 검소함의 극치로 보이는 모양. 도대체 왜 그래서 유변이 구석을 내리는것도 한사코 사양하는데 그걸 기여코 선물을 가장해서 분할 지급으로라도 줘버린다. 당연히 책사진들에게 선물의 정체를 듣고 어이가 탈출하는 정릉의 반응이 볼거리다.

정릉이 이토록 권력을 멀리하려 애를 쓰자 주변에서는 저리 많은 업적과 공훈을 쌓았는데도 여전히 자리가 그대로니 언젠가 토사구팽 당하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유변과 순욱을 중심으로 문무백관들이 정릉을 백마지맹 이후 최초이자 최후의 이성왕(異姓王)에 봉하려고 준비중이다. 당연히 정릉은 질색 팔색을 하며 거부하지만[19] 유변을 비롯한 주변인들은 왕으로 올리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 예로 유변은 정릉을 그대가 없었으면 한은 멸망했을것이니 그대는 건한삼걸과 동급이라고 설득하고 꼬꼬마 책사들은 미래의 한나라에서 이성왕을 꿈꾸는 자가 있어도 최초의 이성왕인 정릉이 기준점이 되면 감히 왕을 노리는 이들은 없을거라고 설득한다.[20]

4. 특징

일러스트나 작중 외모 묘사가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흑발을 지닌[21] 상당한 미남[22]인 듯하며, 진한 페로몬 비슷한 향기를 풍긴다고 한다. 정릉이 벌써 품에 안은 히로인이 상당하고, 현재 자녀들도 출산한 상태이다.

어린아이들이 정릉을 굉장히 잘 따른다.[23] 병주에 있던 시절 자신이 친히 거두었던 고아들은 물론이고 적들을 죽일 때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지만 정릉 앞에서는 순한 소녀가 되는 마초, 언니이자 황제인 유변을 무서워하지만 정릉에게는 굉장히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 유협과 더불어 아래 후술할, 다소 특이한 성격을 가진 사마의와 제갈량 또한 정릉 앞에서는 그 성격이 다소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24][25]

정릉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26]와 화타가 만들어준 정력제 등의 영향으로 정력이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다. 거기에 히로인들 또한 밤일에서는 정릉을 이긴 자가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릉이 정력이 딸리는 일은 없었다.

작중 내 정릉이 스스로를 평가하기를, 무력도 낮고 지력도 변변치 않아[27] 휘하 장수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인물이라고 했으며,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 스스로를 낮게 평가한 것과는 달리 정릉이 작품 내외로 고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인망과 리더로서의 자질이 그 누구보다도 매우 출중하기 때문이다.[28]거기에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굳은 신념을 지녔다.

자신의 첫 번째 무장인 서여가 본인의 본명을 공개했을 때는 그녀가 한나라 숙적의 후손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만의 비밀로 약속해 영원히 덮음으로서 작중 최강의 무장을 포섭했고, 여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친근하게 대해주면서 여포라는 최고의 무장 또한 얻어냈다.

심지어 황건적을 이끌던 대현량사 장각이 정릉에게 자신의 목숨을 취하라고 하자 이를 거부하고 신분을 숨긴 채 탈출시켜 자신의 휘하로 데려와 책사로 삼았다. 역시 본래 반역자 신분인 인물을 데려올 때도 단호하고 덤덤하게 대응할 뿐 차별적인 발언이나 대우를 절대 하지 않았다.

동탁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으면서도 자신에게 아부하는 간신들을 척살하고 황제 유변을 공손히 섬기며 황보숭, 노식, 왕윤 같은 충신들을 우대하여 한나라의 충신들의 지지를 받는다.

추가로 자신에게 투항한 항장인 손책과 그 세력에게도 스스럼없이 독자적인 지휘관을 맡기는 등 일단 자신의 휘하로 들어온 인물이라면 누구든지 차별을 두지 않고 최대한 동등하게 대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래 항장은 이유야 어쨋든 배신으로 보는건지 '한번 투항한 자가 두번은 못하랴!'라는 논리를 적용해서 절대 혼자 두지 않고 공을 세울 기회도 잘 주지 않는다. 그 장료도 항장 출신이라 항상 주변에 사람이 딸려 있었다.

비록 정릉이 무력과 지력은 낮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인망이 뛰어나고 한나라 부흥이라는 누구나 옳다고 인정할 목적을 흔들리지 않고 제시하기 때문에 여러 인재들과 함께 한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위의 서술과 같이 주변 인물들에게 인망이 높기에 오히려 적대적인 인물들에게 암살 대상으로 노려지고 전장에서 최우선순위 제거 대상이나, 그 주위의 인물들 인물들인지라 호위하는 병력의 수준 자체가 엄청나다.

암살하러 왔다가 실패하고 들킨 암살자의 경우 탈출 자체가 성립되지도 않아서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전무하다. 오죽하면 작중 평가에서 " 진시황제를 암살하는 게 정릉을 암살하는 것보다 쉽겠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사실인데?[29]

또한 원래는 절대 뭉칠 가능성이 없는 인물들과 세력들이 정릉 한 사람을 필두로 모여 있기 때문에 혹여나 노환 이외의 이유로 죽으면 바로 나라붕괴(...)의 위험이 있기에 정릉도 이 사실을 자각하면서 행동하고 있다.[30]

정릉 주위에 많은 여성들이 모이는데, 여자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고 말 몇 마디로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언변으로[31] 병사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5. 작중 행적

현대인이었으나 삼국지 시기에 환생했음을 깨달은 정릉은 어머니인 병주자사 정원에게 부탁해 자산을 풀어 거주민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서여, 여포, 장료, 고순 및 팔건장들을 휘하에 포섭하고 황건적의 난이 발발한 후 황보숭의 군에 지원을 갔다가 황건적의 수장인 장각마저 포섭한 후 병주로 돌아간다. 그와중에 흑산적이 나타났으나, 완전히 소탕해버리고 항복한 흑산적들은 병주를 지키거나 병사로 만드는등, 흔산적인원들의 예상보다 더 후한대접에 항복한 인원들은 진심으로 따르게된다.

대장군 하진의 편지를 받고 낙양으로 향했으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상시의 난이 일어난 후 동탁이 이를 대부분 수습한 후였다.[32]

늦게나마 난을 수습한 후에는 권력을 잡은 동탁이 유변을 폐위시키려 하자 그와 대적하게 되었고,동탁이 장기전을 펼쳐 식량이 부족했지만 원소로부터 군량미를 지원받음으로서 전투를 치러 동탁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동탁을 몰아내고 부정부패한 낙양을 청소하면서 황제에게 보고하러가는데, 황제는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알게된다. 십상시의 난이 빠르게 일어나서 이복동생인 유협을 제외하고 전부 죽어버리고, 짧은 시간이였지만 동탁에게 시달렸기에 정릉이 동탁처럼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인줄 알았던 것.

그 모습에 자신은 힘이 없는 황제라도 나라의 하늘인 황제편이라는 말로 황제에게 믿음을 주고, 황제는 그에 대한 믿음으로 대장군 직책을 내리게 된다. 대장군 직책을 받고나서 혼란한 시기에 부정부패나 모함하는 관리들에 대해 처우를 결정해달라는 건의를 하자 모함하는 관리들은 아예 참수형까지 내리는 황제의 결정에 순간적으로 당황하기도 하면서 이해한다. 이후 황제의 부탁으로 유협이 자신을 무서워하고 그나마 정릉을 잘따르는 것에 잠시나마 만나서 이야기해달라고 하여 유협을 만나서 놀아준다.

한편 동탁은 장안에 도망치지만 장안을 정릉에게 그대로 건내주기 싫다는 이유로 장안을 불태우고 온갖 재산을 가지고 서량으로 도망친다. 이에 분노한 정릉은 한수,마등과 함께 동탁을 쳐서 잡고 장안 백성들에게 동탁을 맡겨 만신창이로 만든 뒤 배에 심지를 놓고 불태워 화형시킨다.

원술이 정릉에게 누명을 씌우고 연합군을 일으키지만 조조,원소들이 협력하지 않아 쉽게 와해했으며 그 과정에서 유비 3자매를 서여에게 죽이지 말라고 지시해 유비가 정릉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후 일부러 낙양에 찾아가 붙잡히고 정릉에게 정식으로 포섭된다.

서량에서 자신의 이름을 등에업고 설치는 놈이 나오자 여포,서여와 단 셋이서 서량에 가 한수, 마등의 도움을 받고 처리한다. 유표가 반기를 보이자 황실에 불러서 달래려 했으나 황위 욕심에 반기를 들자 공격하고 결국 유표는 압박감에 광증에 걸려 위연 손에 죽게 된다.

그후 조조,원소에게 먼저 신뢰를 보여 한나라 세력에 참가하게 만들고 원술,공손찬,공손도등 군웅들을 제압하여 한나라를 다시 일통했지만 항우처럼 테무진과 사구사준[33]이 나타나 몽골제국을 세워 공격해온다. 정릉은 제베의 저격으로 배에 화살을 맞고 이에 폭주한 서여의 활약으로 사구사준의 몇몇을 죽이고 테무진과 함께 포로로 잡는데 성공하지만, 테무진을 풀어주고 실크로드쪽으로 가는 것을 권유한다.

장각,화타의 치료로도 정릉의 상처는 고치지 못해 수명이 줄었지만 신선인 열자가 나타나 메뚜기떼를 처리하면 치료해주겠다 제안한다. 전국에서 오리,닭을 모아 메뚜기떼를 처리하자 정릉은 치료를 받게 된다. 그 후 실크로드를 평정했지만 대진국(로마)이 군인황제 시대에 돌입해 큰 성과는 없이 돌아온 테무진과 결혼하게 된다.

칭왕하며 한에 반기를 든 공손도를 처리하며 그김에 공손도와 결혼 동맹을 맺은 백제와 부여를 평정하지만 이번엔 청주의 왕족이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는 걸 듣고 황제와 함께 친정에 나선다. 그러나 왕족이 일본으로 도망치면서 왜구를 부르고 왜구가 저지른 참상에 트라우마가 발생해 이상행동을 보여 주변인물들에게 걱정을 받는다. 그 후 일본쪽에 조사대를 보내 침공을 준비한다.

일본에 보낸 배에서 야마토의 여왕인 히미코가 찾아와 협상을 하지만 히미코가 나라를 비운 사이 나노국의 진구 무녀가 야마토를 차지하고, 상륙을 막는 함대를 가볍게 쳐부순 정릉은 일본 정벌을 시작한다.진구 무녀가 밝히길 왕족과 협력한 쪽은 그녀와는 다른 세력이었고 협상 끝에 진구 무녀가 일본을 다스리기로 하고 왕족은 붙잡는 데 성공한다.

6. 인물 관계

6.1. 가족

6.2. 무장진

지휘관으로서 우수하기에 자주 파견을 보냈고 그 댓가로 정릉을 요구해 맺어진다.

6.3. 책사진

6.4. 한나라 황실

6.5. 낙양 저택

6.6. 우호 군웅 세력

6.7. 그 외 군웅 세력

6.8. 이민족

6.9. 기타 인물

7. 여담


[1] 작중 시작 시점에서는 사망한 고인이며, 한사군편에서 이름이 나왔다. 자는 안나왔다. [2] 한 예로 천연두가 돌았을 때 우두법을 통해 천연두를 예방하고자 살을 뚫고 가루를 집어넣는 원시적인 접종을 몸소 행하자, 백성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접종을 받았다. 아예 접종을 피하려는 이는 역적이라고 신고하는 건 덤. [3] 이 양반이 환관들에게 너무 큰 힘을 주는 바람에 십상시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4] 다만 열자는 도사, 신선 자체가 하늘을 거스르는 역천인데 천기를 운운한다니 웃긴다고 했다. [5] 눈 먼 화살이 묘하게도 자신에게 날아온다고 독백하거나, 황충들 일부가 정릉을 덮치려 들기도 했다. [6] 정확히는 적들에게 보이는곳에서 지휘하는것 [7] 정원은 병사를 흑산적으로 변장시켜 백성을 약탈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재욕이 많은 사람이다. [8] 오히려 권력을 더 주려는 유변을 말리는 입장이다. [9] 오히려 천하가 안정되면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으나 유변과 주변 인물들 탓에 물건너 갔다. [10] 유변은 정릉에게 권력을 주려고 안달하는데 정릉은 오히려 지나친 권력을 거부하는 충신의 모습을 보인다. [11] 항우, 여포, 장료, 고순, 서황, 감녕, 오호대장군 및 그 외 여러 무장들이 정릉 세력에 속해있다. [12] 사마의, 제갈량, 방통, 장각, 가후 등이 정릉 세력에 속해있다. [13] 본래 좋은 군주는 아니었던 정원을 바꾼 게 정릉이란 걸 병주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한다. [14] 동탁이 장안을 불태우고 나서 잡았을 때, 눈깔을 왜 그렇게 뜨냐는 정릉의 말에 눈 한쪽을 뜯어냈다. 암살을 모략한 착융의 경우, 제갈량의 말에 발로 걷어차서 무릎을 꿇게 하고 머리를 손으로 잡아 땅에 처박았다. [15] 특히 과로사로 유명한 제갈량은 고지식한 조운에게 감시하게 만들어 철저하게 쉬도록 배려한다. [16] 특히 원 역사에서 요절한 주유 같은 이들을 집중 관리 중이며 과로의 아이콘 제갈량 역시 집중 관리중이다. [17]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일임을 실감한 것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죽을 자리를 찾다시피 이민족과 도적을 상대하러 돌아다닌 적이 있고, 잠에 들기 직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깨기도 한다. 장각과 제갈량은 마음의 병을 가졌다고 보았다. [18] 대표적인게 동탁과 조조. [19] 지위가 높아지면 그만큼 일거리가 늘어나서 싫은게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지금도 꼬꼬마 책사 3인방을 비롯한 아랫사람들이 다 해주고 정릉은 최종 확인후 도장만 찍는거지만 그래도 힘든데 하물며 왕은 어떻겠냐고 질색한다. 또한 자기가 한 일은 그렇게 큰 업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다 [20] 이 말을 듣고서 후대에 왕을 칭하는 자가 나오자 주변 사람들이 정릉도 수십년간 공적을 쌓고서야 왕이 되었는데 넌 뭘 했다고 왕을 칭하냐고 따지다가 역적이라며 죽이자고 난리가 나는 상상을 한다. [21] 다만 황족은 아니다. 황족의 피가 섞인 인물들은 흑발과 더불어 흑안까지 있으나, 정릉은 흑발만 타고났을 뿐 흑안은 타고나지 않았다. 흑발만을 타고나는 인물은 극악의 확률이지만 일부 존재한다. 작중 정릉, 관우, 장비가 해당된다. [22] 얼굴만은 번듯하다고 평가받는 원술만큼의 꽃미남은 아니고 수수한 인상이다. 하후돈이 조조에게 관심 가진 사내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조조가 정릉이라고 답하자, "조조가 단숨에 꽂힐 정도의 미남인가?"라며 의문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런 하후돈도 정릉이 (두 눈 멀쩡한 하후돈이 신기해서) 자신의 눈을 바라보자 미남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정도는 된다. [23] 이에 정릉은 한나라의 대장군이 되지 않고 병주에서 어린이집을 했으면 어땠을까, 스스로 상상하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24] 대장군에게 천거된 사마의와 제갈량을 따라 관직에 진출한 두 인물의 친형제이자 각 가문의 첫째, 사마랑제갈근은 이 모습을 보고 대장군에게 사마의와 제갈량이 정릉의 옆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25] 물론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던 정릉은 당연히 이를 수락했다. 그리고 정릉은 그 둘에게 업무를 배우게 되었다. [26] 정원의 언급에 따르면 살아생전 남편은 정력이 굉장했다고 하며 아들인 정릉 또한 아빠를 닮아 정력이 굉장할 것 같다고 한다. [27] 정릉의 능력치를 게임으로 환산한다면 무력과 지력이 50 언저리에서 놀고 있을거라고. 다만 미래 지식+어릴 적부터 쌓아온 이민족과의 전투 경험 덕분에 이민족 한정으론 능지가 떡상한다. [28] 누군가를 섬겼다면 평범한 장수로 끝났을 거라고 한다. [29] 실제 저 호위를 뚫고 정릉에게 공격을 성공한 건 몽골 제국뿐이고, 이조차도 공손찬이 열어준 길로 10만이나 되는 몽골군들이 추가로 몰려와 몽골군을 상대하느라 여포는 떨어지고 서여는 후방에 시선을 두기 힘들었을 때서야 가능했다. 사실상 정릉을 죽이려면 20만 안팎의 정예군으로 사방에서 포위해서 공격해야 하는 셈. [30] 1순위로 서여, 여포를 말릴 사람이 없어진다. 세력 내의 최고 전력인 두 사람의 유일한 억제 수단이 바로 정릉이기 때문. 실제로 몽골군과의 전쟁중 사준사구의 일원 제배에게 저격당하자 그순간 둘의 리미터가 풀려 서여가 폭주하여 사준사구중 셋이 삼도천을 건너고 지휘관인 칭기즈 칸이 포로로 잡힐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또한 2순위로 황제 유변, 조조, 피치 시스터즈(유비 삼자매), 손책 세력 등 1순위 이외의 다음가는 무력 또는 권력이 있는 이들은 서로 분열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유비와 조조는 서로가 맞지 않는 숙적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다. [31]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조조. [32] 어차피 빨리 가봐야 동탁과 싸우게 될 게 뻔하니, 일부러 병사들의 체력을 보존하려 천천히 움직였다. [33] 후에 5호 16국 시절의 왕이 되는 인물들까지 몽골제국 소속이란 게 밝혀진다. [34] 나름 자존심이 있어서 정릉이 아니었다면 하야했을 거라고. 방덕공과의 내기로 용돈 반년치를 잃자 정릉이 1년치를 주기도 했다. [35] 처음 정릉은 연환계인줄 알고 겁먹었지만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였다. [36] 정릉도 혹하기는 했지만 서여와 여포 덕에 미인에 익숙했고 경계하고 있었기에 홀리지 않았다. [37] 너무 외모가 뛰어나서 여색에 빠지는 걸 경계했기 때문 [38] 정릉은 하나의 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영토는 한계가 있다 생각하고 있었고 안그래도 한사군은 본국과의 거리가 멀기에 관리도 힘드니 그냥 고구려에게 줘버리는게 좋겠다 판단했다. [39] 왕이 공손도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고, 앞으로 한나라의 지원을 받은 고구려가 부여로 쳐들어올 것이 뻔했기 때문. [40] 정릉은 한과 몽골은 마한의 백제국과 진한의 사로국만 잡는데만 돕기로하는데, 여기에 의문을 품은 고연우에게 고구려는 우리 도움없이는 통일못하는 어린아이냐고 물었다. 이를 알아들은 고연우는 고구려는 아이가 아니라고 답했고, 사로국과의 싸움도 가는 길은 몽골제국이 뚫어줬지만 전투는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치렀다. [41] 적토와 오추를 탄 여포와 서여 그리고 한혈마로 보이는 적로와 절영을 탄 유비와 조조는 잘 따라왔는데 다른 이들은 따를 수 없었고, 정릉은 오히려 청황에게서 떨어지지않기 위해 조심해야했다. [42] 이건 제갈량이 건의한 걸 수용한거다. [43] 만약 영국이 아니면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