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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3:24

유비(병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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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병주일지 - 유비 일러스트.jpg

1. 개요2. 특징3. 작중 행적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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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병주일지 메인 히로인.

2. 특징

진짜 황족이 맞는지 논란이 있는 삼국지 관련작과 달리 이 세계관의 유씨 황족은 흑발흑안이라는 고유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다고 한다.[1]

3. 작중 행적

원작과 동일하게 쌍고검을 사용하며, 천하를 떠돌던 중 정릉의 만행을 비판하는, 원술을 중심으로 모안 반정릉 연합군의 소식을 듣고선 연합군과 정릉군 모두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다며 공손찬의 힘을 빌려 참전했다.
비록 3대 1이었다곤 하나 호로관에서 의자매들과 합공으로 여포도 밀어붙이는 등 나름 잘 싸웠지만[2] 여포를 구하기 위해 정릉이 보낸 서여가 난입하자마자 그녀의 강함을 순식간에 알아챈 후 서여와 물러나는 여포를 쫓지 않고 그대로 퇴각한다. [3]이때 자신들을 몰살할 수 있던 서여가 자신들을 살려준 것에 의문을 가진다.
이후 내부갈등이 불거지며 드러난 토벌군의 민낯에 실망해 그대로 토벌군을 탈퇴한 뒤 사전에 말했던대로 정면으로 정릉의 지배영역에 들어갔다가 생포당하고 그대로 항복한다.
이후 유우와 공손찬간의 전쟁이 벌어지자 정릉의 명령을 받고 유우의 구원을 위해 출격, 이미 유우가 붙잡혀 수감당한 상태에서도 꾀를 내 공손찬을 속여 안심시키고 짧게나마 빈틈을 만들어 유우를 탈옥시키는데 성공시켜 그대로 유우 및 자신의 의자매들과 정릉군으로 완벽하게 투신한다.[4]
그 뒤 정릉이 서주대학살을 막기 위해 수를 쓸 때도 자처해서 사자 역할을 맡았으며, 조조와 서로 사적인 감정으로 잠시 언쟁을 벌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조조와 도겸 모두가 정릉의 뜻에 동의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에 정릉이 기꺼이 상을 내리겠다고 하자 예의상 몇 번 사양하다가 정릉이 뜻을 굽히지 않자 자신이 원하는 건 정릉의 신임과 부곡(部曲)[5] 자리라고 요청해 관우, 장비와 함께 그의 부곡 휘하에 소속되는데 성공한다.[6]
결국 조조가 먼저 관계를 가진 뒤 유비를 도발한 데다 지나치게 늘어나는 히로인들을 보고 정석적으로 호감도만 쌓아서 정릉이 수확해주길 기다렸다간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가져서 대놓고 술 한잔 하지 않겠냐며 정릉을 꼬신 뒤 자매들과 같이 4p 첫경험을 맺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초선 등 다른 여자들과도 새로 관계를 맺는 걸 보며 속으로 몰래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며 안심한다. 하지만 피치 시스터즈 중 혼자 임신을 하지 못해 조급해하다가, 결국 임신 및 출산에 성공하여 딸 유환을 출산했다.

본래 유봉과 유선의 이름이 상당히 위험한 이름이라고 한다. 왜냐면 유봉의 봉과 유선의 선의 한자가 각각 封, 禪. 합치면 바로 중국 황제들이 천하를 얻고 하늘과 땅에 지내던 제사 봉선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다. 실제로 이를 가리켜 유비가 황제가 될 야심을 품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의견도 있으며 정릉도 이를 걱정하나 유비가 봉도 선도 아닌 환을 골라서 안심한다.

4. 기타

서여, 여포, 조조, 유변, 관우에 이어 6번째 일러스트 타이틀 히로인이자 해당 작품의 표지 모델로 뽑혔다. 특히 머리를 풀어헤친 유비의 일러가 참으로 모에하다는 극찬의 호평.372화 기준 정릉의 히로인 중 가장 가슴이 크기도 하다.


[1] 검은 머리까지는 다른 혈통에서도 드물게나마 나와서 관우, 장비, 정릉이 흑발이지만 눈동자까지 검은 경우는 중원을 통틀어 유씨 황족이 유일하다. 당연히 유비도 유변, 유협과 같은 윤기넘치는 흑발에 흑안까지 보유했다. [2] 세 명이 합쳐야 겨우 여포 한 명을 상대로 승산을 논할 정도이지만, 함께 싸우는 인원이 많으면 오히려 아군끼리 얽혀 효율이 떨어지므로 승산이 적더라도 일기토가 기본인데 세 자매의 호흡이 대단히 잘 맞는 것이다. [3] 장비는 격렬한 전투의 영향으로 인해 눈이 가려진 탓인지 무리해서 서여를 쫓으려 했지만 관우와 유비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4] 이 때의 유비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과 별개로 자신이 만백성의 위에 올라 '깃털로 장식된 덮개가 있는 수레에 타겠다'는 야심이 있는지는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던 중에 정릉을 만나 마음을 정리했다. [5] 쉽게 말하면 일종의 사병. 대장군의 직위를 고려하면 근위대 겸 친위대인 자리를 요구한 것이다. 언뜻 보면 대장군의 측근이란 위치상 좋아 보일 수 있지만 그냥 호위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대장군과 사적으로 가깝다는 점을 이용하는 비선실세는 정릉과 유비 모두가 용납하지 않으므로 정치적 영향력은 교위직만도 못한 자리이다. [6] 정릉은 실권도 돈도 얼마 안 되는 부곡직보다 당장은 하위권이어도 무관 쪽 고위관직에 속하므로 이후에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장군직이 어떻냐고 제안하려 했지만, 유비는 대장군만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라 오히려 부곡직을 더 강하게 원하여 결국은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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