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의 주요 수상 및 선정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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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음악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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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A1,#5D5E00> 남자:
휘성 여자: 이상은 그룹: 빅마마 (200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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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승철 여자: 이소라 그룹: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20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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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승철 여자: 이소라 그룹: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20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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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조규찬 여자: 이상은 그룹: W (20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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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지형 여자: 박선주 그룹: 노브레인 (2007년) |
제9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 | ||||
문희경 <그리움은 빗물처럼> (19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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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담다디> (19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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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미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 (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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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83593><colcolor=#fff> 이상은 李尙恩|Lee Sang Eun|Lee-Tzsch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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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3월 12일 ([age(1970-03-12)]세)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1]
불광동 (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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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전주 이씨[3] |
신체 | 177cm[4]|55kg|245mm[5]| O형 |
가족 | 부모님 |
학력 |
서울재동초등학교 (졸업) 덕성여자중학교 (졸업) 창덕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 중퇴) 프랫 대학교 (미술학 / 학사) |
종교 | 개신교 |
소속사 | 브리즈뮤직 (대표)[6] |
데뷔 |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 〈담다디〉 |
MBTI | INFP[7] |
링크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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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금 생각해 보면 '
담다디' 때 나는 꼭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나중엔 너무너무 창피하고 화가 났다. 어떻게 내 자신이 그랬나 싶을 만큼. 그때 어른들은 나보고 그랬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랬던 너 자신이 귀여워질 거라고. 그 말에 코웃음치며 만든 음반이 <
공무도하가>다. 미국까지 멀리멀리 방황하다 돌아온 것이다. 지금은 그게 결국 나였구나 하는 것을 알 것 같다. 멀리 도망을 갔다가 와서 방에 누워 있는데 문득 그때가 그리워지는 거다. 그럴 때 깜짝 놀라며 알게 된다. 그 두 가지가 다 나라는 것을. 친척들 앞에서 '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부르는 것도,
사르트르나
니체를 읽는 것도 나였다."
"어느 기자님이 '원래 이상은이라는 개인의 캐릭터를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는데, 이제는 점점 음악에 귀가 가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고맙게 생각했다. 원하던 바였다. 내가 팔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소중하게 여겨졌으면 좋겠다. 그 뮤지션이 누군지 모르고 전혀 나오지 않더라도 그냥 좋은 음악들 있지 않나? 나이 먹을수록 그런 내공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작가, 시인.[9]
1988년, 만 18세 나이에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지만, 2년 후 스타로서 회의감을 느끼고 유학을 떠난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공부를 하던 도중에 미국 뉴욕으로 가서 미술 공부를 했다.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정식 데뷔앨범과도 같다고 한 인터뷰에서 스치듯 이야기한 '더딘 하루'를 발표했다. 3집 '더딘 하루' 4집 'begin' 5집 '언젠가는' 6집 '공무도하가' 7집 '외롭고 웃긴 가게'를 발표한 후, 일본에서 음악활동을 수년간 한 후 영국에서 다시 미술 공부를 하러 떠나기도 했다. 다국적의 경험 및 미술 유학, 음악에 대한 깊은 노력 등으로 소위 '이상은 같은 음악 스타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활동 및 성취를 해낸 음악가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에서 유학 및 음악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로 오랫동안 활동하였으며, 'Lee-tzsche (리채, リーチェ)'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해외 활동도 하였다. 리채라는 이름은 '이상은'이라는 이름이 발음이 어렵자, 모친과 부친의 성을 각각 합친 이름이라고 한다. 거의 일본 진출 1세대 음악가이다. 특히 2007년 '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 된 이상은의 앨범 2장 중, 6집 < 공무도하가> 앨범이 10위에 오르며 100대 명반의 10위권 안에 있는 유일한 여성 뮤지션이기도 하다.[10]
유학 이후에는 주로 인디씬에서 활동하며 음악 이외에도 미술, 여행 작가, 라디오 DJ 등 다양한 활동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왔다. 여러권의 저서 '베를린 - 삶은 여행' 'london voice' 'art&play'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푸른 달팽이의 달빛무대&soul' 등을 발표했고, 2019년 10월에 EP 앨범 <fLoW>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지난 20년 동안 1년 6개월 쉬지 않았던 활동을 뒤로 하고, 5년 간의 휴식기를 지친 후 발표한 앨범이다. '넌 아름다워' 노래가 발표 후에 신기하게도 화제의 영화 '벌새'의 많은 내용과 잘 어우러져 OST로 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대표곡으로는 ' 담다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할거야', '그대 떠난 후', 자신이 직접 곡을 만들기 시작한 '더딘 하루', '뉴욕에서', '언젠가는', '길', '벽', '어기여디어라', '외롭고 웃긴 가게', '공무도하가', '새', ' 비밀의 화원', '둥글게', '삶은 여행', 'super eraser mideum', '오늘 하루', '돌고래자리', '바다여', 'something in the air', 'stardust', '태양은 가득히', '들꽃', '넌 아름다워', 'flow', '오아시스의 밤' 등이 있다. 16집의 앨범을 낸 음악가이기 때문에 대표곡을 몇 가지 추리는 것도 매우 어렵다. 22년 최근에도 홍대 벨로주에서 공연을 하고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2022년 데뷔 34년차, 정규 앨범만 해도 15장. 3집부터는 모두 자작곡.
이상은의 대표곡들의 영상을 볼 수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가 1993년 곡 '언젠가는'을 97년으로 설명한 건 실수.)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이상은(가수)/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음반
3.1. 정규 앨범
이상은의 정규 음반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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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1. |
1989. 12. |
1991. 11. |
1992. 6. |
1993.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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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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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사랑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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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더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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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BE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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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 LEE SANG EUN | |
1995. 7. (일본) |
1997. 3. |
1997. 12. (일본) |
1999. 3. (일본) |
2001. 2. (일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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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
공무도하가 |
7집
외롭고 웃긴 가게 |
8집 Lee-Tzsche |
9집 Asian Prescription |
10집 Endless Lay | |
2003. 3. |
2005. 6. |
2007. 10. |
2010. 3. |
2014.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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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집
신비체험 |
12집 Romantopia |
13집 The Third Place |
14집
We Are Made of Stardust |
15집 LuLu |
3.2. 컴필레이션 앨범
-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1989년 12월): 캐럴 앨범 (中 내가 꿈꾸는 크리스마스)
- 까치소리 동동동 (1990년 4월): 동요 앨범, 김흥국과의 스플릿 앨범 (中 사랑의 집)
- 이상은 베스트 담다디 (1992년 5월)
- 1991-1998 Best Album Don't say that was yesterday (2000년 11월): 일본 베스트 앨범
- Asian Breeze (2002년 3월): 일본 스튜디오 라이브 베스트 앨범 (中 Cliche)
참고로 1990년 동요앨범으로 조용필, 김흥국과 함께 당시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3.3. EP
- Out of Space[11] (2007년 8월): 미발표곡집
- fLoW(2019년 10월)
3.4. 싱글
- Actually, Finally (1997년 11월): 일본
- Ogiyodiora (1998년 8월): 일본
- A Path (1999년 2월): 일본
- Bliss (2011년 8월): 리컷 리믹스 싱글(14집 Bliss, 11집 비밀의 화원)
- 안녕, 좋은 하루 (2012년 2월)
3.5. 사운드트랙
- Give it all (1998년 9월): 일본영화 '간밧테이키맛쇼이' OST
- She Wanted (2000년 10월): 영화 '봉자' OST
- Falling (2011년 5월): MBC TV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OST (vocal)
- 정읍사 (2013년 11월): MBC TV 드라마 '제왕의 딸 수백향' OST (vocal)
- 꿈을 따라가 (2016년 11월):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5' OST
3.6. 옴니버스 앨범
- 도시락특공대 Vol.01 (1997년9월): 인디뮤지션들의 실험적인 음악을 모은 옴니버스 음반.[12]
4. 여담
- 한때 공개연애 때문인지 은근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는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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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같았던 시절인 1980년대 후반을 생각하기 꺼린다.
30주년 인터뷰에서 이상은은 담다디 시절을 "번아웃, 과부하, 방전, 트라우마"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중들에겐 이상은을 생각하면 '담다디'라는 노래가 떠오르기 마련. 공연에서 그녀의 다른 히트곡들을 들으며 열광적이고 만족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곧바로 담다디를 불러달라고 외칠 정도라서 지금은 그녀도 반쯤 포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요즘은 기분 내키면 아예 셋리스트에 '담다디'도 포함시킨다고 한다. 대신 새롭게 편곡된 얌전한(?) 버전으로.. 한 공연에서 자신이 담다디를 부르는 것은 마치 당근, 강낭콩, 브로콜리를 간 쥬스를 마시는 어린 아이 같은 심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싫지만 마시면 엄마는 너무 좋아한다고. 관객들이 그런 엄마 같다고..
2016.10. 담다디를 잘 안부르는 이유
그만큼 이상은의 데뷔곡 '담다디'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던,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전세대를 아우르는 국민가요로서 현재까지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곡이다. 또한 기타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담다디'라는 곡을 모를 수가 없다고. 분위기도 흥겹고, 코드가 단순하고 쉬워서, 기타를 잡으면 젤 처음 배우는 가요가 '담다디'라고 한다. 유명 기타리스트 박주원은 기타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담다디'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거기에 요즘은 우쿨렐레가 가세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서서히 담다디 꼬리표가 잊혀지고 이제 젊은 세대들에겐 아티스트 이상은으로 알려지는가 싶더니..안타깝게도성공적으로 응답한 드라마 때문에 담다디 시절 영상들이 다시 발굴되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가 하면, 새파란 초딩들까지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어버렸다(...).정말 벗어날 수 없는 무서운 곡이다담다디에 대한 적절한 드립(...)
2017년 8월 데뷔한 보이그룹의 타이틀곡 제목도 ' 담다디'(...)이다. 리메이크는 아니고 제목만 같은 다른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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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수로 데뷔했을 때 짧은 헤어스타일, 허스키한 목소리에 화장도 안 하고 옷도 남자처럼 입고 무대에 올라갔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이름도 중성적인 이름이라서 항간에는 이상은이 남자라는 루머가 심하게 퍼져서 이상은이 남자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존재할 정도였다.
엠버의 원조격[13] 남장 여자 루머가 돌았던 서태지와는 정반대의 케이스. 이 쪽은 아예 임신을 했다는 루머도 돌았었다(...). 당시 방송에서도 남자같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 무대는 1989년 당시 서울올림픽 1주년 특집으로 마련된 무대로 당대 최고의 여가수였던 양수경, 이지연[14]과 함께 했던 합동 무대였는데, 이를 보면 이상은이 대단한 장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년도별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자들 무대에선 키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이런 웃픈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예전 가요 프로그램 중 말미에 가수들을 단체로 세워놓고 합창을 하는 무대가 있었는데[15] 언제 한 번 단신인 박남정이 옆에 섰다가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큰 키는 집안 내력인지, 이상은의 친척 중에 국가대표출신 농구선수가 많고, 고려대학교 농구부의 이민형 전 감독이 이상은의 사촌오빠라고 한다.[16] #1, #2우월한 기럭지 덕분에 이상은도 한때 농구부에 스카웃[17] 제의도 받고 연습도 해봤는데... 운동은 젬병이라고. 어렸을 때는 발레리나[18]가 꿈이었는데 중학교 때 무용 선생님에게 키 때문에 힘들 거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었다고. 몇년 전 한 방송에서 자신보다 더 큰, 이름도 똑같은 발레리나 이상은을 만나 인터뷰하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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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잡을 때 손모양이 특이한데 바로 양쪽 새끼손가락 부분. 유독 새끼손가락만 구부려 세워 잡거나 따로 노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노래 부를 때 손을 유심히 살펴 보면 알 수 있다. (워낙 음악 색깔이 많이 바뀌고 스타일도 달라져서 긴가민가 하다가도 저 튀는 새끼손가락을 보며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구나 안심을 하게 된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 새끼손가락이 잘 안 접혀서 그렇다는 말도 있는데, 암튼 팬들은 그 모습도 멋있다고 따라하곤 했다고.[19][20]
얘기 할 때는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가 풍부한 편이고, 코를 자주 만지작거리거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버릇이 있다.
뉴욕 유학 중 잠깐 귀국해 TV 예능프로에 나왔을 때, 같이 지내는 친구가 이상은은 겨털이 안 난다고 신체비밀을 폭로한 적이 있다. 이상은의 반응으로 보아 사실인 듯 하다. 민소매 의상도 즐겨입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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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강변가요제 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 끝에 대상을 차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21] 남매는 아니고 비슷한 이름의
이상우와 연장전까지 갔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를 알 만하다. 이때
이상우 쪽이 대상을 받았어야 했다는 의견도 많았을 정도였다. 뭐 정리하자면 둘 다 대상감이었지만 좀 더 스타성이 있는 이상은에게 대상이 돌아갔다고 보는게 정답일 듯. 여담으로 본선 참가자 합숙기간 중 이상우가 대장(연장자)을 맡았었고, 이상은이 제일 어린 막내였다고 한다.
7살 차이[22] -
한때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보이시한 스타일로 또래 여학생들에게 선물이나 편지받는 일이 잦았었고, 데뷔 이후로도 한참동안 그 컨셉으로 전국의 여학생들 동성애 감성을 자극한 인물이라 어찌보면 신빙성 있게 들릴 수도 있는 소문이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면이 없진 않았는데, 결국은 남친을 사귀면서 그쪽 세계에선 꽤나 배신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후에 한 케이블 방송에서 밝히길 자신은 어려서부터 외국을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동성애자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란다. 패션 쪽이나 예술 관련쪽에 그런 성향의 친구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같이 어울리고 모임에도 따라가고 같이 앉아 있다보니 그런 소문이 나는 것인데, 자신은 별로 크게 신경쓰거나 남들 눈치보고 가리는 타입은 아니라고. 그냥 서로 말이 잘 통하는 친구일 뿐이고, 오히려 게이친구들 그 특유의 섬세한 감각이 부러울 때도 많다고 얘기하고 있다. 다만, 지나치게 자신을 동성애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드러내는 편이다. (
관련영상)
요약해보면 이상은은 상당히 쿨하고 깨인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면은 종교관에서도 드러난다. 본인은 크리스천이지만, 타 종교에 대해서도 존중하면서 비교적 열린 사고를 하고 있다.[23] 일본에 있을 때 만든 노래 중에 ' 삼도천', 'Sumi Mountain(수미산)' 같은 경우는 다 불교에서 쓰이는 용어들. 가끔 불교, 천주교, 원불교 가리지 않고 방송이나 행사에 참가하고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뭔가 틀을 깨고 초월적인 걸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음악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오버이면서도 언더이기도 하고, 장르 구분 없이 이것 저것 해 보고 싶은 거 다 해보는 덕분에 이상은은 락 페스티벌을 비롯해, 예술 공연, 포크, 재즈, 일렉, 심지어 국악 공연에서도 그 이름을 찾아 볼 수 있다. 음악적 스펙트럼이 워낙 넓다보니 이상은의 음악을 처음 접한 시점에 따라 팬들의 취향도 다양하게 갈리는 편이다. 때문에 콘서트때 1부, 2부, 앵콜무대의 분위기를 다르게 한다던지, 하루는 신나는(스탠딩) 분위기로 다음날은 차분한(좌석) 분위기로 아예 나눠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특이하게도 2002년에 시사매거진 2580이 이상은의 변신에 대한 취재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MBC 2580 영상.
어디 그뿐인가? 미술, 영화, 패션, 출판, 방송, 사회계..정말 이래저래 안엮이는 데가 없다. 이상은의 다재다능함과 관련된 기사1, 기사2, 기사3 -
국립국악관현악단 전 예술감독이었던 '원일'의 앨범<아수라>에 실렸던
'달빛항해(Moonlight Sailing)'- '몽금포타령'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이상은이 노래 했다. 퓨전국악으로 꽤 유명한 곡이다.
이상은이 만들고 부른 2005년 국악축전 공식음악도 있다. Dancing goddess
아주 가끔씩 KBS 국악한마당에도 출연한다. 출연영상
"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자유롭고 조화로운 삶과 예술을 사랑한다. 함께 무언가 도모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다."
" ..진짜 내 짝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기 어렵지 않을 거고, 무엇보다 열심히 살아왔으니 언젠가 나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요. 대충 만나, 대강 맞으면 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렵게 만난 만큼 평생을 사랑할 수 있는 그저 서로 많이 닮은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빨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만나는 것이니, 인내심을 키우고 있죠." --- 이상은
" ..진짜 내 짝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기 어렵지 않을 거고, 무엇보다 열심히 살아왔으니 언젠가 나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요. 대충 만나, 대강 맞으면 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렵게 만난 만큼 평생을 사랑할 수 있는 그저 서로 많이 닮은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빨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만나는 것이니, 인내심을 키우고 있죠." --- 이상은
- 오타쿠 기질이 있어 어딘가에 한번 빠지면 깊게 파고드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상은은 오래 전부터 영국밴드 The Verve의 리드싱어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의 엄청난 빠순이로도 유명하고[24], 한창 사랑에 빠졌을때는 닭살커플로도 유명했었다. 의류 광고에 같이 나오기도 하고 #1, 잡지에서 남친볼에 뽀뽀하며 껴안는 포즈는 기본 #2, 콘서트장에서도 새해 카운트다운 끝나자마자 남친과 무대 위에서 키스를 나누는 염장질 만행으로 팬들의 질투 섞인 원성을 사기도 했다고. 띠동갑 연하에 키도 더 크고 잘 생긴 훈남이었다고 전해진다. [25]
- 의외로 수줍음도 많고, 어릴때부터 순정만화 좋아하고[26], 이쁘고 아기자기한거 좋아하는 소녀감성에, 꽃돌이 취향으로 알려져 있음. 일본 배우중에 오다기리 조를 그렇게 애정한다고 한다. 근데 또 워낙 이것저것 관심사도 많고 취향도 자주자주 바뀌는 편이라고. 최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즘은 퀼트 등 바느질은 기본, 화장품 종류도 직접 만들어 보고, 홈베이킹도 하며 DIY에 푹 빠져있다고 함.
"... 어느 순간에 이 사람이랑 나랑 너무 안 맞는구나, 그점이 자각되자 함께 있는게 너무 불편해졌어. 애들 놀이기구 중에 네모, 동그라미, 세모 모양의 빈 구멍에 맞는 모양을 끼워 맞추는 나무로 된 퍼즐 장난감 있잖아, 난 네모인데 그는 세모더라구. 사람을 내 스타일로 고쳐서 함께 하려는건 옳지 못한 욕망이라고 생각해. 멀리서 봤을 때 우린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워지면 질수록 너무 다르더라구. 내가 사각형이면 삼각형을 닮은 사각형이 아니라 특별히 고칠게 없는, 그냥 사각형인 사람을 만나고 싶어."
나중에 결국은 나이차 극복못하고 깨졌다고 함. 관련기사, 이 말은, 점점 연애도 귀찮음?, 이소라와의 이 대화영상을 보면 귀찮아하는(...) 이유가 대략 나온다.
이런 오덕스러운 컨셉도 나름 잘(...) 오키나와 촬영 화보
-
큰 키와 깡마른 몸매로 패션화보도 많이 찍었고, 1996년에는 S/S SFAA 서울컬렉션에 패션쇼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다. 당시 좋아한다던 모델
케이트 모스의 영향 때문인지 마른 몸매를 과감히 드러내고 드레시한 옷들을 입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 (
96년 과감해진 무대의상,
97년 더 과감한 MV) 유명 사진작가 조세현과 작업한 사진들에서는 상반신 세미누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책 또는 팔로 가리고 있어 아랫부분만 살짝 보이는 정도. 다른 패션지 화보에서는 전문 모델 못지않게 티팬티에 얇은 시스루 롱원피스 차림의 적나라한 뒤태 노출도 있었다.
콘서트에서도..
#사진~~)
1993년 '언젠가는' 활동 당시에 한 예능프로에서 모델 이소라와 같이 모델워킹을 시전한 적이 있다.
2000년도에 윤종신과의 이 대화영상을 보면 모델활동은 숨기고 싶어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근데 화장이나 모습은 완전 모델포스.
헤어나 메이크업 등에도 관심이 많아 본인이 직접 다 할 때도 많다. #사진
패션쪽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본인이 평소 하고다니는 스타일은 명품들 보다는 그냥 부담없이 편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듯. 그래도 유명인인데 너무 신경 안쓰는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안꾸미고 소탈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가장 최근의 모습은 예전에 비하면 좀 후덕해진 인상이다.
(SNS에서는 자신의 몸매를 셀프디스 하기도 했다... #) - 데뷔시절부터 쭈욱 보면 알겠지만 성형이나 별다른 시술 없이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간혹 체중의 변화에 따라 혹은 헤어 스타일이나 화장법에 따라 약간씩 달라보이는 경우는 있으나 자세히 뜯어보면 원판 그대로인걸 알 수 있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으라면 왼쪽 눈 옆과 입술 위쪽에 점이 있었는데 눈 옆의 점만 이후에 뺀 듯하고, 데뷔초기에는 비교적 치열이 고른 편이었는데 뒤늦게 사랑니가 나면서 눈에 띌 정도로 치열이 틀어져 버렸다. 외국 유학하면서 치료 시기를 놓친듯 하다. 이후에 라디오 진행할 때 치과 치료 중이라는 멘트를 날린 적이 있는데 변화가 없는걸 보면 딱히 치아교정 생각은 없어 보인다. 참고로 데뷔초기 자신의 얼굴 중 마음에 안드는 부분을 꼽으라는 질문에 코라고 답한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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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보는거 좋아하고, 영화관련 음악작업도 여러번 했으며, 직접 출연(...)도 했고, 또 나름 연영과 출신이라 영화계 인맥도 있고 인연이 깊은편.
심지어 전남친도 독립영화감독영화관련 행사나 시사회 등에서도 자주 모습을 볼 수 있다. 요런 트레일러 영상도 찍었고, 영화추천영상 도 몇 개 된다. 음악을 설명할 때조차 영화와 관련지어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상은은 주로 앨범 만드는데 제작비를 많이 쏟는 편이라, 홍보를 위한 뮤직비디오 제작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래도 영화 쪽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지 영화를 이용한 뮤직비디오가 꽤 된다. 보통은 그냥 영화 편집화면에 노래를 덧입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중 유일하게 따로 촬영 된, 롱테이크 촬영 기법으로 이상은이 노래한 뮤직 비디오가 있다. 11집 Soulmate(영화'4인용식탁')
동우에이앤이의 단편 애니메이션 'Africa a.F.r.I.c.A'의 음악을 담당한 적도 있다. 이 작품은 한국 작품, 그것도 10분짜리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2004년 도쿄국제애니메이션페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었고, 이후 장편으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무산된 듯하다. ( 아프리카 아프리카 OST.)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상은이 2006년 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 아프리카 홍보대사를 맡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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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량이 아주 풍부하다거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꼽히지는 않지만, 특유의 음색과 창법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를 소화하는 개성 있는 보컬이기도 하다.
보컬리스트로서의 매력은 화려한 악기 구성일때 보다는, 피아노나 기타 한대 등 단순한 악기 구성일때 더 잘 드러나는 편이다.
영화나 드라마 OST에 순수 보컬로서 참여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특히 2013년 MBC드라마 ' 제왕의 딸 수백향'에서 백제가요인 '정읍사'를 불러서, 고조선 시가 ' 공무도하가'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대가요(古代歌謠) 전문가수(...)라고 불려지게 된다. 특히 이상은이 부른 '공무도하가'는 실제 문학 수업시간에 학습 자료로도 쓰인다 카더라.
그렇다고 이렇게 처연한 노래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인디성향의 그녀 목소리가 뜬금없이 로코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콧소리 작렬하며 흘러 나와 팬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마이 프린세스-Falling ( 김태희가 일본 팬미팅때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
피처링은 보통 친분관계가 있어서 해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의외의 피처링이라 여겨졌던 CB Mass( 다이나믹 듀오의 전신)의 '흔적'.
어느 영화 OST에서는 재즈풍의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당신 생각에 ('꽃을 든 남자' OST)
또 어떤 공연에서는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가 불렀던 1930년대 근대가요를 재해석해 나름 맛깔나게 부르기도 하였다. 이태리의 정원
이렇듯 보컬리스트로서도 독특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전 음역, 발성, 음정 등 소리를 잘 내는 것 보다는 그냥 느끼는 대로, 제 라이프 스타일 대로 부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자연스럽게 나온 노래라면 자연스럽게 불러야 맞지요." --- 이상은
"제가 생각하기에 가슴에 딱 손을 얹고, 내가 노래를 해서 사람들한테 도움이 됐구나 이정도면.. 그럴 때쯤에 노래를 그만하고 싶어요."
"음악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앨범을 만들고 싶을 때 만드는 게 좋다. 너무 노력해야 될 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조용히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 특히 난 보컬리스트다. 노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서서 노래하고 싶지는 않다. 허리가 아플 즈음엔 그림을 해야지." --- 이상은
"음악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앨범을 만들고 싶을 때 만드는 게 좋다. 너무 노력해야 될 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조용히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 특히 난 보컬리스트다. 노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서서 노래하고 싶지는 않다. 허리가 아플 즈음엔 그림을 해야지." ---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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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뉴욕에서 조각을, 런던에서는 페인팅을 전공하여 틈틈이 전시회에도 참여하는 등 미술방면으로도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근래에는
사진작업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음악에 비해서 미술쪽은 눈에 띄는 활동은 하지 않는 편인데, 그림작업은 시간이 많이 요구되고 자기색깔을 가지려면 오랜 시간 고생을 거쳐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점점 그게 얼마나 다른 세계고, 예술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어려운지를 아니까 조심스럽고 신중해 진다고.. 좀더 시간이 흐르면 집중해서 작업해 보고 싶다고 한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미술은 첫사랑 같고, 음악은 결혼한 상대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음악으로 공적인 사람들(대중)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게 결혼과 비슷한 거라고.. 여행다닐 때도 미술전시회나 박물관 등을 꼭 찾아본다는 이상은은 작품을 대할 때도 남다른 감성을 보여준다.
09년 클림트전 감상평,
15년 프리다 칼로전 감상평
이상은이 데뷔 초기부터 최근 인터뷰까지 항상 해오던 얘기가 있다. 먼 훗날에 무엇을 하고 있을것 같냐는 질문에 나오는 똑같은 대답. 동화를 그리고 있을거 같다고.
이상은이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 초영노트 外 (2001년 아트웍스 한정판매) 관련자료
당시 작업을 진행했던 아트웍스 담당자가 이상은에 대해 쓴 글과 그림이 있다.
이상은이 어느 초딩 남학생 팬에게 그려 보내줬다는 엽서 + 잡지에 실렸던 그림.
(방송에 며칠 안나왔다고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걸 슬퍼하는 동생을 보고 누나가 이상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단다. 8월 6일 강변가요제 데뷔인데, 1988년 8월 18일이란 날짜가 놀랍다.)
1989년 12월 발매된 캐럴음반. 이상은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2014.12.23.공연에서 이 캐럴을 불렀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원곡은 들국화 2집에 수록된 곡이다.)
- 대학교 졸업장과는 인연이 없는 편이다. ' 한양대 연극영화과'(88학번)[27]는 3학년까지 다니다 휴학하고, 1991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2년 정도 유화, 조각을 전공하다가 일본 활동 때문에 도중에 그만 두게 된다. 2000년도에 영국으로 건너가 다시 미술공부를 하게 되는데, 미국과 영국은 학제가 다르고 뉴욕 프랫에서 공부한 게 인정이 안되어, 런던 '첼시 칼리지'에서 파인아트 파운데이션 과정을 거쳐, ' 센트럴 세인트 마틴' BA과정(순수회화) 합격해서 다니다가( 관련자료) 그마저도 10집 음반 활동 때문에 중단하고 돌아오게 된다. 후에 영국은 학비와 특히 물가가 비싸서 다시 돌아가서 공부하는게 망설여 진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실은 악명 높은 이것[28] 때문일지도..) 모두 그 계통의 명문으로 불리는 학교들을 다녔는데 어쨌거나 최종학력은 고졸인 셈. 사실 음악활동 하면서 학업을 병행하는거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틈만나면 학교 다니려 하고, 확실히 뭔가를 배우려는 욕심이 많은 듯 하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자신에게 음악과 미술은 마치 '들숨과 날숨'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쉬고 싶을땐 미술을, 좀 더 내지르고 싶을땐 음악을 하며 주기적으로 완급 조절을 해왔다고. 요즘은 미술쪽 보단 음악관련 컴퓨터 장비나 프로그램 공부에 열심이라고 한다. 최근 15집 앨범도 컴퓨터를 이용해 혼자서 다 작업한 앨범이었는데, 앞으로도 그 쪽으로 계속 공부해 나갈 모양.
“가난했고, 착했고, 무모했고, 여렸고, 무지했고, 순수했다. 오로지 궁금한 것을 알아보고 체험해 보자는 것이 바람의 전부였다. 정신 차려보면 총성이 가끔씩 들려오는 브룩클린의 작은 아파트 어둠 속에 누워 공포에 떨기도 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일본의 어느 바닷가 스튜디오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또 눈을 떠보면 런던의 기숙사에서 숙제더미로 어지럽혀진 좁은 침대에 누워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다 잠들기도 하고...” ---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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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이미지에 여행도 잘 다니고 씩씩해 보여도 보기 보다 몸도 약하고 겁이 많단다. 그래서 여행지도 위험한 곳으로는 잘 안다니는 편이고[29], 사막이나 정글, 오지 등의 와일드한 자연 보다는 자연과 문명이 잘 어우러진 도시 같은 곳이 좋고, 산 보다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한다. 겁도 많지만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서 여행을 많이 다녀 도장 찍을데가 없어 갱신한
여권만 세 권이란다. 이것도 10년전쯤 얘기이니 지금은 더 늘어났을수도. 책도 6권 정도 냈는데, 그 중 4권은 여행 관련 책이다. EBS TV '
세계테마기행'을 비롯한 여러 여행 다큐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인터뷰 등에서 여행 고수다운 발언도 많이 했는데, 주된 핵심은 '어디든지 여행을 가는 건 다 배울 점이 있다. 리조트 같은데 들어가는 것 보다 배낭여행처럼 실제적으로 그쪽의 문화랑 만나는 가난한 여행들이 훨씬 자아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돈으로 보호막을 만들지 않는 그런 여행을 다녀라' 이다. 한 방송에서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길을 물어볼 때가 자신이 여행 중에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포인트라고 말한 적도 있다.
베를린, 스페인 여행기 등 여행작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해왔는데, 2016년 5월부터 매주 한편씩 12주간 하와이 여행기 포스트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상은의 와이 하와이?
2018년 3월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팬들과 함께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관련영상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는 자메이카를 여러번 거론했었는데, 뉴욕 유학 시절 저렴한 여행지로 나와 친구랑 한번 가봤는데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갈 때부터 무서웠다고. 같이 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무사히 도착하자 모두 할렐루야!를 외치며 박수치고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단다. 당시 총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무서워서 호텔안에서 꼼짝 못하고 이게 뭐야! 했던게 기억에 남는다고.. 그래도 그곳에 가니 항상 레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밥 말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고도 말했었다. (참고로 현재도 여행자제 국가로 지정돼 있다.)
이상은은 처음 뉴욕으로 유학갔을 때도 공포를 먼저 느꼈다고 했다. 미대가 브루클린에 있어 학교주변 외에는 위험한 지역이 많은데다 밤에는 총소리와 싸이렌 소리도 들리고, 특히 흑인들이 무서웠다고 한다. 나중에는 겉보기와 달리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았지만, 어린 나이에 문화적 충격도 크고 매일 코피를 쏟을 정도로 처음에는 적응하는게 너무 힘들었다고. 사실 낯가림과 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기 실험을 하고 습득 하려고 노력하는 등 실로 엄청난 도전들을 해 온 셈이다. 항상 돌아오고 싶어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겉으로는 강해보여도 속은 여리고, 남한테는 눈물을 안보이는 전형적인 '외강내유'형 캐릭터인 듯. 이는 강변가요제 수상 소감에서 부터도 알 수 있다. "울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어요. 집에 가서 울 거에요."
걷는 건 좋아하는데 운동은 별로 안좋아하고, 스노보드 같은 스포츠도 무서워서 못한다고. 운전면허증은 있는데 겁이 많아서 운전은 안한다고 한다. 예전에 중국 공연 갔을 때 자전거 타는 모습이 방송 된 적이 있는데, 그나마 자전거는 잘 타는 듯.
EBS 세계테마기행 - 스페인편 (2008년) : 이상은이 플라멩코 배우는 장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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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는
책벌레로도 알려져 있다.
# 데뷔초기 인터뷰에서 가수가 되고나서 좋은 점을 묻는 질문에 사고 싶었던 것, 특히 책을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신난다고 답했었다. 외국여행 가서도 서점에 들러 외국잡지나 서적들을 사오느라 가방이 바윗덩이가 될 때도 많았는데, 요즘은 전자책이 나와서 간편하고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설류 보다는 궁금한 것을 다이렉트로 알 수 있는 이론 서적들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가끔 추천도서들 보면 제목만 봐도 머리 아플 때가...
추천도서
넘치는 지적호기심으로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사람에게 역으로 질문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음주인터뷰
한때 자본론에 대한 책의 추천사를 써서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을 정도라고.[30] 관련기사
프랑스 파리에서 벨기에 출신의 유명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를 만나 인터뷰 하고 직접 그린 그림도 있다.
(이상은이 신해철 라디오방송에 출연했을때 신해철이 '예전에 항상 대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건 신해철씨도 마찬가지잖아요' 하자, '저는 주로 만화책이었고, 이상은씨는 활자로만 되어있는 책이었어요. 나중에 유학갔다는 얘기를 듣고 역시~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2014. 이상은이 추천하는 문학작품 - 귀천 (천상병) 영상
2018년 오랜만에 예능 달팽이 호텔에 출연했을때도 조용히 책을 읽으며 쉬고 싶다는 이상은을 위해 숲속 책방으로 힘들게 찾아가는 에피소드가 나왔었다. 관련영상 - 아이돌 시절 방송에 혹사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방송출연을 잘 하지않는 편이긴하나 예능을 제외한 방송에는 간간이 출연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로 다큐나 교양 프로들이 많다. 2019년 1월에도 EBS 특집다큐에 진행자로 출연했다. 광화문 광장, 도시의 심장을 바꾸다
- 지금의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노래를 부를 때 특유의 발음이 있다. 자유로와, 아름다와 보여, 아름다와요, 새로와, 괴로와도, 외로왔었지 등등. 이는 사실 예전에는 '새로와', '아름다와'가 맞는 말이었지만 1989년 한글맞춤법[31]이 개정되면서 '새로워', '아름다워'로 규정이 바뀐 것이다. 노래할 때 어감상 예전 발음이 더 익숙해서 계속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 가장 최근의 15집 '인생은 아름다워'에서처럼 바르게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같은 앨범의 다른 곡들을 들어보면 여전하다. 바로 위에 15집 타이틀곡 '태양은 가득히'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분 15초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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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DJ 경력도 상당한데, 지금까지 7개 프로나 했을 만큼 라디오에 많은 애착을 보였다. 2002년 KBS2 FM '사랑해요 FM' DJ 때에는 당시 파격적으로 라디오 진행 도중 벙개를 때려
기사화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10년부터 MBC FM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를 2년반 정도 진행했었다. 이상은은 아이돌 시절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1990년
이종환의 후임으로 MBC FM '밤의 디스크쇼'[32]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부터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 보다 라디오가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시절, 이미 데뷔 하자마자 낮시간 라디오 프로를 진행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어린 나이에 단독으로 밤 10시 2시간짜리 전국 방송을 맡으면서 부담감도 컸었고, 초대 손님으로 나온 정말 내로라하는 선배 뮤지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음악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아티스트로 각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즈음 부터라고 한다.
관련영상 자신의 팬이었던 어느
장우철기자와의 편한(?) 인터뷰를 통해 당시 그녀의 심정을 살짝 엿볼수 있다.
"...결정적으로 나혼자 고민하던 것들을 피크에 다다르게 만든게 '밤디(밤의 디스크쇼)'였어. 라디오와 TV가 너무 다른게, TV는 퀴즈프로그램 PD라도 언젠가 쇼프로그램 PD를 할 수 있으니 나가는게 좋다 그러면, 네 나갈게요, 그런 느낌인데 라디오에 딱 갔더니 분위기가, 음악성이랄까? 그렇다고 힙스터 느낌은 아닌, 바비 맥퍼린이 나오고 어떤날(조동익, 이병우)이 나오고 그랬어. 절대로 나한테 프로그램을 맞춰주지 않았어. 몰랐던 음악을 되게 많이 들었지. 그때가 실은 대한민국 창작음악사의 르네상스였어. 어떤날, 들국화, 유재하가 함께 나오는 시기였다고. 그분들이 전부 초대손님으로 나오는거야. 편지나 엽서도 애들이 없어. 작가가 송지나씨였어. 리드멘트도 너무 어른스럽고. 초대손님과 인터뷰를 하는데, 음악에 대해 내가 뭘 모르는 거야. 어떡해, 다 어른이고 나혼자 스무살. 매일매일 죽을 맛인 거지. 모르니까. 한번은 한영애 선배님이 복도를 가는데 PD들이 이렇게 인사를 하는거야.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저 사람은 예술가라서 그렇구나, 였어. 자기 작품으로 존중 받는구나, 딱 깨달았어. 아이돌인 나는 어떤 건널수 없는 강을 건너야만 하겠구나. 라디오가 나를 완전히 바꿨지. 하여간 방송 끝나고 집에 가면 날마다 울었어. 자존심도 상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베개가 다 젖도록 울었어."
이상은 밤디 마지막 방송: 1990년 4월 16일~ 10월 14일까지 진행했고, 유학을 이유로 물러났었다. 참고로 그때는 밤의 디스크쇼 바로 전타임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였는데, 초기엔 PM 8~10시 방송이었다. 당시 이상은과
배철수가 MBC FM 특집 한여름밤의 축제 야외공개방송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배철수 휴가기간에 이상은이 일주일 동안 음악캠프 임시DJ도 했었다. 배철수가 당시 배캠 첫PD였던 박혜영(現라디오국 부국장)과 결혼했는데, 그 부인이 후에 '이상은의 골든디스크' PD를 맡았었다. 골든디스크 DJ 시절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재능기부를 하기도 했다.
이상은의 음악 선물
2001년 한대수 공연에서 이상은이 코러스를 하는 영상인데, 정말 열심히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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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활동기간 만큼 다방면으로 인맥이 넓고 친분이 있는 음악인들도 많은데, 이상은이 항상
멘토로 생각하고 존경하는 분으로 꼽는 사람은 한국 모던포크의 대부
한대수이다. 이상은이 속해 있던 일본 민간 문화운동단체 '크로스비트 아시아'에서 주최한 한대수의 1997년
후쿠오카 공연에서 코러스를 맡으면서 처음 만났는데 그의 음악도 놀라웠지만, 알고보니 둘 다 생일(3월12일)이 같고, 한대수는 무녀독남, 이상은은 무남독녀로 성향도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아서 친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대수의 부인이 이상은이랑 동갑이었다고..
한대수의 공연에 코러스로 자주 참여 해 왔었고, 2015년 4월 발매 된 한대수 40주년 기념 트리뷰트 앨범에도 참여했다. One day
여담으로 강산에와는 아예 형동생하는 사이로, 이상은의 추천으로 일본에서 문화운동을 하며 같이 고생한 사이라 더욱 돈독하다고 한다.
한번은 이상은이 김C 라디오 프로에 출연 했었는데 김C와는 데뷔 이전부터 친분관계가 있었던 모양. 김C 얘기로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상은이 눈썹이 지저분해 보인다며 눈썹 손질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연예인이 해주니 신기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일본에선 남자도 눈썹손질을 많이 하니 당시 유행하는 스타일로 다듬어 준 건데, 그 후에 보는 사람마다 남자가 눈썹이 그게 뭐냐며 한참 동안 놀림을 받았었다고 한다(...). 강산에의 말에 의하면 둘 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술자리에서 토론배틀 같은거 하며 날밤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고, 김C도 예전에 우리 정말 대단했다고 말하자 이상은이 더 이상한 얘기 나올거 같다며 옛날 얘기 그만하자고 잘라버린 적도 있었다. - 97년 홍대클럽 즉석공연 영상 1990년대 후반부터 홍대거리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홍대 인디씬 1세대 레전드로서, 현재는 홍대 인디음악인들의 대모로 불린다. 고양이들을 키우면서 여전히 홍대주민으로 살고 있으며, 부모님은 충남 공주에서 전원생활을 하신다고 한다. 이제는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예전처럼 외국에 자주 나가진 않고, 시간이 날때면 되도록 부모님 곁에 있으려고 한다고. 그래서인지 근처 세종시 대형마트에서 이상은을 봤다는 글도 가끔씩 올라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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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부터 애완동물을 키웠고 동물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돌고래를 좋아한다고 한다. 여러 곡의 가사에서도 돌고래를 찾아볼 수 있고 곡제목
돌고래 자리으로도 쓰였는가 하면, 개인 아이디도 glassdolphin(유리돌고래). 한 방송에서는 그런 그녀를 위해 아예 돌고래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일본의 프로듀서는 옛날에 한 수족관에서 돌고래와 대화하고 있는 그녀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관련 사진(...) - 성격은 비교적 밝은 편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아무래도 외동으로 자라다보니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예민하고 내향적인 면도 많다고 함. EBS 스페이스 공감 공연에서 자신의 복잡한 성격에 대해 얘기한 적도 있다. 처음부터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데뷔하고나서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도 많다는 걸 깨달은 이후론 사람을 가려서 사귀게 됐다고 말함. 예전에 한 방송(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나와서도 낯가림이 심하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이유를 어느정도 알 수 있는 인터뷰 내용.
- 네가 싫어하는 것들을 좀 말해봐. - "내가 현실감각이 없다는 것을 악용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멀리서 날 볼 때는 철두철미하게 느껴지나봐. 그런데 알고 보면 빈틈투성이고, 비현실적인데다 개념이 없으니까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 그래서 쉽게 사람들이랑 안 친해져. 아무하고나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난 따분한 거, 심심한 것도 되게 싫어해."
(가만히 얘기들을 들어보면 그 낯가림이라는 것도 한국에서는 자신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접근해 오는 불리한 상황이 많았기에 방어 차원에서 그런거고, 외국에서는 서로 모르는 동등한 입장이라 오히려 낯가림이 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에게 상대방을 좀 더 빨리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는지 칼 융의 심리학이나 관상, 혈액형 성격설, MBTI 등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김윤아와의 대화영상), 일단 친해지고 나면 완전 분위기메이커에 애교도 많고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고. 기분좋게 취하면 수다쟁이에 댄스본능(...)까지 발휘 되는 걸로 전해짐. 이상은이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했을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추는게 술버릇이라고 말했었는데,
김나영이 예전에 단상에 올라가 춤추는거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하자 이상은이 민망해 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에서 어느 기자(남)의 경험담에 의하면 이상은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 찍는 것도 영 어색해하고 조용조용 얘기하고 그래서 생각했던 이미지랑 달라 놀랬었고, 한번은 우연히 지인들 술자리에 합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목소리도 엄청 크고 호탕하게 잘 웃고 그래서 과연 동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반된 모습에 또 한번 놀랬었다고 한다.
인터넷 방송에서 어느 기자(남)의 경험담에 의하면 이상은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 찍는 것도 영 어색해하고 조용조용 얘기하고 그래서 생각했던 이미지랑 달라 놀랬었고, 한번은 우연히 지인들 술자리에 합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목소리도 엄청 크고 호탕하게 잘 웃고 그래서 과연 동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반된 모습에 또 한번 놀랬었다고 한다.
2014.7.16. 최근 인터뷰방송 - 여러가지 곡에 대한 에피소드나 그녀의 생각들을 들을수 있다.
2014.8.14. 주병진의 방자전- 위 인터뷰 영상에서의 차분한 모습과 달리, 이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친분이 있고 편안한 자리에서는 밝고 엉뚱한 4차원적 매력이 묻어나온다. 무장해제 상태에서는 그냥 담다디 때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이 나온다고 보면 될 듯. (전체영상은 이곳에서..) 자세히보면 위의 영상때 보다 피부가 살짝 그을린 걸 알 수 있는데 그새 태국여행 다녀왔다고 한다.
2014.10.4. 광화문 콘서트 - 이 영상에 박경림과의 대화에서도 보면.. 역시나 조금만 분위기 띄워주면 잘 노는 사람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박경림이 어렸을때 최초로 좋아한 연예인이 이상은이었다고 한다.
- 배우 최강희가 이상은의 골수팬으로 유명하다. #기사. 최강희가 라디오DJ할때 이상은이 초대손님으로 나온 적이 있었는데, 흥분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은이 라디오 진행할 땐 최강희와 전화 연결 하기도 했다. 공연장에 모습을 보이고 인터뷰에서 이상은 앨범을 추천하거나, 방송에서 이상은 노래를 부르는 등 여러번 대놓고 인증하였다.
- 작가 겸 배우 고원이 이상은의 열렬한 팬이다. 학창시절, 교복을 입고 공연장을 찾아가기도 했으며, '이상은이 없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다.' 라고 할 만큼, 이상은에게 힐링받고 의지해왔다는 것을 표현했다. 또, 개인블로그에 '나의 생명수, 나의 사랑, 나의 뮤즈' 라고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이상은이 고원의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동력임을 강하게 나타내었다. '이상은의 음악은 미래에 더 인정받을 것이다.' 라는 말을 하며 극찬하기도 했다.
- 모델 겸 배우 변정수가 학창시절에 이상은 닮은 꼴로 유명했고, 그 덕분에 또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자신은 원래 그림그리기 좋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교내 행사때마다 이상은 분장을 하고 담다디를 불러야 했다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2015년 변정수는 라디오 DJ를 맡자마자 꼭 만나고 싶었다면서 이상은을 초대했고, 방송내내 들뜬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인증샷도 올렸다.
- 웹마 개발자가 만든 무료 가계부 프로그램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가계부 이름이 '리채(Lee-tzsche)'이다. 현재 리채2 버전까지 나왔는데, 개발자가 이상은 팬이라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개발자의 글
- 빈지노가 izm인터뷰에서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로 이상은을 꼽았다. 2016.7. 인터뷰. 빈지노 모노그래프 책에서도 요즘 꽂혀있는 노래라며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을 언급하기도 했다.
- 조성모가 학창시절 이상은의 열혈팬이었다고 한다. 인스타 인증샷 2017년 6월 자신의 라디오 프로에 이상은을 초대했는데 가수 생활 20년만에 처음 만난거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중학교 1학년때 이상은의 영화 '굿모닝 대통령'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줄서서 개봉 첫상영작을 보고, 팬레터 보낸 얘기와 이상은의 옛날 노래도 부르는 등 방송내내 팬심을 드러냈고, 낯을 가리는 이상은의 성격까지 다 알고 얘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라디오 방송
- 홍대 합정동에 펍레스토랑 겸 복합문화공간 '무대륙'은 이상은이 이름을 지어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영국 제임스 처치워드의 ‘The Lost Continent of Mu'(1926년) 라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번창했다던 고대의 무대륙 처럼 홍대 무대륙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꽃피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 이상은의 7집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 이름을 딴 키덜트 소품샵이 청주에 있다고 한다. 기사
- 한때 유행했던 '신이 ㅇㅇ를 만들 때' 이상은 버전도 있다. 나름 그녀의 특징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는 신이 리채를 만들때.
- 2016년 5월 한 공연에서 이제까지 청와대 오찬에 초청 받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는 말을 했는데 거짓말로 드러났다(...). 증거자료 사실은 한 번이 아니라 더 있었다고 한다.
- 2017년 1월 7일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11차 촛불집회 본무대에 올라 '어기여디어라', '새', '언젠가는'을 열창하며 "더 깨끗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기사 특히 이날은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두고 있었기에 세월호 추모문화제로 진행되었는데[33], 공연전 인터뷰에서 이상은은 "이번 정권에서 속상한 일이 많지만 그중에 세월호가 가장 속상하다. 작년에 단원고에 갔는데 당시에는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너무 우울해 거의 울면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전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라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이상은은 2014년 11월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00일 범국민 추모대회 무대에도 올랐고, 2016년 8월 단원고에서 열린 '기억과 약속의 밤’ 문화제에도 참여하였다. 2017년 10월 세월호 참사 '기억과 약속의 밤' 행사 역시 참여하여 노래로 위로를 전했다. 기사 2017년 10월 28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 1주년 대회 무대에도 올랐다. 2018년 4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4주기 다짐문화제와 KBS 추모음악회에도 참여하였다.
- 2017년 11월 셀레브 인터뷰 열아홉 담다디 소녀가 15집 가수가 되기까지
- 2002년에 이상은이 홍보대사로 위촉된 한국여성재단의 '100인 기부 릴레이' 캠페인에 이상은 팬들은 2004년부터 꾸준히 참여를 해왔다. 2018년에도 역시.
- 인터뷰 1, 인터뷰 2, 인터뷰 3 - 이상은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인터뷰 글
- 그외 이상은의 음반과 저서, 방송 등 다양한 활동에 대해 정리가 잘 되어 있는곳 → 이상은 위키백과
- 휘성 역시 이상은의 팬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 카툰 에세이인 파페포포 시리즈의 2권인 파페포포 투게더의 에필로그에 이상은의 곡 중 하나인 사랑해 사랑해를 모티브로 한 만화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서두에서도 해당 곡을 들으면서 보면 느낌이 다를 것이라며 함께 들으면서 읽기를 추천하고있다.
[1]
당시에는
서대문구였다. 1979년 서대문구에서 분구되어
은평구가 신설되었다.
[2]
성장은
종로구에서 했다.
[3]
효령대군파.
[4]
대한민국 남성 평균키보다 4cm 정도 크다. 특히 여자 백댄서들이랑 서 있으면 머리 하나는 더 크다. 데뷔 당시에는 176.5cm로 알려졌으나, 최근 방송(2014년)에서 178cm라고 밝혔다. 깡마른 체격에 몸무게는 50kg도 안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나이가 들며 키가 조금 준 것 같다고 한다.대략
이런 혹은
요런 실루엣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아이돌 시절 모습
[5]
2집 활동 당시 방송에서 신발 치수를 묻는 질문에 245mm라고 답한 바 있다. 키에 비해선 발이 작은 편이라 휘청거릴 때가 많다고.
스타백과사전 (2집 때 프로필).
[6]
Breeze Music. 2009년에 만든 인디 레이블로 홍대에 있는 이상은의 1인 기획사다. 14집부터 자체 레이블로 음반을 내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브리즈뮤직(관악구 소재)과는 다르니 주의할 것. 게다가 가수 이상은을 검색해도 소속사가 저쪽으로 링크가 잘못 걸려 있다(...).
[7]
연합뉴스 (이상은 "편안한 일상의 고마움, 느리게 살 때 행복감")
[8]
직접 관리하는 개인 페북이 따로 있다. 주로 좋아하는 그림이나 음악이 올라온다.
[9]
대중에게 알려진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꾸준한 음악활동과 더불어 시집, 다수의 책, 미술 전시 등 다재다능한 예술인에 더 가깝다.
[10]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 1998년, 2007년, 2018년 3차례 선정 리스트가 있는데 <공무도하가> 앨범은 3차례 모두 10위권 내에 들었다. 11집과 12집으로 각각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여자)부문 수상을 하였다.
[11]
보통 대중적이지 않고 어렵다는 평을 받는 이상은의 앨범 중에서도 곡분위기 자체가 팬들조차 접근이 쉽지않은 난이도 최상으로 꼽히는 실험적인 앨범이다. 한곡 빼고 다 영어가사라는건 그냥 넘어가자
[12]
참여 아티스트 -
황신혜밴드, 황보령,
김창완,
어어부밴드, 장영규, 원일, 이상은, 삐삐롱스타킹,
달파란, 마부,
강산에.
[13]
엠버의 신장은 167cm로 여성치고는 큰 편에 속하지만 남성 기준으로는 대놓고 단신이기에 보이시한 여가수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상은의 경우에는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로도 남성 평균 신장보다 4cm나 큰 장신이기 때문에 아예 남자라는 루머가 붙었던 것이다.
[14]
동갑내기 이자 당대 라이벌 관계였던 이지연은 한때 이상은과의 루머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했다. 관련 내용은
이지연(가수, 요리연구가)항목 참조.
[15]
신문기사에 따르면 가수들 입장에서 개그 시키는 것 다음으로 싫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16]
이민형의 아버지이자 이상은의 작은아버지인 이경우도 국가대표 센터 출신이다.
[17]
6학년때 부모님과
장충동
족발집에서 밥먹고 있다가 스카웃 되었다고 한다(...). 때마침
은광여고 농구부 스텝들이 회식왔다가 이상은의 키와 먹성을 보고는 관절 이곳저곳 만져보더니 농구 해보지 않겠냐며 권유를 했었다고 한다. 삼촌 2명도 농구를 했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허락을 해서 농구부에 들어가 한 달간 연습을 해봤는데, 워낙 운동신경이 둔해 점프력과 순발력에서 밀리는데다가 단체기합을 한 번 받고나서는 기겁을 하며 농구부를 나왔다고 한다.
[18]
발레리나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듯하다. 데뷔 초기 어릴 적 꿈을 묻는 질문의 답에는 항상 발레리나가 있었다. (이런 짤도 있다.
흑조?) 뉴욕에서 3집 앨범 작업할 때도 편곡자(Tom Semanski)가 발레음악하는 사람이라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19]
심지어 한창 연애 중일 때 남친은 노래할 때마다 오른쪽 새끼 손가락을 길게 뻗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하늘과 교신하는 것 같다며 그녀의 새끼손가락까지 사랑한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20]
반면 본인은 원래 손이 이상하게 생겨서 마음먹은 대로 악기 연주가 잘 안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21] 1988년 강변가요제는 이상은, 이상우, 박성신, 박광현, 이재영 등 당시 인기가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전설적인 대회였다. 본선진출자 12팀 가운데 5팀이나 프로가수로 데뷔한 것이다. 참고로 1970~90년대 대표적인 가수 등용문이었던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는 가수 지망생들의 로망이었고, 대학생 중심의 창작 가요 경연대회였기 때문에 '가요제 나가기 위해 대학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다. 실제로 이 두 가요제를 통해 이선희, 신해철 등 수많은 가수들이 배출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형 기획사와 각종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실력있는 신인들은 이미 10대때 데뷔를 하고, 굳이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서 가요제에 나갈 필요가 없어지고, 더 이상 가요제를 통해 스타가 배출되지 않으면서 점점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22] 신해철도 88년 겨울 대학가요제 나가기 전 여름에 '아기천사'라는 밴드의 멤버로 강변가요제에도 출전해 최종 예선까지 올랐지만 본선엔 떨어졌었다고. 본선까진 누구나 이상우가 대상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는데, 결선 현장에서 이상은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 잡으면서 결국 대상을 차지하는 걸 보고 '역시 저거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은 뒤, 바로 무한궤도라는 밴드를 새로 만들어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했다. 대상곡 ' 그대에게'의 전주 부분이 요란한 이유가 바로 그 깨달음의 결과이다. [23] "제 생각으로는 불교에 심취해 있으면 음악이 난해해지거든요. 불교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내 자신의 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요. 고통이 생겨도 받아들여야 하고, 불교가 어떻게 보면 철학적이죠. 아픈 부분도 있구요.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다 버리고 '저 좀 도와주세요' 하는 마음이니까 밝아지고 명랑해지고 그래요. 긍정적이고 쉽고 단순한 것, 기독교적인 것이에요." 긍정적인 그녀의 글(...) [24] 단지 리차드 얼굴보러 영국 공연까지 쫓아간 적도 있고, 리차드 땜에 영국이 좋아져서 나중엔 아예 런던으로 미술유학을 갔다(...). 영어발음도 영국식을 선호하는 듯. 버브가 일본 공연 왔을때 같은 Virgin 소속 아티스트 자격으로 무대 뒤에서 리차드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때 악수도 하고 자신의 CD도 선물했는데 암튼 너무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했었다고. 악기 연주하며 노래부르는 모습은 매우 보기 힘든데, 빠심 충만함으로 직접 기타 연주하며 리차드 노래(Sonnet)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자신이 직접 팬질을 해보니 이제 팬들의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자신의 팬들에게 좀 더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그가 유부남인걸 상당히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단다.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그녀의 취향으로 볼때 리차드는 그 취향을 넘어선 다른 매력이 있는듯 하다. 이상은이 97년 런던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에서 8집 레코딩 중일때 휴게실에서 잠깐 쉬는데 그때 Bitter~ 뮤직비디오를 보고 한눈에 반해 엔지니어한테 '뮤지션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버브라는 팀인데 지금 밑에서 녹음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만날수 없냐고 내선전화를 걸었더니, 아쉽게도 리차드는 녹음하다 말고 잠적했더라는...버브가 레코딩하다 기물파손에, 행방불명되고 하는 악동들이란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고. 오죽하면 별명도 매드(mad) 리차드. 이상은이 워낙 좋아하는 티를 많이 냈기 때문에 특히 라디오 진행할 때는 애청자들이 아예 리차드를 형부(...)라 지칭하며 신청곡으로 형부노래 틀어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25] 당시 김성주가 진행하던 TV프로에 남친이랑 같이 일본여행 간 모습이 나왔었는데, 이때 남친은 "꿈에 상은이(...)가 나왔는데 전혀 모른 상태로 홍대앞 놀이터에 갔다가 그날 처음 봤었다. 꿈꾸고 난뒤 실제로 보게 돼서 꿈 같았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이상은은 홍대의 한 클럽파티에서 강산에와 지인들이랑 술 마시다가 우연히 2층에 서있던 남친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마치 왕자님이 서있는 것처럼 멋있게 보이더란다. 그날 남친에게 쪽지도 받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강산에랑도 친분이 있었고 괜찮은 친구라고 다리를 놔줘서 만나게 됐다고. 처음엔 사귈 생각도 전혀 못했고 나이차 때문에 많이 망설이기도 했다는데, 나이보다 어른스럽고 진중한 모습에 호감이 가던차에 더군다나 잘생긴 남자가 계속 들이대니.. 결국은 콩깍지 제대로 씐 모습들을 보여주곤 했다. 남친이 경상도 출신이여서 그런지 당시 이상은이 라디오방송 같은데 나와서 가끔 경상도 억양을 흉내내는 모습도 보였었고, 남친이 은근 가부장적인 면도 있고, 과묵한 스타일이라 가끔 심심할 때도 있다는 말까지 했었다. 다른 인터뷰에서 '지도에 없는 마을'은 시골 출신인 남친이 서울은 타락하고 각박한 곳이라면서 시골에 가서 욕심없이 살고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감동받아 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안한다. 오히려 도시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제 허락받고 실은 중간에 결혼까지 할 뻔 했었는데 이상은이 미뤘었단다. 12집의 '둥글게' 노래가사 초반에 나오는 작은 가게가 바로 둘이 처음 눈 맞았던 그곳 이야기라고 한다. 참고로 11집 '비밀의 화원'에 나왔던 사람은 이 남친이 아니라 다른 남자였다고(...). [26] 만화도 잘 그림. 만화가가 되려고도 했었다고. 데뷔시절 좋아하는 만화가로 김영숙(우에하라 기미코)을 꼽았었다. 순정만화계의 대모 황미나와도 친분이 있고, 만나서 서로를 그려준 그림도 있다. 그림. [27] 여담이지만 한양대 연극영화과 88학번은 영화계 황금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기사까지 나왔다. 이한, 정지우 감독을 비롯한 88학번 동기인 6명의 감독이 20편이 넘는 장편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였는데, 타 대학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한 한양대에서, 더군다나 한 학번에서 이렇게 많은 기성 감독이 배출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28]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먹고 사는 것엔 거의 포기한 나라 같다는 말까지 했었다. 2001년 영국 유학 시절 잠깐 귀국했을때 인터뷰 (42분쯤에 음식얘기가 나온다.) [29] 철학적인 노래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와도 잘 어울리고 한번쯤은 가봤을거 같은데 의외로 인도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가보고 싶긴한데 위험하다해서 무서워 못가고 대신 네팔은 가봤다고 한다. [30] 냉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자본론을 읽는 사람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은 많다. 더욱이 해당 책을 읽었을 시점에는 더더욱. 물론 이상은은 읽기만 했지 이렇다할 견해는 밝히지 않았다. [31] 가장 유명한 예시로 '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었다. [32] '밤의 디스크쇼'는 1981년부터 1999년까지 18년간 방송된 밤10시 MBC FM의 간판 프로였다. 라디오계의 전설 이종환이 초대DJ로 8년동안 진행해오다 성시완을 거쳐 이상은, 신해철, 윤상, 김현철, 신성우, 이소라, 김윤아가 그 뒤를 이었었다.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20살이었던 이상은의 투입은 분위기 쇄신을 위한 파격적인 조치였다. 전문DJ에서 청소년에게 인기 있는 가수DJ로 교체함으로써 청취율을 올릴 목적이었다. 팝 선곡이 많았던 음악 전문 프로라 처음에는 PD 조차 아이돌 DJ에 대해 우려를 했을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부담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전에도 이미 MBC는 88년 여름에 데뷔한 이상은을 바로 라디오 가을 개편 때 'FM은 내친구' DJ로 앉히는 파격을 보이긴 했었다. 여가수 DJ도 드물었을 뿐더러, 당시 만 18세로 지상파 최연소 단독 DJ였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여름방학 특집으로 전국 대도시 체육관을 돌며 공개방송을 할 정도였다. 당시 기사 출연 가수들이 후덜덜 하다.
가왕이 공개방송에 나오던 시절 그와 동시에 CBS 라디오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청소년 대상 토크쇼 진행을 맡기도 했었는데, 겹치기 진행에 대한 비판
기사에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었다. 당시 이상은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2010년에는 또 다른 라디오계의 전설
김기덕이 13년간 진행하던 팝 전문프로 '
골든디스크'의 후임DJ를 맡았는데, 이 또한 분위기 쇄신을 위한 조치로, 김기덕이 막방에서 타의에 의해 물러나게 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겨 한동안 이상은은 골디 골수팬들의 원망 아닌 원망을 들어야했다.
[33]
아니나 다를까 이런 자리에서도 담다디를 요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계속 담다디를 외치자 이상은이 "오늘은 여기 담다디가 어울리는 자리는 아닌거 같다'고 회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관련영상(6분 50초쯤)
[21] 1988년 강변가요제는 이상은, 이상우, 박성신, 박광현, 이재영 등 당시 인기가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전설적인 대회였다. 본선진출자 12팀 가운데 5팀이나 프로가수로 데뷔한 것이다. 참고로 1970~90년대 대표적인 가수 등용문이었던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는 가수 지망생들의 로망이었고, 대학생 중심의 창작 가요 경연대회였기 때문에 '가요제 나가기 위해 대학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다. 실제로 이 두 가요제를 통해 이선희, 신해철 등 수많은 가수들이 배출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형 기획사와 각종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실력있는 신인들은 이미 10대때 데뷔를 하고, 굳이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서 가요제에 나갈 필요가 없어지고, 더 이상 가요제를 통해 스타가 배출되지 않으면서 점점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22] 신해철도 88년 겨울 대학가요제 나가기 전 여름에 '아기천사'라는 밴드의 멤버로 강변가요제에도 출전해 최종 예선까지 올랐지만 본선엔 떨어졌었다고. 본선까진 누구나 이상우가 대상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는데, 결선 현장에서 이상은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 잡으면서 결국 대상을 차지하는 걸 보고 '역시 저거구나!' 하고 깨달음을 얻은 뒤, 바로 무한궤도라는 밴드를 새로 만들어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차지했다. 대상곡 ' 그대에게'의 전주 부분이 요란한 이유가 바로 그 깨달음의 결과이다. [23] "제 생각으로는 불교에 심취해 있으면 음악이 난해해지거든요. 불교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내 자신의 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요. 고통이 생겨도 받아들여야 하고, 불교가 어떻게 보면 철학적이죠. 아픈 부분도 있구요.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다 버리고 '저 좀 도와주세요' 하는 마음이니까 밝아지고 명랑해지고 그래요. 긍정적이고 쉽고 단순한 것, 기독교적인 것이에요." 긍정적인 그녀의 글(...) [24] 단지 리차드 얼굴보러 영국 공연까지 쫓아간 적도 있고, 리차드 땜에 영국이 좋아져서 나중엔 아예 런던으로 미술유학을 갔다(...). 영어발음도 영국식을 선호하는 듯. 버브가 일본 공연 왔을때 같은 Virgin 소속 아티스트 자격으로 무대 뒤에서 리차드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때 악수도 하고 자신의 CD도 선물했는데 암튼 너무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했었다고. 악기 연주하며 노래부르는 모습은 매우 보기 힘든데, 빠심 충만함으로 직접 기타 연주하며 리차드 노래(Sonnet)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자신이 직접 팬질을 해보니 이제 팬들의 그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자신의 팬들에게 좀 더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그가 유부남인걸 상당히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단다.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그녀의 취향으로 볼때 리차드는 그 취향을 넘어선 다른 매력이 있는듯 하다. 이상은이 97년 런던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에서 8집 레코딩 중일때 휴게실에서 잠깐 쉬는데 그때 Bitter~ 뮤직비디오를 보고 한눈에 반해 엔지니어한테 '뮤지션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버브라는 팀인데 지금 밑에서 녹음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만날수 없냐고 내선전화를 걸었더니, 아쉽게도 리차드는 녹음하다 말고 잠적했더라는...버브가 레코딩하다 기물파손에, 행방불명되고 하는 악동들이란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고. 오죽하면 별명도 매드(mad) 리차드. 이상은이 워낙 좋아하는 티를 많이 냈기 때문에 특히 라디오 진행할 때는 애청자들이 아예 리차드를 형부(...)라 지칭하며 신청곡으로 형부노래 틀어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25] 당시 김성주가 진행하던 TV프로에 남친이랑 같이 일본여행 간 모습이 나왔었는데, 이때 남친은 "꿈에 상은이(...)가 나왔는데 전혀 모른 상태로 홍대앞 놀이터에 갔다가 그날 처음 봤었다. 꿈꾸고 난뒤 실제로 보게 돼서 꿈 같았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이상은은 홍대의 한 클럽파티에서 강산에와 지인들이랑 술 마시다가 우연히 2층에 서있던 남친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마치 왕자님이 서있는 것처럼 멋있게 보이더란다. 그날 남친에게 쪽지도 받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강산에랑도 친분이 있었고 괜찮은 친구라고 다리를 놔줘서 만나게 됐다고. 처음엔 사귈 생각도 전혀 못했고 나이차 때문에 많이 망설이기도 했다는데, 나이보다 어른스럽고 진중한 모습에 호감이 가던차에 더군다나 잘생긴 남자가 계속 들이대니.. 결국은 콩깍지 제대로 씐 모습들을 보여주곤 했다. 남친이 경상도 출신이여서 그런지 당시 이상은이 라디오방송 같은데 나와서 가끔 경상도 억양을 흉내내는 모습도 보였었고, 남친이 은근 가부장적인 면도 있고, 과묵한 스타일이라 가끔 심심할 때도 있다는 말까지 했었다. 다른 인터뷰에서 '지도에 없는 마을'은 시골 출신인 남친이 서울은 타락하고 각박한 곳이라면서 시골에 가서 욕심없이 살고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감동받아 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안한다. 오히려 도시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제 허락받고 실은 중간에 결혼까지 할 뻔 했었는데 이상은이 미뤘었단다. 12집의 '둥글게' 노래가사 초반에 나오는 작은 가게가 바로 둘이 처음 눈 맞았던 그곳 이야기라고 한다. 참고로 11집 '비밀의 화원'에 나왔던 사람은 이 남친이 아니라 다른 남자였다고(...). [26] 만화도 잘 그림. 만화가가 되려고도 했었다고. 데뷔시절 좋아하는 만화가로 김영숙(우에하라 기미코)을 꼽았었다. 순정만화계의 대모 황미나와도 친분이 있고, 만나서 서로를 그려준 그림도 있다. 그림. [27] 여담이지만 한양대 연극영화과 88학번은 영화계 황금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기사까지 나왔다. 이한, 정지우 감독을 비롯한 88학번 동기인 6명의 감독이 20편이 넘는 장편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였는데, 타 대학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한 한양대에서, 더군다나 한 학번에서 이렇게 많은 기성 감독이 배출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28]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먹고 사는 것엔 거의 포기한 나라 같다는 말까지 했었다. 2001년 영국 유학 시절 잠깐 귀국했을때 인터뷰 (42분쯤에 음식얘기가 나온다.) [29] 철학적인 노래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와도 잘 어울리고 한번쯤은 가봤을거 같은데 의외로 인도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가보고 싶긴한데 위험하다해서 무서워 못가고 대신 네팔은 가봤다고 한다. [30] 냉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자본론을 읽는 사람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은 많다. 더욱이 해당 책을 읽었을 시점에는 더더욱. 물론 이상은은 읽기만 했지 이렇다할 견해는 밝히지 않았다. [31] 가장 유명한 예시로 '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었다. [32] '밤의 디스크쇼'는 1981년부터 1999년까지 18년간 방송된 밤10시 MBC FM의 간판 프로였다. 라디오계의 전설 이종환이 초대DJ로 8년동안 진행해오다 성시완을 거쳐 이상은, 신해철, 윤상, 김현철, 신성우, 이소라, 김윤아가 그 뒤를 이었었다.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20살이었던 이상은의 투입은 분위기 쇄신을 위한 파격적인 조치였다. 전문DJ에서 청소년에게 인기 있는 가수DJ로 교체함으로써 청취율을 올릴 목적이었다. 팝 선곡이 많았던 음악 전문 프로라 처음에는 PD 조차 아이돌 DJ에 대해 우려를 했을 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 부담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전에도 이미 MBC는 88년 여름에 데뷔한 이상은을 바로 라디오 가을 개편 때 'FM은 내친구' DJ로 앉히는 파격을 보이긴 했었다. 여가수 DJ도 드물었을 뿐더러, 당시 만 18세로 지상파 최연소 단독 DJ였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여름방학 특집으로 전국 대도시 체육관을 돌며 공개방송을 할 정도였다. 당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