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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22:37:33

어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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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의 앨범인 후일담 수록곡인 "어떤 날"에 대한 내용은 후일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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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someday.jpg
파일:어떤날1.jpg 파일:external/static.news.zum.com/00445302401_20120926.jpg
원체 사진 자료를 구하기가 참 힘든 그룹 중 하나다.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 있는 것도 결성 초기의 사진과 우측의 재결합 하였을 때의 사진뿐이다.

1. 개요2. 역사3. 디스코그래피4. 평론 발췌
4.1. 1집4.2. 2집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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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주로 그린 서정의 미학
Mnet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서의 소개 문구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포크 듀오.

2. 역사

한국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대부, 조동진의 동생인 베이시스트 조동익 기타리스트 이병우로 이뤄졌고, 198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그룹명은 조동진의 2집 수록곡으로 허영자 시인의 시에 조동진의 동생 조동익이 곡을 붙인 '어떤 날'에서 따왔다. (웹 문서뿐만 아니라 많은 기성 언론에서조차 노래 '어떤 날'의 작곡자를 조동진으로 오기하고 있다.) 조동익이 대중음악'계'에 들어서는 계기가 됨.

프로젝트 그룹으로 1984년 결성하여 1986년 1집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3년 뒤인 1989년 2집 음반을 발매한 뒤 활동을 중단했다. 두 장의 음반은 발매 당시에는 큰 반향은 없었지만[1], 어떤날만의 높은 음악성 덕분에 후에 많은 조명이 이뤄졌다. 흔히 '조용한 파장'이나 '고요한 울림'이라고 많이 표현되는 음악 스타일은 울림 있는 연주와 깊은 가사가 특징으로, 그들만의 서정적인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두 앨범 모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높은 순위를 올렸다[2]. 그들의 실험 정신과 진보된 작곡 기법은 이후 1990년대를 풍미하는 웰메이드 팝의 전성기와 맞닿아 있으며[3], 그들의 감성은 소위 하나음악 사단이라 불리는 일군의 뮤지션들로 이어졌다. 이들이 만들어 낸 이와 같은 두 가지 큰 물결은 현재까지 전해져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1989년 2집을 발표하고 활동 중단[4]한 뒤에는 각각 오스트리아로의 유학과 제주도로의 낙향 등으로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가[5] 8년 만에 연락했다는 기사가 있다.

1980년대의 거장들 중 유재하와 더불어 후대의 숱한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존경을 받는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3. 디스코그래피

1집 어떤날 I 1960 · 1965[6] 1986년 12월 10일
2집 어떤날 II 1989년 6월 20일

4. 평론 발췌

4.1. 1집

질적·양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에도 어떤날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례를 받아온 포크 퓨전 재즈, 록 음악 등을 앨범에 고루 담아냈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떤 장르로 나눌 수 있는 음악은 아니었다. 차라리 조금 억지스럽게 말한다면 그들의 장르는 ‘고요한 전율’이나 ‘고요한 파장’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사춘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창밖에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이라 노래하기도 하고, “너무 아쉬워 하지마, 기억 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이라며 조용조용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그 조용한 소곤거림 속에는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단순히 ‘그날’에서 이병우가 들려주는 강렬한 기타 연주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노래, 모든 소절마다에는 어떤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지금껏 경험할 수 없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늘’ ‘그날’ ‘너무 아쉬워 하지마’ 등 대부분의 노래들이 바로 그런 ‘조용한 울림’과 ‘고요한 파장’을 전해주는 노래들이다. 또한 ‘지금 그대는’과 ‘겨울하루’ 같은 소품들은 기타리스트가 아닌 보컬리스트 이병우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우면서 서늘한 노래들이다.
음악평론가 김학선

4.2. 2집

이 앨범을 온전하게 글로 풀어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글의 시작부터 이러한 근본적 한계를 절감한다. 그 누가 이 앨범을 들으며 덤덤한 가슴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무자비한 서정의 폭격을 맞고도 말이다. 훗날 한국 최고의 세션이자 편곡자, 그리고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조동익과 이병우는 이렇듯 이미 이십대의 나이로 한국 음악사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새겨놓았다. 그들의 음악은 들국화처럼 강렬하지도 않았고 김현식처럼 불을 토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소박하고 단정하며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순수함의 결정체와도 같은 이 앨범은, 그렇게 은근하고 조용하게 우리 시대의 작품이 되어 남았다. 전작보다 사운드가 더 매끈해졌지만 그 안의 감수성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변질이 아닌 발전적 변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당시의 한국적 정서와는 다른 영미 팝 음악의 세련되고 도회적인 정서를 아련한 멜로디와 탁월한 편곡으로 훌륭히 재현해내었다는 점은 분명한 음악적 성취다. 이들은 결코 대단하고 거창한 것에 대해 노래하지 않았다. 이들은 바쁜 하루를 보낸 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느끼는 아쉬움을 수줍게 털어놓았고, 어릴 적 몹시 추위를 타던 그 소녀와 함께 보았던 구름 사이 무지개꿈을 추억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노래들이 모여 비범한 걸작을 이루어냈다.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꼬박 20년이 흘렀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올 때마다 주머니 속에서 이 앨범을 꺼내보곤 한다. 어떤 날의 음악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꿈꿀 수 있다.
음악평론가 김봉현

5. 여담



[1] 공연도 안 했고 레이블에서도 기대가 없었는지 지원도 잘 안 해줬다고 한다. [2] 3차(2018년) 기준, 1집은 6위, 2집은 20위. [3] 직접적으로는 한국 소피스틱 팝의 효시로 꼽힌다. 소피스티 팝은 1980년대 초중반 에브리씽 벗 더 걸이나 스타일 카운실, 블루 나일처럼 영국에서 이뤄진 포크와 재즈, 일렉트로닉을 지성적인 가사와 결합한 팝을 일컫는다. [4] 해체했다는 말이 유명한 데 조동익은 해체한 게 아니라고 인터뷰에 밝혔다. # [5] 정확히는 중단 이후에도 서로 다른 음악인들의 음반 작업을 하였다. [6] 앨범의 부제 1960ㆍ1965는 어떤날의 멤버 조동익과 이병우가 태어난 해이다. [7] 어떤날이 게스트로 나온 공연이 끝나고 지하철 역에서 조동익과 우연찮게 만났다고 한다. [8] 정확히는 요실금 걸리는줄 알았다라고 했다 눈앞에서 우상을 본다는게 얼마나 놀라웠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