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공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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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초기의 문신. 이름은 유창(劉敞), 초명은 유경(劉敬), 자는 태화(太和), 호는 선암(仙庵)이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강릉 유씨의 중시조이다.2. 생애
강릉부 우계현 출신으로[1], 태어난 해는 미상이다.이색과 정몽주에게 글을 배웠으며, 공민왕 말기에 성균관의 학유와 박사를 거쳐 문하부의 주서 직을 맡았다. 우왕 시기에는 통례문지후, 전공좌랑, 예의사와 군부의 정랑 직을 역임했고, 공양왕 재위기에는 성균관의 사예와 호조의랑, 성균관의 좨주를 지냈다.
일찍이 이성계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에게 많은 유교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다룬 책은 《 대학연의》였다고 한다. 이 책은 제왕학에서 매우 중요한 책으로, 이 책을 강론한다는 것은 곧 이성계가 마음 속에 큰 뜻을 품기 바란다는 의미였다.
그래서였는지 1392년(태조 원년)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로 즉위한 후에 협찬개국공신 2등으로 봉해지고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다음해에는 좌산기상시로 전직했는데, 재직 중에 갑자기 신선술을 배우겠다고 하면서 사표를 냈으나 태조에게 거절당하고 오히려 중추원좌부승지로 승진했다. 이때 태조는 "신선술을 익히면 임금과 아버지를 버리는 건데 님 불충불효할 거임?" 이러면서 막았다. 1395년(태조 4년)에는 중추원부사 직을 제수받고 '옥성군(玉城君)'으로 봉군되었으며 세자 이방석을 가르치는 우부빈객 직을 역임했다.
태종이 왕이 된 직후에는 승녕부윤이 되었고, 태종을 미워하여 소요산에서 머물던 태조를 찾아가 도성[2]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기도 했다. 이후 여러 번 첨서중추원사와 예문관의 대제학으로 근무했고, 1405년(태종 5년)에는 다시 세자 우부빈객이 되어 새 세자 이제(양녕대군)을 가르쳤다. # 그 무렵 봉호가 '옥천군(玉川君)'으로 바뀌었다. 사은사로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
1408년( 태종 8년)에 태조가 승하하자 2년 간 능을 지키면서 삼년상을 치렀다.[3] 복귀한 뒤에 참찬의정부사를 거쳐 판공안부사 직을 맡았다. 이후 세자이사를 거쳐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으로 격상되었다.
1421년(세종 3년) 1월에는 나이 많은 공신이라 하여 세종에게 궤와 지팡이를 하사받았다. # 그리고 그해 12월에 사망했다. #
3. 가족과 후손
증조할아버지는 강릉 유씨의 시조 유승비이고, 할아버지는 개성윤과 상호군을 지낸 유송백이며 아버지는 지군사를 역임했던 유천봉이다. 어머니는 전성무의 딸이며, 부인은 좌찬성을 지낸 광주 이씨 이집의 딸이다.[4] 이씨 부인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었으며 사위는 류관의 조카인 류사눌이다.4. 묘역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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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익공 신경진 묘역 | 문희공 유창 묘역 | 오공신회맹축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6호 | |
문희공 유창 묘역 文僖公 劉敞 墓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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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190번지 |
시대 | 조선 시대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수량 / 면적 | 분묘 2基, 석물 6基, 토지 510.6㎡ |
지정연도 | 1995년 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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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 유창 묘역[5] |
현재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상일근린공원에 유창과 일가의 묘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