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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21:37:56

오이마 요시토키

오이마 요시토키[1]
大今良時
출생 1989년 3월 15일 ([age(1989-03-15)]세)
기후현 오가키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만화가
데뷔 2008년 단편 '목소리의 형태'
대표 작품 만화 ' 목소리의 형태'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생애
2.1. 목소리의 형태 관련2.2. 관련 인터뷰
3. 작품
3.1. 장편3.2. 단편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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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만화가. 목소리의 형태를 만든 작가로 유명하다.

2. 생애

1989년 3월 15일 일본 기후현 오가키시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오빠가 사온 3×3 EYES 만화책과 게임 크로노 트리거의 캐릭터들을 모작하면서 처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초·중학교 때는 복사지에 그림을 그렸고,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원고지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대표 작품인 목소리의 형태를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7년 처음 구상했다고 하며, 2008년 주간 소년 매거진에 단편 '목소리의 형태'를 투고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이때 소년 잡지의 규칙에 따라 필명을 남성풍인 '요시토키'로 정했다.

당시 목소리의 형태는 신인상까지 받을 정도로 인기가 좋아서 동년 12월에 매거진SPECIAL에 연재할 예정이었지만 청각장애인에 대한 왕따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관통하는 작품 내용 때문에 편집부의 판단으로 결국 어느 매체에도 공개되지 않은 유령 작품이 되고 만다.

그 뒤에 오이마는 2010년 우부카타 토우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마르두크 스크램블 별책 소년 매거진에 만화판으로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얻음에 따라, 별책 소년 매거진 반장의 요청으로 목소리의 형태 오리지널 버전을 2011년 2월에 공개했다. 공개 당시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진격의 거인 악의 꽃을 제치고 독자 앙케이트 인기순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했다.

2012년에 마르두크 스크램블의 코믹스판을 연재하게 되면서 프로 만화가로 데뷔한다. 당시 오이마를 담당하던 소년매거진의 편집자가 목소리의 형태를 보고 이런 작품이 연재되지 못한 게 매우 아깝다고 생각해서 코단샤의 법무팀과 변호사,소년매거진의 편집부 그리고 청각장애인 연맹을 설득했고 이후에 코단샤와 청각장애인 연맹에서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서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를 연재할 기회를 얻게 된다.

2013년 2월 목소리의 형태 단편을 주간 소년 매거진에 공개했는데 게재했던 호가 이전 호보다 6만 부가량 더 팔릴 정도로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2]

정식 연재가 된 후 목소리의 형태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날이 갈수록 인기와 판매량이 상승하고 있다. 2014년 2월말에 1과 2권의 누계 판매량이 50만 부를 넘어섰고 3월 초에는 70만 부를 돌파를 했다. 순식간에 권당 판매량 30만 부를 넘어선 인기작으로 올라서면서 부진이 지속되는 주간 소년 매거진의 든든한 신작이 되었다. 그리고 6권 발매 후 200만 부를 돌파했으며, 마지막 7권에서는 250만 부를 돌파했다.

2015년 5월 22일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시상식에서 오이마의 목소리의 형태는 신생상을 수상받았다. #
파일:오이마 요시토키-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신생상 수상.jpg
このたびは、すごい賞を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私にとって、相当大きなご褒美で、この大きなご褒美に似合うような漫画をこれから描いていけたら、と思います。
手塚先生は、私が生まれたときにはいらっしゃらなかったんですが、小学校の図書室に『ブッダ』が置いてあって、心底感動しまして、すごく夢中で読んでいた覚えがあります。私も自分がいなくなっても手塚先生のようにのこる漫画を描いていきたいです。難しいですけど、これから頑張っていきたい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이번에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큰 보상으로, 이 큰 보상에 어울릴 만한 만화를 앞으로 그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데즈카 선생님은 제가 태어났을 때는 안 계셨는데,[3] 초등학교 도서실에 붓다가 놓여 있어서 마음속으로 감동을 받아 굉장히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제가 죽은 후에도 데즈카 선생님처럼 세상에 남는 만화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어렵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이마의 수상 소감 #

2016년 9월 17일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극장판이 공개가 되었는데 최근까지 36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공개 이후 더 팔릴 것이 전망되며 상업적인 면으로도, 작품적인 면으로도 좋은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평가가 좋은 만큼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쓸어 담았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불멸의 그대에게를 연재하는 중이다.

2.1. 목소리의 형태 관련

오이마를 유명 작가로 만든 목소리의 형태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여주인공이 청각장애인이며 남주인공과는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였지만 다시 만나 친구가 되고 서로의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매우 특이한 설정과 매우 특이한 스토리로 인해 많은 이목을 받은 작품이다.[4]

그래서 목소리의 형태가 연재될 당시에 전인미답(前人未踏)[5]의 스토리 때문에 왕따 가해자의 자기 위안 판타지라고 혹평을 하는 여론이 있었다. 오이마 본인도 그걸 의식했는지, 초반부에 유즈루의 입을 통해 쇼코를 만나러 온 쇼야한테 자기 만족하려고 온 거면 돌아가란 말을 한다. 또한 몇 번이고 쇼야 본인의 독백을 통해,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왕따는 피해자에게 엄청난 트라우마이며 보통 가해자와 재회하면 트라우마가 발동해 공포감과 증오감부터 들지, 연민이나 호감을 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작중에서 쇼코는 과거 왕따 가해자인 쇼야에게 원망, 공포, 증오 등의 불쾌한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항상 다정하고 상냥한 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작품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측에서는 결국 가해자인 내가 그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해 주고, 예쁘고 착하고 순진하며 장애가 있어 내가 보호해 주어야만 하는, 즉 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장애 캐릭터 모에,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라 평하기도 한다.[6]

그러나 작품을 제대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소리의 형태에서 왕따 가해자를 옹호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쇼야는 절대로 '선한 주인공'이 아니며 작품에서도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절대로 쇼야의 행동을 옹호해주지 않는다. 왕따 가해자였던 쇼야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으며, "왕따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혀 자신이 한 짓과 똑같이 왕따를 당했고, 중학생 때는 똑같이 왕따였고, 고등학생 때까지 외톨이로 살고 있는데다가 그런 그도 자기혐오와 삶의 의미에 대해 비관하며 작중 초반 자살 시도까지 한다. 쇼야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후회하여 신체적, 정신적으로 죗값을 치르려고 하며, 결국에는 자신이 과거에 왕따시킨 피해자인 쇼코를 목숨 바쳐 구해내는데까지 성장하는 캐릭터이다.

쇼야는 자살하려는 쇼코를 목숨바쳐 구하다가 추락해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 때문에 쇼코 어머니와 유즈루는 다음날 병원에서 쇼야 어머니한테 도게자를 한다. 쇼코 어머니와 유즈루는 한때 쇼야를 몹시 증오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지금은 쇼야가 다친 것 때문에 도게자를 하며 사과한다는 것은 쇼야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7]

목소리의 형태를 왕따 가해자의 자기 위안 판타지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당신은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가 갑자기 찾아오면 용서해줄거냐?"는 말을 하는데 오이마는 이 부분에 대해 다뤘다. 바로 쇼야가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인 시마다를 만난 부분이다. 쇼야는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캐릭터로 쇼야는 자신이 괴롭힌 쇼코를 만나러 갔을 때, 쇼코가 자신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을 할 지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쇼야가 놀이공원에서 우에노에 의해 자신을 괴롭힌 시마다를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쇼야는 쇼코가 당시에 자신에게 무슨 감정을 느꼈을 지 간접적인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8] 오이마는 가해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화해하자고 하는 게 유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쇼야와 시마다의 만남 장면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위에 전술한 쇼코에 대한 평가는 쇼코라는 캐릭터를 완전히 잘못 분석한 것이다. 쇼코는 단순히 몹시 착한 성격인 게 아니라, 그저 자기혐오에 빠진 나머지 일부러 착한 이미지를 연기하는 캐릭터다. 원작에서 그렇게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인 오이마도 언급했던 이야기로, 쇼코는 우에노와의 갈등을 겪으며 '나는 내가 싫다'는 본심을 드러낸 적이 있으며, 우에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대방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억지 웃음을 지으며 연기를 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던 적도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늘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는 쇼코의 태도는 쇼코의 성격이 마냥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도피성 연기를 하는 것이다. 즉 쇼코의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성격은, 왕따 피해자에 대한 환상[9]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거듭되는 갈등 끝에 쇼코가 선택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쇼코에 대한 묘사가 애니메이션 버전보다는 낫지만 원작에서도 직접적인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은 마이너스 요소다. 애니메이션의 쇼코만 놓고 보면 상술한 쇼코의 억지 웃음과 같은 요소를 자세히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착한 게 아닌가 싶을만 하지만, 원작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무슨 천사나 성녀처럼 보이는 쇼코도 결국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쇼코는 전형적인 왕따 피해자가 아니다. 쇼코는 쇼야한테 왕따를 당했을 때 "내가 왕따를 당하는 건 이시다가 나를 말렸음에도 노래를 끝까지 불러서 반에 폐를 끼친 나의 잘못에 대한 벌이다"고 생각했다.[10] 그래서 쇼야를 향한 입버릇이 계속 "미안해"였던 것이다. 학급재판에서 쇼야가 왕따 가해자로 낙인찍혀서 이제는 왕따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쇼코가 쇼야의 책상을 닦아주던 것도 "나 때문에 이시다가 왕따를 당했다"는 죄의식에 기반한 행동이다. 즉 쇼코는 애초에 쇼야를 용서해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과거에 자신을 괴롭힌 왕따 가해자인 쇼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쇼야는 자신이 예전에 버렸던 필담노트를 돌려주고, 수화까지 배워가며 자신과 소통을 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어 그때와는 다르게 개과천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쇼야를 친구로 받아준 것이다. 쇼코는 절대,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피해자에 대한 판타지를 담은 캐릭터라서 용서해준 것이 아니다.[11] 이는 쇼코가 쇼야와는 생각이 다른, 또 다른 가해자인 우에노를 마주할 때마다 난처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것이 증명된다. 쇼코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쉽게 용서하지는 않는 성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쇼코가 쇼야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목소리의 형태를 개연성이 없는 왕따 가해자의 자기 위안 판타지라고 볼 수는 없다. 착해보이는 태도는 사실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쇼야의 경우 진심을 확인했기 때문에 용서해 준 특수한 케이스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애니메이션만 보면 뭔가 전개에 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쇼야가 과거에 쇼코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쇼야는 작품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유일한 인물이고 쇼야가 쇼코에게 한 선행도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쇼야는 쇼코와 소통을 하기 위해 수화를 배웠으며 쇼코의 무너진 인간관계를 되찾고자 노력했다. 쇼야는 다리 위 사건으로 본인의 인간관계가 파탄났는데도 관계회복보다 쇼코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고, 쇼야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도 가장 먼저 한 행동을 쇼코를 찾으러 한 것이었다. 쇼코에게 쇼야는 과거에 자신을 왕따 가해자였지만 현재는 자신을 지켜주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쇼야는 '쇼코의 행복했어야 할 과거'를 되찾을 수 없지만 '쇼코가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소통'이라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캐릭터이다.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에서 ' 사과'와 ' 용서'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다. 목소리의 형태는 회복적 정의의 모범적 사례를 다룬 작품으로 쇼야가 쇼코를 왕따시킨 가해자에서 쇼코와 친구가 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쇼코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으로까지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쇼야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 쇼코에게 사과를 하러 간 것을 시작으로 쇼코가 쇼야를 친구로 받아주고 그녀의 가족들도 쇼야를 용서해준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쇼야가 한때 자신이 괴롭혔던 쇼코를 목숨 바쳐 구한 것은 사과와 용서의 효과가 매우 극단적이면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목소리의 형태라는 작품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과해야 되는가를 표현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완결이 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목소리의 형태는 성인식 행사장에서 쇼야가 쇼코의 손을 잡은 후 동창생들이 있는 방의 문을 여는 열린 결말로 만화가 끝난다. 오이마는 이 시점에서 둘은 연애관계는 아니지만 쇼야와 쇼코가 더이상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모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결말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는데, 깔끔하게 완결날 거란 예상을 뒤엎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어, 대체적으로 아쉽다는 평이 많다. 수준급 전개와 흐름을 보여주었음에도 결말 부분에선 미적지근하게 마무리되어 아쉽다는 평. 그리고 타케우치, 카와이, 우에노, 시마다, 히로세 등 왕따에 가담한 캐릭터들 중 그 누구도 벌을 받지 않고 끝났기 때문에 더욱 그런 반응이 나온다. 이것은 오이마가 인간은 단편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기 위해서 그런 것으로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에서 '악인'으로 규정한 캐릭터는 없다고 말했다. 왕따에 가담한 캐릭터 중에 그 누구도 벌을 받지 않고 끝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오이마는 편수를 미리 예상하고 줄거리를 써나갔기 때문에, 뒷부분에서 풀어야 할 갈등이 정리가 덜 된 것은 사실이다. 독자들은 더 연재하기를 원했지만 더 끌지 않고 그 편수까지만 하겠다는 오이마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래도 예상보다 연재한 양이 좀 더 늘어나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무리해서 과거의 실타래를 풀지 않고 열린 결말로 가능성을 남겨둠으로써, 목소리의 형태답게 끝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작중에 등장하는 여성 등장인물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본 작품은 현실적 요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인공이니까 모든 것이 해결되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목소리의 형태다운 결말이라는 것. 또한 작품의 주제 자체가 과거의 관계나 권선징악, 쇼코와 쇼야의 연애 관계 등이 아닌 쇼코와 쇼야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소통하는, 두 개인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즉 연애관계, 권선징악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연애관계에 대한 더 이상의 복선이나 권선징악과 같은 묘사로 작품의 주제를 곡해할 수 있다. 그 상태에서 오히려 억지로 완결시켜 버리면 작위적인 전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열린 결말이 나은 선택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2.2. 관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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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이마 작가의 중요한 4대 요소.png
母親が手話通訳者
父親が存在しない
恋愛が主題ではない
初期案では西宮が死ぬ予定だった

어머니가 수화통역사다.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12]
연애가 주제는 아니다.
초기안에서는 니시미야가 죽을 예정이었다.
오이마 작가의 중요한 4대 요소
완결 이후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했을 때 공식팬북이 발매되었다. 이 책에서 작품의 주제와 쇼야, 쇼코의 뒷이야기에 대한 작가 오이마 요시토키의 인터뷰가 실리면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공식팬북에서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에서 왕따나 청각장애는 그저 작품의 테마를 독자들이 깨닫게 하기 위한 설정일 뿐 중심 주제는 아니라고 말했다.[13][14] 오이마는 소통의 부재로 인한 철없던 시절의 집단 따돌림과 후회, 사죄에 대한 소재를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부족한 현대 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그런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목소리의 형태의 중심 주제는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쇼코의 모델이 된 인물은 자신의 과거 친구라고 밝혔다. 그 친구는 청각장애인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자신은 그의 죽음의 충격을 받아 그 친구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목소리의 형태라는 만화를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오이마는 작품에서 부정적으로 나온 "카와이, 타케우치, 쇼코의 친가 쪽 사람들까지, 그 누구도 그들을 '악인'으로는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언행은 있지만 자신은 그때마다 그들의 입장에 공감해 가면서 그렸다고 하며, "각 캐릭터는 자기 나름의 주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대사나 태도는 그들의 마음이 거짓 없이 솔직하게 표출된 것으로 실제로 나 역시 장애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런 말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15]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를 왕따 가해자인 쇼야의 시점에서 그린 이유에 대해서는 " 스스로가 초래한 일과 똑바로 마주해야 비로소 배움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쇼코를 주인공 삼아 왕따 피해자 시점에서 어떻게 그들과 마주할 것인지 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것은 초등학생 시절 쇼야의 입장이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쇼야의 배움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주인공인 쇼코에 대해서는 스이몬 초등학교로 전학와서 쇼야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그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상대 중 한 명일 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쇼야한테 왕따를 당하고 최종적으로 싸워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자 처음에는 스이몬 초등학교에서 가장 싫은 상대로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쇼코는 자신과 싸웠던 쇼야를 적으로 여겼는데 갑자기 6년 후에 쇼야가 자신을 찾아오자 깜짝 놀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했다.[16] 쇼코는 이때 '나를 왕따시킨 이시다가 왜 나를 찾아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쇼야가 쇼코를 남들 이상으로 괴롭힌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작품이 쇼야의 시점에서 진행되어서지, 쇼코 입장에서는 이전 학교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괴롭힘을 받아왔던 만큼 쇼야는 자신을 괴롭힌 수많은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쇼코는 쇼야를 남들 이상으로 특별히 자신을 괴롭힌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쇼코는 왕따 피해자지만 무슨 일을 당해도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청각장애로 주변 사람들한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해 '다 내 잘못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가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17] 왕따를 당하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그 원인을 남이 아니라 '내가 변하지 못해서'라고 결론내리고 자신을 책망한다고 한다. 하지만 쇼코가 가지고 있는 이 가해자 의식은 작중에서는 그 누구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18]

쇼코가 자살을 결심하게 된 시점은 카와이의 폭로로 다리 위에서 쇼야의 인간관계가 파탄났을 때라고 말했다. 쇼코는 부모님의 이혼, 여동생의 왕따, 험악해진 반 분위기, 사하라의 등교거부 심지어 자신이 쇼야한테 왕따를 당한 것과 자신을 왕따시킨 쇼야가 다른 반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것까지 모두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자기혐오가 매우 심했고 오래전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쇼코가 필담 노트를 버리면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려 자살을 향한 카운트도 멈췄는데, 이를 쇼야가 가져다주면서 포기해버린 희망과 함께 상처도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쇼코는 자신을 때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쇼야를 싫어했지만 쇼야가 자신이 포기한 필담 노트를 돌려주었고 수화까지 배워가며 자신과 진심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으며 그때와는 다르게 개과천선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쇼야를 친구로 받아줬다. 그런데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에 쇼야의 인간관계가 파탄날 위기에 처하자 쇼코는 "내가 있으면 이시다가 불행해질 것이다"는 생각에 자살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뒤의 미래에 관해서는 쇼야는 이발사가 되어 어머니를 도와 일하고, 쇼코는 도쿄에서 자취를 하면서 이발사 일을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도쿄에 살고 있는 사하라, 우에노와 교류하면서 산다고 하며, 쇼야는 여전히 과거의 자신을 좋아하지는 못하고 30살이 돼도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19]

그리고 오이마는 원래 쇼코가 자살하려고 했을 때 그대로 떨어져 죽고 이에 충격을 받은 쇼야가 쇼코의 죽음을 딛고 일어나는 전개로 가려고 했으나, 편집부에서 이런 스토리로 가면 작품이 매우 어둡고 침울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해, 오이마에게 시나리오 변경을 요청해서 쇼야가 쇼코를 구해내고 자신이 대신 떨어지는 전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20][21][22][23] 그런데 오이마는 1화에서 나온 '뛰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라는 쇼야의 대사나 '저러다 나중에 죽는다, 쟤' '물에 뛰어내리는 거 있잖아, 높이 15m면 콘크리트만큼 딱딱해진다고 하더라' 같은 히로세의 대사가 모두 쇼야가 떨어지는 씬을 향한 포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초기에는 쇼코가 떨어지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전개를 구상했다"는 말과 맞게 해석해보자면 오이마는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 쇼코가 죽는 전개로 갈 생각이었는데 허락을 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쇼야가 추락해 혼수상태에 빠지는 전개를 위해. 1화에 다음과 같은 장면을 넣어서 포석을 깔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오이마는 쇼코가 추락해 죽는 전개로 가려고 했다가 편집부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쇼야가 추락해 혼수상태에 빠지는 전개로 갔다고 볼 수 있다.

오이마는 평론가 오기우에 치키와 대담을 했다. 해당 기사는 목소리의 형태가 연재 중인 2014년 6월 17일에 올라왔다. #[24]
[ 오이마 요시토키 X 오기우에 치키 대담 ]
>-서로 싫어하는 사람 사이의 연결
오기우에:만나서 반갑습니다.『목소리의 형태』는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으로 즐겨 읽고 있습니다. 특히 '왕따의 구조를 단적으로 도려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왕따 관련 묘사에서는 왕따 가해자를 단순한 악당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것은 고정적인 것도 아니고 교실 내 질서의 본연의 자세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군요. 그렇게 질서의 패턴이 바뀌면 다른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이 만화가 '왕따를 중심주제로 다룬 만화'는 아니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히로인 니시미야 쇼코를 괴롭힌 또 다른 주인공 이시다 쇼야가 새로운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는 묘사는 실제 교실 공간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소리의 형태」가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니시미야가 귀엽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갸륵하게 그려져 있다면서 "장애인이 가지고 있어야 할 인격을 상정하고 있다"는 비판이 인터넷에 일부있었습니다. 한편, 직설적으로 장애와 차별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작'이라고 주목받았죠.

저는 처음에는 그런 주장에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의 형태는 특정 등장인물 한 사람의 행동을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묘사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장애를 그렸다는 이유로 문제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장애에 대한 묘사가 일반적인 소년 만화 등과 비교해봤을 때 많다는 점에서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일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반응도 논란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닿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이마씨는 이 만화를 그리기 결정했을 때부터 그런 반향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은 했습니까?
오이마: 아니요. 뭐가 그렇게 위험한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오기우에: 연재가 되고 나서는 주인공 이시다와 니시미야의 관계성뿐만 아니라 왕따에 관련되어 있던 각각의 캐릭터의 인생이 그려져 가는군요.
오이마: 처음에는 '서로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그리려고 했을 뿐이에요. 그 둘 사이를 떠올리면 우연히 왕따가 끼어 있다. 그래서 그렸습니다. '왕따'를 팔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리고 싶었던 걸 그리기 위해서는 왕따라는 행동이, 발언이, 그때의 마음이, 필요했거든요.[25]

왕따 가해자를 단순히 나쁜 사람으로 그리는 것은 그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실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주간 소년 매거진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잖아요. 그래서 모든 캐릭터에 자신만의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자 중에는 학교 선생님도 있고 왕따를 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에 대해 해설을 요구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26]
예를 들어 담임인 타케우치 선생님은 이시다에게는 싫은 사람입니다만, 일단 한 번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책을 사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타케우치 선생님에게는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등을 제가 알고 난 후에 그렸습니다.
오기우에: 그렇군요. 책이나 영화 같은 자료는 참고하시는 건가요?
오이마: 네. 많이 참고합니다. 원래는 가족이라든가 친구라든가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사용하려고 의식해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것을 의지해서 그려내면 저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르는 상태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관련된 책, 관심 있는 책을 읽곤 했습니다.
왕따와 관련된 책이라면, 연재 전에 「 이지메의 구조[27]를 읽었습니다. 최근에는 'Bully'라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NHK에서 방송하는 걸 좀 봤는데요.
오기우에: ' Bully'는 미국 아이들 사이의 왕따에 대한 영화죠. 제가 대표를 맡고 있는 「NPO법인·스톱 왕따 네비」에서, 감독 허쉬씨의 강연을 세팅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들이 만든 프로젝트의 일본판으로서 제휴하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작품은 교재로도 이용 가능합니다만, 왕따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더군요. 물론 스쿨버스 내 괴롭힘이나 총으로 보복하는 사건 등 다른 점도 있지만, 일본의 괴롭힘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가받고 싶은 것은 거기가 아니야
오기우에: 본인은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
오이마: 제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끔찍한 일은 겪지 않았군요. 욕 정도라면 들어서 싫은 기분이 들었지만, 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어쩔 수 없다고나 할까... 마음속에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남긴 채로 성장해 졸업하고, 별다른 화해의 교환도 없이 그 아이들과 평소의 관계로 돌아갔죠. 친한 친구들이라 말하거나 하는 것 자체가 흔해서 특별한 이벤트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런 것보다 싫은 놈이나 적에게 의식이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기우에: 학교관도 물어보고 싶은데 학교는 좋아했나요?
오이마: 초중학교때는 수업이 싫었습니다. 이거 하는 동안에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데. 공부도, 점수나 숫자에만 반영되는 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 평가받는 것도 싫었습니다. 제가 평가받고 싶은 곳은 거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네요.
아무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것만은 유난히 즐겁고. 지금 생각하면 가정환경도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방도 너무 지저분해서 교과서를 펼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제가 어지럽히고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요.
오기우에: 취향이 뚜렷했군요. 청소할 시간은 없었어요?
오이마: 청소해도 청소해도 더러운 집이더군요(웃음). 그리고 당시의 집은 굉장히 좁고 물건도 많았거든요. 만화 같은 건 현관 밖으로 삐져나오기까지 했고요. 의식이 산만한 가운데 그림만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평가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이었던 선생님
오기우에: 선생님은 어땠어요?
오이마: 초등학교 때 열렬한 선생님이 계셔서 굉장히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전에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특별히 싫어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선생님의 그 뜨거운 느낌이 기분이 좋았고. 뜨겁다는 건 그만큼 많이 혼낸다는 거니까 꼬투리 잡히거나 한 사람 중에는 선생님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그래도 전에 있던 선생님과 비교하자면 나았을 정도예요. 예전 선생님이 너무 싫었어요. 어렸을 때의 저는 그 선생님을 '전 왕따 가해자'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군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다니"라는 말을 이웃 아주머니한테 듣고 있었고, "너 같은 거 싫어!"라고 생각하며 계속 버티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왕따 가해자나 피해자에 대해서 옛날보다 더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선생님에 대해서도 그냥 '싫다'는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다만 당시에는 여러 가지 노골적인 괴롭힘도 있었습니다. 교실 게시판에 이번 달에 뭐를 열심히 할지 종이에 써서 붙였는데 저만 영원히 칭찬을 못 받거나.

오기우에: 딱히 이상한 걸 썼던 건 아니죠?
오이마: 그래요. 저만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계속 물어보셔서 결국 못 붙였어요. 나중에 다른 애들과 비교해봐도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귀여운 아이를 편애하고 있었어요. A라는 귀여운 친구가 있었는데 저를 부를 때는 '오이마!'라고 부르는데, 그 친구는 'A'라고 부르고.[28] 사생 시간에 A와 함께 그리다가 "A짱한테만 특별히 그리는 요령을 알려줄게. 줄기는 말이야, 가운데를 좀 진하게 하면 진짜 같아진다니까? 비밀이야?"라는 말을 하곤 했죠.
오기우에: 우와, 그거 참 기분이 나빴겠네요. 옆에 있는데 투명인간 취급을 하다니.
오이마: 그래요. A가 반 리더격인 애한테 미움을 받고 있어서 'A가 아저씨랑 한 것 같다'는 나쁜 소문이 돌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선생님이 저랑 A한테 와서 'A짱, 너 안 좋은 소문이 도는 거 알아? 아저씨랑 뭐 했다고 들었어?'라고 직접 A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오기우에: 아, 그 아이의 입으로 직접 말하게 했군요.
오이마: 네. "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A가 대답했더니 "아,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싫어했죠.
오기우에: 그 선생님은 '적'이었습니까?
오이마: 네.'적'이었습니다. 근데 저만 그랬던 것 같아요. 잘생겨서 학부모들한테는 평판이 좋았고 다른 애들도 그렇게 싫어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어른들이 도와줄 수 있도록 그리고 싶지 않다
오기우에: 반대로 학교생활때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나요?
오이마: 초등학교 때는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는 선생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교실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 같은 과묵한 사람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보고만 있을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발언력이 있는 사람이 선악을 결정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선생님이 생기더라고요. 쫀득쫀득한 느낌의 남자 선생님이고요. 제 이야기를 잘 들어줬어요. 어쨌든 공부를 싫어해서 숙제를 안 하는 시기도 있었는데, 그 대신 하던 일을 잘 봐주는 사람이었어요.어른 입장에서 보면 만화 같은 것은 취미라고 정리되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것밖에 열중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런 얘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얘기를 들어주고 소감도 써줬어요'같은 일이 있었죠. 참 즐거웠네요.

오기우에:'목소리의 형태'로 생각한 것은 교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것이군요. 부모는 자식을 지키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선생님은 무관심하거나 선의는 있지만 영향력이 낮아서 관계를 개선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악화시키는 계기를 주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29] 교실 내 질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흔히 '아이는 선악을 구분하지 못해서 왕따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반 사회에서는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숨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소요소에서 어른을 힐끗 보고 있죠. 어느 정도까지가 안전하고, 어디서부터가 위험한지를 확인하는 것이군요.

선생님이 무관심하거나 쓸데없는 한마디를 함으로써 왕따가 더 심화되고 맙니다. 그게 아니라면 선생님이 특정 학생을 놀리는 등 낙인을 찍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왕따 발생 확률을 높이는 스트레스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신고 수단을 계몽해 두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방임하게 되죠. 오이마 씨 자신은 어렸을 때 교사의 역할에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군요.

오이마: 네. 안 했어요. 학생의 인원수가 많은 것도 알고 있고, 여러가지 힘든 것도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관심도 전해져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무관심에는 무관심으로 돌려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였기 때문에 선생님을 배려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구해 줄 만한 것을 그리는 것은 그만두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야말로 구원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이 도와주는 것처럼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상담할 수 없고 잘못하면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힘든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도와주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그리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강요하는 깨끗한 일[30]
오기우에: 같은 나이, 같은 지역에서 태어났을 뿐 전혀 다른 사람끼리 함께 모이는 장소가 교실 공간이지요.
오이마: 재밌죠. 싫지는 않아요.
오기우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하면서, 무리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는 스킬을 몸에 익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에게 "모두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합니다. 그게 더 관리하기 편하니까요. 목소리의 형태 1권에는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애서 일어나는 묘한 판타지가 응축되어 있어 가슴이 도려지면서 아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이마: 저는 저런 예쁜 말이 좋아해요. 예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지니 외로워지네요.
-완벽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분하다
오기우에: 원작이 있는 전작 마르두크 스크램블과 이번 작품은 그릴 때 느낌이 다르죠?
오이마: 다릅니다. 둘 다 즐거워요. 마르두크 스크램블은 소설 속에 모티브가 많이 나와 있어서 거기를 참고하면서 그릴 수 있어서 그리기 쉬웠어요. 그런데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주인공인 여자아이에게는 독백이 없고, 하는 말이 '~야?'처럼 질문이나 의문뿐이니까 인격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제가 그린 마르두크 스르램블이 완벽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오기우에: 자신감은 별로 없었나요?
오이마: 이제 자신감이 없지 않아요. 어떤 장면이든 '여기를 왜 이렇게 그렸죠?'라고 물어보면 일일이 해설해줄 수 있습니다. 그게 재미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재미없어요"라고 말하면,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밖에 없지요.
오기우에: 목소리의 형태도 그렇지만, 오이마 씨의 그림은 캐릭터 간의 원근감 때문에 그 관계성을 한 컷으로 설명하는 절묘함이 있지요."이 구도나 앵글 밖에 그릴 수 없겠지"라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이런 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건가요?
오이마: 음, 모르겠어요. 편집자님께 받은 조언은 항상 떠올리며 그리고 있네요. 장면을 전환했을 때는 가급적 내려다보는 구도로 그리거나, 띄엄띄엄 대충 읽는 독자도 있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겼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왼쪽 상단에는 화려한 그림이나 좋은 그림을 가져간다든가.
오기우에: 상당히 기술적인 면을 의식하고 있군요.
오이마: 그건 가능할수록 좋겠네요.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될 때도 있는데요.
오기우에: 주간이면 바로 마감이 다가오죠. 무한히 다시 그릴 수 없습니다. 어디선가 타협을 해야겠죠.
오이마: 완벽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분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오기우에: 오이마 씨에게 완벽하다는 것은 어떤 이미지입니까?
오이마: 마음에 안드는 부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제로인 상태입니다. 진짜 이 표정이나 대사가 맞는지. 스스로 의문에 답할 수 없으면 안되겠네요.
오기우에: 모든 것이 치밀하게 구성되었다고 자신이 확신할 수 있었을 때를 말하는 거죠?
오이마: 그렇죠. 그게 안 됐을 때는 작화가 무너지고 있어요. 캐릭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오기우에: 완벽하다는 것은 다른 만화가들도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다른 분의 작품은 읽으시나요?
오이마: 만화는 잘 안 봐요. 매거진도. 아니, 매거진은 재밌어요(웃음). 하지만 "끌리면 안 돼. 내가 좋아하는 걸 잃어버려서는 안 돼. 위험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읽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 이미지가 달아날지도 모른다고요.

다만 제 만화와는 거리가 먼 개그 만화나 에로 만화는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상 작품이라든가.
-안티댓글로 성장하다
오기우에: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논란이 되고 있잖아요. 2ch 스레드나 댓글은 보고있나요?
오이마: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글을 쓴 사람도 저한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을까요. 화제가 되는 것 자체는 기쁘지만 독자의 한 고찰이 어느새 '공식'이 되는 현상은 싫습니다.
오기우에: 그건 어떤 만화든, 영화든 소설이든 다 마찬가지죠. 독자에게는 해석의 자유가 있지만, 배신을 하지 않은 채 작가의 심정을 결정짓는 것은 역시 싫네요. 그러한 글을 볼 때는 작품에 반영하지 않도록 의식하는 겁니까?
오이마: 제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그릴 수도 있고, 반대로 이끌릴 수도 있습니다. 저보다 글을 더 잘 써주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쁩니다. 근데 마음에 남는 건 안티 쪽이거든요.
오기우에: 아, 압니다(웃음). 100개의 좋아요보다도 한 개의 싫어요가 더 신경이 쓰이고, 은근히 참고가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오이마: 그러니까요. 극찬 댓글보다 안티 쪽이 감정이 더 전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오이마 만화가는 청각장애인이 재밌다고 생각해서 만화로 만든 거야"같은 글들에 대해서는 내가 왜 썼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글을 볼 때마다 이 만화를 그리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오기우에: 그 독자들에게 "장애는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작품에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양한 반응에 어떻게 대처할 겁니까?
오이마: 그렇군요.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듭니다(웃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가 좋아
오기우에: 2권 이후로 초등학교 시절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단편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던 초등학교 이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와 타협해 나가는 이야기로 나아갈지, 연애물로 읽을 수 있는 만화가 될지 궁금합니다.
오이마: 음, 저도 고민하면서 그리고 있어요. 주인공과 함께 생활하는 느낌이라 본연의 모습을 아직 전혀 알 수가 없네요.
오기우에: 그리기 시작한 단계에서 결말은 예상하고 그리는 겁니까?
오이마: 왠지 모르게 보여요. 그냥 독자들이 만족해할지 솔직히 모르기 때문에 반응을 보면서 바꿀 수도 있습니다.[A]
오기우에: 반대로 그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있는 거죠?
오이마: 네, 정한 게 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말할 수 없지만, "화해하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다"와 같은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화해할 수 있다면 할 수 있고 멋진 일이지만, 할 수 없을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 구원은 있는 지를 그리고 싶습니다.
오기우에: 아, 그건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입체적인 묘사로 진행되어 왔는데, 예를 들면 "이시다와 니시미야가 연인이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짱짱" 이렇게 그린 경우, 지금까지 그려져 온 절묘한 거리감이, 연애의 성취라고 하는 골을 위한 프로세스, 배경에 지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할 위험성이 있죠.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독자도 있는 가운데, 매우 부담을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웃음).
오이마: 맞아요. 로맨스 만화로 그리면 순조로울 것 같아요(웃음). 역시 알기 쉬운 것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랑 누가 붙을까 생각하면서 읽는 건 재미있기 마련이죠. 그냥 그런 얘기가 아니라고 보여주려고요. 독자를 위한 서비스신도 넣기는 합니다만...
오기우에:그 부분은 매체에 따라 제약 조건이 다른 것 같습니다. 월간지, 청년지, 주간지 각각 그릴 수 있는 것이 다르죠. 주간 소년 매거진이기 때문에 그릴 수 있는 것과 그릴 수 없는 것이 있겠죠.
오이마: 저는 디즈니 지브리 같은 아이들이 보는 작품이 좋아요. 존경하고 진짜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저기를 목표로 하고 있으면 능숙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기우에: 아이를 독자로서 상정하면서 제약이 있을 텐데 어떻게 결말을 맺을 건가요?
오이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개운치 않은 상황이 가장 고통스럽기 때문에 거기에 구원을 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구원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릅니다만.
오기우에: 또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요?
오이마: ' 미스 리틀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좋아해요. 그 영화에서 반은 배웠을 정도죠.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거든요. 싸움과 트러블뿐인 가족으로 할아버지가 죽거나 꿈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하는 것입니다.
오기우에: 멋진 로드 무비죠? 여행을 통한 화해, 있어야 할 형태로의 회귀 이런 결말을 잘 피하고 있죠. 여행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지만, 그래도 차는 나아간다, 이렇죠.
오이마: 달성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는 것도 있고. 그리지 않음으로써 들뜨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표현되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 가족은 앞으로도 평소처럼 싸우고 있겠지, 라고.
오기우에: 그래도 이야기는 끝나갑니다. "계속 보고 싶다"와 "결말이 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연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역시 엔딩의 형태는... 고민되겠네요.
오이마: 엔딩을 다 그리면, "이건 엔딩이 아니야!"라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A]
오기우에: " 연재 중단된 거 아니야?!" 라든가(웃음).
오이마: 소화불량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네요.[33] 그건 좀 싫어요 .무섭네요...
오기우에: 어떻게 그리실지 기대하면서 지금의 고등학생이 된 등장인물이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되어 갈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이마 요시토키 X 오기우에 치키 대담

오이마는 배우 아리무라 카스미하고도 대담을 했는데 이게 6권에 실렸다. 일본에서는 주간 소년 매거진 2014년 7호에 게재되었다.
[ 오이마 요시토키 X 아리무라 카스미 대담 ]
>-이번 대담을 앞두고 아리무라 씨는 <목소리의 형태> 2권도 읽어주셨는데요. 우선 <목소리의 형태> 전체에 대한 감상부터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아리무라: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오이마: 물론이죠.
아리무라: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괴롭힘을 가하던 쪽이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되어 책상에 낙서가 적히고, 공책은 내팽겨쳐지는 게, 반 아이들이나 가족들이나 다 각자의 입장이 있어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고뇌같은 것이 전혀져 왔어요.
오이마: 감사합니다. 굉장히 꼼꼼히 읽어주셔서 놀랐습니다.
아리무라: 저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더군요. 왕따라고 할 정도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현실에서도 로테이션으로 왕따가 돌고 돕니다"(아리무라)
오이마 : 아리무라 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요?
아리무라: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걸쳐 무시당하거나 욕을 듣곤 했어요.
'까불지 마'라든가. 남자애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뒤에서 험담을 했죠.
하지만 쭉 계속된 건 아니고. 리더 격인 애의 의향에 따라 로테이션으로 돌아갔죠.
오이마 : 차례가 돌고 돈다?
아리무라 : 예. <목소리의 형태>를 읽고 눈치챈 것은 정말 일어날 법한 상황이 잔뜩 나온다는 거예요.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이지 망설이게 하는 장면이 많더군요. 스토리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시는 건가요?
오이마 : 예. 보고 들은 '사실'이 근간에 깔려 있죠. 그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스토리를 확장해 나가고 있어요. 작품에서는 종종 극단적인 방향으로 스토리가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그대로는 아니지만요.
아리무라 : 보고도 못 본 척한다거나 자기 입장에 따라 왕따의 표적을 바꾸는 반 아이들···. 굉장히 실감 나서 흥미롭더라고요.
"왕따를 둘러싼 '마음'의 변화를 그려야."(오이마)
오이마 : 작중 등장하는 인물 중에 좋아하는 캐릭터. 싫어하는 캐릭터는 따로 있으신지?
아리무라 : 2권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친구 나가츠카가 좋아요. '친구의 정의라는 게 뭔지 알아?'라는 질문에 멋진 말을 남기잖아요.
그렇게 낙관적인 사람이 주변에 한 명만 있어도 굉장히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들어요.
오이마 : 껄끄려운 캐릭터는?
아리무라: 마음에 걸리는 건 손바닥을 뒤집듯이 이시다를 왕따한 옛 친구들이요. 걔네가 그대로 자랐다면 하고 생각하니 좀 기분이 안 좋네요.
오이마: 조만간 '현재'의 그 아이들 역시 그릴 생각입니다. 한 왕따를 둘러싼 여러 '마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그려나가겠다는 느낌으로 말이죠.
아리무라: 작중 쇼코는 어떤 일을 당해도 화내지 않더라고요. 못된 짓을 당해도 자기 쪽에서 다가가려 해요. 그 모습이 참 가슴이 아픈 게···.
오이마 : 좀 수수께끼 같은 아이죠.
아리무라 : 후후. 그러게요. 미스터리하네요. 당당하고 발끈하지 않는 게 보기 좋진 하지만 사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하고 상상하게 돼요. 이건 그냥 제 희망사항이지만 쇼코는 그리 쉽게 화를 내지 않았으면···.
"쇼코의 상냥함이 표정으로 느껴집니다."(아리무라)
아리무라: 다만 평소 화를 내지 않는 만큼 막상 화가 나면 그 심각함이 더욱 극명하게 전달되는 면은 있겠죠?
오이마 : 끄덕(몸짓)
아리무라: 그 정도로 못된 일은 당한 적 없지만 경험자로서는 눈빛이나 입가의 각도를 통해서 상냥함이 배어 나와 굉장히 공감이 가요. '저런 표정이 나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라든가. 언젠가 '니시미야 쇼코'를 연기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도 했고요.
오이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깊이 읽어주시다니 오히려 쑥스럽군요(웃음).
-그러고 보니 아리무라 씨는 이번 달 시작하는 만화 원작 드라마 < 실연 쇼콜라티에>에도 출연하시죠.
아리무라 : 원작이 있는 작품인 관계로 원작의 테이스트에서 벗어나지 않게 연기하고자 해요. 원작자 선생님은 물론, 그 작품의 팬 여러분도 계신 만큼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오이마 : 원작이 있는 작품 특유의 어려움도 있죠? 뭘 해도 비교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리무라 : 사전에 각본이나 원작을 따라 연기 플랜을 짠다 해도 현장에 가보면 세트장이 상상과 조금 다르거나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상상과 다르거나 할 때가 있죠. 그럴 때는 가능한 한 현장의 감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답니다.
오이마 : 알 것 같군요. 저도 콘티 단계와 펜 선 작업 단계에서 위화감이 생기면 그 감각에 따라 재고하거나 다시 그릴 때도 있으니까요.
-목소리의 형태도 단편으로 게재되었던 것을 리메이크해 연재 시 또 다시 그려낸거지요.
오이마 :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지금은 덕분에 오히려 최적의 형태로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편을 지지해주신 독자 여러분 덕분이지요. 덕분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제가 느끼는 바를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었답니다.
아리무라 : 연기에서도, 작품 창작에서도, '왕따'를 포함한 인간관계에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느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네요.
목소리의 형태 6권 오이마 요시토키 X 아리무라 카스미 대담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감독인 야마다 나오코에게 원작자로서 "목소리의 형태는 이시다 쇼야의 이야기"라는 조언을 해줬다. # 이것에 대해 야마다 나오코는 쇼야를 주인공으로 이해해서 쇼야를 중심으로 제대로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의 애니메이션 더빙을 한 날의 휴식시간에 카와이의 성우인 한 메구미를 찾아와서 "카와이는 정말 좋은 아이예요"라고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34]

3. 작품

3.1. 장편

연재 년도 연재지 제목 비고
2008년 ~ 2012년 별책 소년 매거진 마르두크 스크램블
2013년 ~ 2014년 주간 소년 매거진 목소리의 형태
2016년 ~ 연재 중 주간 소년 매거진 불멸의 그대에게

3.2. 단편

4. 기타

Q14)오이마 선생님에게 친구의 정의는?
오이마: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제가 친구로 여기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친구, 랄까요. <목소리의 형태>에 나오는 캐릭터로 예를 들면 저는 나가츠카 타입일 겁니다. 아마도 '얘라면 내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사람을 골라 '호감을 가지고' 그와 동시에 '나도 상대의 호감을 사 반드시 친구가 될 거야'라는 식으로 의식하겠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과자를 주거나 뭐 그렇게 하면서. 그런 점도 나가츠카와 비슷할지도···(웃음). '친구란 이래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의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목소리의 형태 공식팬북 136페이지
Q32)쇼야가 '좋아해'를 '달'로 잘못 들은 대목은 사랑 고백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고 하는 나츠메 소세키의 에피소드를 의식한 겁니까?
오이마: 그릴 당시 나츠메 소세키의 에피소드는 전혀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어느 독자 분의 피드백을 접하고 '그런 줄은 몰랐는데, 굉장하다!'라고 생각한 정도입니다. 영어 번역판에도 이 씬은 나츠메 소세키의 에피소드와 연관이 있다는 식의 해설이 딸려 있던데, 정작 작가인 저 자신은 거기까지는 생각한 게 아니다보니 어쩐지 죄송스럽더군요(웃음).
목소리의 형태 공식팬북 141 페이지


[1] 필명인 '요시토키'는 배틀로얄의 등장인물인 쿠니노부 요시토키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2] 참고로 이 리메이크 단편을 게재하면서 주간 소년 매거진의 편집자가 "사지 않아도 좋으니 모든 사람이 읽어 주길 바라는 좋은 만화입니다."라고 할 정도로 극찬을 했다. [3] 데즈카 오사무 1989년 2월 9일에 사망했고, 오이마는 1989년 3월 15일에 태어났다. [4] 목소리의 형태에서 두 주인공이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라는 설정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중요치않다. 이 만화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이 아니라 주인공인 이시다 쇼야 니시미야 쇼코를 비롯한 각각의 캐릭터들 개인의 시점에서 봐야 한다.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작품을 보는 것은 첫 단추를 완전히 잘못 끼우는 것으로 그렇게 본다면 이 만화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5] 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음. [6] 참고로 혹자는 목소리의 형태를 인스피레이션 포르노, 장애인 학대 포르노라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7] 쇼야가 두 사람에게 용서할 수 없는 왕따 가해자에서 가족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으로 변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27일이었다. 이 장면은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8] 당시에 쇼코는 쇼야를 으로 여겼기 때문에 쇼야가 자신을 찾아오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도망쳤다. 물론 쇼코는 쇼야와는 달리 쇼야가 넘어진 것을 보고 다시 쇼야한테 와서 쇼야의 손바닥에 "어째서?"라고 손가락으로 적으며 물었고 쇼야를 직접 일으켜세워주기까지 했다. [9] 뭐든지 용서해 주고 받아주는 사람 [10] 만화에서는 쇼코가 정말로 노래를 못 불렀기 때문에 쇼야가 필담노트에 "넌 노래 부르는 척만 해"라면서 정말 쇼코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쇼코는 합창 콩쿠르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고 그 결과 합창 콩쿠르는 망했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쇼코를 미워하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쇼야는 쇼코가 반에 큰 폐를 끼쳐서 평범한 일상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학급을 괴롭히는 것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본인이 앞장서서 학급을 지키려 한다는 이유로 쇼코를 괴롭힌 것이다. 이 장면은 소통없이 일방적 공격하는건 잘못된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전부 삭제되는 바람에 쇼코가 무슨 천사나 성녀처럼 보이게 되었다. [11] 오이마는 공식 팬북에서 쇼코는 쇼야한테 왕따를 당하고 쇼야와 싸워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자 쇼코에게 쇼야는 스이몬 초등학교에서 가장 싫은 상대로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쇼코는 자신을 때렸던 쇼야를 으로 여겼는데 갑자기 6년 후에 쇼야가 자신을 찾아오자 깜짝 놀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했다. 오이마는 이때 쇼코가 '나를 왕따시킨 이시다가 왜 나를 찾아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2] 목소리의 형태의 주인공인 쇼야나 쇼코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이마 본인에 대한 이야기다. 오이마는 편모가정에서 자랐다. [13] 이 작품의 주인공인 쇼야와 쇼코가 전형적인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쇼야처럼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가해자는 매우 드물고, 쇼코처럼 피해자인 자신을 오히려 가해자로 여기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만약 왕따가 중심 주제였다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전형적인 인물로 그렸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이 작품에서 왕따는 그저 설정일 뿐 중심 주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작품의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4] 목소리의 형태에서 등장하는 청각장애인은 오직 여주인공인 니시미야 쇼코 단 한 명 뿐이다.만약 청각장애가 중심 주제였다면 쇼코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청각장애인으로 나왔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청각장애는 중심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5] 이로써 목소리의 형태는 악역이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목소리의 형태의 중심 주제는 소통이지 권선징악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인 오이마가 '악인'으로 규정한 캐릭터는 없다. 타케우치, 카와이, 우에노, 시마다, 히로세 등 왕따에 가담한 캐릭터 중에 그 누구도 벌을 받지 않고 끝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16] 쇼코는 초등학생 때 쇼야한테 왕따를 당한 건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쇼야와 싸워서 전학가게 되었으니 쇼야에게 싫은 감정이 있는 건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17] 그 무엇보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쇼코는 쇼야한테 왕따를 당했을 때 "내가 왕따를 당하는 건 이시다가 나를 말렸음에도 노래를 끝까지 불렀던 나의 잘못에 대한 벌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쇼야를 향한 입버릇이 계속 "미안해"였던 것이다. 학급재판에서 쇼야가 왕따 가해자로 낙인찍혀서 이제는 왕따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쇼코가 쇼야의 책상을 닦아주던 것도 "나 때문에 이시다가 왕따를 당했다"는 죄의식에 기반한 행동이다. 즉 쇼코는 애초에 쇼야를 용서를 해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과거에 자신을 괴롭힌 왕따 가해자였던 쇼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쇼코가 스스로를 가해자로 여기는 묘사가 완전히 삭제되는 바람에 쇼코가 무슨 천사나 성녀처럼 보이게 되었다. [18] 작품이 쇼코의 시점으로 전개되지 않는 이유는 만약 쇼코의 시점에서 전개된다면 쇼코가 가지고 있는 '가해자 의식'이 바로 드러나버리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석하는 재미가 사라진다는 문제가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오이마는 쇼코의 시점을 피하기 위해서 유즈루의 카메라나 편지 같은 것을 사용했으며 유즈루을 등장시킨 근본적인 이유도 쇼코의 시점을 피하기 위해서다.(자세한 설명은 이 문서에 나온다.) 실제로 작중에서 쇼코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51화와 52화밖에 없다. 그마저도 쇼코의 상상이나 악몽,회상만 나올 뿐 초등학교 시절에 가해자 의식을 가졌다는 독백은 전혀 없다. [19] 그럴 만도 한게 쇼야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과거에 자신의 손으로 상처입힌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죄책감과 죄악감를 가지면서 사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20] 43화에서 쇼야는 쇼코를 구하고 아파트에서 떨어졌는데 아래가 하천이라서 살았다. 연재 당시에 "아파트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바로 밑이 하천이냐?"면서 억지전개라는 반응이 많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면 원래는 여기서 쇼코가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죽는 전개로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집부에서 쇼코가 죽는 시나리오는 안된다고 해서 쇼야가 대신 떨어지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작가인 오이마 본인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땅으로 떨어지면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떨어진 곳이 다행히 하천이라서 살았다고 해야 하는 게 더 현실성에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오이마 본인도 이 세상에 바로 옆에 하천이 있는 아파트는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쇼야가 죽으면 안되기 때문에 아파트 옆에 하천이 있었다는 만화적 허용을 넣어서 이런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생긴 것이다. 오이마는 쇼코가 사는 아파트가 어느 아파트인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오가키시청이 있는 자리로 나온다. 그런데 오가키 시청은 하천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하천으로 떨어질 수 없다. 즉 현실이었다면 쇼야는 하천이 아니라 땅으로 떨어져 죽었어야 했다. # [21] 오이마가 시나리오를 변경한 시점은 43화를 그리기 전으로 추측된다. # # 41화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불꽃놀이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시마다는 알바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알바 도중에 도망치고 히로세랑 같이 쇼야를 쫓아갔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부분과 히로세가 여자친구와 같이 데이트 중인데 여자친구를 내버려두고 시마다랑 같이 쇼야를 쫓아갔다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부분, 그리고 우에노는 가족들과 같이 축제현장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쇼야가 아파트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축제현장에서 가족들과 같이 있을 때가 아니라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 전해 들었다. 그리고 43화에서 병원에서 쇼야 어머니가 오열하는 장면에서 마리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쇼야의 누나만 있고 마리아는 없는 명백한 오류 등 총 5가지의 이상한 점이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 [22] 오이마가 왜 원래는 쇼코가 죽는 스토리로 가려고 했는 지에 관해서 이런 해석이 있다. # 오이마는 목소리의 형태라는 작품이 '왕따'나 '용서'가 아니라 '소통'이 중심주제라고 했기 때문에 그 소통에 방해되는 인물을 죽이려 했는데 그 인물은 바로 쇼코였다는 것이다. 쇼야는 다리 위 사건으로 본인의 인간관계가 파탄났는데도 관계회복이 아니라 쇼코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유즈루는 어릴 때부터 언니인 쇼코만 생각하면서 학교도 안 가고 친구도 없이 지냈다. 쇼코라는 인물 자체가 쇼야와 유즈루가 세상과 소통하고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이마는 쇼야와 유즈루의 성장과 소통을 위해서는 쇼코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해석이다. [23] 전술했듯이 오이마는 여주인공인 쇼코의 모델이 된 인물은 자신의 과거 친구라고 밝혔다. 그 친구는 청각장애인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자신은 그의 죽음의 충격을 받아 그 친구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목소리의 형태라는 만화를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오이마가 원래는 쇼코가 죽는 전개로 진행하려고 한 작품 외적인 이유는 쇼코의 모델이 된 인물이 실제로 자살을 했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4] 당시는 40화까지 나왔고 41화를 그리기 전 시점이었다. [25] 이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왕따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적이고, 지속적인(영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왕따라는 소재밖에 쓸 수 없었다는 말이다. [26] 오이마는 모든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전술했듯이 목소리의 형태에서 악역으로 규정한 캐릭터는 없다. [27] 모리구치 아키라 지음 [28] 선생님은 오이마의 친구를 '이름+짱'으로 불렀다. 요비스테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선생님이 대놓고 오이마의 친구를 편애한 것이다. [29] 전자는 타케우치, 후자는 키타를 말하는 것이다. [30] 원문은 "キレイごと"로 "내용은 어떻든 겉치레만은 좋은 것"이라는 뜻이다. [A] 이때는 41화를 그리기 전으로 이 시점에서 오이마는 쇼코가 죽는 전개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편집부의 요청으로 시나리오가 변경된다. [A] [33] 답답하다는 뜻으로 일본에서는 '소화불량'으로 비유한다. [34] 카와이의 성우인 한 메구미는 카와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망설임이 있었는데 감독인 야마다 나오코가 카와이라는 캐릭터의 키워드를 ' 성녀'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를 해석해보자면 작중에서 카와이는 친구들이 쇼코를 싫어한다는 움직임이 커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쇼코에게 늘 친절히 대해줬다. 우에노처럼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한다거나 쇼야처럼 직접적으로 괴롭힌 적이 없고, 언제나 하면 안 되는 일에 먼저 나서서 표현했다. 그래서 쇼야가 너도 쇼코를 괴롭힌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카와이가 억울해했던 건 카와이는 정말로 쇼코를 괴롭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와이는 야마다 나오코가 한 메구미한테 지시한 키워드처럼 하면 안 되는 일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녀'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35] 별책 소년 매거진 연재 [36] 주간 소년 매거진 연재 [37] 일본어 위키백과에도 가족으로는 어머니와 언니, 오빠가 있다고만 나오고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 [38] 목소리의 형태 공식팬북에서 이것은 목소리의 형태의 캐릭터인 카와이 미키의 이름을 정하는 것에 영향을 줬다고 나온다. 여기서 오이마는 카와이가 목소리의 형태에서 제일가는 비호감 캐릭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39] 오이마 본인도 이마가 드러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