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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민

껌옹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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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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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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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2.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2005 2006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5번}}}
이상혁
(1996)
오상민
(1997~1998)
결번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4번}}}
유현승
(1994~1998)
오상민
(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34번
팀 창단 오상민
(2000~2001)
이용훈
(2002~200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4번
이용훈
(2000~2001)
오상민
(2002~2007)
최형우
(2008~2016)
LG 트윈스 등번호 36번
이성열
(2003~2008. 6. 2.)
오상민
(2008. 6. 10.~2011. 4. 25.)
송신영
(2011. 8. 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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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ge/109/2009/09/16/200909162130161101_1.jpg
오상민
吳相敏 | Oh Sang-Min
출생 1974년 10월 20일 ([age(1974-10-20)]세)
전라남도 고흥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군산초등학교 (졸업)
군산중학교 (졸업)
군산상업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 / 학사)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7년 1차 지명 (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7~1999)
SK 와이번스 (2000~2001)
삼성 라이온즈 (2002~2007)
LG 트윈스 (2008~2011)
등장곡 안진경 - 〈못된 사람〉[1]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논란 및 사건사고5. 박명환야구TV 출연6. 연도별 주요 성적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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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 선수.

별명은 껌옹. 항상 껌을 씹고 있다 하여 붙은 별명이다.[2] 어떤 야갤러가 직접 오상민에게 '무슨 껌 씹나'라고 물어봤더니 '와우껌을 씹는다' 라고 정말로 대답한 적이 있다.[3] 치명적인 유혹의 '껌므파탈'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껌옹이 제일 많이 쓰인다. 여담이지만 껌 씹는 걸 해보라고 한 사람이 김성근 감독이라고 한다.

2. 선수 경력

파일:/image/295/2010/01/10/8.jpg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4]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1073123152824822_481.jpg
SK 와이번스 시절.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군산초등학교, 군산중학교, 군산상업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 그는 입단했을 당시 재능으로는 역대 좌완투수 중 최강이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로 유망주였다.

군산상업고등학교 시절 199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타율왕 출신이었으나 타자들 방망이 부러뜨리는 재미를 느껴 투수로 진로를 택했다.

하지만 너무 재능만 가지고 야구를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5] 1997년 데뷔 때부터 줄곧 중간계투로 등판하였으며, SK 와이번스로 바뀐 후에도 2001년까지 4년 간 60경기 이상을 출전하는 철완을 과시했다. 특히 당시 SK 감독이 투수들 팔 갈아넣기로 소문난 강병철이었다.[6] 2년 동안 불펜으로 100이닝을 넘게 먹었음에도 10년이나 더 살아남았는데, 2001년에는 놀랍게도 규정이닝을 채우면서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했고,[7] 선발 투수로도 간간히 등판하기도 했다.[8] 어쨌건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전체적으로 훌륭한 중간계투였지만 특히 LG 트윈스만 만나면 그야말로 최종병기 수준. 좌타 위주의 LG 타선을 매우 훌륭히 공략했던 투수. 당시엔 LG 팬들은 오상민이라면 학을 뗐다.

여담으로, 문학 야구장을 홈으로 써 본 적이 없다. SK는 2002시즌부터 홈 구장으로 문학구장을 쓰고 있는데, 오상민은 숭의야구장이 홈 구장이던 2001년까지 SK에서 뛰고 시즌 종료 후 삼성으로 트레이드됐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평균 구속은 140km/h대 초중반이었고, 최고 구속은 149km/h였다.[9]

파일:external/www.samsunglions.com/img_history21_7_12.jpg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1년 12월 20일 틸슨 브리또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고 2002년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비롯하여 2005, 2006 한국시리즈에서는 홀드까지 따내며 팀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10] 이상한 건 그가 잘할 때는 삼성이 우승을 못했고 그가 부진할 때 삼성이 우승했다는 것이다.[11] 허나 아래에서도 언급할 사생활 문제 때문인지 2007년 삼성에서 방출된 후[12] 2008년 시즌 중 LG 트윈스에 입단 테스트를 거쳐 이적했다.

LG 입단 이후 등판할 때마다 그럭저럭 쏠쏠히 활약했다. 2009 시즌에는 또 사생활 문제로 법정에 서는 바람에 한 달 넘게 경기에 못 나왔음에도 133경기 체제에서 무려 63경기나 등판했다.[13] 특히 석방된 다음에는 팀이 이기든 지든 거의 매일 나오다시피하면서, 그야말로 노예마냥 굴려졌다. 2010 시즌에는 혹사 논란까지 나올 정도로 LG 불펜의 필승조로 뛰었는데, 되려 삼성 시절보다 구위가 더 좋아졌다. 이 정도면 길들여진 수준이다. 37살의 베테랑 투수를 혹사시킨 박종훈도 여러모로 대단하다.

하지만 고질적인 사생활 문제 때문이었는지, 2011년 4월 26일 LG 트윈스에서 웨이버 공시되면서 방출되었고 결국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방출 당시 성적은 1점대로 제법 준수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3년이 지나 2014년 야구대제전에 모교인 군산상고 선수로 등장했다. 정읍에서 사회인야구 지도를 하기도 했다가 동시기에 지방 소재 대학교에서 투수코치를 맡기도 했다. 그 후엔 남양주에서 유소년 야구팀 감독을 맡고 있다.[14]

4. 논란 및 사건사고

야구 실력과는 별개로 사생활이 안 좋고, 복수의 불법행위로 유명한데,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겼다.

삼성 라이온즈에 있던 중 2004년에는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200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된 후 2008년 6월 LG 트윈스에 입단했으나, 2009년 시즌 전에는 도박혐의에 연루되었고, 2009년 사기죄로 대구지방법원에서 법정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항간에는 사채를 끌어 썼다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로 사생활이 그리 좋지 못했다.

2011년 4월 26일 LG 트윈스는 오상민에 대해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 4월 22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오상민이 갑자기 팀을 무단 이탈했고,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그를 웨이버 공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지만 뭔가 안 좋은 소문이 구단 내부에까지 퍼진 모양. 트위터를 중심으로 루머가 퍼져 나갔는데 일부 기자들의 경우 '알고 있지만 개인사라 쓰지 않는다'는 식의 코멘트를 한 것이 드러나, 이 웨이버 공시의 배경이 사생활 쪽이 아닌가 지목되었다. 박종훈 감독은 일단 구위가 떨어졌다고 말했지만 등판할 때마다 괜찮게 막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의문스러운 점. 박종훈 감독의 인터뷰 어떤 기사에서는 한계가 왔다고 했는데, 구위가 아닌 사생활 문제 때문인 듯. 사생활 문제에 관한 본인의 해명.

비슷한 행보를 보인 선수로 노장진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공통점이 여러가지 있는데, 1974년생이고 2002년 삼성 라이온즈 우승 멤버, 그리고 사생활 문제로 인한 징계성 트레이드 혹은 방출을 당한 경험이 있고, 시즌 초반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노장진 2006년, 오상민 2011년에 일으켰다. 거기에 사실상 타의에 의해서 은퇴했다는 점까지 비슷한데 노장진은 FA미아로, 오상민 방출로 끝났다. 덧붙여 둘 다 천재형 선수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서로 성향이 비슷해서 그래선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사적으로도 어느 정도 친하다는 듯.[15]

5. 박명환야구TV 출연

2019년 10월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하여 정수근 못지않게 상당히 입담을 뽐냈다.[16] 근황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사생활 및 도박에 관한 루머에 대해 해명하였다. 도박을 한 것은 맞지만 되려 사기도박 피해를 받았고[17], 법정에 출두하기 위해 구단에 분명히 밝혔는데도 뭐가 꼬였는지 무단이탈 처리되었다고 한다. 또한 재판 중 판사한테 찍혀서 법정 구속당했고, 구단에서는 연봉을 마저 지급해 주는 대신 방출로 마무리짓자고 합의해서 마지못해 승낙했다고 한다. 언론에 나온 것처럼 구위가 떨어졌다는 보도는 한마디로 일축하면서[18] LG 시절 공이 전성기로 통했던 삼성 시절보다 구속이 더 잘 나왔다고 한다.

야구계의 선후배 관계와 엄격한 규율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성격이라고 하며, 실제로 본인이 김태군을 구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방송에서 풀기도 한다. 2021년 스포츠계의 학교폭력 및 괴롭힘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에선 분명히 지탄받아야 할 행위이다.[19]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에는 프로 초년병 때 선발 등판을 앞두고 트레이너에게 마사지를 받고 있다가 어디서 신인이 마시지를 받냐고 지나가는 선배들한테 꿀밤 한 대씩 맞고 선배들이 많아서 라커룸에서는 쉬지 못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쉬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20] 데뷔 초기 감독이었던 김성근에게 감사함을 표했는데, 신인 시절 마른 체형이었던 오상민을 보고 남들은 밥 한 그릇 먹을때 두 그릇 먹으라고 더 챙겨주시는 등 무섭지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고 술회했다.[21][22] 여담으로 군산상고-쌍방울 선배인 좌완투수 조규제와 얼굴이 많이 닮은 편인데, 오상민 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조규제라고 밝혔다.

SK 와이번스 창단 직후 해외 전지훈련에서 이호준과 이진영이 식사 도중 말다툼이 생기면서 일이 커졌는데 그 벌로 선배들한테 상당히 맞고[23] 이진영이 프로 팀 후배이자 군산상고 후배다 보니 끌고 가서 많이 때렸다고 한다. 당시 팀의 최고참이었던 최태원이 군기반장 역할을 맡겨서 팀의 규율을 다잡았다고 한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에는 삼성 시절 받았던 승리수당 액수가 타 구단에 비해 상당히 많아 보너스 받는 걸로만 생활하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썰을 풀었다. 당시 삼성의 보너스 수준이 어느 정도였나면 1군 멤버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덕아웃 벤치에만 앉아 있어도 10만원이 지급됐으며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현금으로 보너스를 지급해줬다고 했으며, 500원 받은 선수도 있다고.[24] 구장 라커룸에는 현금계수기가 있었으며 보너스로 지급해 줄 현금을 계수기에 넣고 센 뒤 봉투에 집어넣고 배분하는 게 코치들의 보조 업무였다고 밝혔다.[25] 또한 삼성 투수코치였던 양일환 코치에게 고마움을 표했는데, 2006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팀 엔트리를 최종 결정하는 과정에서 선동열 감독은 젊은 투수들을 위주로 넣자는 의견을 표시했고, 반대로 양일환 투수코치는 그래도 한국시리즈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는 베테랑 선수들의 경험도 무시 못 한다면서 베테랑 투수들을 더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두 의견의 절충으로 원래 계획에 없던 오상민이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26] 덕분에 우승반지도 하나 더 얻고 우승 보너스도 받을 수 있었다며 양일환 코치를 은인으로 여긴다고 한다.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SK와의 경기에서 끝내기를 맞고 역전패를 허용한 뒤 화가 나 분을 삭이지 못해 밥도 먹지 않고 그대로 구단 버스에 올라타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마침 김응용 감독이 오상민을 보고 "야 왜 밥도 안 먹고 있어?" 하면서 매니저를 시켜 밥 먹이고 씻기고 보내라고 지시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평소 김응용 감독은 구단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출발해 버리는 성격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외인 셈. 동시에 동갑내기이자 삼성 시절 동료인 노장진에 대한 썰도 조금 풀었는데, 봄, 가을만 되면 팀을 무단으로 이탈해 맞은 벌금 액수만 상당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노씨와 다르다고(...) 주장해 웃음을 자아냈다.[27]

LG 트윈스 시절에는 라커룸에서 후배가 선배나 본인 앞에서 누워 있거나 다리 꼬는 걸 절대 안 넘어간다고 했다. 초상집같은 LG 덕아웃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28] 그 당시 LG는 고참 대우를 32살부터 받을 수 있었는데[29] 1980년생 동갑내기들인 정성훈, 봉중근, 이진영이 찾아와서 자기들도 고참대우를 해달라고 하자 바로 일축시켜 버렸다고 한다. 또한 삼성에서 방출당해 야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는데, LG 구단에서 불러준 덕분에 야구를 더 할 수 있었다면서 자신을 불러준 LG 구단과 김재박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은퇴 후에도 LG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지, 현재 본인이 남양주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단 이름을 '남양주 트윈스' 라고 지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 LG 감독이었던 박종훈 전 감독에 대해서는 그닥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앞서 박명환이 방송 중 박종훈이 LG 감독을 하던 시절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단 전원에게 휴식일날 쇼핑 금지령을 내려놓고 정작 감독 본인은 몰래 쇼핑을 하다가 마찬가지로 감독 몰래 쇼핑을 하던 다른 선수들에게 걸렸다는 썰을 풀자, 이에 동조하면서 박종훈이 LG 감독이던 시절 자신을 비롯해 옵션이 걸려있는 고참 선수들을 따로 불러 옵션 못 채워준다고 대놓고 사전통보를 한 뒤 실제로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았다는 썰을 풀었다.[30] 이어서 박명환이 계속 LG 감독 시절 박종훈의 썰을 계속 풀었는데, 부산 원정 경기를 마치고 밤새 달려 새벽 2시 반에 잠실에 도착했는데 박종훈 감독이 돌연 선수들에게 귀가 대신 야간 훈련을 하라고 통보하자[31] 이에 크게 분노한 오상민이 자기가 직접 후배들에게 훈련하지 말고 들어가라고 들여보냈다고 한다.[32] 차라리 훈련을 시킬거면 다음날 조금 일찍 불러서 시키면 되는데 뭐하러 남들 다 자는 새벽에 훈련을 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야구를 배우는 유소년 유망주들이 코칭스태프들의 지도를 잘 소화하려고 하기보다 자꾸 프로야구 선수들을 흉내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프로팀 스카우터들이 지방 학교에도 방문하고, 등록 선수가 수도권 학교에 비해 적은 지방 소재 학교에서 뛰면 출전 기회가 그만큼 많이 돌아와 프로팀 스카우터들의 눈에 잘 띌 수 있는데 왜 수도권 학교로의 진학을 고집하는지 꼬집기도 했다.[33] 하지만, 오상민은 왜 지방 유망주들이 야구 관련 인프라 및 트레이닝시설 부족 등으로 인해 수도권까지 올라가 레슨 등 보강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물론 오상민의 입장에서는 본인 또한 지방 출신이고 스카우터들에게 눈에 띄어 지명됐으니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현재에도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 그 지역을 대표하던 선수들이 지명되거나 수도권 출신임에도 지방으로 내려가서 실력을 쌓고 지명돼서 프로에 진출하여 활약하는 선수들 또한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해 열악한 실정인건 맞으며 수도권 학교 야구부에 정원이 차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지방 학교로 전학갔다가 결국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오는 경우 또한 많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7 쌍방울 67
(3위)
77 4.91 2 4 2 - 77 7 37 39 1.43
1998 76
(1위)
68⅔ 6.16 2 5 0 - 82 9 32 36 1.56
1999 67
(5위)
80⅓ 5.94 2 7 1 - 92 22 34 59 1.51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0 SK 63
(3위)
100⅔ 4.74 7 2 3 2 106 23 55 71 1.55
2001 69
(3위)
133⅔ 3.57
(5위)
7 6 10 9
(4위)
123 16 49 121
(6위)
1.24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2 삼성 54 64 5.48 2 3 3 2 73 13 16 43 1.34
2003 47 58 2.79 4 1 3 9 49 6 16 45 1.09
2004 34 31 2.32 2 0 0 5 24 2 11 24 1.10
2005 21 8⅓ 4.32 0 0 0 7 8 2 4 8 1.32
2006 49 31⅔ 4.55 1 2 0 16
(5위)
30 4 12 23 1.20
2007 12 7⅓ 1.23 1 0 0 0 8 0 2 5 1.36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08 LG 38 23 2.74 1 0 1 9 25 0 3 14 1.22
2009 63 48 3.00 3 2 1 6 49 4 16 44 1.31
2010 65 47 4.40 1 1 0 15 52 9 12 28 1.30
2011 11 5 1.80 0 0 0 1 4 0 1 3 1.00
KBO 통산
(15시즌)
736 783⅔ 4.38 35 33 24 81 802 117 300 563 1.35

7. 관련 문서




[1]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사용했다. 실제로도 인터넷 도박을 하는 못된 사람이었다. [2] 마운드에서 껌을 씹는 것은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 투수들이 많이 하는 행위다. 오상민 본인도 일부러 타자들의 짜증을 유발하기 위해 본인 표현으로 싸가지 없이 껌을 씹었다고 했다. [3] 와우 껌을 씹은 날엔 잘 던졌지만 다른 껌을 씹은 날에는 별로였다고 했다. [4] 이 시기 굉장히 마른 오상민을 보고 김성근 감독이 직접 벌크업 프로그램을 가동해 몸을 만들었다. [5] 이에 대해 오상민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대충 던지는 것 같이 보여도 본인도 공 한 개 한 개를 신중하게 많이 생각하며 투구한다고 말했다. [6] 하지만 당시 쌍방울의 전력을 이어받은 SK에는 승리조는커녕 소위 버리는 경기를 위해 던져줄 투수조차 없을 정도로 투수진이 처참한 상황인지라 누군가는 과부하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팀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7] 신문에서는 그의 삐쩍 마른 몸매를 보며 골투라고 표현했다. [8] 지금으로 치면 살려조로 꼽혀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딱 송창식, 장민재의 좌완버전. 그래도 오상민 본인은 혹사를 인정하면서도 이 당시에 커리어 하이였기도 하고 아픈 곳도 없었기 때문에 야구장에 가는 것이 그렇게 즐거웠다고 한다. [9]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본인이 직접 밝혔다. 선수 시절 제일 아쉬웠던 점으로 150km를 던져보고 싶었는데 단 한 번도 150km를 던져보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고. 하지만 오상민은 좌완 투수로, 그런 선수가 140km/h 후반을 찍었다는 것만 해도 구속이 느린 투수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10] 특히 좌완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 감독의 입김이 강하게 있었다는 후문이다. 6:2 현금 트레이드로 오상민, 틸슨 브리또+11억↔ 김기태, 김동수, 김태한, 김상진, 정경배, 이용훈이었다. 이용훈을 제외하면 당시로는 한물가거나 김응용과 코드가 안 맞은 노장들. [11] 그래도 팀이 3번째 우승을 이뤄낸 2006년 16홀드를 기록하며 홀드 5위를 달성하며 불펜진에서 삼성의 우승에 기여한 바가 있다. [12] 이 무렵 팔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13] 딱 김재박이 01현대에서 신철인을 써먹던 방식을 그대로 써 먹은 셈이다. [14] 2019년 12월 2일 박명환야구TV에 출연했는데 본인이 운영중인 남양주시 소재 레슨장을 둘러싸고 동업자 및 선수 학부모와의 트러블이 있음을 밝혔으며 그로 인하여 병원에서 우울증 초기를 진단받았다고 한다. 박명환야구TV에 첫 출연했을 당시 밝았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얼굴이 많이 어두웠다. [15] 74년생 동갑내기인데다, 삼성에서 3년간 함께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16] 사람들이 생각한 오상민의 이미지와 다르게 방송에서 말솜씨를 맘껏 뽐냈다. 또 출연해달라는 요청에 곧바로 구자운과 함께 출연하였다. 그 이후에도 박명환이 혼자서 외롭게 방송하는 모습을 보고 오상민이 운영하는 남양주 레슨장에서 박명환이 운영하는 수원 레슨장까지 바로 달려오는 등 종종 출연하고 있으며 이인구, 조용훈 편처럼 채팅방에 등장하기도 한다. [17] 그러나, 사기도박 피해여부에 관계없이 도박은 그 자체가 불법인 건 물론이거니와, 승부조작 등 불법행위와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행동으로, 프로스포츠 선수가 엄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18] 오상민 왈, "방어율이 1점대였는데 뭔 구위가 떨어져요?" [19] 물론 오상민도 김태군을 구타한 건 잘못했지만, 당시 1군에서도 한창 저연차였던 김태군이 팀이 지고 있는 와중에 배트걸을 쳐다보며 혼자 히히덕거리는 바람에 이를 보고 나서 화가 난 오상민에게 두들겨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김태군도 팀이 지고 있는데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있다며 덩달아 까였다. [20] 이 당시 쌍방울은 타팀에서 방출된 후 은퇴를 앞둔 고참급 선수들( 한대화, 김성래, 장채근, 김광림, 박노준 등)이 즐비했으며 해태 타이거즈 다음으로 군기가 센 팀이었다. 동료 심성보도 엄격한 팀 군기와 많은 연습량으로 인해 팀의 별명이 쌍방울 고등학교였다고 술회했다. [21] 김성근이 쌍방울 부임 전 해태 2군 감독으로 재직할 때 이런 방식으로 조련한 투수가 임창용. [22] 김성근은 지도자는 아버지여야 한다고 2010년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23]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오상민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1년 선배한테 많이 맞았다고 밝혔다. SK 창단 멤버 중 오상민보다 1년 선배인 73년생은 심성보, 이동수, 박주언이 있는데, 심성보는 빠른 73년생으로 72년생과 같이 데뷔했기에 이동수 또는 박주언으로 추정되는데, 박주언의 경우 오상민보다 1년 빨리 레이더스에 입단했고 이동수는 92년 데뷔다보니 박주언으로 추정. [24] 그 500원 받은 선수가 권혁이었으니 말 다했다고. [25] 다만 오상민뿐만 아니라 안지만 역시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삼성 구단의 보너스 지급 수준이 타 구단과 비교가 되지 않았을 정도였다며 자랑한 바 있고 이에 박명환 역시 과거 배영수의 차를 얻어탄 적이 있었는데 조수석 대시보드를 열자 현금이 나왔고 그게 다 승리수당으로 모은 돈이며 완봉승 한번 하면 1000만원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는 걸 보면 메리트 시스템이 폐지되기 전 삼성 구단에 대한 모기업의 지원은 엄청났던 듯 하다. 이외에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박종호 역시 삼성의 승리수당이 현대에 비해 월등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26] 반대로 젊은 투수를 기용하자는 선동열 감독의 의견도 포함되어 노장인 박석진이 빠지고 권혁이 엔트리에 들어갔다. [27] 둘 다 사생활로 인해 문제가 있던 공통점이 있지만 오상민은 삼성 시절 시즌 중에 무단이탈한 적은 없었다. [28] 하지만 이건 당시 시대상으로 어느정도 감안해야 할 게, 90년대와 2000년대의 LG 트윈스는 신바람 야구라는 슬로건 하에 덕아웃 분위기가 상당히 자유로웠고, 나쁘게 말하면 군기빠진 모습이었다고 한다. 일단 당사자인 오상민뿐만 아니라, 타 팀에서 빡센 군기를 가지고 LG에 왔던 한대화 양준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덕아웃에서 팀 응원은커녕 8회나 9회 들어 경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나이트나 클럽에 가려고 거울보고 메이크업을 하는 선수들도 많았고, LG 출신의 프랜차이즈인 김재현이나 서용빈 등도 경기 끝나면 그 날 밤 바로 술 마시러 가서 사고를 많이 쳤다고 한다. 심지어 후배들이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다가 한대화가 들어오자 '어! 형 왔어?' 이렇게 말하기도 해 한대화를 분통터지게 했다고 말했다. 똥군기는 2022년 기준으로 절대 용납 안 될 악습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LG 트윈스의 팀 분위기가 개판이었다고 말하는 선수들이 많아 반반으로 갈리는 이야기다.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한 송유석은 해태에서 LG로 이적한 후 LG는 연공서열이 아닌 연봉서열로 선수를 대우한다는 걸 알고 난 그걸 용납못한다며 군기반장 역할을 맡아 팀을 다 잡았다고 술회했다. [29] 고참들만 사용가능한 휴게실이 있었으며, 그 곳에선 자유롭게 흡연도 가능하고 간식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투수진 최고참은 류택현 최원호였다. [30] 오상민 자신도 홀드 2개 차이로 옵션 달성에 실패해 5000만원을 날리게 됐는데, 이에 너무 화가 나 구단 사무실에 찾아가 항의하니 40%를 보상해줬다고 한다. [31] 즉, 경기가 끝난 9~10시도 아니고 남들 다 자고 있을 새벽 2시에 야간훈련을 지시한 것이다. 더군다나 사직 야구장 잠실 야구장의 거리는 무려 380km나 떨어져 있고, 자동차로 가면 약 4시간 30분~5시간이나 되는 거리다. 그렇게 밤새 먼 거리를 달려와 피곤에 찌들어 있을 선수들에게 감독이란 사람이 야간 훈련을 지시하니 선수단 내에서 불만이 안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32] 그때 당시 선수들 중에도 심수창, 이동현등 여러 팀원들이 있었는데 오상민의 지시를 받고 집으로 귀가했다고. [33] 실제로 전주, 군산 등 전북지역 유망주들이 수도권 학교로 진학한 사례가 많다.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