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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8:49:52

알버트 스터빈스

알버트 스터빈스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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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헌액자
1890 맷 맥퀸
Matt Mc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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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브래드쇼
Harry Bradsh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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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잭 콕스
Jack C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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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레이스백
Alex Raisb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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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아서 고다드
Arthur God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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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임 롱워스
Ephraim Long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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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도날드 맥킨리
Donald MacKin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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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샤 스콧
Elisha S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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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고든 호지슨
Gordon Hodg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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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맥도걸
Jimmy McDoug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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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잭 발머
Jack Bal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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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리델
Billy Lidd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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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알버트 스터빈스
Albert Stubb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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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에이코트
Alan A'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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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로저 헌트
Roger H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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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예이츠
Ron Y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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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이안 캘러한
Ian Calla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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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클레멘스
Ray Clem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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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케니 달글리시
Kenny Dal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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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한센
Alan H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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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이안 러쉬
Ian 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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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반스
John 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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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제이미 캐러거
Jamie Carrag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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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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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각 년대별로 2명을 헌액한다.
출처: 리버풀 F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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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tWF4beA.jpg
알버트 스터빈스
Albert Stubbins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1919년 7월 17일
잉글랜드 타인 위어 주 월센드
사망 2002년 12월 28일 (향년 83세)
잉글랜드 타인 위어 주 월센드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선수 뉴캐슬 유나이티드 (1937~1946)
리버풀 FC (1946~1953)
애싱튼 AFC (1953~1954)
감독 애싱튼 AFC (1953~1954)
뉴욕 아메리칸스(1960)
국가대표 1경기 ( 잉글랜드 / 1945)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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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前 축구 선수. 리버풀 FC에서 활약하였다.

2. 클럽 경력

잉글랜드 북동부의 월센드에서 태어난 스터빈스는, 1929년 학교를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잉글랜드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당시 뉴캐슬에서 30경기에 출전해 6골을 득점하여 가능성을 알렸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모든 리그가 중지된 이후에는 커리어에 위기가 찾아왔으나 전시 친선 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전쟁 기간 동안 188경기에 출전해 231골을 득점하며 꾸준히 실력을 키워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리그가 재개된 1946년, 그는 당시 클럽 레코드 금액인 12,500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리버풀에 입성하게 되었다. 리버풀의 지역 라이벌 에버튼 또한 전시 리그에서 활약을 펼친 그에게 접근하였으나 그는 리버풀 행을 결정했다. 안필드에 입성한 스터빈스는 1946년 9월 14일 볼튼 원더러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리버풀 이적 이후 첫 시즌인 1946-47 시즌에 스터빈스는 날카로운 득점력을 발휘했고 잭 발머와 함께 막강한 공격력을 뽐내면서 리그를 평정한 투톱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리그 24골을 포함 총 28골을 득점했고, 발머와 팀 내 최다 득점자의 위치에 오르며 리버풀의 리그 우승을 제일 앞에서 이끌었다. 스터빈스는 그 다음 시즌인 1947-48 시즌에도 24골을 넣으며 걸출한 득점 감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1948-49 시즌에는 계약 문제로 인해 약간의 제약이 발생했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에는 리버풀이 사상 최초의 FA컵 결승에 진출하는 과정에 공을 세우며 팀을 이끌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스터빈스는 출장 횟수가 적어짐을 느꼈고,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1953년 1월 3일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를 끝으로 그는 리버풀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팀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리버풀과 안필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였으며, 당대 머지사이드 축구와 풋볼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리버풀에서 총 178경기에 나서 83골을 득점했다. 스터빈스는 리버풀을 떠나 애싱튼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짧은 커리어를 더 이어갔으나 부상 문제로 인해 일찍이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 그는 스포츠 언론사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1960년 잠시 미국의 세미 프로 팀인 뉴욕 아메리칸스를 지도하기도 했다. 이후 83세의 나이로 짧은 투병 끝에 고향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3. 국가대표 경력

1945년 웨일스와의 비공식 친선전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뛴 바 있다.

4. 기록

5. 여담



[1] 리버풀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