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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3:45

아지태(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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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극중 행적3. 캐릭터 특성4. 평가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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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 김인태.[1]

2. 극중 행적

사료에서는 궁예에게 아첨하며 비리를 저질렀다 들통나 쫓겨났다는 것이 전부인 소인배였으나 이 드라마에서는 기록에 언급된 사건과 왕건과의 관계가 재해석되어 궁예에게 패도 정치를 추구하도록 부추겨 결과적으로 궁예를 타락하게 만든 조연급 악역으로 거듭났으며 궁예와 태봉 멸망의 길로 인도한 불씨로 비중이 크다.[2] 그러나 궁예는 아지태를 만나기 전에도 이미 작중 인물이 모두가 폭군이라 평한 시황제 정책을 우호적으로 평하는 등 타락의 조짐이 많이 있었고 아지태의 감언이설을 무분별하게 수용했으며[3] 궁예의 커다란 신임을 받는 왕건과 종간을 비롯한 주변 인물 모두가 아지태를 멀리하라고 간언했음에도 이를 듣지 않고 아지태를 신임해 곁에 두었다. 물론 아지태가 궁예 타락의 1차적인 책임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궁예가 스스로 타락을 자초한 측면이 더욱 더 컸다. 극 중에서는 적지 않은 공부를 한 인재인데다 시류를 읽는 눈도 갖춘 인물이나[4]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에 집착하며 자기 이상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즘 가득한 사악한 인물로서 그려지고 있다. 극 중에서는 부족한 역사 기록에 보이는 인물들의 이름을 최대한 끌어다 쓰다 보니 아지태가 궁예가 퇴장하기 전 중반부까지 일시적으로나마 조정의 권세를 장악한 거물급 인사로 묘사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아지태한테 참소를 당했던 입전, 신방도 조연으로 꾸준히 등장하는데[5] 아지태한테 참소를 당한 또다른 피해자인 관서는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아지태 등장 직전에 궁예는 미향의 사망, 신라 왕실에 대한 분노[6] 등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아지태의 감언이설이 궁예의 약해진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궁예는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 것은 '내가 바라던 불국정토는 이제 이루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무엇을 하면 좋다는 말인가?'라는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아지태가 "그럼 대동방국을 만드시면 됩니다."라고 나타난 것. 이것은 나레이션이나 궁예 자신의 을 통해 묘사된다.

제44회 때에 첫 등장. 전국 순행 중이었던 궁예가 청주 근처를 지나자 지역 호족들과 미리 마중나와 청주에 한 번 들러달라고 호소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본래 청주 방문 계획이 없었던 궁예는 그들의 간곡한 호소에 마음을 바꾸어 청주로 향했고 아지태는 궁예를 상대로 열심히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성공해[7] 궁예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는데 옆에 같이 있던 왕건 은부도 처음에는 감탄하는 분위기였다. 궁예의 신임을 얻게 되어 중앙에 진출하게 된 아지태는 궁예에게 현재 중국과 발해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설명하며 고려는 옛 고구려의 망령일뿐 고려라는 틀속에 갇혀서는 안되기 때문에 나라의 이름을 바꾸고, 고구려의 부활을 지지하는 패서 지역의 고구려계 신료들을 멀리해 고려가 아닌 새로운 나라로 바꿔야 한다고 종용한다. 이로 인해 궁예는 고려는 옛 고구려의 망령같은 기분이 든다며 한없이 큰 동방국을 뜻한다는 뜻으로 나라의 이름을 마진으로 바꾼다.(61화) 이 자로 인하여 이전까지는 백성들에게 지극히 선정을 베풀던 궁예가 본격적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까지는 검소한 생활로 민심을 사로잡던 궁예에게 북벌(중원을 도모할 것)을 부추기며 그의 마음에 들었다. 나아가 패서 호족들의 거점인 송악을 대신하여 철원으로 천도할 것을 권하고 그 대대적인 공사에 앞장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사람들인 청주 사람들을 대규모로 동원했고 도중에 종간과 은부가 획책한 암살 시도에 휘말리기까지도 했으나(65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있게 작업을 완수한다. 다행히도 아지태는 전치 보름 정도의 중상에 그쳤고 암살을 시도했던 자는 궁예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궁예는 이미 누구의 음모인지 대략 눈치는 채고 있던 상황이었고 은부에게 "아지태를 잘 보살펴라. 문제가 생기면 경에게 책임을 묻겠다."라며 경고를 하자 아지태는 병상에 누운 채 은부를 향해 씩 웃었다. 이를 본 은부는 당연히 부들부들⋯. 이후 71회에서 궁예가 궁궐 공사 현장을 순회하던 도중 낭인들이 쏜 독화살에 맞아 사경을 헤매자 아지태에게 반감을 품어왔던 종간과 은부로부터 '무리한 궁궐 공사를 추진하여 결국 폐하께 화를 입게 만든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목을 받아 왕건과 함께 하옥되었다가 궁예에 의해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철원으로 도읍을 다시 정한 이후에는 주요 관직에 청주 사람들을 대거 등용하도록 하여 권력을 굳혀 나간다. 아지태와 궁예가 대화를 나눌 때는 "기존 패서 지역의 고구려계 신료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청주계를 가까이 할 것"을 이야기하고 궁예에게 화려한 모습을 갖추도록 종용해 철원 천도, 전쟁 등으로 국고를 탕진하게 만들었으며[8] 자신의 정책으로 생긴 문제를 뻔히 알면서 궁예에게 이를 숨기는 간신의 면모도 적극 보인다. 궁예는 아지태에게 막강한 권력을 쥐어 주고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아지태의 권력 집중을 견제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지태는 궁예를 시험하고자 궁예에게 어검(御劍)을 한 자루 내려달라고 부탁하는데 궁예는 순순히 어검을 내려주는가 싶더니 돌연 표정을 바꾸고 "내 눈이 하나라고 세상도 하나로 보는 줄 아느냐"며 "이미 전권을 줬는데 더 큰 권력을 요구한다"며 아지태를 꾸짖는다. 그리고는 최응에게 <한비자> 9편에 적힌 신하 군주에게 저지르는 8가지 간사한 행동(八姦)에 대해 읊어보게 한다. 최응이 거침없이 8가지를 읊는데 아지태의 행실이 행실이다보니 전부 아지태를 까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한비자> 10편에 적힌 한비자가 말한 군주가 조심해야 할 10가지 잘못(十過)을 읊게 하는데 이 때 궁예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서 남을 믿는 것은 군주가 절대로 금해야 할 행동"이라고 강조한다.[9] 최응의 영민함과 궁예의 카리스마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장면인데 궁예가 아직 총명함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걸 깨달은 아지태는 청을 도로 물린다.

몇 년 뒤에 궁예가 국명을 '태봉'으로 바꾸면서 궁예는 인사 과정에서 아지태에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해주며 그 외 아지태가 부탁한대로 인사를 감행함으로써 아지태가 그렇게도 원하고 주청해왔던 막강한 전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궁예가 무책임하게 아지태에게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는데 실제 의도는 "막강한 권력을 달라고 하니 주겠다. 그런데도 북벌의 성과가 없다면 다음에는 네 목숨을 바치라."였다. 궁예 또한 이 이전부터 아지태를 불신했었다는 대목으로 독화살을 맞고 제정신이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군주로서의 통찰력은 안 죽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군부에 권력을 몰아주면서도 한편으로 순군부의 군 이동 상황을 내군에 보고하게 하는 등 종간과 은부로 하여금 아지태를 견제할 수 있게 만든다. 궁예의 이 의도를 알아챈 종간은 "역시 폐하는 폐하"라며 독백하며 안도하는 반응. 하지만 아지태는 이것이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이자 기회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고 아지태도 궁예가 황제로 있는 이상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뭔가 성과를 내야 함을 잘 깨달았지만 오히려 미치광이 황제에게 죽을 수는 없다며 크게 반발하고는[10] 마침내 청주 출신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정변을 꾀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이미 처음에는 왕건과 손을 잡으려 하지만 거절당하자 대신 강 장자를 끌어들이는데 물론 아지태는 쿠데타에 성공하면 강 장자 역시 토사구팽시킬 생각이었다.[11]

그러나 의형대의 일을 맡고 있던 입전과 신방이라는 사람들이 궁예의 관심법이 두려운 나머지[12] 종간에게 역모를 고변하면서 발각된 것으로 나온다.[13] 이전에 종간이 아지태를 여러 번 제거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지라 처음에 궁예는 역모 고변을 믿지 않았고 사건 처리를 제 3자인 왕건에게 맡기고자 한다. 그러나 왕건을 만나러 가던 중 궁예는 수도에 굶어 죽은 시체가 즐비하며 북벌 훈련장에는 어거지로 끌려온 노인들만 그 자리에 있고 젊은이들은 진작에 다 도망가고 없으며 오래 전부터 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궁예는 왕건에게 북벌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모든 일을 왕건에게 맡긴다. 다만 아지태를 그냥 처단했다가는 궁예가 삽질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왕건이 아지태가 잘못된 북벌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을 인정만 한다면 아지태의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결정한 뒤 설득을 시도했으나 아지태는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잘못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궁예라는 둥 완강한 태도로 버티면서 실패.

102화에서는 죽음에 의연한 척 굴던 101화에서의 행적과는 완전히 달리(...) 왕건과 궁예를 이간질하는 발언으로 목숨을 구하려들며[14], 온갖 폭탄발언과 무리수 발언들을 해가면서 간절히 목숨을 구걸한다. 아지태는 오랫동안 종간을 비롯하여 신료들이 숨겨온 왕건과 황후 강씨와의 정혼 사실을 폭로하였고, 궁예에게 바른 말을 하다 처형당한 법상종의 고승 석총이 왕건이 충주에 있을 적에 만났던 사실도[15] 폭로하였다. 아지태는 왕건을 출세를 위해 자신의 정혼녀를 바친 파렴치한 사람이자, 다음에 올 미륵을 꿈꾸는 반역자로 몰아붙이려[16] 한 것.

그러거나 말거나 왕건은 애초에 아지태가 무리한 북벌 과정에서 나타난 자신의 잘못만 인정한다면 낙향시키는 벌로만 끝내려 했다. 그렇지만 아지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역사에 오명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거부했고, 죽음을 피하지 못할 바에야 혼자서는 죽지 않을 것이며, 황후도 함께 죽이고 태봉도 멸망시킬 것이라고 발악했다. 이는 궁예의 광기를 부추겨 왕건을 반역자로 몰아 화살을 돌리거나 잘 안되더라도 물귀신이라도 되어보겠다는 술수였다. 그러나 궁예가 아무리 미쳐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광증만큼 지독했던 것이 왕건에 대한 신뢰였기 때문에 효과는 없었고, 궁예가 잠깐 눈을 감고 관심법을 시전하려는 듯한 기색까지 보이자 왕건을 포함해 모두들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궁예는 그냥 조용히 눈을 뜨더니 아지태를 심드렁히 쳐다보다 눈치를 보고있는 왕건에게 신경쓰지 말고 내어준 법봉을 써서 생각한대로 형을 집행하라는 독려만을 반복한다. 아무리 궁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북벌에 미쳐있다고 하지만, 이미 밖에서 북벌의 실상을 봤으니 아지태의 발언이 생거짓말이라고 판단할 수 있던 것이었다. 거기다 '궁예 암살 미수 사건'은 '관심법'을 이용해 해결한 문제인데, 그것을 제대로 봤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말그대로 궁예의 권위와 신성 불가침에 흠집을 내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자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고 궁예를 향해 팩트폭력겸 유언을 남긴다.
아지태 : "그래, 역시 오늘 여기서 살아나가기는 어려운 것 같구나⋯. 오냐! 그렇다면 바른 말 한 마디 하마⋯. 미치광이 황제야!"
궁예 : "(순간 깜짝 놀란 듯 눈을 뜬다).........!?"
아지태 : "너는 미쳤다. 그래, 이제 바른 말을 하마. 내가 모종의 사건을 꾀했다. 왜냐? 네놈이 미쳤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았다면은 나는 북으로 갈 수 있었고 너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다! 불쌍하구나, 황제여. 이제 넌 이미 미쳤다. 제국을 끌어나갈 힘도 없다. 결국은 왕건에게 다 내주게 될 것이다. 이 미련하고 불쌍한 황제여⋯"
왕건 : "뭣들 하느냐! 속히 법을 시행해라!"
아지태 : "으하하하! 왕건아! 안됐구나! 네 속을 다 끄집어내서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구나. 으하하하!"
왕건 : "어서 시행하라!"

이렇게 결국 살아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아지태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더니 마지막으로 '바른 말'을 하겠다며 욕설과 폭언을 하여 궁예의 심기를 끝까지 후벼파놓는다. 게다가 큰 소리로 왕건을 비웃기까지 하니,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트롤링을 제대로 하고 간 셈이다. 결국 왕건이 속히 아지태를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게 그대로 시행됨으로써 이 말들은 유언이 되고 말았다.[17] 그동안 왕건을 경계하던 종간마저 아지태가 왕건과 이 나라의 미래까지 저승길 동무로 삼으려 든다며 오히려 왕건을 변호했다. 결국 그의 유언대로 궁예는 나중에 왕건에게 몰락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지태는 자신이 돌아선 원인과 태봉 쇠퇴의 원인을 전부 궁예의 탓으로 돌리며 발악했지만 정작 궁예가 그렇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은 다름아닌 아지태 본인의 의사였다.

하지만 아지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궁예가 관심법을 쓰면서 공포정치를 한 것도, 너무나 유명한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라는 대사를 탄생시키면서 조회 도중에 기침을 한 신하를 철퇴로 참혹하게 쳐죽인 것도, 군 사열 도중에 한 장군이 말에서 실수로 떨어져 당시 열병식에 참석한 대부분의 조정 대신들의 부인들이 웃자, 웃은 조정 대신들의 부인들을 앞의 신하와 마찬가지로 모조리 철퇴로 참혹하게 쳐죽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들의 목을 베어 효수시키고, 자신의 폭정으로 인해 극도로 분노한 떠도는 일부 백성들이 자신에게 돌들을 던져 돌들을 머리에 맞고 피를 흘리자 이미 달아나 체포에 실패한 그들 대신 해당 사건이 일어난 고을의 무고한 백성들이 그들과 한통속이라 함부로 단정해 아지태 본인[18]을 포함한 왕건과 다른 신료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이 일어난 고을의 무고한 백성들을 모두 불태워죽이는 참혹한 만행을 벌이는 등의 수많은 학살들과 가혹행위들은 아지태와 상관없는 궁예 본인이 정신나간 미치광이 학살자가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 아지태의 이 말이 반드시 틀렸다고만은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점점 정신나간 미치광이 황제추악하고 교활한 몽상가 간신이 서로 만나 각자 자신들이 벌인 미치광이 짓들로 인해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생긴 것이었다.
아지태 : 으하하하! 자, 어서 오너라! 이 미치광이 황제야! 너의 세상은 이제 끝났다!
궁예 : 이런 간악한 놈! 네 놈은 아지태가 아니냐?
아지태 : 너의 세상 끝이 났다! 이 불쌍한 황제야! 하하하!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꾸나! 하하하하![19]

하지만 궁예는 결국 석총과 아지태의 유언에 계속 얽매이고 그들의 망령까지 보는 등 점점 더 심신이 망가져가면서 왕건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장인인 강 장자 황후 그리고 두 아들들까지 의심하여 차례로 처형하였다. 사실 강 장자는 권력욕에다 아지태의 뻐꾸기가 더해지자 넘어가 스스로 명줄을 재촉하기는 했다. 강 장자가 아지태와 어울린다는 말을 들은 황후나, 강 장자 자신이 권력욕을 드러내는 걸 지켜 본 부인조차 그러다가 정말 큰일난다고 만류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 붙이다가 결국 변을 당한 것으로 이것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강 장자의 부인마저 식음전폐를 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자 황후마저 완전히 궁예를 저버리게 되고 결국 셋째 아들인 '순백'을 낳고 나서 기존의 두 아들들과 함께 궁예에게 모조리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20]

게다가 죽기 전에 죄를 인정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는 왕건에게도 이런 저주를 퍼부은 적이 있다.
나는 안 죽어⋯! 만약에 내가 죽는다면 그냥은 안 죽어⋯! 당신과 함께 죽을 것이야. 아니, 당신은 물론이고 황제도 함께 갈 것이야. 또 있어. 황후도 죽게 될 것이고, 어린 두 태자도 죽을 것이고, 태봉이란 이 나라 전체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들어갈 것이야!!

결과적으로 그의 저주는 거의 사실이 되었다. 궁예 일가는 갓난아기였던 막내아들을 뺀 모두가 몰살당했고 태봉까지 결국 멸망했으니 무서울만치 들어맞은 셈. 물론 왕건은 이땐 죽지 않았고 아지태가 물고 늘어진 과거 및 궁예의 광기로 인해 강비 일가와 연관된 일련의 사건이 벌어져 서서히 의사를 바꾼 왕건은 의형제인 궁예와의 의리 대신 역성혁명을 선택하게 되어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한다.

결국 살아서도 죽어서도 궁예는 물론 태봉까지 모조리 망친 간신 역할을 제대로 톡톡히 한 셈이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해 좌절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죽기 직전에도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끔찍한 저주와 비웃음을 선사하고 갔다. 물론 작중 정황상 처형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시청자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런 자에게는 오히려 살아서 왕건이 나라를 건국하고 제왕으로 즉위하는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 더 확실한 처벌이었을 것이다. 사료에서는 쫓겨나서 목숨은 부지했다고 하니 드라마가 아닌 실제 역사로는 이런 시청자들의 의견이 진짜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3. 캐릭터 특성

인물 자체는 인간적인 면모나 연민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간신배이지만, 아지태라는 캐릭터는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있다.

그때나 그 이후에나 한국 사극에서 간신 캐릭터라고 하면 반개혁적 기득권층이거나 탐욕스런 매국노, 또는 만능의 율법 비밀 결사를 통한 암살과 모략으로 역사를 좌지우지 하는 양판소식 흑막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태조 왕건의 아지태는 이와 캐릭터 성이 다르다. 아지태는 전형적인 간신배 캐릭터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나중에 만들어진 정도전에서 언급된 '괴물'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일단 출신부터 기득권층도 아니며,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만으로 출세했고, 학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언변도 수려한데다 패서호족에 대한 경계와 삼한의 정신적 통일을 제시한데서 국가와 정치에 대한 비전도 있고, 심리적 통찰력 및 정책 추진력도 뛰어나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재물이나 여색을 탐하지도 않는데서 대표적인 거악인 정도전의 이인임이나 육룡이 나르샤의 홍인방에 비하면 얼핏봐서 무슨 선지자라도 되는 듯한 인물이다. 그러나 오히려 순수한 이상주의와 명예욕 때문에 미쳐가는 궁예의 정치적 타락을 정당화시켜 나라를 파탄과 멸망의 길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한국 창작 사극 사상 비할데 없는 최고의 괴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세운 것을 예로 들면서 군주는 대업을 위해서 얼마든지 백성을 희생시킬수있다며 마치 법가의 화신이라도 된 양 궁예를 부추기는 모습은 정말로 백성들 입장에서는 재앙신 그 자체.

또한 북벌과 대제국을 운운 하는 인물이 정작 드라마 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물 중 하나 인 것도 특이한 점으로 뽑을 수 있다. 이환경 작가의 다음 작품인 제국의 아침, 연개소문 등은 유사역사학스러운 사상이 묘사된다. 심지어 연개소문에서는 강이식 같은 백전노장들이나 을지문덕 같은 지장들이 고구려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서토정벌과 전쟁만 외쳐대는 병맛 장면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태조 왕건에서는 그런 대제국에 집착하는 아지태가 빌런으로 등장하였고, 그 이상은 허황된 망상[21]으로 묘사된다.

작중 왕건은 그를 무능하다 여기지는 않았지만 궁예 면전에서 몽상가이자 기회주의자인 간악한 인물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데, 아지태의 행적은 왕건의 비난과 딱 들어맞는다.

아지태와 함께 지냈던 동문인 박유도 그를 이상과 현실을 전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엄청난 국력 소모를 요구하는 철원 천도와 북벌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으며, 궁예는 이를 추진력이 있다고 좋게 보았으나, 실상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 추구할 뿐, 장기적으로 계획을 진행 할 수 있는가, 장기적으로 실용성이 있는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철원 천도 때 황궁만 크게 지었을뿐 철원 주민들은 모조리 내팽개쳤으며 결국 철원은 국가의 수도임에도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생지옥이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당시 자신의 심복들이었던 입전과 신방이 상황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하자 되려 역정을 내면서 그걸 왜 자신에게 따지냐는 투로 나왔다. 게다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북벌 계획도 태봉국의 역량과 장기적인 보급 계획, 지역 인프라 등 전쟁 수행 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대규모 육군과 수군으로 중원을 점령하고, 점령지를 수탈하여 보급한다는 식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그 정도 지력을 가지고서 전쟁에 필요한 재정과 보급의 문제를 모를리가 없었지만, 결국 '쥐어짜면 나오게 되어있다'라는 악랄함 하나로 추진했던 것이다.

또한 궁예의 북벌에 힘을 보태주는 것처럼 보이나 그의 행동 원리의 중심은 언제나 자신이었고 궁예는 한 때 후세에 위인으로 기록되는 자신의 꿈을 이뤄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잠시 몸을 의탁했을 뿐이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욕은 군주가 다 먹을 테니 자신의 이름에는 오점이 남지 않는다는 것. 그 때문에 주인을 갈아타는 배신을 저지를 때조차 오히려 당당하며 궁예가 암살 미수 사건 이후 사경을 헤맬 때에는 왕건을 찾아와 그에게 보위에 오르라고 부추기는 모습도 보인다. 게다가 왕건조차 힘이 다하면 거리낌없이 버릴 것이라는 말을 왕건 본인의 면전에서 대놓고 한다. 참으로 웃기는 것은 간사한 모략을 꾸민다면 속내를 함부로 드러내면 안된다는 것이 상식인데 그러한 기초 상식을 망각하고 자신의 패를 적에게 모두 보여주는 실책을 저지른다. 간악하다고 해서 꼭 처신을 현명하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종간은 속을 잘 드러내는 아지태보다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왕건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평한 적도 있다.

심지어는 궁예를 손절하려는 이유조차 자신의 악함 탓이 아닌 남탓의 극치를 달리는데, 자신의 허황된 북벌과 계획에 모두가 극렬반대하자, 이것은 상황과 국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막으려는 다른 세력 때문이라 탓하기에만 바빴고 이를 해결하고자 궁예에게 더 많은 전권만을 요구하다 선을 넘어버린다. 이에 궁예가 선을 긋거나, 결국 계속 실패한다면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로 전권을 넘기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더 할 수가 없고 궁예는 미치광이 황제이니 거기에 휘말려 죽기 싫다며 곧바로 역모를 획책한다. 아지태에게 있어 자신의 실패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남탓 뿐이었던 것이다. 나라와 시국까지 가는 것이 아닌, 자기객관화에서부터 현실인식이 불가능한 무능한 간신 그 자체였던 것이다.

당연히 바보가 아닌 왕건은 이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매번 거절했고 결국 완전히 적으로 갈라서게 된다. 이후 궁예의 장인인 강 장자와 손을 잡고 궁예의 아들들을 보위에 올리려는 역모를 꾸민다. 늘상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어함을 피력하며 자신은 단순히 권력과 재물을 추구하는 자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그 자신이 공명심과 권력욕에 불타는 간신, 간웅에 불과했다. 왕건이 그를 간웅일 뿐이라며 혹평하자, 오히려 몹시도 유쾌한 표정으로 "그거 좋지, 간웅 좋지,"라며 흡족하기도 한다. 간웅도 어쨌든 영웅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태조왕건 자체가 삼국지 연의를 노골적으로 오마쥬한 것을 볼 때 간웅 발언에서 떠오를 인물은 당연히 조조인데, 아지태를 조조와 비기기엔 능력, 식견, 야망, 심지어 조조가 비판 받는 인품 면에서도 넘사벽으로 모자란다. 좋게 봐 주려 해도 간사한 '영웅' 이라 칭해 주기엔 아지태는 턱없이 부족하며 그저 책 읽고 헛바람들린 헛똑똑이이자 허영심에 찬 간신, 소인배일 뿐이니 간웅이라는 호칭조차도 분수에 넘치는 찬사일 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아지태는 궁예가 처음 몸을 의탁했던 기훤과도 일맥상통한다. 기훤은 상황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영웅'이란 명성과 자존심에만 집착한 나머지, 양길과 싸우겠다는 무리수를 둔다. 이미 민심을 잃은 상태에서 결과가 뻔히 보이는 전쟁을 추구한 끝에, 기훤은 밤중에 부하 원회에게 비명횡사 당하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지태도 태봉의 상황에 대해선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대제국을 이루어 자신의 이름이 영웅-위인으로서 후세에 남는데만 집착을 했고 그 결과 목숨을 잃고 자신은 역적으로 남게 되었다.

4. 평가

아지태: 이곳 내원은 폐하와 이 제국의 정신적인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종간: 그렇소이다. 아 학사도 많은 공부를 거쳐 세상의 존경을 받는다 들었소이다만.
아지태: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저 천자문 정도 뗀 것을 가지고 별 말씀을 다 하시옵니다.
종간: 겸손이란 모르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오이다?
궁예: 내원. 손님에게 그 무슨, 그리 말씀을 하시오.
아지태: 소인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모양이옵니다.
종간: 네, 이 사악한 자야! 여기가 어디라고, 간교한 세 치 혓바닥으로 폐하의 안목을 흐리게 하느냐! 대동방국이라니! 그 말은 일찍이 폐하께서 이 나라를 출범시킬 때부터 해 온 말씀이니라. 간교함으로 눈을 흐리게 하고 귀를 막고 요설로서 이루지 못할 꿈을 현실처럼 속이고 있으니 능지처참을 할 놈이 아닌가!
태조 왕건 46화, 아지태와 처음 대면한 종간의 평
그래서 당신을 간웅이라 하는 것이오. 머리는 있으나 나눌 가슴은 없고, 학문은 가지고 있으되 그 씀씀이가 모두 사악하니 어찌 목숨을 나눌 수가 있겠소이까.
찬탈을 권유하는 아지태에 대한 왕건의 평
이런 간악한 놈! 네놈은 아지태가 아니냐?
자신의 꿈에 갑자기 나타난 아지태에 대한 궁예의 반응
자네는 실성한 사람일세. 삐뚤어진 천재야! 자네의 그 망상이 결국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걸세.
61화 박유가 아지태에게.
아지태라는 사람은 학문의 깊이가 분명 큰 인물이옵니다. 허나 그의 사상은 대단히 고집스럽고 독선적이며 현실보다는 이상에 너무 치우쳐 있사옵니다. 그 사람의 이상은 너무도 커서, 이 삼한을 마치 작은 연못처럼 보고 있는것 같사옵니다.
그 사람의 재주는 뛰어났으나 때로는 과격하고 위험하여 스승께서는[22] 네 뜻을 펼치기 전에 네 목숨을 먼저 잃지 않을까 걱정되노라 하신 적이 있었사옵니다. 경계를 하시면서 앞뒤를 잘 살피셔야 할 것이옵니다. 그 사람의 속과 깊이를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옵니다.
태조왕건 59화 박유가 아지태에게 내린 평가.
생각할수록... 아지태를 만난 것은 비극이었어....
태조 왕건 64화 종간
아지태 그 자는 이 바둑판으로 치면 정공법을 쓰지 못하고 순간적인 기회와 이득만을 챙기며 사석을 놓는 소인배일세.
태조 왕건 94화 아지태를 평가하는 왕건
그 자는 기회주의자이옵니다! 위험한 지식인이고 몽상가이옵니다!
태조 왕건 100화 왕건의 충언[23]


말 그대로 평은 최악이며 나아가 마진~ 태봉국 전체의 공공의 적 수준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조연들치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증오받는 인물은 드물다. 서로를 견제하던 종간 왕건이 아지태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힘을 합쳐 함께 대항한것만 봐도 희대의 빌런이다.

은부로부터 아지태에 대한 정보를 모으다가 이상이 너무 높아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종간은 간신이라 판단하고 처음 만난 자리(46화)에서 '네 이 사악한 자야!' 라고 호통을 쳤으며, 천도 얘기라든가 북벌 얘기를 계속해서 꺼내서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다 보니 패서 호족들이나 다른 관리들 역시 그를 궁예를 홀리는 요상한 인물로 취급한다.

일찍이 아지태와 동문수학한 사이로 설정된 박유도 처음 조정에 출사한 직후부터 면전에서 대놓고 "앞으로 나의 행보는 자네의 횡포를 막는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종간과의 대화에서 아지태를 못 쓸 인간이라고 대놓고 비판하였다. 박유의 언급을 보면 스승에게서조차도 아지태는 위험 인물로 취급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박유는 은부에게 아지태를 제거하고 궁예를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 왕건과 손을 잡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자신을 오랜 기간 괴롭히던 종간에게 전혀 악감정을 가지지 않으며, 임춘길 같은 소인배는 아예 0.001%도 관심을 주지 않을 정도로, 대인배에 성인 군자로 묘사되는 왕건마저도 결국 아지태를 대놓고 혐오하였다. 공적[24]으로나, 사적[25]으로나, 도리[26]로서나, 아지태는 모든 면에서 왕건에게 증오받을 만한 행동을 많이 하였기 때문. 가령 87화에 아지태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왕건은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냈으며, 88화에서 또다시 반역을 제의받자 대놓고 아지태를 비난했다. 그나마 같은 화에서 왕건의 참모인 태평이 예사 인물은 아니라고 평가하긴 하지만. 아지태의 반역 문제로 궁예와 대화할 때, 왕건은 대놓고 아지태를 사악한 인물이라고 비난하였으며, 101화에서 왕건은 처형을 눈앞에 둔 상황임에도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아지태에 대해 어떻게 해도 도리가 없는 자라고 말하며 은혜를 베풀지 말라고 궁예에게 간청하기까지 했다.

협력이나 그 비슷한 것이라도 했던 유일한 상대는 후반부 접촉한 강 장자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된 협력 관계라기보단 적당히 이용해먹고 태자를 황제에 올리는 즉시 토사구팽할 상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강 장자는 아무리 무능하다느니 어리석다느니 해도 황후의 아버지이자 태자들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종간,왕건이며 서로 견제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과연 강 장자를 죽이는걸 보고만 있겠는가? 서로간에 신뢰도 없고 통수칠 생각만 하던 어설프기 짝이 없는 반역은 당연히 성공할 리가 없었고 결국 둘 다 반역 이전 쇠방망이에 차례로 맞아서 비참하게 처형당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5. 기타

#
101화 아지태의 최후의 재판 하루 전, 왕건과 단 둘이 만나 왕건이 아지태에게 죄를 모두 인정하면 살려주겠다 했으나 그에 반박하여 자신의 사상을 왕건에게 연설하며 마지막 반박과 협박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지태 배역을 맡은 배우 김인태의 미친 연기력이 아주 일품이라 평가받는다. 자신의 사상에 집착하는 아지태 그 자체에 융화된 그의 연기력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친듯한 역대급 명장면을 만들어 냈으며, 연기를 전공한 모든이들의 탄성을 자아낸 훌륭한 장면을 제대로 보여주어 훗날 큰 화제가 되었다. 그 미친 연기에 맞받아친 왕건역의 최수종 역시 만만치 않은 연기를 선보이며 본격 연기 대결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매우 소름돋고, 일품인 명장면이라 평가받고 있다.

캐릭터와 별개로 담당 배우인 김인태는 거의 평생에 걸쳐 부패한 위정자들의 연예계 탄압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정의의 투사였다. 윤인첨이 힘없는 문신 배역이라고 하나 배우 이미지에 더 가까운 이미지였다.

[1] 1998년 KBS 드라마 < 왕과 비>에서는 효령대군 역. [2] 그런데 사실 궁예를 슬슬 타락하게 만들고 궁예 태봉 멸망의 길로 인도한 진정한 원흉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3] 아지태의 철원 천도 제안만 해도 송악으로 천도한지 수 년밖에 되지 않았고 천도를 하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할 것이 뻔했음에도 궁예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강행한다. 더군다나 철원은 한 나라가 도읍지를 두기에는 최악의 입지조건이었는데, 철원이 쌀로 유명해지고 발전한 것은 저수지가 축조되고 철도 교통이 발달한 20세기나 되어서고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사실상 황무지에 가까웠다. 추울 뿐더러 식량 보급도 안되는 곳에 도읍지를 두겠다고 한 것이다. 철원이 도읍지로서 유리한 것은 주변이 산지라 방어하기 좋다는 딱 하나 뿐이었다. [4] 이미 궁예가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이전부터 아지태는 왕건을 향해 "궁예는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할 사람은 되지 못하며 나라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왕건 당신이다."라고 하며 사람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5] 특히 신방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에 장일, 장수장과 함께 복지겸 아래 내군장군으로 들어가 꾸준히 등장한다. 장일과 장수장이 전사한 뒤에도 계속 내군의 중진을 수행하다가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한다. [6] 부석사에서 경문왕 초상화를 보고서 분노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그 초상화에 칼을 꽂은 뒤 신라를 멸도(滅都, 멸망시켜 버려야 할 나라)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7] 청주에 신라 왕실과 대립하여 귀향한 당나라 유학파 출신 지식인들이 많다는 것을 강조해 한창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열중하던 궁예의 를 솔깃하게 했고 이어 단순한 국가가 아닌 대 제국 건설의 위업을 이룰 것을 주장해 궁예의 야망에 부채질을 했다. [8] 과거 종간이 궁예에게 궁궐을 지으면 궁인들을 채우고 화려근엄한 용포도 갖춰 입으라고 권했다가 궁예가 지금 우리가 그런 사치를 부리면 쓰냐고 점잖게 타일렀는데, 아지태의 권유에 금방 따르게 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임으로써 궁예가 이미 초심을 잃었다는 걸 보여준다. [9] 최응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비자의 고전을 줄줄 읊기 시작하는데 7번째까지 읊었을 때 궁예가 받아서 나머지 3가지를 읊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9번째라면서 앞의 내용을 강조한다. [10] 태봉국의 국력으로는 뭘 할래야 할 수도 없었고, 일명 '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 에피소드를 통해 아지태가 준비하고 있는 북벌에 종군할 병사들은 열병식도 제대로 하지 못할만큼 한심한 상태임이 드러난 판국이었다. 하지만 아지태는 이 순간에조차 궁예 탓을 하며 아예 궁예를 끌어내리고 정권을 잡아서는 어떻게든 일단 북진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낸다. [11] 강 장자 황후의 부친이며 황제의 장인이라는 타이틀 이외에는 내세울거 하나 없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서로간의 신뢰도 없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역모를 꾸미다가 결국 둘 다 쇠방망이에 차례로 맞아 고통스럽게 절명하는 것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12] 98화에서 열병식 때 궁예가 떨고 있는 입전을 보고 "감춘 것이 있느냐"고 물었고 "오늘은 관심법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궁예가 두렵기도 하고 열병식을 하던 그 날에 아녀자들이 무더기로 처형당하는 모습을 직접 봤던 데다가 아지태의 역모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차라리 내군에 고변하여 목숨이라도 보존한다는 선택을 한 것. [13] 실제 사료에서는 아지태가 입전과 신방을 참소하였는데 드라마에서는 반대로 진행되었다. [14] 북벌이 실패한 것은 왕건 때문이다. 궁예 암살 시도 건은 왕건 세력이 꾸민 짓이다, 자신을 믿으면 북벌을 이룰 수 있다 등. [15] 아지태가 석총과 왕건의 만남을 어찌 알았는지는 작중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왕건과 석총은 당시 유긍달의 집에서 만났는데 유긍달의 집사는 아지태를 따르던 임춘길에게 매수된 인물이었으므로 그를 통해 임춘길에게 보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16] 그 사실을 간신배인 아지태가 말해서 그렇지 드라마 초반에 도선 등이 복선을 마구 뿌려댄 걸 감안하면 전개상으로만 볼 때 틀린 지적은 아니다. [17] 법봉으로 때렸는데 한번에 죽지 않자 다시 한번 더 때리고 나서야 숨이 끊어졌다. 보통 이런 역할은 금대가 맡지만 이번에는 무고한 사람이 아닌지라 금대 대신 장일이 맡았다. [18] 앞서 읽었듯이 여기 아지태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에 집착하며 자기 이상밖에 모르는 사악한 인물'이라고 평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마저 만류를 할 정도면 궁예가 보통 미친게 아님을 반증한다. [19] 107화에서 나온 대사이다. [20] 행형하기 직전에 궁예는 행형을 저지하는 순간 그것을 죄로 받아들여 같이 처형하겠다고 관료들에게 경고해 모두를 놀라 아무말도 못하게 만들었다. [21] 사실 작중에서 왕건, 견훤, 최승우 등도 북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꿈 꿔볼 만한 멋진 야망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궁예나 아지태처럼 현실을 무시하고 북벌만 외쳐댄 망상증 환자는 절대 아니었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시급한 삼한통일을 우선시했으며 백성들의 민생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왕건은 말할 것도 없고 견훤과 최승우도 태봉과 후백제 전쟁이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전쟁이 잠시 멈췄으니 백성들도 한동안은 편하겠지만, 삼한통일을 해야 진정 백성들에게 편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22] 중국에서 유학할 때 같은 스승에게 배웠다고 한다. [23] 아지태가 반역을 하고 칼을 들이대었던 상황과 정책들의 실패에 절망한 궁예 앞에서 왕건은 아지태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충고를 한다. [24] 허황된 북벌 계획과 무리한 천도를 추진하여 나라를 망침. [25] 의형제인 궁예가 암군이 되는 원인 제공. [26] 왕건에게 여러번 반역을 제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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