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박영규(고려)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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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박영규의 모습[오프닝] |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는 임혁주.2. 캐스팅
배우 임혁주는 광주광역시가 고향이고 전봉준, 현준호 등 전라도 출신 유명인들을 연기한 바 있다. 1996년 KBS 드라마 < 용의 눈물>에서는 맹사성 역, 2002년 SBS 드라마 < 야인시대>에서는 장택상 역, 2006년 SBS 드라마 < 연개소문>에서는 우문술 역.아무래도 견훤의 사위라는 점에서 존재감이 있다보니 당시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는 후삼국시대~ 고려 초기 역사를 아는 몇몇 네티즌들이 역사상의 인물인 박영규가 등장하기 전에 순풍 산부인과에서 사위 역으로 인기몰이를 했던[2] 같은 이름의 배우 박영규에게 배역을 맡겨야 한다는 꾸준글을 올리고는 했다. 사실 드라마 배역을 그런 식으로 결정할 건 아니라서, 그러면 오지명이 견훤이냐? 는 식의 반박글도 있었고, 그 당시 박영규가 사극 연기력이 검증된 상태는 아니었다지만 맡겼다면 어느정도 화제도 될 것이고 실제로 맡아했었던 사극 연기도 훌륭한 편이니 생각보다 좋은 선택이기는 했을 것이다.[3]
3. 극중 행적
극 전반부에 공직과 함께 견훤의 휘하에 들어온 호족으로서 역사에서처럼 자신의 고향이자 근거지인 승평(오늘날 순천시)의 대호족으로 명망이 있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견훤이 직접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극 중에서는 견훤의 후궁이자 금강의 친모가 되는 고비라는 여인을 견훤에게 바치기도 했는데 그녀는 박영규의 일족으로 설정되어 있었다.[4]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왕후 박씨와 고비의 사이 갈라짐과 각자 자식들끼리의 앙금들이 나중에 후백제 멸망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물론 이는 박영규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후백제 일대의 커다란 호족들과 혼맥을 맺어 국력을 더욱 키우고 왕실 권위를 높인다는 의도는 좋았던 사례다. 이후 견훤을 따라 고창 전투, 운주성 전투 등 여러 전장을 누비며 활약했다. 특히 견훤이 최승우와 더불어 마지막까지 신뢰했던 인물인데 비록 최승우의 지략과 능력에 미치지는 못할지언정 다른 장수들이 막판에 견훤을 배신하는 것과 달리 끝까지 옆에서 보좌하는 등 우직한 충신으로 후백제의 장수들 중에서는 그래도 비범한 능력과 진중한 인품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중반부까지는 견훤의 사위이자 충신 정도의 적당한 비중이었으나 극 후반부까지 후백제의 후계자 분쟁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존재감과 비중이 올라간다. 처음에는 금강의 어미 고비의 일족이자 왕후 박씨의 딸과 혼인해 둘 사이에 낀 입장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후계자 문제에 있어서 신검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린 중립을 고수했다. 후백제의 군세가 견훤, 최승우, 금강의 본대와 신검 삼형제와 능환, 능애의 파견대로 나뉠때 신검을 따라 벽진군 등에종군한 적이 많았고 신검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신료들의 뜻에 동참하기도 했다.(166화) 금강과 독대를 할 때도 신검이 황제로서의 자질과 역량이 충분하다며 편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 군이 대패하여 금강, 파진찬 최승우와 함께 견훤을 무사히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운주성 전투에서는 늙은 탓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견훤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금강, 최승우, 김총 등과 함께 퇴각을 권유하나 신검이 무리하게 적진으로 들어간 탓에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이 때 군졸로 변장하여 견훤을 수행하며 퇴각하는 와중에도 전의성주 이치[5]가 이끄는 고려의 추격군과 맞서 싸웠다. 특히 이치와 호각으로 맞서서 시간을 지연시켜 견훤 일행의 탈출에 크게 기여하였다. 운주성 전투 이후 끝내 신검으로는 도저히 고려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나머지[6][7] 금강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견훤의 뜻에 따르며 상술한 활약 덕분에 견훤의 신임을 얻어 최승우와 함께 금강의 후견인 격으로 지목되어 신덕이 가지고 있던 모든 군권을 일임받게 되고 최승우는 능환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을 넘겨받게 된다.
하지만 최승우는 자신의 운명을 안지라 이미 이 일에 흥미를 잃어버려서 박영규 혼자 모든걸 처리해야 했는데 문제는 이전까지 군권은 신덕, 상해 쪽이(수군은 상귀가)꽉 장악하고 있었던 상태라 견훤의 말 몇마디로 군권이 하루아침에 넘어올리는 없었기에 아직 군권을 모두 장악하지 못했고 더불어 장수들 지지 세력도 부실했던 탓에[8] 신검의 쿠데타로 인해 그 자리에서 붙잡히고 애술, 김총과 함께 구금되었다가 신검이 자신의 매부임을 고려하여 목숨을 보존하여 낙향시키는 형벌을 내리는 정도로 그쳤다.[9] 낙향한 이후 고향에서 지내던 중 김제 금산사에 감금돼있던 견훤이 왕사(王師)인 경보대사를 통해 그 곳을 탈출해 고려로 가겠다는 서찰을 보낸다. 아무리 장인어른의 부탁이라지만 처남들을 배신하는 일인데다 후백제에 화가 될 수 있기에 박영규는 고민에 빠지지만 이복 동생과 파진찬을 죽이고 아버지를 감금한것도 모자라 남편마저 내쳐버린 친동생들에게 화가 난 국대부인이 견훤을 도와줄 것을 청하자 마음을 다잡고는 자신이 부리는 사람들을 보내 견훤을 금산사에서 빼내어 나주를 통해 고려로 귀순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견훤의 귀부 이후에는 더 이상의 출연이 없었다.
태조 왕건 종영 후 고령의 박영규 역할은 제국의 아침에서 김상순이 맡게 된다. 다른 후백제 출신 인물들과 달리 고려에서도 큰 권력을 누리지만 나중에 광종에게 숙청당한다.
[오프닝]
오프닝에서의 박영규. 맨 가운데 인물이 바로 박영규다. 좌우에 있는 인물은 각각 최필과 신덕.
[2]
단순히 주인공의 사위 역의 배우가 아니라 장인 오지명과의 대립구도가 시트콤의 중심 소재 중 하나여서 '사위'라는 아이덴티티가 굉장히 큰 역이었다.
[3]
실제로 배우 박영규는 2014년 KBS 대하사극
정도전에서 고려말의 권신인 이인임으로 열연하며 기대감을 충족시켜준 바 있었다.
[4]
정작 장모인 박씨 부인은 처음에 박영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자신의 딸과 나이차가 꽤나 나는데다 후궁이 되는 여인까지 소개하였던 것 때문. 하지만 극의 흐름이 진행되면서 박영규를 사위로 인정하고 잘 대우해주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박영규의 생몰년도가 불분명한데(사료에는 왕건이 박영규를 형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발언을 해서 왕건보다 연장자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담당 배우인 임혁주의 나이 때문에 나이차가 큰 걸로 설정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나이차가 많은 남녀가 부부가 되는 일은 요즘도 드물지 않으며 박씨도 처음에는 결혼 당시 15살이던 딸과 나이차가 너무 난다며 반대하기도 했으니
무리수 설정은 아니다. 더불어서 견훤이 백제를 다시 부활시킨 시기가 30대 초중반이고 딸인 국대부인은 15살에 박영규와 나이차가 많다는 설정이니
태조 왕건 내에서는 견훤 또래였거나 오히려 견훤보다 연장자였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나이 관련 설정을
태조 왕건에서 세심하게 해놓은 건 아니지만.
[5]
운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도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전의 이씨의 시조이다.
[6]
고창 전투에서는 신검의 고의 트롤링 때문에 견훤과 최승우, 금강, 그리고 박영규 자신까지 고려군의 역습에 비참한 꼴로 목숨만 건져 겨우 도망쳤으며,
운주성 전투에서는 신검이 아집에 빠져 철군 명령을 거부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강행하다가 그렇게 다 말아먹고 또 군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등 신검의 여러 실책들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반면 금강은 적어도 신검보다 전쟁에서 비교도 안되게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 자식으로써 견훤을 생각하는 효심도 보여줬다.
[7]
박영규의 이러한 심정은 신검의 쿠데타 이후 낙향하여 부인과의 대화에서 직접 드러난다. 박영규 曰"저들(신검 일당)은 옥좌에 욕심이 나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고려를 상대하지 못 합니다! 폐하께서 금강 태자께 대위를 전하고자 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어요!"
[8]
군부의 장수들이 죄다 신검 일파의 사람이라 박영규를 따르는 장수는 없다시피 했으며 그나마 애술과 김총이 유일하게 견훤은 물론 금강과 박영규에게도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긴 했으나 이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쿠데타 당시 그 둘이 변수가 될 것을 우려한 능환에 의해 둘다 박영규와 마찬가지로 구금되면서 별 도움이 못됐다.
[9]
신검의 쿠데타를 적극 지지한 왕후 박씨도 자신의 딸의
처지를 고려해 그의 목숨만은 살려줄 것을
능환,
능애 등 주동 세력에게 요청한 적이 있었다. 신검 역시 매부가 후계를 둘러싼 갈등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과 자신의 누이를 고려하여 박영규를 죽일 생각은 결코 없었다. 또한 박영규라는 인물 자체도 누군가에게 심히 치우치기 보다는 자신의 임무를 다 하는 우직한 사람인 데다, 조정에서 나름의 인망이 있다는 점도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