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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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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국공립 학교, †:개신교계 학교, 외국:외국공립 학교 이: 이홍하 계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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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대학교
亞細亞大學校
Asia University
파일:아시아대학교 로고.svg
<colbgcolor=#2265AE><colcolor=#fff> 교훈 법고창신(法古創新), 수기안인(修己安人)
슬로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대학교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분류 사립대학
개교 2003년 3월 5일 아시아전통과학대학교
폐교 2008년 2월 29일
재단 및 법인 학교법인 아시아교육재단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어봉지길 285-10 (남산면)
링크 http://www.asiau.ac.kr (웹 아카이브)
캠퍼스

1. 개요2. 역사
2.1. 연혁2.2. 개교2.3. 파행2.4. 폐교2.5. 대구한의대학교 오성캠퍼스
3. 학부
3.1. 보건한방학부3.2. 국제학부3.3. 사회과학부3.4. 디자인학부3.5. 스포츠과학부3.6. 예술학부3.7. 자율전공학부
4. 캠퍼스 및 부속시설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아시아대학교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었던 4년제 종합대학이다. 2003년 3월 5일 아시아전통과학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첫 개교한 후 동년 3월 20일 아시아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개교 당시의 대학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통 문화를 연구하고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을 이념으로 삼았다.

하지만 실상은 바로 아래의 사진만 금방 봐도 빠르게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로 서남대학교와 함께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막장 대학교였다. 부적격 대학교의 난립과 비리 사학이라는 교육계의 2가지 고질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던 부실대학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가진 대학교였으며, 폐교 이후에도 학적 기록 삭제 사건 같은 온갖 말썽들을 일으켰다. 그나마 아시아대학교 사태 이후로는 각 대학의 학적을 교육부에서 통합 관리하게 되면서 학교가 폐교되더라도 학적이 사라지는 일은 이제는 없어졌다.

2. 역사

파일:attachment/1_160.jpg
파일:attachment/2_104.jpg

2.1. 연혁

2.2.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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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아시아전통과학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후 얼마 안 가 아시아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대학',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학교의 이념으로 삼았다.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언급한 말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유사한 뜻이다. 실제로 전통 의학에 관한 학과를 중점으로 개설하였다.

교육도시를 표방하는 대구광역시 경산시에서 윗자리를 얻어보려고 했으나, 광고 실패와 자리 선점 실패라는 이중고를 입었다. 경산시에서도 꽤나 벽지에 속하는 남산면 상대온천에서도 인가가 없는 속으로 약 800m 가량 걸어가야 나온다. 상대온천은 이 근방에서는 꽤나 유명한 온천이지만, 그 옆에 있는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대학교가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경산 시민들조차 그 존재를 모를 정도였다.

스쿨버스도 있었지만 역시나 문제가 심각했다. 등교 시간에는 귀빈예식장 ~ 동대구역 ~ 동구청 ~ 반야월역 ~ 영남대학교 노선, 영남대학교 시착 노선, 죽전네거리 ~ 7호광장 ~ 반월당 ~ 수성구청 ~ 시지 노선, 남부정류장 ~ 옥산동 ~ 경산역 ~ 계양네거리 ~ 영남대학교 노선이 있었는데 각각 1회씩이라 등교 노선은 겨우 하루 4회 운행했다. 거기다 하교 노선도 다를 게 없어서 경산역 종착 노선, 시지 종착 노선, 반야월역 종착 노선이 있었지만 시지 종착 노선 2회을 제외하면 나머지 노선은 1회씩이라 하교 노선 역시 겨우 하루 4회 운행했다.

대중교통도 시원치 않아서 당시 99번 시내버스(현재 990번)가 들어왔으나, 상대온천까지 일부 연장 운행이라 역시 겨우 하루 왕복 4번 운행했으며, 그나마 상대온천 정류장에서 800m를 걸어와야만 했다. 그나마 99번은 서문시장까지 나갔으니 양반이었고, 인근 여천동 정류장에 들어오던 200-1번은 하루 1회, 222번도 역시 하루 1회, 399번 하루 2회였고, 그나마 경산시장이나 자인정류장까지밖에 안 가는 노선이라 대중교통 역시 참 거지같았다. 차라리 30~40분 정도 걸어나가서 남방리 정류장에서 자주 오는 99번 본선, 399번 본선 등을 타는 게 훨씬 나았으나, 워낙 벽지라 해가 지면 위험하기도 했기에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2.3. 파행

아시아대학교에 이런 엄청난 일이 - 어떻게 이런 사학이 인가받고 존재할 수가?

초기에는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으로 축구부도 유치하는 등 이런저런 성과가 있었다.[1] 그런데 이 축구부 역시 파행으로 운영을 하는 바람에 분노한 축구부원들은 학교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고, 일반 재학생과 타협해서 강의실만은 부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학교가 마지막으로 학생을 받은 2006년의 전체 정원이 640명이었는데, 신입생은 겨우 160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건 아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라고 생각한 3, 4학년생들은 전부 다른 학교로 편입학을 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없는 학생수는 계속해서 더 줄어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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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줄면서 수입이 줄어들자, 학교 측은 학생 충원을 위해 부랴부랴 2004년, 중국인 유학생들을 유치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국인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비자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국인 유학생'들의 목적은 대다수가 대학 입학이 아니라, 학생비자를 명목으로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이었다. 3번째 사진은 한약자원학과의 실습수업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은 중국인 학생들의 다도학 실습수업이라고 한다.

2005년, 설립자와 총장이 비리로 기소되었다. 교수 임용과정에서 1인당 1억여원씩 돈을 받았고, 공사비도 허위로 부풀린 것이다. 특히 대학 등록 과정에서 등록비를 넣었다가 다음날 빼는 일을 반복하다가 그때까지의 부정이 한꺼번에 지역사회에 알려졌으며, 당연히 이런 문제점들로 자연히 학교는 엉망이 되었다. 공사업체 사장과 재단은 아는 사이였으며, 이들이 기숙사비를 횡령해서 기숙사에 전기, 가스, 수도가 모두 끊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2] 기숙사비는 1학기 40만원으로, 당시 30만대였던 포항공과대학교보단 살짝 높았다. 그런데 그 기숙사도 꼭대기층에 일부 강의실을 개조한 형태였다고 한다. 서남대학교의 기숙사보다도 더 열악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폐쇄되어 볼 수 없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웹사이트에는 당시 학생회장이 남긴 게시물이 올라와 이를 통해 학교 상태가 그야말로 처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총학생회장의 아이디로 여겨지는 '自主아시아'로 검색해보면 정말 처절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다 망해가던 한총련에까지 가서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다.

2.4. 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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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2007년 2월부터 신입생 모집을 정지시키고 횡령 및 부정집행 금액 116억을 물어내지 않으면 강제 폐교시키겠다고 공지했다. 그리고 2008년 2월 28일에 제2회 졸업식 끝으로 2월 29일에 강제 폐교 및 학교법인 해체 처분을 내렸다.

사실 아시아대학교가 유명해진 건 폐교 때문만이 아니다. 교육 당국으로부터 학생 처리 대책 제출 요구와 검찰의 추가 수사를 우려한 재단 측 관계자들이 학생 처리 대책을 제출하지 않고 장부 외에 학생 관련 서류를 완전히 찢어버리고 컴퓨터 기록까지 완전히 지워버린[3] 도망쳐버려서 학생들의 학적 기록이 모두 사라진 탓에 재학생들의 최종 학력은 그대로 고졸이 되는 바람에 출교와 다름 없게 되었다.[4] 이렇게 되자 구제받은[5] 일부 학생들을 제외한 많은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편입학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도 학적 자료는 남아있는 자료를 어떻게든 싹싹 긁어모아 경북대학교를 거쳐 한국사학진흥재단에서 관리 중이라고 했지만, 학교는 사라졌으니 남은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잃어버린 2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 보면 아시아대학교의 막장 행태를 냅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도 참 대책없긴 하다. 2011년 10월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재학생의 경우 경북대학교 계명대학교 편입학했으나, 일부는 끝내 편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후 교육부도 방침을 바꿔서 학적에 관한 자료들은 각 학교들이 관리하는 것에서 교육부가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학적 관리 방법을 변경했다. 그렇게 해야만 대학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재학생들의 학적이 날아가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 비자 판매 사건 역시 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면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관련 법령도 신설했다.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외교통상부와 협약했는데, 유학생 유치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대학의 유학에 대한 비자 발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협약의 내용이다.

2.5. 대구한의대학교 오성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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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된 후 부지가 짓다 만 폐건물로 남아 있다가 2010년, 대한민국 대학교 사상 최초로 경매에 부쳐졌으나 여러 번 유찰되었다. 채권자만 160명이 넘는데다가 학교부지는 용도변경이 어렵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첫 감정가는 110억 6,400만원이었지만 유찰된 이후 3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보다 30% 낮은 77억 4,500만원에 다시 경매가 진행되었다.[6]

결국 대구한의대학교에서 40억 8,000만원에 부지를 매입하면서 이 폐건물은 마침내 완공되었다. 대구한의대학교에서는 방치되었던 강의동을 마저 짓고 리모델링하여 2012년 대구한의대 오성캠퍼스로 개교하였다. 꽤나 오래 방치되었던 건물이었고 폐교되었던 학교 건물이라서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오성캠퍼스가 되면서 아시아대 당시 건물 2동 중 멀쩡한 건물은 한방융합관, 짓다가 말았던 건물은 한방미래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운동장, 축구대, 농구대 하나 뿐이었던 곳에 풋살장이 생겼으며 축구대, 농구대도 교체되었다. 내부를 전부 새로 도배하고 도색하고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까지 전부 새 걸로 교체해서 상당히 깨끗해졌다. 옛 아시아대학교 시절과 현 대구한의대학교 오성캠퍼스를 비교해 보면 불과 10년 안팎이지만 상전벽해 수준의 엄청난 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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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온천에서 대구한의대학교 오성캠퍼스 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정문 사진이다. 이 곳으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곡지에서 올라오는 뒷길이 실제 정문 역할을 하고 있어서 차량은 모두 이 쪽으로 다닌다. 아시아대학교 시절에는 뒷길이 없었고, 대구한의대학교에서 인수하면서 새로 뚫은 길인데 이 길이 2019년 왕복 6차로의 삼성현로와 이어지면서 이전보다 교통이 꽤 편해졌다. 덩달아 도로명주소까지 바뀌게 되었다. 원래주소는 상대로115길 37이다.

폐교 후 2009년 1월 시내버스 노선이 전면 개편되면서 대구광역시 시내버스 - 경산시 시내버스간 무료 환승제가 도입되고 시계외요금도 폐지되었다. 990번은 이제 들어오지 않고 399번이 있는데 남산1번, 남산2번이 상대온천 정류장으로 들어오게 되어 훨씬 사정이 나아졌다. 단, 남산1번을 제외하면 399번은 대구행만 아침에 1번 편도로, 남산2번은 9시 50분 정평역발 송림행만 운행한다. 2014년 3월 3일 이후로는 개편으로 109번이 들어온다.

3. 학부

웹 아카이브에 남아있는 당시 아시아대학교 홈페이지 자료 중에서 열람 가능한 최신의 정보인 2006년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폐교 직전인 2006년에 배상면주가와 협약을 맺어 주조학과를 신설할 계획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고 이후 폐교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3.1. 보건한방학부

3.2. 국제학부

3.3. 사회과학부

3.4. 디자인학부

3.5. 스포츠과학부

3.6. 예술학부

3.7. 자율전공학부

4. 캠퍼스 및 부속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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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시설이 건물 2동, 운동장, 축구대, 농구대 뿐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서 유명해졌다. 강의동 하나에 대학본부, 교수연구실, 강의실, 편의시설, 기숙사 등 시설들이 모두 있었다. 그나마 지상 5층짜리 멀쩡한 강의동 1동 외에 지상 5층, 지하 1층의 또다른 강의동 1동은 짓다 말아서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특히 짓다가 만 강의동의 경우 마치 영화 알 포인트에 나오는 건물 분위기가 나는 모습이었다.

폐교된 후 방치된 시절 이 학교를 방문한 사람들에 의해 각종 괴담들이 유포되었다. 관련 글. 귀신을 봤다느니, 알 수 없는 괴소리를 들었다느니... 다소 과장이 있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 얘기는 사실이었다. 폐교된 후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폐가였기 때문이다.

5. 여담

6. 관련 문서


[1] 대학 축구부 등의 운동부는 학교 등록금에 축구부 회비까지 모두 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보통 체육대학이 있는 곳에 축구부나 야구부같은 특성화운동부가 있으며 고등학교 운동부에서 스카우트해서 프로로 데뷔하거나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 운동부로 그대로 진학하게 된다. [2] 그 기숙사비는 한국전력공사, 도시가스회사 or LPG공급업자, 경산수도사업소에 낼 요금이었다. [3]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 장비로 자료 완전 삭제를 하고 학적, 재정 자료 등 민감 자료를 처리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탈거해서 도끼로 찍어서 물리적으로 파기했다. 당시 교육부에선 학적만이라도 복구를 하려고 대검찰청 포렌식팀의 협조를 얻어 복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정도로 파기된 자료는 당시는 물론이고 2024년의 기술력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하다. [4] 여기에 관리 허술로 대부분의 컴퓨터가 도둑맞은 것도 한 몫했다. [5] 혹은 미리 각종 증명서를 발급해 둔 [6] 군대 갔다오니 대학이 사라졌다… 아시아대 77억원에 2차 경매, 오갈데 없는 학생들 ‘울분의 5년' [7] 명신대학교가 폐교되었을 경우에도 명신대학교에만 수시 합격한 학생에 한하여 정시모집에 응시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