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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대 초반부터 퍼진 성과 관련된 유머. 성적 요소와 관련된 단어를 언어유희적으로 끼워넣은 판타지 장르의 야설이다. 이후 나우누리 하이텔 등 당시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국내 인터넷/ MP3파일 보급 초기에 배경음악을 깔고 녹음한 버전이 소리바다 등으로 돌기도 했다.해당 글은 소설일 뿐 실제로 저 두 섬 사이에는 섬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독도가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 있으니 울릉도와 동도 사이에 있는 서도 정도?
2. 전문
때는 삼국시대...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는 신비의 섬
좆도(島)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물에 잠겨 사라졌죠.
이 좆도의 행정구역을 굳이 말하자면 좆도 크군 만지면 커지리와 흔들면 조으리와 비비면 나오리가 있었고... 좆도 끝에는 '여기서부터 좆도 아님' 이라고 팻말을 붙여놓아서 행정구역의 철저함을 보였습니다.
우선 좆도의 국기는 성기(性旗)였습니다. 국화는 좆나리였고 국목은 쀼나무였습니다.
좆도에는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FucKing이었고[1], 왕비의 이름은 보지니아 왕비였습니다. 그리고 왕에게는 아리따운 딸도 있었으니, 그 이름은 조세피나[2] 공주였습니다.
왕이 사는 궁은 자궁(子宮)이었고 자궁의 호위대도 있었습니다. 이름을 말하자면 생리대(生理隊)와 자위대(自慰隊)였습니다. 생리대는 피 터지게 싸우고 자위대는 한 손으로 싸웠습니다. 아! 물론 좆도를 지키는 부대는 자위대였고요. 자위대는 칼을 오른손에 드는 부대와 왼손에 드는 부대로 나뉘었는데 오른손에 드는 부대가 더 많았습니다.
이 좆도의 환경을 살펴보면 우선 섬 전체를 빙 두르고 있는 유명한 해변 썬 오브 비치(son of beach)가 있고 섬 가운데에는 중국의 주작대로 같은 좆 꼴린대로(大路)가 있었습니다. 좆꼴린대로의 끝에는 꼴림(林)이라는 숲이 있었고 그 숲에는 좆까지마(馬)라는 야생마도 살았습니다. 좆도 사람들은 야생마를 구경하러 많이 모였는데 가끔 강간범(強姦-)이라는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대로를 한참 걷다 보면 혼외정사(婚外情寺)라는 절이 나오는데 이 절에는 신진대사(新陳代謝)라는 쥬지스님과 그 외에 두루할타, 마구할타라는 스님들이 계십니다.
아! 물론 구니도 있었습니다. 그 구니의 이름은 비구니와 사타구니였습니다.
그리고 이 숲을 나오면 큰 무덤이 있었는데 그 무덤을 사람들은 발기불능(勃起不陵)이라 불렀고 이 릉의 지묘는 왕자지묘(王子之墓)였습니다.[왕자지] 좆도에서 유통되는 화폐는 고환(睾圜)이었습니다.
좆도에 서식하는 어류를 말씀드리자면 민물고기로는 좆먹어(魚), 박어, 먹어, 빨어, 씹어 등이 있었고 바다에 서식하는 고기로는 콘돔과 오르가자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고기들을 잡는 배로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민물고기를 잡는 배는 포경선(包莖船)이었고 바다고기를 잡는 배는 마스터베이선(船)[4]이었습니다.
좆도는 광물도 풍부했습니다. 구리로는 좆탱구리, 십탱구리, 빠구리가 많이 생산되었고 철로서는 변강쇠가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좆도의 광물로 만든 창을 씹창(十槍)이라고 불렀는데 주민들은 씹창을 날려 씹새를 잡는데 사용했습니다.
아! 석유도 생산되었는데 그 석유는 뻑유(油)라 불렀고 휘발유는 좆까유라 불리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좆도의 일화를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좆도를 건국한 지 18번째의 해를 맞이하여 사람들은 연을 날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노인네의 쌍연(雙鳶)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이 이를 보고 크게 감탄하며 하는 말이 "좆도 퍽킹 18년에 이런 쌍연은 처음이로구나!"
좆도에는 유명한 바위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유방암(乳房巖)과 자궁암(子宮巖)이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맑은 샘물이 있고, 그 샘물은 오랄색수(色水)라 불렸는데 한 번 마시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100년이 흘러 좆도에는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큰 원형 경기장이 생겼습니다. 그 원형경기장의 이름은 빨닥세움이었습니다. 이 경기장 주위를 도는 하천도 있었는데... 꽉끼내라 불리었습니다. 그리고 딸치내라는 하천도 있었고요. 이 꽉끼내에는 조까네라는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러 나오면서 수다도 떨었지요. 그리고 꽉끼내와 빨닥세움을 잇는 다리는 할랑교말랑교라 불리었습니다.
경기장을 지나면 좆도의 철학가가 사는 집이 나옵니다. 그 철학가의 이름은 클리토리스(clitoris)로 그가 추구하던 철학은 오르가즘(orgasm)이었고 이 철학가가 다니는 대학은 성감대(性感大)였습니다.
그 옆에는 선비도 살고 있었는데 그 선비의 이름은 박 규였습니다.[5]
그리고 가을이면 풍성한 수확을 얻었는데... 그 쌀을 사람들은 닝기미라 불렀고 이 닝기미를 지고 다니는 지게는 좆빠지게였습니다.
이 좆도의 행정구역을 굳이 말하자면 좆도 크군 만지면 커지리와 흔들면 조으리와 비비면 나오리가 있었고... 좆도 끝에는 '여기서부터 좆도 아님' 이라고 팻말을 붙여놓아서 행정구역의 철저함을 보였습니다.
우선 좆도의 국기는 성기(性旗)였습니다. 국화는 좆나리였고 국목은 쀼나무였습니다.
좆도에는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FucKing이었고[1], 왕비의 이름은 보지니아 왕비였습니다. 그리고 왕에게는 아리따운 딸도 있었으니, 그 이름은 조세피나[2] 공주였습니다.
왕이 사는 궁은 자궁(子宮)이었고 자궁의 호위대도 있었습니다. 이름을 말하자면 생리대(生理隊)와 자위대(自慰隊)였습니다. 생리대는 피 터지게 싸우고 자위대는 한 손으로 싸웠습니다. 아! 물론 좆도를 지키는 부대는 자위대였고요. 자위대는 칼을 오른손에 드는 부대와 왼손에 드는 부대로 나뉘었는데 오른손에 드는 부대가 더 많았습니다.
이 좆도의 환경을 살펴보면 우선 섬 전체를 빙 두르고 있는 유명한 해변 썬 오브 비치(son of beach)가 있고 섬 가운데에는 중국의 주작대로 같은 좆 꼴린대로(大路)가 있었습니다. 좆꼴린대로의 끝에는 꼴림(林)이라는 숲이 있었고 그 숲에는 좆까지마(馬)라는 야생마도 살았습니다. 좆도 사람들은 야생마를 구경하러 많이 모였는데 가끔 강간범(強姦-)이라는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대로를 한참 걷다 보면 혼외정사(婚外情寺)라는 절이 나오는데 이 절에는 신진대사(新陳代謝)라는 쥬지스님과 그 외에 두루할타, 마구할타라는 스님들이 계십니다.
아! 물론 구니도 있었습니다. 그 구니의 이름은 비구니와 사타구니였습니다.
그리고 이 숲을 나오면 큰 무덤이 있었는데 그 무덤을 사람들은 발기불능(勃起不陵)이라 불렀고 이 릉의 지묘는 왕자지묘(王子之墓)였습니다.[왕자지] 좆도에서 유통되는 화폐는 고환(睾圜)이었습니다.
좆도에 서식하는 어류를 말씀드리자면 민물고기로는 좆먹어(魚), 박어, 먹어, 빨어, 씹어 등이 있었고 바다에 서식하는 고기로는 콘돔과 오르가자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고기들을 잡는 배로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민물고기를 잡는 배는 포경선(包莖船)이었고 바다고기를 잡는 배는 마스터베이선(船)[4]이었습니다.
좆도는 광물도 풍부했습니다. 구리로는 좆탱구리, 십탱구리, 빠구리가 많이 생산되었고 철로서는 변강쇠가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좆도의 광물로 만든 창을 씹창(十槍)이라고 불렀는데 주민들은 씹창을 날려 씹새를 잡는데 사용했습니다.
아! 석유도 생산되었는데 그 석유는 뻑유(油)라 불렀고 휘발유는 좆까유라 불리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좆도의 일화를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좆도를 건국한 지 18번째의 해를 맞이하여 사람들은 연을 날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노인네의 쌍연(雙鳶)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이 이를 보고 크게 감탄하며 하는 말이 "좆도 퍽킹 18년에 이런 쌍연은 처음이로구나!"
좆도에는 유명한 바위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유방암(乳房巖)과 자궁암(子宮巖)이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맑은 샘물이 있고, 그 샘물은 오랄색수(色水)라 불렸는데 한 번 마시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100년이 흘러 좆도에는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큰 원형 경기장이 생겼습니다. 그 원형경기장의 이름은 빨닥세움이었습니다. 이 경기장 주위를 도는 하천도 있었는데... 꽉끼내라 불리었습니다. 그리고 딸치내라는 하천도 있었고요. 이 꽉끼내에는 조까네라는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러 나오면서 수다도 떨었지요. 그리고 꽉끼내와 빨닥세움을 잇는 다리는 할랑교말랑교라 불리었습니다.
경기장을 지나면 좆도의 철학가가 사는 집이 나옵니다. 그 철학가의 이름은 클리토리스(clitoris)로 그가 추구하던 철학은 오르가즘(orgasm)이었고 이 철학가가 다니는 대학은 성감대(性感大)였습니다.
그 옆에는 선비도 살고 있었는데 그 선비의 이름은 박 규였습니다.[5]
그리고 가을이면 풍성한 수확을 얻었는데... 그 쌀을 사람들은 닝기미라 불렀고 이 닝기미를 지고 다니는 지게는 좆빠지게였습니다.
3. 색종실록(좆도야사)
비슷한 내용인 모큐멘터리 색종실록도 있다. 이건 성우 강수진이 직접 더빙했다.여담으로 배경음은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2편 잃어버린 세계: 쥬라기 공원의 1번 사운드 트랙 "The Lost World". 그래서 배경음이 웅장한 것.
좆도
야사(좆島冶史)
조선조야사(朝鮮朝冶史)에만 기록돼있는 왕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색종( 色宗)이다. 일부 사학자는 그래서 조선조 왕 이름의 순서가 태정태"색"문단세라고 주장한다.
색종의 종자는 명기왕후( 名器王后)요, 후궁의 이름은 전희빈( 前戲嬪)이라, 동궁의 이름은 십창대군( 十娼大君)으로 전해진다. 색종실록(色宗實錄) 18책에 보면 환상의 섬 좆도(島)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좆도의 지리적 위치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로 추정되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성기군(性器郡)인지, 경상북도 적군인지 크군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색종실록에 따르면 울릉도에 사는 남정네들이 하나둘씩 슬금슬금 배를 타고 좆도 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잦아지자, 울릉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이에 울릉도 여성단체인 질경련( 膣痙攣)에서 조정에 상소문을 보내기에, 이에 상소문을 접한 색종은 영의정 간통대부(姦通大夫)의 건의에 따라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색종은 강간정사(強姦正使)와 윤간부사(輪姦副使)를 조사 책임자로 하고 강간청(強姦廳)의 성 고문(性顧問)과 함께 현지에 다다르자, "여기부터는 좆도임"이라는 표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팻말의 뒷부분엔 "여기서부터는 좆도 아님"[6]이라고 써 있었다. 팻말 부근에서 기다리는 좆도국 외무부 의전장이 섬 치안 조직인 자위대(自慰隊)의 우두머리 포경대장(包莖大將)을 이끌고 색종의 사신을 영접하였었다. 이들은 좆도의 배로 갈아탔는데, 의전장에 따르면 고대 로마 시대의 유명한 조선가인 오나니무스의 기술을 전수받아 만든 마스터베이선(船)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들이 도착하자 인파가 이들의 국기인 성기(性旗)를 들고 국가인 감창(甘唱)[7]을 부르며 환영하였고 길가에는 국화인 좆나리가 만발해 있었다. 조사단은 영빈관인 옥문관(玉門館)[8]으로 안내되자 좆도의 통치자인 FucKing이 왕후 좆에피나(Josephina)와 후궁 애마(愛馬) 뉴엘 바기나(vagina)[9] 세자인 SucKing과 함께 마중을 나왔다.
이들이 말한 자신들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던 공민왕과 당대의 충신 정 몽정(鄭夢精)의 딸 사이에 남근태자(男根太子)가 태어났는데, 그는 고려가 멸망하자 추종세력을 이끌고 이곳 좆도로 와서 토호세력과 연합해 좆도국을 세우고 초대 공알왕[10]에 직위한다. 공알왕은 신라의 골품제도를 따서 신분제도를 만들었는데, 왕족은 색골(色骨), 좆도의 호족세력은 성골(性骨), 그리고 그 밑의 중간 지배층은 귀두품(龜頭品)이라 했다. 색종의 사신 방문 당시 좆도는 4대왕 FucKing의 치세였는데, 그는 공알왕의 4대손으로 재위 10년간 과감한 개혁으로 국제화· 세계화를 단행, 자신도 추잡왕(醜雜王)에서 FucKing으로 개명하였고, 이러한 개혁정책은 "씹년 유신" ( 十年維新)으로 명명되었다.
조선의 사신들은 영빈관인 옥문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울릉도 남자들의 실종사건을 협의하기 위해 좆도의 정궁인 자궁(子宮)으로 향했다. 좆도의 정궁인 자궁은 본전인 사정전(射精殿)과 별궁인 체외사정전(體外射精殿)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신들 얘기로 돌아오기 전에 좆도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해 보자. 자궁에 이르는 큰 길 이름은 하는 대로(大路)였고 호수 위에는 다리가 두 개 있었는데 성교(性橋)와 난교(亂橋)라 불리었다. 이 길의 끝에 있는 숲은 좆꼴림(林)이었고 이 숲에는 좆까지마(馬)라는 야생마와 강간범(強姦犯)이라는 호랑이도 살고 있었다. 숲에서 나오면 고환(睾換)이라는 화폐를 발명한 초대 공알왕의 능인 발기불능( 勃起不陵)과 요절한 왕자들의 무덤인 왕자지묘(王子之墓)[왕자지]가 있었다. 대로변에는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떠 만든 발딱세움이 있었고, 이 경기장 주위를 도는 조그만 하천은 꽉끼내였다. 이 냇가에는 큰 바위가 두 개 있었는데 이름하여 자궁암(子宮巖)과 유방암(乳房巖)이었고, 그 냇가에는 가 랭이라는 나물이 무수히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좆도에는 복상사(腹上寺)와 혼외정사(婚外情寺)라는 두 개의 큰 사찰이 있었는데, 복상사의 주지는 두루 할타였고 혼외정사는 마구할타라는 스님이 주지였다. 신진대사(新陳代謝)는 이들이 존경하는 원로스님이었다. 유명한 비구니도 있었는데, 법명은 사타구니였다. 신흥 종교로는 조루(早漏)아스터교로, 교주 교미하라(交尾下裸)가 이끌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예배 시간이 1분 이내라는 것이다.
좆도의 명문 대학은 꼴리지였고 여자 대학은 생리대(生理大)가 제일 명문이었다. 좆도의 학문적 명성은 유명한 철학자인 클리토리스(clitoris)로 대변되어진다. 그는 오르가즘(orgasm)이라는 철학을 추구했다. 성감대 체위학과 출신으로, 유명한 가수가 된 이 사람이 존 내논(John Lennon)이라는 사람인데 공연 중 바지를 벗는 것으로 유명하였다.[12] 또 이 학교 출신으로 유명한 권투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좆이 four먼(George Foreman)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실제 4개의 남근을 가지고 있어가지고 설라고 동시에 4명의 여자와 상대를 했다고 하나, 그걸 뒷받침할 자료를 현재 찾을 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좆도는 쌀로 유명했는데, 닝기미(米)와 니미(米)가 제일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었다. 농부들은 좆빠 지게라는 지게로 수확물을 날랐다. 또 겨울에는 이 볏짚으로 새끼를 꽈서 부소득을 올렸다. 광물로는 비철금속인 히쭈 구리와 철광석의 한 종류인 변강쇠가 생산되었다. 제3 빙하기 이후 발정기(發情紀) 지층에서는 유전도 발견됐는데, 빼유(拜油)가 생산·정제돼서 휘발유로 팔렸다. 좆도에서 제일 잘 팔리는 치약은 펠라치오(fellatio)였다. 좆도의 여인들은 미여 올림에 꿀을 많이 복용했는데, 처녀용으로는 처음허니(honey)가 있었고 유부녀들은 맨날허니를 먹었다. 좆도 사람들은 빵을 많이 먹었는데 제일 유명한 제과점이 빨리빨아상이고 돌림빵이 최고 인기품목이었다.
이리하야 조선으로 떠나기에 앞서 사신들은 유명한 해변인 썬오브비치(son of beach)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해변가에는 유람선인 때쉽이 좆도 일출 후에 떠나는 곳이었다. 이 해안의 앞바다 이름은 고만해(高萬海). 그러나 사신들의 귀국보고서는 배가 중간에 난파되는 바람에 전하여지지 않고 있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 사람의 구전으로 전하여지고 있음이 있으니 통탄스러울 뿐이다.
조선조야사(朝鮮朝冶史)에만 기록돼있는 왕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색종( 色宗)이다. 일부 사학자는 그래서 조선조 왕 이름의 순서가 태정태"색"문단세라고 주장한다.
색종의 종자는 명기왕후( 名器王后)요, 후궁의 이름은 전희빈( 前戲嬪)이라, 동궁의 이름은 십창대군( 十娼大君)으로 전해진다. 색종실록(色宗實錄) 18책에 보면 환상의 섬 좆도(島)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좆도의 지리적 위치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로 추정되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성기군(性器郡)인지, 경상북도 적군인지 크군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색종실록에 따르면 울릉도에 사는 남정네들이 하나둘씩 슬금슬금 배를 타고 좆도 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잦아지자, 울릉도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이에 울릉도 여성단체인 질경련( 膣痙攣)에서 조정에 상소문을 보내기에, 이에 상소문을 접한 색종은 영의정 간통대부(姦通大夫)의 건의에 따라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색종은 강간정사(強姦正使)와 윤간부사(輪姦副使)를 조사 책임자로 하고 강간청(強姦廳)의 성 고문(性顧問)과 함께 현지에 다다르자, "여기부터는 좆도임"이라는 표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팻말의 뒷부분엔 "여기서부터는 좆도 아님"[6]이라고 써 있었다. 팻말 부근에서 기다리는 좆도국 외무부 의전장이 섬 치안 조직인 자위대(自慰隊)의 우두머리 포경대장(包莖大將)을 이끌고 색종의 사신을 영접하였었다. 이들은 좆도의 배로 갈아탔는데, 의전장에 따르면 고대 로마 시대의 유명한 조선가인 오나니무스의 기술을 전수받아 만든 마스터베이선(船)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들이 도착하자 인파가 이들의 국기인 성기(性旗)를 들고 국가인 감창(甘唱)[7]을 부르며 환영하였고 길가에는 국화인 좆나리가 만발해 있었다. 조사단은 영빈관인 옥문관(玉門館)[8]으로 안내되자 좆도의 통치자인 FucKing이 왕후 좆에피나(Josephina)와 후궁 애마(愛馬) 뉴엘 바기나(vagina)[9] 세자인 SucKing과 함께 마중을 나왔다.
이들이 말한 자신들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던 공민왕과 당대의 충신 정 몽정(鄭夢精)의 딸 사이에 남근태자(男根太子)가 태어났는데, 그는 고려가 멸망하자 추종세력을 이끌고 이곳 좆도로 와서 토호세력과 연합해 좆도국을 세우고 초대 공알왕[10]에 직위한다. 공알왕은 신라의 골품제도를 따서 신분제도를 만들었는데, 왕족은 색골(色骨), 좆도의 호족세력은 성골(性骨), 그리고 그 밑의 중간 지배층은 귀두품(龜頭品)이라 했다. 색종의 사신 방문 당시 좆도는 4대왕 FucKing의 치세였는데, 그는 공알왕의 4대손으로 재위 10년간 과감한 개혁으로 국제화· 세계화를 단행, 자신도 추잡왕(醜雜王)에서 FucKing으로 개명하였고, 이러한 개혁정책은 "씹년 유신" ( 十年維新)으로 명명되었다.
조선의 사신들은 영빈관인 옥문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울릉도 남자들의 실종사건을 협의하기 위해 좆도의 정궁인 자궁(子宮)으로 향했다. 좆도의 정궁인 자궁은 본전인 사정전(射精殿)과 별궁인 체외사정전(體外射精殿)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신들 얘기로 돌아오기 전에 좆도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해 보자. 자궁에 이르는 큰 길 이름은 하는 대로(大路)였고 호수 위에는 다리가 두 개 있었는데 성교(性橋)와 난교(亂橋)라 불리었다. 이 길의 끝에 있는 숲은 좆꼴림(林)이었고 이 숲에는 좆까지마(馬)라는 야생마와 강간범(強姦犯)이라는 호랑이도 살고 있었다. 숲에서 나오면 고환(睾換)이라는 화폐를 발명한 초대 공알왕의 능인 발기불능( 勃起不陵)과 요절한 왕자들의 무덤인 왕자지묘(王子之墓)[왕자지]가 있었다. 대로변에는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떠 만든 발딱세움이 있었고, 이 경기장 주위를 도는 조그만 하천은 꽉끼내였다. 이 냇가에는 큰 바위가 두 개 있었는데 이름하여 자궁암(子宮巖)과 유방암(乳房巖)이었고, 그 냇가에는 가 랭이라는 나물이 무수히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좆도에는 복상사(腹上寺)와 혼외정사(婚外情寺)라는 두 개의 큰 사찰이 있었는데, 복상사의 주지는 두루 할타였고 혼외정사는 마구할타라는 스님이 주지였다. 신진대사(新陳代謝)는 이들이 존경하는 원로스님이었다. 유명한 비구니도 있었는데, 법명은 사타구니였다. 신흥 종교로는 조루(早漏)아스터교로, 교주 교미하라(交尾下裸)가 이끌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예배 시간이 1분 이내라는 것이다.
좆도의 명문 대학은 꼴리지였고 여자 대학은 생리대(生理大)가 제일 명문이었다. 좆도의 학문적 명성은 유명한 철학자인 클리토리스(clitoris)로 대변되어진다. 그는 오르가즘(orgasm)이라는 철학을 추구했다. 성감대 체위학과 출신으로, 유명한 가수가 된 이 사람이 존 내논(John Lennon)이라는 사람인데 공연 중 바지를 벗는 것으로 유명하였다.[12] 또 이 학교 출신으로 유명한 권투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좆이 four먼(George Foreman)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실제 4개의 남근을 가지고 있어가지고 설라고 동시에 4명의 여자와 상대를 했다고 하나, 그걸 뒷받침할 자료를 현재 찾을 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좆도는 쌀로 유명했는데, 닝기미(米)와 니미(米)가 제일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었다. 농부들은 좆빠 지게라는 지게로 수확물을 날랐다. 또 겨울에는 이 볏짚으로 새끼를 꽈서 부소득을 올렸다. 광물로는 비철금속인 히쭈 구리와 철광석의 한 종류인 변강쇠가 생산되었다. 제3 빙하기 이후 발정기(發情紀) 지층에서는 유전도 발견됐는데, 빼유(拜油)가 생산·정제돼서 휘발유로 팔렸다. 좆도에서 제일 잘 팔리는 치약은 펠라치오(fellatio)였다. 좆도의 여인들은 미여 올림에 꿀을 많이 복용했는데, 처녀용으로는 처음허니(honey)가 있었고 유부녀들은 맨날허니를 먹었다. 좆도 사람들은 빵을 많이 먹었는데 제일 유명한 제과점이 빨리빨아상이고 돌림빵이 최고 인기품목이었다.
이리하야 조선으로 떠나기에 앞서 사신들은 유명한 해변인 썬오브비치(son of beach)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해변가에는 유람선인 때쉽이 좆도 일출 후에 떠나는 곳이었다. 이 해안의 앞바다 이름은 고만해(高萬海). 그러나 사신들의 귀국보고서는 배가 중간에 난파되는 바람에 전하여지지 않고 있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 사람의 구전으로 전하여지고 있음이 있으니 통탄스러울 뿐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4. 관련 문서
[1]
어떤 버전에서는 조지 10세
[2]
조세피나 = 좆에 피 나
[왕자지]
공교롭게도 고려 시대에 진짜로
왕자지란 사람이 있었다.
[4]
masturbation =
자위행위
[5]
공교롭게도 고려시대에
박유라는 문신이 있었는데, 축첩제를 건의했다 여성들에게 있는 욕 없는 욕을 먹은 일이 있었다.
[6]
별거 아닌 상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 '좆도 아님', '좆도 없음'이다.
[7]
감창(甘唱):
성교가
절정에 달했을 때 여자가 숨 막힐 듯 내는 소리
[8]
옥문(玉門): 여자의 생식기
[9]
vagina =
질(膣)
[10]
공알 =
음핵(陰核) = clitoris
[왕자지]
[12]
현실에서 정말로 공연 도중에 바지를 내리고
그곳을 노출시켜 고소를 당했다고 알려진 분이 계신데, 바로
이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