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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5:44:46

스티븐 시걸

<colcolor=#fff> 스티븐 시걸
Steven Seagal
파일:external/i.huffpost.com/o-STEVEN-SEAGAL-RUSSIA-WEAPONS-GUNS-facebook.jpg
<colbgcolor=#00001b> 본명 스티븐 프레더릭 시걸
Steven Frederic Seagal
별명 The Great One
출생 1952년 4월 10일 ([age(1952-04-10)]세)
미시간주 랜싱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1952.04.10 ~ 현재)

[[러시아|]][[틀:국기|]][[틀:국기|]] (2016.11.25 ~ 현재)

[[세르비아|]][[틀:국기|]][[틀:국기|]] (2016.01.** ~ 현재)
신장 193cm
직업 배우, 영화감독, 극작가, 무술가, 뮤지션
부모 : 새뮤얼 스티븐 시걸(1928년~1991년)
: 퍼트리샤 시걸(1930년~2003년)
배우자 후지타니 미야코
(1974년 결혼~1987년 이혼)
아드리엔 라 루사
(1984 결혼~1984년 이혼)
켈리 르브록
(1987년 결혼~1996년 이혼)
에르데네투야 시걸
(2009년 결혼~현재)
자녀 3남 4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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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 켄타로 시걸 (1975년 10월 3일~ )
차남 : 도미닉 시걸 (1990년 6월 21일~)
삼남 : 쿤장 시걸 (2009년~ )
장녀 : 아야코 후지타니(시걸)
(1979년 12월 7일~)
차녀 : 아날리자 시걸 (1987년~)
삼녀 : 아리사 시걸 (1993년 7월 24일~)
사녀 : 사반나 시걸 (1996년~)
데뷔 1988년 영화
형사 니코[1]
데뷔앨범 데뷔앨범 : 2005년 1집 앨범
《Songs from the Crystal Cave》
액션 스타일 아이키도[2]
종교 성공회 불교 ( 티베트 불교)
정당
[3]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유년시절과 일본 시절
2.1.1. 시걸권
2.2. 데뷔와 짧은 전성기2.3. 몰락2.4. 2000년대 이후2.5. 친러시아 행보
3. 논란
3.1. 허위경력3.2. 마피아 갈취 사건3.3. 성폭행 논란
4. 일본에서5. 수상경력6. 그 외7. 출연 작품 목록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seagal_face.jpg

모든 표정이 똑같다고 알려진 전설의 영화배우. 어떤 연기를 해도 절대 표정이 바뀌지 않는다. 희노애락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을 한 표정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찌보면 놀라운 인물. 자매품으로 모든 표정이 같은 기업인, 축구인, 야구인, 빙상인도 있다.

자신이 출연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대부분 한 대도 맞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무쌍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 심지어 영화 '하드 투 킬[4]'에서는 온 몸에 총알을 맞고도 7년 뒤에 회복하는 결말이 나왔다. 과연 하드 투 킬. 사실 두 명 더 죽여서 하드 투 킬이라 카더라 그래서 무적의 사나이, 무패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 척 노리스, 장클로드 반담 등과 함께 세계최강의 사나이를 다투는 남자. 다만 영화 초반부에 폭발에 휘말려 바로 퇴장한 파이널 디씨전이라든지, 클레멘타인이라든지 패배하는 경우도 있다.
파일:attachment/1187326305_32.gif
쉐도우 맨에서 나오는 실제 장면이다. 이른바 화망 사격.[5]
무슨 요술봉도 아니고...

권총 한 자루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도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권총 한 자루로 헬기를 격추시킨 전적이 있다.[6] 또한 클레멘타인을 제외하면 다른 출연작에서는 악역을 하지 않았으나... 2010년 개봉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액션영화 마셰티에서 드디어 치졸한 악당으로 나와 주인공 대니 트레조와 싸우다가 패하자 할복해 죽는 배역으로 나오고 말았다. 사실 스티븐 시걸이 죽는 영화는 거의 희귀해서 참신하다고는 볼 수 있다.[7]

돌프 룬드그렌, 장클로드 반담 등과 같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서[8] 알 수 있겠지만 제임스 벨루시, 찰스 브론슨, 마이클 듀디코프, 올리비에 그루너 같은 배우들처럼 연기력의 여부를 떠나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할리우드의 한철 장사 같은 액션 영화에 출현하며 소모되어버린 배우 계열에 포함된다.

2. 생애

2.1. 유년시절과 일본 시절

미국 미시간주에서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아버지와 의공(medical technician)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퍼트리샤는 독일-영국-네덜란드계였고, 아버지 새뮤얼은 벨라루스계 미국인으로 유대인이었다. 그의 집안의 원래 성씨는 시겔만(Siegelman)이었으나 부친 대에 성을 시걸(Seagal)로 바꾸었다. 5살 때 캘리포니아 풀러턴으로 이사갔다.

어릴 때부터 일본 무술에 관심이 많아 일본인 도장에 다니면서 무술을 연마했다.

17살 때 아예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약 15년간 일본 오사카에서 살면서 무도인 및 무술 사범으로 활동했다. 도장을 열어 운영했는데, 외국인으로서는 일본에서 유일했다고 한다. 1975년 일본인 무도인 관장의 딸 후지타니 미야코와 결혼해 아들과 딸[9]도 낳았다.

1984년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와 LA에서 무술관을 열었다.

2.1.1. 시걸권

언제나 무표정으로 수상하게 몸을 움직이며 적의 관절을 전부 꺾어버리는 기묘한 무술인 시걸권(Seagal拳)의 창시자이자 달인. 시걸권을 사용하게 되면 그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는 농담. 꺾으려면 잡아야 하잖아.

그의 손에 잡히는 모든 신체 부위는 곧바로 꺾이고 부러지며 적이 내지르는 팔이나 다리가 최우선 타겟이 되기 때문에 그를 마주한 악당들은 사지 말단부터 하나하나 꺾이고 부러지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목뼈를 조르거나 돌려서 문자 그대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짧고 강렬한 마무리 내지는 일격기는 그야말로 시걸권의 상징. 상단의 영상만 봐도 재생하는 동안 내내 악당들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무기나 총을 들어도 예외는 없어서 샷건을 무릎에다 갈겨버려 아예 끊어버리고 칼을 들면 팔 관절을 썰어버리는 등, 관절에 대한 심상치 않은 집착이 느껴질 정도.

시걸은 일본전통무도인 아이키도와 각종 무술의 달인이라고 한다.[10] 한때 그의 아이키도 시범 영상이 무술 사이트 등에 떠돌기도 했다. 이 아이키도와 태국식 단검술과 가라데 등 여러가지 무술을 종합해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현재의 시걸의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한다. 작중 보여지는 팔 꺾기류 기술은 전형적인 아이키도의 수법이다. 아이키도 자체에서는 상대를 제압하는 수준에서 그치지만 작정하고 꺾어버리면[11] 영화처럼 된다. 물론 그럼에도 과장된 부분은 조금 있는 편이지만, 이러한 시걸 스타일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액션영화 팬들에겐 그만의 특허물로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상징이다.

아이키도 유단자답게 아이키도 기술을 사용한 액션 또한 많았다.

2.2. 데뷔와 짧은 전성기

1984년 일본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LA에서 아이키도 도장을 열었다. 또 무술 실력을 발휘하여 경호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시걸은 193cm에 달하는 장신과 훤칠한 외모에 무술까지 겸비했기 때문에 영화계에 진출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1988년에 데뷔했는데, 이미 서른 여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다. 첫 주연 영화는 형사 니코라는 작품. 외모상으로 스티븐 시걸의 리즈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인 'Hard to kill'(1990)은 주말의 명화에 소개되며 스티븐 시걸이 본격으로 국내에 얼굴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방영 당시에는 '7년만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부제로 Hard to kill 원제도 함께 소개되었다. 나중에 비디오로 ' 복수무정'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 후 액션수작 ‘복수무정2’와 ‘죽음의 표적’을 거쳐 1992년에 나온 다섯번째 작품인 언더 시즈[12]가 엄청난 대박을 거둬들이면서 전세계적으로 시걸 돌풍을 일으키며 A급 등극을 노리는 나름대로 유망한 액션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2.3. 몰락

그러나 '언더 시즈' 1편 이후로 메이저급 영화가 줄줄이 망하면서 엑시트 운즈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비디오용 영화배우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그가 감독, 각본 다 해먹었던 ' 죽음의 땅'은... 명배우 마이클 케인도 이 영화를 살리진 못했다.(마지막 장면에 나와 자연 보호 강조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닭살이 돋는 코미디라는 평.) 최근엔 동양의 에너지를 담았다는 스티븐 시걸 에너지 드링크, 스낵바 같은 걸 팔거나 가수로서도 활동해 보는 등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보고는 있지만 클레멘타인 같은 영화에도 나와주는 걸 보면 꽤 힘든 듯하다.

여기에는 그의 데뷔연도가 너무 늦어(1952년생이다.) 연기력이나 활약하기 힘들었던 탓도 있다. 그나마 나오는 영화들도 다 똑같은 원 패턴인 데다가 데뷔한 지 얼마나 됐다고 1990년대 초부터 체중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1990년대 후반에는 아예 주체를 못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 외에도 연기력과 사생활 등에서의 자기관리의 부재까지 겹치면서 전성기의 카리스마는 어디로 가고 한낱 유머거리로 전락하게 되어 버렸다.

다만, 그의 몰락을 전적으로 데뷔 시기가 늦은 탓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일단 미국 사회는 나이에 연연하는 분위기도 아니거니와, 시걸만큼 핸디캡을 지닌 배우로 따지자면, 가까운 사례로는 오스트리아 이민자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노점상으로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데뷔한 제이슨 스타뎀부터, 멀리서는 왜소증 환자였던 피터 딘클리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교도소에서 보냈던 대니 트레호 같은 배우[13]도 있다. 조금 다른 사례지만, 기생충에서 소름돋는 연기로 유명한 이정은 배우의 경우, 연극 연출 경력과는 별개로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시기는 서른 여덟 살 때부터였고, 영상 무대에 모습을 비춘 건 마흔 세살이었다. 이런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시걸의 나이가 그다지 영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아이키도 사범으로서 생활한 덕분에 액션과 스턴트 연기의 기반도 어느 정도 다져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B급 장르라고는 해도, 시걸은 그 기반으로 영화 배우 데뷔를 성공적으로 시작한 사람이다. 언더 시즈 이후의 커리어 실패와 연기력이 문제라곤 하지만 [14], 아래에 후술되는 군 경력 사칭과 위계 성폭력, SNL 게스트 출연 당시 논란[15] 등의 사생활, 자기관리 문제 등 본업 외적인 면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것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16]

많은 사람들이 시걸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동의하는 점은 언제나 자신만이 주인공인 똑같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B급 액션 전문인 배우라고 할지라도 어느정도 로맨스 라인이 있는 영화에 출연하거나 아예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같이 코믹한 가족 영화까지 발을 넓혀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있는 데에 반해 시걸은 90년대부터 줄창 비슷한 스타일만의 영화를 고집했고, 이런 성향의 배우들은 2000년대 들어서 범람하기 시작한 다각적인 주인공을 표현하는 데에 큰 부족함을 드러냈기에 그 누구도 빠짐없이 몰락하거나 잊혀졌다.

2.4. 2000년대 이후

어쨌든 많이 몰락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으며, 이때문에 2000년대 후반부터는 주로 제2의 고향이라고 하는 일본에서의 인기에 기대고 있다. 그래서 이때 일본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서 시걸이 게스트 출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2009년 이후의 작품들이 전성기 포스를 뿜어낸다는 나름대로 호평(?)을 받으면서 다시 주가를 올리는가 싶더니...

2010년에 드디어 오랜만에 메이저 와이드릴리즈 개봉작에 나왔다.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 마셰티>. 대니 트레호, 제시카 알바, 로버트 드 니로, 돈 존슨, 린제이 로한, 셀마 헤이엑이 같이 출연한다. 시걸은 악당으로 나오는데 그의 특기 목꺾기도 안 나오고 비중도 적다. 비중도 비중이지만 이때 살이 꽤나 찐 모습으로 나와 액션 연기 자체가 이제 힘들어보인다.

2.5. 친러시아 행보

2010년대 들어서는 러시아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친분이 있어 2012년에는 소치에서 열린 무술대회에 함께 앉아 관람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2013년에는 시걸이 모스크바에 삼보-70이라는 무술도장을 열자 푸틴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는 등 꾸준히 푸틴과의 만남이 언론에 노출된 바 있었다. 그런 탓인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해서 옹호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세바스토폴에서 러시아 내셔널리즘 성격의 공연도 푸틴과 함께 한 모양이다.

이렇게 그동안 푸틴과의 친분을 과시한 덕분인지, 2016년 1월에는 세르비아 시민권을 얻었고, 11월에는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시민권까지 받았다. 이는 시걸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하며, 시걸은 아버지가 러시아인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이라며 앞으로도 상당 시간을 러시아에 머물 뜻을 밝혔다.

그리고 11월 25일, 러시아 국적을 획득했다. #

2017년 5월 5일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한다고 공개선언하자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시걸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5년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

2018년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대미문화사절단장으로 임명했다. # 2020년에는 러시아 환경 보호 활동 중이다. #

친푸틴 반자유주의 정당 진실을 위하여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현재는 진실을 위하여와 합당한 공정 러시아의 당원이다. #

2022년 4월 10일, 자신의 70번째 생일에 모스크바의 한 레스토랑에서 축하연을 벌였다. 축하연에는 러시아의 대(對) 영어권 선동에 앞장서온 러시아 방송국 RT의 마르가리타 시모냔 편집장과 국영방송 로시야1의 토크쇼 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등 푸틴 정권의 지지자로 알려진 이들이 참석했다. 두 사람은 모두 유럽연합의 제재 대상에 오른 이들이다. # 여기서 시걸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와중임에도 푸틴을 찬양했다. # 푸틴과 친하게 지냈던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이번 전쟁을 두고 푸틴이 미쳤다며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에 기부금을 보내는 거랑 대조적.[17]

현재 시걸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교전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

러시아의 주장에 동조하며 우크라이나를 규탄했다. #

2023년 2월 27일, 러시아 우호 훈장을 수여받았다. #

2024년 5월, 푸틴의 다섯번째 취임식에 참석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푸틴 대통령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의 5번째 임기와 함께하는 미래가 최고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

3. 논란

3.1. 허위경력

그가 주장하던 경력이 의심을 많이 받고 있다. 한때 그의 과거에 대해서 전직 네이비 씰 대원으로 은퇴후 대통령 경호원으로 근무하다가 이후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무도계에 투신, 이후 영화배우로 전업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네이비 씰 경력 자체가 의심받고 있으며, 미국 대통령 경호원이었던 적도 없고, 심지어 아이키도 경력조차도 논란이 있다.

영화만 봐도 그의 전술 행동들이 매우 어설픈 것을 알 수 있는데, 본인의 전술지식은커녕 최소한 전술전문가의 고증조차 없다는 게 보인다. 수련을 하긴 했지만 7단의 실력은 아니라는 것으로, 현재 아이키도 7단인데 시걸의 부인이 누군가 하면 바로 자신에게 7단을 준 단체의 관장의 딸. 또한 이 단체의 후계자가 되는 조건 중 하나였던 것이 관장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었다고 하니... 시걸은 아이키도를 홍보해주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7단은 명예 7단이다.

3.2. 마피아 갈취 사건

2000년 스티븐 시걸은 뉴욕 시 브루클린에 위치한 게이지 앤 톨너(Gage & Tollner) 레스토랑 VIP 룸에서 영화제작자 줄리어스 나소(Julius Nasso)와 만남을 가졌다. 평소 두 사람은 금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나소는 시걸과의 만남 장소에 뉴욕 5대 마피아 조직의 일각인 감비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앤서니 시코네와 부하 조직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파일:앤서니 시코네.jpg
앤서니 시코네
당시 시코네는 시걸에게 총 300만 달러를 나소에게 지불하고 그와 계속 동업할 것을 강요했다. 특히 대화 도중 시걸이 눈을 감자 자신과 대화할 땐 항상 눈을 맞추라고 윽박질렀다. 회동이 끝난 뒤 나소는 "만약 당신이 잘못 말했다면 그들(마피아)이 당신을 죽였을 거요.(If you would have said the wrong thing, they would have killed you.)"라고 말하며 시걸을 위협했다.

스티븐 시걸은 연예인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FBI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 대신 감비노 패밀리의 라이벌 조직인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안젤로 프리스코가 수감된 주립교도소를 찾아가 그에게 1만 달러를 지불하며 앤서니 시코네와의 갈등을 잘 중재해달라고 부탁했다.
파일:Prisco_headshot.png
안젤로 프리스코

한편 감비노 패밀리를 감시하는 FBI 도청기가 앤서니 시코네를 대면한 스티븐 시걸이 얼마나 공포에 질렸었는지 묘사하는 내용의 대화를 우연히 포착하면서 관련 수사가 본격화되었다. 스티븐 시갈 "마피아서 살해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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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쓴 앤서니 시코네와 마피아 조직원들이 포착된 FBI 감시 사진

2002년 6월 스티븐 시걸과 마피아와의 관계를 취재하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의 자동차가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자동차 내부에서는 죽은 물고기, 장미꽃 한 송이, ‘멈춰(Stop)’라고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다. 호사가들은 이를 마피아 측의 경고성 메시지로 추정했고 얼마 뒤 사건에 연루된 사립탐정 앤서니 펠리카노와 그의 공범이 검거되었다. 시카고 마피아를 의뢰인으로 두었던 펠리카노는 마이클 잭슨 같은 유명 연예인들도 의뢰인으로 둔 할리우드 해결사(Fixer)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가 추락될 마피아 연관설 보도를 막기 위한 시걸이 사건의 배후가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심도 있는 수사 끝에 시걸은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사립탐정 일을 하며 자행한 여러 범죄 혐의가 입증된 펠리카노는 연방교도소에서 약 13년을 복역한다. 당시 영화감독 존 맥티어넌과 다수의 경찰관 및 변호사 등이 펠리카노와 함께 연루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3년에 열린 마피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스티븐 시걸은 감비노 패밀리가 분쟁에 개입한 사실을 알게 된 뒤 줄리어스 나소에게 50만~70만 달러 사이의 돈을 지불했고 나소가 그 돈의 일부를 앤서니 시코네에게 상납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울러 시코네를 만난 뒤 제노비스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안젤로 프리스코를 찾아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사실도 인정했다. 왜 FBI에 신고하지 않고 마피아 행동대장을 찾아갔냐는 질문엔 "그들(FBI)은 저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저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They can’t help me. They can’t protect me.)"라고 답했다. 재판 끝에 나소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시코네 역시 시걸 갈취 혐의, 노동조합인 국제항만노동자협회(International Longshoremen's Association) 갈취 혐의가 입증되어 연방교도소에서 약 11년을 복역한다.

이후 스티븐 시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피아 재판에 나가기 싫었지만 연방검찰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출석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저는 영화에서 터프한 액션 히어로를 연기하지만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In the movies, I play a tough action hero, but I have feelings.)"라고 말했다.

2007년 스티븐 시걸은 "(사건 뒤) 나는 마피아와 관련있는 인물처럼 낙인 찍혔고 스튜디오 책임자와 영화사들은 나를 기피해 배우로서 화려한 경력은 끝났다."라고 말하며 FBI에 공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스티븐 시걸 “내가 마피아?…아 옛날이여~”

1990년대에 정부 측 증인이 된 감비노 패밀리 부두목(Underboss) 살바토레 그라바노 (사진)에 의하면 스티븐 시걸은 마피아 재판에 출석하기 전 너무 두려운 나머지 울음을 터트렸고 담당 FBI 요원이 그를 안아주며 위로했다고 한다. 그라바노는 시걸을 위로한 그 FBI 요원이 자신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해줬다고 밝혔다.
스티븐 시걸 사건을 얘기하는 살바토레 그라바노

3.3. 성폭행 논란

2010년 4월 12일, 자기 회사의 여 비서를 성적 노리개로 쓰고 협박까지 하였다는 혐의로 비서 본인에게 고소당하였다. 전직 모델 출신의 이 베트남계 비서(당시 23세)는 자기가 비서 일을 할 줄만 알고 지원했는데, 합격해 보니 이미 시걸에게는 2명의 러시아계 비서가 있었고 이들의 임무는 비서가 아니라 순전히 시걸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것이더라는 것. 이중 한명이 그만뒀기 때문에 자기가 대타로 채용됐고, 시걸이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는가 하면 마약(혹은 미약)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먹으라고 강요했다면서 1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시걸 본인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몰락해버렸을지도...그러나 로스앤젤레스 법원이 같은 해 7월 16일에 고소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유야무야됐다. 단 법원은 기각 사유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며, 시걸의 변호사가 고소한 비서와 별도 협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 이후 벌어진 미투 운동에서 시걸이 여러 동료 여배우를 성추행/성폭행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필리핀 여배우 레이철 그랜트는 스티븐 시걸이 2002년 영화 오디션에 참가한 자신을 호텔로 끌고가 성추행했다고 증언했다. #

하지만 2018년 9월 LA 검찰은 스티븐 시걸을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래저래 결국은 해프닝으로 끝난 듯하다.

4. 일본에서

일본에선 스티븐 세가루(スティーヴン・セガール)라고 한다. 통칭 '세가르 아저씨'라고 하기도 한다.

17살 때부터 10년 이상 오사카에 살았었고 아이키도 수도를 한 경력, 아내 및 가족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어가 매우 능통해서[18] 일본 방송 출연시 딱히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다. 칸사이벤까지 듣고 말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일본어로 말할 때의 시걸의 목소리는 영어를 말할 때의 중후하고 무거운 톤과 달리 매우 인자하고 차분하며, 마치 일본의 친절한 동네 아저씨가 말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오히려 자신의 일본어투가 너무 친절해서 액션 영화에서는 어울리지 않는지라, 자신의 영화의 일본어 더빙을 자신의 목소리로 더빙한 적이 없다. 초창기 작품들의 소프트판에서는 야라 유사쿠, 츠카야마 마사네, 겐다 텟쇼 등등이 맡았었는데 TV판의 거의 모든 작품이나 2000년대부터의 DVD판에서는 오오츠카 아키오가 더빙을 전담하고 있다.[19]

일본 문화에도 심취해서 한신 타이거즈 팬이라고 하며 고질라 등 괴수 특촬물도 자주 즐겨본다고 한다. 또한 많은 일본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머리를 길게 뒤로 묶은 헤어스타일은 사무라이의 상투를 의식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는 편이다.

할리우드 배우가 능숙하게 일본어를 말하며 일본 문화에 대해 얘기하는 점은 일본인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어필했고, 세계적으로 시걸의 인기가 떨어진 지금도 일본에서의 인기는 무시 못할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비디오로만 나온 영화가 일본에선 극장에서 걸릴 정도.

그외에 잡상식으로는 일본에서는 언더 시즈가 '침묵의 전함'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여 대히트를 해버려서[20] 그가 출연하는 작품의 70%는 죄다 원제와 관계없이 '침묵의 OO' 같은 제목으로 현지화해서 개봉을 해버렸다.(…) 그래서 '침묵의 세가르'라고 불리기도 한다. 덤으로 침묵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이 아저씨, OO한다', '이 아저씨, 최고' 등등의 부제가 붙여지는건 기본.

시걸팬들이 워낙 열렬하다보니 심지어 그저 시걸이 나온다는 이유 때문에 클레멘타인을 구해보기도 했다.

5. 수상경력

유명한 배우답게 다채로운 수상 이력을 지니고 있다. 전부 골든 라즈베리인 게 문제지만.
년도 작품명 부문 수상 여부
골든 라즈베리 1995년 죽음의 땅 최악의 영화상 후보
최악의 배우상 후보
최악의 감독상 수상
1997년 파이널 디씨전 최악의 남우조연상 후보
1998년 파이어 다운 최악의 배우상 후보
최악의 영화상 후보
최악의 스크린 커플상 후보
최악의 주제가상 후보
2003년 하프 페스트 데드 최악의 배우상 후보

6. 그 외

7. 출연 작품 목록

시간순으로 정렬


[1] 무명 시절의 샤론 스톤이 니코의 부인으로 나왔다. 비중 없는 거의 단역. 스티븐 시걸도 그의 나이 서른 여섯살이었다. [2] 대표적인 무술 정체성은 아이키도이지만 그 외 많은 무술을 기반으로 액션연기를 한다. [3] 원 소속 정당 진실을 위하여와 합당. [4] 국내 비디오 제목은 복수무정, 주말의 명화 방영제목은 '7년만의 복수' [5] 실제로는 단 두 발에 폭발하지 않고 열 발 이상 맞춰서 폭파시킨다. 그래도 말이 안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6] 영화보다 현실은 더하다고, 2차대전 당시 리볼버가지고 전투기를 격추시킨 사례가 있다. [7] 화이널 디씨젼에서 그의 영화 역사상 첫 죽음이 기록됐었다. [8] 지금은 이 두 사람 다 어느 정도 재기한 편이라 비교하기가 애매하다. [9] 후지타니 아야코. 헤이세이 가메라 시리즈 가메라: 대괴수 공중 결전, 가메라 2: 레기온 습래, 가메라 3: 사신각성에 출연한다. 이후 소설가로 활동중이다. [10] 오사카에 도장을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11] 초기 아이키도나 대동류처럼 관절을 부숴버리면서 탈구시키거나 인대를 끊어버리면 말이다. [12] 저예산 호러물이나 B급 액션영화를 만들던 앤드루 데이비스 감독은 언더 시즈와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로 대박을 거두며 정점을 달리지만 체인 리액션이 망하고 나서 시걸과 함께 묻혔다. [13] 특히 트레호는 인상이 딱 봐도 흉악범(...)처럼 생겼다는 평이 많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14] 발 킬머 찰리 신처럼, 훌륭한 연기력으로 승승장구하던 배우들이 자기관리 부재와 사생활 문제로 몰락하는 반대경우도 있다. [15] 이 때가 고작 데뷔 3년 차 때의 일이다. 초 A급 배우는 물론이고, 버락 오바마나 존 매케인 같은 주류 정치인들도 일부러 망가져주는 SNL에서 이런 태도였으면, 평소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땠을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16] 스티븐 시걸의 반면교사가 되는 사례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있다. 그는 한평생 오스트리아 억양을 지우는데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연기력 향상을 위해 노력했고, 자기가 지닌 배우로서의 장점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에 열정적이었다. [17] 결국 푸틴에게 분노를 얻은 드파르디유는 아랍에미리트 귀화해 러시아를 떠났다. [18] 모국어 수준까지는 아니고, 외국인 티는 팍팍 나지만 유창한 실력이다. 한국으로 치면 샘 해밍턴이나 이다도시의 한국어 정도. [19] 겐다가 아예 "시걸 목소리는 아키오 군이 보유해야한다."고 말할 정도로 가장 평가가 좋다. [20] 단 언더 시즈 2는 "폭주특급"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21] 사망하지 않았다고 치기도 한다. 고공에서 날아가긴 했지만 죽는 장면이 안 나왔으니까... 총알도 피해가는 사나이 스티븐 시걸에 대한 예의 [22] 영화 배트맨 리턴즈에도 출연했으며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등 현재까지도 간간히 얼굴을 비추고 있다. [23] 사실 여기에 나오는 감염자들은 나는 전설이다 원작에서 나오던 감염자들의 행동을 연상케한다. 물론 거기보다 약 300배정도 멍청하지만. [24] 미국에서는 현재까지 시걸의 최후의 극장용 영화 주연작인 하프 패스트 데드 이후로 그가 주연인 영화가 개봉한 적은 절대 없다. 일본이야 그 이후에도 비디오용 영화를 꾸준히 극장 개봉시켰지만. 참고로 하프 패스트 데드의 개봉 당시 평은 더 록 월마트 버전.(...) [25] 무슨 소리인고 하니, 던파의 남성 격투가의 캐릭터 인트로 영상을 보면 그가 수련하던 도장의 동문들의 얼굴이 스티븐 시걸, 브루스 윌리스, 척 노리스 같은 유명 액션 배우들의 얼굴을 패러디 했기 때문이다. [26] TV 시리즈는 2009년 리얼리티 쇼 'LAWMAN'에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처음이다. [27] 파일:external/ssl-forum-files.fobby.net/The_Legend_of_Dan_Hibiki_by_MexPirateRed.jpg [28] 하지만 제이슨 스타뎀 이연걸은 같이 찍고 싶다고 했으며, 장 끌로드 반담 역시 그가 출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러모로 안하무인이긴 한듯. [29] 출연한 작품들 중 제일 비중이 적은 편인데다 엑스트라 수준의 3류 단역인데도 불구하고 제작진들은 스티븐 시걸을 고용하느라 12억 가까이의 비용을 썼다고 한다. [30] 스티븐 시걸,스티브 오스틴,브렌 포스터 주연작 [31] 스티븐 시걸,브렌 포스터,빙 라메스 주연작 [32] 동명(사실 철자는 다르다)의 갈매기가 등장한다. 무려 엔딩 크레딧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