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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인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을 합쳐서 일컫는 말.최근 김민재의 활약에 따라 손차박김, 또는 차박손김이라 불린다.
2. 상세
차범근은 압도적인 신체능력과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각각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어 04 레버쿠젠에게 UEFA컵 우승을 안겼으며, 당시 전 세계에서 최고의 세컨드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대한민국과 분데스리가의 레전드 선수이다.[1][2]박지성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투지로 '3개의 폐, 두 개의 심장' 등의 별명을 가졌다. UEFA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등 통산 19개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4강, 원정 첫 16강을 오르는 등, 소속팀[3]들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거의 모든 팀의 레전드 선수이다.[4][5][6][7]
손흥민은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유럽무대 200골 등 아시아의 축구 관련 온갖 기록을 경신하고있는 어나더레벨 월드클래스 선수이다.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프리미어리그의 레전드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2.1. 평가 및 논쟁
손흥민이 메이저 대회 우승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꽤나 저평가하는 팬들이 많은 논쟁이다. 그러나 손흥민의 업적을 무시하기엔 객관적으로 봐도 압도적이다.또한 차범근의 경우 대한민국의 기성세대 레전드 선수임이 많은 기록과 언사 등에서 인정받지만 현시대만큼 스탯,영상등 평가할 사료 자체가 부족해 객관적 비교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박지성vs손흥민의 구도가 생겼으며, 꽤나 자주 언급되어 쉽게 찾을수 있는 논쟁이다.
해외에서는 손흥민을 위로 두는 경우가 많으나[8], 국내에선 박지성의 팬덤도 나름 강한 기세를 보인다.[9] 다만 기브미스포츠가 박지성을 EPL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 18위로 뽑거나, 가끔 손흥민을 제치고 역대 아시아 최고의 프리미어리거로 뽑기도 하며, 동료들[10]과 상대팀이었던 선수들[11]의 꾸준한 언급 등을 보면 박지성도 전혀 꿀릴 것은 없다. 특히 우승커리어는 축구 클럽과 국가대표팀의 가장 큰 목적인 만큼, 박지성의 커리어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넘사벽에 가깝다. [12] 이로인해 손흥민이 트로피가 없다는 것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13]
2024년 3월, 기브미스포츠가 역대 아시아 최고의 프리미어리거로 손흥민을 2위, 박지성을 1위로 뽑았다.
2024 8월 18일 기준, 기브미스포츠가 역대 한국 선수 10인을 뽑았는데 말그대로 손차박이 1~3위를 차지했고, 김민재가 바로 뒤를 이어 4위에 올랐다.
2024년 8월, 기브미스포츠에서 토트넘 역대 최고의 윙어 1위로 손흥민을 선정하였고, 같은 해 11월,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 9위로 박지성을 선정하면서 다시 한 번 이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14]
현재 이 논쟁은 어이가 없는 전쟁으로 번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장 문제는 이 논쟁의 주체들인 축구팬들이 대부분 차범근 시대를 본적이 없고, 박지성과 손흥민만 해도 무려 10년의 나이차가 나기에 다른 세대의 축구선수인만큼 세대를 넘어서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것 없이 박지성 팬들과 손흥민 팬들간의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다. 기준이 없으니 다 자기 기준으로만 이야기 하고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된다. 그러다보니 일반 팬들의 경우 둘 다 대한민국의 레전드 선수인데 이런 싸움이 진정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반응이다. 말싸움 중 나오는 얘기들을 보면 같은 내용의 주장이 지겹게도 반복되는 구조이다.[15][16][17]
자세한 내용은 손흥민/개인 수상 문서 참고하십시오.
2.2. 결론
차박손, 혹은 손차박이라는 통칭은 라이벌 구도도 아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시대별 레전드 선수들의 계보일 뿐이며, 아, 대한민국에 이런 선수들이 있었구나! 등 얕게만 알아보는것이 권장된다. 만약 이 논쟁에 대해 과몰입하게 된다면 서로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만을, 자신이 축구를 가장 사랑한 시대에 나온 선수만을 칭찬하고 존중받기 위해 다른 선수들을 깎아내리고 철저히 배척하는 악성 팬덤이 되어버리며, 자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할 것이다.[18][19]2024년 기준으로 아직 손흥민이 건재하기 때문에 손차박 다음의 아이콘 선수가 정해지지는 않았다.[20] 현재 차박손 순서대로 이어지는 레전드 계보는 아시아에서 나오기 힘든 발롱도르 후보급 센터백 김민재[21], 어린 나이에 코파 트로피 후보에 올랐으며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라는 빅클럽에서 활약하는 이강인, 스토크의 왕 배준호, 손흥민 다음으로 토트넘 홋스퍼 FC에 이적하게 된 고등학생 양민혁 등이 기대를 받고 있으며, 추후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 때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라고 여겨졌던 이청용이 톰 밀러 사태를 겪으며 급격한 기량저하를 겪었던 사례, 허정무[22], 이영표[23]와 같이 상황적으로 그 시대의 최고점을 찍지 못 하고 내려온 후 커리어를 마무리한 범부 사례, 홍명보[24]와 같이 논란으로 스스로 평판을 깎아 먹는 케이스, 박주영[25]과 같이 월드클래스가 될 기회를 잡았음에도 안주해버리고 발전을 멈춰버리는 사례 등.. 수 많은 아쉬운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걸 뚫고 커리어 말년에 모든 사람들에게 손차박X 또는 차박손X로 인정 받는 선수가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26] 결론을 얘기하면, 앞선 단락에서 언급한 선수들도 언제든 후보에서 탈락할 수 있으며, 꾸준한 성적을 보여준다면 누구든 새로운 차세대 아이콘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유소년이나 유망주 선수들은 프로가 되서도 실력적으로나 인성적으로나 꾸준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1]
심지어 현재 유로파 리그보다 그 당시 UEFA컵의 위상이 높았고, 분데스리가 역시 당대 최고의 리그였다.
[2]
은퇴 이후에도 수십 년간 한독 관계발전을 위해 애쓴 공로를 기리는 의미로 독일 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3]
교토 퍼플 상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
여타 운동선수와 국내에서 저평가받는 경향이 크다. 현지 맨유 팬들도 박지성을 주저없이 레전드로 평가한다.
[5]
교토 상가에서는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6]
PSV에서는 레전드 박지성의 은퇴를 위한 이벤트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경기장에서 팬들이 불러주는 위송빠레는 말 그대로 장관.
[7]
QPR 시절은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흑역사로 남았으나, 당시 하위권 팀이긴 해도 EPL 클럽에서 막 이적해온 아시아 선수에게 주장 자리를 맡긴 것을 생각하면, 당시 박지성의 위상을 알 수 있다.
[8]
포포투, 기브미스포츠, 90min 등에서 선정
[9]
박지성의 팬덤이 욕을 많이 먹기도 하지만, 박지성의 국가대표 활약상을 보면 팬덤이 생길수밖에 없기도 하다.
[10]
웨인 루니, 파트리스 에브라, 리오 퍼디난드, 대런 플레처 등
[11]
안드레아 피를로, 존 오비 미켈 등
[12]
월드컵 4강,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프리미어 리그 4회 우승, FIFA 월드컵 우승, 에레디비시 2회 우승 등, 유럽의 어지간한 선수들도 이 정도 커리어는 힘들다.
[13]
게다가 김민재와 이강인이 연달아 5대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더 부각되었다.
[14]
맨유와 토트넘의 위상의 차이를 생각하면 박지성 역시 대단한 것이다.
[15]
박지성 팬들이 손흥민 팬들에게 공격할 때는, 박지성의 압도적인 우승 기록과 비교하며 무관임을 조롱한다.
[16]
손흥민 팬들이 박지성 팬들을 공격할 때는 손흥민의 압도적인 출전기록과 수상기록, 각종 지표등을 예로 들며 벤치성,버기성 등의 부정적 별명들을 만들어 조롱한다.
[17]
양쪽 다 조롱하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지표들은 대체적으로 틀리거나 과장된 자료들이 많다.
[18]
내가 이 시대를 지켜봤다, 너희들은 보지 못했다. 등 자신이 더 많은, 더 오래된 레전드들의 경기를 봤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옛 레전드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자신이 더 위대한 시대를, 더 오래 지켜봤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많다.
[19]
이렇게 보면 박지성의 악성 팬들이 주된 문제로 보이고, 실제로도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주된 싸움 주제인 손흥민의 개인 악성 팬덤도 이들과 똑같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김민재와 이강인의 팬덤까지 생기면서 좋지 않은 악성 팬덤 문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
물론 김민재, 이강인과 사실상 인기를 삼분하고 있기는 하다.
[21]
사실 김민재는 이미 이 계보에 올랐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 발롱도르 후보, 세리에 최우수 수비수상,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메가클럽으로의 이적과 입지 등, 이미 보여줄 것은 많이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차박손김 또는 손차박김으로 불린다.
[22]
고려대의 차범근, 연세대의 허정무. 80~83년까지 PSV에서 활동하며 나름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와 선수 본인의 네덜란드 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83년에 K리그 창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다. 당시에는 나쁜 선택이 아니였으나, 유럽에서의 커리어를 더 높게 쳐주는 후대의 평가로 인해, 이미 유럽에서 능력을 어느 정도 증명했음에도 유럽무대에서 롱런을 한 차범근에게 80년대 아이콘의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23]
박지성의 경우는 20대 초반 PSV에 진출하면서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면, 이영표는 PSV에서 그의 전성기 시간을 보냈다. 07/08 시즌 토트넘 3년차에는 이미 30대였고, 이 시기부터 전형적인 은퇴선수 커리어를 보여준다. 동시대 불세출의 천재 박지성의 존재와 늦은 유럽진출이 그가 00년대 최고의 선수가 되지 못 하게 막은 셈.
[24]
분명히 9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 최고의 선수는 홍명보였다. 하지만, 유럽 커리어가 없고, 평가의 많은 부분이 if와 이벤트성 수상에 의존하고 있어서 커리어적으로 손차박 레벨이나 유럽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다른 선수들과도 비교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25]
아스날에서 뛰기위한 재능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더 적극적으로 팀에 융화되고, 출전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어필하지 않아 기회 자체를 잡지 못 하고, 이후 셀타비고에서조차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 한다. 축구는 단순히 실력만으로 하는게 아니라 인간관계와 의사소통 능력도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
[26]
물론 김민재가 이미 손차박김, 또는 차바손김이라 불리고 있다. 수비수라는 독보적인 포지션은 물론이고, 단기 임팩트로는 손흥민의 득점왕 시즌과 호각이며, 고점은 우승까지 시킨 김민재가 더 위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23-24시즌 후반기에만 주춤했을 뿐, 계속해서 바이에른 뮌헨에서 주전으로 기용되며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만큼, 분데스리가에서의 우승을 비롯한 앞으로의 활약에 따라서는 손차박보다 더 위라 평가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