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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1:43:15

라 마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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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멤버3. 결성 과정4. 전성기5. 해체6. 영향

1. 소개

La Máquina.

1940년대 CA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 소속으로 코파 아메리카를 씹어 먹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공격수들.

당시 남미 축구에서 최고였고 실제 매치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위대한 토리노(Il Grande Torino)[1]와 세계 축구를 양분하던 팀이었다.[2]

그들의 움직임이 기계와 같이 유기적이었기 때문에 라 마키나[3]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이 별명은 아르헨티나 잡지 엘 그라피코 소속의 보로코토라는 기자가 1942년 6월 차카리타 주니어스를 6:2로 완파하는 것을 보고 붙여주었다.

2. 멤버

파일:라_마키나.png
<colbgcolor=#000><colcolor=#fff> 파일:external/footballsgreatest.weebly.com/3469488.jpg
당시 포메이션[4]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아돌포 페데르네라,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 앙헬 라브루나, 펠릭스 루스토.

3. 결성 과정

1935년에 들어온 호세 마누엘 모레노 아돌포 페데르네라의 인사이드 포워드 듀오는 그 자체만으로 강력했다.

1939년에 앙헬 라브루나와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가 입단하였고 1942년에 펠릭스 루스토가 들어옴으로써 라 마키나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었다.

4. 전성기

그들이 이끄는 리베르 플라테는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10년 동안 4번을 우승하였다.[5] 단순히 아르헨티나 리그에서만 잘해서는 이런 평가를 받기에 부족한 법. 그들은 코파 아메리카에서 기예르모 스타빌레 감독의 지휘를 받으며 라 알비셀레스테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1941년 대회와 1945, 1946, 1947년 대회를 3연패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선수들을 통째로 묶다 보니 그들 모두가 경기장에서 뛰는 경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한 팀에 전부 있었던 시즌이 3시즌밖에 되지 않았고, 다섯 명이 모두 뛴 경기를 합치면 18경기에 지나지 않는다.

5. 해체

1944년에서 1946년까지 모레노가 잠시 멕시코 리그에 다녀왔지만 1945년에 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1947년 페데르네라가 아틀란타로 떠났고, 그럼에도 우승에 성공하였지만 이후 1949년 모레노까지 팀을 떠나면서 라 마키나는 거의 해체되고 말았다. 1952년 이후에도 우승은 계속 쌓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약해진 후였다.

6. 영향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되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바로 라 마키나의 레프트 인사이드였던 아돌포 페데르네라이다. 또한 그들의 유기적인 축구는 전설적인 1974년 월드컵 당시 오렌지 군단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라 마키나즘은 이후 1960년대 수벨디야의 에스펜디언테가 득세할 때까지 남미 축구의 소위 '좌익 축구'라 일컫어지는 유기적이고 다이나믹한 공격 축구 흐름을 주도했다. 수벨디야의 득세 이후 에스펜디언테가 아르헨티나 리그를 제패하며 '좌익 축구'에 반대되는 개념인 '우익 축구', 즉 재미에 상관없이 오로지 승리를 추구하는 흐름이 이어졌으나,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유명한 좌익이자 대표팀 감독이던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가 라 마키나즘의 영향을 받아 좌익 축구를 이끌어가며 라 마키나즘이 건재함을 증명했다. 이후 남미 축구의 흐름은 텔레 산타나, 메노티로 대표되는 좌익과 수벨디야, 빌라르도의 우익이 대립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1] 발렌티노 마촐라를 필두로 한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 낸 팀. 하지만 1949년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토리노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대표팀까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2] 라 마키나와 토리노가 실제로 만난 것은 수페르가의 비극 이후에 그 유가족들을 위해 치른 자선 경기였다. [3] La Máquina, 영어로는 The Machine. [4] 위쪽이 라 마키나 멤버들이다. [5] 수페르클라시코로 유명한 지역 라이벌 CA 보카 주니어스 1940년대에는 우승을 거의 나눠 먹다시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