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영화 《 서울의 봄》에 대해 탐구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2. 상세
〈서울의 봄〉은 드라마 제5공화국 이후 18년 만이자 영화로는 최초로 12.12 군사반란을 극화화 하는 프로젝트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스크린에 담아낼지 큰 관심이 모아졌다. 정치적 민감성을 엔터테이너로서 김성수와 제작사 플러스엠이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12.12 쿠데타의 두 주역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개봉 2년 전 한 달 간격으로 사망했지만 여전히 장세동이나 허화평, 정호용, 박희도 등 신군부 시절의 인사들이 아직 살아 있고,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도 건재해 역사적▪︎정치적 이슈와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1]즉, 전두환을 긍정적으로 그리든 비판적으로 그리든 어느 진영에서고 비난이 날아올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또한 제5공화국 방영 당시의 경우처럼 제작진이 비판하는 입장에서 제작한다 해도 일부 예민한 시청자들이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외모만으로도 제작진이 특정 인물을 미화하고 있다고 주장한 전적이 있는 등 여러모로 리스크가 산재한 제작환경이다.[2]
제작진은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중심으로 하여 스토리를 진행하면서도 그를 명백한 악이되 주변 인물을 사로잡을만한 카리스마와 추진력이 있는 인물로, 전두광과 대립하는 이태신 수경사령관을 참군인이자 명백한 선으로 표현하기 위해 연출적인 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법원에서 군사 반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며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이므로 명확하게 입장표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에서 보안사에 연행된 이태신이 벽을 보며 좌절하는 장면과 화장실에서 벽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전두광을 교차하며 대비하고, 보안사에서 고문받으며 조사를 받는 이태신과 신군부 축하연에서 경박하게 음주가무를 즐기는 하나회 인사들을 교차시켜 이 사건의 성공이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없음을 나타내려 했다. 또한 두 캐릭터의 선악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반란군측과 진압군측 인사들의 언행에 각색을 가하기도 했다.
3. 인물
비슷한 시기의 역사를 다룬 남산의 부장들이나 헌트와 마찬가지로 실존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고 비슷한 가명을 쓰는 쪽을 택했다. 다만 작중 직접 등장하지 않는 박정희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조직명인 하나회는 실명 그대로 나온다. 아무래도 똑같이 독재 정권 시기를 다뤘다가 개봉 이후에 명예훼손 등의 시비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등 여러모로 시달린 그때 그 사람들의 전례가 있다 보니 본작을 포함해 2020년대 기준 많은 현대사 관련 작품들은 고의적으로 약간의 각색을 통해 실제 역사와 다소 떨어뜨려놓는 식으로 논란을 피하는 편이다.[3]실제 역사와 각색을 적절히 조합해 탄생시킨 개성 있는 주역 캐릭터들에 대해 호평이 많다. 물론 영화 자체가 실화를 기반으로 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픽션을 추구하는 영화이기에 실존인물과 크게 거리가 있는 인물도 있어 불호를 표하는 관객들도 있긴 하다. 다만 동 시기를 다룬 제5공화국이나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재현율이 저조하다는 비판을 하는 이들에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과 독창성으로 만회했던 바가 있었고, 본작 또한 실제 인물들과 차이가 있는 캐릭터들도 작품성을 통해 관객들을 납득시켰다. 주요 인물들인 정상호와 노태건은 싱크로율이 상당한 편. 특히 정만식이 연기한 정병주와 염동헌이 연기한 유학성은 아예 빼다 박은 수준이다.[4] 반면 황정민이 분한 '전두광'은 기존 미디어와 역사에서 알려진 무겁고 중후한 모습보다는 야망에 가득찬 활화산 같은 모습을 중점으로 야비한 기질과 인간적인 면모를 한데 섞어 고유의 입체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정우성이 맡은 이태신은 실존인물과 외모가 닮지도 않았고 성격으로는 거침 없고 정열적인 모습이 아니라 고독하고 홀로 역경과 맞서 싸우는 초인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되어 재현율을 중요시 여기는 관객에겐 지적을 받았고, 이러한 성향의 관객들은 풍채가 좋은 최규하에 비해 정동환은 마른 체형이라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5][6][7] 오국상도 노재현의 도망과 투항 지시는 사실이나 장신에 강건한 외모였는데, 김의성은 띨띨한 아재로 연기하고, 민성배도 수차례 갑질이 강조되는 등 이태신과 더불어 과하게 한쪽 측면으로 몰린 '캐릭터'로 나온 경향이 심하다.[8]
전두광은 인물의 생전 외모 특징인 대머리를 살리기 위하여 배역을 맡은 황정민도 대머리 특수분장을 하고 등장했다.[9][10] 덕분에 실존인물이 좀 더 얼굴에 살이 붙어 있는 것 빼고는 싱크로율이 엄청나다는 호평을 받는다. 이에 따라 황정민의 출연작들 중에서 흔치 않은 대머리 상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그와 대립하는 이태신의 모델 장태완 사령관 또한 생전에는 머리가 상당히 벗겨져 있었는데, 전두광과는 달리 이마를 벗기지 않고 담당 배우 정우성의 머리에 흰머리를 조금 추가하는 정도로 각색했다.[11] 사실 장태완 소장은 12.12 반란 당시엔 정수리 뒤쪽으로는 머리가 꽤 남아 있는 편이었다. 1931년생으로 40대 후반이었기 때문.
드라마 제4공화국 및 제5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배역들의 사투리 사용은 실제 인물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 대구경북 사투리를 구사하는 전두환과 달리 황정민은 경상남도 마산시 출신이라 그런지 부산경남 억양으로 연기했다. 정우성은 이전에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연기했던 배우들과 달리 표준어를 사용한다.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오랑 소령 역시 동남 방언을 사용해야 맞지만[12] 앞선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표준어를 사용한다. 반란군 중에서는 영주 출신 황영시를 연기한 안내상[13]이 표준어를 썼고[14], 반면 평택시 출신 차규헌을 연기한 완주군 출신 전진기가 도리어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다.[15][16]
4. 연출
- 직접 커튼을 친다거나 전등을 끄는 액션들을 통해 작중 인물이 능동적으로 조명을 조절하여 제작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연출을 적극 활용했다. 디지털 색보정 담당자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는 전반적으로 아날로그 필름 효과를 내기 위해 질감을 조정하는 그레인을 부각해 관객들의 답답함을 유발했는데, 전두광이 위협적인 존재로서 은밀하게 방의 전등을 의도적으로 끄고 서로 간의 실루엣만 어렴풋이 비치면서 그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자 어둠 속에서 타인들에게 말로써 의지를 전하는 이때가 그레인을 결정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한다.
- 한미연합사로 도망쳤던 오국상 국방장관이 B-2벙커로 올 때 미군이 동승한 포드 승용차[17]를 타고 온다. 실제로 미군 측에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군쪽 인원이 탄 차량을 탈 것을 권유해 실제로 노재현이 이를 타고 이동했다. 이 포드는 이후 오 장관이 육본 지휘부가 B-2를 떠나려 할 때 '타고 온 포드 어딨냐'고 다시 잠시 언급된다.
- 이태신이 출동 직전 아내와 통화하자 아내는 현재 서울 상황을 전혀 모르고 남편이 오늘은 집에 오는지 묻는다. 실제로 12.12 당시 대부분 서울시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고, 아침이 되어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과 달리 정보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라 그 난리가 일어났음에도 상황 파악이 쉽사리 되지 않았던 것.[18][19]
- 전두광이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에게 뇌물을 건네는 장면에서 큰 얼굴의 벤자민 프랭클린 100달러 지폐가 나오는데, 1996~2006년까지 발행된 한참 미래의 권종으로,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1979년은 작은 얼굴의 프랭클린 도안이 사용되고 있었다. 과거 지폐를 구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 #
- 공수혁이 혼자서 반란군을 상대하려고 준비하는 장면에서 군번줄을 차는 모습은 각본엔 없었으나 정만식의 의견으로 추가된 것다. "오직 군인으로서만 살아오셨던 분이라 그분의 확고함과 책임감을 연기하기에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포인트를 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군인의 기본에 가장 충실하였을거라 생각하니 군인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식표를 차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
- 2공수가 서울로 향하는 장면 중 하나에서 M48A3K가 기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전사는 창설이래 단 한번도 전차를 보유한 적이 없다.[21]
- 실내 세트장의 벽면에 걸린 액자들의 휘호가 각각 등장인물들의 성향이나 처해 있는 상황, 시간적 배경 등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적혀 있다.
-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가 편안해도 전쟁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 전두광 보안사령관실. 1978년 1월 1일 박정희가 연두기자회견에서 안보대책을 발표하며 인용했다. 영화 내에서는 휘호 옆에 전두광과 박정희가 함께 찍은 사진 액자가 걸려 있는 것으로 나온다.
- 총력안보(總力安保), 전력증강(戰力增强): 육군본부
- 선국후기(先國後己·나라를 먼저 생각한 다음 나를 생각한다): 정상호 육군참모총장 공관. 1974년 박정희가 쓴 휘호다.
- 백절불요(百折不撓·백 번 꺾여도 휘어지지 않는다): 육본 참모총장실.
- 풍림화산(風林火山): 전두광 자택.
- 파부침주(破釜沈舟·솥을 깨트리고 배를 가라앉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30경비단 작전실.
-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을 집중하면 못할 일이 없다), 임전무퇴(臨戰無退): 수도경비사령부.
- 필사즉생(必死卽生), 선승구전(先勝求戰·승리할 준비를 해두고 전투에 임한다): 수경사령관실. 두 사자성어 모두 이태신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있다.
- 침과대적(枕戈待敵·창을 베고 적을 기다리다), 멸공통일(滅共統一): 특전사령관실.
- 심기일전(心機一轉·이제까지의 마음가짐을 바꾸고 완전히 달라짐): 보안사령부. 하나회 축하연 장면에서 전두광이 "우리는 인자부터 국가와 민족을, 그 담에 국민을 위해서 다 죽었다고 합시다" 대사를 할 때 나온다.
5. 군사 관련
개봉 전, 막대한 제작비와 수많은 배우들이 동원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임이 알려지며 아시아 영화를 사랑하는 세계 각지의 시네필들과 밀리터리 매니아들로부터 소품이나 당시 장비, 배경 구현 등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달성할지 그 귀추가 주목되었다. 같은 사건을 다룬 < 제5공화국>의 경우 아무래도 40부작이 넘는 드라마고 소품에 크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던 2000년대였던 반면, <서울의 봄>은 140분 남짓한 영화 한 편인데다가 2020년대 시점엔 CGI 기술도 고도화됐고 자문을 위한 전문가, 소품, 무대 디자인 등에 있어 진일보할 것으로 기대된 것이다.[22] 결과물은 몇몇 물리적인 제약이 있던 부분을 제외하면 역대 현대사 군사 영화 중에선 최고 수준으로 나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에 성공했다.[23][24]사전 제작부터 전문 감수 팀(에코나이너, 대표 태상호 기자)이 합류하면서 군사 묘사 부분에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고 한다. 에코나이너는 당시 주요 군시설 구조와 무기, 피복 및 개인장구에서 전술 행동까지 감수했다고 밝히며 영화 속 반영 부분을 찾는 재미를 느껴봐달라고 SNS 계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당부했다.
한편 진압군 측 이귀오 장군 역을 맡은 이귀우(육사 41기)가 제7포병여단의 여단장을 역임하고 준장으로 전역한 진짜 장군 출신이라 그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특히 영화 초반부 및 후반부 155㎜ 견인곡사포 사격 씬에서 실제 포병출신 보조출연자들과 합을 맞춰 실제 포탄사격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포병 등장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25] 이귀우가 현장에서 직접 배우들을 훈련시키고 일부 배우들에게는 적절히 국군 야전곡사포대 편제에 맞춰 포반장 등의 역할을 분담해주며 연기와 제작 양쪽에서 도왔다고 한다. 맡은 배역이 소장이었던지라 영화 출연 후 지인들로부터 언제 소장으로 진급했냐며 농담 섞인 연락도 왔다고.
사건의 중심이었던 육군본부 B-2 벙커와 수방사 벙커를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시절의 지휘통제실을 엿볼 수 있는데 현대의 지휘벙커는 각종 전자장비와 CCTV, 실시간 전장상황도와 전자지도로 가득하지만 지금과 달리 그런 게 없던 1970년대인지라 사방에 실물 지도가 걸려있고 컴퓨터 대신 지도와 전화기만 가득하다. 이 벙커들은 제작사인 플러스엠이 유튜브에서 공개한 영상에서 등장한다. #1
작중 등장하는 군부대들도 각색을 거친 것을 제외하면 매우 뛰어나게 재현됐다. 공수여단들은 전부 짝수번호가 붙은 가상의 부대로 변경되었고 수도경비사령부는 부대마크에 검은색 역삼각형이 더해지고 원래있던 검은 삼각형은 검은 테두리가 있는 노란색 삼각형으로 바뀌었다.[26] 9사단은 부대마크가 12.12 사태 당시 실제 사용중인 일명 '누운 백마' 마크가 아닌 1951년에서 1953년 사이동안 짧게 사용했었던 숫자 '9' 부대마크로 변경돼서 나왔다.
영화 초반 필동 수도경비사령부 본청 중앙현관 현판에는 '행동으로 충성하자' 라는 문구와 함께 현재 실제로 사용 중인 부대마크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영화 초반 이태신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차장이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의 연락을 받고 한남동 공관을 방문했을 때, 그가 입은 군복의 패치에서의 육군본부 마크 역시 실제 마크와 달리 별이 여러 개 달려있다.[27] 반면 제3야전군사령부나 제71보병사단, 제26보병사단처럼 현재 해체된 부대는 실제 부대마크를 그대로 사용했다. 단, 제30보병사단은 해체되었지만 제30기갑여단이 부대마크를 그대로 사용 중이기에 가상의 부대마크를 사용했다. 그 외에도 육해공 각 군의 군기(軍旗) 역시 현실과 살짝 다른 모양의 디자인을 사용했다.
피복 재현은 하술할 베레모 모표를 제외하면 완벽하다. 1979년 당시 육군 근무복과 민무늬 전투복을 구분해 세팅했으며 무궁화 받침이 없던 대령 이하 장교 계급장도 재현했다. 육군 특전사 및 전차 승무원들의 충정복도 올바르다. 특히, 피복에 있어 야전부대를 지휘하는 장성 지휘관과 국방부에서 근무하는 非 지휘관 장성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냈는데, 배송학 군수차관보는 녹색 견장 없이 국방색 견장에 계급장을 차고 있는 반면 지휘관들은 녹색 견장에 계급장을 부착하고 있다. 군복에 붙이는 병과 휘장의 경우 지금과는 다르게 시계 반대방향으로 90도 뒤집어 부착했는데, 이는 1979년 당시 부착 지침에 맞춰 정확히 재현한 것이다. 이러한 피복류의 전반적인 요소들은 등장인물 하위 문서에 있는 각 부대에 소속된 인물 사진들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또한 군복을 통해 전두광과 이태신의 성향을 대비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군 외부로의 야욕을 펼치는 전두광은 시종일관 색이 진하고 새것같은 근무복 차림으로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전두광의 권력욕과 과시성향을 나타낸다. 전두광이 착용하는 진한색의 근무복은 대장만 입는 옷인데, 소장에 불과한 전두광이 비슷한 색상으로 만든 일종의 '싸제'군복을 입음으로써 사성장군처럼 꾸미고 다닌 것이다. #2 참군인 그 자체인 이태신은 색이 바래 은은한 국방색인 전투복 차림을 고수하지만 전두광은 초반부 10.26 사건 수사 중간발표 신과 마지막 단체사진 신을 제외하면 출연하는 내내 근무복 및 전투복 앞가리개를 하지 않는데, 군인의 본분을 저버린 인간이라는 것을 복장을 통해서도 암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단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작중 육군 특전사의 베레모 모표가 1979년 당시의 것이 아니라 현용품이라는 것이다. 자문을 맡은 태상호 기자가 직접 "당시 모표 실물은 구하기 매우 어렵고 소품 신규 제작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현용을 부착하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밝혔다.
5.1. 등장병기
다음은 영화에서 등장한 군용 병기들이다. 작중 배경과 개봉시기가 43년의 차이가 있어 오늘날에는 M48 패튼을 제외한 대부분 예비군 치장물자로 지정되어있거나 완전히 퇴역한 병기들인 것이 특징.- 개인화기
- M16A1 - 당시 대한민국 국군의 제식 소총. 육군과 해병대 공관 경비대들은 물론 특전사들도 사용하며 총장공관에서 정상호 총장 납치를 막기 위해 권형진 준위가 벽장에서 꺼내들고 마지막 출동에선 이태신이 잠시 들기도 한다. 이태신이 홀로 바리케이드를 넘어 반란군을 향해 전진하는 후반부 장면에선 L2A2 SUIT(트라이락스) 조준경이 부착되어 있다.
- 탄창 - 제5공화국이나 제4공화국이 예산의 한계로 30발들이 탄창을 결합한 M16A1을 등장시켰던 것과는 다르게 최근 매체들 중에서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20발들이 탄창을 차고 나온다.[28] 현재 NATO 국가들이 사용하는 30발들이 탄창은 1970년대 초반에 개발돼 미군에서부터 시작해 나토 회원국까지 서서히 도입되었기 때문에 1979년 겨울 대한민국 국군은 대다수가 20발들이 탄창을 사용했다.[29]
- XM177 - 대통령 경호원들의 개인화기로 등장한다. 베트남 전쟁 전후로 소량이 국내로 반입되었고, 주로 대통령경호실 지원부대에서 사용되었다.[30]
- 콜트 디텍티브 스페셜 - 극중 장성들의 개인화기로 나온다. 이태신 역시 이를 차고 다니다가 마지막 작전에선 전투를 작정했는지 M1911로 교체해서 나온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형사들이 옷 안에 넣고 다닐 수 있도록 작게 디자인 된 제품이라 무장한 군인끼리 교전이 일어나는 전장에는 화력이 부족해 부적합한 부무장이다.
- M1911A1
- M60 기관총 - KM901중 한대에 거치된 것으로 등장. 2공수여단의 국방부 공격 장면에서 정문을 돌파한 KM901이 본청 입구를 방어 중이던 헌병들을 향해 사격한다.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 M48A3K, KM901에 거치된 모습으로 등장.
- M203 유탄발사기 - 4공수 병력이 공수혁 특전사령관과 교전하는 장면, 2공수의 행주대교 검문소 점령 장면에서 M16A1에 장착되어 등장.
- 화포
- M114 155mm 곡사포 - 수경사 야전포병단의 화포로 등장한다. 사거리는 14km. 행주대교 남단에서 광화문까지의 직선거리가 약 15km 정도이다.
- M40 무반동포 - K-116에 거치된 상태로 등장.
- 차량
- M48A3K
- KM901
- K-111, K-116
- M35 트럭
- M818
- K-511 - 작중에서는 M35 트럭을 대체한다. 다만 K511 생산년도가 1978년이기에 1979년을 다루는 서울의 봄에 등장해도 오류는 아니다.
- M151
- 기타
[1]
공교롭게도 〈서울의 봄〉 개봉일은 전두환의 사망 2주기 하루 전날이다.
[2]
때문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황정민 팬들은 자기 배우가 연기를 잘 해도 멋있다고 칭찬할 수 없는 영화란 말도 나온다.
[3]
실화 드라마를 표방했던
제5공화국은 아예 대표 5공 측 인사들인
장세동과
허화평에게 감수까지 받았다.
[4]
염동헌은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선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정장군 역을 연기한 바 있다.
대머리라는 공통점이 있어 역시 싱크로율이 나쁘지 않았다.
[5]
실제 해당 사진에서도 보여지다시피 최규하는 군인 출신 전두환보다 더 풍채가 컸다.
[6]
정동환은
최규하 전 대통령보다는
장면 전 총리와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로 유명하다.
[7]
다만 최규하와 가장 싱크로율이 좋았던 배우
김성겸이 아무래도 팔순이 훨씬 넘은 고령인 데다가 2018년 이후로는 연기 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해서 최규하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음주운전 논란만 아니었어도 외모와 체격 조건이 비슷한
곽도원이 가장 잘 어울렸을 것이다.
[8]
다만 외모는 판이할 지언정 최규하의 경우 실제로 보여주었던 원칙주의지만 소극적이었던 모습과 작중 대통령의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에 행적 위주로 보면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다. 또한 노재현은 경력 많은 베테랑 군인 출신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군사반란 당시 안일하고 어리석은 뻘짓거리를 연속으로 저질렀기 때문에 12.12 사태 당시 모습만 보면 작중 묘사된 멍청하고 한심한 오국상과 크게 괴리가 있는 묘사는 아니다.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멍청함을 더욱 과장하고
꼰대 요소를 덧붙힌 정도.
[9]
제작진들이 등장인물 이름을 써두고 투표했을 때 전두광이 항상
1등이었다. 이름의 광이
대머리를 떠오르게 하는 빛 광(
光)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는데, 작중 잠깐 스쳐 지나가는 명패를 보면 진짜
빛 광 자를 썼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는 미칠 광(狂)으로도
해석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10]
가발은 총 다섯 개 버전이 있었다.
#
[11]
이는 전두광과 외관적으로 대비를 두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다.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두 인물이니만큼 확연히 차이를 두어야 하기 때문.
[12]
정병주 장군은
영주시, 김오랑 소령은
김해시 출신이다.
[13]
배우 본인이
대구광역시 출신에 옛날에도 사투리 연기를 꽤 했음에도 굳이 표준어를 쓴 게 참 의아한 부분이다.
[14]
제5공화국에서도 배우
문회원이 표준어로 연기했다.
[15]
경상도 사투리는 남도 방언 중에서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따라하기조차 어렵다. 그리고 같은 경상도라도 북부 지역과 동남부(
부산, 마산 등) 지역, 그리고 서부 경상도 지역(
진주,
거창,
김천,
상주,
남해,
고령,
구미,
문경,
예천 등) 사투리가 다 차이가 있기에 듣는 이의 입장에 따라서 어색하게 들리기 쉽다. 최근에는
경상도 출신 배우가 서울말을 배워 연기하는 경우는 꽤 있지만, 경상도 캐릭터는 차라리 경상도 출신 배우를 쓰지 타지 출신 배우가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하는 경우는 잘 없는 추세. 앞서 언급한 전진기의 경우에는
서남 방언을 쓰는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임에도 경상도 사투리로 연기했다.
[16]
다만 같은 제작사에서 연출한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경북 출신인
김재규가 서울말을,
경기도
이천시 출신인
차지철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설정을 가져간 바가 있었다. 남산의 부장들이나 서울의 봄이나 하나같이 실화를 각색한 논픽션 영화들인 만큼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정을 비튼 모양이다. 그리고 당시 각각 김재규와 차지철은 연기한
이병헌과
이희준의 출생지가 서울, 대구인 점도 있을 것이다.
[17]
영화상에서는
1978년형
머큐리 모나치를 타고 나온다.
[18]
실제로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 장군을 연기했던
김기현 성우가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해서 당시 상황을 회고하기도 했는데, 저 당시는 중앙정보부와 문교부 등에서 대놓고 언론을 통제하던 시절인데다 언론보도 자체도 체계적이지가 못해서 당시에는 한강다리가 통제됐다, 퇴근시간에 시민들 발이 묶였다 정도로만 짤막하게 보도가 나갔었고, 일반 시민들이 12.12 군사반란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 건 민주화 이후의 일이였다고.
[19]
실제로 당시 한강다리에서 버스 통행이 막혀 내려서 걸어서 귀가하거나 하면서 전차나 군용 트럭 대열을 목격한 시민들도 그게 군사반란인지는 전혀 몰랐고 긴급한 부대이동인가보다 정도로 추측했을 뿐이었다. 군사독재 정권이 십몇년 이어지는 동안은 경찰도 아닌 군인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자기들 할 일을 하며 시민들을 검문하는 사례가 흔했기 때문에 전투부대가 도심에서 왔다갔다 하는데도 이상함보다는 또 시작이냐 정도의 귀찮음만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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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23일에 전두환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백담사로 유배를 갔다. 그리고 정확히 33년 후인 2021년 11월 23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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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해당 장면 이후로는 M48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편집과정에서의 실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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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5공화국은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기준으로 봐도 제한된 환경속에서 군사 재현에 꽤나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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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8A3K와 KM901의 경우 군의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치장 물자가 아닌 소품팀이 제작한 레플리카를 이용했다. 드라마
D.P. 시리즈처럼 아무래도 육군 입장에선
흑역사를 들추는 작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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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레플리카치고는 괜찮게 나왔고 다른 매체에선 잘 안 보여주는 포탑사격 장면도 등장한다. 작중 반란군들이 KM901을 몰고와 포탑에 달린 M2로 진압군 측 헌병들에게 제압사격을 가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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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mm견인곡사포는 사격에서 40kg이 넘는 포탄을 들어야 하고 방열과정에서도 무게가 상당한 가신과 발톱을 들고 고정시켜야 하며 포 받침을 고정시켜는 잭(또는 자키)를 돌려야 하는 등 포반 인원들이 숙련되지 않으면 고되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부상과 사망의 위험도 있다. 촬영 과정에서도 방열은 생략하더라도 사격 절차가 숙달되지 않으면 실사격처럼 보여주기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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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수여단은 모두 홀수인데 행주대교를 건넌
제1공수특전여단은 2공수로, 진압하려 출동했다가 신사협정으로 회군한
제9공수특전여단이 8공수로 나오며,
제3공수특전여단은 4공수로,
제5공수특전여단은 6공수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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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육본 마크는 가운데 큰 별을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작은 별 세 개가 달려 있지만, 영화에서는 가운데 큰 별을 중심으로 주위에 여덟 개의 작은 별이 달려 있는 모양이다. 이는 아래 있는 제작사의 유튜브 영상에서 등장하는, 육군본부 B-2 벙커 세트장 입구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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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부는 아니고, 일부 장면들에서는 30발들이 탄창이 지나가듯이 나온다. 다만 아주 극소수이기는 해도, 완전 보급이 안 된건 아니었기에 오류라고 보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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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발들이 탄창은 1983년 K2가 보급 되기 시작하면서 함께 정식 보급이 시작되었다. 20발들이 탄창과 30발들이 탄창의 정식 명칭이 각각 'M16용 탄알집' 'K2용 탄알집'인 이유가 이것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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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6 소총의 단축형이라 개활지보다 좁은 공간에서 더 사용하기 용이해 월남전 당시 미군 특수부대와 장교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