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생 메이저리그 왼손 투수에 대한 내용은 브렛 앤더슨(야구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2a2a28><colcolor=#fff> 브렛 앤더슨 Brett Ander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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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브렛 루이스 앤더슨 Brett Lewis Anderson |
출생 | 1967년 9월 29일 ([age(1967-09-29)]세) |
잉글랜드 서섹스 린드필드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3cm |
배우자 | 조디 앤더슨 |
학력 | UCL 바틀렛 건축 대학 (건축 / 제적) |
소속 |
스웨이드 (1989 ~) 더 티어스 (2004~2006) |
활동 기간 | 1989년 - 현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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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영국의 록밴드 스웨이드( Suede)의 보컬이자 프론트맨. 밴드의 리더이기도 하다.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중성적이고 화려한 외모로 90년대 초 스웨이드와 브릿팝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3년 스웨이드가 해체한 후 2004년, 전 스웨이드 멤버였던 버나드 버틀러와 The Tears를 결성하였으며 The Tears가 2006년 해체한 이후 4개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였다. 2010년, 스웨이드를 재결성한 브렛은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재개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스웨이드의 프론트맨으로서 왕성히 활동 중.
2. 생애
브렛 앤더슨은 1967년 웨스트 서섹스 주의 헤이워즈 히스의 노동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예술가였으며 택시 운전사인 그의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헤이워즈 히스와 인접한 린드필드의 공영 주택 단지에서 자랐으며 린드필드 초등학교와 오스올 종합 중등 학교를 졸업했다. 청소년기에 그는 후에 스웨이드의 베이시스트가 된 맷 오스먼과 함께 더 피그스(The Pigs), 조프(Geoff)같은 개러지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브렛과 저스틴 프리쉬먼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CL)에서 처음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관계였다. 저스틴의 부모님[1]이 마련해 준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은 브렛의 친구인 맷 오스먼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결정하고, 1989년에 대학을 중퇴한 후 비틀즈, 더 큐어, 더 스미스, 록시 뮤직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곡들을 연주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브렛도 저스틴도 기타리스트가 될 만한 재목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들은 NME지에 구인 광고를 냈다.
"런던에서 결성된 밴드에서 젊은 기타리스트 구함.
더 스미스, 로이드 콜 앤 커머션 [2],
데이빗 보위,
펫 샵 보이즈 관련. 고지식한 음악 마니아는 사절. 실력보다 더 중요하게 따지는 것도 있음. 브렛에게 연락해 주세요."
이 광고는 19살의
버나드 버틀러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결국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게 된다. 버나드를 영입한 이후 그들은 밴드명을
Suede라 정했고 초기에는 드러머가 없었기에, 드럼 머신을 사용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매니저였던 저스틴의 노력[3]에도 불구하고, 스웨이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런던의 캠던 타운의 소규모 공연에서만 활동하게 된다.1991년 5월 즈음부터 저스틴은 블러의 프론트맨인 데이먼 알반과 교제를 시작하는데, 이는 1990년대 초 브릿팝 씬의 균열의 시초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저스틴은 스웨이드의 수많은 리허설에 불참하고, 브렛과 동거중에 데이먼으로 환승하며 일방적으로 브렛을 찼으면서 브렛을 포함한 스웨이드의 멤버들에게 데이먼과의 관계를 공공연히 밝힘으로써[4] 1991년 10월, 스웨이드에서 해고되었으며 1992년 6월에 엘라스티카를 결성한다. 한편, 저스틴에게 갑작스럽게 차이고 그녀와 동거하던 집에서 나와 값 싼 아파트[5]에 정착한 브렛은 이별 후의 충격과 상실감에 시달렸고 결국, 당시 룸메이트인 앨런의 영향을 받아 코카인을 하기 시작했다.[6] 참고로 저스틴과 동거중이었을 때 브렛은 대마초와 엑스터시를 호기심에 잠깐 했었을 뿐 다른 종류의 마약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난생 처음 프로 뮤지션으로서 가입한 밴드이자 상승세로 향하고있던 스웨이드가 이대로 해체해버리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 버나드 버틀러는 코카인에 빠져있는 브렛의 집에 매일같이 찾아와 브렛을 격려하면서 많은 곡을 새로 작곡하기 시작한다. 밴드 멤버들은 이런 버나드의 열정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절치부심하여 리허설에 돌입했으며 그 결과 1992년 2월 인디 레이블 Nude 레코드사와 계약에 성공한다.[7]
브렛은 이 때를 회상하며 "참 이상한 시기였어요. 더 이상 저스틴과 내가 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버나드와 나는 오히려 더 가까워지고 있었죠. 저스틴과의 결별은 많은 것들과 관련이 있었어요. 그것은 스웨이드가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는 진정한 밴드로 변모하는데 촉매제가 되었죠. 저스틴과 헤어졌기 때문에 다스려야 할 크나큰 감정의 동요는 순전히 개인적인 고뇌였어요. 그 괴로움은 페이지 위로 뛰쳐나왔고 거기에는 박차고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었죠."라는 코맨트를 남겼다
인터뷰를 보면, 전 연인 저스틴과는 화해해서 부부 동반으로 식사도 하는 사이라고 한다.[8] 하지만 당시 저스틴의 남자친구였던 데이먼 알반과는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고. 일설에 의하면 저스틴이 화해시키려고 두 사람을 만나게 했는데 악수만 하고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 5월 11일, 싱글 The Drowners로 메이저에 데뷔한 스웨이드는 1993년 3월 29일, 데뷔 앨범 Suede를 발표하였고 밴드는 "남자 경험이 없는 양성애자"라는 커밍아웃을 한 브렛 앤더슨의 도발적인 발언과 노골적인 동성에 컨셉을 선보여 리치 제임스의 4 Real 자해 사건 등으로 주목을 받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와 함께 영국 대중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1집 Suede는 영국에서 발매 이틀 만에 10만 장인 골드 레코드 인증을 받아 당시에 '영국에서 가장 빨리 많은 수의 음반을 판매한 데뷔 앨범'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밴드는 제 2회 머큐리 시상식에서 대상까지 받았다.
그렇게 영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스웨이드가 북미 투어를 돌기 시작한 1993년 가을, 버나드 버틀러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감자기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 밴드 멤버들이 급히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스웨이드의 나머지 멤버들은 미국 진출이 생각했던 것보다 부진한 와중에 갑자기 영국으로 돌아온 것도 불만스러운데, 대신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던 크랜베리스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공연 준비를 위해 버나드보다 먼저 미국으로 돌아갔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 충격에 빠져 있던 버나드는 밴드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 버나드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밴드에 복귀했으나 밴드 멤버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해서 공연 대기시간에 크랜베리스의 투어 버스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심지어는 혼자 택시를 타고 다음 공연장으로 간적도 있다고 한다.
북미 투어를 마친 후 1994년 2월 14일 스웨이드는 논 앨범 싱글 <Stay Together>를 발매한다. <Stay Together>는 7분짜리 대곡으로 곡을 작곡한 버나드 버틀러는 이 곡을 당시 자신의 감정이 그대로 녹아있는 곡이라며 자신이 만든 스웨이드의 곡들 중 특히 좋아하는 곡이라고 호평했지만 곡의 작사가인 브렛 앤더슨은 이 곡을 밴드가 발표한 곡들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곡으로 꼽았다. 그가 곡을 싫어하는 이유는 곡 자체보다는 곡을 녹음할 즈음부터 버나드와 대립[9]하기 시작했고 17세의 여자친구 Anick과도 갑작스럽게 결별하게되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각종 마약에 취한채 시간을 보내던 당시 자신의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1994년 3월 22일, 스웨이드는 2집 Dog Man Star의 작업을 시작한다. 당시 브렛 앤더슨은 미국 투어가 실패로 끝난데다가 사귀고 있던 17살 소녀 Anick[10]과도 헤어지자 빅토리아풍의 대저택을 임대해서 저택에 틀여박힌채로 헤로인[11]을 하면서 보내고 있었으며 2집 작업 당시 버나드는 Vox Magazine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브렛 앤더슨은 락스타의 쾌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는 게으른 정키(마약중독자)일 뿐 뮤지션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놈이다."라며 브렛 앤더슨을 비난하기도 했다.[12]
당시 스웨이드의 곡은 버나드 버틀러(작곡) 브렛 앤더슨(작사)의 콤비 체제로 씌어지고 있었는데 이처럼 둘의 관계가 완전히 멀어져 버렸으니 작업은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나중에 발매된 Dog Man Star 디럭스 에디션에 나온 둘의 인터뷰를 보면 앨범 전곡은 드러머 사이먼 길버트가 여러가지 비트를 녹음해서 버나드의 집에 보내면 [13] 버나드는 그것을 토대로 여러 곡을 작곡해서 브렛의 집에 보내고 브렛이 그 중 마음에 드는 곡을 선곡해서 가사와 보컬 멜로디를 오버더빙하여 다시 버나드에게 보내는 과정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브렛과 버나드의 사이는 서로 매니저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굉장히 안좋았기 때문에 밴드는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된 리허설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드러머 사이먼 길버트에 회상에 의하면 당시 버나드는 브렛이 작사한 가사들의 내용을 퇴폐적[14]이라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며 앨범 프로듀서인 에드 불러(Ed Buller)가 자기가 작곡한 작업물들을 망쳐 놓는다고 생각했고, 에드 불러에게 앨범 프로듀싱을 맡길 바에야 차라리 자기가 직접 프로듀싱 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나머지 멤버들의 반대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2집 앨범의 후반 작업 도중인 1994년 7월 8일, 버나드 버틀러는 브렛 앤더슨과의 불화 끝에 밴드를 탈퇴하게 되고 밴드는 10월 10일에 2집 앨범 Dog Man Star를 발매한 뒤 새로 영입한 18살의 기타리스트 리차드 오크스와 함께 2집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2집 활동을 마치고 3집 앨범 작업을 막 시작한 1996년 1월, 밴드는 드러머 사이먼 길버트의 사촌이자 키보디스트 닐 코들링을 영입하며 현재와 같은 포맷을 형성한다.
1996년 9월 2일 발표한 3집 Coming Up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브렛 앤더슨은 Samantha Cunningham라는 인도 태생의 모델과 약혼까지 하는 진지한 관계를 맺는 등[15]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하는 듯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헤로인 및 코카인 등 약물 중독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결국, 브렛 앤더슨은 자신의 마약 중독 문제로 Samantha와 자주 다툰 끝에 1998년 그녀와 파혼했고 이후 크렉과 헤로인에 깊이 빠져든다. 이처럼 마약 중독이 정점에 달했던 브렛은 결국 4집 Head Music 투어 도중 같이 헤로인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약을 하다가 한 친구가 정신을 잃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일을 현장에서 직접 보게 되고 이에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헤로인을 끊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Coming Up 투어를 하면서 아시아를 여행하던 중 배운 명상이 마약을 끊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4집 Head Music 활동이 모두 끝난 후 브렛은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재활치료원에 입원했다.
이후 밴드는 브렛이 재활치료원에서 나올 때 까지 긴 공백기를 가지다가 2002년, 새로운 키보디스트로 알렉스 리를, 프로듀서로 더 스미스, 블러, 크랜베리스 등의 히트 앨범을 프로듀스한 스티븐 스트릿을 영입하여 5집 앨범 A New Morning을 발매한다. A New Morning은 기존 앨범들과는 달리 긍정적인 곡조의 곡들이 앨범을 가득 채웠으며 브렛 앤더슨 특유의 비음이 완전히 없어지고[16] 작곡측인 측면에서 한 멤버가 주가 되어 작곡을 하지 않고 여러 멤버들의 곡을 배분하여 앨범에 싣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앨범이었지만 이는 스웨이드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진 평범한 팝 앨범이 돼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한다. 브렛 앤더슨은 이 앨범에 대해 "밴드가 발매한 앨범들 중 가장 많은 비용이 사용된 앨범으로 내가 최초로 마약에 의지하지 않고 만들어낸 앨범이지만 동시에 만들지 말았어야 했던 앨범 "이라는 평을 내렸다. 실제로 스웨이드는 재결성한 이후 다른 앨범의 곡들은 부르지만 5집 앨범의 수록곡들은 라이브로 부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2003년, 스웨이드 해체 후 브렛은 버나드 버틀러와 화해한 뒤 The Tears를 결성하였다. 현재로선 The Tears도 해체된 상태이나, 버나드와는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함께 인터뷰를 진행한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있다.
2010년에 스웨이드를 재결성 한 후 2024년 현재까지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및 프론트맨으로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상 스웨이드로서의 더 자세한 행보는 스웨이드 문서 참조.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 Brett Anderson
- Wilderness
- Slow Attack
- Black Rainbows
4. 외모
밴드의 초기 컨셉부터가 글램 록의 영향 아래 있었던지라 패션에 대해서도 상당히 퇴폐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중성적이고
50이 넘은 현재는 미청년에서 미중년의 모습이 되었다. 마약 중독 등으로 순식간에 망가지는 뭇 락스타들과 다르게 비교적 외모 관리를 잘 한 편. 브렛을 비롯하여 스웨이드 멤버들이 전반적으로 채식주의의 영향인지, 모두 젊은 시절과 비슷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젊어서는 대한민국 배우 장동건, 중년의 모습은 정우성과 매우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더불어 최근 모습 한정 톰 크루즈, 매튜 벨라미와 닮았다는 의견도 종종 보인다.
5. 여담
-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아메리칸 사이코의 작가 브렛 이스튼 엘리스를 꼽았다. 5집 A New Morning의 두번째 싱글 Obsessions에서도
알베르 카뮈와 함께 브렛 이스튼 엘리스를 언급한다.
- 입스위치 타운 FC의 팬이다.
- 과거 마이크를 빙빙 돌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가끔은 그냥 돌리는 것으로도 모라자서, 스스로의 허벅지나 엉덩이를 빙빙 돌아가는 마이크로 세게 때리기도 했다. 직접 보시라. 덕분에 허벅지에 멍이 상당하게 들기도 했다. 요즘도 공연에서 마이크를 돌린다.
- 무대에서 옷을 자주 찢어먹기로 유명하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땀에 젖은 셔츠가 자주 찢어진다. 2016년 인천 펜타포트 내한 당시에도 셔츠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그날 브렛과 스웨이드에 입덕한 여성 팬들이 그렇게 많다.
- SNS를 하지 않는다. 트위터 공식 계정이 있으나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사에서 공지사항 업로드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듯 하다. 참고로 @reallybanderson 라는 트위터 계정은 브렛 앤더슨의 계정이 아닌 사칭 패러디 계정이다. 관련 기사
- 블러의 데이먼 알반과 2024년인 현재까지 서로 사이가 무척 안 좋기로 유명하다. 같이 동거중이었던 브렛의 여자친구 저스틴 프리쉬먼이 데이먼 알반을 만난 후 그에게 푹 빠져서 데이먼으로 환승했기 때문이다. [18] 실제로 블러와 오아시스가 대립하기 전에는 영국 언론들이 데이먼, 브렛, 저스틴의 관계를 바탕으로 스웨이드와 블러를 라이벌로 몰아갔었다.
[1]
저스틴의 아버지는 2차세계전쟁 도중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에서 모든 가족을 잃어버리고 난민아동들을 위한 기숙학교로 보내졌던 유대계 헝가리인이었다. 그는 후에 부유한 건축가가 되어서 earth-quake-proof이라는 재단을 설립했고 또 런던에 있는 가장 유명한 명소들 중 하나인 Centrepoint 와 Canary Wharf의 설계에 참여했다.(Love and Poison, Carlton Publishing Group, November 3, 2003)
[2]
1980년대 초반 데뷔한 소피스틱 팝 밴드. 스미스랑 성향이 유사하며
브릿팝과
챔버 팝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Suede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저스틴의 부모님 인맥을 대동하여 공연 관중을 채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4]
그녀는 스웨이드 멤버들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밴드 내에서는 점점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버나드는 "저스틴은 리허설에 늦게 나타나서는 할 수 있는 최악의 말을 내뱉었지 ― 지금까지 블러가 비디오 찍는 곳에 가 있었어 ― 라니 . 그 때가 정말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을 때라고 할 수 있을거야. 아마도 저스틴이 그렇게 말한 바로 다음 날 브렛이 나한테 전화해서 '저스틴을 내쫓았다.' 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라고 회상했다. 또한 브렛 역시 "만약 저스틴이 밴드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을 거야. 저스틴이 나간 건 개인적인 동기 부여도 됐고 꼬였던 연애사가 정리되기도 했으니까."라고 회상하였다.
[5]
Animal Nitrate 뮤비 초반에 나온 아파트가 바로 브렛이 살던 아파트이다. 저스틴은 브렛이 거주할 아파트를 알아봐주고 아파트를 구입할 돈도 일부 보태줬다고 한다.
[6]
당시 브렛은 담배를 구입하러 잠시 밖으로 나갔을 때를 제외하면 하루종일 집에 틀여박혀 앨런과
코카인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믹 재거가 출연한 영화 <퍼포먼스> 등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7]
1992년 1월에 있었던 NME 쇼에서 스웨이드의 공연을 본 후 Nude 레코드사의 사장 사울 갤펀이 큰 인상을 받고 밴드를 찾아와 자신의 레이블과 계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8]
저스틴은 음악을 접고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9]
드러머 사이먼 길버트와 베이시스트 멧 오스먼은 이 곡을 녹음할 당시 밴드의 살벌한 분위기에 진절머리가 나서 녹음 중 여러번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10]
<Stay Together>, <Black or Blue>, <The Wild Ones> 등의 곡들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나온 산물이다.
[11]
브렛은 1집 활동 도중
헤로인을 접하게 되고 아내 헤로인에 중독되었다.
[12]
이후 브렛이 녹음실에서 이 인터뷰를 본 후 화를 내자 버나드는 자신의 말이 심했다며 브렛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13]
버나드는 원래 그냥 편하게 드럼 머신을 사용하려 했으나 자신이 너무 독단적인 것 같아서 일부러 사이먼에게 비트를 녹음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14]
브렛 앤더슨은 메이저 데뷔 후 만나기 시작한 17살 소녀 Anick과의 위태로운 애정 관계를 이어나가는 자신의 불안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스케줄이 없을 때면 혼자 틀여박혀서 각종 마약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생활상을 신분상승을 위해 상류층 남성과 결혼했지만 남편이 직장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애써 모른척하며 홀로 고독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정주부 여성에게 투영시킨 내용의 곡들을 작사했다.
[15]
3집 B-side 중에 Samantha의 애칭인 Sam이라는 곡도 있다.
[16]
당시 브렛의 주치의가 브렛에게 계속 기존의 창법으로 노래를 부른다면 목소리를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17]
사실 리암은 한때 사고 치고 다니는 것과 별개로 성격 자체가 쿨한 편인지,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였던 뮤지션들과 관계가 나쁘지 않다. 심지어 블러하고도 브릿팝 전쟁 이후로는 그냥 무난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
[18]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저스틴과의 결별을 겪은 후 브렛은 심적으로 크게 방황하였고 결국,
코카인에 손을 대면서 마약중독자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