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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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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추존 황제
부웅 | 苻雄
<colbgcolor=#483D8B> 묘호 없음
시호 문환황제(文桓皇帝)
성씨 부(苻)
웅(雄)
원재(元才)
부황 태조(太祖)
생몰 ? ~ 354년

1. 개요2. 생애
2.1. 초창기2.2. 관중 장악2.3. 환온이 일으킨 제1차 북벌에 대한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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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혼란이 극심했던 오호십육국시대에 활동한 정치가이자 장군.

전진의 초대 황제인 고조 경명제 부건의 친동생이었으며, 자는 원재(元才)였다.

티베트계 저족의 수령이었던 부홍(태조 혜무제로 추숭됨)의 4남으로 전진의 황족임과 동시에 형 부건을 도운 개국공신이었다. 용병술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나 부건의 전진 건국 당시 크게 활약해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고, 이후 동진의 권신인 환온의 북벌 방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2. 생애

2.1. 초창기

부웅은 어려서부터 병서를 즐겨 읽어 모략이 특출났다. 거기다 기마궁술에 능하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데다가 성품 또한 빼어나 여러 사람들이 그와 교류하기를 원했다. 아버지 부홍 저족을 이끌고 갈족 후조에게 복속했을 때, 부웅은 그 밑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워 석호가 그를 용양장군에 임명했다. 이후 폭군 석호가 붕어하고 그 아들들이 제위를 다투어 후조가 큰 혼란에 빠지자, 아버지 부홍의 유지를 이어받은 형 부건과 함께 부씨 저족들을 이끌고 서쪽 관중으로 들어갔다.

2.2. 관중 장악

당시 후조의 장수였던 두홍(杜洪)이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멋대로 장안을 점유하고 관중을 유린하고 있었다. 부웅은 형 부건의 명령에 따라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동관(潼關)을 함락시킨 뒤, 장안으로 진격했다. 두홍은 정로장군 장선(張先)에게 13,000명의 군사을 주고 반격했지만, 동관 이북에서 부웅에게 패배했다.(동관 전투) 장선의 군대를 가볍게 무찌른 부웅은 위수 북쪽을 순시하며 장안 인근 여러 성읍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부건의 군대를 막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두홍은 장안성을 버리고 주지(周至)로 달아났다. 부건이 장안에 입성하자 진주(秦州)와 옹주(雍州)는 폭정과 내분으로 쇠락해진 후조를 버리고 항복해왔는데 양주(凉州)의 석녕(石寧)만은 상규에 주둔하며 부건에게 항복하지 않았다. 부웅은 부건의 명을 받들어 상규를 공격해 후조의 군대를 대파하고 양주자사 석녕의 목을 베었다.(상규 전투)

351년, 관중을 완전히 장악한 부건이 전진을 세우고 천왕(天王)을 자칭하자 부웅은 승상 · 도독중외제군사 · 영거기대장군 · 옹주목 · 동해공(東海公)에 임명되었다.

352년에 부건이 황제를 칭하고 아우 부웅을 동해왕(東海王)에 봉했다. 그해 염위의 한족 군주 염민의 장수였던 장우가 허창을 들고 전진에 투항했는데, 얼마 안가 동진의 은호가 북벌을 개시하는 바람에 허창은 동진의 안서장군 사상(謝尚)과 강족 출신 평북장군 요양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장우가 전진의 황제였던 부건에게 서신을 보내 위급함을 알리자, 부건은 부웅에게 20,000명을 주어 허창을 구원하고 관동을 장악하도록 했다. 부웅은 동진군을 유인해 허창 이북에 위치한 계교(誡橋)에서 사상의 군대를 격파하고 15,000여 명을 사살했다.(계교 전투) 대패한 사상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요양과 그의 부대를 작피(芍陂)에 남게 하고, 목숨만 건져 회남으로 도망쳤다. 계교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부웅은 장우와 관동의 백성 50,000여 호를 관중으로 이주시켰다. 같은 해, 부웅은 농서에서 후조의 장수 왕탁(王擢)을 격퇴시켰고, 왕탁은 한족 정권인 전량으로 도주했다.

353년, 왕탁이 전량의 군대 15,000명과 함께 전진을 침략하자 부웅은 군대를 이끌고 싸워 용여 전투에서 전량군 12,000여 명을 죽이고, 전량의 장수 장홍과 송수를 사로잡았다. 분개한 전량의 군주 장중화가 왕탁에게 다시 20,000명의 군사를 주어 진주를 함락시키는 바람에 부웅은 물러나 농동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때 귀순했던 장우가 전진을 배반하고 하후현, 공지, 유진, 호양적, 호연독 등 관중의 몇몇 호족들과 결탁해 반란을 일으켰다.(장우의 난) 이에 부웅은 하는 수 없이 장안으로 후퇴하고 장우를 주살한 뒤, 부법 및 부비(府飛)와 군사를 나눠 각지 호족들의 반란(관중 봉기) 진압에 열중했다. 부웅이 지양(池陽)과 사죽(司竹) 지역의 반란군을 격파하니 공지는 참수당하고, 호양적은 호연독에게 도망쳤다. 유진과 하후현의 반란군 또한 부법과 부비에게 패배하여 진압당했다.

2.3. 환온이 일으킨 제1차 북벌에 대한 방어전

354년, 부웅은 패성(霸城)의 호연독과 옹성(雍城)의 교병을 제외한 호족의 반란들을 모두 평정했다. 하지만 전진의 관중 기반이 아직 약한 것을 눈치챈 동진의 권신 환온이 강릉에서 40,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발해 북벌을 개시했다. 환온의 동진군은 전진의 형주자사 곽경을 사로잡고 청니까지 진군해 전진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했고, 사마훈은 자오곡에서 별동대를 이끌고 수도 장안을 노렸다. 설상가상으로 전량의 왕탁과 아직 제압되지 않은 호연독 및 교병까지 동진의 북벌군에 호응했다. 즉 전진이 개국된 이래 최대의 위기 상황이었다.

우선 명장 환온의 북벌군을 막는 것이 먼저였기에 경명제 부건은 승상 부웅, 황태자 부장, 회남왕 부생, 평창왕 부청, 북평왕 부석에게 50,000명의 병력을 주어 동진군을 저지하도록 했다. 부장과 부생은 남전에서 환온의 북벌군을 맞아 분전했으나 환온의 용병술에 말려 패배했고, 부웅도 백록원에서 환충과 싸우다가 패배했다.(남전 전투) 환온은 승세를 타고 장안 인근까지 도달했으며 부건, 부장, 부웅 등은 장안 남쪽에서 참호를 깊게 파고 수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환온은 보급 문제를 겪고 있어, 현지에서 보리를 수확해 군량을 보충할 생각으로 진군을 멈추었다. 환온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부웅은 7,000명의 날랜 기병들을 이끌고 자오곡에서 올라오는 사마훈을 기습해 여왜보까지 쫓아냈다.(자오곡 전투) 당장 급한 불을 끈 뒤 곧바로 남전으로 달려가 백록원에 주둔해 있었던 동진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백록원 전투) 한편 장안에서는 환온의 속셈을 눈치챈 경명제 부건이 군사를 동원해 보리를 몽땅 거두어들였고, 동진의 북벌군은 더이상 식량을 얻을 길이 없게 되었다. 식량이 바닥난 환온은 군대를 돌려 동진으로의 귀환을 시도했는데, 이때 부웅은 태자 부장과 합류해 퇴각하는 환온을 추격하여 격파했다. 그리고 부웅은 쉴 겨를도 없이 군사를 이끌고 곧장 진창으로 향해 왕탁과 사마훈을 쫓아내고 진창성까지 탈환하면서 환온의 제1차 북벌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환온의 북벌이 실패로 끝나자, 호연독은 백성 10,000명을 이끌고 동진으로 망명했다. 이제 남은 반항 세력은 옹성의 교병뿐이라 354년 7월, 부웅은 군대를 몰아 옹성을 쳤는데 진중에서 급사했다. 아우 부웅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경명제 부건은 토혈까지 하며 부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부건은 그를 위왕(魏王)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경무'(敬武)라고 했다. 부웅의 아들로는 부견이 있었는데 훗날 부견이 수광정변을 일으키고 천왕에 오르면서 부친인 부웅의 시호를 '문환황제'(文桓皇帝)로 다시 추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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