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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의 군대에 대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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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인민군 Quân đội Nhân dân Việt 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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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베트남 인민공군기.svg | ||
베트남 인민육군 | 베트남 인민해군 | 베트남 인민공군 |
베트남 인민군 Quân đội Nhân dân Việt Nam [1] People's Army of Viet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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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rowcolor=#ffff00><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 ||||
소속 | 베트남 공산당/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 |||
상비군 | 482,000명 (2022년) | |||
예비군 | 5,000,000명 (2022년) | |||
준군사병력 | 5,040,000명 (2022년) | |||
병역제도 | 징병제 | |||
육군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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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전차 | 1,275대 | ||
경전차 | 650대 | |||
장갑차(APCs/IFVs) | 1,640~?대 | |||
견인포 | 1,100~?문 | |||
자주포 | 220문 | |||
다연장로켓 | 350문 | |||
수송 차량 | ? 대 |
해군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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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잠수함 | 6척 | ||
호위함 | 9척 | |||
초계함 | 16척 | |||
고속정 | 53척 | |||
상륙함 | 10척 | |||
소해함 | 8척 | |||
수상함 구조함 | 1척 | |||
잠수함 구조함 | 1척 |
공군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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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4세대 전투기 | 45기 | ||
3세대 전투기 | 34기 | |||
수송기 | ?기 | |||
고등 훈련기 | 12기 | |||
중등 훈련기 | 36기 | |||
초등 훈련기 | 64기 | |||
회전익기 | ?기 |
예산 | ||
국방비 | 63억 달러(202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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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트남 인민군은 1944년 12월 22일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호치민과 보응우옌잡이 프랑스, 일본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베트남 독립동맹회의 선전해방군을 모태로 설립되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한 뒤 베트남 인민군으로 이름을 바꿨다.
2. 상세
베트남 인민군은 소련군, 쿠바군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처럼 당과 국가가 공동으로 보유하는 형태의 군대이다. 즉 베트남 공산당의 당군 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규군이다.[3] 여타 당군은 정당에 의해 조직되어 해당 정당에 충성을 맹세한 군대이나, 베트남 인민군은 헌법에 의해 당과 국가에 절대적으로 충성을 맹세한 군대이다. 베트남 인민군은 당군 겸 국군이나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당 국방안보위원회 비서(통수권자)를 맡고 있어 실질적으로 당이 베트남 인민군을 통제한다. 다른 공산권 국가와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중국은 국방부장과 총참모장이 중앙군사위 위원이라는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지만, 베트남은 국방부장이 당 국방안보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어 총참모장을 비롯한 수뇌부들을 지휘한다.[4]베트남 인민군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와 싸웠고,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전쟁을 치렀으며,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과 크메르 루주를 상대로 싸웠다. 20세기 동안 베트남 인민군은 프랑스군, 미군, 중국군 같은 강대국과 3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음에도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베트남은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제국의 무덤 또는 강대국의 무덤으로 불리게 되었다.
Global Firepower(글로벌 파이어파워)에 따르면, 베트남의 군사력은 2024년 기준 145개국 중 22위를 기록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순위이다. 베트남은 현역 병력, 예비역 병력, 준군사 병력을 포함한 군병력 규모가 전 세계에서 1위인 국가이다. 2022년 기준, 베트남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현역 48만 2000명, 예비역 500만 명, 준군사병력 504만 명을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00명 당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108.4명 수준이다. #
2021년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베트남 응답자들은 96.4%가 "싸우겠다."고 답했다. 베트남은 조사 대상 79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베트남은 1946년 이래로 현재까지 약 80여 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분쟁을 겪었기에,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애국심이 특별히 강하다. #
3. 국방 및 외교
베트남은 1986년 친소련 고립 정책과 고별을 한 이후 중립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베트남의 외교 정책은 흔히 ‘대나무 외교’라고 일컫는다. 뿌리는 단단하고, 가지는 잘 휘어지는 대나무의 특성을 반영해 원칙은 고수하고, 변화에는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베트남 외교 원칙은 4불(不)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4불 정책은 ‘1)군사 동맹을 맺지 않는다. 2)베트남 영토 내에 외국 군사기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3)다른 국가에 대항하여 특정 다른 국가편을 들지 않는다. 4)국제관계에 있어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이다.베트남은 미중 대립 속에서 다자주의 실리 외교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외교 정책에도 러시아와는 전통적이고 특별한 우방으로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베트남은 외국군과 군사 훈련을 자제하고 있는데,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격해질 때는 한 번씩 미국과 합동 군사 훈련을 하기도 하고, 미국과 관계가 뜸해질 때는 중국과도 한 번씩 합동 군사 훈련을 하기도 한다. 다만 합동 군사 훈련의 수준은 해양 순찰이나 대테러 훈련 등으로 강도를 낮춰서 진행하였다. 2024년 6월 베트남과 러시아는 서로의 적대국과는 동맹 조약을 맺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의 의미는 베트남은 미국의 반러 정책에 참여하지 않고, 러시아는 중국의 베트남 압박 정책에 가담하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
베트남의 가상적국은 중국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남중국해 분쟁(해상 무력 충돌)에서 베트남은 중국에 계속 패배하였고, 현재는 라오스의 고속철도 건설 및 캄보디아의 레암 해군 기지 건설로 인해 중국의 군사적 포위망에 둘려 쌓여 있는 형국이다. 베트남이 느끼는 군사적 압박 수준은 큰 편이나, 주변국인 필리핀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현재 베트남은 중국과 군사적 대립 관계 속에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하고 있다. 중국과 전면적인 분쟁(무력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현재의 대치 상황을 현상 유지하겠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실제 베트남은 미국의 남중국해 군사 활동을 크게 반겨하지 않는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잦은 군사 활동이 역내 안보 위험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평시에 베트남은 ‘적과도 놀아야 적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선을 넘는(?) 조치를 한다면 베트남은 동원령을 내리고 중국과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모습도 보여주기도 한다. 2011년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베트남과 중국은 자원 탐사로 마찰을 겪었는데, 실제 베트남은 징병령을 발동하고, 미 항공모함 전단을 자국 항구에 입항시킨다고 엄포를 놓는 등 분쟁을 넘어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도 했다. # # 이런 저항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일 수 있지만,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을 상대로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식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매우 드문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중국 입장에서 인식하는 베트남의 이미지를 동물로 비유하자면 고슴도치가 아니라 벌꿀오소리에 가까울 것이다. [5] 분명 양국은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지만, 베트남은 보호성이 아닌 호전성을 가진 반응을 보이기에 중국이 섣불리 군사력을 투사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베트남은 인도와 함께 중국과의 영토 분쟁, 영유권 분쟁에서 가장 강하게 대처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또 다른 주변국으로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있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이 있는데, 이들 국가들은 베트남의 가상적국으로 분류하기에는 현재로선 갈등이나 대립 사항이 크지 않다. 다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종종 상대국의 불법조업 어선을 나포해 어민을 강제 구금하기도 한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경우 친중 성향이 짙어지면서 자국 항구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해군 군사 기지를 허용하여 베트남의 신경을 긁고 있다.
현재 베트남과 북한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우호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냉랭한 사이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이 북베트남에게 군사 지원을 하였고, 두 국가는 혈맹이 되어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베트남 전쟁 때 북한이 중국을 지원하면서 두 국가 관계는 나빠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 양국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베트남이 UN 안보리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베트남과 북한 외교 관계는 다시 냉랭해졌다. 현재 베트남은 한국이 주창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여전히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장과 대남 무력 도발에 비난 성명 같은 건 하지 않지만 북한의 입장과는 확연히 대척점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이 북한과 덤덤한 사이임에도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점과 중립 외교를 지향하는 국가라는 점 때문에 미국과 북한의 소통 창구(messenger)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은 베트남에서 개최되었고, 트럼프와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만남을 가졌다.
2024년 9월, 베트남 인민군 대표단이 군사분야 협력 강화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양국은 군사 의료, 국경 방어, 방위 산업, 군사 기술 및 정보 공유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미국 공화당의 미셸 스틸 하원의원이 베트남과 북한의 군사 협력 확대 등을 우려하는 내용의 서한을 바이든 행정부에 보냈다. # 한편,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CAPS) 부대표는 “이번 베트남의 북한 방문은 상징적인 것일 뿐이며, (중략) 양국 간에 상당한 군사적 협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베트남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거의 없습니다.”라며 분석했다. 미국 랜드연구소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베트남이 실제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며, (중략) 미국과 한국이 베트남에 북한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어떤 기술을 원하는지 말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가서 그런 종류의 정보를 수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어느 정도 이를 의심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베트남 대표단을 만났을 것입니다.”라며 분석했다. #
현재 한국과 베트남의 군사 협력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0년대 이전에는 양국 간의 군사 협력은 거의 없었고, 베트남이 한국에 방산 협력을 요청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양국 간의 방산 협력은 없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양국 간의 군사 협력이 많이 진전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미국 오바마 정부 이후 미국이 남중국해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2013년 미국과 중국의 신형 대국 관계 논의가 있었고, 그 결과 미국은 남중국해에 적극 개입을 결정하였고 다수의 아세안 국가들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6] 그동안 베트남의 경우 미국과 군사 협력을 할 계기가 딱히 없었지만, 미중 대립의 수혜를 받아 미국과 군사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무기 수출금지 조치를 전면 해제하였고, 베트남에 퇴역 함정을 공여해주었다. 한국도 2017년 김천함, 2018년 여수함을 베트남에 공여함으로써 양국 간의 군사 협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 해군의 ‘국제잠수함과정(ISETP)’과 육군의 ‘국제과정(K-AIC)’에 베트남 인민군이 참여하고 있고 # #, K-9 자주곡사포의 수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1965~1973년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인민군과 대한민국 국군은 적으로 싸웠지만, 50여 년이 지난 현재 양국 군대는 협력과 우호 관계를 가지게 된 특별한 케이스가 되었다.
4. 전쟁 및 분쟁(무력 충돌)
베트남 인민군이 참여한 전쟁 | |
이름 | 전쟁 상대국 |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 프랑스 제4공화국, 베트남국 |
베트남 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 미국, 베트남 공화국 |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 민주 캄푸치아 |
중국-베트남 전쟁(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 중국 |
- 1979~1991년 - 중국 인민해방군과 국경선(베트남 북부) 분쟁, 베트남 인민군 및 중국 인민해방군 수천 명 사망
- 1988년 - 중국 인민해방군과 영유권(스프래틀리 군도) 분쟁, 베트남 인민군 수송선 3척 침몰 및 해군 64명 사망
- 1998년 - 필리핀군과 영유권(스프래틀리 군도) 분쟁
- 1999년 - 필리핀군과 영유권(스프래틀리 군도) 분쟁
- 2011년 - 중국 인민해방군과 영유권(파라셀 군도) 분쟁
- 2013년 - 중국 인민해방군과 영유권(파라셀 군도) 분쟁
- 2014년 - 중국 인민해방군과 영유권(파라셀 군도) 분쟁, 이후 베트남 내 반중시위 발생
베트남 전쟁은 흔히 강력한 미군과 정면대결은 피하고 연약한 남베트남군을 중점으로 노리며,[7] 게릴라전과 정치전, 심리전을 중심으로 북베트남과 베트콩측이 이겼다고 알려져 있고, 큰 틀을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미군 개입 초기 이아드랑 전투에서 구정공세 당시 케산 전투, 미군이 점차적으로 줄던 부활절 공세까지 사실 북베트남은 개방된 야지, 공성전에서 정규전도 많이 치렀고, 이렇게 소규모 베트콩이 아닌 북베트남 측에서 각 잡고 준비한 대규모 회전에선 그 미군도 전술적 차원에서도 아등바등한 상황이 종종 연출되며[8][9] 고전하게 만들었다.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힘들지만[10] 이런 저런 파월 미군의 수기 문학에 나온 미군의 관점에서도 장교에서부터 사병들까지 현대전 사상 아마 최강의 경보병이었을 것[11]이라 하며 적군인 북베트남군에 대한 칭찬과 고평가를 아끼지 않는 편이며, 현재까지도 당시 북베트남군이 운용했던 군 조직 체계와 전술 같은 건 웨스트포인트 같은 미군의 고급 장교 훈련 기관에서도 심도 있게 연구하며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군의 비정규전 체계 확립 매뉴얼이 될 만큼 미군에게도 인정받았다.
장비나 훈련, 전문성에서 빵빵한 미군, 한국군, 호주군 상대론 이렇게 전술적 열세를 전략적 우위로 바꾸는 방침으로 싸웠지만, 장비는 좋아도 동기 부여나 근본적인 군 기강, 군수 체계에서 개판이었던 남베트남군 상대론 아예 북베트남 정규군이 나설 것도 없이 60년대 초반부터 일개 게릴라 세력이었던 베트콩만으로도 비정규전도 아닌 압박 전투, 빈찌아 전투, 동쏘아이 전투 등 정직한 회전에서 처바르고 다니며 전쟁 내내 전술, 전략 양면에서 일방적 우위를 유지했다. 사학계나 군사학계나 최근 동향은 아예 미군이 전면적으로 직접개입하지 않았으면 남베트남 패망은 10년 일찍 앞당겨 졌을 거라는 견해가 주류고, 전쟁 말기 미군이 철군하자 수치상으론 전혀 딸리지 않는 전력으로도 베트남 공화국 육군 ARVN은 반메투옷 전투에서 한방에 주력이 박살난 이후 쑤안록 전투에서 최후의 발악수준 분전을 한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하곤 일방적으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에게 끌려다녔다.
다만 처음부터 베트남 공화국 육군 ARVN이 그런 건 아니다. 베트남 공화국 육군 ARVN도 공격적인 작전으로 베트콩을 두들겨 패고 다녔는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막장화 된 건 미국이 지엠을 제거한 후였다. 미군으로선 '부패한 지엠 대통령을 갈아버리면 남베트남군이 살아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했지만, 지엠 사후 남베트남은 쿠데타->쿠데타->쿠데타하는 개막장이 벌어지며 군지휘관들이 (쿠데타 일으킬까봐/쿠데타라 오해받을까봐) 군대 이동 금지 등 정치적 족쇄를 주렁주렁 매달면서 우리가 아는 막장 군대로 변했다.
장비도 사실 미군에 비해서야 꿀릴 뿐이지 소련과 중국을 필두로 한 전 세계의 공산[반미 진영의 적극적 지원을 받으면서 나름 기갑, 방공, 중화기 같은 현대전에 필수적인 군사자산들을 대불 항전 시절부터 운용하며 경험도 풍부했다. 애초에 미국이전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쐐기를 박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것도 월맹군의 대규모 포병부대였고, 미국과의 전쟁 때도 제한적인 상황에서나마 잘 써먹다 결국 베트남전 막바지엔 미군이 남기고간 장비로 무장한 남베트남군을 상대로 교과서적인 전격 기동 점령전을 벌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수차례 북폭에서 미항공 세력에게 심각한 출혈을 강요한 미그기와 방공부대의 분투, 케산의 전초전이었던 랑베이 전투 당시 까딱 잘못하면 중화기의 밥이 되기 쉬운 PT-76 전차를 의표를 찌른 적절한 배치를 통해 그 미군을 상대로 나름의 기갑전을 펼친 사례 등을 보면 북베트남과 베트콩측이 오직 게릴라전만으로 이긴 것도 편견이란 걸 알 수 있다.
이 레전드급 업적을 쌓으면서 70년대 중후반 냉전의 전성기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실전 경험과 훈련도가 높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도 상술한 전쟁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전쟁 이후에도 한동안 경제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아 베트남전 당시 쓰던 장비 그대로 80-90년대를 넘기며 실전 경험은 풍부하지만 하드웨어적으로 심각하게 뒤쳐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경제 개발에 집중하면서 베트남 정부가 군대를 감축하며 투자를 줄이고 있고, 강대국의 무덤 전설을 만들었던 혁명, 전쟁 세대도 퇴역하면서 예전에 비해서는 강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오기 전까지는 군사장비의 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21세기 들어 베트남 경제도 상당히 발전했고, 무엇보다 중국과의 남중국해 분쟁이 새로운 지정학적 걱정거리가 되면서야 부랴부랴 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다.
5. 예산
( 2000년~ 2014년) 베트남의 명목 GDP[12], 경제성장률, 국방비 흐름[13] | |||||||||||||||
종류 | 2000년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추정치 |
전체 명목 GDP(10억달러; 약 1조원) | 31 | 32 | 35 | 39 | 49 | 57 | 66 | 77 | 98 | 101 | 112 | 134 | 155 | 170 | 187 |
경제성장률(%) | 6.7% | 6.8% | 7.0% | 7.3% | 7.7% | 7.5% | 6.9% | 7.1% | 5.6% | 5.3% | 6.4% | 6.2% | 5.2% | 5.4% | 5.5% |
전체 국방비(100만달러; 약 10억원) | - | - | - | 1,366 | 1,399 | 1,459 | 1,718 | 2,215 | 2,182 | 2,397 | 2,672 | 2,487 | 통계가 없음 | 통계가 없음 | 통계가 없음 |
GDP 대비 국방비(%) | - | - | - | 2.1% | 2.0% | 1.9% | 2.1% | 2.5% | 2.3% | 2.5% | 2.5% | 통계가 없음 | 통계가 없음 | 통계가 없음 | 통계가 없음 |
베트남은 2011~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연평균 2.2%에 해당하는 국방비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1년 국방비는 약 63억 달러(한화 약 8조 2천억 원)를 기록했다.
6. 보유장비 및 군현대화
베트남 인민군 장비 목록(베트남어판)
베트남 인민군은 세계 20위권, 동남아시아 2위의 군사력이지만, 실제 보유한 장비(무기)는 많이 열악한 편이다. 대다수의 무기가 1960~80년대에 도입한 무기들이고, 노후화가 심각해 현대전에 쓸모가 없게 된 무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육해공군의 대표적인 노후화 무기를 사례로 든다면 육군은 1세대 전차인 T-54를 주력 전차로 아직 굴리고 있고, 해군은 소련이 1950년대에 사용한 페트야급 호위함을 공여 받아 운용하고 있으며, 공군은 1980년대에 도입한 Su-22 전투기를 사용하고 있다. 무기 노후화로 인해 운용율은 낮을 수밖에 없고, 사고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특히 su-22 전투기의 경우 2015·18·23·24년에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베트남 인민군이 보유한 무기는 대부분 러시아제이다.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전에,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59식 전차와 같은 무기들도 일부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때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M2 / M101 계열 105mm 곡사포 같은 무기도 여전히 현역으로 사용하고 있다. 비록 대다수 무기가 노후화 되었더라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보유한 수량이 많기에 부품 유용(동류 전환)이 그나마 수월하며, 유지관리를 잘해 상태가 꽤 양호하고, 자체적인 개량을 통해 성능 향상을 조금씩이라도 해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이 보유한 t-54 전차는 총 850여대로, 이 중 310여대를 2019년도부터 t-54m으로 개량을 진행 중에 있다. 이 개량 사업은 신형 주포 교체, 전자 사격통제장치 탑재, 폭발 반응장갑 장착 등으로 이뤄졌는데, 대전차전 용도로는 제한적이라도 보병전투 지원용으로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 인민군은 2010년대부터 군현대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베트남은 2010~2022년까지 세계 주요 무기 수입국 목록에서 15위를 차지하였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주요 무기 수입국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 기간 동안 투자를 많이 했다. 주목할 만한 무기로 베트남은 러시아로부터 킬로급 잠수함 6척을 구매했고, 그 규모는 약 21억 달러(한화로 약 2조 8천억 원)에 달한다. 그 외에 베트남은 러시아로부터 T-90s 전차 64대, 게파르트급 초계함 4척, Su-30mk2 전투기 34대, P-800 오닉스/야혼트 10포대, S-300PMU1 12포대 등을 도입하였다.
2000년부터 2022년까지 베트남 인민군이 도입한 무기의 대략 80%가 러시아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베트남 인민군은 기존에 사용한 러시아산 무기와의 원활한 호환과 경제적인 운영 유지를 위해 장비 도입국을 변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산 무기는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였기에, 예산이 부족한 베트남으로서 러시아는 최적의 파트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2010년대부터 러시아산 무기 비중을 줄이고, 무기 도입국의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서방 세계로부터 무기 도입이 실패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11년 네덜란드산 시그마급 초계함과 2012년 한국산 FA-50 파이팅 이글 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협상을 벌였지만,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의 반대로 도입이 무산되었다. 베트남은 2016년 미국으로부터 무기 금수조치가 완전 해제되어, 서방세계 무기 도입에 장벽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베트남은 러시아 외에 네덜란드, 체코, 이스라엘, 인도, 한국, 미국 등으로부터 무기 도입을 하고 있다. 베트남 인민군이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무기로는 해밀턴급 경비함 3척, 스캔이글 무인정찰기 6기, T-6 텍산 II 초등훈련기 12대가 있다. 추가로 베트남은 2016년부터 미국과 F-16 전투기, C-130 수송기, P-8 해상초계기 도입을 위해 협상을 수년 동안 하고 있다. #
베트남 인민군의 군현대화와 도입국 다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군현대화 사업을 해군, 공군 무기 체계 위주로 해왔기에 육군 무기 체계의 군현대화가 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입이 시급한 무기로는 전차, 장갑차, 자주포, 군용 차량, 지대공 미사일 등으로 알려져 있다.
7. 수뇌부
베트남군의 통수권자는 명목상 국가주석이나, 애시당초 군은 당 지도부 산하 국가안보위원회의 지도를 받는다. 따라서 당 대표가 겸직하는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이 실질적인 통수권자라 볼 수 있다.[14] 국방장관이 부의장 자리를 맡고, 휘하에 4명의 상임위원과 16명의 위원이 있다.국가안보위원회 의장 |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 겸 인민군 통수권자 | 국방장관 겸 국가안보위원회 의장 | 총참모장 |
또럼 | 르엉끄엉 | 판반장(Phan Văn Giang) 육군 대장 | 응우옌떤끄엉(Nguyễn Tân Cương) 육군 상장 |
8. 복무제도
베트남은 징병제 국가로 18세부터 25세까지의 남자는 원칙적으로 24개월 간 의무 복무를 해야 되며, 25살을 넘기면 해군으로 징집되는 경우가 있으며, 27살까지 징집된다. 여군도 모집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군축으로 징집 인력이 인구에 비해 적은 편이라서 실제로 현역 징병률은 30~40%대 안팎에 불과한 수준이다.[15] 또한 베트남에서는 군에 입대하면, 군부대가 해당 지역의 이권 사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군대에 가면 군사 훈련만 받는 게 아니라 직업 훈련 및 기술 훈련도 받게 된다. 어느 베트남 젊은이는 군대에 가서 용접과 전기기술을 마스터해서 나왔다는 사례가 있다.[16] 게다가 전역 후 군부대와 연결된 해당 지역의 기업과도 연줄이 생긴다. 이게 부정부패로 연결되는 단점도 있기는 하지만, 기술은 익힐 수 있으니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또한 베트남의 징병법이 대학진학률이 낮은 시절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면 병역 특혜를 받을 수 있다. 해당 대학교가 있는 도시로 온 가족이 이사를 할 수 있다. 중국처럼 베트남에서도 하노이와 호치민, 다낭, 하이퐁 같은 주요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을 막기 위해 이사를 가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외가 바로 대학교 합격이다(이 점도 중국과 비슷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에 취직해도 군대 징병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시골민의 경우에는 군대에 가면 연줄이 생기기 때문에 군대를 가는 것을 선호해서 자원자가 많다. 또한 휴일과 주말에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개인 시간과 외출이 보장된다. 군대에 갈 생각이 없으면 이런저런 방법으로 안 가는 경우도 있다.[17] 또한 집에 자녀가 2명이 있을 경우 1명만 가게 된다고 한다. 베트남 주변에 가상적국으로 취급할 나라는 하노이 이북에 접하는 중국뿐이고, 베트남 인구 구조가 안정적이라 그렇기도 하다. #
물론 베트남이라고 해서 죄다 군대에 가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서 병역을 피하기 위해 문신을 하기도 하며, 대학미진학자들은 병역 특혜를 누리기 마냥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처럼 대학생들도 징병하자는 여론도 있다.
9. 계급
출처장성급 장교 계급명에 ○장과 같이 적혀있는 ○도독은 해군 계급명이다. 베트남에서도 서양처럼 해군 장성은 장군이라 부르지 않고 도독이라 부르는데, 영어의 admiral에 해당하는 용어를 번역해 도입한 개념이다.
계급명 | 육군 | 공군 | 해군 | 국경경비대 | 해안경비대 |
Đại tướng 大將 대장 |
- | - | - | - | |
Thượng tướng, Đô đốc 上將, 都督 상장, 도독 |
- | - | |||
Trung tướng, Phó Đô đốc 中將, 副都督 중장, 부도독 |
|||||
Thiếu tướng, Chuẩn Đô đốc 少將, 准都督 소장, 준도독 |
|||||
Đại tá 大佐 대좌 |
|||||
Thượng tá 上佐 상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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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ng tá 中佐 중좌 |
|||||
Thiếu tá 少佐 소좌 |
|||||
Đại úy 大尉 대위 |
|||||
Thượng úy 上尉 상위 |
|||||
Trung úy 中尉 중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px-Vietnam_Border_Defense_Force_Lieutenant.jpg | ||||
Thiếu úy 少尉 소위 |
|||||
Học viên Sĩ quan 學員士官 사관후보생 |
|||||
Thượng sĩ 上士 상사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5px-Vietnam_People%27s_Navy_Sergeant_major.png | ||||
Trung sĩ 中士 중사 |
|||||
Hạ sĩ 下士 하사 |
|||||
Binh nhất 兵一 일병 |
|||||
Binh nhì 兵二 이병 |
10. 구성
10.1. 베트남 인민육군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인민육군 문서 참고하십시오.10.2. 베트남 인민해군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인민해군 문서 참고하십시오.10.3. 베트남 인민공군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인민공군 문서 참고하십시오.11. 대중매체
- 베트남전을 다룬 매체라면 꼭 나온다. 정확히는 전신인 북베트남군이지만. 베트남 국내 매체로는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다룬 7554가 있다.
- 미국 영화 이스케이프에서 베트남의 국경수비대가 등장해 미국인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 영화 아저씨의 등장인물 중 람로완의 과거 행적에 대한 언급에서 '월남 군바리'였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확한 소속은 알 수 없으나, 그도 베트남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2. 기타
- Viettel은 국방부가 운영하는 이동통신사로, 군인은 휴대전화 소지에 제약이 없지만 대신 국방부 산하 이 통신사로 고정된다. 말 안해도 군인들은 전부 가입하게 되는데 통신사에서 군인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상당해서 별 말은 없다. 병사든 간부든 이 통신사에서 군인 전용 혜택을 아주 신나게 뽕 뽑아 먹을 대로 잔뜩 뽑아먹는다고 한다.
- 베트남 인민해군의 경우 해군 육전대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는 점이 특이한데, 무려 25,000명에 달한다. 그러나 해군은 2000년대 후반부터 고속정, 호위함 등 연안전력부터 재정비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 이들 병력을 효과적으로 투사하고 지원할 수있는 상륙함 등 지원전력은 전무하기에 해군 육전대 전력은 해안선 방위와 도서방위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이는 이들 해군 육전대가 상륙전 전담 병력 역할보다는, 해안 경계 및 1차 방어의 역할이 해군에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해군 육전대의 규모가 큰 것이기 때문에,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다. 베트남은 국토 대비 해안선 길이가 굉장히 길기 때문에, 꽤 많은 숫자의 경계 병력이 필요하다.
- 국가 경제수준을 감안해볼 때 짬밥은 잘 차려주는 편. 하지만 각 부대마다 급양체계가 별도로 갖춰져 있어서 부대마다 짬밥의 편차가 매우 극심하다. 짬밥이 잘 나오는 부대[18]는 무척 잘 나오지만 심한 경우에는 일주일 내내 나물 반찬에 국이랑 밥만 주는 부대도 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어떤 부대든 기본적으로 국과 밥은 무조건 무제한 자율배식이다.
- 베트남 사람 말에 따르면 무직자가 예비군에 들어갈 경우 보조금을 탄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베트남도 징병제 국가이지만 청년인구가 많아서 항상 병력 TO가 넘치기 때문에, 예비군도 파트타임 직장처럼 인정되어 급여가 지급된다. 베트남 인구가 1억 명 정도고, 사회주의권의 오랜 군민일치 정책 때문에 웬만한 청년층은 대부분 예비군으로 등록되어있고 이에 따라 약간의 여비정도가 지급되는 시스템이다.
13. 관련 문서
- 편제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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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베트남 마피아 | |
민족 | 베트남인 · 베트남계 미국인 · 베트남계 프랑스인 · 재러 베트남인 |
[1]
‘Quân đội Nhân dân Việt Nam’은 ‘꿘 도이 년 전 비엣 남’으로 발음하며, 이걸 한국 독음으로 그대로 읽으면 "군대인민월남"이다.
[2]
베트남 인민군기의 왼쪽 상단에 있는 글자는 決勝(결승)을 뜻하며, ‘뀌엣 탕’으로 발음한다.
[3]
베트남 헌법 제65조에 따르면, ‘인민무장군은 조국/인민/당/국가에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독립/주권/통일/조국의 영토 보전/국가 안보 및 사회 질서와 안전의 수호 임무를 맡으며, 인민/당/국가/사회주의 제도를 수호하고, 전 인민과 함께 국가를 건설하고 국제적 의무를 이행한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4]
공산권 국가에서 ‘국방부장’은 우리나라에서 국방부장관 지위이며, ‘총참모장’은 우리나라에서 합동참모의장 지위이다.
[5]
베트남을 벌꿀오소리에 비유했지만, 실제 베트남의 국방 전략은 ‘고슴도치 전략(호저 전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베트남이 보유한 비대칭전력 및 전략·전술급 무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6]
미국의 입장에서 반중 포위망에 베트남이 참여하길 바라지만, 필리핀과 싱가포르를 제외한 대다수의 아세안 국가들은 중립 외교를 지향하기에 현재 미국은 베트남에 쿼드(QUAD) 가입과 같은 특별한 압박은 하고 있지 않다. 다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과 군사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또는 군사적 지원을 해줌으로써 중국을 간접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7]
단순 장비와 병력면에선 남베트남군이 우세했지만 미군에게 지나친 의존도와 군수물자를 빼돌리는 장성급 장교, 이전에 잡은 베트콩 시체를 재탕으로 사진 찍어 사살했다고 보고하는 등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었고 당연히 이런 오합지졸 군대에 사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8]
물론 화력과 제공권의 열세로 인해 교환비 자체는 북베트남군이 거의 대부분 밀릴 수밖에 없었다
[9]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전쟁/미군참조.
북베트남은 어떻게 미군을 상대로 이겼는가?
[10]
결코 대등하진 않다. 어쨌든 전술교환비나 직접적으로 격돌한 정직한 회전에서 북베트남-베트콩 공산군은 한 번도 미군을 제대로 능가한 적이 없다. 물론 미군이 공산군 상대로 더 우월한 교환비를 보여주는 것보다 미국 내에서 전쟁수행의지가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기 때문에 결론적으론 월맹측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분투하여 전략적 승리를 이룬 건 맞다.
[11]
링크된 회고록중 첫번째, Mekong First Light의 후기 출처
[12]
(2000년~2014년)베트남의 명목 GDP, 경제성장률 흐름
[13]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군비자료
[14]
단, 베트남 공산당은 중국과 달리
집단지도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15]
사실 한국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징병제라고 해도, 징집가능 인력의 상당수가 군면제 되거나 방위병으로 전출되었고, 현역 징집률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16]
사실 한국군도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어느 정도 그랬다. 당시에는 군대에서 글도 가르쳐주고 농기계 수리법도 알려주는 등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군대가 선진적인 조직이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장기화되고 그 과정에서 경제성장 속도에 비해 장병 복지는 형편이 없었으며 그에 비해 구타를 해대는 똥군기는 여전히 횡행하다보니 군대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
[17]
그래서 군대에 안 가려는 사람들은 어찌저찌 27살까지 삐대다가 안 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베트남은 군대에 가면 직업과 연줄이 생기기 때문에 특히 시골 청년들의 경우 군대에 가면 이득인 경우가 많다.
[18]
주로 하노이에 주둔하는 부대들이 짬밥이 잘 나오며, 베트남 언론에 군대밥이 이렇게 잘 나온다며 돌아다니는 사진은 이런 부대에서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