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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00:05:10

박범계/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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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초년기2.2. 판사 시절2.3. 정계 활동
2.3.1. 19대 국회2.3.2. 20대 국회2.3.3. 21대 국회2.3.4. 원내대표 출마2.3.5. 제22대 국회
2.4. 법무부장관
2.4.1. 장관 내정2.4.2. 취임 이후
2.5. 법무부장관 퇴임 후
2.5.1. 대정부 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과의 설전

1. 개요

정치인 박범계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이다.

2. 생애

2.1. 초년기

1963년 4월 27일,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약목리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양친은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이었고, 어머니의 고향은 충청북도 옥천군이었다. 초강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과 함께 상경하여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달동네에 터를 잡고 서울은천초등학교 영등포중학교를 졸업했다. 박범계가 중학교 2학년 때 사고를 일으킨 아버지는 이후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며,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은 것은 물론 그 누구도 아버지를 목격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현재 박범계의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작고한 것으로 간주하고 어머니와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반항아가 되었다고 한다. 남강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담배를 하며 방황했고, '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 폭력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2학년 말인 1980년 2월, 집단 패싸움에 연루되어 징계를 받고 중퇴했다.[1] 박범계 본인은 서클 친구가 다른 서클 친구에게 맞고 와서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 그해 4월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얻었다.

징병검사를 통해 보충역 처분을 받아 군복무를 대신했다. 1983년 11월 19일 육군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17보병사단 소속 소총수 파출소에서 근무했으며, 보충역 기간 동안 열심히 수험 공부를 하여 복무 기간 중인 1984년 학력고사에 응시하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합격했다. 1985년 1월 18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었고, 그해 3월 연세대학교 입학하였다. 대학생 시절에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과에서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2.2. 판사 시절

대학 졸업 후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 후(사법연수원 23기) 판사가 된다.[2]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 잡지편집장이 되었다. 편집장으로서 연수생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선배 법조인’으로 선정된 노무현을 인터뷰하면서 그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1994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을 시작으로 대전지방법원,[3]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거치면서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진보적인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고, 관료화되는 법원의 분위기에 질려 법원내부게시판에 과감한 글들을 게시하여 법원 내부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하였다.

2.3. 정계 활동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2002년 10월, 정계 입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당시 386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던 김민석 전 의원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한 것.[4]

이 당시의 상황을 보면 4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의 지지율이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 문제로 떨어진 데다, 6월의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고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여파로 대한축구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던 정몽준 무소속 의원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이어 2위로 올랐다.

그래서 새천년민주당 내부의 여러 중진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후단협)을 결성하여 자당의 노무현 후보에게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사실상의 사퇴를 요구했는데,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할 줄 알았던 김민석이 탈당하고 후단협이 단일 후보로 은근히 밀어주던 정몽준을 지지하자 전 386세대에 충격을 준 것. 박범계 역시 김민석의 탈당에 분노하여 천정배 새천년민주당 의원에게 노무현 후보 캠프 합류를 알린 뒤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노무현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2002년 박범계의 노무현 지지선언(오마이뉴스).

박범계의 사표를 수리한 대전지방법원장은 당선 가능성도 없는 후보를 돕기 위해 사직한다며 기막혀했다는데, 사실 대선 판세 자체가 이미 정몽준에게도 밀려 3위로 전락하여 소속당에서조차 거의 외면당하던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 잘 나가는 공직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무리 소신이라도 무모한 것으로 보는게 맞았다. 오죽하면 새천년민주당 중앙 선대위에서 일개 법무특보를 위해 환영식을 해줬을 정도. 선대위 회의 때 인사하는 모습

그러나 기적적으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 넓은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노무현이 당선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법원 역시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는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줄을 댈 사람이라고는 판사 출신 박범계뿐이었던지라 검사고 판사고 할 것 없이 박범계를 찾을 정도였다고. 그리하여 참여정부 초기에 민정제2비서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대전 서구 을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고, 열린우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기반이 튼튼했던 구논회 전 대학학원장에 밀려 당내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논회가 암으로 작고하면서 열리게 된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당시 국민중심당 심대평의 당선을 위해 결국 출마를 포기했고[5] 이듬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6] 이번에는 3위로 낙선하였다(...). 그러나 낙선 이후에도 통합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으며 다음 선거를 준비하였다. 이 시기에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후 대전에 둥지를 튼 노 前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7]

2.3.1. 19대 국회

결국 절치부심한 끝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지 8년 만인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43.62%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이때 깨알같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후일 코레일의 대표이사로 올라가 코레일 고속철도 자회사 설립 논란의 최전선에서 정부를 비호하는 새누리당 최연혜 후보도 꺾고 올라오게 된다.

초선치고 당시 이력이 화려한데, 국회 입성과 동시에 민주당 법률위원장,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 국회쇄신특별위원회 간사 등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국회 특위의 간사직은 최소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이 맡는 관례를 볼 때 박범계의 이력은 확실히 친노 주류의 모습을 띈다.

2014년 8월 18일에 임환수 국세청장 청문회 과정에서 송혜교의 탈세사실을 알고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송혜교의 탈세 내용이 드러났다. 처음 언급 당시 송혜교 팬 등 연예계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탈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은 사그라들었다.

이 시기,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원내 대변인을 역임하기도 해 초선으로서 맹활약을 보였다.

2.3.2. 20대 국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재선 후보와 다시 한 번 격돌하여 15% 이상의 격차(49.53%)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충청권의 대표적인 친노-친문계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비문계의 대표인 박영선하고도 나름 접점이 있다.

재선 의원으로 국회의 주요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원회 간사를 맡으면서 중진에 가까운 중량감을 보여줬고, 박주민, 고 노회찬 의원과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황제 보석을 최초로 폭로해 사법정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 당시 사법부의 비호로 유마무야됐던 태광그룹의 "황제 보석 사건"은 결국 2년 후인 2018년, 언론특종과 재수감으로 박범계의 선견지명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국정농단 특별조사위원회'의 간사를 역임했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신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차려졌는데, 박범계는 위원회의 정치행정분과위원장을 맡으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올랐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광역시장 출마설이 돌았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적합도 1위를 달렸으나 불출마 선언을 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이 격전지가 되었다.

당대표 출마를 위해 수석대변인직을 사퇴하였다. 박범계는 자신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모두 거친 적임자[8]임을 강조하며 자신이 당 대표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전당대회 직전 당대표 출마자들에게 해당되는 최종 3인에 대한 컷오프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컷오프는 이해찬, 김진표, 송영길이 통과했다.

2.3.3. 21대 국회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3선에 도전하였고, 57.5% 득표로 당선되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찰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창하면서 ' 조국 사태'와 '추-윤 사태'에 목소리를 내며 사실상 국회에서 추미애 법무장관의 측면지원을 톡톡히 했다. "자세를 똑바로 하라! 지금 피감기관 입장"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한 2020년 국정감사에서 박 의원이 "안타깝게도 윤 총장이 가진 정의감과 동정심에 의심을 갖게 됐다"고 하자, 윤 총장은 "선택적 의심 아니냐"며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지 않았느냐"고 반발하기도 했다. #[9]

참고로 박범계와 윤석열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이다.

2.3.4. 원내대표 출마

2023년 4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하였다.

2023년 4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당내 경선에서 박광온 후보가 당선되면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23년 9월 24일,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한 후 치러지는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2.3.5. 제22대 국회

제22대 총선에서 53.35%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전에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었던 만큼 곧 있을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2.4. 법무부장관

2.4.1. 장관 내정

2020년 12월 30일 추미애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장관에 내정되었다. 2번 연속으로 판사 출신이 장관이 되는 것이다. #

검찰과의 갈등 외에도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변호사시험 강행 논란 # 등 산적한 이슈가 많은 상황에서의 내정인 바, 직무 공백 없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관건인 상황이다.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은 서울고등검찰청에 꾸렸다.[10] 이와 관련해 박범계 후보자는 " 여의도에는 민심(民心)이 있고, 서초동에는 법심(法心)이 있다. '민심에 부응하되 법심도 경청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검찰청에 사무실을 정했다"고 했다. 윤석열 총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준비해서 청문회장에서 말씀 드리겠다"고 했으며, 2021년 1월 예정된 검찰 인사에 대해서는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

또한 검찰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인 협조 관계가 돼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검찰개혁을 이루라고 (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저에게 준 지침"이라고 하여 추미애 때 파탄이 난 검찰과의 관계 회복을 암시했다. 그리고 "고검에 사무실을 마련하게 된 이상 법조 기자들께 이렇게 인사드리는 게 마땅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언론에 적대적이었던 조국 추미애와는 대조적인 행보이다. 다만 서울고검이 추미애 아들의 항고 사건을 수사하는 상황인데[11] 서울고검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

그러나 금태섭 전 국회의원은 "자칫 추미애 장관 시즌2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든다"며 "지금 검찰개혁이라고 추진하는 방향들이 맞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다양한 견해를 반영해야 하는데, 박범계 후보자의 그동안 행적이나 발언을 보면 과연 공정한 시각으로 객관적인 검토를 할지 좀 의문이 든다"고 했다. #

2021년 1월 15일, '법심 경청' 차원에서 송광수 전 검찰총장과 만나 식사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송 전 총장은 박 후보자에게 "자꾸 수사하는 걸 방해하는 게 개혁이 아니다. 나름대로 여러 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왜 자꾸 다른 걸 하느냐"고 하였다. #

2021년 1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범계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윤 총장과의 친분으로 검찰개혁에 주저할 우려가 제기된다" 라고 지적하자, 이에 "일반적인 의미의 동기로서의 친분이면 모를까 특별하고 개별적인 친분이 있지 않다" 라고 일축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지난 2013년 자신의 SNS에서 윤석열을 "석열이 형"으로, 자신을 "범계 아우"로 칭했던 사실이 다시금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

박범계 후보자 본인을 둘러싼 논란과 함께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이용구 법무부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 질의 안건자체가 많았던지라 청문회가 저녁 11시 30분에야 마무리되었다. # 청문회 자체가 워낙 길어진데다가, 야당의 극심한 반대로 청문보고서 당일 채택이 무산되면서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박 후보자에 대한 청문 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

문 대통령의 재요청 이후 27일, 법사위가 다시 전체회의를 열고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제1야당 국민의힘에서 완강하게 반대하자 여당 상임위원들이 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 채택했다. # 2021년 1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하면서 28일부터 법무부장관으로 임기를 시작한다. #

2.4.2. 취임 이후

취임 이후 2월 2일, 윤석열 검찰총장과 만나 검찰 인사와 관련하여 의견을 주고 받았는데 박 장관은 인사협의가 아니라 검찰 측의 의견을 청취한 것일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

2월 5일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대담에서 한동훈 검사장의 일선 복귀를 거부했으며, 이성윤 중앙지검장에 대해서도 유임해야 한다며 영전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12] 이를 두고 한 부장검사는 박범계 장관의 보여주기식 정치적 퍼포먼스라며 검찰총장을 핫바지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

2021년 2월 첫 정기 검찰인사를 윤석열 측에서 모르게 기습적으로 처리했다.[13] 이정수 서울남부지검 검사장과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 자리를 맞바꾸게 되었으며, 조종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김지용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춘천지검장으로 이동한 것 외에 변화는 없었다. 사실상 검찰총장의 의견을 패싱한 것. 상술하다시피 논란을 일으킨 이성윤 중앙지검 검사장은 유임됐고 좌천된 한동훈 검사장 또한 이동되지 않았다. 이로서 이성윤, 심재철 등 ' 추미애 사단'은 전체적으로 살아남았고 '박범계 사단'으로 갈아탔다. 단, 이번 인사에 대한 우려스런 시선과 달리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의 수사를 지휘하는 이두봉 대전지검 검사장은 그대로 유임되었다. # #

2021년 2월 17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차례 사의를 표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되었는데 그 발단이 검찰 고위급 간부 인사 과정에서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이견이 있었는데 박범계와 협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박범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직접 보고하고 발표를 강행한 게 결정타로 작용했고 이에 주변에 자존심이 상해 못살겠다라며 불만을 강하게 토로하였다. #

고위간부급(검사장) 인사에 이어 2월 22일에는 중간간부급 인사(차장검사, 부장검사)도 있었는데, 주요 수사팀 부서장들이 대부분 유임되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신현수 민정수석을 패싱했다는 우려와 달리 검찰 의견을 반영했다는 평. 한편 반윤석열, 반검찰, 친정권 성향의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해 수사권을 부여했다. #

3월 17일, 취임 후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14]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 관련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대검 부장회의서 심의할 것을 지시했다. # 하지만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고검장까지 참여하는 확대회의를 개최하는 방식을 선택해 10:2로 불기소 의견이 압도적으로 이끌어내면서 기존 검찰의 처분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에 대해 소위 '한명숙 구하기'를 위해 수사지휘권을 무리하게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 한편 박 장관은 대검 회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결과가 나오면 과정이 어땠는지도 봐야겠다. 제가 중시한 건 과정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

2022년 3월 11일, 과천정부청사 법무부 출근길에 윤석열 당선에 대한 소회를 묻는[15] 기자들의 질문에 축하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공식적이든 인터뷰를 통해서든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다고 하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尹에 "똑바로 앉아라" 호통쳤던 박범계, 尹 당선에 전한 말

3월 17일,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 #

5월 6일, 퇴임식을 가졌다. #

2.5. 법무부장관 퇴임 후

국회로 돌아간 뒤 후반기 법사위원으로 내정되었다.

2.5.1. 대정부 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과의 설전



박범계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법무부가 정당한 규정 없이 인사검증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한동훈 장관 마음에 들면 검증 안하고, 마음에 안 들면 검증하는 건가"라고 따지며 “과거에 이렇게 검찰총장 없이 검찰 인사를 한 선례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한 장관은 “의원님이 장관이었을 때 검찰총장을 다 패싱하고 (인사를) 했다”[16]며 “저는 지금 검찰의 인사 의견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반영했다고 확신한다, 확실히 이렇게 반영한 전례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17]

특히 한 장관은 "과거에 의원님께서 근무하셨던 민정수석실에선 어떤 근거로, 사람들 명부를 전부 대놓고 나서 검증하셨나. 인사검증이라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한을 보좌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과 관련해서 동의를 받아서 1차적인 검증을 하는 것"이라며 "저는 거기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업무는 새로 생긴 게 아니다. 과거에 민정수석실에서 해오던 것이다. 제가 이 일을 하는 게 잘못된 거라면 과거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에서 했던 인사검증 업무는 모두 위법"이라고 받아쳤다. 한 장관은 오히려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인 진일보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박 장관은 “틀린 말이고 거짓말”이라고 맞받았다. 이 같은 한 장관과 박 의원의 충돌에 여야 의원들은 박수나 고성을 주고 받았다. 야당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한 장관을 질타했다.

검찰 인사와 관련해서도 한 장관은 "검찰총장 없이 인사한 전례는 당연히 있다"며 "과거에 지난 정권 하에서 윤석열 당시 중앙지검장이 임명될 당시에 검찰총장은 없었다"고 지적했다.[18] 이에 박 의원은 "내가 두 차례에 걸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인사 협의를 두 번 했다. 2시간씩 2시간씩 그 중에 1시간 50분씩, 1시간 50분씩. 전부 다 윤석열 겸찰총장이 말했다"며 "그런 협의를 패싱이라 그러면 그런 패싱을 했기 때문에 한 장관은 임명할 수 있는 검찰총장을 없애고 스스로 인사 다 해버렸단 얘기인가"라고 호통을 쳤다. 한 장관은 "아니요 저는 그때와 달리 충실하게 인사를 했다고, 저는 충실하게 인사 협의를 협의했다는 말씀"이라고 했고, 박 의원은 "누구랑 했느냐"고 추궁했다.

이와 관련해 한 장관은 "지금 현재 대검차장 검찰총장 직무대리와 10여 차례 이상 협의했다"고 말했고, 박 의원은 "제가 잘 아는 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님이 그랬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인사 협의는 검찰총장의 고유 권한이고 직무대행이 할 수 없다, 이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의했다. 한 장관은 "잘못된 판단이다. 고유 권한으로서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이 있나"[19]라고 했고, 박 의원은 "수사만 해서 소위 헌법과 법률에 많이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재차 압박을 했다. 한 장관은 "국민들께서 보시고 판단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또다시 반박했고, 박 의원은 "좋아요"라고 했다.


[1] 2009년 2월 남강고등학교 명예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2] 참고로 동기 중 한명이 바로 윤석열이다. [3] 2001년 소년부 시절 일명 ' 대덕고등학교 왕따 사건의 주도 학생이었던 해당 학교 졸업생들이 비슷한 내용을 다룬 드라마와 관련해 홈페이지에 왕따 학생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이유로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4] 21대 총선에서 김민석 의원이 2002년에 3회 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 지 18년 만에 의회복귀에 성공함에 따라 박범계 의원은 자신의 정계입문 계기를 제공한 김민석 의원과 한솥밥을 먹게 된다. 심지어 의원선수도 이제는 둘 다 3선으로 동급. 의원총회에서 마주쳤을 때 어떤 표정 지었을지 너무 궁금 [5]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가 어렵지만, 그 당시 열린우리당은 여당이었음에도 이런저런 삽질로 인해 엄청나게 인기가 없어서 17대 총선 이후 열린 재보궐선거 및 지방선거에서 줄줄이 참패하는 진기록(...)을 거듭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당이 사실상 해체 직전이었기 때문에 지지율은 더욱 바닥이었고,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아무 접점이 없던 충청권 지역정당 국민중심당을 돕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 한편 박범계 본인은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까지 고려했지만 10일간 칩거하면서 생각을 정리한 끝에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6] 심대평이 공주시·연기군 지역구로 옮겼고, 자유선진당 이재선 전 의원을 공천했다. [7] 곽상언 변호사는 이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새로 열었다. [8] 입법부 - 국회의원, 행정부 -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 및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정치행정분과위원장, 사법부 - 판사. [9] 재밌는 사실은 2013년 윤석열이 재산 과다신고를 했다가 검찰로부터 징계를 받았을 당시 박범계는 트위터를 통해 '윤석열 형'이라며 친근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정부 여당 인사들에게도 가리지 않고 수사했던 전례가 있기에,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진보 성향에서는 윤석열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가 높았다. [10] 참고로 조국 광화문 쪽에, 추미애 목동 쪽에 사무실을 차렸다. [11] 일부 언론에서 재수사한다는 보도를 냈는데, 이에 대해 서울고검 측은 항고 사건을 수사 중이라며, 원점에서 직접 재수사할지 결정은 아직 안 났다고 밝혔다. # [12] 한동훈 검사장은 채널A 기자 취재윤리 위반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수사팀에서 내부적으로 무혐의로 의견이 모아졌으나, 이성윤 중앙지검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제를 미루는 한편 여권의 입맛에 맞게 주요 사건들을 편파적으로 처리해 휘하 검사들의 신망을 잃은 상태이다. [13] 검찰인사가 휴일에 갑자기 처리된 것은 헌정 사상 전례가 드문 일이다. [14] 헌정 사상 4번째이며 문재인 정권 동안은 3번째이다. [15] 윤석열 당선인과 박범계는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이며, 박범계가 3살 아래다. [16] 실제로 박범계 법무장관은 한동훈 검사장의 일선 복귀를 주장하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한동훈은 문재인 정부 임기만료 시점까지 법무연수원 유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7] 이 때 국민의힘 의원들 쪽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완패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 [18] 실제로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김주현 대검차장(총장 대행)- 이창재 법무차관(장관 대행)의 제청을 받아 윤석열을 서울지검장으로 승진발령내는 형식을 취했다. [19] 법으로 별도로 금지하지 않는 이상 권한대행자가 대행하지 못할 권한은 없다. 다만 권위가 부족해 적극적 권한행사를 자제하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