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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50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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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光化門廣場 | Gwanghwamun Square
[ 광화문광장 BI ▼ ]
파일:광화문광장 BI_White.svg
파일:광화문광장 전경.jpg
<colbgcolor=#00335c><colcolor=#fff>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72 ( 세종로)
개장 2009년 8월 1일 개장
2022년 8월 6일 1차 재개장
2023년 10월 15일 2차 재개장
관리 서울특별시
면적 18,840㎡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조선2.2. 일제강점기2.3. 1960년대 이후2.4. 2009년 이후2.5. 2022년 이후
3. 상징성
3.1. 과거 행정 중심지3.2. 정치 집회·시위의 장3.3. 문화적 랜드마크 겸 길거리 응원의 성지
4. 관련 사건 사고 혹은 시위5. 중건 계획
5.1. 2009년 계획
5.1.1. 문제점
5.1.1.1. 입지5.1.1.2. 교통5.1.1.3. 집회 금지5.1.1.4. 부실한 전시 시설들5.1.1.5. 역사성 무시 논란
5.2. 문재인 정부 제시안5.3. 서울시청 문화재청 공동안5.4. 최종 확정안
6. 대중매체에서7. 여담

[clearfix]

1. 개요

광화문광장은 2009년 8월 1일에 완공되어, 현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복궁 광화문 세종대로 사거리 사이 중앙 서측면에 조성된 시민공간이다.

2. 역사

파일:광화문 서울 변천.jpg
광화문광장의 변천사

2.1.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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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일제강점기

파일:경성부 광화문.jpg
<colbgcolor=#00335c> 조선총독부와 광화문통(1930년대)
일제강점기 일제 육조거리의 이름을 '광화문통(光化門通)'으로 변경했다. 3.1 운동 때 현재의 교보문고 앞(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각)에 사람들이 모인 기록이 남아 있다.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건축하면서 육조거리의 도로를 확장했으니, 이것이 세종대로를 구성하는 세종로의 원형이다. 한국 전쟁 직후에는 장훈( 서울특별시청 도시계획 과장)에 의해서 세종로의 너비 2배만큼( 53미터 100미터) 넓혔다.

2.3. 1960년대 이후

파일:1970년대 광화문.jpg
<colbgcolor=#00335c> 광화문 아치와 중앙청[1](1968년~1982년)
1968년, 서울시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동상[2]을 세우면서 동시에 철골 아치를 설치하였다. 이후 1971년에는 이전의 일시적으로 설치되었던 폭 20m 정도의 아치를 폭 50m 정도의 아치로 넓혀 설치하였다. 7년 후인 1978년, 20m 정도 더 폭이 늘어나 70m 정도의 아치가 되었다. 다만, 사진처럼 철골로 유지되던 시기는 많지 않았으며, 대부분 "질서와 안정 속에 국가 발전 이룩하자"나 "국민화합 이루어 정의사회 이룩하자"라는 선전성 문구가 상시적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박정희, 전두환이 해외 순방을 떠날 때나 새로 취임했을 때, 해외의 정치인이 한국에 국빈으로 방문했을 때 환영 문구도 이 아치에 새겨졌다. 1979년 10.26 이후 박정희 前 대통령의 국장을 다룬 《대한뉴스》나 1980년 전두환 前 대통령 취임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 등 옛날 영상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1981년,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이후 '외국인들이 볼 서울에 저런 흉물스러운 철골 구조물은 안된다!' 라는 의견에 따라 1982년 결국 철거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도 해체한 덕택에 육조거리와 광화문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오늘날의 세종로가 되었다.

2.4. 2009년 이후

파일:광화문1.jpg
<colbgcolor=#00335c>
파일:세종대왕 동상.jpg
<colbgcolor=#00335c>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로 중앙분리대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부터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육조거리에 서서 광화문 경복궁, 북악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원 설계자의 의도에 역행하는 설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광화문 중앙분리대를 광화문광장으로 바꾸어 광화문-육조거리-시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축선을 강조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2008년 5월 27일 착공에 들어가 2009년 8월 1일에 개장하였다. # 중앙분리대를 광장으로 바꾸면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인 세종대왕의 동상[3]이 기존 이순신 동상(1968년 설치) 뒤에 세워졌다. 한편 광장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왕복 차로수(20차로)를 자랑했던 세종대로는 12차로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서양의 광장과는 다르게 조선시대 육조거리 시절부터 나라가 행정 중심지 사이에 의도적으로 세운 관제 광장이므로, 서양의 광장과는 그 기능과 역할이 정반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50년대부터 근 60년간 이 자리는 광장은커녕 20차로 대로였던 곳이기 때문에 생활권과 상권, 보행동선이 광장을 통해서 연결되기는커녕 오히려 광장을 기준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가슴시린 현실이며, 무엇보다 광화문광장 그 자신이 중앙분리대 출신이라 세종대로 중앙에 섬처럼 떠있기 때문에 일부러 세종대로를 횡단보도로 건너서 가야하는 기이한 광장이 되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들르는 곳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 되어버려, 시위의 공간, 화가 나서 따지러 가는 곳으로 공간의 성격이 많이 달라져버렸다.

2.5. 2022년 이후

횡단보도를 통해서만 접근해야 하는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이 전격적으로 수용되어 광장을 세종로 서편으로 붙여서 세종문화회관 및 정부청사와 연결시키는 재조성 작업이 시작되었다.

광화문광장을 세종로 서편으로 붙이겠다는 계획은 광화문 광장이 조성되기 이전인 2005년부터 승효상 유홍준이 제안한 방법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될 뻔 했으나, 당시 오세훈 시장이 중앙분리대 안을 채택했다는 것이 속사정. 후임인 박원순 시장은 임기 초기부터 광화문광장을 재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었고, 2018년에 국제 설계 공모를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주)CA조경기술사 사무소의 '깊은 표면(Deep Surface)'이라는 설계안이 채택되었으며, 조경가 조용준 총괄설계자가 새로운 광화문 광장 설계를 이끌었다. 3년동안 기본 및 실시설계 기간을 거쳐 2022년 8월 6일 재개장되었다.

세종로 바닥을 파면 당연히 조선시대 유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조선시대의 육조거리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

2024년 6월, 서울시가 110억을 들여 광화문광장에 110m의 태극기 게양대를 세우겠다고 나섰다. 조선일보 시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입장으로는 프랑스의 에투알 개선문, 더블린의 스파이어처럼 국가상징공간을 만드는 것이 랜드마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과 꺼지지 않는 불꽃과 함께 광화문 광장의 조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으며 부정적으로는 시대착오적이다, 태극기가 있어야만 애국이 가능한가? 등으로 대표되고 있다. 또한 세금 낭비 논란에 서울시장은 110억원이 게양대 외 부대시설 비용도 합산해 나온 값이라 밝혔다. # 이후 시민 의견을 듣고 한다며 한발 물러섰으나 2024년 8월 20일 시민 500여명에 설문조사해 국가상징공간 설치와 태극기 활용이 다수 지시받았다며 비슷하게 재추진할 것으로 천명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서 그런 설문조사가 있었는지 몰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또한 설문조사를 한사람이 여러번 답할 수 있고 주관식이라 집계가 애매하다는 보도가 있다. #

3. 상징성

3.1. 과거 행정 중심지

세종대로에 설명된 옛 연선 기관들을 살펴 보면 명실상부한 서울특별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20세기까지는 (한국 의회 정치의 상징이 여의도인 것처럼) 이곳을 한국 행정부의 상징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도 현 서울특별시의회가 있는 옛 부민관 자리(현 서울특별시청 맞은편)에 있었다. 참고로 경기도청도 경복궁 건너편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인 현재는 다수의 기능이 분산되어 이전만큼의 위용은 뽐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6조와 의정부, 경복궁의 기능은 청와대 정부서울청사가 행하고 있었는데, 정부과천청사 정부세종청사로 상당수 넘어갔고, 대전광역시 세종시 등으로 정부의 행정 기능이 꽤 분산된 상황이다. 심지어 대통령 집무실 역할을 하던 청와대도 현재 일반에 공개되고 용산 대한민국 대통령실로 이전하였다.

3.2. 정치 집회·시위의 장

서울역 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 DDP, 여의도공원, 국회의사당 앞 삼거리 등과 함께 시민단체들의 주요 집회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작은 시위부터 역사를 바꾼 굵직한 시위까지 여기서 많이 진행했다. 일부는 관광하거나 지나갈 때 여기 일대는 시끄럽기 때문에 기피한다고 한다. 이유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시위, 집회 등을 할 때 광화문광장뿐만 아니라 세종대로 양옆에 있는 인도, 광화문 바로 앞에 있는 인도 등에서 1인 시위와 소규모 집회를 동시에 많이 해서 충돌도 일어나고, 소란스럽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광화문 앞에서 백성들이 집회를 자주 하였고, 조선시대부터 유생들이 모여서 상소를 올리고 집단농성을 하던 유래가 깊은 시위명소이기도 하다.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이곳에 세월호 시위를 위한 천막이 세워지면서 진보단체들 중심으로 강하게 각인되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열리면서 대중적인 집회와 시위의 성지 비슷하게 인식되어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로 보는 사람도 있다.[4] 다만, 이전에도 청와대 정부서울청사가 인접해 있어 이쪽을 공격하기 좋은 모양새라 시위는 많이 했었으며,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규탄 집회가 대규모로 열리면서 더욱 그러해졌다. 이외에도 노재팬 시위, 청소년 기후위기 결석 시위, 10.3 개천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 사랑제일교회 집회, 2020년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 2021년 12월 22일 광화문 시위(예정) 등 좌우익 가리지 않고 시위하는 장소가 됐다.

그러나 예로부터 한국 시위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던 역사를 뒤로하고 2022년 윤석열 정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이후 대부분 시위는 용산구로 옮겨갔다. 이곳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도 계획대로 용산으로 이전되면 친미/반미 시위도 옮겨갈 것이다. 애초에 대부분의 정부기관이 정부세종청사로 갔고, 서울시정 관련 시위는 그냥 서울특별시청 광장으로 가니 이제 여기서 시위할 이유가 부족하다.

그러나 한가지 큰 반전이 있는데, 광화문광장은 2009년 조성 당시부터 집회 시위가 금지되었다. 시 조례에 따르면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을 이용하는 방식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매번 무산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광화문광장이 시위의 상징이 된 것은 이러한 행사를 일단 '문화제'로 신고하거나, 아니면 세종문화회관이나 일부 기업 건물 등 광장 인근 장소에 집회 신고를 한 다음 실제로는 광장으로까지 침범하는 경우라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광장 내에서는 항상 경찰관기동대가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서울경찰청의 거의 모든[5] 경찰부대가 정해진 순번대로 투입되어 인근의 주한미국대사관 정부서울청사[6], 근처 주한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경비를 서면서 인근에서 벌어지는 기습적인 집회시위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는다. 때문에 광장 이곳저곳에는 경찰버스의 전원공급을 위한 배전반, 기동경찰의 휴식을 위한 컨테이너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위에 경찰관/의경 할인을 해주는 식당들도 많다. 다만 야외근무라는 특성상 기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데다[7] 높으신 분들도 자주 오가고, 돌발상황도 잦은 곳이라 고된 근무환경이라는 평을 받는다. 서울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한 사람이라면 여러모로 각별한 기억으로 남을 장소. 그러나 주한미국대사관 문서에 나오듯 용산으로 이전을 추진 중이라 이도 옛이야기가 될 전망이다.

3.3. 문화적 랜드마크 겸 길거리 응원의 성지

2010년대 후반 들어 광화문광장에 있는 현수막은 모두 철거되었고, 2022년 8월 새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잔디랑 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졌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시위의 장으로서의 기능은 다소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2020년대부터는 행정적, 정치적 중심지에서 문화적 랜드마크로 탈바꿈하고 있다. 외교부가 광화문 일대에 있는 관계로 미국, 일본, 호주, 핀란드, 멕시코, 오만 등의 각국 대사관들도 광화문광장 인근에 많이 모여 있는 편이다. 덕분인지 관광객들도 많다. 정부 기관 뿐만 아니라 고층 빌딩에 각종 기업 본사 등도 많이 입주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 지구 중 한 곳이다. 한국 대중 지식의 상징이었던 교보문고, 통신 시장에서의 매우 높은 점유율을 자랑하는 KT 본사가 존재한다.

4년마다 FIFA 월드컵이 열릴 때면 서울을 대표하는 길거리 응원의 성지가 되곤 한다. 길거리 응원의 원조는 서울광장이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광화문광장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광화문광장은 전국 길거리 응원전의 본진 역할을 하는데 대한축구협회 붉은악마 서포터스가 서울시에 장소 사용을 요청하고 광화문광장 바로 앞에 본사를 둔 KT가 후원하는 방식으로 응원 광장이 만들어진다.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길거리 응원 장소답게 응원이 펼쳐질 때면 각 방송국과 신문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이 광장에 찾아온다. A대표팀이 출전하는 월드컵 외에도 FIFA U-20 월드컵의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거리 응원을 펼치기도 한다.[8]

한국에서 진행됐던 2023 월즈또한 고척돔만큼이나 그 응원 열기가 뜨거웠다.

4. 관련 사건 사고 혹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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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건 계획

5.1. 2009년 계획

파일:external/img.hani.co.kr/141206322796_20141001.jpg
<colbgcolor=#00335c> 제안된 안에 따른 광화문 광장(측면배치안)
파일:external/img.hani.co.kr/141206319870_20141001.jpg
실제로 건설된 광화문 광장(중앙배치안)
그러다 참여정부 말기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광화문 복원을 하면서 동시에 세종대로에 광장을 만드는 안을 계획해서 서울시청에 전달하게 된다.[9] 최초의 안은 원래 있었던 육조거리에 맞춰 세종대로를 미국 대사관/KT 쪽으로 보내고 세종문화회관 앞을 막아서 광장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서울시에서 여론조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하고 중앙설치안으로 결정 되었다. 그러면서 결국 기존 왕복 20차로였던 세종대로를 왕복 12차로로 줄이고 세종대로 중앙에 광화문 광장을 만들게 되었다.[10]

5.1.1. 문제점

5.1.1.1. 입지
현재의 광화문광장은 넓은 도로인 세종대로의 가운데 부분을 공원으로 만든 것인데, 대부분의 도시공학자들은 이 공원의 조성 목적 및 용도에 대해 부정적이다. 광장은 본래 보행자가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도록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광화문광장은 세종대로 정중앙에 섬처럼 만드는 바람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동선과 시선축이 어그러졌다는 문제점도 있다. 서현 교수는 차라리 이 공원이 세종문화회관 쪽의 인도에 접하도록 만들어야 육조거리의 의미뿐만 아니라 동선축과 시선축에 부합한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은 서울시청 앞의 광장과 함께 정치적인 목적의 산물이라고 욕을 먹는 중이다.[11]

다만, 이러한 혹평과는 별개로 북악산, 청와대, 경복궁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사진 찍기에는 최적의 장소.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사진촬영의 명소로 인기가 많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경복궁은 필수 중의 필수로 여겨지는 장소인데, 경복궁 온 김에 들렀다가 되려 광화문 광장이 인상깊었다는 주객전도가 일어나기도 한다. 광화문 광장은 일단 규모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동상/경복궁/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도가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호평 일색이다. 각종 시위까지 끼얹어지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요즘은 광화문광장에 시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 빼고는 잘 오지 않는다.[12]
5.1.1.2. 교통
세종대로가 왕복 20차로에서 12차로로 축소되어 교통정체가 극심해졌다. 게다가 고양시 파주시에서 오는 광역버스들이 이 광장 때문에 광화문정류소의 반대편인 KT정류소에서 승객을 태울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노선이 조정되어 이 버스들이 서울 시내에서 나갈 때는 의주로를 지나게 되었다. 그 외 분당, 용인, 하남, 의정부(종로1가로 노선 단축), 수지에서 오는 광역버스들의 경로가 거의 남대문로로 변경되어 종각역- 을지로입구역- 숭례문구간이 헬게이트가 되었다. 1년여 동안 남대문로 정체로 몸살을 앓은 남대문경찰서가 서울시에 요청해, 결국 하남, 일부 분당행 광역버스를 제외하고 점차적으로 본래 노선으로 환원했다. 이 때문에 대중교통 종사자와 자가 운전자들 역시 모두 한 마디씩 하는 중. 광장을 조성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만 그 광장이 모두가 만족하는 광장이 아닌 정치적 산물이라는 점이 문제. 세종대로 등은 규격상 광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원래 광장의 기능을 포함한다. 단순 교통의 의미가 아니라 집회 기능이 있었던 것. 교통만 생각하면 도로가 그리 넓어야 할 이유가 없다.

여름에는 분수를 가동하기도 하는데, 겨울에는 차도로 넘쳐흐른 분수물이 얼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이 뒤늦게 제기되면서 늦가을부터는 전혀 가동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5.1.1.3. 집회 금지
이 광장에서 정치적 집회를 금지한 것 때문에 까이기도 하였다. 홍보용 공터로 용도를 한정해버렸다는 것. 실제 서울시 조례에도 각종 정치적 목적의 집회는 금지되어 있으며 순전히 관제 행사만 허용할 정도다.

그런데 허용을 해도 집회가 힘든 게, 실제로 광장이라고 만들어놓은 게 상-하행 편도 2차선 도로 가운데 만들어놓아 차들이 달리는 가운데서 오가는 위험성이 존재하며, 실제로 택시가 광장 안쪽으로 돌진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즉 어지간한 대규모 집회가 아닌 한 집회가 불가능하다.

집회가 금지되는 법적근거는 서울특별시 조례상 문화재 인근 100m 이내에서 행사를 진행하거나 행사를 목적으로 광화문광장을 점용할 때에는 서울특별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과 함께 집시법상으로도 외교기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할 수 없다[13]는 규정 때문인데 다만 집시법의 금지조문엔 예외적으로 집회가 가능한 경우도 규정하고 있다.

이 3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할 경우 외교기관 100m 내에서도 집회가 가능하다.

또한 집회시 광화문광장의 사용에 관한 서울특별시의 입장은 확고한데 해당 조례의 그 어느 조문에도 집회를 금지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광화문광장의 운영과 안전 관리, 문화 행사 등에 대한 행정적인 처리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이 담당하지만 집회나 시위는 조례에 우선해 상위법인 집시법 규정에 따르게 된다고 밝혔다.[14]
5.1.1.4. 부실한 전시 시설들
세종대왕동상 뒤편으로 가보면 동상의 좌대 뒤편에 문이 달려있는데 내부로 들어가보면 지하로 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내려가 보면 ' 세종이야기'와 ' 충무공이야기'라는 전시관이 있다. 이 전시관은 세종문화회관에서 KT빌딩에 이르는 지하 공간에 조성되어 있는데, 광화문 광장 조성 전 존재하던 지하U턴 차로를 재활용하여 만들어졌다. 광화문 광장을 자주 가본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다가 '어 이런 곳에 이렇게 큰 전시관이 있었어?'하며 놀라는 곳. 당연히 세종문화회관이나 KT빌딩 쪽에서도 접근 가능하다.

이 시설에 대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린다. 전시관 내부에 놓여있는 전시물이래봐야 어린애들이 왜구들을 쏴 죽이는 오락기를 가져다 놓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허접하게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름에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여서 전시 시설을 만드는 것 자체가 유치하다는 의견도 있다.
5.1.1.5. 역사성 무시 논란
파일:external/www.bostonkorea.com/20100316013300_2634.jpg
<colbgcolor=#00335c> 광화문과 그 앞에 있던 월대

5.2. 문재인 정부 제시안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면서 광화문광장 수정을 추진하려 했다.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0000206058_001_20170531202041133.jpg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0000206058_002_20170531202041146.jpg
<colbgcolor=#00335c> 광화문광장 수정안 계획도

위에 언급한 수정안대로라면, 경복궁으로부터 광화문광장이 보행도로로 연결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맞은편 미국 대사관까지 세종대로 전체가 공원으로 꾸며진다. 구체적으로는 광화문 월대와 해태상을 조선 후기 때 위치로 복원하기 위해 경복궁 앞 율곡로 130여m를 지하화하고 지하로 내린 율곡로는 지하철 3호선 구간을 피해 곡선화할 계획이다. 또 현재 11차로인 광화문광장 양 옆 세종로도 전면 지하화해 KT 광화문지사 앞부터 경복궁 방향으로 30m 이상의 도로가 모두 지하화할 예정이다. #

어차피 대통령 집무실이 정부서울청사로 옮겨지게 되면 대통령의 동선, 보안시설, 전파 교란 등의 경호 문제로 광화문광장 구조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기사 후반부를 참고할 것.

하지만 결국 2019년 1월 4일, 유홍준 '광화문 대통령 시대' 자문위원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시설, 부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대통령 집무실 정부서울청사 이전과 청와대 개방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끝난 후에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여,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통령집무실 정부서울청사 이전 공약은 사실상 백지화되었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

5.3. 서울시청 문화재청 공동안

파일: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jpg
<colbgcolor=#00335c>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
그러다가 2018년 광화문광장은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확장돼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매머드 광장'이 될 예정으로 변경되었다. 광화문 앞을 가로지르는 사직로 자리에는 서울광장(13,207㎡)의 3.4배 크기 역사광장이 새로 조성되는 것이다. 이 경우 광화문광장이 지금보다 3.7배 커지며, 10차선은 6차선으로 축소될 전망이었다.

2019년 1월 21일 서울특별시는 광화문광장 재조성사업 국제공모전 최종 당선작으로 '딥 서피스[16](부제: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를 공개했다.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CA조경기술사사무소 진양교 대표 등이 낸 모형. 경향신문 도로를 6차선으로 축소하고, 특히 세종문화회관 쪽은 광화문광장과 연결된다.[17] (수정 가능성 문단에서 제기한 2번 안과 특히 더 유사) 이순신동상, 세종대왕상 역시 예상대로 이동된다.

광화문 앞에 있었던 조선시대 월대와 육조거리를 복원함으로써 역사성을 살렸다. 또한 광화문과 광화문광장을 연결하며,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시민광장'을 유치한다. 이렇게 되면 총 광장 면적이 126,100㎡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더불어 현재 분리되어 있는 광화문~시청~을지로~동대문 4km에 달하는 지하 시설을 통합, 확장해 광장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채광은 자연광을 이용하는 선큰(Sunken) 구조로 변경한다고 했다. 그리고 광화문역 시청역을 연결하고 GTX A 노선을 유치, 신분당선까지 유치해서 5개 노선[18]이 지나는 복합 역사를 만들어 강북의 교통허브로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특별시는 신분당선 광화문 연장에 미련을 못 버린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가 태클을 걸었다. 광화문역에 GTX를 정차시키면 비용 부담도 커지고 표정속도도 떨어진다는 것. #

예측대로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이순신 동상은 옛 삼군부 터인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옮기기로 했다. 다만 박원순 전 시장은 이순신, 세종대왕 동상 이전 부분은 공론화 과정을 거친 후에 확정짓겠다고 밝혔다. # 같이 인터뷰한 심사위원장의 표현을 통해 추정하면, 시 입장에서는 이순신 동상을 현위치에 두는 데에 부정적이진 않은 듯. 서울특별시와 문화재청이 각각 669억원, 371억원을 부담해 총 1,040억원의 예산으로 2021년 완성하기로 발표했다.

행안부에도 이견을 제시했다. # 계획대로라면, 정부서울청사에도 손을 대게 되는데, 여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건물 4개가 철거되고 청사 앞 도로가 없어지는데 당연한 반응이다. 이에 서울특별시는 합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김부겸 전 장관이 직접 비판에 가세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기존 광화문광장이 지녔던 역사성 복원 부분의 아쉬움, 섬 같은 입지로 인한 단절성 등의 문제점을 상당수 개선했다는 것은 분명 의의가 크다. 그러나 다음의 비판이 있다.

먼저, 교통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미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해 세종대로는 칼질을 당했다. 그리고 그 결과 광화문 일대는 현재 심각한 교통혼잡을 겪고 있다. 그런데 가뜩이나 모자란 도로가 더 줄어들면 결국 현 모습의 최대 단점이 극대화된다는 소리다. 이에 서울특별시는 이 주변을 지나는 차들에게 도심부 혼잡 통행료 부과방침을 정했다. 이렇게 될 경우 자연스럽게 교통량 축소와 승용차 통행 억제가 이루어지고 대형 차량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이라고.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기 전인 2020년 4월부터 차없는 거리 행사때 오른쪽 6차선만 이용해서 운행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하기로 했다. 또 오른쪽 6차선이 일방통행이 아니라 버스 전용차선은 반대로도 운행할 수 있게 하기로 하였다. 4월부터 세종대로 편도방향에 가변식 이동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양방향 버스차선은 상시로 운행이 가능하도록 경찰과 협의·추진할 예정이다.

다음으로는 랜드마크인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이동되는 것에 대한 반감을 들 수 있다. 의외로 교통보다 이 부분에 대한 반감이 거세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인물 2명을 대신해서 촛불관련 디자인을 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 심지어 진보 성향 언론사에 달린 댓글에도 이 부분은 건들지 않았으면 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박원순 시장이 동상 이전 여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광화문광장 설계자는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과 촛불문양 새기기는 포기한다고 했다.

5.4. 최종 확정안

파일:rhkdghkansrhkdwkd.jpg
<colbgcolor=#00335c> 2023년 공사 최종 준공 후 광장 모습
파일:서울 광화문.jpg

6. 대중매체에서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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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울특별시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문화 활동 등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광장을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