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5:01:19

사직(역사)

1. 개요2. 역사3. 무형문화재4. 여담

1. 개요

사직(社稷)은 유교를 받아들인 동아시아 전제 왕조에서 토지를 지키는 신인 「사(社)」와 곡식을 지키는 신인 「직(稷)」을 통칭하는 말이자 이들에게 드리는 유교식 제사를 이른다. 농경 사회에서 토지와 곡식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었는데, 고로 이를 지키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종묘와 더불어 왕조로서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동아시아 왕조에서 국가의 운명을 상징하는 용어로도 자주 쓰였는데, 현대 사극에서도 자주 나오는 " 조선 500년 종묘사직", "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같은 식이다.

2. 역사

사직은 중국의 주나라 때부터 시작된 제사이며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때 수입돼 제사 지내기 시작했다. 사직 제사도 급이 나뉘어 있다. 천자의 사직 제사명은 대사(大社)·왕사(王社)인데, 사직제도가 만들어졌을 땐 중국 왕조엔 황제호가 없었으므로, 왕호만이 천자를 대표할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제후는 국사(國社)·후사(候社), 제후 밑의 대부(大夫)급은 치사(置社)라고 한다.

삼국 시대의 사직 제사 방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삼국사기 잡지에서 삼국의 사직 관련한 여러 부족한 기록들을 모아두고 있다. # 고려 왕조의 사직 제사 방식은 고려사 예지 사직에 상세히 나와있다. 성종 대에 절일, 태묘, 원구단(圜丘壇), 방택(方澤) 등을 설치할 때 같이 설치했으며 대사(大社)라 불렀다. 오방색의 흙을 쌓아 단을 만들었고 대사(大社), 대직(大稷)의 신위를 만들어 후토구룡씨(后土勾龍氏), 후직씨(后稷氏)를 배향해서 제사 지냈다. 성종 이후 충혜왕까지 제사 지낸 기록이 있다.

3. 무형문화재

사직대제라 하여 사직에 대한 제사는 현대 한국에서 중요무형문화제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자체나 유교 관련 단체들이 사직을 지내야 할 때가 되면 사직단에 모여서 제례를 올리기도 한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지역 축제처럼 다루어질 때도 있는 모양.

4. 여담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11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11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