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3:07:04

박근혜 정부/2014년

박근혜정부/2014년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order-left: 10px solid #c9252b; border-right: 10px solid #c9252b"
{{{#!wiki style="margin: 0 -2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color=#c9252b><colbgcolor=#f5f5f5,#2d2f34> 구성 인사
여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정책 및 방향 초이노믹스 · 증세 없는 복지 · 노동개혁 ·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 · 임금피크제 · 국정화 교과서 · 창조경제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 행복주택 · 뉴스테이 · 테러방지법 · 위안부 합의 ·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 문화가 있는 날 · 4대 사회악 · 멈춰 캠페인 · 대학구조개혁평가 ·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 · 청탁금지법 · 대량응징보복 · THAAD 배치 · 중국 전승절 참석 · 한미 우주협력협정 · 국민안전처 · KC-X · 개성공단 가동 중단 · 파리협정 · 중고 CH-47 도입 · KF-X 사업
평가 대통령 이전 · 외교 · 지지율
비판 정책 분야 · 경제 분야 · 민주주의 후퇴 · 자질 · 역사관 · 개인처신 문제 ·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 사이비 종교 논란 · 국민갈등
타임라인
2013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2014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2015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2016년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를 참고
박근혜 개인과 관련된 문서는 틀:박근혜 참고
파일:박근혜 정부 슬로건1.svg
}}}}}}}}}}}} ||



EX
) 청와대가 시민단체를 비난했다→ 청와대가 주도한 것임으로 거론가능
) 시민단체가 청와대를 비난했다→ 청와대가 주도한 것이 아님으로 불가능
EX
) 여당이 국정감사 도중 도시락을 까먹었다→ 여당만 한 것임으로 불가능
) 여당과 야당이 동시에 도시락을 까먹었다→여당과 야당이 동시에 한 것임으로 가능

2014년, 박근혜 정부의 각종 사건사고를 정리하는 페이지

1. 1월2. 2월3. 4월4. 6월
4.1. 6월 4일4.2. 6월 10일4.3. 6월 12일4.4. 6월 22일4.5. 6월 24일
5. 7월6. 8월7. 9월8. 10월9. 11월10. 12월

1. 1월

2. 2월

3. 4월

파일:adadadadafafefraefsad.jpg }}} ||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났던 250여명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50여명의 일반인 승객이 사망한 해상 사고가 발생했다.

박 대통령은 탑승자 구조 실패 및 여러 논란 때문에 해양경찰을 해체했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또한, 4월 16일을 국가 기념일 국민안전의 날로 제정하였다.

사건이 발생한지 7시간 뒤에나 돌아와 제대로 된 상황 파악도 없이 구조대를 질책만 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다 입었다고 하던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듭니까?"라는 질문을 하자 관계자가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 때문에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현황도 모르고 있었느냐?'라는 질책이 뒤따랐다.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사고가 발생한 후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걸렸던 이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고 밝혔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는 " 정윤회[3]와 박 대통령이 이 7시간 동안 밀회를 가졌다"는 칼럼을 내보냈고, 산케이신문이 조선일보의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다 곤욕을 치렀다.

구조할 수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컨트롤타워의 부재 등으로 국민들이 안전을 보호하지도 않은 정부을 보면서 시민들은 박근혜 정부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야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박근혜 정부는 안정을 되찾아 갔다.

이 당시 경비 문제로 박근혜가 진도에 내려가는 것을 반대했으나 박근혜가 가겠다고 했고, 이 일을 두고 정몽주니어 미개론이 시작됐다.

4. 6월

4.1. 6월 4일

4.2. 6월 10일

4.3. 6월 12일

4.4. 6월 22일

4.5. 6월 24일

5. 7월

6. 8월


파일:adadads.jpg

7. 9월

8. 10월

9. 11월

10. 12월



[1] 취임후 300여일 만에 이루어진 기자회견이라 굉장히 늦었다고 비판을 받았다. [2] 시작은 윤일병이 전입온 시기부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터진건 4월 6일이다. [3]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초년생이던 시절부터 보좌했던 비서실장이었고, 최순실의 전남편이자 정유라의 아버지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