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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3c79bc> 리처드 맥케이 로티
Richard McKay Ror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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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1년 10월 4일 | ||
뉴욕주 뉴욕시 | |||
사망 | 2007년 6월 8일 (향년 75세) | ||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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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철학자, 작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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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79bc><colcolor=#fff> 모교 |
시카고 대학교 (
철학 /
B.A.) (1949년) 시카고 대학교 ( 철학 / M.A.) (1952년) 예일 대학교 ( 철학 / Ph.D.) (195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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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
리처드 맥키언 (Richard McKeon)[1] 폴 와이스 (Paul Weiss)[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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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웰즐리 칼리지 (강사)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 정교수) 버지니아 대학교 (인문학 / 정교수) 스탠퍼드 대학교 (비교문학 / 명예교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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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파 | 신실용주의 (Neopragmatism) | ||
배우자 |
아멜리에 옥센버그(Amélie Oksenberg)(1972년~2007년) 메리 바니(Mary Varney)(1954년~19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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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장남: 제이 로티(1954년생)[4] 차남: 케빈 로티 장녀: 패트리샤 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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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철학자. 미국 실용주의 전통을 되살려 놓은 인물.2. 생애
리처드 로티는 1931년 10월 4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진보적인 시사지 《The Nations》의 편집에 관여했던 트로츠키주의자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의 여러 사회적 활동 덕분에, 어려서부터 전 세계의 유명한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가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사회정의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한편 로티는 뉴저지의 산악지대에서 성장하면서 야생란에 대해 각별한 취미를 가지게 된다. 이는 이후 자신의 철학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정의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적 취미가 어떻게 중재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15세가 되기 직전에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18세에 졸업했다. 그는 이 시기 동안 플라톤에 심취한다. 플라톤철학에서 자신의 철학적 해답을 얻을 것이라고 보았으나 20세가 될 무렵 플라톤의 철학에서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다. 1952년에는 시카고 대학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철학 교수직을 얻기위해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분석철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분석철학에서 자신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 당시 존 듀이를 접하긴 했으나 공적인 정의와 사적인 자아창조의 영역을 중재해보려는 로티의 철학적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1956년 그는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잠재력의 개념 (The Concept of Potentiality)》을 썼다. 1년간 예일 대학에서 강사를 하다가 이후 2년간 육군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1958년부터는 3년 동안 강사 자격으로 웰즐리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1961년부터 1982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그는 분석철학에 몰두하였으며 제거적 유물론과 같은 심리철학의 입장을 담은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쯤 듀이와 같은 고전적 프래그머티스트의 입장에 동조하고, 메타철학적 쪽에 관심을 가진다.
1979년 《철학과 자연의 거울》을 집필하였다. 하지만 《철학과 자연의 거울》이 분석철학 전반을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석철학을 전공한 동료 교수들과의 불화가 심화되었고 계속된 불화에 진절머리가 난 로티는 3년 뒤 프린스턴 대학을 박차고 나온다. 뛰쳐나온 그는 버지니아 대학으로 직장을 옮겼고 그곳 인문학부에서 학생들에게 철학과 영문, 사학 등을 가르쳤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해석학과 후기구조주의의 관점을 수용하고 듀이를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독특한 철학적 입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10년 뒤 1989년에 출판한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은 마침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중재라는 철학적 화두에 대해, 양자가 굳이 중재될 필요가 없음을 주장한다. 이후 데리다, 하버마스 등과 서로 논쟁을 이어나가면서 그들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석학의 내용들을 자신의 이론에 접목시킨다.
1998년부터 스탠퍼드 대학교로 옮겨,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 6월 8일, 췌장암으로 자택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3. 사상
3.1. 반표상주의
로티가 기존 철학사를 비판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으로 내세우는 것은 반표상주의다. 반표상주의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표상주의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표상주의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정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바깥의 대상이 내 머리 속에 이미지화(표상) 되는 것이 '지식'이라는 입장이다. 즉 이는 '자아'라는 거울에 비친 자연의 모습과도 같다. 로티에 따르면 플라톤 이래 데카르트에 의해서 본격화되고 칸트, 후설, 논리실증주의자 등으로 맥이 이어진 표상주의 철학은, 합리적인 이성의 인식에 근거하여 영원불멸하는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해왔다.하지만 로티는 이렇게 외부세계를 관조하고 통찰하는 객관적 이성이 찾아내는 영원불멸의 진리란, 단지 '역사적'인 구성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로티는 이것을 밝히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표상주의의 연원을 찾아낸다. 소크라테스는 육체와 정신을 구분함으로써 보편자를 파악하는 정신을 인정하였다. 이는 플라톤으로 이어져 이데아의 세상과 현실 세상의 구분을 만들어 냈다. 데카르트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변형된 형태로 받아들여 실체로서의 '정신'을 발명했다. 칸트는 외부 대상을 파악하는 자아를 선험적 영역[5]에서의 통각[6]으로 묶어냄으로써 대상을 표상하는 자아의 관념을 완성시켰다. 즉, 자아는 단지 표상주의가 만들어낸 역사적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어떤 불변적 진리나 절대적인 도덕의 기초 따위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기 위해, 외부세계를 비추는 일종의 거울 같은 인간의 본질을 상정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로티는 그러한 거울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우연적으로 발생한 하나의 메타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티는 이러한 표상주의의 대안으로 가다머의 '해석학'을 제시한다. 로티에게 해석학은 표상주의적 철학(인식론)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해석학은 모든 지식이 '역사적인 구성물'임을 인정한다. 앎은 객관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인식론과는 다르게, 해석학에서의 앎이란 '인간은 선입견에 근거하여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인간은 세상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 대한 그때마다의 매번 달라지는 개인의 해석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은 인간의 이해에 영향을 주고, 인간의 이해는 세상에 영향을 미쳐서, 앎에 있어서 부분(개인)과 전체(세상)는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해석학적 순환을 이루게 된다. 즉, 인식론(표상주의)은 앎을 어떤 공통된 지반위에서 객관적인 대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에, 해석학은 공통된 지반없이 서로 다른 양자가 각자가 가진 주관적 선이해를 가지고 소통하는 것으로써 앎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로티는 인식론을 버리고 해석학을 지지한다. 로티가 말하는 해석학은 이후 '문예 비평'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계속 이어진다.
3.2. 자아와 언어의 우연성과 자아창조
저 바깥에 영원불변하고 궁극적인 진리가 없다면 우리는 자아와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로티의 논리에 따르면 이 세상의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에 대한 서술들은 모두 우연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아는 단지 우연한 역사적 구성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특정 자아를 발견하고 목표로 삼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언어 역시 역사적 구성물이며 우연의 산물이므로 세계의 진리를 매개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7] 즉, 자아나 언어는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형성되는 것이므로, 자아에서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마음대로 살자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 개인은 어떤 이상적인 인물이 되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스스로의 자아를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를 '자아창조'라고 한다.자아를 만들어가는 일은, 남이 자아를 서술했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 방식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서술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인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철학이라는 것도 그저 자연이라는 하나의 서사에 대한 재서술의 연속일 뿐이며, 제각기 다른 철학자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어휘로 그것을 반복할 뿐이라는 점에서 시인의 작업과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각기 '자신만의 언어'를 얻어 자신만의 자아를 서술해가는 철학자이자 시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그 어휘는 단 한 사람, 자신만은 설득시킬 것이다. 로티는 그것을 '마지막 어휘'라고 부른다. 모든 서사가 재서술의 연속인 이상 우리는 아이러니[8]한 존재이고, 마지막 어휘를 찾는 순간 그 서사는 그 자신을 살아있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로티는, 자아를 스스로 창조해 가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아이러니스트'라고 부른다.
3.3. 공적인 실천으로서의 연대
로티는 이제 이 '아이러니한 자아'들이 모인 집단인 '사회'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개인이란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것이기에, 이렇게 정의된 개인을 가지고 '사회적 구속력'을 설명하고자 하면, 그 내재적 모순 때문에 어떤 이론도 매번 실패하게 되는 문제점이 생기게 된다. 즉, '사적인 자아창조'의 작업과 '공적인 실천적 행위' 사이에는 서로 어떠한 체계적인 이론도 구성해 낼 수 없으며, 여기서 이론적인 체계를 세워 이론과 실천을 통합해보려고 하는 그 어떤 노력과 시도들도 결국엔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마련인 것이다. 로티는 여기서 그 동안 사장되어 있었던 프래그머티즘을 들고 나온다. 사변적인 체계의 구성보다 단지 그 주장과 신념이 가져올 '실천의 결과'가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느냐를 따지는 프래그머티즘적 관점에서는, 철학은 '자아'와 '사회'라는 각자의 부분에서 단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제시하는 것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 둘 사이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려는 어떤 '이론적 통합'을 찾는 것은, 또 하나의 무의미한 레토릭[9]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다만 개인의 자기창조 작업은 다른 개인과 서로 영역이 부딪칠 때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또한 우리가 자아창조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우리는 쉽게 ‘무관심의 괴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무관심이 때로는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성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막기위해서라도 우리는 공적인 영역에 나와 사회 연대의 과제를 수행해야 된다고 로티는 말한다. 하지만 로티에 따르면 우리는 철저히 역사적인 산물이며 스스로를 만들어가야 할 아이러니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에서도, 자아도, 공동체도 발견되어야 할 본질 같은 것은 없으며, 이에 따라 독특하고 특이한 개인들의 사회에선 전통 철학이 추구해왔던 보편적인 진리는 더 이상 연대의 근거가 될 순 없다. 따라서 오늘날 인간의 연대는 공통의 진리보다는 차라리 공통의 희망을 공유하는 데 달려 있다.
이들의 희망은 연대를 통해 자신의 자아창조 작업과 자유를 침범하는, 세상의 '잔인성(폭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그것은 타인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 소극적 자유'를 함께 지켜나가는 일이 된다. 이것이 로티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떤 철학적인 어휘가 아니라 일종의 동질감에서 비롯된다. 저 사람과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것. 이를테면 인종, 문화권, 성적지향, 또는 핏줄같은 것들. 이는 우리가 실제로 느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연대에서부터 시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더 확장된 연대로 조금씩 나아간다.
로티는 다만 이러한 연대의식의 확대가 사회적인 정의나 올바른 도덕적 규범으로서 역할할 수 있는 공통의 원칙을 찾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타자의 삶의 세세한 부분을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대화이다. 대화를 통해 연대가 가능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연대를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져온 구체적이고 슬프고 정서적인 이야기들이다.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짐에 있어서, 어떤 이론적 원칙을 듣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슬픈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로티는 주장한다. 로티가 저널리스트와 소설가, 방송작가 등의 역할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공감적 상상력이 사회 연대를 결속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질문, 심사숙고, 대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훈련하게 하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활동을 요구한다. 이것은 다양한 개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는 사적 영역에서 스스로의 자아를 창조하는 일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사적인 '아이러니스트'들과 공적인 연대의 '자유주의자'들은 해석학적 순환을 이루므로, 우리는 이들을 일컬어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로티에 대한 철학적 비판
로티의 철학은 상대주의라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자아와 언어의 형성은 철저히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너도 맞고 나도 맞는 상대주의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모든 것은 역사적 구성물이기에,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티의 논리에 따르면, 둘 사이에 모순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이를 '객관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오로지 '주관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객관적' 법과 규범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이에 대한 반박도 물론있다. 로티는 법을 따르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철학적 논리를 철저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면 모든 '앎'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법도 역사적으로 변해온 것이지 않은가?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10]또한 그 연대의 힘이 개개인의 슬픔이라는 감정, 또는 잔인성을 피하기 위한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성'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힐러리 퍼트넘의 지적) 이는 로티 스스로가 자신은 어떤 '보편적 이상'에도 기초하지 않았다는 반표상주의적 주장과 모순되는 것이다. 물론 로티는, 자신의 주장이 개개인의 감정의 '사적'인 동질감에서 비롯된 연대일 뿐이지, 그 감정이 어떤 의미에서건 보편적 의미를 지닌 인간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또다른 문제가 생긴다. 잔인성을 피하기 위한 감정이 보편적인 감정이 아니라 철저히 사적인 감정이라면, 그 감정은 언제나 자의적인 것이고 따라서 원칙적으로 그들 사이에 어떠한 공통의 동질감도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공통의 동질감이란 일종의 보편성이 되어야 한다. 로티는 분명 보편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결국 보편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최소한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그 보편성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인정하더라도 문제없지 않느냐는 '보편성 인정'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5. 여담
- 리처드 로티는 객관적인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전 시대의 모든 철학을 표상주의로 놓고, 그러한 일대일 대응은 마치 거울같은 메타포에 불과하다는 반표상주의를 주장했다. 즉 모든 언어와 자아는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 우연으로 결합된 '역사적 구성물'에 불과하므로, 우리가 따라야 할 객관적 진리란 없다. 이렇게 객관적인 진리가 없는 세계에서 개인은 자신만의 언어를 선택해 스스로의 자아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 된다. 각각의 자아창조는 너도 맞고 나도 맞기 때문에 그 사이에 모순되는 주장이 있더라도 우리는 각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개인은 '아이러니'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개인들의 집합인 공동체는 모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공동체를 설명할 어떤 통합적 이론체계도 세울 수 없으므로, 단지 그 자아창조의 추구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문제점', 즉 우리의 '자아창조'의 자유를 방해하는 '잔인성[11]'을 내쫓기 위한 실천적인 '연대'를 필요로 하게 될 뿐이라고 로티는 주장한다.
- 그는 푸코와 같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과 리오타르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문화 좌파(cultural Left)라고 보고, 자신을 비롯해 존 듀이 같은 실용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개혁 좌파(progressive Left)라고 구분한다. 그리고 문화 좌파들이 사회의 병폐에 대해 통찰력 있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로티는 그들이 대안을 제공하지 않으며 때때로 진보의 가능성을 부정하기까지 한다고 생각한다. 즉, 문화 좌파들은 희망이 없으면 변화는 영적으로 상상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안(희망)을 제시하지 않고 비판만 하기 때문에 도리어 진보에 대한 냉소주의를 낳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면 로티와 같은 실용주의적 개혁 좌파들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불완전하더라도 구체적인 대안(희망)을 제시하거나 또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소설, 영화, 드라마, 방송 같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 로티는 영화와 드라마, 노래 등의 대중적 '이야기'가 그 어떤 이념보다 더 사람들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영화 도가니가 장애인학교와 관련된 법을 바꿨고, 드라마 D.P.가 탈영병 잡는 D.P. 보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점 등등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대중적 '이야기'가 세상을 바꿔왔다는 증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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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영역 지문에도 가끔 나온다. 다음은 2020학년도 7월 고3국어 모의고사 지문이다.
로티는 객관적인 문자적 언어와 주관적인 은유적 언어는 명확히 구분될 수 없으며 구분해 줄 만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어를 구분하는 것은 대상의 본질을 지시하는 하나의 특별한 언어가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로티는 이러한 생각이 언어의 우연적 속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또한 은유적 언어는 그것이 사용된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일 뿐 언어 자체가 은유적인 본질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로티는 언어가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보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어적 서술들의 옳고 그름만 서로 비교할 수 있을 뿐, 끝내 세계의 옳고 그름을 제시할 수는 없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로티는 옳다고 여겨지는 어떤 언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언명이 주어진 상황을 드러내는 데 적절하다는 것을 특정 시대의 전통과 공동체가 승인한다는 의미일 뿐 문화적, 시대적 배경을 초월하여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세계에 관해 우리가 밝히는 것이 세계와 언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서술하는 언어끼리 비교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문자적 언어가 은유적 언어보다 그 진리에 더 부합한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로티는 이러한 언어관을 바탕으로 우리가 서술해 나가는 진리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재서술되면서 변화하는 것임을 밝히고자 했으며, 그런 점에서 철학적인 작업을 엄밀하고 체계적인 학문으로서보다는 문학적이고 시적인 작업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로티는 개인이 사적 공간에서 자신의 고유한 삶에 대해 자신만의 어휘로 서술해 나가는 시인과도 같은 작업을 통해 저마다의 진리가 우연적이고 상대적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보았으며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재서술해 나가는 개인을 일컬어 아이러니스트라고 불렀다. 로티는 아이러니스트의 작업이 자기완성의 길일 뿐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그 개인적 진리를 공적 영역으로 끌고 나와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강요할 수도 없다고 단정했다. 로티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궁극적 진리를 발견하고자 했던 과거의 수많은 철학자들 역시 아이러니스트에 불과할 뿐이므로, 그들이 찾은 진리 또한 사적 영역에 한정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스트는 사적인 영역에만 갇혀 공적인 것에 대해 무관심해질 수 있으므로, 로티는 사적 영역에서 아이러니스트의 작업을 수행함과 동시에 공적 영역에서는 자유주의자가 될 것을 촉구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자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제도와 관습의 부정적인 측면을 고쳐 나감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줄여 나가는 연대성을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렇듯 로티는 보편적 기준이 적용될 수 없는 사적인 영역과 시대의 보편적 기준에 의해 지배되는 공적인 영역을 분리함으로써 진리 탐구의 과정과 사회적 문제 해결의 과정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했다. ||
[1]
시카고 대학교 지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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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 대학교 지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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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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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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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 따르면 선험이란, 경험에 영향받지 않는 순수이성의 영역을 말한다. 선험적 영역의 의의는, 경험 없이도 이성의 합리적이고 반성적 사고만를 통해 어떤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칸트 철학의 바탕이 된다.
[6]
통각(Apperzeption)은 경험이나 인식을 종합하고 통일하는 작용을 말한다. 칸트는 이를 “내 자신의 의식”(Das Bewußtsein meiner selbst)이라고 말했다. 즉 통각을 통해 자아(자기의식, 자의식)가 만들어진다.
[7]
로티는 심지어 철학과 과학 역시, 언어적 서술 방식의 차이이며 이들 영역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8]
모든 자아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자아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자아를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내가 하는 것이 맞다면, 남이 하는 것도 맞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모든 개인은 상대방과 나의 '모순'을 인정하는 아이러니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9]
수사적 표현
[10]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모든 것을 단번에 지워버리는 그의 철학 작업이 '규범적'인 모든 질서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주관과 객관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끝이 나지 않는 논쟁거리이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긴 하다.
[11]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억압)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적인 폭력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공적인 폭력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은 이러한 폭력(억압)으로 인해 자유를 빼앗긴다.
주디스 슈클라를 참조. 로티는 그녀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