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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디노 바조 문서 참고하십시오.
로베르토 바조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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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FC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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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타코니 (1990~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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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바조 (1992~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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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루카 비알리 (1995~1996) |
로베르토 바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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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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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FIFA 월드컵 실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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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세리에 A 도움왕(2000년대)| 2003-04 세리에 A 도움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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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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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Ballond'or | ||
수상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
2위 로베르토 바조 |
3위 파올로 말디니 |
1994 FIFA 올해의 선수 | ||
수상 호마리우 |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
3위 로베르토 바조 |
Player of the Year 1994 | ||
수상 파올로 말디니 |
2위 로베르토 바조 |
3위 호마리우 |
1994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호마리우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 로베르토 바조 |
1995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조지 웨아 | 로베르토 바조 | 파올로 말디니 |
로베르토 바조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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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연도별 전 세계 축구 이적료 1위 | ||||
1989 로날드 쿠만 (900만 유로) |
→ |
1990 로베르토 바조 (1310만 유로) |
→ |
1991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1500만 유로) |
세리에 A 역대 득점 순위 Top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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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2px -12px" {{{#555555,#aaaaaa |
<colcolor=#000,#fff> 순위 | 선수 | 국적 | 득점 |
1 | 실비오 피올라 | 274 | ||
2 | 프란체스코 토티 | 250 | ||
3 | 군나르 노르달 | 225 | ||
4 | 주세페 메아차 | 216 | ||
4 | 조제 알타피니 | 216 | ||
6 | 안토니오 디 나탈레 | 209 | ||
7 | 로베르토 바조 | 205 | ||
8 | 치로 임모빌레 | 196 | ||
9 | 쿠르트 함린 | 190 | ||
10 | 주세페 시뇨리 | 188 | ||
10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 188 | ||
10 |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 188 | ||
13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 183 | ||
14 | 파비오 콸리아렐라 | 182 | ||
15 | 잠피에로 보니페르티 | 178 | ||
16 | 아메데오 아마데이 | 174 | ||
17 | 주세페 사볼디 | 168 | ||
18 | 루이지 리바 | 166 | ||
19 | 굴리엘모 가베토 | 164 | ||
20 | 로베르토 보닌세냐 | 162 | ||
21 | 루카 토니 | 157 | ||
22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156 | ||
22 | 필리포 인자기 | 156 | ||
22 | 로베르토 만치니 | 156 | ||
25 | 루이스 비니시오 | 155 | ||
25 | 카를로 레구초니 | 155 | ||
27 | 이스트반 나이에르스 | 153 | ||
27 | 에르난 크레스포 | 153 | ||
29 | 아드리아노 바세토 | 149 | ||
30 | 오마르 시보리 | 147 |
브레시아 칼초 영구결번 | |
No. 10 |
유벤투스 FC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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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름 | 국적 | 포지션 | 소속기간 | 출장경기 | 득점 |
피에트로 아나스타시(Pietro Anastasi) | 이탈리아 | FW | 1968–1976 | 303 | 131 | |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 | 이탈리아 | FW | 1990–1995 | 200 | 115 | |
로메오 베네티(Romeo Benetti) | 이탈리아 | MF |
1968–1969 1976–1979 |
159 | 23 | |
로베르토 베테가(Roberto Bettega) | 이탈리아 | FW | 1969–1983 | 481 | 178 | |
카를로 비가토(Carlo Bigatto) † | 이탈리아 | MF | 1913–1931 | 233 | 1 | |
잠피에로 보니페르티(Giampiero Boniperti) † | 이탈리아 | FW | 1946–1961 | 462 | 182 | |
펠리체 보렐(Felice Borel) † | 이탈리아 | FW |
1932–1941 1942–1946 |
307 | 161 | |
세르조 브리오(Sergio Brio) | 이탈리아 | DF | 1974–1990 | 378 | 24 | |
잔루이지 부폰(Gianluigi Buffon) | 이탈리아 | GK |
2001–2018 2019–2021 |
689 | 0 | |
안토니오 카브리니(Antonio Cabrini) | 이탈리아 | DF | 1976–1989 | 440 | 53 | |
움베르토 칼리가리스(Umberto Caligaris) † | 이탈리아 | DF | 1928–1935 | 198 | 0 | |
마우로 카모라네시(Mauro Camoranesi) | 아르헨티나/이탈리아 | MF | 2002–2010 | 288 | 32 | |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 | 이탈리아 | MF | 1969–1976 | 239 | 41 | |
프랑코 카우시오(Franco Causio) | 이탈리아 | MF |
1967–1968 1970–1981 |
447 | 72 | |
존 찰스(John Charles) † | 웨일즈 | FW | 1957–1962 | 178 | 105 | |
잔피에로 콤비(Gianpiero Combi) † | 이탈리아 | GK | 1921–1934 | 367 | 0 | |
안토니오 콘테(Antonio Conte) | 이탈리아 | MF | 1992–2004 | 419 | 44 | |
안토넬로 쿠쿠레두(Antonello Cuccureddu) | 이탈리아 | DF | 1969–1981 | 433 | 39 | |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 | 네덜란드/수리남 | MF | 1997–2004 | 235 | 10 | |
알레산드로 델피에로(Alessandro Del Piero) | 이탈리아 | FW | 1993–2012 | 705 | 290 | |
루이스 델 솔(Luis del Sol) | 스페인 | MF | 1962–1970 | 294 | 29 | |
디디에 데샹(Didier Deschamps)[1] | 프랑스 | MF | 1994–1999 | 178 | 4 | |
안젤로 디 리비오(Angelo Di Livio) | 이탈리아 | MF | 1993–1999 | 269 | 6 | |
치로 페라라(Ciro Ferrara) | 이탈리아 | DF | 1994–2005 | 358 | 20 | |
주세페 푸리노(Giuseppe Furino) | 이탈리아 | MF | 1969–1984 | 528 | 19 | |
클라우디오 젠틸레(Claudio Gentile) | 이탈리아/리비아 | DF | 1973–1984 | 414 | 10 | |
욘 한센(John Hansen) † | 덴마크 | FW | 1948–1954 | 187 | 124 | |
파올로 몬테로(Paolo Montero) | 우루과이 | DF | 1996–2005 | 278 | 6 | |
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 | 체코 | MF | 2001–2009 | 327 | 65 | |
라이문도 오르시(Raimundo Orsi) † | 아르헨티나/이탈리아 | FW | 1929–1935 | 194 | 87 | |
카를로 파롤라(Carlo Parola) † | 이탈리아 | DF | 1939–1954 | 340 | 11 | |
안젤로 페루치(Angelo Peruzzi) | 이탈리아 | GK | 1991–1999 | 301 | 0 | |
잔루카 페소토(Gianluca Pessotto) | 이탈리아 | DF | 1995–2006 | 366 | 3 | |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 | 프랑스 | MF | 1982–1987 | 224 | 104 | |
피에트로 라바(Pietro Rava) † | 이탈리아 | DF |
1935–1946 1947–1950 |
330 | 15 | |
파브리치오 라바넬리(Fabrizio Ravanelli) | 이탈리아 | FW | 1992–1996 | 160 | 68 | |
비르지니오 로세타(Virginio Rosetta) † | 이탈리아 | DF | 1923–1936 | 315 | 16 | |
파올로 로시(Paolo Rossi) † | 이탈리아 | FW |
1973–1975 1981–1985 |
138 | 34 | |
산드로 살바도레(Sandro Salvadore) † | 이탈리아 | DF | 1962–1974 | 450 | 17 | |
가에타노 시레아(Gaetano Scirea) † | 이탈리아 | DF | 1974–1988 | 552 | 32 | |
루시디오 센티멘티(Lucidio Sentimenti) | 이탈리아 | GK | 1942–1949 | 188 | 5 | |
오마르 시보리(Omar Sívori) † | 아르헨티나/이탈리아 | FW | 1957–1965 | 253 | 167 | |
알레시오 타키나르디(Alessio Tacchinardi) | 이탈리아 | MF | 1994–2005 | 404 | 14 | |
스테파노 타코니(Stefano Tacconi) | 이탈리아 | GK | 1983–1992 | 337 | 0 | |
마르코 타르델리(Marco Tardelli) | 이탈리아 | MF | 1975–1985 | 375 | 51 | |
모레노 토리첼리(Moreno Torricelli) | 이탈리아 | DF | 1992–1998 | 230 | 3 | |
다비드 트레제게(David Trezeguet) | 프랑스/아르헨티나 | FW | 2000–2010 | 320 | 171 | |
잔루카 비알리(Gianluca Vialli) | 이탈리아 | FW | 1992–1996 | 145 | 53 | |
지네딘 지단(Zinédine Zidane) | 프랑스 | MF | 1996–2001 | 214 | 31 | |
디노 조프(Dino Zoff) | 이탈리아 | GK | 1972–1983 | 476 | 0 |
[1]
세리에 B로 떨어지고 선수들이 이적하고 감독인 카펠로도 레알로 가버린 상황에 취임하여 2006-07 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을 하고 바로 팀을 승격시켰다. 그러나 선수 영입 권한으로 갈등을 빚고 사임하였다. 그 후로 몇 년을 삐걱거린 것을 보면 정말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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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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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로베르토 바조 Roberto Baggio |
||||
출생 | 1967년 2월 18일 ([age(1967-02-18)]세) | ||||
베네토 비첸차시 칼도뇨주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4cm | ||||
직업 |
축구 선수 (
공격수[1],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행정가 |
||||
소속 | <colbgcolor=#eee,#191919> 선수 |
비첸차 칼초 (1983~1985) ACF 피오렌티나 (1985~1990) 유벤투스 FC (1990~1995) AC 밀란 (1995~1997) 볼로냐 FC (1997~1998) 인테르나치오날레 (1998~2000) 브레시아 칼초 (2000~2004) |
|||
행정 | 이탈리아축구연맹 (2010~2013 / 기술위원장) | ||||
국가대표 | 56경기 27골( 이탈리아 / 1988~2004)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373A3C,#DDD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eeeeee,#191919> SNS | ||||
가족 |
배우자 안드레이나 파비 장녀 발렌티나 바조 장남 마티아 바조 차남 레오나르도 바조 |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판타지스타의 유래가 된 선수로, 유벤투스 소속이던 1993년에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석권하고, 1994 월드컵에서는 엄청난 활약으로 이탈리아의 준우승을 이끌었다.[3] 한편 그가 브레시아 칼초에서 달았던 등번호 10번은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로베르토 바조/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로베르토 바조/국가대표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플레이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로베르토 바조/플레이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4. 평가
199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4]이다. 마라도나가 휩쓸고 지나갔던 1990년대 초반은 춘추전국시대였으나, 그나마 호마리우와 함께 가장 선두에 서 있었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바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판타지스타[5]다. 그의 전성기 플레이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고, 팀의 공격 전체를 단신으로 주도할 수 있는 극소수의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0년대는 전술의 발전으로 선수 개인의 힘이 아닌, 압박 축구와 같은 조직적인 팀 단위의 시스템 축구가 들어서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너무 자유분방한 플레이를 펼쳤던 그는 커리어 내내 사키, 카펠로, 리피, 트라파토니 등 이탈리아 최고의 감독들과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켰고, 그 결과 저니맨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바조는 1993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고, 1994년에도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다.[6]
또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세번의 월드컵에서 16경기 9골[7] 2어시스트 및 준우승, 3위, 8강을 기록, 특히 1994 월드컵에서 그는 토너먼트에서만 5골을 넣으며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실축[8]으로 준우승에 그치며 실버볼을 수상하였다. 반면 그가 사키 감독과의 불화로 제외된 유로 1996에서 이탈리아는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며, 트라파토니 감독이 그를 제외시킨 2002 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는 1승 1무 2패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16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렇듯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그의 팀 내 비중은 엄청난 것이었다.
비록 바조의 팀 커리어는 다른 역대 레벨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그가 선보인 개인 기량과 큰 대회 활약상은 고평가 요소가 되고 있으며, 현재 바조의 위상은 역대 20~30위권 정도로 평가받는다.
5. 기록
5.1. 클럽 기록
시즌 | 팀 | 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경기 | 골 | |||
1982-83 | 비첸차 | 세리에 C1 | 1 | 0 | - | 0 | 0 | - | - |
1983-84 | 비첸차 | 세리에 C1 | 6 | 1 | - | 6 | 1 | - | - |
1984-85 | 비첸차 | 세리에 C1 | 29 | 12 | - | 5 | 2 | - | - |
1985-86 | 피오렌티나 | 세리에 A | 0 | 0 | 0 | 5 | 0 | - | - |
1986-87 | 피오렌티나 | 세리에 A | 5 | 1 | 0 | 4 | 2 | 1 | 0 |
1987-88 | 피오렌티나 | 세리에 A | 27 | 6 | 8 | 7 | 3 | - | - |
1988-89 | 피오렌티나 | 세리에 A | 31 | 15 | 6 | 10 | 9 | - | - |
1989-90 | 피오렌티나 | 세리에 A | 32 | 17 | 5 | 2 | 1 | 12 | 1 |
1990-91 | 유벤투스 | 세리에 A | 33 | 14 | 6 | 5 | 3 | 8 | 9 |
1991-92 | 유벤투스 | 세리에 A | 32 | 18 | 7 | 8 | 4 | - | - |
1992-93 | 유벤투스 | 세리에 A | 27 | 21 | 8 | 7 | 3 | 9 | 6 |
1993-94 | 유벤투스 | 세리에 A | 32 | 17 | 7 | 2 | 2 | 7 | 3 |
1994-95 | 유벤투스 | 세리에 A | 17 | 8 | 7 | 4 | 2 | 8 | 4 |
1995-96 | 밀란 | 세리에 A | 28 | 7 | 11 | 1 | 0 | 5 | 3 |
1996-97 | 밀란 | 세리에 A | 23 | 5 | 4 | 5 | 3 | 5 | 1 |
1997-98 | 볼로냐 | 세리에 A | 30 | 22 | 9 | 3 | 1 | - | - |
1998-99 | 인테르나치오날레 | 세리에 A | 23 | 5 | 9 | 6 | 1 | 6 | 4 |
1999-00 | 인테르나치오날레 | 세리에 A | 19 | 4 | 3 | 5 | 1 | - | - |
2000-01 | 브레시아 | 세리에 A | 25 | 10 | 8 | 3 | 0 | - | - |
2001-02 | 브레시아 | 세리에 A | 12 | 11 | 2 | 1 | 0 | 2 | 1 |
2002-03 | 브레시아 | 세리에 A | 32 | 12 | 8 | 0 | 0 | - | - |
2003-04 | 브레시아 | 세리에 A | 26 | 12 | 10 | 0 | 0 | - | - |
6. 기록
6.1. 대회 기록
- AC 밀란
- 세리에 A: 1995-96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준우승: 1994
6.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1993
- 발롱도르 올스타팀: 1994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AM 8위)
- FIFA 올해의 선수: 1993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3
- FIFA 월드컵 실버볼: 1994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4
-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 2002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득점왕: 1990-91
- 세리에 A 도움왕: 2003-04
- 세리에 A 가장 사랑받는 선수: 2001
- 세리에 A 올타임 XI: 2015
- 구에린도르: 2000-01
- 유니세프 유럽 올해의 축구 선수: 1992-93
- 옹즈도르: 1993
- 옹즈 드 옹즈: 1993, 1994, 1995
- RSSSF 올해의 선수: 1993
- 가에타노 시레아 경력모범상[9]: 2001
- 주세페 프리스코상: 2004
- FIFA XI: 2000, 2002
- FIFA 100: 2004
- 골든풋: 2003
- 브라보상: 1990
- AC 밀란 명예의 전당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1
-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 2011
- 유벤투스 올타임 XI: 2017
- 이탈리아 스포츠 명예의 거리: 2015
- IFFHS 레전드: 2016
- IFFHS 올타임 이탈리아 드림팀: 2021
- Man of Peace: 2010
6.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1991
7. 어록
나는 축구와 20년 넘게 사랑을 했다. 축구를 할 수만 있다면 수명이 줄어들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어쩌면 나는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 도핑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용한 유일한 도핑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플레이 중에서 항상 가장 어려운 것을 고르고 있다. 평범한 3골보다는 화려한 1골을 넣는 것이 좋다. 그것이
판타지스타다.
PK를 득점한 것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축한 것은 모든 이에게 영원히 기억된다.
선수 경력에 미련도 후회도 없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PK는 다시 차고 싶다. 나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 바조에 대한 언사 #==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만 그를 넘버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네딘 지단
지네딘 지단
현재 전세계의 모든 현역 선수들은 전성기의
디에고 마라도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생각한다.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는 축구를 분석하고 해석해 법칙을 찾아낸다. 그들은 축구를 좁게 만든다. 하지만 바조의 플레이는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축구는 이런 것이다'라고. 바조는 축구를 넓게 만든다.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는 축구를 분석하고 해석해 법칙을 찾아낸다. 그들은 축구를 좁게 만든다. 하지만 바조의 플레이는 감독이나 평론가, 해설자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축구는 이런 것이다'라고. 바조는 축구를 넓게 만든다.
요한 크루이프
로베르토 바조는 최고의 이탈리안
판타지스타다. 그는
메아차와
보니페르티보다 낫고, 역대 최고 중에 포함된다.
펠레,
마라도나, 그리고 아마도
크루이프 바로 뒤에는 위치하겠지. 무릎 부상 문제가 없었다면 아마도 바조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카를로 마초네
카를로 마초네
그를 나와 비교하지 마라. 그는 유일무이한 선수다.
디에고 마라도나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마라도나보다 생산적이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리그 내 최고의
No.10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으며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미구엘 몬튜오리 (1988-89 시즌의 바조를 두고)
미구엘 몬튜오리 (1988-89 시즌의 바조를 두고)
그는 이탈리아 축구의 기념비다.
마르첼로 리피
마르첼로 리피
바조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시대에 흔적을 남겼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조반니 트라파토니
난
메아차와
리베라가 뛰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선수는 바로 바조다.
난 메아차를 볼 수 있던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바조의 플레이를 보며 그를 떠올렸다. 바조는 판타지를 지니고 있다.
잔니 브레라
난 메아차를 볼 수 있던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바조의 플레이를 보며 그를 떠올렸다. 바조는 판타지를 지니고 있다.
잔니 브레라
바조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것은 하나의 불행이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펠레
펠레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을 발에 두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축구계의 몇 없는 희귀종 중 하나다.
장피에르 파팽
장피에르 파팽
로베르토 바조는 진정한 축구의 천재였다. 그건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어려운 것을 마치 쉬워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플라티니가 말했던 것처럼 9번과 10번 사이의 선수였다.
미드필더도 아니었지만
스트라이커도 아니었다.
바조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를 데리고 있던 코치들이 문제였죠. 그들은 바조와 같은 재능을 다룰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바조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를 데리고 있던 코치들이 문제였죠. 그들은 바조와 같은 재능을 다룰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바조는 지금까지 함께 뛰어본 선수들 중에서 최고였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여러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했다. 그 중에서 로베르트 바조는 가장 스페셜했다. 나는 라우드루프, 호마리우, 쿠만, 호나우두, 스토이치코프와 함께 플레이했다. 그러나 바조와 같은 선수는 보지 못했다.
펩 과르디올라
나는 운이 좋게도 여러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했다. 그 중에서 로베르트 바조는 가장 스페셜했다. 나는 라우드루프, 호마리우, 쿠만, 호나우두, 스토이치코프와 함께 플레이했다. 그러나 바조와 같은 선수는 보지 못했다.
펩 과르디올라
내가 겨뤄본 상대 중 최고의 선수는 바로 바조다. 그는 마치 축구가 쉬운 것처럼 보이게 했다.
맷 르티시에
맷 르티시에
이탈리안들은 그들의 조직력에 엄청난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그들의 영감은 바조로부터 나온다.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로베르토 바조로 태어나고 싶다.
파올로 말디니
파올로 말디니
난 바조를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지금처럼 각광받지 못하던 시절에 태어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분명히 그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였어요. 지금 우리는 믿을 수 없는 클래스의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정말 천부적인 재능. 또한 선수들을 제치고 수비진을 침투하는데 거대한 능력을 지녔다. 그의 움직임과 기술 때문에 그는 마크하기가 까다롭다. 팀이 언제나 도움을 구하는 선수다.
알베르트 페레르
알베르트 페레르
당신은 로베르토 바조를 본다. 그리고 이내 좋은 선수란 어떤 선수인지 깨닫게 된다.
라이언 긱스
라이언 긱스
바르사에서
인테르로 이적해 왔던
호나우두도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내가 인테르에서 20년 동안 함께 뛰었던 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단 하나의 이름을 말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로베르토 바조가 되어야 한다. 그는 퀼리티와 열정 사이에서 이상적인 밸런스를 가졌다.
하비에르 사네티
하비에르 사네티
난
말총머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계속 이렇게만 플레이 해준다면
레게머리를 한다 해도 개의치 않겠다.
로베르토 바조는 마치 라파엘로와 같다. 델 피에로는 그의 제자이므로 핀투리키오가 된다.
조반니 아그넬리
로베르토 바조는 마치 라파엘로와 같다. 델 피에로는 그의 제자이므로 핀투리키오가 된다.
조반니 아그넬리
천사들은 그의 다리 사이에서 노래한다.
알도 아그로피
알도 아그로피
바조는 위대한 선수이며 난 그에게 엄청난 관심이 있다.
알렉스 퍼거슨
알렉스 퍼거슨
1990 월드컵 당시 나는 자원봉사 볼보이로서 체코전에 참가했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미드필더에서 공을 잡아 30미터를 폭풍같이 질주하며 골을 성공시킨 한 선수를 보았다. 나는 그를 보며 커서 꼭 저런 선수가 되리라 다짐했고,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이제 오고 있다.
프란체스코 토티 ( 2002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프란체스코 토티 ( 2002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서 넣은 결승골이 가장 아름다웠고 환상적인 골이였다. 이전에는 바조를 몰랐으나 이 1골과 그의 크고 푸른 눈이 나를 사로 잡았다. 지금도 마음 속에 바조가 남아 있다.
마돈나
마돈나
바조와 같은 선수를 만나려면 적어도 앞으로 20년이 걸릴 것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바조를 이탈리아에 그냥 남겨두겠다니, 한 마디로 이건 불공평하다. 다른 선수들에겐 주어진 기본적인 기회마저 봉쇄[10]해 놓았기 때문이다. 바조는 혼자서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선수이다. 나는
트라파토니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파올로 디 카니오 (바조의 2002 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촉구하며)
파올로 디 카니오 (바조의 2002 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촉구하며)
축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미국의 독자들에게 나는 로베르토 바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장거리
육상 선수들의 무한한 지구력, 단거리 선수들의 스피드,
러닝백의 밸런스와
포인트 가드의 시야를 모두 지닌 선수이다.
마크 우즈
마크 우즈
로베르토 바조를 볼 때마다 한가지 생각나는 말이 있다. 품격과 격조는 시간이 지나도 쇠락하지 않는다. 그는 몸소 이 것을 증명하고 있다.
데이터스포트
데이터스포트
그와 처음 그라운드에 선 날 나는 흥분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잔루카 잠브로타
잔루카 잠브로타
로베르토 바조와 시합을 하고 난 후 너무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렸다.
안정환
안정환
8. 기타
- 골닷컴 선정이 선정한 1990년대 최고의 선수 2위에 이름을 올렸다.
- 애칭은 '로비(Robi (or "Roby)'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 귀도 미스타가 모니카 벨루치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 마돈나의 프러포즈를 받은 적이 있다. 마돈나가 자신과 만나달라고 하자 바조는 " 나에겐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와 무덤까지 같이 갈 것이다"라고 단칼에 거절했다.[11] 그리고 바조는 현재까지 아내와 잘 살고 있다.
- 2017년 10월, 유소년 지도자가 되어 베이징체육대학교에서 축구학과 대학생 및 석· 박사들을 대상으로 유소년 지도법 강의를 진행했다. 특히 '운동뇌(brain kenetic)'란 주제로 자신의 경험을 전수, 동시에 자체 개발한 연령별 프로그램으로 10세 이하와 14세 이하 선수들을 직접 지도했다. 바조는 마지막 날인 18일 대학 포럼에서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능'이라며 '앞으로 중국도 이를 간과하지 않는다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축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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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발렌티나 바조가 본인과 제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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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FA 19에서 아이콘으로 추가되었다.
- 2022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승부차기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는 당연히 자신의 실축 때문. 다른 선수들이 그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고, 이외 자신의 실축과는 별개로 월드컵 승부차기 3전 전패를 기록했기 좋은 기억이 없다고. 그러나 바조의 바람과 반대로 결승전은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추아메니가 실축해 아르헨티나가 우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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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GI 신도다. 때문에 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에서 바조의 개종 루머는 수시로 돌았고 ' 이탈리아인들이 바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루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자연을 즐기는데는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며 자신의 농장에서 사냥을 즐긴다.
- 안정환이 루드 굴리트와 더불어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수가 로베르토 바조였다고 밝혔다.[13] 실제로 페루자에서 뛰던 시절에 같이 바조를 상대했던 경기에서는 너무 감동을 해서 눈물까지 흘리면서 뛰었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뽑은 이상형 월드컵 미드필더 부문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모조리 관광보내고, 지네딘 지단을 아슬아슬하게 꺾고 우승했다. 실제로는 지단을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바조와 굴리트를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바조와 함께 식사를 함께 한 적도 있었는데 너무 멋있더라면서 감탄했다고. 솔직히 외모도 자신보다 바조가 낫다고 할 정도이다. 여담으로 안정환의 플레이스타일이 바조와 자주 비교되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는데 사실은 바조를 동경하는 만큼 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8.1.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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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미남은 누구야?
마돈나 (바조의 1990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전 골 장면을 보며)
마돈나 (바조의 1990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전 골 장면을 보며)
그에겐 여성팬들을 기절하게 만들고 동시에 남성팬들을 울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가브리엘 마코티
미남
축구 선수로 유명하다.
판타지스타의 조건에 외모가 들어간 이유로,
미국의 어느 기자가 바조의 외모를 보고 "여성들에게 인기폭발하게 생겼다"고 말할 정도였고,
마돈나가 바조에게
프러포즈를 할 정도다. 나이가 든 현재도
미중년이다.가브리엘 마코티
8.2. WA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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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같이 보기
1
쳉가 · 2
바레시 · 3
베르고미 ⓒ · 4
데아고스티니 · 5
페라라 · 6
페리 · 7
말디니 · 8
비에르코보드 · 9
안첼로티 10 베르티 · 11 데 나폴리 · 12 타코니 · 13 잔니니 · 14 마로키 · 15 바조 · 16 카르네발레 · 17 도나도니 18 만치니 · 19 스킬라치 · 20 세레나 · 21 비알리 · 22 팔리우카 |
아첼리오 비치니 |
1
팔리우카 · 2
아폴로니 · 3
베나리보 · 4
코스타쿠르타 · 5
말디니 · 6
바레시 ⓒ · 7
미노티 · 8
무시 · 9
타소티 10 R. 바조 · 11 알베르티니 · 12 마르케자니 · 13 D. 바조 · 14 베르티 · 15 콘테 · 16 도나도니 · 17 에바니 18 카시라기 · 19 마사로 · 20 시뇨리 · 21 졸라 · 22 부치 |
아리고 사키 |
1
톨도 · 2
베르고미 · 3
말디니 ⓒ · 4
칸나바로 · 5
코스타쿠르타 · 6
네스타 · 7
페소토 · 8
토리첼리 · 9
알베르티니 10 델 피에로 · 11 바조 D. · 12 팔리우카 · 13 코이스 · 14 디 비아조 · 15 디 리비오 · 16 디 마테오 · 17 모리에로 18 바조 R. · 19 인자기 · 20 키에사 · 21 비에리 · 22 부폰 |
체사레 말디니 |
[1]
세컨드 스트라이커
[2]
공격형 미드필더
[3]
그리고 그 결승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실축하여 비운의 대명사로도 꼽힌다.
[4]
바조를 포함해
주세페 메아차,
잔니 리베라,
파올로 말디니,
잔루이지 부폰 정도가 거론된다.
[5]
애초에 판타지스타 자체가 바조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다.
[6]
바조의 발롱도르 순위는 1993년 1위, 1994년 2위로
잔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인 최고 기록이며,
FIFA 올해의 선수와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순위는 각각 1993년 1위, 1994년 3위와 1993년 1위, 1994년 2위로 둘 다 이탈리아인 최고 기록이다.
[7]
9골 중 6골이 토너먼트에서 넣은 골이다.
[8]
이미
바레시,
마사로가 실축해 바조가 성공해도
베베투가 성공하면 패배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에이스였던 바조가 독박을 쓴 셈.
[9]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
[10]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바조를 한 번도 기용하지 않은 점.
[11]
사실 바조는 안드레이나 파비와 1989년에 결혼했기 때문에 마돈나가 유부남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이라서, 바조가 제대로 대처를 한 것에 가깝다.
[12]
한국명은 '로베르토 바조: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
[13]
루드 굴리트는 안정환과 세대가 완전 다르기 때문에 경기를 함께 뛰어보지는 못했다.